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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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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 가다오 
아~아~ 그 정의는 어디에
아~아~ 그 정의는 어디에
 

- 정훈희의 노래 <안개>의 가사를 개사함 -

 

 

  너무나 어둡기만한 공지영의 안개

무진(霧津).  우리말로 풀어보면 '안개 나루터'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문학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독자라면 '무진' 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떠올릴 것이다. 서울 생활에서 상처받은 인물이 남쪽 고향인 무진에 와서 겪는 에피소드를 통해 삶의 여러 면모를 성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때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렸던 무진은 안개로 덮여 있다.  '감수성의 혁명' 이라는 별명답게 김승옥 작가는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 이라고 음습하면서도 멋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문학과 예술에서의 안개의 이미지는 어둠, 억압, 소통 불능, 희망 없음 정도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역시 '무진' 이라는 지명을 무대로 한 공지영의 <도가니> 역시 안개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김승옥이 바라본 무진의 안개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김승옥의 안개는 몽환적이라고 한다면 공지영이 본 무진의 안개는 런던의 스모그 못지 않게 너무 불투명하면서도 어둡기만 하다.     당최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악의 카르텔

장애인 학교 '자애 학원' 내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성폭행 사건을 토대로 구성한 소설은 세상에 만천하에 공개된 사건 실체의 내막 자체가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는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점은 이 불행한 사건이 전혀 공권력의 힘이나 지역사회 상식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역 인권단체에서 교장의 파렴치한 장애 학생 사실을 고발하지만 무진경철서 형사, 시교육청 장학사, 시청 담당 공무원, 판 검사 하물며 영광제일교회 교인들, '무사모' 라는 무진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만든 시민단체까지 철저히 담합을 형성하여 이 사건을 은폐시키는 데 일조한다.  지역사회의 기득권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총동원되어 비리 주범인 자애학원의 이강석 교장을 무혐의받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성벽처럼 견고하고 거대한 악의 담합 앞에서 인간의 양심은 보잘것없는 사치에 불과한 것인가?    작가의 머리에서 탄생된 순전히 허구적인 내용이라고 하면 모를까 실화를 토대로 구성한 진실적인 내용이기에 우라나라의 현실에 대해 탄식이 절로 흘러나올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무진에서 벌어지는 이 협잡과 타락의 추악한 풍경이 단지 소설 속의 가상공간을 넘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데 있다.  점점 더 강자 중심으로 변해가는 권력 기득권자들의 담합과 약자들에 대한 억압, 정의의 실종과 같은 사회적 퇴행 현상이 무진에서 벌어지는 '악의 카르텔' 을 닮아가고 있다.  

 

 

  잘못된 사회가 괴물을 만든다 

 

 

" 죽다 살아난 세계적 사회지도층의 미소 " 

호텔 여종업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前 총재는 

법원으로부터 공소 기각 결정을 받아 무혐의로 풀려나게 되었다. 

(사진 출처: 로이터)

 

범죄도 대중의 관심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에 무엇보다도 장애인은 언제나 가장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유독 장애아의 성폭행에 관해선 둔감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인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당사자도 그렇지만 장애 아이를 키우거나 대한민국에서 딸을 키우는 부모로서는 늑대 굴에 어린 양을 풀어놓는 것과 다름없는 기분일 것이다.   

요즘에는 집 근처 평범한 이웃에서부터 사회적으로 지위를 누리는 사회지도층, 심지어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다던 IMF 총재까지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이 비이성적인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게중에 몇 몇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이 일으킨 행위에 대해서 일말의 책임을 지지 않은채 법의 심판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검찰 조직의 집단적인 성 접대가 만천하에 알려져도, 경제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무혐의 처분을 받는 나라와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도 당당하기만 한 권력자들로 인해 상식적으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비인간적인 행위마저도 범죄가 안 되는 세상은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별반 다를게 없다.  

장애 소녀를 집단 성폭행하고도 멀쩡하게 학교에 다니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떻게 보일까?  그리고 인면수심으로 가득한 어른으로부터 신체적 상처를 입은데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경험의 기억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여성을 하나의 성적인 유희의 도구로만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그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장애아에 대한 지원은 고사하고 그들이 억울한 범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도 막아주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아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옥과도 같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장애아들은 여전히 권리를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나와 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호는 불편한 진실을 간직하지만 그 진실 안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뛰어들어 해결하지 않으려 하는 진실은 결국에는 묻혀버리고 만다.   지금도 어디선가 제2, 제3의 자애학원 사건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공지영의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다고 한다.  소설 발간 당시 그랬듯이 가을에 곧 개봉될 동명제목의 영화 역시 과연 소설 속 충격적인 내용을 어떻게 영상화가 될지 개봉 전부터 영화팬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어떻게 잔인한 성폭행 장면을 묘사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충격 요법형으로 현실의 치부를 그대로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잘못된 사회에 대한 진지하고 절박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문제다.

세상은 감상으로 변하지 않는다. 제 자리에서 분노하고 공감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변화와 문제의 시점을 파악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비로소 변화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방관자의 무서운 침묵은 사회를 더욱 미쳐버리게 만들게 되며 괴물 같은 아이를 양산하고 그런 괴물들은 더욱 기괴한 모습으로 성장해 정의를 집어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두렵고 무서운 사회를 방조하는 권력자들부터 변하지 않는 한 이 나라에는 희망의 햇빛 한 줄기 보이기는커녕 그저 어둡고 음습한 악(惡)과 거짓의 안개로만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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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8-2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부하신 것이 곧 개봉할 영화 포스터인가 보네요. 포스터 분위기 한번 으스스 합니다. 저는 소설은 읽지 않았는데, 영화로 개봉하게 되면 한 번 보려구 해요.^^

cyrus 2011-08-26 21:59   좋아요 0 | URL
9월에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네요, 맥거핀님은 영화를 즐겨 보시는 분이시니까
영화리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blanca 2011-08-25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우리나라는 성범죄에 관대한 것 같아요. 특히 합의에 의해 처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오히려 유야무야 넘어가는 사태를 조장하는 것 같고요. 이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cyrus님의 리뷰를 읽으니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네요.

cyrus 2011-08-26 22:02   좋아요 0 | URL
간혹 언론과 뉴스를 보게 되면 법전 내용의 형식에 너무 지우쳐서
분명 범죄 행위임에도 무죄나 가벼운 형량을 받은 사례를 보곤 해요.
성범죄만큼은 확실히 규제할 수 있는 형법의 도입이 필요한거 같아요.

비로그인 2011-08-2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영화.. 저도 자극적인 내용 묘사보다는 그 분위기와 생각할거리를 어떻게 던져주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한편 흥행이라는 면도 고려해야 할텐데, 과연 어떻게 될지.

영화로 만들어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책에서 받은 느낌의 반밖에 되질 못했었는데 이 소설이 영화가 되어 보게 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cyrus님 덕분에 영화가 나오게 되는 걸 알았네요~

cyrus 2011-08-26 22:04   좋아요 0 | URL
예전 <우행시>가 성공했듯이 <도가니>도 블록버스터급 외국 영화가
개봉되지 않는 이상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소설 속 인호 역으로 공유입니다. 얼핏 <우행시>의 강동원이
생각나네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8-2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론, 아니 자주 현실은 소설보다 더 무섭죠...제가 이 영화를 보게 될 가능성은 5% 정도일 것 같은데 보게 된다면 아마 공유때문일 것 같네요 ㅎㅎㅎ

cyrus 2011-08-27 14:05   좋아요 0 | URL
<도가니>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공유의 역할도 큰 비중이 있다고
봐야될 거 같아요 ^^
 
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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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라는 책에서 현대적 생활에서의 쓰레기는 모든 생산의 어둡고 수치스러운 비밀이며 특히 산업계의 우두머리들은 쓰레기에 대한 언급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화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산 활동을 자극하고 격려하고 유발하는 전략은 새로운 쓰레기의 생산을 자극하기 때문에 쓰레기 은폐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바우만이 말하는 '쓰레기' 는 인간이 사용하고 버려지는 썩지 않고 분해되지 않은 채 산처럼 쌓여만가는 유형적인 형체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와 문명이 발전할수록 그 경쟁 과정에서 도태된 잉여의 인간들, ‘쓰레기가 된 인간들’ 이 점점 늘어가고 있음을 역설했다.    

'쓰레기가 된 인간들' 은 사회집단으로부터 공인받거나 머물도록 허락받지 못했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인간집단을 지칭한다. 그들은 현대화의 질서구축과 경제적 진보에서 탈락해 온전한 의미의 현대적 생활방식을 영위하지 못하면서 사회로부터 도태되어 갈 뿐이다.  

     

엄마가 처음에 딱부리를 달래노라고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라고 했지만, 이 곳은 분명 사람들이 쓰다 남아서 또는 싫증이 나서 아니면 못쓰게 된 물건들을 버리는 쓰레기장이었고, 이 곳에 사는 사람들도 도시에서 내몰리고 버려진 인간이다.  

 - 황석영 <낯익은 세상> pp 44 -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을 읽으면서 쓰레기에 대한 바우만의 정의가 오버랩되어서 불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평생 산동네에서 살다가 꽃섬에 정착하게 된 딱부리와 평생 꽃섬에서 자란 땜통은 도시문명에서 오랫동안 고립된 채 살아왔다   이들에게 교회라는 공간은 그저 라면을 얻게 됨으로써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제 값으로 물건을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직원으로부터 절도범으로 의심을 받아야할 정도로 도시화를 상징하는 백화점은 꽃섬 소년들에게는 낯익으면서도 여전히 낯선 공간일 뿐이다.  그들은 어디를 가도 그리 좋은 환영을 받지 못한다.  버스를 타기만 하도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악취 때문에 탑승거부를 당하기도 한다. 

쓰레기매립지에서 쓰레기를 수집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연명하는 꽃섬 동네 사람들은 현대인들이 기피하고 은폐하려는 쓰레기더미를 담당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문명화의 생산라인에서 제외됨으로써 위태로운 폐기물 취급을 받는 사회적 낙오자들이기 때문이다.   

꽃섬 동네 사람들은 쓰레기로 집을 짓고, 쓰레기로 밥을 하며, 쓰레기 판 돈으로 술을 마시면서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이들의 모습은 쓰레기를 줍는 묘사가 많다.   

쓰레기를 수집하는 것이 꽃섬 동네들에게는 유일한 '노동' 이며 경제적인 수입을 얻는다. 그러나 정작 소설 속에서 이들이 소비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근대는 노동이 사회구성의 원리였지만 오늘날의 사회가 구성원에게 내세우는 규범은 소비다. 현대 사회에선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자 노릇을 해내는 사람이 정상인 대접을 받는다. 

꽃섬 동네 사람들은 ‘잉여’ 즉 남아도는 쓰레기 그 자체이다.   

사람도 물건도 버려진 꽃섬에는 못 쓰는 물건들과 밑바닥을 전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이곳의 일상에도 웃음이 있고 사람 간의 정이 있다. 딱부리네 모자가 이사 오던 날 아수라 아저씨는 없는 돈을 털어 라면을 사오고 주민들은 햄을 꺼내 먹을 수 있는 잡탕찌개를 끓여 모자를 대접한다. 그들은 이 맛난 저녁과 함께 술을 곁들이며 노래도 부른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노동력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 행위를 통해 얻게된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소비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꽃섬 동네 사람들은 실업이 낳은 빈곤층이 아닌 비 경제적소비자로서의 빈곤층이 된 셈이다.  결국 소비하지 못하는 빈곤층인 꽃섬 동네 사람들은 평생 쓰레기더미와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물건과 먼지와 연기와 썩는 냄새와 독극물에 이르기까지, 이런 엄청난 것들을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사람 모두가 지어냈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들판의 타버린 잿더미를 뚫고 온갖 풀꽃들이 솟아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그을린 나뭇가지 위의 여린 새잎도 짙푸른 억새의 새싹도 다시 돋아나게 될 것이다. 

 - 같은 책, pp 228 -

 

자유경쟁과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는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없이 쓰라린 시련을 겪고 있다. 소설 결말 속에 등장하는 딱부리의 깨달음은 쓰레기로 가득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귀한 인간이 되기 위한 희망의 새싹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그러나 문명은 새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으로 끊임없이 여분의, 불필요한, 쓸모없는 것을 잘라내 버렸고, 그 덕분에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이 탄생했다. 어두운 현실은 밑으로 계속 가라앉고 있으며,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아름다움은 어두운 욕망을 감춘 채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과연 자본이 강조되는 사회가 만들어낸 희생의 되물림을 딱부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쓰레기더미에 사는 잉여가 아닌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생산과 소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들의 욕망이 가득한 낯익은 세상에서 살아서 그런 것일까? 

딱부리의 깨달음이 부질없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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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06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요.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딱 부러지게 더이상 언급을 못 하겠어요.
항상 올라가는 자와 내려가는 자가 있는거죠. 저희가 혁명을 해서 세상을 뒤바꾸더라도
누군가 올라가고 누군가 끌어내려지는거죠. 완전한 평등은 없을 뿐더러
그런 사회라면, 인간은 2% 부족하다는 이유로 말라죽을지 몰라요.......

제가 며칠간 <문재인의 운명>을 읽고 생각이 많아서 이래요, 횡설수설... ㅡㅡ;;

cyrus 2011-07-07 10:07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뭐라고 딱 생각의 정의를 못 하겠더라구요.
소설 속 딱부리처럼 사회에소 소외된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면 참 좋은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게 안타깝기만 하네요. -_-;;


꽃도둑 2011-07-07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동하는 삶으로 읽은 거 같은데...출판사에서 제목을 바꿨나요?...
아님 제가 착각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한참 자유, 평등에 관한 책들을 몰아 읽었을 때 읽은 거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쓰레기가 되어가는 삶 속으로 점점 많이들 빨려들어가고 있는 거 같아요.
잉여인간, 쓸모없는 인간은 이제 능력부재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사회의 한 현상이 되어버렸죠.,,이제 곧 낯익은 세상이 될테죠? 널부러져 신음하는 잉여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사회,
그 일에 앞장서고 있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시스템을 다른 방향으로 틀지 않는 이상은
점점 심화될거에요...우울한 일입니다..
우리의 대통령은 무엇보다 선두에 서 계시고요,, 가스통 던지고 싶습니다..^^

cyrus 2011-07-07 16:17   좋아요 0 | URL
아,, 그 책은 아직 안 읽었어요. 꽃도둑님이 말씀하신 그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평소에 대통령을 좋지 않게 봤지만,,
가스통,,^^;; 참으셔요, 꽃도둑님 ㅎㅎ

비로그인 2011-07-1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신 글 읽으니, 한참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 바깥에 억지로 쫒겨나게 된 사람들 기사 보던 생각이 납니다. 과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가끔 생각해보면 아직도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동양권에는 꽤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또 과연 읽게 될까 의문이지만. 아무리 힘든 현실이어도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저한테는 더 좋게 다가오더라고요. 왠지 그런 느낌의 책일 것 같다는 짐작만 해 봅니다. 물론 현실을 꾸며, 허황된 진실을 말하거나 계몽주의로 빠지는 건 더 독이겠지만요..^^
 
맨발로 글목을 돌다 - 2011년 제3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공지영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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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에서 온 문자 메시지 한 통   

며칠 전, 야근 때문에 낮에 잠 자고 있을 때 내 휴대폰에 문자 한 통이 왔다.  

원래는 휴대폰의 전원을 꺼놓고 잠을 자곤 했었는데 그 날만은 깜빡한 채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휴대폰 문자 알림 소리에도 쉽게 깰 정도도 잠귀가 밝은터라 점심 먹고 잠든지 2시간만에 깨고 말았다.   

 ' XX, 쓸데없는 스팸 광고 문자가 오기나 해봐라 , , , '     

다음부터는 배터리를 빼고 자야겠다. 머리속에 멍하게 맴도록 있는 피곤함이 가지 않은채 힘겹게 휴대폰의 문자를 확인했다.    

다행히 그 망할 스팸 광고 문자는 아니었다.  알라딘에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최근에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한 적이 없어서 갑자기 알라딘에서 문자가 오니 생뚱맞았다. 그런데 졸린 눈 비비고나서 다시 문자 메시지 내용을 확인해보니 , , ,   

2011년 제 35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공지영 ' 맨발로 글목을 돌다 '   

. . . 라는 문자 메시지였다.  알라딘에도 이런 문자 서비스를 보낼줄이야 , , ,     

평소에 이상문학상에도 특별히 관심도 없었고, 한국소설도 그리 즐겨 읽는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 공. 지. 영 '  이 세 글자를 본 순간, 피곤함이 싹 가셨다.  알라딘 검색창에 바로 ' 이상문학상 ' 을 검색해보니 벌써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편소설 한 편만으로 삶의 고통을 치유한 ' 진지한 여자 '  -  

  공지영 <맨발로 글목을 돌다>

일본의 종군위안부,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 지옥 ' 이나 다름없었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그리고 북한의 일본 민간인 납치 사건.   시대와 나라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힘없고 죄 없는 인간의 삶을 거대한 권력으로부터 잔인하게 유린당해야만했던, 다시는 재현되어서는 안 될 역사의 오점들이다.    

그런데 공지영은 북한으로 강제 납치된 적이 있는 H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는 역사적 사건들을 연관시켜서 H에 겪어야했던 고통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철하고 있다. 그녀가 성찰하는 과정은 자신이 살면서 마주하게 된 일련의 고통과 절망을 이입하면서 교차시키고 있다.  거기에다가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난민 생활을 체험한 적이 있는 프리모 레비의 삶을 잠깐 불러들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오랜 성찰 끝에 결론을 내린다.  

희망이 절망적인 유혹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희망을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는 몰랐다.  

- 공지영 <맨발로 글목을 돌다> p 37 -

결국에는 인간이 마주하게 될 운명은 무조건 일어난다고 할 수 없는 자의적인 동경이 담긴 ' 희망 ' 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좋든 싫든 간에 마주쳐야 될 인생의 시련 또는 불행마저도 운명의 한 부분으로 포용하고 있다.  

H와의 만남 이후로 소설 속에서 등장한 작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희망을 버린 채 앞길을 알 수 없는 인생의 길목을 돌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 겪었던 작가로서의 슬럼프를 포함한 인생의 고통스러웠던 슬럼프들을 이 단편소설 한 편으로 치유하고 있다. ' 맨발로 글목을 돌다 ' 라는 소설 제목처럼 공지영은 자신이 지어낸 글목(글의 모퉁이를 도는 길목)을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대상 수상 선정 기념으로 자선 대표작으로 1991년에 발간된 소설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에서 수록되었던 [진지한 남자]를 선정하였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성격이지만 자신들을 둘러싼 타인들의 시선에 의해 예술가적 기질뿐만 아니라 삶마저 죽어가는 비극적인 화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인데 한편으로는 그녀의 인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쓴 수상 소감에는 자신의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게 한 심사위원들 덕분에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며 ' 문학적 자서전 ' 에는 그녀가 겪어야했던 남모를 인생의 고통사들이 술회되고 있다.   공지영이라는 작가에는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인 여성 작가라는 이미지 이외에도 이혼녀, 출중한 외모 등과 같은 좋지 않은 이미지도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이런 대중들, 즉 곱지 않은 타인들의 시선 때문에 그녀는 오랜 기간동안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학가적 기질마다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글을 써내려갔다. 다시는 불행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특히, [맨발로 글목을 돌다] 를 집필햇을 때는 행복하다고 밝혔다.

결국, 단편소설 한 편이 완성하게 되었고, 이 소설로 인해서 한때 ' 진지했던 ' 그녀는 ' 이상문학상 수상작가 ' 의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녀에게 이 단편소설은 자신의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 소설 한 편이 그녀가 지금까지 겪었던 삶의 고통들을 단번에 치유한 쓴 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지영은 인생의 길목을 도는

 

  

  그녀의 세 번의 기다림 - 김 숨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이번 수상작품들 중에서 공지영의 소설과 함께 치열한(?) 대상 선정 경쟁을 벌인 작품이다.  만약에 공지영의 소설이 발표되지 않았더라면 대상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하게 된다.   

소설 속의 ' 나 ' 는 남편과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이들의 관계는 인간적인 삶에서 느끼게 되는 사랑, 정, 서로에 대한 관심이라고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단절된 관계이다. 그녀는 속으로 시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생활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정도이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지 않으며 말없이 산책을 나간다거나 혼자서 하루종일 오리 뼈를 고아 먹는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 나 ' 의 남편은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노인은 ' 나 ' 에게 202호 여자가 자신에게 30만 원을 빌려갔으니 꼭 받으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 나 ' 는 그 30만 원이 자신에게 유일한 공돈이라는 희망을 가진 채 202호 여자를 기다려보지만 갚아야되는 날에 여자는 얼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며 직접 202호에 찾아가보지만 결국에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결국, ' 나 ' 는 하루종일 이들을 기다린다.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202호 여자.  그러고는 소설은 그녀의 학수고대하는 장면을 끝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번에 심사위원을 맡은 문학평론가 권영민은 심사평에서 이 소설은 이호철의 <닳아지는 살들>오정희의 <저녁의 게임>과 유사한 분위기가 있다고 밝혔다.     

나는 평소에 외국문학만 접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읽는 순간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연상되었다. 

베케트의 희곡에 나오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꼭 만나야하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김 숨의 소설 속에 나오는 ' 나 ' 역시 생의 활력을 주는 요소가 부재한 시간 속에서 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불편하는 시아버지를 기다리는 장면은 언젠가는 마주해야 될 부정적 존재에 대한 일종의 초조감이며 남편을 기다린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다거나 잊혀지고 있었던 부부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 사랑 ' 을 갈망함에 따른 기다림이다.  그리고 202호 여자를 기다리는 것은 숨막혔던 일상생활에서 숨통이 트이길 바라는 ' 삶의 희망 ' 에 대한 기다림인 것이다.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의 폭력성 - 황정은 <猫氏生 (묘씨생)>

황정은은 이번에 함께 우수상 작품이 선정된 김태용과 함께 2005년에 등단한 작가이다. 문학 이력이 짧아서 그런 탓일까?  나는 나름 이 소설도 인상 깊게 읽었음에도 심사위원 총평에서는 단 한 명도 황정은의 소설에 대한 한 줄의 평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인간의 욕심과 그릇된 마음 때문에 희생되는 고양이의 생애를 그리고 있는데 오늘 봤던 모 동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모피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어서일까?   

소설 속 고양이가 냉소적으로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는 묘사는 너무 무력하게 인간의 손에서 무참하게 죽어가야만했던 너구리가 생각이 났다. 단지 인간이 입는 모피가 되기 위해서 이 생에 너구리로 태어난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너구리는 자신의 머리에 가하는 몽둥이를 맞으면서 소설 속 고양이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인간에게 배를 걷어차며 일생을 마쳤다.  

배를 걷어차인 아픔도 느낄 틈 없이 달아났으나 멀리 가지 못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피를 조금씩 뱉어내다가 주목나무 덤불 밑에서 죽었다. 아침에 납작해졌다가 오후에 부패한 배 덕분에 다리를 들었다가 밤에 되살아났다. 약간은 어리둥절했어도 고양이란 본래 그런 생물이라고 생각했다. 

- 황정은 <묘씨생> p 282 -

  

동물보다 더 잔혹한 인간의 폭력을 눈 앞에 목격하면서 이렇게 허무하면서도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삶에 대한 고양이의 자조 섞인 절망은 TV 브라운 관에서 비춰진 죽어가는 너구리의 모습이 떠올려서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생애 처음으로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권위 있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생애 처음 읽어보는 것도 있었지만 그녀가 쓴 단편소설을 읽어보는 것 역시 처음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공지영의 소설은 <봉순이 언니><우행시><도가니>뿐이다. 한국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닌 것도 있지만 공지영 작가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게 보지도 않는다.   그냥 나에게는 단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소설가일뿐이다.  

하지만 내 머리속에 각인되고 있었던 공지영에 대한 대중적 인기와 명성 때문인지 이번에 나온지 얼마 안 된 수상작품집에 대해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문단 데뷔 23년 차에 접어든 중견 작가가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점이 작가의 명성에 걸맞은 뒤늦은 명예훈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공지영이라는 작가 한 사람 때문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게 된 것이다.   

단지 올해 수상한 이상문학상 작품들을 읽기 위해서 이 책을 집어든건지 아니면 공지영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게 된건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독서가 되고 말았다.    

나쁘게 말하자면,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지도 있는 유명 작가에 대한 편향된 선호 탓인거다.   사실, 이번에 선정된 우수상 작가들중에는 김언수, 김숨은 많이 들어봤지만 나머지 작가들은 생소하며 심지어 모든 작가들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소설의 무관심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고 이번에 수상하게 된 작가들뿐만 아니라 내년의 이상문학상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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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31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31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1-31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시간에 알라딘에서 문자를 받았었던 것 같아요.
잠귀 밝고 예민하신 분들은 밤일을 하시면 몸이 많이 축날 거예요.
건강 잘 챙기세요~^^

여기저기서 이 책 리뷰를 보는데요.
사실 공지영은 궁금하지 않은데요, 김숨은 궁금해서 말이죠.

요즘 공지영, 손석희 시선집중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종종 등장해서 안 궁금한가 봐요~^^


다이조부 2011-01-31 13:52   좋아요 0 | URL

알라디너 들은 받는 메시지를 나 만 못받은거 보니까

알라딘 은 내가 그 책을 구입하지 않을걸 이미 안건지~

아니면 주요고객이 아님을 미리 파악한건지 ㅋㅋㅋㅋ

cyrus 2011-01-31 14:36   좋아요 0 | URL
다음달 설날 지나고 다음주까지만 하고 아르바이트 그만두기로 했어요.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답니다. ^^;;

공지영 때문에 이 책 읽게 되었는데 덕분에 김숨이라는 작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순오기 2011-01-3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과 이상문학상도 인연이 있었구나, 안도하게 되어요~ ^^
공지영은 이상문학상으로 자신의 문학성을 인정받고 싶었을...그 마음이 헤아려져요.
오랜동안 이상문학상수상집을 사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그녀를 위해 이 책을 사봐야겠어요~

cyrus 2011-01-31 14:38   좋아요 0 | URL
정작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도 문학성에 대해서 호불호가 제대로
엇갈리는 현상이 그녀를 길고 긴 슬럼프의 원인이라고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stella.K 2011-01-3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알라딘에서 그런 문자가 오긴 하던데 그래도 역시 스팸이라고 생각해요.
뭘 그걸 굳이 문자로까지 보내는 건지...ㅠ
얼마전 공지영 씨 TV에서 봤는데 그녀도 늙는구나 했어요.
예전의 미모가 퇴색된 느낌이 들더군요.
하긴 남자나 여자나 40이 넘으면 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지죠.ㅋ
그렇다면 그녀는 아마도 요즘이 글쓰기 가장 좋은 때를 맞고 있는 것일겝니다.ㅎ

cyrus 2011-01-31 14:40   좋아요 0 | URL
ㅎㅎ 생각해보니 스팸이라고 할 수 있네요.
제가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신간알리미로 신청했다면 상관 없지만요.
사람은 40이 넘으면 인생의 완숙기라고 하나요..?
아마도 작가도 그런 시기를 겪고 있겠네요.

잘잘라 2011-01-3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뒤 맥락을 짚어봐야겠지만, 심사위원들 덕에 자살하지 않았다, 라는 수상소감은 참.. 거북하네요.

오래전 얘기지만.. 가까운 사람이 자살했어요. 그를 알던 사람들은 많든 적든 어떤 죄책감(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미안한 마음)을 느꼈어요. 특히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했는데 우울증세로 아무 대책없이 자기 자신을 위험한 상황(목숨이 위태로운)에 방치하는 일까지 생기는 걸 보고 오랫동안 신경썼던 기억이 나네요.

덕분에 자살을 하지 않았다, 라는 소감이 거슬리는 이유는, 거꾸로 생각하면 '자살'했다면 그 또한 누구탓이 될 수 있는 거니까... ㅜㅜ

cyrus 2011-01-31 14:46   좋아요 0 | URL
제가 문제의 그 내용을 왜곡한건지 모르겠지만,, 직접 읽어보시고
판단하시는게 나을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한 것에 대해서 너무 고맙게 여기고 있더라구요.
시어머니랑 불화를 겪었는데 다행히 풀렸다고 하면서
그리고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더군요.

참,, 저도 소감문을 읽으니 메리포핀스님처럼 거북한 기분이 들었어요.
자신이 겪었던 고통스러우면서도 내밀한 감정들을 자신의 소설에서
형상화할 수 있다고해도 굳이 소감문에서도 밝힐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소설을 좋았는데 소감문은 좀 아니더라구요 ^^;;

마녀고양이 2011-01-3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쩔까, 저는 공지영 작가 좋아하지 않아요, 저랑은 영 코드가 안 맞아요.

그래서....... 그 문자 짱났어요. 아하하.

cyrus 2011-01-31 14:4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그 날 자다가 문자메시지 알림소리 듣는 순간부터
쌍시옷 욕이 저절로 나오더라구요,, ^^;;

전호인 2011-01-3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공지영 팬인 분들도 상당히 많죠.
제가 직접적으로 아는 분도 상당한 팬입니다.
저야 뭐 누구를 팬으로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책이 좋아서 닥치는 대로 읽어치우는 잡식성인지라 ㅋㅋ
알라딘에서 날라오는 문자메시지가 늘 이벤트 당첨을 알리는 내용이었으면 하고 바랄때가 많답니다. 이러다 주변머리 다 빠지는 것은 아니겠죠 흐흐

cyrus 2011-02-01 01:07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그 날 이벤트 당첨 알리는 메시지인줄 알았어요.
평소 알라딘이라면 그냥 메일로 보내는건데 말이죠 ^^


2011-02-01 0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arover 2011-02-0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 문자가 오다니, 정말....... 그래도 스팸이 아니라서 다행인 것 같아요.

cyrus 2011-02-01 16:03   좋아요 0 | URL
문자가 생뚱맞더군요 ㅎㅎ 평소에 이상문학상에도 관심이 없었거든요

아이리시스 2011-02-0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대중적이니 혼자만 피해갈 수 없어 소설을 꼬박꼬박 읽긴 하지만 좋아하진 않아요.
에세이는 언젠가 한 번 읽다가 진짜 집어던질 뻔,,ㅠㅠ
여느 문학소녀들처럼 학창시절 딱 그때까지만 그녀의 소설이 좋았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공지영이나 신경숙이 좋았던 건 여류작가라는 부러운 위치지 작품 자체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상문학상 수상했다는 얘기에 놀라긴 했어요. 안 그런 사람 있을까요?,ㅋㅋㅋ
예전에 제가 수업듣던 교수님은 대중성에 기댄 여작가를 작가취급 안했는데, 공지영이나 신경숙이 그런 맥락이죠. 요즘도 문학계에서 쭉 그런 비판을 듣고 있고, 그래도 꾸준히 잘 팔리고..

그녀들 또한 치열하게 썼는지는 모르지만 2000년도 들면서 나온 작품들은 그냥 이름 덕에 팔렸다고 해도 정답이죠. 무릎팍 도사에 나온다고 하던데, 아직 방송 안했죠?

어쨌거나 저도 이거 찜했는데 이상문학상은 해마다 읽어야지 맘먹거든요.
시루스님은 너무 빨라요, 아하하.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네, -_-;

cyrus 2011-02-01 23:23   좋아요 0 | URL
네, 아직 방영 안 되었어요. 이번달 중순에 방영된다고 하네요.
공지영 작가 방송이 어떻게될지 은근히 기대가 되네요 ^^
알라딘 문자만 아니었으면 저는 이 책 못 읽었을거에요.
생뚱맞은 문자 덕분에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이상문학상 작품집
읽게 되었네요. 설 연휴 잘 보내세요. 아이리시스님 ^^

2011-02-02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3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1-02-02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꼭 읽고는 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뜸해졌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공지영작가가 수상을 했군요. 작품을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이래저래 말이 많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튼 관심은 갑니다. 저 또한 다양한 이유에서 :)

설 연휴 잘보내세요~

cyrus 2011-02-03 21:05   좋아요 0 | URL
네, 심사위원 총평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공지영 작가의 대상 선정에 대해서 많이 고심한거 같더군요.

blanca 2011-02-03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같은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고 리뷰를 올려서 더 공감이 되네요. 제가 읽은 것들을 들여다 보게도 되고요. 저도 공지영 작가랑, 김숨, 김언수 작가의 작품이 좋더라구요. 기성 작가들의 필력과 소설 구성력의 안정도 때문일까요. 공지영 작가가 글을 쓰며 원인이었든 결과론적이었든 여자로서의 고달픈 삶의 여정도 참 안타까웠어요. 여러모로 의미있는 책이었답니다.

cyrus 2011-02-04 19:41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게 되었는데 우리나라 작가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햇빛눈물 2011-02-05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알라딘에 나오는거 보고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cyrus님은 말씀하셨듯이 외국작품에 관심이 많으신듯 한데, 이렇게 국내작품도 읽으셨군요. 저도 공지영이라는 작가를 생각하면 참 묘한 생각이 듭니다. 그게 일정 부분 그녀의 사적인 특성에 기인한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그것 말고도...뭔가...?? 저도 기회되면 읽어봐야겠습니다. 아, 무릎팍도요.
ps .: 그리고, 김정운 교수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의 책에 보면 김정운 교수가 <토니 크뢰거> 애기를 하더군요.(전 어떤 책인지 잘 모르지만) 자기가 예전에 읽은 책인데, 자기 기억과 책의 내용이(아니면 책 자체가) 다르더라 하는 부분이 있더군요. 급 기억이 났습니다.

cyrus 2011-02-05 13:19   좋아요 0 | URL
저도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많이 읽지 않는 편이라 작가에 대해서
딱히 뭐라고 말할게 없지만,,^^;;
소설 덕분에 토마스 만의 소설과 프리모 레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네요.

2011-02-07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02-06 14:31   좋아요 0 | URL
이전에 공지영 작가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잘 모르고
있었는데 교고쿠도님 말씀에도 일리가 있는거 같아요. 이번 이상문학상 대상은
독자들 사이에서 호불호의 명암이 엇갈리는 논쟁거리가 될거 같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02-06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정은 씨에 관한 글을 보니...평생 몸도 못움직이는 곳에서 태어나 도축당하기 위해 끌려나올 때만 잠깐 철창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식용견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소재로 글을 쓰고픈 생각이 듭니다.제가 개농장의 실체에 대해 잘 알거든요.

cyrus 2011-02-06 16:23   좋아요 0 | URL
예전에 어느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개농장의 잔혹한 실상을 본 적이 있는데
끔찍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더군요. 개들도 우리처럼 똑같이
숨 쉬고 하나의 생명체인데 말이죠. 거기에다가 최근에 동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가죽 모피를 만드는 과정을 보게 되었는데
인간의 폭력성은 어디까지인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책이 있다. 

-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p 22 -  

 

 

 

  전작주의자의 꿈   

    

<전작주의자의 꿈> / 조희봉 / 함께읽는책 

 

8년 전에 책을 사랑하고 헌책들을 수집해오면서 살았던 평범한 남자가 책 한 권을 냈었다. 그 남자가 쓴 책은 한때 언론들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저자는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했다.  책 제목도 낯설고 생소하다.   

 ' 전작주의자의 꿈 '  

전작주의자. 책의 저자인 조희봉이 직접 만들어낸 새로운 용어이다. 쉽게 말하자면 한 작가가 쓴 모든 책들을 읽고, 모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특정 작가의 글에 푹 빠져버린 일종의 홀릭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독특한 독서 스타일을 스스로 정립하려는 의도에서 사용했던 단어는 훗날, 책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자신들이 추구하고자하는 리드 라이프 스타일(Read life style)로 자리잡게 되었다.    

조희봉의 전작주의적 활동은 보는 이들에게는 감탄할 수 밖에 없다. 그는 헌책방에 전전해가면서 故 이윤기, 안정효가 쓴 소설이나 이제는 절판이 되어 시중에 구할 수 없는 번역본까지 구하면서 읽어야하는 습관이 있다.  자신이 직접 번역했는지 이윤기 본인마저도 모르고 있었던 책들까지 구할 정도로 그는 진정한 '이윤기홀릭 ' 이다. 이윤기의 글에 대한 그의 전작주의는 훗날, 이윤기마저도 감탄해할 정도로 두 사람 간의 우정이 싹틔울수 있었다.

조희봉과 자신이 스스로 전작주의자를 자처한 독서가들에게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란 전국 곳곳의 헌책방을 순례를 하며 작가가 쓴 모든 책을 섭렵함으로써 그들의 작품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려는 장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전작주의자들의 꿈인 것이다. 

 

 

  2003년에는 전작주의자, 2011년에는 책 사냥꾼  

2010년, 유명 일간지가 주최하는 장편문학상에서 두 작가의 작품이 공동수상하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  고은규의 <트렁커>오수완의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공동수상이라는 보기 드문 결과로 인해서 매스컴과 독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지만, 특히 오수완의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같은 경우에는 이전 한국문학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소설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은규는 단편소설로 이미 문단에 등단한 적이 있는 작가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수완의 경우에는 이번에 수상된 작품은 처녀작이며 그는 한의사로 활동 중인 아마추어였다. 

재미있게도, 2003년에는 조희봉의 전작주의자, 8년 뒤에는 오수완의 책 사냥꾼은 서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조희봉과 오수완은 글쟁이가 되기 전에 처음에는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두 작가가 쓴 책들 역시 인간의 ' 책탐 ' 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전작주의자와 책 사냥꾼의 책탐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르다. 책 사냥꾼은 말 그대로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작가의 책을 구하는 자들을 일컫고 있지만,  이들은 한 작가의 책만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저자, 책 내용에 상관없이 구하기 힘든 희귀본을 대상으로 수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책 사냥꾼에게는 독서란 불필요한 활동에 불과하며 오직, 희귀본 자체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책 사냥꾼들의 특징   

일반적으로 사냥꾼은 자신이 포획한 사냥감들을 통해서 자신의 사냥 실력을 과시하려는 일종의 자만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보다 약하고 도망다니는 동물들을 잡음으로써 얻게 되는 살육의 쾌감 때문에 왕과 귀족들은 사냥을 고귀한 취미 생활로 여겼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떳떳하게 과시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때 귀족들만이 할 수 있는 오락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책 사냥꾼도 어떻게 보면 동물을 잡는 사냥꾼의 특징이란 별 다를게 없다. 

책 사냥꾼들에게 자신이 잡아야 하는 사냥감은 바로 책이다. 하지만, 으레 사냥꾼에게는 좀처럼 잡기 힘든 거대한 야생 동물을 잡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듯이 책 사냥꾼들에게는 아무리 유명한 저자가 쓴 책이라도 내용이 평범하면 자신의 사냥감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직, 평범함을 거부하고 있는 독특한 내용이거나 고서 수집가들도 구하지 못하는 희귀본이야말로 진장한 사냥감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책 사냥꾼은 단순히 희귀본을 좋아해서 모으는 일반 고서 수집가와는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책 사냥꾼은 쫓겨 다니는 인생을 선택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밤에 걷고 낮에 머물며 눈길이 머무는 곳을 피해 다닌다. 책 사냥꾼은 다른 책 사냥꾼을 믿지 않는다. 자신을 밀고한 책 사냥꾼을 미리 밀고하는 건 책 사냥꾼의 숨겨진 전통이다.  (중략)    

그래서 책 사냥꾼은 다른 책 사냥꾼의 책을 훔치거나 빼앗는데 거리낌이 없다. 

 

책 사냥꾼들의 세계는 책 한 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훔치고 빼앗는 약육강식이다. 서로에게는 적이며 적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스파이처럼 잡입과 감시, 미행하는 것은 물론이며 서로를 속이면서까지 구하고자 하는 사냥감을 어떻게든 손에 얻으려고 한다.    

 

 

  종이책이 사라진 책 사냥꾼들의 시대  

그러나, 이들이 부정적인 수단을 통해서 책을 얻고자하는 이유가 단지,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회는 종말을 맞게 된 종이책의 암울한 미래를 연상시키게 된다.  종이책의 종말론이 떠돌고 있는 사회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끝없는 탐욕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것이다.  

소설 속의 사회에는 이미 종이책이라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 많던 출판사들은 서로 통폐합되어 사라지고, 여기저기 곳곳에는 종이책들이 불태워진다. 그리고 대중들에게는 책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으며 책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쓸모없는 종이덩어리로 전락하고 만다. 책을 읽는 대중들을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북 시티는 사람의 숨소리를 찾아볼 수 없는 유령상가로 되고 만다. 

전자북의 등장으로 종이책이 사라지고 있는 이 어둡고 암울한 세상이 책 사냥꾼이라는 어두운 괴물 그리고 책을 사냥하는 괴물들이 모인 책 사냥꾼들의 비밀집단인 미도당이 나온 것이다.  이들에게 책은 읽기 위한 지식의 양식이 아니다. 단지, 희귀한 수집품이다.  이들은 구하기 힘든 수집품을 소유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고객들과 은밀히 거래하기도 한다. 결국, 책 사냥꾼이라는 존재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책을 읽고 싶어하는 고객들에게 ' 지식 ' 을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 자본 ' 을 거래하는 사람들이다. 책 사냥꾼들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책의 가치는 밑바닥으로 팽개쳐버리고 말았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라는 가상의 책에서도 언급되듯이 소석 속 세상은 그야말로 ' 책의 지옥 ' 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책의 지옥은 반복된다

많은 책이 많은 이유로 없어졌다. 황제는 책을 붙태웠고 교황은 책에 족쇄를 채웠다. 많은 장군과 정치인들이 다양한 이유로 책을 만드는 손목을 자르고, 묶었다. 어떤 책은 불태워졌고 어떤 책은 분쇄됐고 어떤 책은 살해당했다. 그리고 어떤 책들은 사라졌다. (중략) 

한 사회는 그 사회에서 사라지는 사람들만큼의 지옥을 갖게 된다 , , ,  

그 사회는 그렇게 사라지는 수만큼의 지옥을 새로 갖게 된다. 

 -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p 213 -

 

이 소설 속 시대는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있는 기묘한 사회를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책 속에 간간이 등장하는 책들은 모두, 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책이다.   세상의 모든 책들에 대한 기록이 담겨져 있다는 전설 속의 고서 <세계의 책>이나 책 사냥꾼들이 찾으려고 하던 <베니의 모험>, 그리고 과거의 책 사냥꾼들의 행적을 그린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까지, 독자들로하여금 진짜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법한 착각을 주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의 환상을 단숨에 깨뜨리고 만다.   

내가 찾는 그런 책은 이제 세상은 없어.  

  - p 206 - 

작가가 그려낸 책 사냥꾼들의 세상 즉 책의 지옥은 비록 소설 속 허구로 등장하고 있지만, 종이책들이 대량으로 불 태워져 말살되는 장면은 기존 사회로부터 배척당해야 했던 책들의 잔혹사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유학서들을 불 태웠고, 라블레가 쓴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작가가 활동하던 프랑스 사회를 풍자했다는 이유만으로 금서로 지정되었다.  이 책 이외에도 역사 속에서 절대로 읽어서는 안 될 금서가 되어야했던 책들이 많았으며 심지어 책을 쓴 작가들의 생사를 결정 짓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전자북의 등장으로 인해서 종이책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종말론적 입장이 대두되고 있다. 벌써부터 미래학자들 사이에서는 ' 종이책은 죽었다 ' 고 사망 선고를 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미 종이책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자북의 강세 속에서도 종이책은 꿋꿋하게 버티고 있을지, 아니면 정말 소설 속 사회처럼 이제는 종이책을 구할 수 없으며 곳곳에 책이 불태워지는 책의 지옥이 재현하게 될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책의 지옥이 오게 된다면 종이책만 멸명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통해서 지식을 얻고자하는 올바른 ' 책탐 ' 을 가진 이들도 멸망하고 만다. 그런 세상은 정말 말 그래도 '지옥'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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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1-1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렉산더 페히만의 <사람진 책들의 도서관>과 비슷하군요. 안그래도 요새 사람들이 책을 점점 안 읽고 지하철도 까페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풍경도 스마트폰, 탭 검색하는 사람들만 눈에 띄더라구요. 대형서점도 힘들어 보이구요. 종이책이 사라지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외국은 이 정도는 아니라는데. 이제 책을 사고 읽는 행위 자체가 점점 희귀한 모습으로 바뀌어 갈까 걱정되요. 참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1-01-16 23:08   좋아요 0 | URL
이 소설 뒤에 작가가 소설을 쓰면 참고, 인용한 책들의 제목이
수록되어 있는데 블랑카님이 소개하신 그 책도 있습니다.
방금 검색을 해봤는데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맥거핀 2011-01-1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이 책이 언젠가 사라질까요? 사람의 취향이라는 관점으로만 보자면 완전히 사라지지야 않겠지요. MP3의 시대인 지금도 LP판을 꾸준히 모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요. LP의 아날로그한 음질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종이책의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우리에게 종이라는 것이 무한정 남아있는 자원은 아니니까요. 종이는 언젠가는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밖에는 없겠지요. 그 때쯤 되면, 종이책은 정말로 엄청난 보물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솔직히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형서점에 가득쌓인 책들을 보면서, 이 중에 진정으로 가치있는 책들은 몇 권이나 될까. 대부분은 낭비이고, 과잉이 아닐까..하구요. 오만한 말이지요.^^;)

cyrus 2011-01-16 23:13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종이책이 완전히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입장이고
종말론을 단정짓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맥거핀님의 말씀대로 가치 없는 책들이 과잉되는 마당에
그것들이 단지 보물이라는 가치만으로 고가로 거래될 수 있다는,,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책 속에 등장하는 책 사냥꾼들이
찾고자하는 책들은 그렇게 읽을만한 가치가 없는 책들이기도 하거든요.

아이리시스 2011-01-17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사냥꾼..> 읽어야하는 입장인데,
시루스님 리뷰 가끔 잘 훔쳐보고 있습니다.^^

종이책 사랑은 저도 마찬가지고, 책의 가치는 제가 논하기엔 너무 깊고도 어려운 문제.
그래서 책을 즐기며 읽되, 책탐은 버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별 다섯개라.. 기다려지네요.^^

cyrus 2011-01-17 11: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아이리시스님 ^^
저는 이 책 괜찮은데 읽는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엇갈릴거 같아요.
사건 전개는 재미있었는데 이에 비해 결말이 약간,,,^^;;
그래도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는 소설인거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1-01-17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희봉이 아니고 조희봉인데 말이죠~^^

조희봉, 이 냥반 이제는 강원도 어디 우체국에서 일을 한다죠.
책도 옛날처럼 많이 읽지않고,
책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배우려 한다지요.

전,며칠 전 눈 많이 오던 날, 지하철 탔다가 깜짝 놀랐지 뭐예요.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보다 스마트폰 들여다 보고 앉아 있는 사람이 훨씬 많지 뭐예요~^^

cyrus 2011-01-17 11:21   좋아요 0 | URL
죄송해요. 또 오타 실수를 했네요. ^^;;
저도 서울에 갔다가 오는데도 기차 안에서 책 읽는 사람이
한 두 명뿐이었어요. 대부분 스마트폰, 돈 좀 있어 보이는 사람은
갤럭시탭을 쓰기도 하구요..^^;;

마녀고양이 2011-01-1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암울해요.... ㅠㅠ
어제 안 그래도 뉴스에서 종이의 소비가 10% 이상 줄었다는 소식과 함께
종이책을 대체할 전자북 이야기가 나왔어요. 하지만 저는 솔직히
그렇게 쉽지 않을거라 생각해요. 몇년 전에 TV를 2012년부터 모두 디지털 방송 TV로
바꾼다고 했었지만 불가능한 꿈이거든요. 그리고 핸펀도 010- 으로 다 바꿔야 한다지만
저는 아직도 011-을 유지하는 중이구요. 책은..... 더더.....

지금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정보 귀한 줄 다들 모르는 시대죠. ^^

cyrus 2011-01-17 13:2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제 아날로그 TV를 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변화하는 건 분명 좋은 건 사실이지만,
이전의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쉽기도 하네요.

잘잘라 2011-01-1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책이 있다.

밤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구름 낀 날에는 별을 볼 수 없고
밤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더 밝게 빛나는 별은 꼭 있는 법이고
밤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맨눈엔 보이지 않는 별이 대부분이고

흐린 날에도 별은 빛나고 있다는 걸 알고(믿고)
큰 별이든 작은 별이든 빛나는 게 별이고(반짝반짝)
누가 보거나 말거나 빛나는 임무를 다해야 별이고!

cyrus 2011-01-17 19:43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도 댓글을 찜하는 기능이 없나요?
댓글이 멋있어요 ^^

꽃도둑 2011-01-1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인해 벌어지는 일들이 참으로 많네요. 책도둑, 전작주의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종이책 그리고 책사냥꾼들..
책 사냥꾼들에게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책은 뭘까요?,,갑자기 궁금해지는데요?.. (만약에 그런 일이 실재로 일어난다면,,)

cyrus 2011-01-17 19:44   좋아요 0 | URL
아마도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절판본 같은게 고가에 거래되겠죠.
제가 알기로는 사드의 <소돔 120일>이 알라딘 중고가격이
최고가로 판매되고 있던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헌책방
같은 경우에는 10만원으로 팔고 있구요,,^^;;

herenow 2011-01-1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주에 언급하더니 그새 읽으셨군요. ^ ^
'책'의 본질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종이뭉치? 지식? 소유? 경험? 발현? 표상?

신비주의에 '아카식 레코드'라는 게 있잖아요. 예전에는 그게 두루마리 형태였다는데
전자책 시대에는 터치 스크린에 홀로그램 방식으로 나타날런지... ㅎㅎ;

cyrus 2011-01-18 01:23   좋아요 0 | URL
지난주에 이 책을 언급한 곳이 제가 자주 들리는 출판사 카페뿐인데,,
어,,, 어떻게 아셨죠,,,? ^^;;

herenow 2011-01-18 13:05   좋아요 0 | URL
그동안 당신을 쭉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밤길 조심하시길...


- 책 사냥꾼.


제 <중고책 탐구생활> 댓글에서도 이 책 언급하셨잖아요.
편의점 왔다갔다 할 때 '밤길' 조심하세요. 미끄러질라.. ㅋㅋ;

cyrus 2011-01-18 17:19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몰랐어요^^;;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제가 일하는 편의점 주위에 안그래도 언 길 투성이라서
조심하고 있었는데,, 히얼나우님은 '초' 능력자 같은데요 ㅎㅎ
님도 언 길 조심하세요 ^^
 
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크리스천들 앞에서 쩔쩔매는 크리스천 대통령 
 

요즘 미국과 관련된 뉴스를 접하게 되면 나라 안의 여론 분위기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시끄럽기만  

하다. 특히나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이번 2010년은 자신의 임기 중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일지 
도 모른다. 불황에 빠진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 각종 정책들을 마련해보지만 번번이 죽을 쑤기 
마련이다. 멕시코 만 기름 유출 사건 이후 안일한 사고 대응 태도 때문에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 
아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이슬람 모스크 사원을 9.11 테러 사고 추모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인근에 세우자는 발언 때문에 이번에는 미국 국민들이 발끈하게 된 것이다. 다수의 미국인
들이 믿는 종교가 기독교임을 감안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생뚱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 

령의 의중은 9.11 테러에 희생된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이슬람 교 신자들도 함께 추모하자는 뜻 

서 사원을 세우자는 것이었으며 결국에는 기독교와 이슬람 교 간의 불신의 기억을 지우고 평화 

위한 화합을 모색하자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미국 여론의 뜨거운 감자 

가 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국민들을 화나게 만든 이유는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서 모스크 사원 

세우자는 것이었다. 미국의 많고 많은 다른 주도 아닌 하필이면 미국을 상징하고 있는 뉴욕 한
복판에, 그리고 테러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특별한 곳에서 이슬람 사원을 세우는 것이
문제의 화근이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참혹한 테러를 일으켰던 주범인 이슬람에 대한 앙금
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의 모스크 사원 건립 발언 이후 미국의 다른 주에 계획되
어 있던 모스크 사원 건립에도 반발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대 여론이 일파만파 커지게 
되자 오바마 대통령의 인지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로 
생각하는 국민이 예전 여론 조사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이슬람 교 신자로 생각
된다는 국민은 오히려 많아지게 되었다. 점점 하락하고 있는 대통령의 인지도가 이제 곧 다가올 
11월 중간 선거에 변수가 될 우려를 민주당은 눈치를 챘던 것일까? 빌 버튼 백악관 부대변인은 
기자 회견에서 미국 국민들은 대통령의 종교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대통령은 확실한 크리스천
임을 주장하였다. 
 


※ 기사 인용 출처 및 링크
[모스크 건립 갈등 미국 전역으로 확산] 중앙일보 8월 21일자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399464   

 

 

 

 ‘종교’라는 이름에 포장된 순교자들 
 

‘순교(殉敎)’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뜻하
며 사상(思想)을 위하여 죽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반미주의 경향이 강한 이슬람 국가에서는 
미국 중심부에 있는 뉴욕 월드트레이드 빌딩을 무너뜨리게 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알라 신을 
위해 희생한 순교자라고 추앙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단지 신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죽은 자들은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이 정말 신을 위해서 하나 

뿐인 목숨을 바쳤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항공기를 빌딩 건물로 향하는 순간 그들은 그 짧은 시 

간동안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알라 신의 영광과 모든 이슬람 형제들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곧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종교적 믿음이 강하면 그런 생각을 했을지 

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도 엄연한 인간이다. 눈앞에 곧 일어날 건물과의 충돌에 공포를 느꼈을  

법하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되자 후회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죽기 전까지 믿었던 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자, 여러분, 당신들의 위대한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었나 알고 싶다고 했지?  
   당신네의 그 위대한 영웅들, 위대한 순교자들이 꼭 개새끼들처럼 죽어갔다는 말을 
   들려줄 수 있게 되어 기쁘구먼.  (중략)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고, 자기네 신을 부정
   하고 동료들을 헐뜯는 꼬락서니라니 과연 한번 보기 좋았지.” 
  

    - 김은국 <순교자> 도정일 역, p 140 -

죽음이 코앞에 있는 인간들이 겪는 공포는 단지 테러리스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빌딩 
내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나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이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죽기 직전
에는 예수께 구원을 빌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머릿속에는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만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불행한 테러 사고에 죽은 무고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 의
해서 천국으로 간 순교자로 변주되었다. 그리고 무너진 빌딩 지역은 테러에 희생당한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숭고한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테러를 일으킨 죄인이며 미국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성지를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 세우는 것에 대해 반발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모스크 건립이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볼 수가 있기 때문
이다.   

  

   “열두 명의 순교자들은 위대한 상징이야. 그들은 고난받는 교인들의 상징이자 
   궁극적인 정신적 승리의 상징이지. 그 순교자들을 결코 싼 값에 팔아 넘겨선 안 돼.  
   빨갱이들에 대한 그 순교자들의 정신적 승리를 모든 사람이 목격하도록 해야 한단  
   말이야.” 

   - 김은국 <순교자> 도정일 역, p 75 -

<순교자> 속에 등장하는 장 대령은 민주주의와 기독교의 이해관계를 이용하여 공산당에 의해서 
희생당한 열두 명의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려고 한다. 작품 속 배경이 6.25 전쟁임을 감안하
면 장 대령의 순교자 만들기 프로젝트는 남한 내의 반공 헤게모니를 위한 초석인 것이다. 죽은
열두 명의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그들을 희생하게 한 공산당을 반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동시에  ‘북한 공산당은 남한의 적’이라는 반공 사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자신들의 종교적 믿음과 우월성을 광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코란을 내세우는 자들은 테러리스트 

을 위대한 순교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테러의 희생자들은 알라 신이 내려주신 벌의 댓가라고  

여기고 있다. 반면 성경을 내세우는 자들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반 기독교적인 범죄 집단이라 

고 비난하는 있으며 오히려 희생자들을 주님의 은덕 아래 천국에 간 순교자라고 말한다. 서로 엇 

리는 두 종교 간의 주장은 웃지 못할 난센스를 연출하고 있다.  

 

 종교 앞에 선 인간의 고통   

 

장 대령의 반공 프로파간다는 모스크 건립에 반대하는 미국 기독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 

의 속내는 자신의 종교 이외에는 타 종교에 대해서는 적대적 모습을 보이는 종교적 쇼비니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반 이슬람주의 사상을 이용하여 이슬람을 믿는 아랍 국가들을 평화를 음해 

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자신들의 기 

독교 사상를 전파하는데 이용한다. 물론 기독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슬람교도 종교를 위해서  

쩔 수 없이 목숨을 바쳐야 했던 테러리스트들을 위대한 알라 신의 영광으로 기록될 순교자로  

만들고 있다. 

<순교자>의 번역가인 도정일 경희대학교 문학교수는 작품의 핵심을 '인간이 당하는 고통에 의 

가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을 한 층 더 심화시켜면 종교 앞에서는 
인간이 당하고 느끼는 원초적인 고통과 공포가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대위가 신을
믿는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신의 행위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처럼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양대
종교는 자신들의 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죽은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단지 죽은 자들의 

고통만 외면하고 있는가? 심지어 어느 사이비 종교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통도 외면하고 있다.  

신자가 온 몸이 아플 정도의 불치병에 걸리게 되면 종교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신의 보호 아래  

을 수 있다는 희망만 심어준다.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은 일체 거부하고 무조건 신의 신성한 능력 

으로만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들이 겪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외면한 채  

말이다.    
 

종교는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고뇌에는 인간의 고통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 자들은 신에게 자신의 고통들을 고백하여 해결하려 한다. 결국 고통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
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을 스스로 이해하고 벗어날 수 있는 신성한 내적 생활이 종교임에도 불구
하고 지금의 종교는 오히려 신자들에게 고통을 느끼도록 부추기고 있으며 심지어 눈 감고 외면하
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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