-
-
말의 품격 -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노아(Noah)의 후손은 하늘에 닿을 수 있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한 행동에 괘씸하게 여긴 야훼(Yahweh)는 인간의 언어를 혼란에 빠뜨려 뿔뿔이 흩어지게 함으로써 탑 쌓기를 중단시킨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Tower of Babel)’ 이야기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인간의 절망감이 잘 묘사돼 있다. 바벨탑의 교훈은 말 잘하기의 필요성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살다 보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간에 뜻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때때로 찾아온다. 예를 들면 진심으로 이야기했는데 소통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또 기껏 생각해서 이야기했는데 화만 내는 사람이 있다.
대화는 발화자가 상대방(수신자)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전달하기 위해서 특정한 형태의 말을 의도적으로 보낼 때 성립된다. 이처럼 너무도 단순해 보이는 과정이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작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인간사의 모든 갈등은 대화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곡되고 엇갈린 대화는 개인과 사회조직의 건강성을 해친다. 대화는 가정과 사회생활을 성립시키는 기초적인 행동이다. 이것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개인과 사회 모두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개인이나 조직의 서로 다른 경험과 이해, 가치관으로 인해 말의 차이 못지않은 대화의 장애를 겪는다.
우리는 지금 말 잘하기의 필요성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생산적인 말하기를 위해 말하는 법도 공부해야 한다. ‘말하기’도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각종 대화법과 화술을 배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앞 다투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책들이 비뚤어지고 휘어진 언어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약이라면, 《말의 품격》(황소북스, 2017)은 가시 돋친 언어에 상처받아 허해진 마음을 북돋아주는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이다.
《말의 품격》은 ‘상대방을 위한 말하기’란, 기본적으로 나와 상대방을 이어주는 과정이란 인식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을 알려면 그가 어떤 말을 하는가를 보면 된다. 사람은 때로 상대방의 말 속에 숨은 생각을 읽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 마음대로 상대방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야 한다. 섣부르게 상대방의 말에 개입하거나 끊어버리는 태도는 상대방의 발화를 막는 일방적인 자세이다. 상대방의 말 위에 자신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얹어 버리면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소음으로 변한다. 에머슨(Emerson)은 말이란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소리라고 했다. 책의 저자도 말은 ‘마음의 소리’라고 말한다. 말이 정갈하게 모여 쌓이면 사람의 품성으로 완성된다.
한마디 말이 상황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꾼다. 우리의 주변에 좋은 말 한마디 때문에 성공과 행복을 거머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도 있다. 말은 이렇게 인생을 뒤바뀌게 하는 힘이 있다. 많은 말을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말은 소통이 목적이지 자신의 과시가 목적이 아니다. 저자는 침묵이 ‘말실수를 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침묵이 항상 좋은 처세도 아니다. 적절한 말을 적절한 때에 하는 것이야말로 잘하는 말이다. 상대방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싶으면 침묵을 깨고 질문을 하는 것도 좋다.
저자는 《말의 품격》을 쓰기 위한 재료로 공자, 맹자, 장자, 《손자병법》 등 동양고전에서 찾아낸 질 좋은 문장들을 사용한다. 내가 왜 이 책을 열 가지 한약 재료를 넣어 만든 십전대보탕으로 비유한 이유가 있다. 몸에 좋은 동양고전의 문장들과 편안하고 쉬운 저자의 말을 함께 달인 《말의 품격》은 차가운 언어로 얼어버린 독자들의 몸과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 하지만 한약재를 잘못 먹으면 부작용이 일어나는 법.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이 책을 읽는다면 세속적 차원의 대화를 지향하는 것이 된다. 말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형식적인 말에 불과하다. 상대방이 알아듣고 통하는 말의 특징은 마음에서 곧장 흘러나와 단순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말은 상처받은 이들이 위로받고, 낙심한 이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생산적인 도구가 되어야 한다. 좋은 말은 사람을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