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악마의 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1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임슬애 옮김 / 민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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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면서 살 생각입니까?" 남자가 두 번째 수프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질문했다.

"그냥 살려고요." 엘런이 답했다. 드문 일이었다. 엘런은 항상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라,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번 만남은 영원할지, 자신이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두 사람이 탄 자동차 바퀴가 갑자기 튀어 나가는 바람에 반송장이 되어 길가이 널브러지지 않을지 걱정하곤 했으니까.

"현명해지는 거로군." 남자가 말했다.
"나이가 드는 거죠." 엘런은 전보다 행복했고, 만족했고, 그러니 젊어진 셈이었다. - P32

"다들 결혼하잖아요." 엘런은 다소 씁쓸한 듯 말했다. "습관적으로."

"난 세 번 했어." 시드니가 말했다. 자축하는 듯했다.
"기억나는 결혼 있어요?" 엘런이 물었다.
"첫 번째 결혼은 기억하지. 아내는 과학자였어." ...

시드니는 회상에 잠겨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갔으나 엘런은 일찍이 관심을 잃었다. 엘런은 식사와 돈과 일상의 걱정으로 더럽혀진 나날들에서 잘 선별해 낸 특별한 것, 특별한 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P117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어?" 귄이 말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까." 기분이 상한 엘런이 대꾸했다. 결혼 이야기는 자세히 하고 싶지 않았다. 지위를 획득하려고 아내가 되었을 뿐, 심문받기 위해 결혼한 건 아니었다. - P136

"엘런은 또 아이를 갖게 될 거야" 바비가 말했다. "아니면 다른 걸 갖게 되겠지?"

"무슨 말이야?" 엘런이 말했다. 바비는 잠자리를 목적으로 엘런을 찾아온 걸까?

"엘런도 알잖아." 바비가 말했다. "슬럼가와 찌꺼지 더미와 똥무덤에서도 무언가가-예쁜 것이-탄생하는 걸 그간 많이 봤잖아. 저 거대하고 경박한 나무 보여?" 바비가 탈의실 뒤로 보이는 야자수를 가리켰다.

"정말 경박해" 엘런이 울다가 말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거야." 바비가 말했다. - P184

"내일 아침에 피우게 한 개비만 남겨 줄래요?" 엘런이 부탁했다. 휴느ㄴ 한 갑을 통째로 남겼다.

"하나면 되는데." 엘런이 말했다.
"난 가는 길에 사면 돼요." 휴는 용서의 의미로 살짝 미소지었다. 잘생긴 남자였다. 성급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사랑하기 좋은 여자가 12월 하늘의 별만큼 무수했다. 엘런은 이 모든 것이 어찌나 공허한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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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문장들 - 한 줄의 문장에서 러시아를 읽다
벨랴코프 일리야 지음 / 틈새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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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러시아 사람들의 자랑이다. 혹여 외국인이 러시아 말을 배운다고 하면 바로 푸시킨이나 다른 유명한 작가의 명언을 읊으면서 러시아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런 아름다운 언어로 쓴 문학 작품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이것 역시 한국 문화와 매우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을 때 나에게 박경리 작가의 토지 같은 작품을 언급하는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P11

사랑 앞에서는 나이가 고개를 숙인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예브게니 오네긴 - P76

러시아 문화에서 가장 멸시하는 인생은 ‘평범함‘이다. 평범함을 경멸하고 깔보며 비웃는다 ...‘제대로 살거나 죽어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 러시아 문학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해 왔다. - P207

진짜 남자는 여자의 생일은 꼭 기억하지만 나이는 절대 모르는 사람이다. -파이나 라녭스카야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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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 2025년 제70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김지연 외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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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너머로 보이는 눈 쌓인 산의 능선이 너무 아름다워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니 혜영의 머릿속은 점점 잿빛 슬픔으로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곧 눈이 그칠 것이고 눈이 녹을 것이고 또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산은 푸르러질 것인데 그때에도 산은 여전히 아름답겠지만, 언젠가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앙상한 나무들로 희끗해질 것이고 우뚝한 바위가 드러난 초겨울 산도 역시 아름다울 것이지만, 혜영은 산이 겪을 그 모든 변화들이 너무 생생해서 못견디게 슬퍼졌다.

- P127

어느 순간 슬픔이 차올랐다가 어느 순간 아련하게 잦아드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산의 아름다움이 시간을 통과하면서 자아내는 아드한 무채색 슬픔의 아우라가 혜영의 내부에서 느린 호흡을 하는 것 같았다. 이 지극한 슬픔에 비하면 지금 당장 눈 오는 순간의 아름다움이 주는 즉자성은 아무 의미도 감동도 없는 얇은 환각에 불과할 뿐인 것 같았다. 이것은 또 무슨 우울의 증상인가, 혜영은 가슴을 누르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생각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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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독본 - 미시마 유키오 소설론 미시마 유키오 문학독본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강방화.손정임 옮김 / 미행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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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이 존재하는 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백을 모면하고 있을까. - P19

곤충학자가 나비를 채집하고 서커스를 위해 포획업자가 맹수를 포획하듯이, 인간을 채집하려는 이상한 인간. 인간이면서 인간을 채집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부도덕하고 범죄적인 냄새가 나는데, 심지어 현실에서 잡는 것도 아니고 언어라는 채집망으로 상대의 본질을 훔쳐버리는 인간. 더군다나 그것을 종교인처럼 책임을 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하기 그지 없는 방법으로, 자신의 알 수 없는 목적을 위해 마음대로 이용하려는 인간. 아무런 권리도 없으면서 그런 짓을 하는 인간을 사회가 용인하고 있는 것은 실로 이상한 일이다. - P24

어쨌든 독자는 그 ‘알고 싶다‘는 욕구를 플롯을 통해 ‘필연‘으로 치환시키고 싶은 욕구를 품게 된다. 왜, 어떻게, 무엇을 알고 싶은지 독자는 잘 모른다. 독자는 소설이 그것을 알려주기를 바란다. - P41

‘이 소설이 끝나면‘일는 말은 지금 내게 최대의 금기어다. 이 소설이 끝난 뒤의 세계를 나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 세계를 상상하기 싫기도 하고 두렵다. ...유일하게 남겨진 자유는 그 작품의 ‘작가‘라 불리는 일일까. 마치 인연도 연고도 없는 사람한테 부탁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그의 자식의 대부가 되듯이. - P91

나는 일찍이 1948년에 <중증자의 흉기>라는 수필을 쓰며 "나와 같은 세대에서 대다수의강도가 나온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라고 썼는데, 지금도 이 마음은 잃지 않고 있다. 금각사라는 소설도 분명히 범죄자에 대한 공감에 바탕을 둔 작품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끌어올 것까지도 없이, 본래 예술과 범죄는 매우 가까운 관계다. ‘소설과 범죄는‘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 소설은 많은 범죄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 있는데, 적과 흑에서부터 이방인에 이르기까지, 범죄자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명작의 수가 오히려 적을 정도이다. - P94

소설의 복안이 떠올랐을 때, 단편에서는 마지막 장면, 장편에서는 가장 중요한 장면의 이미직 분명히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에게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단순한 장면으로서가 아니라, 분명하고 강력한 의미를 띠기 시작해야 한다. - P132

나는 출발 당시부터 자신의 문체를 확고하게 가지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활하면서 걸어온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체를 부모의 유산처럼 처음부터 가진 작가는 없을 것이다. 문학적 재능이 대개 유전되지 않는 것처럼, 문체도 유전되지 않으므로, 따라서 태어났을 때부터 가진 자신은 아니다. 문학가는 어차피 한 세대에 한정되며, 문체도 한 세대에 한정된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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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코의 모험
미시마 유키오 지음, 정수윤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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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솔로지옥. 매력남과 매력녀가 어떻게 유혹하고 유혹당하는가, 어떻게 마음은 뜨거워지고 차가워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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