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김민철.김승은 외 지음,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 생각정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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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청사는 일제가 1916년 경복궁 궐내에 지은 건물이다. 해방 이후 중앙청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됐다. 일제 잔재 청산과 경복궁 복원 정비계획의 일환으로 1996년 역사적인 철거 사업이 시작됐다. 역사의 흉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일제 잔재가 사라졌다며 쾌재를 부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조선총독부가 사라지면서 일제 잔재를 말끔히 청산한 것일까? 친일파 연구와 일제 잔재 청산 운동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읽고 내리게 된 답은 분명 ‘아니다’다.

 

해방된 지 반세기 가까이 흐른 오늘날까지 식민통치 기간 중 일본이 저지른 만행의 절정을 이뤘던 강제연행의 실상은 아직도 거의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 전역을 지배하기 위해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의 총알받이로 수천여 명의 젊은 조선인이 동원되었고, 이중 절반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국땅에 잠들어 있다. 일본군의 점령지 전역에 버려져 있는 유해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피맺힌 한을 안고 숨져간 조선인들의 유해 발굴과 송환은 물론 강제징용에 관한 실태조사 등을 위한 별다른 노력이나 관심조차 없었던 게 오늘의 엄연한 현실이다. 지금도 일본, 중국, 러시아 땅은 물론 국내에서 강제징용이나 징병, ‘일본군 전용 성노예’ 등 여러 형태로 일제에 끌려갔던 피해당사자나 그 가족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불치의 병으로 혹은 가난으로 고통과 시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강제연행 희생자 및 그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의 실상, 일본 곳곳에 남아있는 강제징용 · 징병의 현장 등에 대한 탐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이 책은 무엇 때문에 강제연행의 실상이 뒤늦게나마 밝혀져야 하는지, 그리고 왜 일본 정부의 전쟁책임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지를 밝혀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억울한 희생자들을 부끄러운 과거 역사의 한 부산물로만 간주, 은폐와 망각의 세월 속에 묶어 두려는 우를 범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일제강점기 피해 역사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에 걸림돌이 되는 ‘만악의 근원’이다. ‘경제문제 해결’, ‘군부가 일으킨 정권의 적법성 인정’이라는 박정희 정권의 필요와 ‘식민지 피해청산’의 부채를 경제협력이라는 포장지를 씌워 해소하려는 일본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박정희 정권은 ‘역사적 소명의식’에 따라 한일협정을 타결했다고 강변했으나, 청구권 자금 3억 달러에 민족의 자존심을 판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한일협정을 규탄하는 극렬 반대 데모를 계엄령으로 잠재운 상태에서 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한일협정은 미국의 중재가 주효한 결과이기도 했다.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통합 전략의 목적으로 한일 양국을 종용해 국교 정상화를 서둘렀으며 실제 이를 뒷받침하는 외교문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뉴라이트(New Right) 또는 몰상식한 ‘가짜 보수’들은 불행했던 과거사를 강조하는 일은 한일 양국 관계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사 청산 노력을 ‘색깔론’으로 덧씌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본 극우 세력의 역사관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아베 정부와 일본 극우 세력들은 침략전쟁을 오히려 정의로운 전쟁으로 미화한다. 아베 정부는 야하타 제철소,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 섬(군함도) 등을 묶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수 산업의 중심지로 ‘침략의 역사’를 증언하는 곳이다. 하지만 일본은 ‘근대화를 일궈낸 일본 산업의 역사’로 보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쓰비시는 일본 제국주의와 함께 성장하며 세계사에 큰 해악을 끼친 전범(戰犯) 기업이다. 일본 근대화의 기초를 닦은 산업 발상지라는 점을 들어 세계유산 등재를 책동하는 것은 일본의 저급한 역사 인식을 증명한다. ‘수인번호 503번’과 뉴라이트 세력들은 1965년 한일협정이 과거사 청산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한일협정을 맺은 지 정확히 50년 후에 ‘수인번호 503번’은 위로금 10억 엔(한화 100억 원)을 받으려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였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뉴라이트는 ‘전범 기업’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본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지원받은 박정희를 ‘근대화를 일궈낸 구국의 영웅’으로 미화한다.

 

영화 <군함도>로 불거진 논란이 당분간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현재 상황이 걱정스럽다. ‘군함도’는 우리에겐 뼈아픈 역사의 현장인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군함도’는 강제징용의 역사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지로 끌려와 강제노동으로 혹사당했던 가슴 아픈 현장들이 많다. 홋카이도에서 류큐(오키나와)까지 일본 어디를 가나 강제동원 현장이 아닌 곳이 없다.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중국 하이난 섬이 우리 민족의 한이 깊게 서린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하이난 섬의 학살’을 처음 알았다. ‘군함도’가 알리기 시작하면서 강제징용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아직도 이역만리에서 떠돌고 있는 ‘조선인들’이 있다.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수록 우리는 지금부터 기억해야 할 그 ‘무엇’을 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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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07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함도가 현재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어 있다고 들었다.
진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등재를 철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그게 조선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걸 재확인하던가.
앞으로 그렇게 되려나?

난 조선총독부 청사 저렇게 없애도 되는 건가?
회의스럽더군.
독일은 유대인 수용소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잖아.
그건 어찌보면 일본과 친일파들에겐 손 안 대고 코를 플게 해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
그러니 맨날 일본에 당하고 친일파 청산 못하는 거 아니겠니.쩝

cyrus 2017-08-07 15:14   좋아요 1 | URL
등재 철회가 불가능해요. 일본이 미국 다음으로 유네스코에 지원금을 부담하고 있어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가 일본 정부에게 일본 근대 산업시설이 군사적 필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리도록 권고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올해 12월까지 권고 조치를 따라야 하고, 이 권고 조치를 반영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아베가 버티고 있다면, 무시하고 넘어갈 것 같습니다.

transient-guest 2017-08-08 10:29   좋아요 2 | URL
한일관계의 상당부분은 미국의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한동안 위안부이슈가 세계적으로 한국에 유리하게 공론화 되었던 것도 결국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고 봅니다.
조선총독부청사는 일단 지어진 위치가 나빠서 철거 아니면 이전 이렇게 두 가지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김영삼 대통령이 원래 그리 생각이 깊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정치적인 쇼였는지 암튼 그리 됐네요. 한 마디로 좀 mixed opinion이 있어요 저는.

2017-08-07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7 15:24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과거서 청산이 더딘 이유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것이 결정적인 실패 요인이고요. 정부는 손 놓고 있는데 민간단체들은 일본이 은폐한 역사를 찾아내서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7, 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국내 상황이 어수선했을 때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들 그리고 일본의 과거사를 인정하는 소수의 일본인들이 모여 과거사 진상 규명에 나섰고, 집회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사뿐만 아니라 수십 년 전부터 과거사 진상 규명에 나선 분들의 노력도 알아야 합니다.

표맥(漂麥) 2017-08-07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봤습니다... 이런저런 평은 생략하고... 전 송준기보다 소지섭의 이미지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cyrus 2017-08-07 15:26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는 안 봤어요. 이 책을 읽으니까 영화를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

레삭매냐 2017-08-0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군함도가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외면
받고 있는 상황에서, 픽션은 거둬내고 역사
적 사실만이라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본이 유네스코 권고안을 아직까지도 시행
하지 않고 버티는 걸 보면 정말 할 말이
없네요.

cyrus 2017-08-07 16:14   좋아요 0 | URL
유네스코에 돈줄을 대고 있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리고 503번 정부가 일본 앞에만 서면 작아져서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에 소극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이러니 일본 정부가 떳떳했던 겁니다.

syo 2017-08-07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의 글과 같이 읽으니 저 작자들의 몰염치는 도대체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저 거대하고 거대하다는 느낌입니다.

cyrus 2017-08-07 18:23   좋아요 0 | URL
한일협정의 문제점을 알게 됐을 때 여러 번 화가 났습니다. 여태까지 그걸 몰랐던 제 자신이 화가 났고, 박씨 부녀가 싸놓고 간 두 개의 똥을 쉽게 처리할 수 없다는 점에 화가 났습니다. 그 똥을 좋다고 우기는 극우세력들이 한심해 보였습니다.

기억의집 2017-08-07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군함도만이 아니고 오키나와에 간 적 있는데 그 곳 전시관옆에 수많은 우리나라 청년들이 태평양전쟁의 희생자로 묻혀있다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류감독이 군함도를 찍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역사 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였나 싶어요. 우리 나라 주류 역사학자들이 절대 발설하지 않았던 제국주의 시대의 희생을 이제 우리가 추적해가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cyrus 2017-08-07 18:28   좋아요 0 | URL
만약에 국정교과서가 통과되었으면, 학생들은 1965년 한일협정의 장점만 나열된 내용을 배울 겁니다. 여기에 탄력 받은 뉴라이트 세력들은 한일협정의 한계를 밝힌 교과서를 ‘좌편향 교과서’라고 우겼을 거예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그림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역사를 쉽게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방식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역사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나 드라마로 역사를 이해한다면, 허구와 사실을 혼동할 수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8-07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이들이 한국 고대사의 왜곡을 말하는 반면, 현대사 왜곡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이 시급한 과제라 여겨집니다...

cyrus 2017-08-08 12:10   좋아요 1 | URL
친일파의 후손 대부분이 기득권입니다. 그들은 권력을 내세워서 숨기고 싶은 조상의 과거를 끝까지 숨길 겁니다.

transient-guest 2017-08-0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지난 이명박그네 정권이 그렇게 교과서 바꾸고, 여론조작을 했겠지요.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미래세대부터라도 말살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cyrus 2017-08-08 12:12   좋아요 1 | URL
가짜 보수들의 빅픽처, 이명박그네. 탄핵을 일찍 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싼 똥이 너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