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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책이 있다.
-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p 22 -
전작주의자의 꿈
<전작주의자의 꿈> / 조희봉 / 함께읽는책
8년 전에 책을 사랑하고 헌책들을 수집해오면서 살았던 평범한 남자가 책 한 권을 냈었다. 그 남자가 쓴 책은 한때 언론들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저자는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했다. 책 제목도 낯설고 생소하다.
' 전작주의자의 꿈 '
전작주의자. 책의 저자인 조희봉이 직접 만들어낸 새로운 용어이다. 쉽게 말하자면 한 작가가 쓴 모든 책들을 읽고, 모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특정 작가의 글에 푹 빠져버린 일종의 홀릭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독특한 독서 스타일을 스스로 정립하려는 의도에서 사용했던 단어는 훗날, 책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자신들이 추구하고자하는 리드 라이프 스타일(Read life style)로 자리잡게 되었다.
조희봉의 전작주의적 활동은 보는 이들에게는 감탄할 수 밖에 없다. 그는 헌책방에 전전해가면서 故 이윤기, 안정효가 쓴 소설이나 이제는 절판이 되어 시중에 구할 수 없는 번역본까지 구하면서 읽어야하는 습관이 있다. 자신이 직접 번역했는지 이윤기 본인마저도 모르고 있었던 책들까지 구할 정도로 그는 진정한 '이윤기홀릭 ' 이다. 이윤기의 글에 대한 그의 전작주의는 훗날, 이윤기마저도 감탄해할 정도로 두 사람 간의 우정이 싹틔울수 있었다.
조희봉과 자신이 스스로 전작주의자를 자처한 독서가들에게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란 전국 곳곳의 헌책방을 순례를 하며 작가가 쓴 모든 책을 섭렵함으로써 그들의 작품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려는 장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전작주의자들의 꿈인 것이다.
2003년에는 전작주의자, 2011년에는 책 사냥꾼
2010년, 유명 일간지가 주최하는 장편문학상에서 두 작가의 작품이 공동수상하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 고은규의 <트렁커>와 오수완의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공동수상이라는 보기 드문 결과로 인해서 매스컴과 독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지만, 특히 오수완의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같은 경우에는 이전 한국문학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소설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은규는 단편소설로 이미 문단에 등단한 적이 있는 작가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수완의 경우에는 이번에 수상된 작품은 처녀작이며 그는 한의사로 활동 중인 아마추어였다.
재미있게도, 2003년에는 조희봉의 전작주의자, 8년 뒤에는 오수완의 책 사냥꾼은 서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조희봉과 오수완은 글쟁이가 되기 전에 처음에는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두 작가가 쓴 책들 역시 인간의 ' 책탐 ' 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전작주의자와 책 사냥꾼의 책탐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르다. 책 사냥꾼은 말 그대로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작가의 책을 구하는 자들을 일컫고 있지만, 이들은 한 작가의 책만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저자, 책 내용에 상관없이 구하기 힘든 희귀본을 대상으로 수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책 사냥꾼에게는 독서란 불필요한 활동에 불과하며 오직, 희귀본 자체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책 사냥꾼들의 특징
일반적으로 사냥꾼은 자신이 포획한 사냥감들을 통해서 자신의 사냥 실력을 과시하려는 일종의 자만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보다 약하고 도망다니는 동물들을 잡음으로써 얻게 되는 살육의 쾌감 때문에 왕과 귀족들은 사냥을 고귀한 취미 생활로 여겼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떳떳하게 과시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때 귀족들만이 할 수 있는 오락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책 사냥꾼도 어떻게 보면 동물을 잡는 사냥꾼의 특징이란 별 다를게 없다.
책 사냥꾼들에게 자신이 잡아야 하는 사냥감은 바로 책이다. 하지만, 으레 사냥꾼에게는 좀처럼 잡기 힘든 거대한 야생 동물을 잡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듯이 책 사냥꾼들에게는 아무리 유명한 저자가 쓴 책이라도 내용이 평범하면 자신의 사냥감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직, 평범함을 거부하고 있는 독특한 내용이거나 고서 수집가들도 구하지 못하는 희귀본이야말로 진장한 사냥감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책 사냥꾼은 단순히 희귀본을 좋아해서 모으는 일반 고서 수집가와는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책 사냥꾼은 쫓겨 다니는 인생을 선택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밤에 걷고 낮에 머물며 눈길이 머무는 곳을 피해 다닌다. 책 사냥꾼은 다른 책 사냥꾼을 믿지 않는다. 자신을 밀고한 책 사냥꾼을 미리 밀고하는 건 책 사냥꾼의 숨겨진 전통이다. (중략)
그래서 책 사냥꾼은 다른 책 사냥꾼의 책을 훔치거나 빼앗는데 거리낌이 없다.
책 사냥꾼들의 세계는 책 한 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훔치고 빼앗는 약육강식이다. 서로에게는 적이며 적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스파이처럼 잡입과 감시, 미행하는 것은 물론이며 서로를 속이면서까지 구하고자 하는 사냥감을 어떻게든 손에 얻으려고 한다.
종이책이 사라진 책 사냥꾼들의 시대
그러나, 이들이 부정적인 수단을 통해서 책을 얻고자하는 이유가 단지,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회는 종말을 맞게 된 종이책의 암울한 미래를 연상시키게 된다. 종이책의 종말론이 떠돌고 있는 사회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끝없는 탐욕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것이다.
소설 속의 사회에는 이미 종이책이라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 많던 출판사들은 서로 통폐합되어 사라지고, 여기저기 곳곳에는 종이책들이 불태워진다. 그리고 대중들에게는 책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으며 책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쓸모없는 종이덩어리로 전락하고 만다. 책을 읽는 대중들을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북 시티는 사람의 숨소리를 찾아볼 수 없는 유령상가로 되고 만다.
전자북의 등장으로 종이책이 사라지고 있는 이 어둡고 암울한 세상이 책 사냥꾼이라는 어두운 괴물 그리고 책을 사냥하는 괴물들이 모인 책 사냥꾼들의 비밀집단인 미도당이 나온 것이다. 이들에게 책은 읽기 위한 지식의 양식이 아니다. 단지, 희귀한 수집품이다. 이들은 구하기 힘든 수집품을 소유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고객들과 은밀히 거래하기도 한다. 결국, 책 사냥꾼이라는 존재는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책을 읽고 싶어하는 고객들에게 ' 지식 ' 을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 자본 ' 을 거래하는 사람들이다. 책 사냥꾼들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책의 가치는 밑바닥으로 팽개쳐버리고 말았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라는 가상의 책에서도 언급되듯이 소석 속 세상은 그야말로 ' 책의 지옥 ' 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책의 지옥은 반복된다
많은 책이 많은 이유로 없어졌다. 황제는 책을 붙태웠고 교황은 책에 족쇄를 채웠다. 많은 장군과 정치인들이 다양한 이유로 책을 만드는 손목을 자르고, 묶었다. 어떤 책은 불태워졌고 어떤 책은 분쇄됐고 어떤 책은 살해당했다. 그리고 어떤 책들은 사라졌다. (중략)
한 사회는 그 사회에서 사라지는 사람들만큼의 지옥을 갖게 된다 , , ,
그 사회는 그렇게 사라지는 수만큼의 지옥을 새로 갖게 된다.
-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p 213 -
이 소설 속 시대는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고 있는 기묘한 사회를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책 속에 간간이 등장하는 책들은 모두, 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책이다. 세상의 모든 책들에 대한 기록이 담겨져 있다는 전설 속의 고서 <세계의 책>이나 책 사냥꾼들이 찾으려고 하던 <베니의 모험>, 그리고 과거의 책 사냥꾼들의 행적을 그린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까지, 독자들로하여금 진짜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법한 착각을 주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의 환상을 단숨에 깨뜨리고 만다.
내가 찾는 그런 책은 이제 세상은 없어.
- p 206 -
작가가 그려낸 책 사냥꾼들의 세상 즉 책의 지옥은 비록 소설 속 허구로 등장하고 있지만, 종이책들이 대량으로 불 태워져 말살되는 장면은 기존 사회로부터 배척당해야 했던 책들의 잔혹사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유학서들을 불 태웠고, 라블레가 쓴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작가가 활동하던 프랑스 사회를 풍자했다는 이유만으로 금서로 지정되었다. 이 책 이외에도 역사 속에서 절대로 읽어서는 안 될 금서가 되어야했던 책들이 많았으며 심지어 책을 쓴 작가들의 생사를 결정 짓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전자북의 등장으로 인해서 종이책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종말론적 입장이 대두되고 있다. 벌써부터 미래학자들 사이에서는 ' 종이책은 죽었다 ' 고 사망 선고를 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미 종이책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자북의 강세 속에서도 종이책은 꿋꿋하게 버티고 있을지, 아니면 정말 소설 속 사회처럼 이제는 종이책을 구할 수 없으며 곳곳에 책이 불태워지는 책의 지옥이 재현하게 될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책의 지옥이 오게 된다면 종이책만 멸명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통해서 지식을 얻고자하는 올바른 ' 책탐 ' 을 가진 이들도 멸망하고 만다. 그런 세상은 정말 말 그래도 '지옥' 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