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대위법(Point Counter Point). 정말 독특한 제목이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쓴 소설의 제목인데 《크롬 옐로(Crome Yellow, 1921)》,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1932》와 함께 헉슬리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 연애 대위법》 (동서문화사, 2013)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소담출판사, 2015)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1998)

 

 

 

《연애 대위법》은 1928년에 발표한 작품이므로 헉슬리의 초기 문학으로 들어서는 두 번째 관문이다. 첫 번째 관문은 《크롬 옐로》이지만 번역본이 없다. 그동안 국내 독자들은 인문학(철학)과 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헉슬리의 방대한 문학 세계, 과학과 문학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인본주의적 인생관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멋진 신세계》를 읽고 있었다. 《멋진 신세계》를 ‘디스토피아 문학의 대표작’ 정도로 취급받기 일쑤인데 이 작품 하나 때문에 헉슬리를 ‘원 히트 라이터(one-hit writer, 한 편의 작품만 대성공을 거둔 작가)’로 오해하기 쉽다.

 

 

 

 

 

 

 

 

 

 

 

 

 

 

 

 

*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마로니에북스, 2017)

 

 

《크롬 옐로》는 《멋진 신세계》와 함께 피터 박스올(Peter Boxall)이 책임 편집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마로니에북스, 2017)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 《연애 대위법》은 영국에서 두 차례(1968, 1972년)나 TV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대위법(counterpoint)이란 두 개 이상의 선율이 하나의 곡으로 결합하는 작곡 기법이다. 소설 원제로 알려진 ‘point counter point(점 대 점)’은 ‘counterpoint’의 어원이다. 점은 악보에 있는 음표를 뜻한다. 원래대로라면 소설 제목을 부를 때 ‘대위법’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목에 ‘연애’라는 단어가 붙여졌고, ‘연애 대위법’이 지금도 가장 많이 쓰이는 제목이다.

 

 

 

 

 

 

 

 

 

 

 

 

 

 

 

 

 

 

* 김효원 《올더스 헉슬리 : 오만한 문명과 멋진 신세계》 (살림, 2006)

 

 

 

《연애 대위법》은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선 헉슬리의 세계관, 창작 의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배경지식 없이 《연애 대위법》을 읽으면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다. 《연애 대위법》을 읽기 어려운 소설로 규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소설 속 등장인물의 사변 위주로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은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 인문학, 과학, 예술에 해박한 헉슬리의 백과사전적 세계가 압축된 작품이라서 현학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직업이 작가, 과학자, 음악가, 화가 등이다. 이들은 만날 때마다 과학, 철학, 문학 등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거나 토론을 한다. 그런데 이게 헉슬리식 글쓰기의 특징이다…‥

 

* 헉슬리는 ‘점 대 점’ 형태의 대위법을 글쓰기에 대입했는데 《연애 대위법》은 ‘인물 대 인물’ 형태로 대비된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그러나 소설에 드러나는 ‘대위법적 전개’를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다. 헉슬리가 소설을 쓰면서 설계한 ‘대위법적 전개’를 이해하려면 역자의 충실한 해설을 참고해야 한다. (헉슬리의 생애 및 문학 세계를 심도 있게 다룬 유일한 책이 살림지식총서 No. 247 《올더스 헉슬리 : 오만한 문명과 멋진 신세계》다.)

 

 

사실 헉슬리는 독자에게 불친절한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밝혔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쓰는 주요동기는 하나의 어떤 관점을 표현코자 하는 욕망이었다. 아니, 차라리 분명하게 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나는 나의 독자를 위해 쓰지 않는다. 사실 나는 나의 독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나는 글 자체를 위해 글을 쓰기를 좋아한다. 나는 내가 어떤 재능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내 스스로에게 단지 문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행사하기를 원한다.[1]

 

 

《연애 대위법》은 과거(19세기 빅토리아 시대)현재(과학 기술의 진보를 추구하는 20세기 초)의 시대가 중첩된 1920년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래서 헉슬리는 이 소설을 통해 ‘구세대’로 상징하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보수적인 성향을 풍자하고, 지나치게 진일보하는 현대 문명을 비판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소설가 겸 화가인 마크 램피언(Mark Rampion)은 헉슬리와 친분을 유지한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그는 과학 기술의 진보를 경고하는 입장을 드러내는데 헉슬리의 분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헉슬리의 문명 비판론적 견지는 《멋진 신세계》로 이어진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까치, 2017)

 

 

 

지적으로 뛰어나지만 대인 관계 능력이 부족할 정도로 소극적인 소설가 필립 퀄스(Philip Quarles) 역시 헉슬리의 분신이다. 이 책의 22장은 특이하게도 부제목이 달려 있는데 ‘필립 퀄스의 노트’이다. 22장은 퀄스가 노트에 기록한 내용이 나오는데 《연애 대위법》의 집필 의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장이다.

 

 

소설의 음악화. 분위기의 전조(轉調). 주제가 진술되고, 다음에는 전개되고, 모양이 흩어지고, 눈에 띄지 않게 바뀌어서, 마침내는 여전히 같은 것인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여러 개 변주곡에서 이 과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상 감정의 모든 영역에 걸치면서도 모두가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왈츠곡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것을 소설에 도입하자. 소설가는 상황과 인물을 반복함으로써 전조를 시도한다.

 

소설가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라. 그러면 그가 펼치게 되는 미학론은 적어도 나에게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또한 실험을 하기도 한다. (작가는) 자기가 쓰고 있는 소설의 일부를 작품 속 작가를 통해 말한다면 주제의 변주가 될 수 있다. [2]

 

 

헉슬리는 소설에 나오는 작가 필립 퀄스를 통해 ‘소설가의 역할’을 제시한다. 이 ‘소설가의 역할’은 헉슬리가 쓰고 싶은 소설의 방향을 의미한다. 22장은 헉슬리와 필립 퀄스를 중심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연애 대위법》을 쓰는 헉슬리 → 《연애 대위법》에 등장하는 소설가 필립 퀄스는 ‘소설가의 역할(소설가를 소설 속에 등장시키기)’을 언급함으로써 소설을 쓰고 있는 헉슬리에게 지시한다. → 퀄스가 지시한 대로 헉슬리는 필립 퀄스의 모습으로 등장 → 헉슬리는 필립 퀄스에게 ‘소설가를 등장시키는 소설’ 쓰기를 지시한다. 퀄스는 헉슬리가 지시한 내용을 '노트'에 기록한다. → '퀄스의 노트'에 있는 모든 내용은 헉슬리가 쓴 것이다.

 

 

 

헉슬리와 필립 퀄스는 서로가 서로를 지시하면서 결국 자기 자신(헉슬리)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관계 속에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자기 지시’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헉슬리 대 퀄스’의 순환 고리는 이 소설의 제목이자 주제인 대위법의 구조와 유사하다. 바흐(Bach)는 무한히 상승하는 순환 고리 형식으로 전개되는 『음악의 헌정』을 작곡했다. 『음악의 헌정』은 캐논(canon)이라는 모방 대위법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이 곡은 연주 중에 조바꿈이 일어나며 종반부에는 원래 조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바흐가 의도한 것처럼 헉슬리도 ‘소설의 음악화’를 시도한다. 그 속에 독자를 감탄하게 만드는 ‘이상한 고리’가 숨어 있다.

 

 

 

 

 

[1] 《올더스 헉슬리 : 오만한 문명과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의 생애’ 편

[2] 《멋진 신세계 / 연애 대위법》 ‘연애 대위법’ 편 605~6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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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1-05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이런 류의 책 탐험 에세이 쓰시기 바랍니다.

cyrus 2018-01-05 17:50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헌책방에 산 책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헌책방에 산 절판본의 리뷰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01-05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슬리, 극단을 오가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싸이러스님도 무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8-01-05 17:5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래서 헉슬리의 한 작품만 읽고 그를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기 쉬워요. 헉슬리 이 사람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 자체가 워낙 복잡해서 뭐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작가입니다.

sprenown 2018-01-05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리뷰! 음악과 미술,그리고 언어.
무한반복...뫼비우스의 띠.

cyrus 2018-01-06 15:24   좋아요 0 | URL
리뷰라기보다는 단상에 가까운 글입니다.. ^^;;

2018-01-05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06 15:26   좋아요 0 | URL
제가 <연애 대위법> 줄거리 소개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 소설이 어떤지 감을 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지만, 만약 미래에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암호 전쟁’이 될 것이다. 암호는 핵무기 다음으로 전쟁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무기다.

 

 

 

 

 

 

 

 

 

 

 

 

 

 

 

 

 

 

 

 

 

 

 

 

 

 

 

 

 

 

 

* 사이먼 싱 《비밀의 언어 : 암호의 역사와 과학》 (인사이트, 2015)

* 박영수 《암호 이야기》 (북로드, 2006)

* [절판] 데이비드 칸 《코드브레이커 : 암호 해독의 역사》 (이지북, 2005)

* [절판] 루돌프 키펜한 《암호의 세계》 (이지북, 2001)

 

 

 

암호 해독은 군사 비밀 정보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적군이 군사 기밀 암호를 해독하면 군 전력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은 나치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Enigma)를 완전 해독, 독일 잠수함을 곳곳에서 침몰시켰다. 사이먼 싱(Simon Singh)은 암호의 역사를 “암호를 만드는 사람들과 이를 해독하려는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쳐 진행된 전쟁의 역사”라고 말했다. 암호 속에 의미를 숨긴 자와 그 의미를 밝혀내는 치열한 수 싸움으로 점철된 암호의 세계는 인류 문명사와 깊숙이 맞닿아 있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9)

* 댄 브라운 《다 빈치 코드》 (문학수첩, 2013)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장미의 이름》댄 브라운(Dan Brown)《다 빈치 코드》의 인기 비결은 책, 그림, 유적 속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가정 아래 과거의 수수께끼를 암호풀이로 해독해 가면서 독자의 두뇌를 자극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두 소설은 종교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바탕 위에 도상학과 기호학 등을 끌어들여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이렇듯 암호는 비밀을 숨기는 것을 좋아하거나 비밀을 밝히고 싶은 인간을 유혹하는 은밀한 언어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까치, 2017)

*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2》 (휴머니스트, 2014)

 

 

 

암호는 음표로 가득한 텍스트에도 적용될 수 있다. 바흐(Bach)는 자신의 은밀한 메시지를 악보 행간에 숨겨놓았다. 『푸가의 기법』은 바흐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만들어진 미완성곡이지만 풍부한 악상의 변화를 간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총 열여덟 개의 푸가(fugue)로 이루어진 모음곡이다. 푸가는 하나의 선율이 또 다른 선율을 모방하는 형태로 연주하는 작곡기법이다. 바흐는 죽기 전에 자신의 능력을 악보에 쏟아 부어 푸가 기법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만든 음악의 종결부에 최후의 메시지라 할 수 있는 ‘묘비명’을 넣었다. 바흐가 악보에 새긴 묘비명은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괴델, 에셔, 바흐》(까치, 2017)의 주요 내용이므로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손 안 대고 코 풀 듯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지 않고 당장 바흐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미학 오디세이 2》(휴머니스트, 2014)‘4성 대위법’ 편을 참고하시길.

 

 

 

 

 

 

 

 

 

 

 

 

 

 

 

 

* 칼 세이건, 앤 드루얀, 티모시 페레스 외 《지구의 속삭임》 (사이언스북스, 2016)

 

 

 

호프스태터는 우주 외계 문명이 알아볼 수 있는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선 메시지를 저장한 음반을 우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이 주장에 대해서 호프스태터의 책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박여성, 안병서 둘 중 한 분)는 ‘이 부분의 논지 전개는 좀 이상해 보인다’라는 주석을 달았다.[1]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믿지 않는 회의주의자라면 호프스태터의 주장이 황당하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정서를 가진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세운다면 외계 생명체는 음반을 해독할 것이다. 호프스태터의 주장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억지스러운 논지 전개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괴델, 에셔, 바흐》가 출간되기 2년 전인 1977년에 발사된 미국의 우주탐사선 보이저 2호에 지구의 다양한 메시지와 소리, 그리고 음악이 담긴 레코드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보이저 골든 레코드’다. (그런데 《괴델, 에셔, 바흐》에 실제로 우주에 쏘아올린 인류의 메시지를 담은 음반이라 할 수 있는 '보이저 레코드'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다. 미국에 태어난 호프스태터가 보이저 호의 역사적인 발사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칼 세이건(Carl Sagan)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이 레코드는 혹시 보이저 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우주 생명체를 위한 인류 최후의 메시지다. 세이건은 고도의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는 외계 생명체가 인류와 함께 우주에 살고 있어서 둘 사이의 지식에는 공통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레코드의 수명은 10억 년이다. 그 사이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인류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된다. 지구가 파괴되어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후손은 외계 생명체가 보내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호라티우스는 “언어는 영원에 도전한다.”라고 썼다. 우리가 그의 경구를 기억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옳았다는 증거이다. 보이저호가 방랑을 멈추는 시점에 우리 아름다운 행성에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진작 사라졌을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이 레코드판이 칭송했던 목소리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의 부주의 때문에, 혹은 그저 세월 때문에 영영 목소리를 잃었을지, 역시 알 길이 없다. 보이저 호는 우리의 메아리와 이미지를 싣고서 우주를 여행하고 있으며, 머나먼 그 여정만큼 오랫동안 우리를 계속 살아 있게 할 것이다. (앤 드루얀) [2]

 

 

암호도 언어다. 암호는 해독해야 할 가짜 문자와 그 속에 숨겨진 진짜 문자로 이루어진 '비밀의 언어'다. 따라서 앤 드루얀(Ann Druyan)이 인용한 호라티우스(Horatius)의 격언처럼 해독하지 못한 암호는 영원에 도전한다. 언어를 만들고 쓸 줄 아는 인간은 위대하면서도 약한 존재이다. 우주의 역사와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정말 작다. 대자연이 일으키는 재앙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 바로 인류가 일으키는 전쟁이다. 거대한 지구에는 여전히 인류가 밝히지 못한 ‘자연의 암호’가 널려 있다. 우리 몸속에 있는 ‘유전 암호’ 또한 인류가 밝혀내야 할 자연의 암호 중 하나이다. 이 ‘자연의 암호’를 해독하는 사람이 과학자다. 그러나 전쟁에 동원된 과학자들은 적군을 쓰러뜨리기 위해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일어나는 전쟁은 자연을 파괴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도 파괴된다. 만약 미래의 지구가 죽음의 땅이 된다면 보이저호의 레코드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우주에 외로이 떠다니는 인류의 묘비명으로 남을 것이다.

 

 

 

 

 

[1]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까치, 2017) 216쪽

[2] 《지구의 속삭임》216~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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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8-01-05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새해 인사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심코 연간 통계를 보니, 지난 해 제 서재에 댓글을 가장 많이 남겨주신 분이네요. 감사드립니다.^^

cyrus 2018-01-05 14:1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마립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마네(Manet)모네(Monet). 둘 다 익숙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이름과 직업이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다. 사각형 얼굴을 가진 사람들에게 붙여진 별명 중 하나가 ‘아네모네(아! 얼굴이 네모네.)’다. 경남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사각형 얼굴 사람을 만나면 ‘마! 네모네’[1]라고 말할 것이다. 마네와 모네는 동시대에 활동한 인상주의 미술의 거장이다. 실제로 어떤 평론가가 이 두 사람의 성(誠)이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마네와 모네의 관계를 소재로 그린 풍자만화도 있었다. 만화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2]

 

 

“마네가 있음으로 해서 모네가 가능했다. 브라보, 모네! 고맙다, 마네!”

 

 

얼핏 보면 마네와 모네에게 찬사를 보내는 말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두 사람 모두 돌려 까고 조롱하는 말이다. 전통으로부터 조금씩 탈피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동시대 사람들은 인상주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네와 모네는 동시대에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그림은 철저한 실험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네와 모네를 포함한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들이 왜 유명한지 알고 싶으면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미술문화, 2017)을 펼치면 된다. 이 책을 읽을 때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마네와 모네를 내세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탄생과 종말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역사적인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미술전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마네는 근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화가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동일시되는 것을 거부했다. 마네와 친분이 있는 동료 화가들은 ‘프랑스의 국선 전시회’인 살롱 전에 불만을 품었다. 그 당시 살롱 전을 거치지 않은 화가는 부와 명예를 누리기 어려웠다. 살롱 전은 전통 회화를 고수하는 보수적인 심사위원의 독선과 아집으로 폐단이 너무 컸다. 살롱 전에 분노한 마네의 동료 화가들은 ‘새로운 회화’를 보여주고 싶었고, 모네를 주축으로 한 서른 명의 화가들로 구성된 ‘무명공동협회’가 탄생했다. 그들은 살롱 전이 외면한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1회 인상주의 미술전이다. 마네는 처음부터 인상주의 미술전에 참여하지 않았고 끝까지 살롱 전을 고집했다.

 

마네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지만, 인상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벨라스케스(Velázquez), 고야(Goya) 등 고전 미술과 현대적인 주제(당대의 생활상,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 등)를 이용한 근대미술을 잇는 가교 구실에 충실했다. 이 책에 전통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한 마네의 습작들을 볼 수 있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습작이라고 해서 간과해선 안 된다. 마네의 습작은 그가 얼마나 고전미술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마네는 고전 미술을 효과적으로 응용할 줄 알았고, 충실한 연구 끝에 탄생한 그림이 바로 『풀밭에서의 오찬』과 『올랭피아』다. 두 그림이 공개되자 마네는 파리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고, 대중과 비평가들은 마네를 조롱했다. 마네의 그림에는 ‘하얀 피부의 비너스’는 없었다. 마네는 비너스 대신에 벌거벗은 ‘파리의 여인’을 그렸다. 마네의 그림은 현세적이다. 그는 현실을 솔직하게, 그리고 전통을 넘어서기 위해 대담하게 그렸다. 마네는 자신을 지지한 보들레르(Baudelaire)의 ‘현대 화가론’에 공감했고 자신이 사는 시대를 솔직하게 그리는 ‘현대화가’가 되려고 했다. 그의 예술론은 모네와 세잔(Cezanne) 등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한 화가들은 마네를 높이 평가했다.

 

마네가 파리의 도회적인 분위기에 관심 있었다면 모네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과 색채에 관심이 많았다. 모네는 자신이 자연을 관찰한 것을 충실하게 그림으로 재현했다. 모네는 인상주의 화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그들의 정신적 · 예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모네는 동료 화가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살롱 전에 그림을 출품했다. 이러한 결정을 이유로 모네를 ‘전통으로 회귀한 변절자’로 볼 수 없다. 모네는 마네의 재정적 도움을 받을 정도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고 ‘개인전’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인상주의 모임이 와해하였어도 모네는 르누아르(Renoir), 드가(De Gas) 등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화가들과 교류를 멈추지 않았다. 말년의 모네는 자신만의 붓질로 변화무쌍한 자연을 짧은 시간 안에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말년의 모네가 그린 그림들은 원근법과 형태마저 사라진 추상적 화풍에 가깝다. 모네의 강렬한 색채와 붓질은 근대미술에서 현대미술로 전환되는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단언 마네와 모네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의 삶과 미술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을 만나게 된다. 비록 이 책에서는 ‘조연’으로 언급되지만, 그들도 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이다.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반드시 마네와 모네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마네와 모네가 근대미술에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 따라서 《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은 마네와 모네가 어떻게 인상주의 미술의 형성 과정에 근대적 계기를 제공했는가를 알려주는 충실한 책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마네와 모네를 혼동하지 말자. 그리고 오늘날의 현대미술을 있게 해준 두 사람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자. 브라보, 모네! 고맙다, 마네!

 

 

 

 

 

 

Trivia

 

앙토냉 프루스트(Antonin Proust)는 마네의 절친한 친구이며 강베타(Gambetta) 내각 정부의 문화 미술부 장관에 역임했다. 269쪽에 교육부 장관을 지낸 프루스트는 구절이 나오는데 저자가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1] ‘마!’는 ‘인마’를 뜻하는 경남 사투리. 상대방의 신체 약점을 가지고 놀리거나 비하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이 글에 나온 ‘아! 네모네’, ‘마! 네모네’는 언어유희를 이용한 개그일 뿐이며 애초에 사각형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언급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말자!

 

[2]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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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8-01-04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일러스님-인사가 늦었네요.^^
사일러스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항상 제게 도끼같은 역할을 해 주시는 귀한 분입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cyrus 2018-01-04 16:57   좋아요 1 | URL
도끼라뇨.. 과찬입니다... ㅎㅎㅎ 저는 도끼보다는 채찍이 되고 싶습니다... ^^;;
제가 새해 인사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꿀꿀이님에게 새해 인사를 하지 못했네요. 꿀꿀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2018-01-04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04 16:58   좋아요 0 | URL
사진기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인상주의 그림들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이하라 2018-01-0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올해도 깊이있는 리뷰들 기대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8-01-04 17:04   좋아요 0 | URL
제 글에 기대감을 갖지 마세요. 재미없는 주제의 글이라면 안 보면 되고, 대충 봐도 됩니다.. ^^

카스피 2018-01-04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일러스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며 무술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cyrus 2018-01-05 14:1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카스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여성예술가 클라시커 50 12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이라 디아나 마초니 지음, 정미희 옮김 / 해냄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클라시커(Klassiker)예술가’, ‘대가’, ‘고전등을 의미하는 독일어이다. 해외 축구 중계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데어 클라시커(Der Klassiker)’를 모를 리가 없다. 독일 분데스리가 리그를 대표하는 바이에른 뮌헨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간의 축구 경기를 뜻한다. 그런데 현지 독일인은 데어 클라시커의 의미를 모를뿐더러 잘 쓰지도 않는다. 사실, 두 팀이 치열하게 맞붙은 역사가 길지 않다. 독일 축구팬들은 두 팀의 맞대결에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국내 축구팬과 몇몇 언론들만 독일인이 모르는 단어를 쓰고 있다.

 

<클라시커 50>은 주제에 적합한 인물 50명 또는 지식 50가지를 선정, 연대기 방식으로 소개하는 시리즈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간결한 요약정리,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참고 자료 및 관련 정보 등이다. ‘입문서로 손색이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볼 때마다 2% 부족한 감을 지울 수가 없다. 익숙하지 않은 외래어 표기, 출처가 불명확한 정보, · 탈자는 이 시리즈의 감점 요인이다. 그리고 시리즈가 나온 지 십 년 넘었다. 책에 소개된 인물 중에는 고인(故人)이 있다. 출판사는 수정할 정보가 있는지 검토하고 난 뒤에 책을 인쇄해야 한다.

 

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16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까지 위대한 여성예술가 50인의 삶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예술가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모두를 포함한 것이다. 남성 중심의 예술사에 가려지거나 부당하게 잊혀진 50인의 삶과 예술 정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예술과 페미니즘의 관계를 소극적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이 책이 페미니즘적인 규범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여성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중심으로 설명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성예술가의 삶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은 페미니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작부터 이 책은 페미니즘과 무관하다는 식으로 밑장을 빼는 건 아니다. 저자들은 게릴라걸스(Guerilla Girls)의 도발적인 질문을 인용했는데, 앞에서 보여준 밑장 빼기식 입장과 상반된 내용이다.

 

 

 

 

국제적인 전시회의 일정을 보면 새롭게 발견했거나 다시 평가된 여성예술가들이 예술사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 여성예술가들은 선배 여성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그들의 역사를 유추해 보기도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려면 여자들은 옷을 벗어야만 하나요?’라는 도발적인 질문에 분노하는 여성 화가들의 폭발적인 힘은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7)

 

 

 

게릴라걸스는 1985년 미국에 결성된 페미니스트 예술가 집단이다. 이들은 고릴라 가면을 뒤집어쓰고 하는 퍼포먼스, 강의, 출판,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게릴라걸스는 앵그르(Ingres)의 누드화를 패러디한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려면 여자들은 옷을 벗어야만 하나요?’라는 문구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게릴라걸스의 질문은 서양미술사 책에서 여성 예술가들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에 향한 분노의 목소리다.

 

 

 

 

 

 

이 책에 선정된 50인의 여성예술가 대다수가 유럽, 미국 중심 백인이라는 사실이 아쉽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만이 유일한 유색 인종 여성 예술가다. 동양, 아프리카 대륙의 여성예술가가 단 한 명도 없다. 이 책 소개와 무관한 내용을 덧붙인다.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가 상이 터너 상(Turner Prize)’이다. 올해 터너 상 수상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신의 여성 미술가 루바이나 히미드(Lubaina Himid)로 결정되었다. 그녀는 1980년대 영국 흑인 미술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여전히 잔존하는 식민주의 역사와 인종 차별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녀가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영국 출신의 젊은 백인 미술가에게 주어진 터너 상의 전통이 깨져버렸다. 미술계의 최신 동향이 반영된 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개정판이 나온다면 히미드는 ‘50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50에 포함된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생존 인물로 나와 있는데, 그녀는 2010년에 세상을 떠났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 십 년 일찍 태어났더라면 ‘50에 선정될 수 있었을까? 이 책의 50번째 여성 예술가로 소개된 독일 출신의 레베카 호른(Rebecca Horn)1944년생이다. 셔먼은 1954년에 태어났다. 이 책이 처음 나온 2002년에 셔먼은 왕성히 활동을 하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 그녀가 이 책에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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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12-30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 올해는 사이러스 님 때문에 알라딘에서 풍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도 이곳에 올인하여 주십시오. 데이트 따윈 하지 마시고... 데이트 할 시간에 글 써서 올리셔야죠.. ㅋㅋㅋㅋ 농담이고요...

cyrus 2017-12-30 11:29   좋아요 0 | URL
헉.. 새해 인사 대신 저주인가요? ㅎㅎㅎ

저는 누구나 다 아는 정보를 내 입맛대로 끄적거리는거리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곰발님의 글과 댓글을 볼 때마다 피식하면서 웃게 됩니다. 곰발님의 말장난을 좋아하거든요. 내년에도 날카롭고 유쾌한 글 써주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표맥(漂麥) 2017-12-3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과 곰발님 글 읽는 재미로 알라딘에 붙어(?) 있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cyrus 2017-12-30 11:34   좋아요 0 | URL
같이 붙어서 이 추운 겨울을 지내보아요... ㅎㅎㅎ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서니데이 2017-12-30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이제 내일을 지나고 나면 새해가 되니까요.
올해도 좋은 이야기와 인사 나누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그리고 희망 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엔 더 좋은 일들,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7-12-31 15:46   좋아요 1 | URL
2017년 마지막 하루가 몇 시간 밖에 안 남았군요. 내년에도 지금처럼 변함없이 저나 서니데이님이나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는 시험, 꼭 좋은 결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페크pek0501 2018-01-0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인사를 못 나눈 것 같군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 주시면 저는 열심히 읽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리뷰는 이미 읽었고 이제야 댓글을 씁니다.)

cyrus 2018-01-02 23:30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님. 요즘 북플에도 관태기를 느껴서 그런지 새해 인사를 잘 안하게 되네요. 새해 인사 없이도 제가 알고 지내는 모든 분들 복 많이 받을 거라 생각합니다. ㅎㅎㅎ

제 글을 열심히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글의 주제가 흥미롭지 않으면 패싱하면 됩니다. ‘코리아 패싱‘은 없어도 ‘사이러스 패싱‘은 가능합니다. ^^

AgalmA 2018-01-04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신디 셔먼이 없다니! 유색인종에 대한 지점도 잘 지적하셨네요. 온갖 구별짓기로 소외를 만드는 째째한 세상!
cyrus님 작년에도 덕분에 재미나고 유용한 정보들 많이 알 수 있었어요. 감사드립니다^^
2018년은 어떤 흥미로운 걸 찾아다니실지 기대가 되네요.
건강히^^/

cyrus 2018-01-04 10:32   좋아요 1 | URL
저는 ‘알쓸신잡’ 콘셉트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딱히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정보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쓸모없는 정보만 찾아 다녀야겠어요.. ㅎㅎㅎ

AgalmA 2018-01-04 10:39   좋아요 1 | URL
제가 그런 글, 정보들을 좋아하니까요ㅋㅋ 계속 진행하셔도 환영입니다~
 

 

 

양주동의 수필집 문주반생기(최측의농간, 2017) 193쪽에 보면 눈에 띄는 표시가 있다. 젊은 독자들의 눈에는 잘못 인쇄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중장년층 독자는 이 표시가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 그렇다면 이걸 아는 나도 중장년층 독자란 말인가?)

 

 

 

 

 

 

 

 

 

 

 

 

 

 

 

 

 

 

 

* 양주동 문주반생기(최측의농간, 2017)

* 최남선 백팔번뇌(태학사, 2006)

   

 

주지하듯이 백팔번뇌는 그때 그가 조선이란 에게 바친 뜨거운, 뿌리 깊은 사랑괴로움의 노래로서, 그의 대표적 시조집으로, 조그만 책자이나 시조사상의 한 중흥 기념탑이 될 만한 역작이다. 거기는 춘원, , 위당 등 당시 문단 거벽들의 서(), ()이 즐비 되어 있고, 끝에 석전 박한영 사()의 한시 명작 제사(題詞)가 실려 있다.

 

 

 

백팔번뇌육당 최남선1926년에 발표한 시조집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집으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육당은 국내 시조 역사의 시작점에 놓인 인물로 '과대 평가'를 받았다. 정확하게 바로 잡으면 백팔번뇌우리나라 최초 근대 시조집이라 해야 한다.

 

 

 

 

 

 

 

 

 

 

 

 

 

 

 

 

 

 

* 최남선, 황충기 해제 육당본 청구영언(푸른사상, 2013)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집은 1728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이다. 청구영언은 총 7종의 이본(異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한 권이 육당의 손을 거친 육당본이다. 백팔번뇌서문에 육당은 1904년에 자신이 시조를 쓴 사실을 언급했다. 이 문장을 근거로 연구가들은 육당이 최초로 현대 시조를 썼다고 주장하지만, 이 작품의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1906721일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대구여사(大丘女史, 필명만 알려졌을 뿐 정확히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혈죽가(血竹歌)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시조로 보고 있으며 이 시조가 발표된 721일을 기념해 시조의 날로 제정되었다.[1]

 

각설하고, 책 속 본문에 있는 표시를 주목해보자. 본문에 가 있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 벽원? 벽 동그라미? 내가 추측하건데, ‘벽초 홍명희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육당, 춘원 이광수와 더불어 조선 3대 천재(동경삼재, 東京三才)’로 이름을 날렸다.

 

벽초가 쓴 임꺽정은 일제강점기 최대의 대하소설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1928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 탄압으로 조선일보가 강제로 폐간된 1939년에 연재가 중단되었다. 임꺽정1940년 월간지 <조광>에 옮겨 다시 연재되었으나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벽초는 월북하여 김일성의 공산당 정권 수립을 돕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북한에서의 행적 때문에 벽초는 남한에서 불순한 월북 작가로 낙인찍혔고, 임꺽정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분단 이후로 반공 정책이 더욱 강하되어 월북 작가 및 예술가들은 완전히 잊혀졌다. 심지어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그래서 월북 작가의 이름이 인쇄물에 찍히면 이름 가운데 글자가 있는 자리에 ‘O’ 또는 ‘X’ 표시를 했다. 문주반생기가 발표된 해는 1960년이다. 냉전 반공체제를 유지했던 이승만 정권 시절이다. 그런데 6·25전쟁 당시 월북한 춘원의 이름은 멀쩡하게 나와 있다. 사실 춘원은 자발적으로 북한으로 간 것이 아니라 북한 인민군에게 끌려갔다. 이 시기의 춘원은 병으로 심신이 쇠약한 상태였고 전란이 한창이던 1950년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권영민 엮음 정지용 전집 1~3(민음사, 2016)

 

 

 

그런데 내가 봐도 월북 인사 이름 언급의 기준이 모호하다. 아니, 너무 불공평하고 억지스럽다. 반공 정부는 월북 인사의 행방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북한으로 건너간 인사들을 친북 인사로 규정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시인 정지용이다. 1988년에 월북 작가 및 예술가 해금 조치가 내리기 전까지 정지용은 잊힌 이름이었고, 어정쩡하게 X으로 알려졌다. 정지용의 시가 수능 시험 지문으로 출제되는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 김진송 이쾌대(열화당, 1996)

* 국립현대미술관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돌베개, 2015)

 

 

 

최근 재조명받고 있는 화가 이쾌대도 분단의 비극에 희생당한 불운한 인물이다. 이쾌대는 뛰어난 서양화가로 인정받았으나 여러 복잡한 사정 때문에 월북을 선택했다. 남한에서 그의 이름은 였다. 1991년에 그의 이름을 내건 전시회가 열렸다. 이쾌대는 경북 칠곡 출신이며 1928년 서울의 휘문고보(휘문고등학교 전신)에 진학할 때까지 대구에 거주했다. 이쾌대의 형 이여성은 대구에서 항일운동을 한 공산주의자이며 동생처럼 그림을 출품한 적이 있는 화가이다. 그도 월북하여 북한에서 학자 생활을 했으나 숙청당했다.

 

 

 

 

 

 

 

 

 

 

 

 

 

 

 

 

 

* 김상숙 10월 항쟁(돌베개, 2016)

 

 

 

현재의 경북, 대구는 반공 우파의 성지로 알려졌지만, 일제 강점기 대구는 좌파의 성지였다. 1946‘10월 항쟁은 미 군정의 식량 정책, 친일 인사 등용 등에 항의한 좌파 독립운동가와 민중들이 일으킨 대규모 무장 시위였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항쟁에 가담한 독립운동가와 민간인들이 사망했으며 남로당(남조선노동당) 간부 박상희도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박상희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형이다. ‘빨갱이를 무서워하는 어르신들은 대구 경북이 자랑하는 뛰어난 월북 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려나? 이쾌대가 누군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북한에 건너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욕할 수 없다. 씁쓸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이념에 갇힌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월북 인사들의 이름조차 입에 담기 싫어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은 죽은 형의 복수를 위해 남로당에 가입했고, 국군 내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한 군인 박정희를 아시려나? ‘빨갱이를 엄청 싫어하는 그분들의 단순한 기준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는 박정희 대통령도 빨갱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를 철저히 숨기고, 모른 쇠하는 민족 역시 미래는 없다. 아니, 답이 없다.

 

 

 

 

 

[1] [721일은 시조의 날현대시조 100주년 맞아 선포] 국민일보, 200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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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12-28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중장년층 독자’가 되고 마는군요...^^

cyrus 2017-12-28 17:39   좋아요 1 | URL
저는 아재 독자입니다... 요즘 젊은 독자들이 선호하는 젊은 작가들이 누구 있는지 잘 몰라요.. ㅎㅎㅎ

[그장소] 2017-12-28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이 자꾸 보인다 싶었는데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군요! 범우사 ㅡ 책으로 알고 있었는데!!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 가 힙했다면 과거엔 양주동 님의 문주반생기도 만만찮죠!!

cyrus 2017-12-28 17:41   좋아요 1 | URL
초판본의 옛 글자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살려서 나왔습니다. 이해 안 되는 단어를 설명하는 각주가 있지만, 조금 읽기 힘들었어요. <안녕 주정뱅이>는 제목만 들어봤습니다. 제가 젊은 저자나 작가의 책을 잘 안 읽는 편이에요. ^^;;

[그장소] 2017-12-28 17:46   좋아요 1 | URL
권여선 작가는 젊은 ( 등단 10년정도를 기준이라고 하면) 작가보단 중견 작가에 가까운 듯 싶지만 , 취향이겠죠 ..아마도~
멋진 작가입니다 . 이 권여선 작품들도 ..
개정판이 표지도 그렇고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요 . 아마 그걸 노린 마케팅 같기도 하네요. ^^

레삭매냐 2017-12-28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방 공간에서 대구가 한 때 동양의 모스크바
로 불린 적도 있다고 하네요.

지금 한창 읽고 있는 <조선공산당 평전>을 보
니 안동 풍산 소비에트에 대해서도 나오고요.

반공 보수우파의 성지가 된 모습과는 격세지감
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cyrus 2017-12-28 17:45   좋아요 1 | URL
대구에서 가장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는 합동북이라는 헌책방에 가면 8, 90년대에 나온 마르크스, 레닌 관련 서적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사회주의 관련 출판물이 한창 나왔던 시절에 대구에서도 사회주의에 관심 많은 독자들이 많았을 거예요.

지금행복하자 2017-12-28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저는 청년? 아니죠~ 지식이 짧은거라죠~^^

cyrus 2017-12-28 17:53   좋아요 1 | URL
지식의 범위보다는 세대 차이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2017-12-28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8 17:49   좋아요 1 | URL
대구는 서울과 비교하면 문화적, 경제적 면으로 뒤쳐져 있어요. 이런 열악한 곳에 대구 출신 문인들의 모임, 일반인들의 독서 모임이 이루어지는 서점 등이 생겨서 위안이 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

이하라 2017-12-2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장년층 독자 안하겠습니다--; 초보 독자로 남을래요^^;;

cyrus 2017-12-29 08:04   좋아요 0 | URL
나이가 들어서도 스펀지로 흡수하는 것처럼 신선한 지식을 흡수할 줄 아는 젊은 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