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대위법(Point Counter Point). 정말 독특한 제목이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쓴 소설의 제목인데 《크롬 옐로(Crome Yellow, 1921)》,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1932》와 함께 헉슬리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 연애 대위법》 (동서문화사, 2013)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소담출판사, 2015)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1998)

 

 

 

《연애 대위법》은 1928년에 발표한 작품이므로 헉슬리의 초기 문학으로 들어서는 두 번째 관문이다. 첫 번째 관문은 《크롬 옐로》이지만 번역본이 없다. 그동안 국내 독자들은 인문학(철학)과 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헉슬리의 방대한 문학 세계, 과학과 문학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인본주의적 인생관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멋진 신세계》를 읽고 있었다. 《멋진 신세계》를 ‘디스토피아 문학의 대표작’ 정도로 취급받기 일쑤인데 이 작품 하나 때문에 헉슬리를 ‘원 히트 라이터(one-hit writer, 한 편의 작품만 대성공을 거둔 작가)’로 오해하기 쉽다.

 

 

 

 

 

 

 

 

 

 

 

 

 

 

 

 

*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마로니에북스, 2017)

 

 

《크롬 옐로》는 《멋진 신세계》와 함께 피터 박스올(Peter Boxall)이 책임 편집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마로니에북스, 2017)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 《연애 대위법》은 영국에서 두 차례(1968, 1972년)나 TV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대위법(counterpoint)이란 두 개 이상의 선율이 하나의 곡으로 결합하는 작곡 기법이다. 소설 원제로 알려진 ‘point counter point(점 대 점)’은 ‘counterpoint’의 어원이다. 점은 악보에 있는 음표를 뜻한다. 원래대로라면 소설 제목을 부를 때 ‘대위법’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목에 ‘연애’라는 단어가 붙여졌고, ‘연애 대위법’이 지금도 가장 많이 쓰이는 제목이다.

 

 

 

 

 

 

 

 

 

 

 

 

 

 

 

 

 

 

* 김효원 《올더스 헉슬리 : 오만한 문명과 멋진 신세계》 (살림, 2006)

 

 

 

《연애 대위법》은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선 헉슬리의 세계관, 창작 의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배경지식 없이 《연애 대위법》을 읽으면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다. 《연애 대위법》을 읽기 어려운 소설로 규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소설 속 등장인물의 사변 위주로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은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 인문학, 과학, 예술에 해박한 헉슬리의 백과사전적 세계가 압축된 작품이라서 현학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직업이 작가, 과학자, 음악가, 화가 등이다. 이들은 만날 때마다 과학, 철학, 문학 등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거나 토론을 한다. 그런데 이게 헉슬리식 글쓰기의 특징이다…‥

 

* 헉슬리는 ‘점 대 점’ 형태의 대위법을 글쓰기에 대입했는데 《연애 대위법》은 ‘인물 대 인물’ 형태로 대비된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그러나 소설에 드러나는 ‘대위법적 전개’를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다. 헉슬리가 소설을 쓰면서 설계한 ‘대위법적 전개’를 이해하려면 역자의 충실한 해설을 참고해야 한다. (헉슬리의 생애 및 문학 세계를 심도 있게 다룬 유일한 책이 살림지식총서 No. 247 《올더스 헉슬리 : 오만한 문명과 멋진 신세계》다.)

 

 

사실 헉슬리는 독자에게 불친절한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밝혔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쓰는 주요동기는 하나의 어떤 관점을 표현코자 하는 욕망이었다. 아니, 차라리 분명하게 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나는 나의 독자를 위해 쓰지 않는다. 사실 나는 나의 독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나는 글 자체를 위해 글을 쓰기를 좋아한다. 나는 내가 어떤 재능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내 스스로에게 단지 문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행사하기를 원한다.[1]

 

 

《연애 대위법》은 과거(19세기 빅토리아 시대)현재(과학 기술의 진보를 추구하는 20세기 초)의 시대가 중첩된 1920년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래서 헉슬리는 이 소설을 통해 ‘구세대’로 상징하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보수적인 성향을 풍자하고, 지나치게 진일보하는 현대 문명을 비판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소설가 겸 화가인 마크 램피언(Mark Rampion)은 헉슬리와 친분을 유지한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그는 과학 기술의 진보를 경고하는 입장을 드러내는데 헉슬리의 분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헉슬리의 문명 비판론적 견지는 《멋진 신세계》로 이어진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괴델, 에셔, 바흐》 (까치, 2017)

 

 

 

지적으로 뛰어나지만 대인 관계 능력이 부족할 정도로 소극적인 소설가 필립 퀄스(Philip Quarles) 역시 헉슬리의 분신이다. 이 책의 22장은 특이하게도 부제목이 달려 있는데 ‘필립 퀄스의 노트’이다. 22장은 퀄스가 노트에 기록한 내용이 나오는데 《연애 대위법》의 집필 의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장이다.

 

 

소설의 음악화. 분위기의 전조(轉調). 주제가 진술되고, 다음에는 전개되고, 모양이 흩어지고, 눈에 띄지 않게 바뀌어서, 마침내는 여전히 같은 것인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여러 개 변주곡에서 이 과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상 감정의 모든 영역에 걸치면서도 모두가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왈츠곡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것을 소설에 도입하자. 소설가는 상황과 인물을 반복함으로써 전조를 시도한다.

 

소설가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라. 그러면 그가 펼치게 되는 미학론은 적어도 나에게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또한 실험을 하기도 한다. (작가는) 자기가 쓰고 있는 소설의 일부를 작품 속 작가를 통해 말한다면 주제의 변주가 될 수 있다. [2]

 

 

헉슬리는 소설에 나오는 작가 필립 퀄스를 통해 ‘소설가의 역할’을 제시한다. 이 ‘소설가의 역할’은 헉슬리가 쓰고 싶은 소설의 방향을 의미한다. 22장은 헉슬리와 필립 퀄스를 중심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연애 대위법》을 쓰는 헉슬리 → 《연애 대위법》에 등장하는 소설가 필립 퀄스는 ‘소설가의 역할(소설가를 소설 속에 등장시키기)’을 언급함으로써 소설을 쓰고 있는 헉슬리에게 지시한다. → 퀄스가 지시한 대로 헉슬리는 필립 퀄스의 모습으로 등장 → 헉슬리는 필립 퀄스에게 ‘소설가를 등장시키는 소설’ 쓰기를 지시한다. 퀄스는 헉슬리가 지시한 내용을 '노트'에 기록한다. → '퀄스의 노트'에 있는 모든 내용은 헉슬리가 쓴 것이다.

 

 

 

헉슬리와 필립 퀄스는 서로가 서로를 지시하면서 결국 자기 자신(헉슬리)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관계 속에는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자기 지시’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헉슬리 대 퀄스’의 순환 고리는 이 소설의 제목이자 주제인 대위법의 구조와 유사하다. 바흐(Bach)는 무한히 상승하는 순환 고리 형식으로 전개되는 『음악의 헌정』을 작곡했다. 『음악의 헌정』은 캐논(canon)이라는 모방 대위법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이 곡은 연주 중에 조바꿈이 일어나며 종반부에는 원래 조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바흐가 의도한 것처럼 헉슬리도 ‘소설의 음악화’를 시도한다. 그 속에 독자를 감탄하게 만드는 ‘이상한 고리’가 숨어 있다.

 

 

 

 

 

[1] 《올더스 헉슬리 : 오만한 문명과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의 생애’ 편

[2] 《멋진 신세계 / 연애 대위법》 ‘연애 대위법’ 편 605~6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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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1-05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이런 류의 책 탐험 에세이 쓰시기 바랍니다.

cyrus 2018-01-05 17:50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헌책방에 산 책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헌책방에 산 절판본의 리뷰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01-05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슬리, 극단을 오가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싸이러스님도 무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8-01-05 17:5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래서 헉슬리의 한 작품만 읽고 그를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기 쉬워요. 헉슬리 이 사람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 자체가 워낙 복잡해서 뭐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작가입니다.

sprenown 2018-01-05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리뷰! 음악과 미술,그리고 언어.
무한반복...뫼비우스의 띠.

cyrus 2018-01-06 15:24   좋아요 0 | URL
리뷰라기보다는 단상에 가까운 글입니다.. ^^;;

2018-01-05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06 15:26   좋아요 0 | URL
제가 <연애 대위법> 줄거리 소개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 소설이 어떤지 감을 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