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부터 내리 4일을 정말 말 그래도 푹~ 쉬었더니, 월요일 아침의 출근은 무척 벅차고 노곤하다. 나는 쉬고 노는 것을 일로 삼고 싶다. 예전에 밝혔던 것처럼, 손익계산은 신경 안쓰고 그냥 저냥 동네 후진 골목에 작은 서점 하나 차려 줄 여자만 나타나면 난 바로 팔려가 버릴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오랜만의 출근날은 아침부터 우중충했다. 난 이런 우중충한 모호한 날씨가 좋다. 후배 녀석이 물었다.
"오늘 비가 올 것 같아요, 눈이 올 것 같아요?"
"뭐? 음! 우중충한 인간들만 올 것 같다 겁난다."
기우였다. 별스런 일도 없어서, 하루 종일 농땡이만 부렸다. 이런 우중충한 날에 나는 줄창 센티멘탈해진다. 내가 이 우중충한 날에 누군가에게 그런 인간으로 다가가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일까? 난 센치해진 짠한 마음으로 혼자서 감상에 빠지곤 한다. 오늘 내 감상을 자극한 것은, 최진실 덕에 알게된 이은미의 노래 <애인있어요>다.
우선, 싸이월드에 가서 도토리를 무려 6갤 주고 이 노래를 샀다. 사던 김에,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 듣게 된 <가브리엘 오보에>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찾아봤다. 있는 건 <가브리엘 오보에> 밖에 없었다. 이 음악을 내 컬러링으로 바꿀 생각으로 오래 찾아봤는데, 컬러링 서비스로는 제공되고 있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아무튼 이 두 곡을 무한반복해 틀어놓고, 아무도 오지 않는 사무실에서 목청껏 불러 제꼈다. 가사가 애잔하다.
|
|
|
|
애인 있어요 -이은미-
작사 최은하
작곡 윤일상
아직도 넌 혼잔 거니 물어보네요
난 그저 웃어요
사랑하고 있죠 사랑하는 사람 있어요
그대는 내가 안쓰러운건가 봐
좋은 사람 있다며 한번 만나보라 말하죠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두었죠
그 사람 나만 볼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거야
가끔씩 차오르는 눈물만 알고 있죠
그 사람 그대라는걸
나는 그 사람 갖고 싶지 않아요
욕심 내지 않아요 그냥 사랑하고 싶어요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두었죠
그 사람 나만 볼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거야
가끔씩 차오르는 눈물만 알고 있죠 그 사람 그대라는걸
알겠죠 나 혼자 아닌걸요 안쓰러워 말아요
언젠가는 그 사람 소개할게요
이렇게 차오르는 눈물이 말하나요
그 사람 그대라는걸
|
|
|
|
|
뒤늦게 안 노래지만, 이 노랫말처럼 누구나 이런 애인 한 명쯤은 있지 싶다. 난 너무 많아서 탈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리 많지 않다. 또 그리 가까이 지내는 것이 아니어서, "좋은 사람 있다며 한번 만나보라 말하"지는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 노랫말의 주인공처럼, 누구나 마음 속에 숨겨둔 '애인' 하나쯤 있을테지만, 여기서 우릴 더욱 애잔하게 만드는 것은, 그 '애인'에게 말 못하고 계속 품고 살아간다는 것일테다. 아마도 그는 지금은 남의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합치되면 더욱. 그런데 '언젠가' 말할거라는데, 그때 되어봐야 머리는 백발이 되어있을테니, 그때쯤에는 "세월이 약이겠"다 싶다.
영상이 지나간다. 어린 시절, 먼 발치에서 지켜보던 동네 오빠, 그와의 행복했던 추억이 살포시 겹쳐지더니,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런 그를 보면서, 그의 행복을 빌지만, 그를 잊지못하고, 숨겨둔 '애인'으로 가슴속에 묻어둔채, 이제는 백발이 되어 서로 홀로 남아, 어느 가을날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오라버니였쎄여~"
말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닐까? 여간해서 나는 그 말을 입에 담기가 힘들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지금의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말할거야, 그 사람이 바로 너였다는 걸. 그래봐야 소용없는 짓. 그래서 난 말한다. "애인 없어요!" 이런 말은 가치가 떨어지지만 말이다. 다시, 난 말할 수 있을까?
** 얼마 전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읽은 바 있다. 사실 짧은 단상들을 모아놓은 것이지만, 읽어나가기가 여간 힘들었던 게 아니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 글을 늘그막에 썼던 모양이다. 주책이기도 하지! 그 나이쯤 되어서야 사랑을 그렇게 구석구석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나도 바르트처럼, 늘그막에 이러저러 떠벌일 사랑 건덕지라도 있어서, 주책을 떨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 엊그제 KBS 연예대상에서 황현희가 우수 남자 코미디부문상을 수상했다. 알고보니 이 친구, 나보다 한 살이 어리더군. 그의 코미디를 재밌게 봐왔던 나로서는 축하할 일이다. 황현희 PD라고 불리만큼, 올 한 해 인기도 많이 끌었다. 그는 머리가 좋아보였고, 머리쓰는 코미디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타개한 김형곤의 시사정치비판 코미디를 구사할 수 있는 유력한 후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황현희다.
그런 그가 수상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얼마 전에 모 단체에서 선정한 2008 나쁜 프로그램으로 ‘개그 콘서트’가 선정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개그맨들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걸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런 선택은 안 했을 것”
순간, 이상하다 싶었다. 머리가 좋아보였는데 수상소감이 별로다 싶었다. 아마도 수상 소식을 미리 전해듣고 소감을 준비했었던 것 싶은데, 이런 식의 수상소감은 별로다 싶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어제 뉴스들을 보니 이 황현희의 수상소감이 논란이 된 듯 하다. 대부분 경솔했다는 의견인 것 같은데, 내가 볼 때는 평소 그가 보여준 시니컬하면서도 명철한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그런 소감이었고 본다. 일단 말에 논리성이 결여된, 어린아이 생떼에 불과해 보이기 때문이다.
개그맨들이 아이디어 회의를 날밤새가면서, 굶어가면서, 고민고민해가며, 고생하면서, 한다는 것에 그 누가 이의를 제기할까 싶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노력끝에 짜낸 코미디라 하더라도, 그게 반드시 좋은 코미디가 되라는 법이 있는가? 사기꾼도 사기를 치기 위해 황현희 만큼 노력하고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날밤을 새기도 하겠지만, 그가 별을 달면서 이런 식의 소감을 피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교가 뭣하긴 하지만.
순간, 떠오른 것은 현 정부다. 이들도 수많은 밤을, 생각하고 고민할 것이다. 촛불시위때 나온 재미난 말들이 많았는데, 생각하지 말라거나, 진중권이 말한 이명박 대통령은 잠을 더 자야한다고 조소를 보낼때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노력을 많이하고 고민하고 날밤을 새워도, 그게 반드시 옳고, 선하고, 잘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생각하지도 말고, 노력하지도 말고, 잠이나 자라고 그럴까? 황현희의 그 수상소감을 듣고는 아찔해져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황현희는 아마도 그의 유행어를 본인 스스로 돌려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몇몇 잠 안 자고 일찍 일어나는 푸른 기와의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 누군가 나한테, 논쟁을 안하느냐는 물음을 했던 것 같다. 내 주제에 무슨! 난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냉혈치도 못 해서, 그리고 말도 느려서, 말 싸움에는 재주가 없다. 그렇다고 주먹 싸움에 능통한 것도 아니다. 요사이 알라딘 논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도 논쟁의 당사자가 되보고 싶다는.
아무래도 난 너무 백옥같이 선하고 맑아서, 안티가 없는 탓에, 이런저런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일테다. 그래도 논쟁은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논쟁을 통해 변화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게 사회건 개인이건 간에. 그래서, 앞으로는 논쟁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해 세치 혀, 아니 손가락을 휘둘러야 할까 싶다. 강마에처럼 독설도 쏟아내는 것은 어떨까? 그럼 내게도 안티가 생길까?
안티? 정신차리자. 애인부터 생기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