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예술가 클라시커 50 12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이라 디아나 마초니 지음, 정미희 옮김 / 해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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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시커(Klassiker)예술가’, ‘대가’, ‘고전등을 의미하는 독일어이다. 해외 축구 중계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데어 클라시커(Der Klassiker)’를 모를 리가 없다. 독일 분데스리가 리그를 대표하는 바이에른 뮌헨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간의 축구 경기를 뜻한다. 그런데 현지 독일인은 데어 클라시커의 의미를 모를뿐더러 잘 쓰지도 않는다. 사실, 두 팀이 치열하게 맞붙은 역사가 길지 않다. 독일 축구팬들은 두 팀의 맞대결에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국내 축구팬과 몇몇 언론들만 독일인이 모르는 단어를 쓰고 있다.

 

<클라시커 50>은 주제에 적합한 인물 50명 또는 지식 50가지를 선정, 연대기 방식으로 소개하는 시리즈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간결한 요약정리,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참고 자료 및 관련 정보 등이다. ‘입문서로 손색이 없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볼 때마다 2% 부족한 감을 지울 수가 없다. 익숙하지 않은 외래어 표기, 출처가 불명확한 정보, · 탈자는 이 시리즈의 감점 요인이다. 그리고 시리즈가 나온 지 십 년 넘었다. 책에 소개된 인물 중에는 고인(故人)이 있다. 출판사는 수정할 정보가 있는지 검토하고 난 뒤에 책을 인쇄해야 한다.

 

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16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까지 위대한 여성예술가 50인의 삶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예술가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모두를 포함한 것이다. 남성 중심의 예술사에 가려지거나 부당하게 잊혀진 50인의 삶과 예술 정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예술과 페미니즘의 관계를 소극적으로 바라본다. 그들은 이 책이 페미니즘적인 규범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여성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중심으로 설명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성예술가의 삶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은 페미니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시작부터 이 책은 페미니즘과 무관하다는 식으로 밑장을 빼는 건 아니다. 저자들은 게릴라걸스(Guerilla Girls)의 도발적인 질문을 인용했는데, 앞에서 보여준 밑장 빼기식 입장과 상반된 내용이다.

 

 

 

 

국제적인 전시회의 일정을 보면 새롭게 발견했거나 다시 평가된 여성예술가들이 예술사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 여성예술가들은 선배 여성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그들의 역사를 유추해 보기도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려면 여자들은 옷을 벗어야만 하나요?’라는 도발적인 질문에 분노하는 여성 화가들의 폭발적인 힘은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7)

 

 

 

게릴라걸스는 1985년 미국에 결성된 페미니스트 예술가 집단이다. 이들은 고릴라 가면을 뒤집어쓰고 하는 퍼포먼스, 강의, 출판,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게릴라걸스는 앵그르(Ingres)의 누드화를 패러디한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려면 여자들은 옷을 벗어야만 하나요?’라는 문구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게릴라걸스의 질문은 서양미술사 책에서 여성 예술가들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에 향한 분노의 목소리다.

 

 

 

 

 

 

이 책에 선정된 50인의 여성예술가 대다수가 유럽, 미국 중심 백인이라는 사실이 아쉽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만이 유일한 유색 인종 여성 예술가다. 동양, 아프리카 대륙의 여성예술가가 단 한 명도 없다. 이 책 소개와 무관한 내용을 덧붙인다.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가 상이 터너 상(Turner Prize)’이다. 올해 터너 상 수상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신의 여성 미술가 루바이나 히미드(Lubaina Himid)로 결정되었다. 그녀는 1980년대 영국 흑인 미술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여전히 잔존하는 식민주의 역사와 인종 차별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녀가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영국 출신의 젊은 백인 미술가에게 주어진 터너 상의 전통이 깨져버렸다. 미술계의 최신 동향이 반영된 클라시커 50 여성예술가개정판이 나온다면 히미드는 ‘50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50에 포함된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생존 인물로 나와 있는데, 그녀는 2010년에 세상을 떠났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 십 년 일찍 태어났더라면 ‘50에 선정될 수 있었을까? 이 책의 50번째 여성 예술가로 소개된 독일 출신의 레베카 호른(Rebecca Horn)1944년생이다. 셔먼은 1954년에 태어났다. 이 책이 처음 나온 2002년에 셔먼은 왕성히 활동을 하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 그녀가 이 책에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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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12-30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 올해는 사이러스 님 때문에 알라딘에서 풍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도 이곳에 올인하여 주십시오. 데이트 따윈 하지 마시고... 데이트 할 시간에 글 써서 올리셔야죠.. ㅋㅋㅋㅋ 농담이고요...

cyrus 2017-12-30 11:29   좋아요 0 | URL
헉.. 새해 인사 대신 저주인가요? ㅎㅎㅎ

저는 누구나 다 아는 정보를 내 입맛대로 끄적거리는거리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곰발님의 글과 댓글을 볼 때마다 피식하면서 웃게 됩니다. 곰발님의 말장난을 좋아하거든요. 내년에도 날카롭고 유쾌한 글 써주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표맥(漂麥) 2017-12-3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과 곰발님 글 읽는 재미로 알라딘에 붙어(?) 있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cyrus 2017-12-30 11:34   좋아요 0 | URL
같이 붙어서 이 추운 겨울을 지내보아요... ㅎㅎㅎ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서니데이 2017-12-30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이제 내일을 지나고 나면 새해가 되니까요.
올해도 좋은 이야기와 인사 나누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그리고 희망 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엔 더 좋은 일들,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7-12-31 15:46   좋아요 1 | URL
2017년 마지막 하루가 몇 시간 밖에 안 남았군요. 내년에도 지금처럼 변함없이 저나 서니데이님이나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는 시험, 꼭 좋은 결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페크pek0501 2018-01-02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인사를 못 나눈 것 같군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 주시면 저는 열심히 읽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리뷰는 이미 읽었고 이제야 댓글을 씁니다.)

cyrus 2018-01-02 23:30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님. 요즘 북플에도 관태기를 느껴서 그런지 새해 인사를 잘 안하게 되네요. 새해 인사 없이도 제가 알고 지내는 모든 분들 복 많이 받을 거라 생각합니다. ㅎㅎㅎ

제 글을 열심히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글의 주제가 흥미롭지 않으면 패싱하면 됩니다. ‘코리아 패싱‘은 없어도 ‘사이러스 패싱‘은 가능합니다. ^^

AgalmA 2018-01-04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신디 셔먼이 없다니! 유색인종에 대한 지점도 잘 지적하셨네요. 온갖 구별짓기로 소외를 만드는 째째한 세상!
cyrus님 작년에도 덕분에 재미나고 유용한 정보들 많이 알 수 있었어요. 감사드립니다^^
2018년은 어떤 흥미로운 걸 찾아다니실지 기대가 되네요.
건강히^^/

cyrus 2018-01-04 10:32   좋아요 1 | URL
저는 ‘알쓸신잡’ 콘셉트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딱히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정보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쓸모없는 정보만 찾아 다녀야겠어요.. ㅎㅎㅎ

AgalmA 2018-01-04 10:39   좋아요 1 | URL
제가 그런 글, 정보들을 좋아하니까요ㅋㅋ 계속 진행하셔도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