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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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안부를 묻고싶은 사람이 있다. 안녕한가요. 어느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안녕하냐고 큰 소리를 내어 외치는 상상도 한다.

보내려는 혹은 받아든 모든 안부는 눈부시다. 눈이 시리다 못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대로 감정을 두드린다.

기억의 갈피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가지런히 무늬를 만든다. 지영이, 재희, 화주, 은주, 남희… 혹은 이름도 모르는 누구누구.. 색이나 형태, 밝은 미소로 기억하는 시간은 슬프다. 소리죽여 눈물이 흐르지만 고통 때문이거나 미움의 감정과는 반대다.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워서 슬픈 것이다.

물론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늘 동경했던 시인이 되지도 못했고, 뼈아픈 시행착오를 수도 없이 겪었어. 하지만 내 삶을 돌아보면 더 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는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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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푼의 시간 (리커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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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스러운 세탁로봇에게,
어쩌면 인간보다 인간다운 은결에게
무한한 애정을 넘어 애착을 품게 되었음을 고백 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앞에 두고 슬픔에 젖었다.
그의 이별에 관한 소회가 실은 독자인 내게도 해당하기에
푸른 세탁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아 사라지는 것을 보며 주저앉았던 은결의 절망 같은 무너짐에 눈물을 흘리지않을 심장이 있을까?
우주 속 별 것 아닌 한 점에 불과한 인간의 삶 앞에서 불멸 아닌 불멸에 가까운 생를 다하는
은결의 헌신과 의리,
어쩌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헌신에
이 겨울, 12월의 날들이 따뜻해 졌다.

아이가 훗날 자라 그 약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대도, 그는괜찮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아이가 자라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완전히 멈출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이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 그는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점 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가르쳐준 모든 것이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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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0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로봇, 소리>가 떠오르는 좋은 소설이죠.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김홍신 지음 / 해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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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작가의 이름만으로 고른 신작은 결국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 추억이나 의리로 버틸 수 없는 경우다. 책이 귀하던 시절 짝에게 빌려 밤새 읽었던 ‘인간시장’은 그만큼 강렬했다. TV도 영화도 접하지 못했던, 가난하지만 가난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던 순박함 시골뜨기에게 김홍신의 소설은 신세계였다. 이제와 생각하면 웃픈게 좀 더 양질의 책을 접하지 못한 아쉬움, 안타까움이 있지만 어쩌랴.

40년 전의 그리운 기억으로 노작가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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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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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 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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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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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은 2011년 작이지만 내게는 가장 최근 읽은 그녀의 작품이므로 신선한 채소의 풀향 가득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 시적인 문장들이 그림과 같아서 느리게 읽기에도 적합하다. 숨겨진 보석을 늦게늦게 찾아낸 기분이다. 늘 보물찾기에 서툴러 허둥거리는데 드디어 찾았다. 뿌듯하다.

밤은 고요하지 않다.
반 블록 너머에서 들리는 고속도로의 굉음이 여자의 고막에 수천 개의 스케이트 날 같은 칼금을 긋는다.
흉터 많은 꽃잎들을 사방에 떨구기 시작한 자목련이 가로등 불빛에 빛난다. 가지들이 휘도록 흐드러진 꽃들의 육감, 으깨면 단냄새가 날 것 같은 봄밤의 공기를 가로질러 그녀는 걷는다. 자신의 뺨에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이따금 두 손으로얼굴을 닦아낸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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