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여자들
설재인 지음 / 카멜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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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수학교육과를 나와 교사로 근무하다 때려치고 복서로 전직한 작가라니. 이런 프로필이 요즘 같은 시대에 어울리나? 싶었다. 너무 드라마틱해서 오히려 예전 시대의 것 같은 그런 느낌. 여튼 그녀의 글은 이런 프로필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무척 무척 무척 좋았다. 고만고만한(?) 여성 작가들이 우루루 문단을 휩쓰는 가운데 앞으로의 십년 동안 단 한 명이 튀어나온다면 이 작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척 느낌이 좋았다. 


그 이유를 꼽자면, 최근 페미니즘 무브먼트와 함께 이게 르뽀인지 극화인지 으냥 유우머인지 경계가 모호한, 다시 말하자면 소설로서의 가치나 아름다움은 현저히 떨어지는 작품이 시대성 하나만으로 시장을 휩쓰는 경우가 많은데, 트렌디함은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이나 결국 본질없는 상품의 롱런은 쉽지 않다 생각한다. 이 작품은 소설의 형태로서 여성주의 서사를 은유적으로 탁월하게 빚어낸다. 소설에 정형화된 답이 있는건 아니겠지만 읽고 났을 때 분노를 한다거나 통쾌해 한다는 식의 확실한 한줄의 감정.감상으로 마무리되기 보다는 은은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구름같은 감상 속에 무언가 다시 생각해보고 되짚어보는 여유 한 귀퉁이가 남는게 좋은 작품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 소설관이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이 작품 속에는 사이다도 없고 남자들을 과도하게 우습거나 하찮게 그리지 않고 독자에게 피씨함에 기반한 정답을 던지지 않아서 좋다. 그 동안 소외되었던 여성에게 하이라이트를 비추되 그것이 인위적이거나 과도하지 않다.


또 다른 지점은, 작가의 이십대 뜨거운 감성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글로 옮겨져 있다는 점일까. 타자화된 젊음이 아니라 정말 이 시대의 젊음이 무엇인지를 고통과 고민속에 옮긴 문장들이라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고르게 좋았고, 일부 작품들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개인적 삶이 깊이 녹아들어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마 소설가로서의 기술을 쌓고 연마한다면 얼마든 극복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앤드 오브 더 로드웨이, 리나.찡쪽, 회송. 첫 세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특히 회송은 2000년대 중후반에 대학에 입학한 세대들이라면 아련한 슬픔으로 공감할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스물에서 서른이 되기까지 우리의 삶은 이랬었다는 보편적 공감을 구체적 스토리로 끌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면 작가의 이력이 뜻하는 바가 단순한 화려한 스펙은 아닌것 같다. 서울대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때려치고 복싱선수가 되어 밤에는 글을 쓰고 신춘문예나 문학상이 아닌 작은 출판사를 통해 책을 펴내고 알라딘에서 별로 인기 없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세일즈지수와 비슷한 700대로 판매되며 하지만 대부분의 평은 별점 다섯이라는. 화려해보이지만 그 속은 작가의 오리지널리티로 가득찬 스펙이 아닌가 하며. 요즘 시대가 돌아가는 대로 바이럴을 타면 판매나 작가의 지명도는 금새 껑충 뛰어오를거라 생각한다. 양화대교를 반복해 걸으면서도 뛰어내릴 용기는 내지 못했다던 그 시절의 작가분에게 나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고마움을 전한다. 살아남아줘서, 계속 움직여줘서, 그리고 끝내 이 글들을 생면부지의 내가 읽을 수 있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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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9-09-2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페미니즘 무브먼트와 함께 이게 르뽀인지 극화인지 으냥 유우머인지 경계가 모호한, 다시 말하자면 소설로서의 가치나 아름다움은 현저히 떨어지는 작품이 시대성 하나만으로 시장을 휩쓰는 경우가 많은데, -> 이래서 한국 문단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ㅠㅠ

LAYLA 2019-09-22 14:56   좋아요 0 | URL
지금은 과도기이고 또 출판시장 또한 시장의 하나일 뿐이니 독자가 원하는게 그것이라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페미니즘 상품 이전의 한국 문학시장이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요 ㅎㅎㅎ 페미니즘을 계기로 한국문단이 성장한다면 지금은 조금 부족한듯 보여도 결국은 모두에게 좋은일이겠지요.
 
내가 만든 여자들
설재인 지음 / 카멜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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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마음은 두 살배기와 큰 차이가 없어서, 자주 보이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종종 착각하고는 한다. 그래서 그렇게 수많은 캠퍼스 커플이 삼사월에 활짝 피고 오뉴월에 바득바득 싸우다 칠팔월쯤 땀 같은 눈물을 흘리며 멀어지는 것이다. - P1

밖에 나오면 다 돈이야. 가장 싼 커피를 파는 카페를 골라 아메리카노를 시키곤 테이블에 앉았다. 학원비, 교통비, 커피 값. 토익 단어장을 펼쳐들고 열심히 따라 쓰며 혀를 굴렸다. conglomerate, 거대 기업, 간절히 가고 싶은 곳. trustee, 임원, 나를 떨어뜨리는 사람들. demote, 강등시키다, 세상이 내 삶에 저지르는 짓. be in the red, 적자이다, 내 하루하루의 값. deadlock, 막다름, 자꾸만 성큼 다가오는 것... 투명한 사전적 의미에 덕지덕지 삶의 더께를 발라 칙칙하게 만들었다. 이 단어들이 본드나 실리콘처럼 내 하루의 헐거움을 단단히 붙여줄 수 있을까. 볼펜에 잉크가 없어, 자꾸만 글씨가 뚝,뚝, 끊겼다. 아...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진짜 지금 이 순간 이 카페가 아래로 푹 꺼졌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볼펜을 사야 한다. 또 돈이다. - 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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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사랑, 집착, 매혹 : 이디스 워튼의 기이한 단편들
이디스 워튼 / 바른번역(왓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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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장편만 읽어본 터라 이 단편집이 무척 신선했다. 작가의 이름을 모른 채 읽었더라면 장편과 단편이 같은 사람에 의해 쓰여졌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디스 워튼이 상류층의 삶에 답답함을 느낀, 어찌보면 전형적인 그 시대의 여성이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그런 면모를 담아낸 장편이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주었을 뿐이지 그녀 본인이 더 흥미를 가지고 좋아했던 류의 소설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귀신도 나오고 약간 으시시하기도 하고 미스테리스러운 이런 류의 소설은 본인이 좋아하지 않고서는 써낼 수 없는 것이니까. 고전번역의 어투 때문에 문장의 느낌이 나쓰메 소세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고 귀신이 등장하는 분위기도 19세기말 20세기초 일본소설과 비슷하다 싶었다. 감성의 결이랄까? 사실 이디스 워튼이 일본소설의 영향을 받았을리는 없는데 전혀 동떨어진 두 세계의 소설에서 기묘한 기시감을 느끼는 감상마저 독특하게(좋은 의미로) 다가와서 신선한 독서였다. 각 단편을 다른 번역가가 맡아서 작업하였는데 번역의 수준이 무척 좋았고 이북으로만 읽기엔 그 공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에 민음사에선가 워터프루프로 펴낸 이디스워튼 단편집보다 작품 자체의 퀄리티와 번역 모두 뛰어났고 이 책이야말로 여름휴가에 어울리는 서늘한 소설집이 아닌가 싶다. 이디스 워튼의 팬이라면 단연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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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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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는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신이 홀리스 로맥스에게 끌리는 이유를 깨달았다. 로맥스의 거만한 태도, 달변, 유쾌한 신랄함 속에서 스토너는 비록 조금 일그러지기는 했어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친구 데이비드 매스터스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데이브와 그랬던 것처럼 로맥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런 마음을 스스로 인정한 뒤에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의 어색함과 서투름은 아직 남아 있는 반면, 어쩌면 우정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을 솔직함과 열정은 사라져버린 탓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이 불가능한 것이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그를 슬프게 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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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테라오 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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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발뮤다 제품에 대한 극찬이 쏟아지며 국내시장에서도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나는 소비자로서 무척 황당한 일을 겪었었다. 발뮤다 토스터를 구매해서 사용해보니 스팀분사력이 신통치 않아 AS를 신청하였는데, 한국지사에서는 감히 발뮤다 제품에 이상이 있을리가 없다는 식의 태도로 응대를 한 것이다. "저희도 토스터 사무실에서 쓰는데 잘 쓰고 있는데요?" 담당직원의 형편없는 응대에 결국 한국지사를 담당하는 분에게까지 항의가 올라갔고, 그 분은 정말로 제품이 문제가 없다며 원한다면 내가 택배로 반품시킨 제품과 새제품을 우리집으로 가져와 동일 환경에서 테스트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시라고 했더니 정작 우리집에는 새제품만 가지고 오셨고. 더 이상 머리 아프기 싫어 새제품 성능을 확인하고 그 제품으로 교환을 받은 뒤 해당 컴플레인은 종료하였다. 그런데 그 모델, 몇 년뒤에 무상리콜 실시하더라. 실제로 제품에 문제가 있었고 피해고객이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거다. 죽은 빵도 살린다는 명목으로 비슷한 제품에 비해 몇 배의 가격을 받고 품질도 신통치 않으니 나는 그 이후로 늘 "죽은빵을 살리기 위해 수십만원짜리 토스터기를 사느니 그냥 살아있는 빵 바로 사서 먹으면 됩니다." 라고 말하고 다닌다. 나는 지금도 발뮤다는 과대평가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그 창업자의 글을 읽은 건 워낙 평이 좋았기 때문인데...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은 여기에도 적용이 될 것 같다. 여러 후기의 극찬을 믿고 토스터기 사서 그 고생을 하고는 또 같은 실수를 하다니. 글이 아주 엉망인것은 아닌데 글쎄, 아무것도 없이 무대뽀로 도전하여 발뮤다의 성공을 만들었다는 스토리라인이 가지는 설득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업은 이런 사람이 하는구나 싶은 감상은 있었지만, 내가 독자로서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스티브 잡스가 초기에 제품을 만들때 완전무결한 미의식에 집착하여 보이지 않는 내부나 회로디자인에도 관여하였단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종류의 내용(브랜드의 방향성과 철학 등)보다는 발뮤다 창립자의 개인적 삶의 여정과 어떻게 발뮤다를 성공시켰는지 일본만화같은 감성의 성장과정에 더 방점을 찍는다. 솔직히 발뮤다 창립초기에 돈이 없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 보다는 디자인이나 제품에 관한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던지라 실망이 컸던거 같다. 특히나, 실제로 디자인에 관심을 먼저 가진 건 아내였음에도, 아내는 내조와 서포트만 하다 육아하느라 이제는 회사에도 나오지 않는 현실에 대해 태평하게 아내의 바람을 자신이 이어받았다는 소리를 하는 부분은 최악이었다. 안 좋은 책까지는 아니지만 소문만큼 좋지는 않은, 딱 발뮤다 같은 책이었다. 

˝한 번 성공해보면, 다음에도 반드시 성공할 거야!˝ 이건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인데, 지금도 나 자신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이다. 살다보니 요행수로 들어맞은 일도 당시의 조건만 갖춰진다면, 다시 성공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 P1

류가사키에서는 내가 속할 곳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마음이 불편한 도 없다. 이 여행이야말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원래 그랬던 게 아닐까? 어떤 장소나 집단에 정착해서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고 생각하는게 틀렸던 건지도 모른다. 변화가 많고 불안정해도 여행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인 것이다. 오히려 소속이나 직업 같은 것들이야말로 불안정한 것이 아닌가? 몸뚱이 하나와 발을 딛고 서 있을 지면만 있다면 인간은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여행을 통해 그 사실을 온몸으로 배웠다. - P2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디자인한 형태를 아직 세상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적ㅇ도 오늘까지는. 내 아내가 돼버린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아내는 지금껏 나의 활동을 뒷받침해줬고, 몇 년 전까지 회사 일을 함께했다. 더구나 육아에 발을 내딛게 되면서부터는 디자인 작업을 할 시간이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아내가 가지고 있던 바람은 형태가 있는 물건을 이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을 내 가 이어받았는지도 모른다고 내 멋대로 생각할 때가 있다.- P3

꿈이 끝났다는 건 가능성을 잃었을 때가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가능성을 잃을 수 없으니까. 꿈은 그것의 주인이 열정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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