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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 공책 1 - 도리스 레싱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ㅣ 창비세계문학 73
도리스 레싱 지음, 권영희 옮김 / 창비 / 2019년 12월
평점 :
많은 창작자들이 '틀'(frame)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자신이 쓴 작품이 어떠한 잣대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 그것은 자신이 공정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더욱 간절하다. 그러나 조지 오웰이 썼듯이, 모든 문학은 정치적이다.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편의적으로 해석된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이념 갈등과 성별 문제에서 자유롭고 싶어도, 그저 특정 소재와 단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특정한 틀 안에 놓이게 된다. 도리스 레싱은 『금색 공책』에서 많은 문학적 실험을 펼쳤기에 자신의 작품이 여성 문학으로만 간주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시류에 편승하는, 특정 독자층에게만 호소하는 여성 문학보다 폭넓은 사유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진입 장벽은 높아졌고,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 배경 지식도 많아졌다. 그래서 독자들은 편의적으로 『금색 공책』을 여성 문학의 경전으로 만들었다.
이 거대한 틀 안에는 다섯 권의 공책이 있다. 검은 공책, 빨간 공책, 노란 공책, 파란 공책, 그리고 내부의 「금색 공책」이 그것이다. 각 공책은 주제도 현저하게 다르다. 파란 공책에서 스크랩 형식으로 한국전쟁을 재구성하고, 동시에 메카시즘과 핵전쟁 위기를 수집하는 부분에서는 일종의 광기가 느껴진다. 상상이 되는가? 자신이 알게 된 모든 지식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바닥에 쌓아 두는 것도 모자라, 벽면을 가득 메우도록 신문 기사를 붙여 넣는 애나의 모습을?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일부 모습으로 누군가를 존경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집념 어린 부분, 연약한 부분, 심지어 남들에게 절대 드러내지 못할 부끄러운 결함까지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타인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모든 공책을 다 읽었을 때, 애나를 정상인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없는 아량으로 또는 동질감으로 배려한다고 해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이 여자의 연약한 모습이다.
실로 도리스 레싱은 『금색 공책』에서 대단한 실험을 했다. 주인공 애나 울프는 작가의 표상이거나, 대표적인 여성주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를 연상케 한다. 그녀는 마치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에서 레오폴드 블룸의 의식을 실시간으로 해체하여 분석했듯이, 각 권에 산개하여 담긴 애나 울프의 정신을 낱낱이 파헤친다. 엘라는 공산주의자이자 작가로서 당시 세계에 팽배했던 이념적 갈등에 맞서면서 영국의 사회 문제를 비판한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삶에 중요한 문제는 연인인 폴이 자신의 생리혈 냄새를 맡을까 염려하는 것이고, 섹스를 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맞서고 싶지만, 정작 침대 옆에 앉은 사람의 마음조차 제대로 얻을 수 없어 노심초사한다. 작가는 야속하게도 '자유로운 여자들'이라는 표제를 달지만, 결코 애나와 몰리는 관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작가뿐만 아니라 모두가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이 환상임을 인정하지 못한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면, 더 진실된 관계를 쌓으면, 더 열심히 노력하면, 다른 이들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소득과 능력을 갖추면 특정한 틀에 억압 받지 않고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럴 수 없다. 시대 정신은 그토록 짙고 깊숙이 깔려 있기에, 이념과 성별이라는 '이것이냐, 아니냐'로 갈리는 이분법에서 누가 벗어날 수 있을까? 변화하는 시대의 파도를 거스를 수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거기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한다. 작중 배경이 되는 1950년대나 지금이나, 사상의 대립은 팽배하고, 성별 갈등은 오히려 악화된 듯하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겠다는 정신에서 비롯된 민주주의는 어느새 다름을 용납하지 못한다. 방향을 잃은 양성 평등 운동은 성별의 차이를 빌미로 차별과 역차별을 불러일으킨다. 이 병약한 시대에 우리는 기꺼이 틀 안에 들어가기를 두려워 말아야 한다. 자신이 틀 안에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풍성한 시야를 갖출 수 있다.
번역을 맡으신 교수님께 작은 후일담을 들었다. 도리스 레싱에 대해 정말 많이 읽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어찌나 많던지, 이 책의 번역이 결코 손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의 이해는 큰 무리가 없었다. 번역에 정답은 없으니 이것이 최고라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긴 분량 속에서 편집이 일관되고 오타도 거의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요즘 나오는 책들 중에 눈에 거슬리는 오타가 꼭 하나씩은 있더라). 2권 분량의 소설을 읽는 동안, 참 즐거운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