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소녀 백서
김현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정말 "불량소녀"가 썼는지 알았다.
고등학교를 3달 만에 자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6년째 다니고 있다는 김현진.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이 개성있고 독립적인,또 어린 친구에게서
"색깔있는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구를 흉내낸 것이 아닌 자신만의 목소리.

들어가는 말 "불량소녀에게 바친다"에서 저자는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한없이 사랑스런 그녀들이 내가 했던 삽질과 내가 박살냈던 삶의 과정으로 걸어들어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팠다. 아, 내가 십대 때, 스무살 때, 그놈하고 자지 말라고, 그런 말 듣고 참지 말라고, 연애에 목숨걸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는 언니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내 삶에 윤기가 있었을까. 좋은게 좋은 거라는 말을 진리인 줄 알았던 내 소녀시대를 생각하며 나는 종이 위에 쓴다. 불량소녀백서, 라고."

아....얼마나 사랑스럽고 기특한가?
이 갸륵한 "집필의도"를 읽고 난 기쁜 마음으로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내 헛갈렸다.
이거 정말 <불량소녀 백서> 맞아?

충고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수없이 이런 저런 "삽질"을 하며 삶을 박살냈다고 말하는 저자.
하지만 어디에도 삽질의 구체적인 기록은 없었다.
"다이어트 하지 마라!", "이런 놈하고 자지 마라!" 이런 충고만이 있을 뿐....

자꾸 "불량소녀", "우리 불량소녀들"하며 반복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누가 썼는지 헛갈릴 정도였다.
고은광순이나 현경,이유명호 같은 유명한 페미니스트들이 쓴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스스로 불량소녀라 말하는 저자 김현진의 글은
너무도 "관념적"이었다.

예를 들어 폭력에 대해서 쓴 부분에서는
몇 페이지나 최진실,조성민 얘기를 하며 흥분한다.
그러면서 나도 남자친구한테 폭력을 당해본 적이 있다고 쓴다.한줄로....

저자는 끊임 없이 열변을 토한다.
마치 웅변대회에 나온 학생처럼...
".....하자!", ".....하지 말자!"....
그런데....이 주장이 너무 관념적이다.

솔직한 글은 힘이 세다.
뭘 하자고 주장하지 않아도,
솔직한 글은 읽는 사람들을 움직인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은 "공감"이 아닐까?

"이런 남자와 절대로 연애하지 마라"에서
나쁜 남자 유형을 열거하며 소리 높혀 외치지 않아도
자신의 뼈저린 연애 실패담을 구체적으로 들려 줬다면
불량소녀의 후배들에게 훨씬 더 절절하게 와닿지 않을까?

불량소녀의 얘기를 듣고 싶다.
술 마시며 자연스럽게 얘기하듯이....

김현진은 벌써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던데,
그 책은 좀 더 자기만의 빛깔을 반짝였으면 좋겠다.
책은 꼭 한권 사주겠다.
당당하고 재능있는 어린 친구를 지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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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8-15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장을 떠나서 어떻게 저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포즈로
글을 쓰는지 그것이 놀라워요.
수선님의 지적은 정말 예리하십니다.^^

kleinsusun 2005-08-15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온갖 "삽질" 다했다며 기선을 제압하고 들어가는데,
막상 읽어보면 무슨 삽질을 했다는건지 알 수 없어요.
사람의 눈길을 확 잡아끌 줄 아는 재능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2005-08-16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