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크리스천들 앞에서 쩔쩔매는 크리스천 대통령 
 

요즘 미국과 관련된 뉴스를 접하게 되면 나라 안의 여론 분위기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시끄럽기만  

하다. 특히나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이번 2010년은 자신의 임기 중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일지 
도 모른다. 불황에 빠진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 각종 정책들을 마련해보지만 번번이 죽을 쑤기 
마련이다. 멕시코 만 기름 유출 사건 이후 안일한 사고 대응 태도 때문에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 
아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이슬람 모스크 사원을 9.11 테러 사고 추모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인근에 세우자는 발언 때문에 이번에는 미국 국민들이 발끈하게 된 것이다. 다수의 미국인
들이 믿는 종교가 기독교임을 감안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생뚱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 

령의 의중은 9.11 테러에 희생된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이슬람 교 신자들도 함께 추모하자는 뜻 

서 사원을 세우자는 것이었으며 결국에는 기독교와 이슬람 교 간의 불신의 기억을 지우고 평화 

위한 화합을 모색하자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미국 여론의 뜨거운 감자 

가 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국민들을 화나게 만든 이유는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서 모스크 사원 

세우자는 것이었다. 미국의 많고 많은 다른 주도 아닌 하필이면 미국을 상징하고 있는 뉴욕 한
복판에, 그리고 테러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특별한 곳에서 이슬람 사원을 세우는 것이
문제의 화근이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참혹한 테러를 일으켰던 주범인 이슬람에 대한 앙금
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의 모스크 사원 건립 발언 이후 미국의 다른 주에 계획되
어 있던 모스크 사원 건립에도 반발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대 여론이 일파만파 커지게 
되자 오바마 대통령의 인지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로 
생각하는 국민이 예전 여론 조사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반면에 이슬람 교 신자로 생각
된다는 국민은 오히려 많아지게 되었다. 점점 하락하고 있는 대통령의 인지도가 이제 곧 다가올 
11월 중간 선거에 변수가 될 우려를 민주당은 눈치를 챘던 것일까? 빌 버튼 백악관 부대변인은 
기자 회견에서 미국 국민들은 대통령의 종교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대통령은 확실한 크리스천
임을 주장하였다. 
 


※ 기사 인용 출처 및 링크
[모스크 건립 갈등 미국 전역으로 확산] 중앙일보 8월 21일자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399464   

 

 

 

 ‘종교’라는 이름에 포장된 순교자들 
 

‘순교(殉敎)’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뜻하
며 사상(思想)을 위하여 죽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반미주의 경향이 강한 이슬람 국가에서는 
미국 중심부에 있는 뉴욕 월드트레이드 빌딩을 무너뜨리게 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알라 신을 
위해 희생한 순교자라고 추앙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단지 신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죽은 자들은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이 정말 신을 위해서 하나 

뿐인 목숨을 바쳤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항공기를 빌딩 건물로 향하는 순간 그들은 그 짧은 시 

간동안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알라 신의 영광과 모든 이슬람 형제들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곧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종교적 믿음이 강하면 그런 생각을 했을지 

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도 엄연한 인간이다. 눈앞에 곧 일어날 건물과의 충돌에 공포를 느꼈을  

법하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일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되자 후회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죽기 전까지 믿었던 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자, 여러분, 당신들의 위대한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었나 알고 싶다고 했지?  
   당신네의 그 위대한 영웅들, 위대한 순교자들이 꼭 개새끼들처럼 죽어갔다는 말을 
   들려줄 수 있게 되어 기쁘구먼.  (중략)  살려달라 아우성을 치고, 자기네 신을 부정
   하고 동료들을 헐뜯는 꼬락서니라니 과연 한번 보기 좋았지.” 
  

    - 김은국 <순교자> 도정일 역, p 140 -

죽음이 코앞에 있는 인간들이 겪는 공포는 단지 테러리스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빌딩 
내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나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이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죽기 직전
에는 예수께 구원을 빌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머릿속에는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만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불행한 테러 사고에 죽은 무고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 의
해서 천국으로 간 순교자로 변주되었다. 그리고 무너진 빌딩 지역은 테러에 희생당한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숭고한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테러를 일으킨 죄인이며 미국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이슬람교의 성지를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 세우는 것에 대해 반발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모스크 건립이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볼 수가 있기 때문
이다.   

  

   “열두 명의 순교자들은 위대한 상징이야. 그들은 고난받는 교인들의 상징이자 
   궁극적인 정신적 승리의 상징이지. 그 순교자들을 결코 싼 값에 팔아 넘겨선 안 돼.  
   빨갱이들에 대한 그 순교자들의 정신적 승리를 모든 사람이 목격하도록 해야 한단  
   말이야.” 

   - 김은국 <순교자> 도정일 역, p 75 -

<순교자> 속에 등장하는 장 대령은 민주주의와 기독교의 이해관계를 이용하여 공산당에 의해서 
희생당한 열두 명의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려고 한다. 작품 속 배경이 6.25 전쟁임을 감안하
면 장 대령의 순교자 만들기 프로젝트는 남한 내의 반공 헤게모니를 위한 초석인 것이다. 죽은
열두 명의 기독교인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그들을 희생하게 한 공산당을 반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동시에  ‘북한 공산당은 남한의 적’이라는 반공 사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자신들의 종교적 믿음과 우월성을 광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코란을 내세우는 자들은 테러리스트 

을 위대한 순교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테러의 희생자들은 알라 신이 내려주신 벌의 댓가라고  

여기고 있다. 반면 성경을 내세우는 자들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반 기독교적인 범죄 집단이라 

고 비난하는 있으며 오히려 희생자들을 주님의 은덕 아래 천국에 간 순교자라고 말한다. 서로 엇 

리는 두 종교 간의 주장은 웃지 못할 난센스를 연출하고 있다.  

 

 종교 앞에 선 인간의 고통   

 

장 대령의 반공 프로파간다는 모스크 건립에 반대하는 미국 기독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 

의 속내는 자신의 종교 이외에는 타 종교에 대해서는 적대적 모습을 보이는 종교적 쇼비니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반 이슬람주의 사상을 이용하여 이슬람을 믿는 아랍 국가들을 평화를 음해 

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순교자로 만들어 자신들의 기 

독교 사상를 전파하는데 이용한다. 물론 기독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슬람교도 종교를 위해서  

쩔 수 없이 목숨을 바쳐야 했던 테러리스트들을 위대한 알라 신의 영광으로 기록될 순교자로  

만들고 있다. 

<순교자>의 번역가인 도정일 경희대학교 문학교수는 작품의 핵심을 '인간이 당하는 고통에 의 

가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을 한 층 더 심화시켜면 종교 앞에서는 
인간이 당하고 느끼는 원초적인 고통과 공포가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대위가 신을
믿는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신의 행위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처럼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양대
종교는 자신들의 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죽은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단지 죽은 자들의 

고통만 외면하고 있는가? 심지어 어느 사이비 종교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통도 외면하고 있다.  

신자가 온 몸이 아플 정도의 불치병에 걸리게 되면 종교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신의 보호 아래  

을 수 있다는 희망만 심어준다.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은 일체 거부하고 무조건 신의 신성한 능력 

으로만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들이 겪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외면한 채  

말이다.    
 

종교는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고뇌에는 인간의 고통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 자들은 신에게 자신의 고통들을 고백하여 해결하려 한다. 결국 고통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
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을 스스로 이해하고 벗어날 수 있는 신성한 내적 생활이 종교임에도 불구
하고 지금의 종교는 오히려 신자들에게 고통을 느끼도록 부추기고 있으며 심지어 눈 감고 외면하
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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