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한 일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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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다기보다는 훑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는 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백성에게 약속하시고, 약속을 지킬 것을 약속하신다. 그 정도로 인간은 연약하기에, 그러나 나약한 우리의 모습을 더없이 사랑하시기에 여호와의 약속은 신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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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교 - 하나님의 선교 관점으로 성경 내러티브를 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 지음, 정옥배.한화룡 옮김 / IVP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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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요즘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던 선교는 복음을 듣지 못했던 곳에 가서 우리가 준비한 것을 쏟고, 현지에서 요청한 것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일정과 장소만 달랐지, 선교의 주체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교』는 그런 인식을 바꿔 놓았다. 이 책은 분명하게 선언한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이 역사하시는 세계 안에 살고 있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으로 볼 때, 하나님이 일하신 흔적은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구약의 본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성경은 처음부터 선교 중심적으로 쓰인 책임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과 사도들의 헌신으로 교회가 세워졌다고 여겼던 나의 관념을 통째로 흔들었다.


 복음은 구원 받지 않은 자들에게도 기쁜 소식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이란 피조물 전체가 원래 의도된 대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죄와 사망에서 구속 받게 되고, 인류의 타락으로 파괴된 창조 세계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운행하게 된다. 이 복음은 구약 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나뉘어져 존재했다가, 신약 시대에 오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통합되었다. 저자는 이를 총체적 복음이라고 표현하는데, 죄와 악은 필연적으로 삶의 전 영역에 나타나는 나쁜 소식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궁극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 좋은 소식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는 총체적이다. 말씀을 전하는 순간에만, 어떤 특정한 사역을 할 때에만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매번이 선교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성경 전반에 나타난 선교를 설명하기 위해 구약에서 크게 세 가지 줄기를 준비한다. 하나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필두로 한 이스라엘 백성의 구속 사역이다. 이는 주일 설교에서 흔히 발견될 수 있다. 그만큼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제한 것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그 자체이다. 여기에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것이 단지 그들을 시험하고 연단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들에 대해 선교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돋보였다. 실제로 이방인이었던 라합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단지 듣기만 하고도 간담이 녹아 그분을 참된 주로 모시지 않았는가? 두 번째 접근은 상당히 새로웠는데, 시가서, 특히 시편에 담긴 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다.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세상은 특정 민족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온 민족을 향해 있음이 시가서 곳곳에 잠재해 있는데, 이것을 나는 아주 놓치고 있었다. 이번 독서를 통해 시편과 잠언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달까? 마지막 접근은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와 예언서에 드러난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분은 이방 나라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동시에 그 나라를 선교하고자 하신다. 어떤 나라든 주님의 심판은 공의에 기반한다. 성경에 덜 기록되었을 뿐, 이방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고서야 배길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최초의 선교사라고 할 수 있겠다.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셔서 죄인과 약자들을 치유하시고, 거기서 나아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무시된 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멸시하는 자들과 어울렸다는 사실,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끝내 짊어진 일은 하나님의 선교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분을 본받아 이루어진 신약 시대의 선교 역시 다루어지며, 각 사도의 행적이 균형 있게 묘사된다. 신구약을 통틀어 선교의 주체이자 중심은 하나님과 예수님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분의 놀라우신 계획이 아니고서야 죄로 인해 완전히 망가진 이 세계를 돌이킬 방법이 없다. 이제 남은 교회들은 하나님이 친히 보이신 선교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선교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적인 선교에 대한 조언도 있다. 13장에 언급되는 HIV(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설명이 그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류가 벌인 악의 전형이자 현재 인류가 직면한 위급한 비상사태 중 하나이다. 이 병의 무서운 점은 혼자만 성결케 한다고 안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남자가 다른 감염자와 자면서, 반대로 여자는 감염자에 의해 강제로 관계를 맺으면서 에이즈를 갖게 되고, 이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유전된다. 제대로 된 의료 시설과 치료제가 없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감염자들은 병을 옮김과 동시에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여기에 동성애와 열악한 위생 등 외부적 요인이 개입하면서 이 질병은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에 대해, 병자들을 순수한 긍휼로 보살피는 개인적 차원의 대처, 고통을 악화시키는 관행과 맞서는 사회적 차원의 대처를 모두 언급하며, 궁극적으로 복음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때로는 믿는 자들도 복음의 역할을 축소한다. "단순히 믿는다고 해서 있건 질병이 사라지지는 않지 않습니까?"라고 따진다. 하지만 시선을 인간의 능력에서 하나님의 역사로 돌린다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죄악을 회복시킬 분은 주님뿐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도리어 나는 그 앞에서 겸손해진다. 주님, 이 세계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 땅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당신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올해 미얀마에 있는 유치원과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보냈던 시간은 참으로 소중했다. 평창 미탄면에서 만난 목사님과 성도들도 정말 따뜻하고 반가웠다. 곧 차드에서 어울리게 될 영혼들은 어떨까? 물론 선교팀에서 여러 가지를 준비해 가겠지만, 거기에 너무 많은 힘을 쏟기보다는 기도하고 싶다. 차드 땅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내가 가기 전에 이미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선교를 목격하고 싶다. 내가 미처 기도하지 못해도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돌보신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고 싶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나의 삶과 대한민국은 매우 특별하지만, 다른 인생과 나라도 부족함 없이 소중하다. 나의 믿음을 자랑하고 나의 이야기를 이 세상에 남기는 것보다, 예수님이 몸소 보이신 선교를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일이 더 귀하다. 나뿐만 아니라 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를 사랑하리라. 언젠가 아프리카 사막에 강물이 흐르고, 굶주린 육체가 더 이상 주리지 않고, 복음에 목말라 했던 자들이 삶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드리는 세상이 오리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발걸음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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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3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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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강박적인 불안을 잘 표출해 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나 소통하지 못하는 고독, 설명할 수 없는 광기, 나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타인까지, 블로흐라는 남자를 추적하며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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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이슬람 전쟁사 - 패권을 두고 격돌한 1400년의 대립
레이먼드 이브라힘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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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교도가 벌인 학살과 만행이 이렇게 공공연히 기록될 거라고, 신도들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무하마드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계시를 들었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경전을 제작했고, 인간 본연의 탐욕을 감춘 지하드(성전)의 뜻에 따라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정복하고, 약탈하며, 노예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벌인 잔혹한 처형과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여기에 낱낱이 고하기도 어렵다. 책장 어디를 펼쳐도 그들이 벌인 실태가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수백 년을 관통하는 전쟁사에서 한결같은 태도로 패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슬람의 진실을 엿본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갈등은 말로 차마 담아낼 수 없다. 수많은 전쟁과 공격 속에서 교리의 근본은 잊히고, 폭력과 복수의 굴레만 남았다. 책이 간행될 즈음 개시된 이란-미국 전쟁도 넓게 보면 이슬람권과 기독교권의 대립이니, 이들의 잔혹한 전쟁사는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이 전쟁의 끝은 어디인가? 기독교도인 나는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히 죽어 나간 영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으로 쓰리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총칼을 겨누어야 하는 현실이, 사랑의 가치가 전쟁 앞에서 참혹하게 짓밟히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 나는 편의 속에서 성도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데, 이것조차 온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기독교-이슬람 전쟁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무슬림의 잔혹함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십자군 전쟁에 대한 오해가 풀리기는 했으나, 그 원정을 완벽히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기독교도들을 사람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무슬림 전사들에 대한 원망이 들기도 하지만, 그 감정을 현재의 이슬람교도에게 이입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은 분명히 다른 존재이고, 구원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이다. 선조들이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든, 심판은 그들의 몫이고, 지금이라도 회심하고 평화를 외치면 좋겠다. 물론 반대편에 서 있는 기독교 국가들도 무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나에게는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임을 다시 한 번 알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민족 역시 내전을 겪었고, 그 때의 참상을 익히 들어 왔지만, 이념과 종교는 때로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도 허락해 버리고 만다.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야 하고, 타협하지 않았기에 고문 당해야 했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겠는가? 전쟁에 승자가 없다는 말이 납득이 간다. 패자는 주검이 되고, 승자는 인간성을 상실한다. 처음에는 지하드에 참여한 전사들도 의심 반, 신념 반으로 시작했겠지만, 전투가 반복될수록 그들의 마음은 왜곡된 두려움으로 물들었으리라. 이교도로 낙인 찍히면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는 그 태도가 타인을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음을 잊어 버린다. 인간성을 잃은 자들은 폭력과 범죄를 반복할 뿐이다. 그것이 죄에 묶인 인간의 종말이다.


 한편으로, 거대한 희망이 되는 것은 이 무수한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증언이다. 개종을 하지 않으면 숱한 차별을 견뎌야 했으나, 같은 지역에서 1300년 동안 믿음을 지킨 기독교도들이 있었다. 십자군 원정에 앞장 선 이들은 잃을 것이 없어서, 복수심에 불타서 떠난 자들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과 전혀 연식도 없던 영주들이었다.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자들이 신과 자신에 대한 이웃의 사랑에 이끌려 사지로 향했다. 또한, 수 세기 동안 기독교도들에게 온갖 잔혹한 방식으로 처형하고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준 이슬람교도에 대해, 그들의 복수는 자비롭다. 원수와 똑같은 방식의 만행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분량의 대부분을 이슬람교도가 예수님을 모욕하기 위해 기독교도인들을 탄압하는 데에 할애된 이 책을 읽는 내내, 끝내 그리스도가 승리하심을 더욱 확신했다. 아무리 그리스도인들을 짓누른다 한들, 폭력과 만행으로 그들의 인간성을 앗아간다 한들, 예수님의 사랑은 끝내 이어진다. 그리고 앞으로도 용서의 물결은 계속될 것이다. 그제야 이 읽고 싶지 않았던 역사가 일어났던 이유를 조금은 납득한다. 예수님을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그분의 거룩함과 신실함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증언한다. 역사가의 시선에 따라 각도가 달라질언정,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남은 자의 몫은 기억할 수 있는 만큼 기억하는 것이다. 패배가 확실하게 되던 순간까지 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믿음의 용사들을 기억한다. 성경에서처럼 기적적인 승리는 없었지만, 그 처절한 학살의 뒤에서 참된 생명의 꽃이 피어났다. 그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현대 세계의 약소한 균형을 이끌어 냈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사를 끝낼 방법은 후손에게 달려 있다. 비극적인 역사를 반복할 텐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될 텐가? 정답은 정해져 있고, 거기까지의 길은 멀어 보인다. 아예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길이 옳은 길이고, 유일한 정답이기에 나는 내 몸이 갈라질언정 용서를 택하리라. 내 삶이 부서지더라도 사랑을 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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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밝은 쪽으로 걷자
윤두열 지음 / 일레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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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무작정 간다. 내가 세우는 계획은 최소한의 방편일 뿐, 뜻대로 되는 일은 손에 꼽는다. 재미 있는 점은 상대도 그렇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너와 나의 뜻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곧 사랑이 아닐까? 그렇기에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으로 국한시키기에는 너무 방대한 것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본능적으로 보이는 사랑, 스승이 제자에게, 가족 구성원 간에, 신념을 공유하는 공동체(그것이 동아리, 동호회, 학회, 계모임, 교회, 부대, 혹은 그 무엇으로 불리든) 간에 각자 다른 사랑의 형태가 있다. 사랑은 강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중으로 결정된다. 대부분은 자신에게, 어떤 이는 가족에게, 누군가는 연인에게, 작가는 익명의 독자들에게, 또 소수는 만난 적도 없는 타국의 영혼들을 향해, 정치인은 주민, 시민, 국민을 위해 많은 사랑을 투영한다. 그러므로 드러나는 것은 폭력, 증오, 다툼처럼 보여도 그것의 근본적인 원동력에는 사랑이 있다. 그 형태가 왜곡되었을 뿐이다.


 윤두열 작가는 책 서두에서 잘 모르는 이와 다짜고짜 여행을 가게 된다. 자신이 지닌 많은 것을 포기하고서 말이다. 때로는 지나고 나서야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것저것 재단하다가는 후회라는 막대한 기회 비용이 자신의 인생을 갉아먹는 것을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일까? 다소 무모해 보이는 그 결정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존재를 형성했다. 이 에세이 속에서 그는 경험담을 늘어놓다가도 편지를 쓰고, 일기를 끄적이다가도 치열한 성찰을 보인다. 종잡을 수 없는 흐름을 타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발견한다. 


 때로는 직접 밝히기도, 때로는 은밀히 고백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윤두열 씨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총체적인 '사랑'이다. 글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 밝은 쪽으로 걷자'는 결국 사랑을 택하라는 암시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너는 반드시 사랑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득한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아직도 막연하다면, 고개를 돌려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보라. 도시에 있다면 그 치열한 움직임을, 자연에 있다면 평화로운 소리에 집중하라. 내가 누리는 여유는 사실 치열히 살아가는 누군가의 땀과 헌신의 결과이고, 그 전쟁 같은 삶의 원동력은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래,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고, 나도 조금씩 용기를 내보겠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공감했던 대표인 챕터는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가 아닌가 싶었다. 소설을 창작할 때, 검토를 하지 않고 쭉 완성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자기 작품에 취해 있다가, 나중에 돌아보면 독자들을 참 곤혹스럽게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어떤 글이든 독자들에게 편의와 유익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스스로의 만족과 위로를 위한 글쓰기도 존재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역할이 끊임없이 바뀌고 변하면서 모두가 고통과 행복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이라는 작가의 바람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돌아본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누리면서 상대방의 고민과 감정을 헤아리는 연습, 그것만으로 인생은 참 배울 것이 많이 남았다. 그만큼, 나아질 여지도 충분하다. 우리의 행복은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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