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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글목을 돌다 - 2011년 제3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공지영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1월
평점 :
알라딘에서 온 문자 메시지 한 통
며칠 전, 야근 때문에 낮에 잠 자고 있을 때 내 휴대폰에 문자 한 통이 왔다.
원래는 휴대폰의 전원을 꺼놓고 잠을 자곤 했었는데 그 날만은 깜빡한 채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휴대폰 문자 알림 소리에도 쉽게 깰 정도도 잠귀가 밝은터라 점심 먹고 잠든지 2시간만에 깨고 말았다.
' XX, 쓸데없는 스팸 광고 문자가 오기나 해봐라 , , , '
다음부터는 배터리를 빼고 자야겠다. 머리속에 멍하게 맴도록 있는 피곤함이 가지 않은채 힘겹게 휴대폰의 문자를 확인했다.
다행히 그 망할 스팸 광고 문자는 아니었다. 알라딘에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최근에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한 적이 없어서 갑자기 알라딘에서 문자가 오니 생뚱맞았다. 그런데 졸린 눈 비비고나서 다시 문자 메시지 내용을 확인해보니 , , ,
2011년 제 35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공지영 ' 맨발로 글목을 돌다 '
. . . 라는 문자 메시지였다. 알라딘에도 이런 문자 서비스를 보낼줄이야 , , ,
평소에 이상문학상에도 특별히 관심도 없었고, 한국소설도 그리 즐겨 읽는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 공. 지. 영 ' 이 세 글자를 본 순간, 피곤함이 싹 가셨다. 알라딘 검색창에 바로 ' 이상문학상 ' 을 검색해보니 벌써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편소설 한 편만으로 삶의 고통을 치유한 ' 진지한 여자 ' -
공지영 <맨발로 글목을 돌다>
일본의 종군위안부,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 지옥 ' 이나 다름없었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그리고 북한의 일본 민간인 납치 사건. 시대와 나라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힘없고 죄 없는 인간의 삶을 거대한 권력으로부터 잔인하게 유린당해야만했던, 다시는 재현되어서는 안 될 역사의 오점들이다.
그런데 공지영은 북한으로 강제 납치된 적이 있는 H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는 역사적 사건들을 연관시켜서 H에 겪어야했던 고통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철하고 있다. 그녀가 성찰하는 과정은 자신이 살면서 마주하게 된 일련의 고통과 절망을 이입하면서 교차시키고 있다. 거기에다가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난민 생활을 체험한 적이 있는 프리모 레비의 삶을 잠깐 불러들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오랜 성찰 끝에 결론을 내린다.
희망이 절망적인 유혹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희망을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는 몰랐다.
- 공지영 <맨발로 글목을 돌다> p 37 -
결국에는 인간이 마주하게 될 운명은 무조건 일어난다고 할 수 없는 자의적인 동경이 담긴 ' 희망 ' 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좋든 싫든 간에 마주쳐야 될 인생의 시련 또는 불행마저도 운명의 한 부분으로 포용하고 있다.
H와의 만남 이후로 소설 속에서 등장한 작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희망을 버린 채 앞길을 알 수 없는 인생의 길목을 돌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 겪었던 작가로서의 슬럼프를 포함한 인생의 고통스러웠던 슬럼프들을 이 단편소설 한 편으로 치유하고 있다. ' 맨발로 글목을 돌다 ' 라는 소설 제목처럼 공지영은 자신이 지어낸 글목(글의 모퉁이를 도는 길목)을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대상 수상 선정 기념으로 자선 대표작으로 1991년에 발간된 소설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에서 수록되었던 [진지한 남자]를 선정하였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성격이지만 자신들을 둘러싼 타인들의 시선에 의해 예술가적 기질뿐만 아니라 삶마저 죽어가는 비극적인 화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인데 한편으로는 그녀의 인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쓴 수상 소감에는 자신의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게 한 심사위원들 덕분에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며 ' 문학적 자서전 ' 에는 그녀가 겪어야했던 남모를 인생의 고통사들이 술회되고 있다. 공지영이라는 작가에는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인 여성 작가라는 이미지 이외에도 이혼녀, 출중한 외모 등과 같은 좋지 않은 이미지도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이런 대중들, 즉 곱지 않은 타인들의 시선 때문에 그녀는 오랜 기간동안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학가적 기질마다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글을 써내려갔다. 다시는 불행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특히, [맨발로 글목을 돌다] 를 집필햇을 때는 행복하다고 밝혔다.
결국, 단편소설 한 편이 완성하게 되었고, 이 소설로 인해서 한때 ' 진지했던 ' 그녀는 ' 이상문학상 수상작가 ' 의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녀에게 이 단편소설은 자신의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 소설 한 편이 그녀가 지금까지 겪었던 삶의 고통들을 단번에 치유한 쓴 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지영은 인생의 길목을 도는
그녀의 세 번의 기다림 - 김 숨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이번 수상작품들 중에서 공지영의 소설과 함께 치열한(?) 대상 선정 경쟁을 벌인 작품이다. 만약에 공지영의 소설이 발표되지 않았더라면 대상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하게 된다.
소설 속의 ' 나 ' 는 남편과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이들의 관계는 인간적인 삶에서 느끼게 되는 사랑, 정, 서로에 대한 관심이라고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단절된 관계이다. 그녀는 속으로 시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생활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정도이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지 않으며 말없이 산책을 나간다거나 혼자서 하루종일 오리 뼈를 고아 먹는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 나 ' 의 남편은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노인은 ' 나 ' 에게 202호 여자가 자신에게 30만 원을 빌려갔으니 꼭 받으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 나 ' 는 그 30만 원이 자신에게 유일한 공돈이라는 희망을 가진 채 202호 여자를 기다려보지만 갚아야되는 날에 여자는 얼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며 직접 202호에 찾아가보지만 결국에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결국, ' 나 ' 는 하루종일 이들을 기다린다.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202호 여자. 그러고는 소설은 그녀의 학수고대하는 장면을 끝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번에 심사위원을 맡은 문학평론가 권영민은 심사평에서 이 소설은 이호철의 <닳아지는 살들>과 오정희의 <저녁의 게임>과 유사한 분위기가 있다고 밝혔다.
나는 평소에 외국문학만 접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읽는 순간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연상되었다.
베케트의 희곡에 나오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꼭 만나야하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김 숨의 소설 속에 나오는 ' 나 ' 역시 생의 활력을 주는 요소가 부재한 시간 속에서 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불편하는 시아버지를 기다리는 장면은 언젠가는 마주해야 될 부정적 존재에 대한 일종의 초조감이며 남편을 기다린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다거나 잊혀지고 있었던 부부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 사랑 ' 을 갈망함에 따른 기다림이다. 그리고 202호 여자를 기다리는 것은 숨막혔던 일상생활에서 숨통이 트이길 바라는 ' 삶의 희망 ' 에 대한 기다림인 것이다.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의 폭력성 - 황정은 <猫氏生 (묘씨생)>
황정은은 이번에 함께 우수상 작품이 선정된 김태용과 함께 2005년에 등단한 작가이다. 문학 이력이 짧아서 그런 탓일까? 나는 나름 이 소설도 인상 깊게 읽었음에도 심사위원 총평에서는 단 한 명도 황정은의 소설에 대한 한 줄의 평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인간의 욕심과 그릇된 마음 때문에 희생되는 고양이의 생애를 그리고 있는데 오늘 봤던 모 동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모피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어서일까?
소설 속 고양이가 냉소적으로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는 묘사는 너무 무력하게 인간의 손에서 무참하게 죽어가야만했던 너구리가 생각이 났다. 단지 인간이 입는 모피가 되기 위해서 이 생에 너구리로 태어난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너구리는 자신의 머리에 가하는 몽둥이를 맞으면서 소설 속 고양이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인간에게 배를 걷어차며 일생을 마쳤다.
배를 걷어차인 아픔도 느낄 틈 없이 달아났으나 멀리 가지 못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피를 조금씩 뱉어내다가 주목나무 덤불 밑에서 죽었다. 아침에 납작해졌다가 오후에 부패한 배 덕분에 다리를 들었다가 밤에 되살아났다. 약간은 어리둥절했어도 고양이란 본래 그런 생물이라고 생각했다.
- 황정은 <묘씨생> p 282 -
동물보다 더 잔혹한 인간의 폭력을 눈 앞에 목격하면서 이렇게 허무하면서도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삶에 대한 고양이의 자조 섞인 절망은 TV 브라운 관에서 비춰진 죽어가는 너구리의 모습이 떠올려서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생애 처음으로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권위 있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생애 처음 읽어보는 것도 있었지만 그녀가 쓴 단편소설을 읽어보는 것 역시 처음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공지영의 소설은 <봉순이 언니><우행시><도가니>뿐이다. 한국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닌 것도 있지만 공지영 작가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게 보지도 않는다. 그냥 나에게는 단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소설가일뿐이다.
하지만 내 머리속에 각인되고 있었던 공지영에 대한 대중적 인기와 명성 때문인지 이번에 나온지 얼마 안 된 수상작품집에 대해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문단 데뷔 23년 차에 접어든 중견 작가가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점이 작가의 명성에 걸맞은 뒤늦은 명예훈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공지영이라는 작가 한 사람 때문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게 된 것이다.
단지 올해 수상한 이상문학상 작품들을 읽기 위해서 이 책을 집어든건지 아니면 공지영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게 된건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독서가 되고 말았다.
나쁘게 말하자면,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인지도 있는 유명 작가에 대한 편향된 선호 탓인거다. 사실, 이번에 선정된 우수상 작가들중에는 김언수, 김숨은 많이 들어봤지만 나머지 작가들은 생소하며 심지어 모든 작가들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소설의 무관심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고 이번에 수상하게 된 작가들뿐만 아니라 내년의 이상문학상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