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진정한 위안을 준 대단한 명상가가 있으니....그의 이름은 ‘스리 스리 라비 샹카'.

이름도 특이한 '스리 스리 라비 샹카'가 보도된 최근 신문 기사를 보자.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구루’(Guru·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인도의 명상가 ‘스리 스리 라비 샹카’가 지난 7일 인도의 한 어촌에서 ‘해일이 온다’는 소리에 평상심을 잃었다.

‘삶의 기술(Art of Living) 운동’의 창시자로 1982년부터 요가와 단전호흡을 복합한 명상요법을 가르쳐 온 라비 샹카는 7일 낮 인도 타밀 나두의 한 어촌으로 향했다. 지진해일로 6023명을 잃은 마을 사람들에게 평상심을 회복하는 방법에 대한 강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태운 차량 행렬이 마을 입구의 다리에 도착하자 큰 소동이 벌어져 있었다. 술 취한 어부가 “바다가 몰려 온다”고 소리치는 바람에 복구작업 중이던 트럭, 불도저, 인부 등이 한꺼번에 몰려 나왔다. 순간 ‘구루’의 안색은 굳어졌고, 그 지역 기관장이 “두려워할 것 없다”며 진정시켰지만 라비 샹카 일행은 차를 돌렸다.


라비 샹카가 강연할 연단을 준비하고 기다리던 마을 주민들은 크게 실망했다. 늘 미소를 잃지 않던 라비 샹카의 이런 이야기를 전한 AFP통신은 “가짜 지진해일 경보가 구루의 미소를 사라지게 했다”고 보도했다.
(05.01.09. 조선일보)

장난치냐구?

아니다. 진짜로 난 재난이 할퀴고 간 마을에 "평상심"을 강연하러 갔다가 해일이 온다는 소리에 표정이 굳어진 '스리 스리 라비 샹카'에게서 큰 위안을 받았다.

영적 지도자들이나 유명한 명상가들이 쓴 책을 읽으면,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고,
고개가 크게 끄덕끄덕 거려지는 말들이 가득하지만,
나는 왜 이렇게 하찮은 일들에 연연해 할까,
그렇게 마음을 내려 놓자고 다짐을 했건만 왜 또 별거 아닌 일에 분노할까,
난 왜 이 모양일까, 이런 자격지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스리 스리 라비 샹카'를 보니,
'평상심'을 유지하는게 힘든건 나만이 아니구나,
이런 명상가도 이런데 나의 불안과 동요는 애교로 봐줄 수 있겠구나,
마음을 내려 놓기가 쉬운게 아니구나,
그럼 그 모든 위기의 순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면 아무나 도인이 되겠지...이런 생각이 든다.

또 이런 생각도...
다른 명상가라면 그 자리에서 '평상심'을 유지했을까?

요즘....나...힘들다.
그래...솔직해 말해서...힘들다.
쩍팔리지만....힘들다.
자꾸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눈물을 닦으면서 약해 빠진 날,
서른 넘어서 감정도 제대로 못다스리는 날,
비난하고 구박한다.
내 자신을 마구마구 구박한다.

' 넌 왜 이 모양이야?
너 명상도 배우고, 단전호흡도 하고 했쟎아....
근데 왜 이 모양이야?
너 그렇게 약해?
너 포카 페이스 몰라? 포카 페이스는 커녕 니 패는 보여주지 말아야지.'
하며 내 자신을 마구마구 구박한다.

그런데...
이런 나도 사랑하면 안될까?

'스리 스리 라비 샹카'도 평상심을 잃고 도망을 갔다는데,
힘들 때 좀 울어도 괜찮아.

내게 필요한건 그 누구의 위로보다,
내 스스로를 향한 내 자신의 사랑과 무조건적인 믿음 아닐까?

그래...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못난 모습도,
나의 망가진 모습도,
나의 지친 모습도....

나는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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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1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01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5-02-01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닥도닥거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추운 날 아침, 건조한 사무실에서 님들이 남겨주신 글을 읽으니 짜~안해요.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2월의 저의 화두: 망가진 내 모습도 사랑하자!

moonnight 2005-02-0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꼬오~옥(도망가지 마세요. ㅠㅠ)
작은 일에 많이 감동하고 아파하고 눈물 흘릴 줄 아는 수선님이 멋지답니다.
그래요. 구루도 도망가는 마당에 힘들때 힘들다 하는 게 뭐 부끄럽다구요.
힘내세요. 괜찮아. 하고 스스로를 꼬옥 안아주고 위로해주시와요. 수선님은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요. ^^

근데..
스리스리 라비 샹카(너무 재밌는 이름이에요. +_+)는 쪼금 챙피했겠어요. ^^;

kleinsusun 2005-02-0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리 스리 라비 샹카",이름이 너무 웃겨서 마치 이 에피소드에 맞추어 지어낸 이름 같아요.ㅋㅋ 네....평상심을 강연하는 사람도 도망가는데, 헝클어진 모습 보인다고 자존심 상해하고 스스로를 못살게 굴고 구박하지 않을래요. 도닥거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 2005-02-01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때로, 저는 고요함과 참을성이란 것을 휙 하고 집어 던져요. 화가 나면 발을 굴러 표현하고, 밉고 싫은 사람을 향하여 독설도 퍼 붓고, 그 사람의 흉을 있는대로 보기도 하고, 소리내어 엉엉 울기도 하죠. 남 보기 흉한 그런 존재도 나라는 걸 사랑까지는 못해도 인정하니까 위안은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힘내세요. ^^

kleinsusun 2005-02-0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맞아요.사랑까지는 못해도 인정하고 싶어요.맘 편하게.
"나 원래 이래.배째라!"하고 세상에 소리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우울과 몽상님의 응원에 기분이 좋아져요.감사합니다.

글샘 2005-02-0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답지 않게 요즘 왜 그래?
이런 말처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지요. 나는 어떤 존재인지... 남들에게서 재단되는 건 슬픈 일이니까요. 성대리다운 발상의 글입니다. ^^
 
루슬란과 류드밀라 비룡소 클래식 7
푸슈킨 지음, 카랄리코프 그림, 조주관 옮김 / 비룡소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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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정말 오랜만에 그림책을 읽었다.
<루슬란과 류드밀라>는 비룡소 클래식 7편.

비룡소 클래식 시리즈는 현재 12편까지 나와있다.

<보물섬>,<꿀벌 마야의 모험>,<홍당무>,<하이디>,<피터 팬>,<크리스마스 캐럴>,<트로이 전쟁>,<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키다리 아저씨>,<플란더즈의 개>등 어렸을 때 읽었던 어린이 세계명작들이 잔뜩 모여있다. <키다리 아저씨>랑 <플란더즈의 개>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읽으며 생각했다.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지 않나?
슬라브 신화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로 비유를 한 문장들이 많아서 각주까지 있다.
상징들도 많아서 어린이들이 명랑만화를 읽듯 낼름 책장을 넘기기에는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무엇보다도 이 책은 너무도, 감동할 만큼 이쁘다.
눈에 띄는 하드카버에, 마치 미술책 같은 천연색의 삽화로 가득한 이 책은 읽지 않더라도 꼭 갖고 싶을 만큼 이쁘다.

이 책의 삽화들은 보통의 동화책들에 나오는 귀엽고 이쁘기만한 그림이 아니라, 치밀하고 사실적이다.

이 책의 삽화를 그린 카랄리코프의 대표작이 <슬라브 신화 백과사전>, <루슬란과 류드밀란>, <러시아 전설 백과사전>, <고대 러시아 신화와 전설>, <푸슈킨 어린이에게>이라 하니, 슬라브 신화와 러시와 전설에 정통한 카랄리코프는 철저한 고증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루슬란과 류드밀란>의 삽화들을 그렸을 것이다.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스토리는 정말로 단순하다.
넘넘 이쁘고 청순한 공주와 잘생기고 용감한 왕자가 결혼을 했는데, 첫날밤에 늙고 사악한 마법사가 공주를 납치해 가서 왕자가 온갖 역경을 무릎쓰고 공주를 구출해 온다는 얘기다.해피엔딩은 너무도 당연하고... 당근 공주를 흠모하는 세명의 경쟁자들이 등장하고,
왕자는 비겁한 경쟁자에게 살해당하며, 현인이 "생명의 약"을 구해서 다시 살아난다.


요즘 어린이들도 왕자가 공주를 구출하는 얘기에 매력을 느낄까?
난 사실...이런 얘기가 재미 없다. 어렸을 때도 왕자가 공주를 구출하는 동화를 읽으며 "백마탄 왕자"를 상상하기 보다는, 왜 공주는 혼자서 아무 것도 못할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루슬란과 류드밀란>에는 왕자를 도와 주는 역할로 "핀란드 노인"이 등장한다.(오른쪽 그림의 하얀 수염 할아버지)

핀란드 노인은 젊은 시절 마을 최고의 미인이었던 나이나를 사랑했다. 용기를 내어 사랑을 고백했지만, 오만한 미녀 나이나는 냉정하게 거절해 버린다. 자신의 사랑을 거절 당하고 상심에 빠진 핀란드 노인은 영웅이 되어 다시 사랑을 고백하기로 결심하고, 전쟁에 나가 영웅이 되어 돌아온다. 진주와 산호, 온갖 화려한 선물을 바치며 다시 사랑을 간구하는 그에게 나이나는 또 다시 냉정하게 말한다.
"영웅이여,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상심한 핀란드 노인은 나이나의 사랑을 어떻게 해서든 얻기로 결심하고, 마법을 배우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 숲 속에서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마법을 배운다.드디어 주술의 능력을 얻은 핀란드 노인은 주문을 위운다.

그런데.....젊고 아름다운 나이나는 나타나지 않고,
주름 투성이의 꼬부랑 할머니가 나타났다.
상심한 핀란드 노인은 절규한다.

"이럴 수가! 아, 나이나, 이게 당신이란 말이오!
아름다운 당신의 고운 모습은 어디로 갔소?
말해 주오.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무섭게 변하게 했소?
말해 주시오.내가 속세를 버리고
사랑하는 당신과 헤어진 지
얼마나 오래되었소?
그렇게 오래되었소?"

그러자 운명의 여인이 대답했지.

" 꼭 사십 년이 되었죠."


핀란드 노인은 일흔이 되어 나타난 나이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핀란드 노인이 사랑한건 나이나의 젊은과 아름다움이었다.
즉,핀란드 노인은 나이나라는 온 인격적 인간을 사랑한게 아니었다.
나이나의 아름다움을 숭배하고 사랑한 거였다.

마법사가 신혼 첫날밤에 공주 류드밀라를 납치한 이유도
공주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류드밀라가 슈렉에 나오는 피오나 공주처럼 생겼다면
아무도 납치하지 않았을 것이며,
돈을 노린 괴한이 납치했다 하더라도
왕자가 그렇게 목숨 걸고 구출하지 않았을 거고,
공주를 흠모한 연적들이 셋이나 달려들지도 않았을 거다.

전설,동화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들은 모두 다 미인이다.
왕자와 경쟁자들은 아름다운 공주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공주를 지키기 위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다.

할머니가 된 나이나를 불러낸 핀란드 노인이 절규하는 장면에서 난 큰 소리로 웃었다.
만약 젊고 아름다운 기억 속의 나이나가 나타났다면,
자기는 쭈글쭈글한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나이나와 사랑에 빠졌을 꺼다.
그런데...꾸부렁 할머니가 된 나이나가 나타나자 혼비백산한 핀란드 노인은 도망가기에 바쁘다.
정말 정말 웃기다.블.랙.코.미.디.

자기가 할아버지면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도 할머니인게 당연하지,
할머니가 된 여자가 나타나자 왜 이렇게 변했냐고 절규하다니...
이런 자연의 이치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현인"인지...웃기다.

어린 여자애들이 이런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백마 탄 왕자를 하염 없이 기다리고,
여자는 무조건 이뻐야 한다는 삐뚤어진 고정관념에 빠져
다이어트와 성형을 밥 먹듯이 하는 어른이 될까 두렵다.

초등학생 여자 조카가 있다면 이런 동화 보다는
모든 인간은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걸 깨우쳐 주는 책을 골라 선물하고 싶다.
어린이들이여,
제발 "누구의 부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내평겨쳐라!
너희들은 뭐든 될 수 있단다. 너희 스스로!

이 책은 어른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머리도 식히며, 너무도 아름다운 삽화에 흠뻑 빠져 보시라...
또 큼직큼직한 글씨의 동화를 읽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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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1-30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방에서 보고 보관함 넣어뒀는데 수선님 리뷰 읽으니
당장 사야만 하겠군요.
그나저나 어느 분께 땡스투 눌러야 하죠?^^

2005-01-30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5-01-3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플레져님께 Thanks to 눌러주세요. 저도 플레져님 리뷰 보고 샀거든요. 이 책 삽화 진정한 예술입니다.좋아하실꺼예용!

야클 2005-01-3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야 인생의 묘미나 낭만을 아느니,내적인 성숙이 이루어 지느니 하지만 그래도 나이가 드는 건 너무 슬픈 일 같습니다. 특히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건 너무 가슴 아파요.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수선님 리뷰제목을 보고 떠오른 생각.

kleinsusun 2005-01-31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건 가슴 아파요.
올해 울 아빠는 환갑이랍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아직 결혼을 안했다는 이유로 아빠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혼인을 "숙제"로 아시쟎아요.
열씨미 효도해야겠어요.야클님도 효도하세요!

moonnight 2005-01-3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의 리뷰를 보니 저도 갖고 싶어졌어요. 넘넘 이쁜 그림책>.<
남자들은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미인을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문득 났습니다 -_-; 그러믄요. 좋은 남자를 찾아 시집 잘 가기보단 얼마나 당당히 세상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일인데 말이죠. ^^
얼마전 아기를 낳은 후배를 만났는데 이십대 마지막날을 방바닥에 붙어서-_- 보내려니 너무 우울하더라면서 언니도 스물아홉에 많이 심란했죠? 묻더군요.
음.. 그때 일기장을 찾아보니 얼른 서른을 넘기고 싶다고 되어있던걸요. ^^;
이십대의 촉촉한 피부를 유지하고 싶으면서도 어지럽고 방황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의 내 나이가 좋은데..
그러면서도 역시 부모님이 나이들어가는 모습은 너무 슬프고.. ㅠㅠ
저도 엄청 불효하고 있는 여식이라.. -_-;; 우리 함께 효도해용 ^^
수선님 글 많이 기다렸었답니다. 흐흐 (스토커인가 ;;)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 주 여시길 바래요. ^^

kleinsusun 2005-01-31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9살에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모르겠어요.30살이 되면 큰일 나는지 알았나봐요. 운전하면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나.... 툭하면 우울해하지 않나....그럴 때가 있었죠.근데...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서른이 된다는 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둘 필요도 없고, 두려워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예요.
지금의 나이를 좋아하시는 moonlight님, 보기 좋아요. moonlight님 페이퍼 보러 자주 간답니다. 공감 되는 글들이 많아서.... 즐거운 일주일 시작하세요!

2005-02-01 0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6-01-1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잉~ 수선님.
저 와방 땅그지인데 이 책 마구 사고싶어지잖아요.
지르면 안되는데 ㅜㅜ
 

오늘 한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
사진기자가 쉴새 없이 셔터를 누르며 100장은 될 듯한 사진을 찍고, 인터뷰 담당자는 많은 질문을 했다.

그러니까, 오늘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터뷰를 당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모처럼 부지런을 떨어서
내 이름이 들어간 크리스마스 카드 200장을 제작했다.
아는 업체에 내 사진을 보내서 캐리커쳐가 들어간 엽서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큼직한 글씨로
"New Year's Greeting from Susan" 을 넣고
작은 글씨로
" Thank you for everything you did for me.
Wish you a merry Christmas & very happy new year!
New year is full with "Fun"!"
을 넣었다.

파란 빤짝이 배경에 눈이 내리고,
산타 모자를 쓴 나는 활짝 웃고 있다.
옆에 작은 글씨로 홈피 주소랑 핸드폰 번호, 이메일 add를 넣었다.

해외거래선들한테도 보내고,
친구들, 회사 동료들에게 직접 손으로 쓴 카드를 보냈다.
정말 오랜만의 "부지런함"이었다.
몇년만에 손으로 쓴 카드를 받은 사람들이 감동했다.

이 카드를 본 홍보팀의 장주임님, 내 홈피를 방문하고 뜻밖의 제안을 했다.

" 우와....성대리님. 정말 대단한 홈피네요.
회사생활하면서 어떻게 이런 홈피를...정말 대단해요.
삼성월드에 한번 출연하셔야겠어요."

반쯤 농담인지 알았는데, 며칠 후 인터뷰 섭외가 되었다며 제일기획에서 전화가 올꺼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난, 최초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2시 30분에 방문하기로 한 인터뷰 담당자와 사진기자가
2시 15분쯤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침까지 아무 생각 없었는데 살짝꿍 긴장이 되었다.

인사를 나눈 인터뷰 담당자가 말했다.

" 인터뷰 준비를 위해서 성대리님 홈피에 들어갔었거든요.
그러다 재미있어서 에세이에 있는 글들을 몽땅 읽었어요.
저 성대리님 보다 두살 어리거든요. 정말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인지 알았는데,
정말 인터뷰 담당자는 그 수많은 글들을 다 읽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글들 얘기까지 했다.
안 그래도 감동 잘 하는 난, 인터뷰 담당자에게 대박으로 감동했다.

인터뷰 담당자와 난,
술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듯이 편하게 얘기를 주고 받았다.
우리는 곧 술한잔 하자고 약속을 했다.
어쩌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맘에 딱 드는 여자였다.

인터뷰의 컨셉은
내 글에서 회사원들이 느끼는 "공감"과 조직생활 속에서 느끼는
"여자"로서의 정체성이란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삼성월드>에 들어가서 지난 인터뷰들을 보니,
기술명장, 신라호텔 주방장 등 대단한 업적을 쌓으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후속 인터뷰로 내 기사가 나간다고 생각하니 쑥스럽기도 하고 멋쩍다.

인터뷰 담당자는
오늘의 인터뷰 내용과 내 홈피의 글들을 버무려서,
"이쁜" 브리짓 존스의 일기 형태로 재미나게 글을 쓸 예정이라고 한다. 살짝꿍 기대된다.

약간 걱정되는건,
워낙 글들이 솔직해서 회사 사람들에게 홈피가 알려지는게 좀 부담스럽다. 설마....상무님이 방문하지는 않으시겠지...ㅋㅋ

최초의 인터뷰.
두고 두고 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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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1-28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야~! 인생에서의 멋진 추억 하나... 남기셨네요~! 성댈님 축하햐요~~!!

2005-01-28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5-01-2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부끄.감사합니다. 2월 셋째주 금요일에 올라온데요.ㅋㅋ

릴케 현상 2005-01-28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축하

kimji 2005-01-28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 오는 날 있으면, 해 반짝인 날도 있다고, 맞지요?
좋은 일 있으셨으니, 한동안 활짝활짝 웃으시며 지내세요-
더불어 축하의 인사도요! ^>^

세벌식자판 2005-01-28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다가 대박(?) 터트리는거 아닙니까?
사람 일이라는게 모르는거잖아요.
박경림도 한 때는 평범한 고교생이었는데 작은 일이 디딤돌이 되어서 지금까지 왔다고 하던데.... ^^;
아무튼 좋은 일이 계속 생기길 빌겠습니다.

날개 2005-01-29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근데, 홈페이지는 어디세요? 구경 가면 안될까요?

2005-01-29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01-29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그 글 퍼다놓으시면 좋을 듯. ^^ 축하합니다!
수선님, 책 계획 세우신 건 잘 진행되시죠? ^^

nemuko 2005-01-29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려요. 이러다 수선님이 책까지 내시면 더 유명한 분이 되실테니^^ 잘 써달라고 하세요........

로드무비 2005-01-2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인터뷰 꼭 보고 싶네요.
수선님께 올 크리스마스엔 카드도 받고 싶고......
(고마워요, 수선님. 뭘? 아시죠?)

kleinsusun 2005-01-29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http://people.samsung.co.kr
삼성 인터넷 가족보 <삼성월드> 2월 3주 사람과 사람들 인터뷰 코너에 업데된답니당. 사진이 잘 나와야 될텐데...두근두근.
날개님, 제 홈피는 www.kleinsusun.com이랍니다.
모두모두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당.

moonnight 2005-02-1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수선님. 이제야 이 글을 봤어요. 지각입네당^^; 우선 무지무지 축하드려요. 2월 3주면 이번주 금요일이네요. 저도 살짝 구경갈께요. 역시 수선님의 솔직한 글은 모든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군요. 물론 님의 예쁜 마음두요. 수선님의 정성이 담뿍 들어간 크리스마스 카드.. 받는 사람들 참 많이 행복했을 거 같아요. 올해, 수선님께도 full with "Fun"일 거 같습니다. ^^

사고뭉치 2005-03-06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간만에 답방왔는데 이 글이 눈에 띄어 들어왔다가 적혀진 주소로 찾아가 인터뷰 기사 읽고 왔어요. 치열하게 사는 게 부럽구만요.
 
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원제는 [Feminism is for Everybody : Passionate Politics]
이 책의 주제를 적확하게 한줄로 표현한 제목이다.

이 책의 주제는 제목 그대로다.
페미니즘은 모든 사람을 위한 거다.이 세상 모든 이들.
여자도, 남자도, 성적 소수자도, 어린이들도...

이 책의 저자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이렇게 정의한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다.

페미니즘은 反남성주의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남성에 의한 여성 차별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주의가 몸에 밴 사람이 여자인가 남자인가 어린애인가 어른인가에 상관없이 그 모든 성차별적 사고와 행동이 문제라는 점을 꼬집는다.

페미니즘의 F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남자들이 많다.
페미니스트는 드세고 공격적이고, 남자를 잡아 먹을라 그러는 무서운 여자라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에서, 즉 남자들로 부터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못생긴 여자들이 멀쩡한 여자들을 선동하는 운동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페미니즘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그랬다.

학교 다닐 때,
난 여학생협의회,여성운동 이런건 못생긴 애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여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드넓은 여자화장실은 여학생들의 한적한 휴식공간이었다.
화장실 한켠에 커다란 쇼파가 있었다.
여기서 잠을 자는 애들도 있었고, 수다를 떠는 애들도 있었다.
심지어 이 쇼파에서 운동을 하는 애들도 있었다.윗몸 일으키기 이런거...

내가 여성운동은 못생긴 애들이 하는거라는 선입견을 갖게 된건 이 쇼파에서였다.

시험기간, 아침에 도서관 화장실에 가면
부시시한 머리, 츄리닝 차림에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는 언니가 있었다. 츄리닝 주머니에는 88Light가 들어 있었는데, 윗몸 일으키기를 하면 주머니에서 필터 가루가 흐르곤 했었다.

같은 과는 아니었지만,그 언니는 여러가지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기 때문에 얼굴을 알고 있었다. 똑똑하고 성실하고 본받을 점 많은 선배였다.
하지만....난 그 언니의 차림새가 너무 싫었다.
학교에 어떻게 츄리닝을 입고 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츄리닝 주머니에 끼워진 구깃구깃한 88Light에서는 필터가 부서져서 흐르고,도서관에서 밤을 새웠는지 머리는 부시시...
여학생협의회 하면 그 언니가 떠올랐고, 왠지 반감이 생겼다.

그 언니가 준 선입견 보다 더 중요한건,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었던 본질적인 이유는,
학생 때 별다른 차별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거다.
즉, 내겐 문제의식이 없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그것도 빡센 영업조직에 최초의 여자사원으로 등장하면서
나는 여러가지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졸업과 동시에 뜨리뜨리한 남자와 결혼을 해서
마나님이 되었다거나,
여자가 대부분인 교사,디자이너 이런 직업을 가졌다면
아직도 페미니즘을 딴세상 얘기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회에 나와서 느낀건,
수도 없이 벽에 꽝꽝 부딪히면서 느낀건,
여자로서의 불리함, 여자에게 가해지는 가부장제의 폭력만이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부장도,그러니까 남자도 불행하다는 것을, 힘에 겨워한다는 것을,울고 싶어도 여자처럼 엉엉 소리내서 울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부조리함이 "아빠, 힘내세요!" 춤추면서 노래한다고 없어질까?
출근하는 남편에게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캔디 노래불러 준다고 해결이 될까?

페미니즘으로 부터 해방을 얻을 수 있는건 여자 뿐만 아니다.
남자들도 허울 좋은 가부장제의 권력을 내려 놓고,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

페미니즘은 反남성주의가 아니다.

벨 훅수는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기존 사회에서 여자들이 "남성지배"로 부터 얼마나 피해를 당하고 있는지, 피해자로서의 여자와 가해자로서의 남자를 분리하여 성토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아무런 대안 없이 그저 피해의식과 적대심을 부추기는 책도 아니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에 대한 벨 훅스의 관점을 보자.

페미니즘 이론은 어린이에 대한 성인 여성의 폭력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도,실천적인 개입도 제대로 이루어 내지 못했다.
...(중략)....
여성은 이러한 폭력을 남성들과 똑같이-더 많이는 아니라고 할지라도-영구화하고 있다.어린이에 대한 성인 여성의 폭력에 정면 대응하지 않은 것은, 페미니즘 사상과 실천 사이에 하나의 심각한 틈새를 벌여 놓았다.남성 지배만을 강조하는 것은,페미니스트 사상가까지 포함하여 여성들로 하여금 쉽사리 어린이를 학대하는 여성의 존재를 무시하게 만든다.그것은 우리 모두가 가부장제적 사고를 받아들이도록,힘있는 자는 힘없는 자를 지배할 권리가 있으며 힘없는 자를 복속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지 사용해도 된다는 지배의 윤리학을 수용하게끔 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p165~166)

즉, 페미니즘에서 비판의 대상은 남자에 의해서 여자에게 가해지는 폭력만이 아니다. 여자건,남자건,어린이건, 노인이건 가부장제적인 사고가 체화되어 일어나는 모든 폭력과 지배를 비판한다.

페미니즘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교재다.

사족) 벨 훅스는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 페미니스트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상황들은 한국사회와 괴리된 경우가 꽤 있다. 한국에도 우리의 실정에 맞는 이런 명쾌한 페미니즘 개론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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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1-2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러게요...
모두가...자유롭고 행복해지기 위해...
페미니즘이 있는거라고요~

솔직한 글은 힘이 세다고...님이 그러셨죠~~! 학교 다닐 적 여학생협의회 이야기 하셔서... 더 공감했어요... 내게 닥치지 않으면...구체적으로 생각하기가 힘들죠~

잘 읽고 갑니다....!!

moonnight 2005-01-2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의 글을 읽으면 어려운(머리 띵하게 아픈 -_-;) 내용을 알기 쉽고 간결하게 요점만 쏙쏙 뽑아내서 정리하시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답니다. 감사합니다. ^^
그래요. 페미니즘은 반남성주의가 아니지요. 장남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후원과 사랑을 받는 오빠가 참 부럽기도 하고 밉기도 했었는데 어느순간 내겐 없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단 생각이 들더군요. 힘들어도 울 수 없는 오빠가 불쌍해보였어요. 페미니즘으로 자유로와질 수 있는 것이 여자뿐이 아니란 말씀 참 와닿네요. ^^
여전히 모호한 형태로 남아있던 페미니즘의 의미,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암리타 2005-01-2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에 대한 색다른 접근와 이해를 가능케 한 책인 것 같습니다. 서평 아주 잘 읽었습니다.

겨울 2005-01-24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폭력과 지배를 비판하는 페미니즘이라, 깊이 공감합니다. 저도 종종 드세고 공격적이고 무서운 여자라는 소릴 듣는데, 여자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골수 보수에 무지한 남자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시선을 한들 그게 대수겠습니까. 집과 학교에서 이렇다할 차별을 당한 적이 없다는 수선님이 부럽네요. 어린시절 받은 차별이 상처가 되어 두고두고 아픈 것도 무척 괴로운 일이거든요.

kleinsusun 2005-01-2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한, 유연한 세상을 위하여, 아자!

kleinsusun 2005-01-25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의 댓글을 읽고 반성을 했어요.
학교에서 별다른 차별을 느끼지 못한건, 차별이 없었던게 아니라 제가 학교를 너무 설렁설렁하게 다녀서 그런 것 같아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움직이는게 아니라, 수업만 뚱하게 듣고 나오는 그런 학생이었거든요.
우울과 몽상님 댓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감사합니다.

ozallan 2005-09-10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그저 그렇게 대학을 다니다 보니, 몰랐는데..
수업시간에 어떤 교수님이 너무나도 심하게 성폭력적인 발언을 하신 이후로 거의 각성했죠 ㅋㅋㅋㅋ

정말 대학문화 많이 바껴야 합니다..
서평잘읽었습니다.
 

오늘 회사에서 내내 힘들었다.
가슴이 팔딱팔딱 뛰었다.
친한 사람 몇명에게 중계방송을 했는데,
그 때 마다 진정을 찾아가던 가슴이 다시 소용돌이를 쳤다.

우울한 기분으로 퇴근을 했다.
오늘 따라 날씨는 왜 그리 추운지...
집에 막바로 가서 쉬고 싶었지만 가볍게 술을 한잔 하고 싶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바빠? 지금 나올 수 있어? "
고마운 친구는
힘들 때만 전화하는 얄미운 내게
아무런 싫은 소리하지 않고,
그 흔한 한마디 생색도 없이,
바람을 휘날리며 나타났다.

단골집 "일로"에서
좋아하는 맥주 삿뽀르 실버를 마셨다.
내 좋은 친구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위로도, 다독거리는 것에도 관심없는 사람들,
훌쩍거리는 동료의 아픔에 무표정한 사람들이
"왜?"는 집요하게 물어본다.

국민학교 때,
누가 울면 애들이 우는 애 주위로 우우 모여든다.
"왜 울어? 왜 울어? 왜 그러는데?"
대부분의 경우 애들은 왜 우는지를 궁금해 한다.
같이 속상해하는 애들도 물론 있지만,
많은 경우 아이들의 솔직함 또는 잔인함은 "호기심"을 채우기에 바쁘다.

친구랑 맥주를 마시면서 좋은 노래들을 듣다 보니
갑자기 노래가 하고 싶어졌다.

"노래방 갈래?"

나의 갑작스런 제안에
친구는 오늘은 너에게 봉사하는 날이라는 표정으로
흔쾌히 "가자!" 그랬다.

맥주 한캔 밖에 안 마신 나는
아주 또릿또릿한 맨정신으로 마이크를 삼켜버릴 듯 노래를 불렀다.
타카피의 "사랑의 이름표"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
황규영의 그 옛날 노래 "나는 문제 없어" 를 악을 쓰며 불렀다.

다른 사람이 봤으면 나의 그 쑈쑈쑈에,
그 어설픈 춤과 우스꽝스런 표정에
뒤집어지며 웃었을텐데 친구는 나를 안스럽게 쳐다봤다.

친구의 표정.
"저게 얼마나 속이 상하면 저럴까...쯧쯧..."

내 쑈를 지켜보던 친구가 마이크를 들더니 노래를 했다.

널위해 할 수 있는게 참 없잖니 사랑을 얻는 일도 하는 일도
그게 나를 또 얼마나 미치게 하는 건지 니가 알까
끝내 몰라도 돼 부탁 하나만 할게 널 웃게 만드는 일만 허락해줘
우는건 아픈건 내가 할게 넌 웃어줘


친구의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가 말했다.
" 넌 웃을 때가 젤 이쁜거 알지?"

고마워.고마워.정말 고마워.
내일은 하루 종일 웃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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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1-2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친구야!!!!
친구가 있어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훌쩍.

로드무비 2005-01-2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 갑자기 악을 쓰며 불러보고 싶어요.
수선님은 마음아픈 일도 참 상큼하게 쓰시네요.
능력입니다.^^
(오늘 일 다 잊어버리고 푹 주무세요.^^)

날개 2005-01-20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친구분을 가지셨군요.. 속상한 일은 좀 풀리셨나요? 기운내시고 친구분 말씀대로 내일은 웃으시기 바래요..^^*

바람돌이 2005-01-21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히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수 있다 그러잖아요. 속상할 때 그런 친구가 있다니 수선님은 행복한 분이세요. 그리고 그런 친구를 가졌다는 것도 수선님의 마음됨을 보여주는거구요. 아마 내일은 수선님의 직장 내공 수치도 좀 더 올라 있을거예요. 인간의 적응력은 놀라우니까요. 화이팅!!!

kleinsusun 2005-01-2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친구가 있어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친구가 있다는건,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건 참 든든한 빽이예요. 친구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며.친구야,고마워, 고마워, 정말 고마워!

kleinsusun 2005-01-21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로드무비님,날개님, 바람돌이님 모두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 아침은 한결 기분이 나아졌어요. 씩씩하게 오늘 아침과 정면승부합니다.ㅋㅋ 환하게 웃으시며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nemuko 2005-01-21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기분 좋아지셨죠^^ 그런 좋은 친구를 가진 수선님도 부럽구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싶네요......

야클 2005-01-2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친구분에게 잘하십시오. 결혼한 후에도 변치말고...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kleinsusun 2005-01-2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nemuko님도 그런 친구가 되어 주세요. 정말 든든한 힘이 된답니다.
야클님, 맞아요 맞아.그 친구한테 잘해야죠. 야클님 글 읽고 지금 막 그 친구한테 전화했어요. " 지금 내 홈피에 들어가봐. 주인공으로 등판시켰어." 친구가 좋아하네요. 네...저도 잘할꺼예요.힘들 때만 전화하는 얌생이 안될꼬예요.ㅋㅋ

moonnight 2005-01-21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령처럼 들락거리다가 이제야 흔적남깁니다. 안녕하세요. 수선님 처음 뵈어요.^^ 님의 서재에 새글이 올라오면 살짝 들어와 읽기만 하던 소심쟁이입니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시겠어요. 다 수선님께서 따뜻한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 아니겠어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잖아요. 부럽습니다. 님. ^^ 이젠 몸도 맘도 아프지 마세요. ^^

kleinsusun 2005-01-2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어제 많이 아파한거 후회했어요. 어제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커서 오늘 몸이 힘들더라구요. 닉이 참 이쁘네요. moonnight. 앞으론 그냥 가지 마시고 글 남겨주세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파란여우 2005-01-2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짠한 글을 왜 이제서야 보게 되었나 몰라요. 가슴깊이 팍팍 와 닿습니다. 사실, 제가 요새 낮에는 사무실에서 서재질을 도통 못해요. 윗분과 아주 근접한 거리에 위치가 있는 까닭으로 서재 마실에 중대한 차질을 초래받고 있다는 것이 변명입니다만. 아, 그래서 전 님의 이 글을 이제서야 읽으며 다시한번 슬퍼집니다. 그나저나 수선님! 마음이 참으로 따듯하신 친구분이십니다.^^

kleinsusun 2005-01-2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고마운 친구예요.저도 그 친구한테 잘해야 되는데...
파란여우님, 일하면서 서재 생각나시겠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