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가 쓴 《로마사》(푸른역사, 2013~2015, 2017년 현재 번역본이 3권까지 출간됨)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책이다. 몸젠은 이 책으로 1902년 독일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현재 최고령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88세의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2007년 수상)이다. 레싱이 상을 받기 전에는 최고령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몸젠이었다. 1902년에 몸젠의 나이는 85세였고, 이듬해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몸젠의 《로마사》가 번역되지 않았던 시절에 우리나라 독자들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의 역사소설 《로마인 이야기》(한길사, 1995~2007)에 열광했다. 양심 고백을 하자면 나도 ‘로마인 이야기 열풍’에 맹목적으로 휩쓸러 갔던 사람이다. 그녀의 작문 솜씨가 교묘해서 내용 자체도 소설처럼 흥미진진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는 신뢰할만한 역사책이라고 볼 수 없다. 딴딴한 로마 덕후 또는 로마 전공자 앞에서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를 언급하다간 탈탈 털릴 수 있다.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2》 (민음사, 1998)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도서출판 숲, 2005)

* 오비디우스 《로마의 축제들》 (도서출판 숲, 2010)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휴먼앤북스, 2010)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상)》 (현대지성, 2016)

 

 

 

 

《로마인 이야기》에 실망한(혹은 ‘역사서로 둔갑한 역사소설’에 속아 넘어간) 독자들은 철저히 실증적으로 로마를 접근한 몸젠의 책에 후한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몸젠은 역사적 근거자료들을 토대로 로마와 관련된 구전 자료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로마의 건국신화에 따르면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는 전쟁의 신 마르스(Mars, 그리스 신화의 아레스(Ares)와 동일)와 인간인 레아 실비아(Rhea Silvia)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아들이다. 부적절한 관계였던 두 사람은 이들을 바구니에 태워 티베레스 강(테베레 강의 라틴어 명)에 버린다. 형제는 팔라티움 언덕의 동굴에서 늑대 젖을 먹고 자란다. 형제는 팔라티움 언덕 기슭에 로마를 건국하지만 권력 다툼을 벌여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왕이 된다. 《로마사》 1권을 보면 역사학에 남아있는 로마 건국신화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은 몸젠의 단호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로마가 자리 잡은 지역(팔라티움 언덕-cyrus 주)은 라티움 지방의 옛 정주지들과 비교할 때 오히려 위생 면이나 농업생산력 면에서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로마 근교에서 잘 자라지 못했으며, 근교에는 풍부한 수원지도 없었다. 티베리스 강의 잦은 범람은 늪을 만들어냈다. 알바롱가의 왕족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영도 아래 알바롱가로부터 일단의 사람들이 도망쳐 로마를 건설했다는 신화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불리한 장소에 로마가 생겨난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로마의 시초를 라티움 지방의 거대도시와 연결시키려는 역사적 설명의 소박한 시도라고 하겠다. 스스로 ‘역사’이기를 희망하지만 그다지 훌륭할 것 없는 단순한 설명에 불과한 이런 신화를 역사학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배제해야 할 것이다. [1]

 

 

 

《로마사》는 확실히 로마 역사를 공부할 때 꼭 읽어야 책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연도가 19세기 중반이다. 《로마사》 1권은 1854년에 출간되었다. 여러 번의 개정이 있었지만, 내용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역사가가 로마를 보는 관점과 현재의 역사가가 로마를 보는 관점은 차이가 있다. 《로마사》가 발간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백 오십여 년 동안 역사학자들은 로마와 관련된 수많은 정설에 도전했다. 그 과정에서 오랜 세월 동안 학계에 자리 잡고 있던 정설이 뒤집히기도 했다. 로마 역사의 수수께끼를 밝혀 줄 새로운 자료가 발견된다면 몸젠이 《로마사》를 통해 제시한 정설 또한 뒤집힐 수도 있다. 따라서 몸젠의 《로마사》를 ‘유일무이한 로마 역사서’로 극찬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이 책은 현시점에 눈높이를 맞춰서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과거 19세기에 통용되던 인식과 정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몸젠은 로마에 유행한 전염병의 원인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이 내용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라티움 지방 평야는 거대한 자연의 각축장이었다. 천천히 형성된 하천 지형과 굉장한 화산 폭발 등이 한둘씩 지층을 형성했으며, 이 지층 위에 장차 세계 패권을 쥐게 될 민족이 결정되었다. (중략) 대지가 끊임없이 요철처럼 굴곡을 반복하는 가운데 겨울이면 그 사이에 늪이 형성되는데,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늪에 가득한 유기물이 부패하면서 각종 유독 가스가 발생한다. 여름철이면 이런 유독 가스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그 지역에 전염병을 발생시켰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농경 피폐와 황제의 실정으로 야기된 농경 피폐로 인해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견해는 잘못된 것으로, 사실 그 원인은 다만 강수량의 부족에 있으며 그것은 수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다. [2]

 

 

몸젠의 주장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늪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는 로마의 대재앙이 된 전염병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로마의 전염병의 원인을 설명한 기존의 주장(황제의 실정, 농경 피폐)들은 잘못 됐다.’

 

 

 

 

 

 

 

 

 

 

 

 

 

 

 

 

 

 

 

* 최석민 《초대하지 않는 손님, 전염병의 진화》 (프로네시스, 2007)

* 로버트 H. 욜켄, E. 풀러 토리 《우리는 모두 짐승이다》 (이음, 2010)

 

 

 

전염병은 로마 제국의 멸망을 재촉한 원인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로마를 덮친 전염병의 영향으로 날마다 5,000명의 로마인이 죽었다고 기록했다.[3] 고대 로마인들은 전염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알지 못했고 말라이아, 페스트 등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 다니엘 푸러 《화장실의 작은 역사》 (들녘, 2005)

* 칼 세이건 《혜성》 (사이언스북스, 2016)

 

 

 

이미 눈치를 챈 분들도 있을 것이다. ‘독가스가 전염병을 유발한다’는 몸젠의 주장은 과학적이지 않은 구시대적 내용이다.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 등이 ‘세균’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전염병의 원인을 ‘독가스’라고 생각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늪에서 생기는 악취, 밤하늘을 지나는 혜성의 꼬리에서 나오는 독가스를 ‘미아스마(miasma)’라고 명명했다. 의학자들은 의학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허술한 주장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910년에 핼리 혜성이 지구를 스쳤을 때 대부분 사람은 지구에 충돌하는 혜성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다. 혜성의 꼬리에 나오는 독가스가 지구를 덮칠까 봐 두려워했다. 히포크라테스의 미아스마설은 19세기 중반까지 널리 신봉되었고, 몸젠도 미아스마설을 믿고 있었다.

 

 

 

 

 

 

 

 

 

 

 

 

 

 

 

 

 

 

 

* 재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문학사상사, 2005)

* 김동진 《조선의 생태환경사》 (푸른역사, 2017)

 

 

 

생태환경사 관점으로 몸젠의 주장을 수정하자면, 전염병을 일으킨 진짜 범인은 ‘늪에 서식하는 세균’이다. 범람이 잦은 강은 늪이 발생하기 쉬운 최적의 환경 조건이다. 그렇지만 이 땅에 세워진 국가가 강대국으로 발전하려면 반드시 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15세기 조선도 티베레스 강이 낀 초창기 로마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 선조들은 강 주변의 늪을 개간하여 벼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분변을 거름으로 삼아서 지은 논에는 세균이 우글우글하다. 논 주변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이질과 같은 전염병에 시달려야 했다. 조선에 창궐한 전염병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전염병성 세균의 진화를 유리하게 해준 큰 행운이 농경 발생이고, 더 큰 행운이 도시의 발생이라고 주장한다.[4] 몸젠은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지켜낼 줄 알고, 전쟁으로 빼앗은 땅을 비옥한 땅으로 일구어내는 로마인의 농경문화를 ‘위대한 로마’로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는 농경문화가 만든 그림자, 그 어둠속에 서식하면서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세균의 위력을 몰랐다. 세균은 강력한 제국을 초토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세균의 힘을 빌려서 패권 국가의 위치를 점하려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인류의 전쟁은 세균을 기쁘게 해주는 ‘세 번째 행운’이다.

 

 

 

 

 

[1] 《몸젠의 로마사 1》 66~67쪽 (글쓴이가 임의로 편집했음)

[2] 같은 책, 47쪽과 49쪽 (글쓴이가 임의로 편집했음)

[3] 로버트 H. 욜켄, E. 풀러 토리 《우리는 모두 짐승이다》(이음, 2010) 66~67쪽

[4] 재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반양장본) 299~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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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8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8 17:49   좋아요 0 | URL
재미는 확실히 <로마인 이이야>가 최고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가 <로마사>를 읽으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2017-10-18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8 17:53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에서 역사는 다른 문명의 장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공부하는 학문으로 전락했어요. 이렇다 보니 문명의 쇠퇴를 초래한 약점이나 문제점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역사를 공부할 때 인물이나 문명의 약점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점만 보게 되고, 특정 인물이나 문명을 과대평가하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감은빛 2017-10-19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후배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역사책으로 인식하고 열심히 읽길래,
그건 소설에 가깝다고 말해줬더니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구요.

[몸젠의 로마사] 읽고 싶긴 하지만, 당분간 아니 꽤 오랫동안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조선의 생태환경사]도 나오자마자 사뒀는데, 아직 손도 못 댔네요.

cyrus 2017-10-20 15:03   좋아요 0 | URL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재미있는 건 누구나 인정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책에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페크pek0501 2017-10-2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 균 쇠》를 꼭 읽으려고 했는데 아직 구입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대충 알고 나면 그 책이 덜 궁금해지는 면이 있어요.

cyrus 2017-10-20 15:0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반값 할인 제도가 있었던 시기에 주문했는데, 바로 읽지 않았어요.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 읽는 일이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