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없음이 고민이다. 

한 때는 고민이 너무 많아 사는 게 미칠 듯 힘들더니 이제는 고민이 너무 없다.

나이듦은 생각없이 사는 걸 가르친다.

오히려 처지는 과거 보다 나빠졌다.

오래된 몸은 가만히 있어도 부식되는 중이라

틈틈이 쓸고 닦고 기름칠을 해야만 한다.

긴긴 실업으로 주머니도 곳간도 텅 빈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무난한 원인은 생각의 차이다.

언젠가부터 생각없이 살기로 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적당히 덤덤하게

싫어하는 사람 덜 보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소소하지만 뿌듯한 재미를 찾아다니며

어지간하면 뛰지 않고 걷기

덜 화내고 덜 싸우기

그리하여, 점점 순해지는 중이다.

아니, 깃털같이 가벼워지고 있다.

마치 지상에서 한 뼘 높은 허공에 두둥 뜬 기분이랄지.

모호하다면 모호한.

그럼에도 열심히 먹고 자고 싸는

여전히 사람, 인간 인증이다.

어떤 길

어떤 끝이어도 좋다.

아무래도 좋다.

고민없음을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다.

끝까지 버티고 살아보면 알아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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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 인공지능 기계가 주인인 세계라니. 인간은 그들에 의해 통제 관리 되며 끝없이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이 진짜라고 믿는다. 계속 꿈을 꿀 것인가. 깨어날 것인가. 파란약과 빨간약의 선택이다.


해커 네오를 연기하는 키아누 리브스의 창백한 얼굴은 오묘하다. 검은 머리의 아름다운 이 남자가 아닌 네오는 상상할 수도 없다. 로렌스 피시번이 연기한 모피어스 역시 그렇다. 둘은 다르지만 잘생겼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멋진 사람은 트리니티다. 네오의 순수함과 약함과 대비되는 그녀의 강함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회색의 디스토피아, 낡은 함선, 누더기옷의 현실 너머에는 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신셰계 매트릭스가 있다. 다시 보는 매트릭스는 볼수록 놀랍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그 시절에 가능했을까. 다시 봐도 경이롭다. 보여주는 움직이는 예술의 극치다.


길을 아는 것보다 그 길을 걷는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모피어스의 통찰력처럼, 네오는 길을 모른다고 말하지만 그 길을 걷는 인간이 되어간다매트릭스4편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전편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2020년 마지막은 매트릭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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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오후, 산책을 다녀오다.

먼저 뜨거운 물을 끓여 마신다. 겨울 바람에 언 몸이 녹는다.

차갑게 식은 카레를 데우고, 잘 익은 김장 김치를 썬다.

허기 졌던 몸과 마음이 포만감에 부푼다.

 

영화, 벌새는 이미 내용을 알고 보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가슴을 후려치는 묵직한 아픔을 느꼈다. 묻어 둔 기억과 영화의 내용이 겹쳐지며 공감 백 배였다. 저 때의 내 모습은 사실 영화보다 더 슬프고 아팠다. 은희는 부모가 있고 중산층의 부유한 가정이지만, 난 부모의 부재와 가난, 그리고 혹독한 사춘기를 지나왔다. 그 시절을 딱 한 단어로 표현하면 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사는 건 다 그래 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을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통해 바라보는 경험은 특별하고 신비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은희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동복이 하복으로 바뀐 햇살 가득한 날, 구김 없이 웃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렇게 모습일 뿐, 그들은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을 터였다. 누군 가는 죽고 누군 가는 살아남았다. 죽음은 죽은 자의 몫이다. 기억은 점점 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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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크리스마스
폴 오스터 외 지음, 알베르토 망구엘 엮음, 김석희 옮김 / 황금나침반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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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싱그러운 꽃놀이에 눈을 원하지 않듯
크리스마스 때 장미를 원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제 철에 나는 것이 좋습니다.
(세익피어, 사랑의 헛수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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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의 다른 방법 눈빛시각예술선서 7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이희재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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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순간과 지금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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