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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ㅣ 아티스트 커플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7년 10월
평점 :
마네(Manet)와 모네(Monet). 둘 다 익숙한 이름일 수도 있지만 이름과 직업이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다. 사각형 얼굴을 가진 사람들에게 붙여진 별명 중 하나가 ‘아네모네(아! 얼굴이 네모네.)’다. 경남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사각형 얼굴 사람을 만나면 ‘마! 네모네’[1]라고 말할 것이다. 마네와 모네는 동시대에 활동한 인상주의 미술의 거장이다. 실제로 어떤 평론가가 이 두 사람의 성(誠)이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마네와 모네의 관계를 소재로 그린 풍자만화도 있었다. 만화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2]
“마네가 있음으로 해서 모네가 가능했다. 브라보, 모네! 고맙다, 마네!”
얼핏 보면 마네와 모네에게 찬사를 보내는 말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두 사람 모두 돌려 까고 조롱하는 말이다. 전통으로부터 조금씩 탈피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동시대 사람들은 인상주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네와 모네는 동시대에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그림은 철저한 실험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네와 모네를 포함한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들이 왜 유명한지 알고 싶으면 ‘아티스트 커플’ 시리즈의 《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미술문화, 2017)을 펼치면 된다. 이 책을 읽을 때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마네와 모네를 내세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마네와 모네는 인상주의의 탄생과 종말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역사적인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미술전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마네는 근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화가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동일시되는 것을 거부했다. 마네와 친분이 있는 동료 화가들은 ‘프랑스의 국선 전시회’인 살롱 전에 불만을 품었다. 그 당시 살롱 전을 거치지 않은 화가는 부와 명예를 누리기 어려웠다. 살롱 전은 전통 회화를 고수하는 보수적인 심사위원의 독선과 아집으로 폐단이 너무 컸다. 살롱 전에 분노한 마네의 동료 화가들은 ‘새로운 회화’를 보여주고 싶었고, 모네를 주축으로 한 서른 명의 화가들로 구성된 ‘무명공동협회’가 탄생했다. 그들은 살롱 전이 외면한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1회 인상주의 미술전이다. 마네는 처음부터 인상주의 미술전에 참여하지 않았고 끝까지 살롱 전을 고집했다.
마네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지만, 인상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벨라스케스(Velázquez), 고야(Goya) 등 고전 미술과 현대적인 주제(당대의 생활상,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 등)를 이용한 근대미술을 잇는 가교 구실에 충실했다. 이 책에 전통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한 마네의 습작들을 볼 수 있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습작이라고 해서 간과해선 안 된다. 마네의 습작은 그가 얼마나 고전미술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마네는 고전 미술을 효과적으로 응용할 줄 알았고, 충실한 연구 끝에 탄생한 그림이 바로 『풀밭에서의 오찬』과 『올랭피아』다. 두 그림이 공개되자 마네는 파리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고, 대중과 비평가들은 마네를 조롱했다. 마네의 그림에는 ‘하얀 피부의 비너스’는 없었다. 마네는 비너스 대신에 벌거벗은 ‘파리의 여인’을 그렸다. 마네의 그림은 현세적이다. 그는 현실을 솔직하게, 그리고 전통을 넘어서기 위해 대담하게 그렸다. 마네는 자신을 지지한 보들레르(Baudelaire)의 ‘현대 화가론’에 공감했고 자신이 사는 시대를 솔직하게 그리는 ‘현대화가’가 되려고 했다. 그의 예술론은 모네와 세잔(Cezanne) 등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한 화가들은 마네를 높이 평가했다.
마네가 파리의 도회적인 분위기에 관심 있었다면 모네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과 색채에 관심이 많았다. 모네는 자신이 자연을 관찰한 것을 충실하게 그림으로 재현했다. 모네는 인상주의 화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그들의 정신적 · 예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모네는 동료 화가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살롱 전에 그림을 출품했다. 이러한 결정을 이유로 모네를 ‘전통으로 회귀한 변절자’로 볼 수 없다. 모네는 마네의 재정적 도움을 받을 정도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고 ‘개인전’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인상주의 모임이 와해하였어도 모네는 르누아르(Renoir), 드가(De Gas) 등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화가들과 교류를 멈추지 않았다. 말년의 모네는 자신만의 붓질로 변화무쌍한 자연을 짧은 시간 안에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말년의 모네가 그린 그림들은 원근법과 형태마저 사라진 추상적 화풍에 가깝다. 모네의 강렬한 색채와 붓질은 근대미술에서 현대미술로 전환되는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단언 마네와 모네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의 삶과 미술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을 만나게 된다. 비록 이 책에서는 ‘조연’으로 언급되지만, 그들도 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이다.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반드시 마네와 모네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마네와 모네가 근대미술에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 따라서 《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은 마네와 모네가 어떻게 인상주의 미술의 형성 과정에 근대적 계기를 제공했는가를 알려주는 충실한 책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마네와 모네를 혼동하지 말자. 그리고 오늘날의 현대미술을 있게 해준 두 사람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자. 브라보, 모네! 고맙다, 마네!
※ Trivia
앙토냉 프루스트(Antonin Proust)는 마네의 절친한 친구이며 강베타(Gambetta) 내각 정부의 문화 미술부 장관에 역임했다. 269쪽에 ‘교육부 장관을 지낸 프루스트’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저자가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1] ‘마!’는 ‘인마’를 뜻하는 경남 사투리. 상대방의 신체 약점을 가지고 놀리거나 비하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이 글에 나온 ‘아! 네모네’, ‘마! 네모네’는 언어유희를 이용한 개그일 뿐이며 애초에 사각형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언급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말자!
[2] 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