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지만, 만약 미래에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암호 전쟁’이 될 것이다. 암호는 핵무기 다음으로 전쟁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무기다.

 

 

 

 

 

 

 

 

 

 

 

 

 

 

 

 

 

 

 

 

 

 

 

 

 

 

 

 

 

 

 

* 사이먼 싱 《비밀의 언어 : 암호의 역사와 과학》 (인사이트, 2015)

* 박영수 《암호 이야기》 (북로드, 2006)

* [절판] 데이비드 칸 《코드브레이커 : 암호 해독의 역사》 (이지북, 2005)

* [절판] 루돌프 키펜한 《암호의 세계》 (이지북, 2001)

 

 

 

암호 해독은 군사 비밀 정보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적군이 군사 기밀 암호를 해독하면 군 전력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은 나치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Enigma)를 완전 해독, 독일 잠수함을 곳곳에서 침몰시켰다. 사이먼 싱(Simon Singh)은 암호의 역사를 “암호를 만드는 사람들과 이를 해독하려는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쳐 진행된 전쟁의 역사”라고 말했다. 암호 속에 의미를 숨긴 자와 그 의미를 밝혀내는 치열한 수 싸움으로 점철된 암호의 세계는 인류 문명사와 깊숙이 맞닿아 있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9)

* 댄 브라운 《다 빈치 코드》 (문학수첩, 2013)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장미의 이름》댄 브라운(Dan Brown)《다 빈치 코드》의 인기 비결은 책, 그림, 유적 속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가정 아래 과거의 수수께끼를 암호풀이로 해독해 가면서 독자의 두뇌를 자극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두 소설은 종교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바탕 위에 도상학과 기호학 등을 끌어들여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이렇듯 암호는 비밀을 숨기는 것을 좋아하거나 비밀을 밝히고 싶은 인간을 유혹하는 은밀한 언어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까치, 2017)

*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2》 (휴머니스트, 2014)

 

 

 

암호는 음표로 가득한 텍스트에도 적용될 수 있다. 바흐(Bach)는 자신의 은밀한 메시지를 악보 행간에 숨겨놓았다. 『푸가의 기법』은 바흐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만들어진 미완성곡이지만 풍부한 악상의 변화를 간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총 열여덟 개의 푸가(fugue)로 이루어진 모음곡이다. 푸가는 하나의 선율이 또 다른 선율을 모방하는 형태로 연주하는 작곡기법이다. 바흐는 죽기 전에 자신의 능력을 악보에 쏟아 부어 푸가 기법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만든 음악의 종결부에 최후의 메시지라 할 수 있는 ‘묘비명’을 넣었다. 바흐가 악보에 새긴 묘비명은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괴델, 에셔, 바흐》(까치, 2017)의 주요 내용이므로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손 안 대고 코 풀 듯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지 않고 당장 바흐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미학 오디세이 2》(휴머니스트, 2014)‘4성 대위법’ 편을 참고하시길.

 

 

 

 

 

 

 

 

 

 

 

 

 

 

 

 

* 칼 세이건, 앤 드루얀, 티모시 페레스 외 《지구의 속삭임》 (사이언스북스, 2016)

 

 

 

호프스태터는 우주 외계 문명이 알아볼 수 있는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선 메시지를 저장한 음반을 우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이 주장에 대해서 호프스태터의 책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박여성, 안병서 둘 중 한 분)는 ‘이 부분의 논지 전개는 좀 이상해 보인다’라는 주석을 달았다.[1]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믿지 않는 회의주의자라면 호프스태터의 주장이 황당하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정서를 가진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세운다면 외계 생명체는 음반을 해독할 것이다. 호프스태터의 주장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억지스러운 논지 전개로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괴델, 에셔, 바흐》가 출간되기 2년 전인 1977년에 발사된 미국의 우주탐사선 보이저 2호에 지구의 다양한 메시지와 소리, 그리고 음악이 담긴 레코드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보이저 골든 레코드’다. (그런데 《괴델, 에셔, 바흐》에 실제로 우주에 쏘아올린 인류의 메시지를 담은 음반이라 할 수 있는 '보이저 레코드'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다. 미국에 태어난 호프스태터가 보이저 호의 역사적인 발사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칼 세이건(Carl Sagan)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이 레코드는 혹시 보이저 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우주 생명체를 위한 인류 최후의 메시지다. 세이건은 고도의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는 외계 생명체가 인류와 함께 우주에 살고 있어서 둘 사이의 지식에는 공통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레코드의 수명은 10억 년이다. 그 사이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인류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된다. 지구가 파괴되어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후손은 외계 생명체가 보내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호라티우스는 “언어는 영원에 도전한다.”라고 썼다. 우리가 그의 경구를 기억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옳았다는 증거이다. 보이저호가 방랑을 멈추는 시점에 우리 아름다운 행성에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진작 사라졌을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이 레코드판이 칭송했던 목소리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의 부주의 때문에, 혹은 그저 세월 때문에 영영 목소리를 잃었을지, 역시 알 길이 없다. 보이저 호는 우리의 메아리와 이미지를 싣고서 우주를 여행하고 있으며, 머나먼 그 여정만큼 오랫동안 우리를 계속 살아 있게 할 것이다. (앤 드루얀) [2]

 

 

암호도 언어다. 암호는 해독해야 할 가짜 문자와 그 속에 숨겨진 진짜 문자로 이루어진 '비밀의 언어'다. 따라서 앤 드루얀(Ann Druyan)이 인용한 호라티우스(Horatius)의 격언처럼 해독하지 못한 암호는 영원에 도전한다. 언어를 만들고 쓸 줄 아는 인간은 위대하면서도 약한 존재이다. 우주의 역사와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정말 작다. 대자연이 일으키는 재앙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 바로 인류가 일으키는 전쟁이다. 거대한 지구에는 여전히 인류가 밝히지 못한 ‘자연의 암호’가 널려 있다. 우리 몸속에 있는 ‘유전 암호’ 또한 인류가 밝혀내야 할 자연의 암호 중 하나이다. 이 ‘자연의 암호’를 해독하는 사람이 과학자다. 그러나 전쟁에 동원된 과학자들은 적군을 쓰러뜨리기 위해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일어나는 전쟁은 자연을 파괴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도 파괴된다. 만약 미래의 지구가 죽음의 땅이 된다면 보이저호의 레코드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우주에 외로이 떠다니는 인류의 묘비명으로 남을 것이다.

 

 

 

 

 

[1]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까치, 2017) 216쪽

[2] 《지구의 속삭임》216~217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립간 2018-01-05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새해 인사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무심코 연간 통계를 보니, 지난 해 제 서재에 댓글을 가장 많이 남겨주신 분이네요. 감사드립니다.^^

cyrus 2018-01-05 14:1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마립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