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섹스와 아름다움과 생존에 대한 이야기
가브리엘 글레이저 지음, 김경혜 옮김 / 토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옛날 사람들은 서양 백인을 보면 코쟁이라고 했다. 솟아 있는 서양인의 콧날 때문에 이런 별명이 생겼다. 하지만 코쟁이는 인종차별적인 단어다. ‘코쟁이에 신체적 특징에 대한 편견과 조롱의 의미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쟁이가 불편한 단어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동양인을 비하하는 눈 찢기동작을 생각하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뚝한 코 모양을 선호한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눈 성형 다음으로 많이 하는 것이 코 성형이다.

 

가브리엘 글레이저(Gabrielle Glaser)(토드, 2010)를 읽어 보면,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수백 년 전 사람들도 못생긴 코를 원하지 않았고, 코의 크기와 모양에 관심을 가졌다. 이미 유럽에서 코 성형 수술이 성행했다. 코 성형 수술에 대한 기록에 근거하면, 16세기 이탈리아에 피부를 이식하여 인조 코를 만드는 성형 수술이 이루어졌다. 코는 절대로 없어선 안 될 신체 기관이다. 코가 없으면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데, 호흡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게다가 입이 벌린 상태가 지속하면 턱이 길어지는 안면 변형이 일어난다. 코가 없어서 후각마저 상실된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의 저자는 한동안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증상을 겪어 고생한 적이 있다.

 

인류와 악취와의 전쟁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 영전(永戰)이다. 향수는 악취와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노력한 인류의 땀과 눈물이 들어가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좋은 향기가 신의 땀과 눈물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악취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세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종교의 힘이 막강했던 시대에 악취는 악마의 향기로 인식되었다. 14세기 중반 유럽에 페스트(Plague, 흑사병)가 창궐했을 때 도시 전역에 악취가 진동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페스트를 신의 징벌로 해석했고, 수도사를 페스트를 막아주는 수호자로 생각했다. 관상학이 유행하면서 코 모양으로 사람의 성격을 읽는 법이 등장했다. 프랑스인들은 상대방의 지성을 칭찬할 때 탁월한 코를 가졌어.”라는 표현을 썼다. 유럽 남성들은 코를 사람들 앞에 공개하는 페니스라고 생각했다. 옛날 유럽인들은 코와 페니스의 상관관계를 정설인 것처럼 믿었다.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을 선호하는 독자에게 를 추천하고 싶다. 정말 코에 관한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3년 동안 준비했다던데, 집필 기간에 비교하면 결과물의 내용이 많지 않다. 번역본 분량이 총 238쪽이다. 문학과 예술 소재로 사용된 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아쉽다. 저자가 조금만 더 심혈을 기울여서 집필했으면 풍성하고 알찬 코의 문화사한 권이 나왔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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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3 16:39   좋아요 1 | URL
유럽의 악취가 얼마나 심했냐면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악취를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외출을 어떻게 했을까요? ^^;;

겨울호랑이 2017-12-0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관상법에서도: ‘코‘의 중요성은 다른 여느 기관보다 월등한 것 같더군요^^

cyrus 2017-12-03 16:40   좋아요 1 | URL
맞아요. 허영만 화백의 <꼴>에 코 관상에 대한 내용이 있던 걸로 기억해요. ^^

sprenown 2017-12-0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이네요.^^. 갑자기 킁킁 거리면서 거울보고 싶어지네요.ㅎㅎ

cyrus 2017-12-04 14:43   좋아요 0 | URL
코가 잘 막히는 편이라서 괴롭습니다. 겨울에 코감기 걸리면 삶의 의욕이 나지 않아요.. ^^;;

데미안 2017-12-0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다큐에서도 말했습니다. 후각이 맛을 결정한다고! 코는 결국 즐거운 생활의 기본적 요소가 아닐까요?

cyrus 2017-12-06 13:19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냄새 없이 음식의 맛을 본다면 앙꼬 없는 진빵을 먹는 기분일 거예요. ^^;;
 

 

 

 

로마가 등장하기 전 이탈리안 반도에 에트루리아인이 살고 있었다. 에트루리아(Etruria)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고대 국가다. 에트루리아인의 역사를 알려줄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그들의 기원을 놓고 다양한 주장이 나왔다.

 

 

 

 

 

 

 

 

 

 

 

 

 

 

 

* 헤로도토스, 천병희 역 역사(도서출판 숲, 2009)

* 헤로도토스, 김봉쳘 역 역사(, 2016)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에트루리아인의 선조가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반도)의 고대 왕국 리디아(Lydia)인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에 유전자 DNA 검사 결과 헤로도토스의 견해가 사실임이 확인되었다.[1]

 

 

 

 

 

 

 

 

 

 

 

 

 

 

 

* 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1(푸른역사, 2013)

* 테오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2(푸른역사, 2014)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은 이탈리아 초기 민족을 이아퓌기아인’, ‘에트루리아인’, ‘이탈리아인으로 분류했다. 로마에 에트루리아의 문화 및 관습을 전파한 로마의 전설적인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는 에트루리아인으로 알려졌는데, 몸젠은 이 전설적인 내용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트루리아인에 대한 몸젠의 평가가 야박하다.

 

몸젠의 역사관은 실증주의 역사학이다.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가 이끈 실증주의 역사학은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사료에 주목한다. 랑케는 오로지 실재했던 사실만을 기술하고자 했다. 사료에 대한 비판적 검증을 통해 그는 문헌 안에서 역사적 사실만을 가려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랑케의 후계자들은 실증주의 역사관을 교묘히 이용하여 애국심을 강요하는 민족주의를 표방했다. 몸젠은 실증주의에 입각해 로마의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했지만, 역사적 상상력이 반영된 전설이 연구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몸젠은 그리스 정신을 이어받아 발전한 로마를 치켜세우는 반면 에트루리아를 그리스 정신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2% 부족한 나라로 평가했다. 그는 실증주의라는 학문적 외피를 쓴 채 로마 문명의 우월성을 부각하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에트루리아 문화를 저평가했다.

 

 

 

 

 

 

 

 

 

 

 

 

 

 

* 미르치아 엘리아데 세계종교사상사 1(이학사, 2005)

* 미르치아 엘리아데 세계종교사상사 2(이학사, 2005)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종교가 있었고, 주술적 성격을 갖는 종교의식이 성행했다. 고대 그리스 도시 엘레우시스 주민들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를 숭배했고, 1년에 두 번씩 여신을 숭배하는 축제를 벌였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그리스인들의 관심은 엘레우시스 비의(Eleusinian Mysteries)’라는 비밀종교를 탄생했다. 로마에는 주신(酒神) 바쿠스(Bacchus,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에 해당)를 숭배하는 밀교가 유행했다. 바쿠스는 이탈리아 남부와 로마 및 에트루리아 등의 이탈리아 전반에서 널리 숭배되었다.

 

 

에트루리아 인들은 전조와 기적을 해석하는 데 몰두했다. 번개 해석법과 내장 해석법 등 비의(悲意) 해석법이 생겨났으며, 이런 것들에서 우리는 복채를 뜯어내려는 욕심을 엿볼 수 있다. (1권 제12258~259)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인간이 하나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종교 행위라고 말했다. 고대의 종교 제의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풍요로운 희망을 꿈꾸는 염원이 담겨 있다. 에트루리아의 주술 문화를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부정적인 문화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

 

 

무역과 해적질로 일찍이 커다란 부를 축적한 에트루리아에서만 오직 예술이, 혹은 그렇게 부르길 원한다면 기술이 일찍이 뿌리내렸다. (1권 제15336)

 

 

에트루리아 인들의 작품은 라티움이나 사비눔 사람들에 비해서 그 합목적성이나 실용성뿐만 아니라 내면성과 아름다움에 있어서도 크게 뒤떨어진다. 트루리아 사람들은 희랍의 호화 건축을 모방했으되 저열한 수준이었다. 에트루리아 예술은 수공업적 훈련과 적응의 숙련도를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증거일 뿐, 중국 사람들처럼 천재적 수용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이탈리아 예술의 역사에서 에트루리아를 맨 앞자리에서 맨 뒷자리로 밀어내 버릴 것을 단호하게 결심해야 할 것이다. (1권 제15339~340)

 

 

에트루리아 예술 작품의 일반적 성격은 재료와 양식에 있어 일정하게 나타나는 지나친 천박함과 내적 발전의 완전한 결여다. 희랍 장인이 대강 소묘한 곳에 에트루리아의 제자는 학생다운 땀을 쏟았던 것이다. 희랍 작품들의 가벼운 재료와 절제된 비례 대신 에트루리아 작품들에선 과시적 크기와 사치스러움 혹은 단순한 진기함만이 강조된다. (2360)

 

 

몸젠은 에트루리아 미술을 로마 미술보다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했다. 특히 로마사 1에서 몸젠은 에트루리아 미술을 이탈리아 예술사의 뒷자리로 밀어내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의 견해만 보고 에트루리아 미술을 후진적 문화로 평가해선 안 된다. 에트루리아 미술은 그리스 미술에 바탕을 두었지만, 그리스 미술을 로마에게 전해준 에트루리아 미술의 영향력를 무시할 수 없다.

 

 

 

 

 

 

 

 

 

 

 

 

 

 

* 낸시 H. 래미지, 앤드류 래미지 로마 미술(예경, 2004)

* 토마스 R. 호프만 로마 미술, 어떻게 이해할까?(미술문화, 2008)

 

 

 

몇몇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들과 무역을 한 에트루리아는 그리스 문화를 영향을 받을 수 있었고, 축적한 부를 통해 사치스러운 예술품 또는 장신구를 제작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 미술은 그리스 미술을 어설프게 모방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스에 대리석과 석회암이 풍부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보존성이 뛰어난 훌륭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는 대리석과 석회암처럼 단단한 재질의 암석이 부족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흙벽돌과 목재를 건축물 재료로 사용했다. 그래서 온전한 형태의 에트루리아 시대 건축물이 남아 있지 않고, 겨우 파편만 남아 있을 뿐이다. 만약에 에트루리아가 대리석과 석회암 지대였다면 그리스와 로마 중심으로 서술된 고대 미술사의 내용이 달라졌을 것이다. 에트루리아의 조각 예술은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표현과 양식을 발전시켰다. 에트루리아 등신상은 그리스 등신상보다 생동감이 느껴진다.

 

에트루리아 미술이 로마 미술의 발전 양상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에트루리아 미술의 수준을 확인해보면 에트루리아 미술과 로마 미술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추정할 수 있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 나름의 고유한 가치와 역할과 개성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한 시대에 등장한 예술은 그 시대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개성에 대한 이해이며, 그 시대의 예술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의 가치에 기초해서 이뤄져야 한다. 몸젠은 사실과 해석이 공존하는 절충주의 방식으로 에트루리아 미술을 평가했으나 자신의 감상에 치중한 주관적 견해에 머무르고 말았다.

 

 

 

[1] [연구팀 결국 헤로도투스 견해가 맞았다”] 연합뉴스, 2007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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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1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이병도를 비롯한 실중주의 사학자가 득세한 이후 아마 지금까지도 주류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아요..

cyrus 2017-11-16 17:09   좋아요 0 | URL
이병도를 비판하는 사회주의 역사학자들은 서울대학교에서 활동한 이병도와 그의 제자들의 권위주의적 활동을 비꼬기 위해서 ‘서울대 학파’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AgalmA 2017-11-16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요한 지적을 해 주셨네요. 많은 예술 사관들이 문화의 특정 부분의 우수성을 강조하는데, 그런 문화를 만든 사람들이 사는 환경과의 관계를 간과하는 게 꽤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에트루리아인이 흙벽돌과 목재로 건축물을 지은 것이나 기타 등등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의 특수성을 더 중심으로 봐야겠지요. 비교가 객관성이나 정확성을 담보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가치 판단적일 때가 많죠.

cyrus 2017-11-17 17:0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예술사를 논할 때 과거 예술사조를 후대의 예술사조와 비교하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짜라투스트라 2017-11-1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에트루리아까지... 역시 멋져요!!

cyrus 2017-11-17 17:04   좋아요 0 | URL
역사학에서 로마가 워낙 많이 언급되는 주제라서 에트루리아를 살피지 못하고 간과되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그랬어요. 책을 다시 읽으니까 처음 읽었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

transient-guest 2017-11-17 0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트루리아는 로마 이저의 로마라고 할 만큼 훌륭한 해상문명을 이룩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로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에서는 대부분 로마를 셋업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몸젠을 (지루한 책) 권위자로 내세우며 quote하기를 즐긴 시오노 나나미나 몸젠의 자세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결국 비슷한 성향과 목적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고대 중근동을 얘기할 때 유대민족/유대신에 대한 책은 많지만 다곤, 바엘, 아세라를 숭배했던 부족/국가/문명에 대한 책은 얼마 없는 것과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도 드네요.

cyrus 2017-11-17 17:07   좋아요 1 | URL
몸젠의 《로마사》가 완역되면 로마를 바라보는 몸젠의 시선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1, 2권만 봐서는 로마를 치켜세우는 몸젠의 서술 방식을 판단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지만, 일단 저는 그게 불편하게 느꼈어요.
 

 

 

 

 

 

 

 

 

 

 

 

 

 

 

 

 

 

 

 

올해가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가 쓴 《로마사》(푸른역사, 2013~2015, 2017년 현재 번역본이 3권까지 출간됨)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책이다. 몸젠은 이 책으로 1902년 독일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현재 최고령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88세의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2007년 수상)이다. 레싱이 상을 받기 전에는 최고령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몸젠이었다. 1902년에 몸젠의 나이는 85세였고, 이듬해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몸젠의 《로마사》가 번역되지 않았던 시절에 우리나라 독자들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의 역사소설 《로마인 이야기》(한길사, 1995~2007)에 열광했다. 양심 고백을 하자면 나도 ‘로마인 이야기 열풍’에 맹목적으로 휩쓸러 갔던 사람이다. 그녀의 작문 솜씨가 교묘해서 내용 자체도 소설처럼 흥미진진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는 신뢰할만한 역사책이라고 볼 수 없다. 딴딴한 로마 덕후 또는 로마 전공자 앞에서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를 언급하다간 탈탈 털릴 수 있다.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2》 (민음사, 1998)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도서출판 숲, 2005)

* 오비디우스 《로마의 축제들》 (도서출판 숲, 2010)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휴먼앤북스, 2010)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상)》 (현대지성, 2016)

 

 

 

 

《로마인 이야기》에 실망한(혹은 ‘역사서로 둔갑한 역사소설’에 속아 넘어간) 독자들은 철저히 실증적으로 로마를 접근한 몸젠의 책에 후한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몸젠은 역사적 근거자료들을 토대로 로마와 관련된 구전 자료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로마의 건국신화에 따르면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는 전쟁의 신 마르스(Mars, 그리스 신화의 아레스(Ares)와 동일)와 인간인 레아 실비아(Rhea Silvia)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아들이다. 부적절한 관계였던 두 사람은 이들을 바구니에 태워 티베레스 강(테베레 강의 라틴어 명)에 버린다. 형제는 팔라티움 언덕의 동굴에서 늑대 젖을 먹고 자란다. 형제는 팔라티움 언덕 기슭에 로마를 건국하지만 권력 다툼을 벌여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왕이 된다. 《로마사》 1권을 보면 역사학에 남아있는 로마 건국신화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은 몸젠의 단호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로마가 자리 잡은 지역(팔라티움 언덕-cyrus 주)은 라티움 지방의 옛 정주지들과 비교할 때 오히려 위생 면이나 농업생산력 면에서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로마 근교에서 잘 자라지 못했으며, 근교에는 풍부한 수원지도 없었다. 티베리스 강의 잦은 범람은 늪을 만들어냈다. 알바롱가의 왕족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영도 아래 알바롱가로부터 일단의 사람들이 도망쳐 로마를 건설했다는 신화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불리한 장소에 로마가 생겨난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로마의 시초를 라티움 지방의 거대도시와 연결시키려는 역사적 설명의 소박한 시도라고 하겠다. 스스로 ‘역사’이기를 희망하지만 그다지 훌륭할 것 없는 단순한 설명에 불과한 이런 신화를 역사학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배제해야 할 것이다. [1]

 

 

 

《로마사》는 확실히 로마 역사를 공부할 때 꼭 읽어야 책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연도가 19세기 중반이다. 《로마사》 1권은 1854년에 출간되었다. 여러 번의 개정이 있었지만, 내용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역사가가 로마를 보는 관점과 현재의 역사가가 로마를 보는 관점은 차이가 있다. 《로마사》가 발간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백 오십여 년 동안 역사학자들은 로마와 관련된 수많은 정설에 도전했다. 그 과정에서 오랜 세월 동안 학계에 자리 잡고 있던 정설이 뒤집히기도 했다. 로마 역사의 수수께끼를 밝혀 줄 새로운 자료가 발견된다면 몸젠이 《로마사》를 통해 제시한 정설 또한 뒤집힐 수도 있다. 따라서 몸젠의 《로마사》를 ‘유일무이한 로마 역사서’로 극찬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이 책은 현시점에 눈높이를 맞춰서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과거 19세기에 통용되던 인식과 정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몸젠은 로마에 유행한 전염병의 원인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이 내용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라티움 지방 평야는 거대한 자연의 각축장이었다. 천천히 형성된 하천 지형과 굉장한 화산 폭발 등이 한둘씩 지층을 형성했으며, 이 지층 위에 장차 세계 패권을 쥐게 될 민족이 결정되었다. (중략) 대지가 끊임없이 요철처럼 굴곡을 반복하는 가운데 겨울이면 그 사이에 늪이 형성되는데,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늪에 가득한 유기물이 부패하면서 각종 유독 가스가 발생한다. 여름철이면 이런 유독 가스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그 지역에 전염병을 발생시켰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농경 피폐와 황제의 실정으로 야기된 농경 피폐로 인해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견해는 잘못된 것으로, 사실 그 원인은 다만 강수량의 부족에 있으며 그것은 수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다. [2]

 

 

몸젠의 주장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늪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는 로마의 대재앙이 된 전염병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로마의 전염병의 원인을 설명한 기존의 주장(황제의 실정, 농경 피폐)들은 잘못 됐다.’

 

 

 

 

 

 

 

 

 

 

 

 

 

 

 

 

 

 

 

* 최석민 《초대하지 않는 손님, 전염병의 진화》 (프로네시스, 2007)

* 로버트 H. 욜켄, E. 풀러 토리 《우리는 모두 짐승이다》 (이음, 2010)

 

 

 

전염병은 로마 제국의 멸망을 재촉한 원인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로마를 덮친 전염병의 영향으로 날마다 5,000명의 로마인이 죽었다고 기록했다.[3] 고대 로마인들은 전염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알지 못했고 말라이아, 페스트 등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 다니엘 푸러 《화장실의 작은 역사》 (들녘, 2005)

* 칼 세이건 《혜성》 (사이언스북스, 2016)

 

 

 

이미 눈치를 챈 분들도 있을 것이다. ‘독가스가 전염병을 유발한다’는 몸젠의 주장은 과학적이지 않은 구시대적 내용이다.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 등이 ‘세균’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전염병의 원인을 ‘독가스’라고 생각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늪에서 생기는 악취, 밤하늘을 지나는 혜성의 꼬리에서 나오는 독가스를 ‘미아스마(miasma)’라고 명명했다. 의학자들은 의학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허술한 주장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910년에 핼리 혜성이 지구를 스쳤을 때 대부분 사람은 지구에 충돌하는 혜성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다. 혜성의 꼬리에 나오는 독가스가 지구를 덮칠까 봐 두려워했다. 히포크라테스의 미아스마설은 19세기 중반까지 널리 신봉되었고, 몸젠도 미아스마설을 믿고 있었다.

 

 

 

 

 

 

 

 

 

 

 

 

 

 

 

 

 

 

 

* 재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문학사상사, 2005)

* 김동진 《조선의 생태환경사》 (푸른역사, 2017)

 

 

 

생태환경사 관점으로 몸젠의 주장을 수정하자면, 전염병을 일으킨 진짜 범인은 ‘늪에 서식하는 세균’이다. 범람이 잦은 강은 늪이 발생하기 쉬운 최적의 환경 조건이다. 그렇지만 이 땅에 세워진 국가가 강대국으로 발전하려면 반드시 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15세기 조선도 티베레스 강이 낀 초창기 로마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 선조들은 강 주변의 늪을 개간하여 벼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분변을 거름으로 삼아서 지은 논에는 세균이 우글우글하다. 논 주변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이질과 같은 전염병에 시달려야 했다. 조선에 창궐한 전염병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전염병성 세균의 진화를 유리하게 해준 큰 행운이 농경 발생이고, 더 큰 행운이 도시의 발생이라고 주장한다.[4] 몸젠은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지켜낼 줄 알고, 전쟁으로 빼앗은 땅을 비옥한 땅으로 일구어내는 로마인의 농경문화를 ‘위대한 로마’로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는 농경문화가 만든 그림자, 그 어둠속에 서식하면서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세균의 위력을 몰랐다. 세균은 강력한 제국을 초토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세균의 힘을 빌려서 패권 국가의 위치를 점하려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인류의 전쟁은 세균을 기쁘게 해주는 ‘세 번째 행운’이다.

 

 

 

 

 

[1] 《몸젠의 로마사 1》 66~67쪽 (글쓴이가 임의로 편집했음)

[2] 같은 책, 47쪽과 49쪽 (글쓴이가 임의로 편집했음)

[3] 로버트 H. 욜켄, E. 풀러 토리 《우리는 모두 짐승이다》(이음, 2010) 66~67쪽

[4] 재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반양장본) 299~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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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8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8 17:49   좋아요 0 | URL
재미는 확실히 <로마인 이이야>가 최고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가 <로마사>를 읽으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2017-10-18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8 17:53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에서 역사는 다른 문명의 장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공부하는 학문으로 전락했어요. 이렇다 보니 문명의 쇠퇴를 초래한 약점이나 문제점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역사를 공부할 때 인물이나 문명의 약점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점만 보게 되고, 특정 인물이나 문명을 과대평가하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감은빛 2017-10-19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후배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역사책으로 인식하고 열심히 읽길래,
그건 소설에 가깝다고 말해줬더니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구요.

[몸젠의 로마사] 읽고 싶긴 하지만, 당분간 아니 꽤 오랫동안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조선의 생태환경사]도 나오자마자 사뒀는데, 아직 손도 못 댔네요.

cyrus 2017-10-20 15:03   좋아요 0 | URL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재미있는 건 누구나 인정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책에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페크pek0501 2017-10-2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 균 쇠》를 꼭 읽으려고 했는데 아직 구입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대충 알고 나면 그 책이 덜 궁금해지는 면이 있어요.

cyrus 2017-10-20 15:0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반값 할인 제도가 있었던 시기에 주문했는데, 바로 읽지 않았어요.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 읽는 일이 많아요. ^^;;
 
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희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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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금언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실감케 하는 말이다. 이 말의 배경에는 과학이 예술이나 종교와는 달리 주관적 가치 판단에서 벗어나서 사물의 본질과 현상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과학관이 깔려있다. 서구 문명은 이성을 가진 인간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데카르트(Descartes)생각하는 나’, 즉 이성을 가진 인간을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모범 답안으로 제시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무기 삼아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게 세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자, 이제 인간은 세계를 인간을 위한 세계로 개조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다. 그렇게 성립한 것이 바로 인본주의.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에 따르면 과학혁명은 인간이 신(종교)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이제 인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로 자리 잡게 되고, ‘중심의 중세사회에서 인간중심의 근대사회로 이행한다. 하라리는 근대 사회에서 지식을 얻는 방법을 한눈에 보여주는 자신만의 공식을 내세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 2015),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에 나오는 것들이다. 최근에 나온 하라리의 신작 극한의 경험(김영사, 2017)을 읽기 전에 이 두 권의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신작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사실 극한의 경험따끈따끈한 신작이라고 소개하기가 애매하다. 극한의 경험사피엔스호모 데우스보다 먼저 나온 책이다. 극한의 경험2008년에 출간되었고, 2014년과 2016년에 각각 사피엔스호모 데우스가 나왔다. 하라리의 전공 분야는 중세사와 군사 역사다. 하라리는 자신의 두 가지 전공 분야를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엮어 나가면서 인류에게 영향을 끼친 전쟁 문화가 무엇인지 살핀다.

     

하라리는 근대인들이 전쟁에 대해 낭만적으로 접근한 것에 주목한다. 근대 이전 중세 사회에서 전쟁은 지옥을 방불케 하는 재앙이다. 중세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켜 패배하면 신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전쟁을 피하거나 전쟁터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자신에게 신의 은총이 내리길 간절히 기도했다. 18세기 후반부터 낭만주의가 등장함으로써 전쟁을 바라보는 근대인들의 눈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나온 전쟁 회고록을 살펴보면 대다수 전쟁을 혐오하지 않는 관점을 취한다. 오히려 전쟁 회고록 글쓴이들은 전투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중한다. 이러한 글쓰기 전략은 전쟁이 인간의 감정을 압도하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에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황홀한 감정을 숭고로 명명했고, 숭고의 개념을 광활한 자연이 아닌 전쟁터에서 찾으려고 했다. 참전 군인들은 참호에서 생활하고, 군사 훈련을 받고, 전우와 적군이 총탄에 맞아 쓰러져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다. 군인은 마음이 아닌 몸으로 전쟁 경험을 체득한다. 총소리만 듣고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곱상한 청년이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생활하면 극한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전사가 된다.

 

하라리는 군인들이 전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특이점을 계시라고 말한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신의 눈치 받지 않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전쟁을 긍정적 계시 경험[1]으로 받아들인다. 종전 이후에 참전 군인들은 나라를 지킨 영웅으로 대접받고, 전사자들은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쳐 희생한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사회는 참전 용사, 전사자들의 전쟁 경험권위를 공적으로 부여한다. 전쟁을 경험한 자는 전쟁 회고록을 써서 전쟁이 숭고한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극한 상황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의 교훈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품게 되고, 억제된 감정의 해방을 분출하기 위해 직접 전쟁터에 뛰어든다. 앞서 소개한 지식=경험X감수성 공식이 전쟁을 바라보는 인식까지 바꿔 놓은 것이다. 베이컨의 금언을 빌리자면 근대인들은 전쟁을 아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라리는 전쟁의 역사를 지식=경험X감수성공식으로 설명한 서술 방식에도 결함이 있다고 밝힌다. 나는 이 책에서 하라리가 놓친 변수 하나남성성(masculinity)’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전쟁 회고록 집필에 열중하는 낭만주의자 남성들의 모습은 군대 경험담을 로 푸는 한국 남성의 모습과 조금 비슷하다. ‘국가의 아들이 된 한국 남성은 각종 군사 훈련을 받는 동안 간접적으로나마 전쟁 분위기를 느껴보고, 국가 수호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있는 건장한 남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이다. 군대를 경험한 남성들은 자신들이 국방의 의무를 지켰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인식한다. 군대가 가지는 남성성의 강요 및 군대 자체가 만들어내는 남근주의적 인식이 군대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 즉 군 미필 남성, 성 소수자 그리고 여성의 사회 참여를 배제한다. 군대를 경험한 남성이 군 가산점제 도입을 반대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전략은 매번 한결같다. “여성은 군대 경험을 하지 않았으니, 군대 생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군 가산점제 찬성하는 남성들의 주장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2]는 낭만주의자들의 금언과 일맥상통하다. 이 말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보편적 남성성으로 남아 있다. 전쟁을 특별한 경험적 계시로 미화하는 시각이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게 하는 변수가 바로 군대와 남성성의 찰떡같은 조합이다. 따라서 나는 하라리의 공식에 '새로운 변수'를 추가해서 이렇게 바꾸고 싶다.

 

 

지식 = 경험 X 남성성

 

 

 

 

 

[1] 극한의 경험391

 

[2] 같은 책,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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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9-0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도 있죠.
말씀처럼 남성이 아닌 남성성이 문제인거 같습니다.
남성성도 인본주의 영향인지 궁금해집니다. ^^

cyrus 2017-09-09 07:28   좋아요 0 | URL
남성성과 인본주의의 관계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

2017-09-08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9 07:33   좋아요 1 | URL
최근 북핵 위기가 고조되니까 ‘전쟁을 하자‘, ‘우리나라도 핵무기를 개발하자‘ 등 호전적인 주장의 댓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이런 주장들이야말로 ‘행동없는 지식‘입니다. 사실 ‘지식‘이라고 보긴 어렵고, 생각없는 개소리입니다.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저런 개소리들이 나옵니다.

sprenown 2017-09-12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피엔스 밖에 읽어보지 못해서 저자의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잘모르겠습니만,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품게 되고, 억제된 감정의 해방을 분출하기 위해 직접 전쟁터에 뛰어든다.라는 표현은 너무 지나치지 않나 생각합니다.(전쟁에 참여하는 남성들은 애국적 지원병보다 강제징집병들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요? 또, 2차대전시 레지스탕스와 일제강점기 우리 무장독립군도 환상과 경험을 위해 전쟁터에 뛰어 들었을까요?) 저도 물론 현역으로 전방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만, 전쟁은 두렵고 무섭습니다.포탄이 난무하고 총알이 빗발치는곳에서 언제죽을지 모르는데 두렵지요..제가 남성성이 부족한, ‘찌질한 남자‘여서 그럴까요? 요즘 여기 알라딘서재에 웬 페미니즘 바람이 불어서 인지, 기획에 의한 마케팅(책을 구매하는 20대후반내지 30초반의 여성들을 타킷으로하는)인지 페미니즘관련서와 그에 대한 의도된 서평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성평등이슈를 공론화해서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겠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그런거라면 적극 찬성합니다만...

cyrus 2017-09-10 19:07   좋아요 1 | URL
《극한의 경험》을 비판하는 독자평도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sprenown님처럼 저자의 입장에 문제를 제기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책이 서양 전쟁사에 국한되어 있어서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남성성(강하고, 용기 있고, 마초 같은)이 없다고 해서 ‘찌질한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자들만 있는 사회 집단 내에서 ‘남자‘로 인정받으려면 ‘남성성‘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 안 된다‘, ‘남자는 울면 안 돼!‘ 등이 있어요. 이를 어기면 ‘남자답지 않은 여자‘로 놀림거리 받았어요.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남성성의 실체와 문제점을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사회가 은연중에 강요하는 남성성은 남성, 여성 그리고 성 소수자들 모두 악영향을 끼칩니다. 저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성을 비판하는 것이지 ‘남자‘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성에 갇혀 있거나 남성성이 낳은 편견에 사로잡힌 남성은 비판합니다. 그러나 이를 남자 전체를 비난하고, 혐오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지금도 페미니스트들의 순수한 의도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매도하는 인식이 남아있습니다.

sprenown 2017-09-12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뿌리깊은 문화적 전통이라는게 의식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양문화의 뿌리라 할수 있는 기독교, 성경자체가 굉장히 남성우위, 가부장적으로 기술되었고, 우리나라 역시 조선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내훈을 편찬한 이후 급격히 남존여비사상이 확산되었죠. 결국 의식의 확장과 공감을 통한 제도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법상 호주제폐지나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 간통죄폐지,정책상의 양성평등제도 등도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만 보다 많은 분야에서 제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죠. 관심있는 시민사회단체간의 연대를 통한 입법화,제도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얘기가 되겠지만 여성스스로도 통렬한 자각을 통해 스스로의 자존을 무너뜨리는 언행을 삼가는 것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cyrus 2017-11-16 16:5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남존여비사상의 기원과 그 배경을 거의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남성이 사회적 · 문화적 전통이 낳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남녀가 처한 부당한 상황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인데요, ‘공감을 통한 제도화’에 찬성합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차별적인 제도를 보완하는 대안을 주장합니다만, 급진적 페미니스트가 지적하는 한계가 되기도 합니다.

sprenown 2017-09-12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그러나 희생은 하지 마세요.

cyrus 2017-09-12 15:12   좋아요 1 | URL
sprenown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페미니즘 관련 글을 쓰려고 합니다. 비판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sprenown 2017-09-12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관련 서적 한권 읽지도 않았는데...땡길때 몇권 읽고,공부도 좀 해서 비판다운 비판해 보겠습니다.

cyrus 2017-09-12 19:45   좋아요 1 | URL
sprenown님을 만나기 전에는 글 쓰는 것에 매너리즘을 느꼈어요. 최근 sprenown님을 만나게 되니까 의욕이 생깁니다. 저는 적극적인 ‘반응‘을 원했습니다. ^^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김건우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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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은 크게 보면 보수주의로 불린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빨갱이 콤플렉스’가 형성되면서 좌파보다는 좌익이라는 개념으로, 우파보다는 우익이라는 개념이 고착되게 되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도 성숙한 이념논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실정에서는 정책적 쟁점을 중심으로 채 논쟁도 하기 전에 ‘가짜 뉴스’를 동원한 ‘이념 갈등’이 시작된다. 이 ‘이념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좌파이고 무엇이 우파인지, 진보가 무엇이고 보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한다. 그것은 이념논쟁을 벌이는 측에서 명확한 자기 정의 없이 좌파와 같은 개념이 한국의 특수적 상황에서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만을 상대방에게 덧씌우려 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극우파들은 자신들과 다른 입장을 표명하면 무조건 ‘적’이라는 극단적인 사고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이념적으로 가장 오른쪽에 치우쳐 있던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입장들은 좌파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기에 《대한민국의 설계자들》(느티나무책방 · 2017)의 저자는 무지와 왜곡, 오류로 뒤범벅이 된 대한민국 현대사를 바로잡는다. 그리고 장준하, 안창호, 김교신, 류달영, 류영모, 함석헌, 강원용, 김수환 등 20세기가 배출한 걸출한 지식인들의 삶과 노선, 업적을 통해 대한민국 우익 계보를 재정립한다.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이념 갈등은 일제 식민지배 시기에 시작됐다. 독립 운동가들이 광복 후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그리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수립을 지향하는 우익과 사회주의국가의 수립을 지향하는 좌익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분단의 씨앗은 이미 이 시기에 뿌려졌다고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평안도와 황해도를 아우르는 서북 지방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및 종교 활동을 전개한 지식인과 종교인들에 주목한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대 초반까지 종교계의 월남행렬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는 북한의 종교탄압과 직접 관련이 있었다. 특히 평안도를 중심으로 번창한 우익 기독교 세력이 대거 월남 길에 오르면서 남한의 우익 세력과 만나게 되는데, 이들 세력에게는 모두 ‘반공’이라는 공통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 이후 건국과 통일의 방략을 놓고 좌우익 이념대결은 치열하게 벌어졌다. 결국, 반공 · 친미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의 건국을 지지하는 이승만 세력이 주도하게 된다. 여기에 친일파들은 친미세력으로 모습을 변신했고, 그 이후에는 이승만 세력에 협조하며 기득권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들은 친일 행적의 치부를 덮기 위해 반대 노선을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통해 한반도에 단일국가를 세우자는 김구 세력을 ‘용공’으로 몰아세웠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이승만 노선이 사실상 ‘국시(國是)’로 받아들여졌고 김구 노선은 김구의 본질적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용공’으로 분류되었다. 이 혼잡한 해방 전후기 속에 ‘학병 세대’가 대한민국 건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적격자로 등장했다. 학병 세대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몰려 학병이나 징용으로 징발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피하고자 몸을 숨기거나 탈영하여 광복군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들은 친일과 용공 세력과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건국 활동을 주도할 수 있었다. 학병 세대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장준하김준엽이다. 이 두 사람은 1950~60년대 우리나라 지성계를 이끌었던 월간지 <사상계> 창간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다.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를 비롯한 잡지 편집 및 필자로 참여했던 김준엽, 함석헌 등은 모두 평안도 출신이다. 이들은 안창호가 강조한 민족주의와 ‘실력양성론(개인의 수양을 통해 민족의 힘을 기르자는 독립 운동 전략)’을 계승하여 민족의 문화, 사회, 경제적 자강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흑역사’가 있다. 함석헌을 제외한 일부 <사상계> 그룹은 박정희의 5 · 16 군사 쿠데타를 4 · 19혁명의 연장으로 이해했다. <사상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서북 출신 우익 지식인들은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배척당했고, 야당 세력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박정희 정권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국가와 민족의 근대화’를 달성할 수 있을 거로 봤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우익의 혁신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면서 이승만 정권의 ‘국시’를 부활시켰다. 서북 출신 우익 지식인들은 ‘반공’이라는 명분으로 민주주의적 자유를 억압하는 유신 정권과 맞서 싸웠지만, 그들의 ‘근대화론’이 유신 정권의 ‘근대화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던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극우파들은 박정희 정권이 조국 근대화에 기여했고, 군사 쿠데타를 국가와 국민을 가난과 부정부패에서 구한 ‘구국의 혁명’이라고 찬양한다. 친박 세력은 박정희가 이루려 한 근대화의 핵심은 박정희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전두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 과업을 자신이 완성했다고 자평했다. 지랄도 풍년이다. 제2공화국 장면 내각제 시절에 이미 경제개발계획이 입안되었다. 제2공화국의 경제개발계획에 서북 출신 우익 지식인들도 직접 관여했다. 그 당시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장면 정권이 추진하려고 했던 경제개발계획을 이어서 진행했다. 이러한 ‘사실’이 분명히 남아 있는데도 여전히 박정희를 ‘근대화의 영웅’으로 미화하고, 기념하는 세력들은 김씨 일가를 ‘북조선 민족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북쪽 세력과 다를 바 없다. 역사를 망각한 사회는 전망이 없다. 현대사는 국가 정통성의 자랑스러운 증거가 될 수 없다.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진상이 많은데도 너나 할 것 없이 더 잘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리고 극우파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역사관을 ‘빨갱이’라고 매도한다. 그래서 ‘이념 색깔’로 덧칠되어 보이지 않았던 현대사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의 가치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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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30 13:51   좋아요 1 | URL
역사를 더 공부해야하지만, 제가 봐선 진짜 보수는 안창호, 장준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들에게도 한계가 있어요. 웃긴 게 가짜 보수들이 진짜 보수를 좌파처럼 비난하는 태도입니다. 가짜 보수가 가르치는 역사를 배운 사람들은 김구, 장준하가 이승만, 박정희의 정책에 반대한 좌파 세력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겨울호랑이 2017-08-29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우세력들은 현실과 맞닿아있는 현대사들에는 무관심한으로 왜곡하고, 고대사는 자랑스러운 민족역사라는 명분으로 곡해하고 있는듯합니다...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역사가 조명되어야하는데 많이 아쉽네요..

cyrus 2017-08-30 13:56   좋아요 1 | URL
국익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역사관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역사관 때문에 국가에 희생된 사람들이 잊혀집니다.

sprenown 2017-08-3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욕의 역사이지요. 객관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성숙한 의식이 절실합니다. 이제는 더이상 국수주의,애국주의로 호도할 때는 지났습니다.

cyrus 2017-08-30 13:5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국수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8-30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기억에서도 생소해진 ‘주사파‘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프레임을 씌우려는 그들을 보며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cyrus 2017-08-31 12:41   좋아요 0 | URL
주사파.. 정말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현대판 ‘빨갱이‘었죠.

transient-guest 2017-08-31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 진정한 ‘보수‘란 것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보통 보수는 조용한 것 같고, 보수를 표방하는 수구세력의 활동이 활발한 것 같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분명이 ‘보수‘와 트럼프세력은 구분이 가능합니다...

cyrus 2017-08-31 12:43   좋아요 1 | URL
자신을 정통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보면 정상적인 보수가 아니었어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을 이럴 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