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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리스트니, 장자연 리스트니 뭐니 해서 시끌벅적하다. 우스갯말로 자연 사랑 못 받고, 연차 수당 못 받으면 이 시대의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가 아니란다. 하여간 두 리스트는 아직 끝을 보일 조짐이 없다. 사실상 4월은 뜨거울 것으로 예상됐다. 날씨 얘기가 아니다. 예년에 비해 요즘 날씨가 덥다지만, 내주쯤이면 다시 예년 기온을 회복할 것이란다. 그보다는 4월 말쯤 있을 재보선 때문에 이미 4월은 당연 뜨거울 것이었다. 이명박 정권 1년에 대한 평가라는 큰 명목아래 수세에 몰린 야당은 대반격을 준비해오던 차에, 정동영 전 장관의 불연 재보선 출마 선언에 4월은 더욱 뜨거울 참이었다. 연차와 자연 리스트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진 상태에서, 올게 오고 말았다. 

며칠 전 민주당은 단호히 정동영에게 공천은 못 준다했고, 정동영은 기다렸다는 듯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토요일(11일) 경향신문은 이에 대해 "끝내 갈라선 鄭-丁"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뭐 내가 여기서 정치평론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이 소식은 민주당 뿐만 아니라 전 야권을 긴장케 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민주당의 내분은 반격을 준비하는 야권에게는 치명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이번 재보선은 예상 외의 다른 구도에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대반격을 노렸던 야권이 그 구상대로 재보선에서 승리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의 鄭-丁 갈등이 끝내 야권의 기대를 무너트릴지,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鄭-丁 둘 중에 누가 이기고 끝내 살아남을지이다. 

언론에선 이 둘의 갈등을 놓고 향후 결과에 대한 설들을 풀어놓는다. 과연 정동영은 제2의 이인제가 될 것인가? 정세균 대표가 지역구를 포기하면서까지 던진 승부수가 통할 것인가? 등등. 이번 재보선 결과에 따라 정동영이냐 정세균이냐 두 정 씨 중 하나는 골로 갈 가능성이 크다. 두 거물 정치인의 향후 정치생명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과연 어느 정씨가 오래 갈까? 

사실 이 두 사람은 정씨이지만, 같은 정씨는 아니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이 둘을 구분하는 것으로 그들의 성을 한자로 표기하는 것을 보면 이 둘은 전혀 같은 성씨가 아닌 것이다. 정동영은 鄭씨이고 정세균은 丁씨이다. 대표적인 우리나라 정씨들이다. 아참 정씨에는 程씨도 있다. 정씨가 이 3개 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정씨가 이 셋중 하나다. 丁씨 중에는 다산 정약용이 이 정씨다. 鄭씨에는 누가 있지? 잘 모르겠다. 난 정씨가 아니니까. 

그런데, 鄭도 정, 丁도 정이면 잘 구분이 안 간다. 우리나라에 丁씨의 "본관은 나주(羅州), 창원(昌原), 영광(靈光), 의성(義城) 등 10여 본"있단다. 鄭씨에는 "경주(慶州), 동래(東萊), 연일(延日), 온양(溫陽), 진주(晉州), 하동(河東), 해주(海州) 등 120여 본"이 있다. 헐, 鄭씨가 한참 많구나. 아무튼 같은 鄭씨여도 본관은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다가 한자가 다른 정씨면 말해 무엇하리. 

여기서 이 두 정씨를 구분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어 소개한다. 그 둘의 성씨에 어쩌면 이 둘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 담겨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먼저 정세균의 丁씨의 발음은 [정]이다. 그런데, 정동영의 鄭은 [정:]이다. 이 둘의 차이는? 그렇다 丁은 짧게, 鄭은 길게다. 그런데, 미묘하지만 길고 짧은 것 뿐만 아니라, 발음 자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깊게 가자면 전문적인 부분까지 언급해야 하겠지만,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의 자모에 대한 발음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왔다. 바로 언어의 역사성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ㅓ]발음과 한 100전의 [ㅓ]발음은 조금 다를 것이다. 국어학자들에 의하면 지금은 모두 'ㅓ'로 표기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발음이 약간씩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다른 발음을 표기에는 반영하지 않고, 다만 발음상에 장음 표시를 함으로써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 [ㅓ]발음이다. 대부분의 'ㅓ'는 짧게 발음하지만, 정동영의 鄭은 길게 발음하되, 이는 단순이 [ㅓ]를 길게하는 것이 아니라, [ㅡ]와 [ㅓ] 사이에서 길게 발음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정동영의 鄭은 [즈엉-] 정도로 구수하게 발음해야 한다. 장음 표시가 된 [ㅓ] 발음이 대충 이와 비슷하다. 뉴스에서 아나운서들이 이런 발음을 가끔 정확하게 하는 것을 보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없다'의 발음이다. 이를 딱부러지게 [업따]로 발음하는 아나운서라면 이는 제대로된 아나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아나운서들은 애써 정확히 발음한답시고 [읍-따]로 힘주어 발음한다. 

재밌는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어'를 명확히 구분해서 발음하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잘 구분되는 단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거지'다. 내가 볼 때 거지를 [거지]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다. [거:지]라고 발음하거나 혹은 [그:지]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렇다. '거지'는 [그어-지]다. 거지를 [거지]라고 하면 왠지 거지같지 않다. 이런 [그~지] 같은 넘을 봤나 해야, 진짜 거지를 본 것만 같다. 

우리 일상에서는 잘 구분을 하지 않지만, 이런 예들이 의외로 많다. 더불어 장음으로 구분되는 단어들도 몇몇 있다. 밤, 배, 눈 등등이 그렇다. 어두운 밤은 무서우니까 빨리 지나라고 짧게 발음하고 먹는 밤은 맛있으니까 오래 먹어야하니 길게 발음한다. 저 하늘위에서 내리는 눈은 그 먼데서 오자면 얼마나 오래 와야 하겠는가? 그러니 길게 발음하고, 보는 눈은 작으니까 짧게 발음한다. 배는 좀 많다. 불룩 튀어나온 배는 보기도 좋지 않고 건강에도 나쁘니 쏟 들어가야 좋다. 그러니 짧게 발음한다. 저 멀리 지나가는 통통 배는 조각배모냥 작고 작으니 이도 짧게 발음한다. 먹는 배는 그 얼마나 달고 맛있는가? 누가 뺏어먹을까 두려워 그 발음은 짧아야 한다. 어른에게 절할 때의 배는 몸가짐을 바로하고 천천히 예를 표해야하므로 경망스럽게 후딱 해치워서는 안되는 천천히 길게 발음하고, 한 배, 두 배, 자꼬만 갑절로 많아지는 배는 아시다시피 길게 발음한다. 이런 예들이 허다하지만 이만 줄인다. 

자! "끝내 갈라선 鄭-丁"을 제대로 발음해 보자? 해 보았나? 정답은 "끝내 갈라선 [즈엉~]과 [정]"이다. 잘 했는가? 새삼스러운 것이지만, 우리 일상에서 이런 미묘한 발음차이 하나만도 잘 기억하고 사용하면, 나쁠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거기에 목숨걸 필요는 없다. 아참, 내가 볼 때, 이름만 놓고 보면 이번 재보선 이후 정동영은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만 같다. 丁은 짧고 鄭은 기니 말이다. 맞다. 헛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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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4-12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넹...

무스탕 2009-04-12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으지 같은 즈엉~동영이 읍~따면.. 이라고 丁이 생각했겠어요. ㅎㅎ
재밌습니다 :)

근데 참 오랜만이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04-1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간만이예요? 잘지내시죠?
역시 정치란 똥통에서 뒹굴어도 길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순오기 2009-04-12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여전히 잘 살고 있으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어도 되는 거죠?^^

마노아 2009-04-13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난 예시와 함께 오셨군요! 이런 특강(?) 반가워요!

마늘빵 2009-04-1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한글 수업이었어요. ㅋㅋ 근데 오늘 아침에 그 좃선에서 의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었다는 기사가... 으음. 장자연 사건은 왜 수사 안해 자꾸.

승주나무 2009-06-20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없음

안녕하세요. 승주나무입니다.
알라딘 서재지기와 네티즌들이 함께 시국선언 의견광고를 하려고 합니다.
알라디너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참여의사를 댓글로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요는 아닙니다^^;;

즐찾 서재들을 다니면서 댓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남기는 스팸성 댓글이지만 어여삐 봐주세요~~~

http://blog.aladdin.co.kr/booknamu/2916466

 

   
 

상장

위 사람은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성적이 우수하므로 상장을 수여함.

19○○년 ○○월 ○○일

★★국민학교장

 
   

많이들 받아봤을 법하다. 국민학교 시절 개근상 한 번 못 타본 나로서는 설상가상으로 공부도 잘 못해 그 흔해빠진 상장 한 번 변변히 타보지 못한 쓰라린 기억이 있다. 불쌍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국민학교 시절 그나마 받았던 추억의 상장이 한 두 장 쯤은 있다. 그런데 의문은 그 상장을 내가 왜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학업성적이 우수"했던 것은 절대 아니고, 그렇다면, '품행'이 참 '방정'맞아서 주었던 것일까? 그것도 의문인게, 내가 그리 '방정' 맞은 놈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무슨 놈의 상장은 '방정'맞은 사람에게 준다는 말인가?

다들 아시겠지만, 이 '방정'이란 말은 거의 극과 극의 다른 의미를 가진 동음이의어다. 하나는 한자어고, 하나는 순우리말인 듯 싶다.

   
 

방정01 [명사]
찬찬하지 못하고 몹시 가볍고 점잖지 못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
방정을 떨다/입이 방정이다/시집갈 나이의 처녀가 조신하지 못하고 웬 방정이냐?/김 찰방이란 자의 요망과 방정 바람에 큰일을 잡쳐 놨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박종화, 임진왜란≫

방정02(方正) [명사]
‘방정하다’의 어근.
방정-하다 [형용사]
「1」말이나 행동이 바르고 점잖다.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므로 상장을 수여함.
「2」모양이 네모지고 반듯하다.
엄격한 규율을 느끼게 하는 방정한 해서체의 필치.
「3」『북한어』질서나 규모가 있거나 또는 체계가 서 있다.
수백 년을 묵은 이 잣나무 숲은 천연의 숲으로서의 너무나 방정한 줄을 이루고 있었고 또 그 첩첩한 년륜에 비해서는 너무나 배좁게 들어섰다.≪고난의 행군, 선대≫

 
   

우리말 '방정'은 부정적 의미를 가진다. 흔히 '방정-맞다'와 같이 쓰여서 조신치 못하고 까부는 이에게 "이런 방정맞은 놈"이라고 일침을 가할 때 자주 쓰인다. 이 방정이 심할 때는 특별히 '오두방정'이라고 해서 "몹시 방정맞은 행동"을 말하는데, 흔히 "오두방정을 떨다", "웬 오두방정이냐!"와 같이 훈계조로 쓰일 때가 많다.

일상에서는 아무래도 이 우리말 방정이 자주 쓰인다. '방정이다, 방정맞다, 방정떨다" 등으로 어른들의 입말에서 흔히 나타난다. 요즘 젊은 애들은 특히나 "방정맞아서" 그런지 이 말을 잘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자어 '방정(方正)'은 긍정적 의미를 가진다. 모 방에 바를 정 자를 쓰니까, 풀이하자면, 모양(행동, 품행)이 바르다, 란 뜻이다. 나름 쉬운 말인데, 우리말 '방정'과 연관되어 좀 우습게도 들리는 말이다. 내가 볼 때 이 말은 90% 이상이 상장용 아닐까 싶다. 그 외에서 사용된 예를 찾기가 참 어렵다. 위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용례를 보다. '방정-하다'의 1번 뜻 외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모양이 네모지고 반듯하다."를 우리는 방정하다라고 잘 표현하지 않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말은 상장용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방정(方正)'과 '방정'은 발음상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둘 다 발음은 짧게 [방정]이다. 그러나 사용 문맥에 따라 우리는 기가 막히게 이 동음이의어를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그런 상황에서 단순히 명사형 '방정'으로 나타나는 예를 거의 없다. 대부분이 어미를 동반하는데, 이 둘이 동반하는 어미를 상보적 분포를 보인다.

우리말 '방정'은 앞에서도 보았지만, '-맞다, -이다, ~ 떨다' 등과 결합하여 발화된다. 반면, 한자어 '방정'은 다소간 제한적이다. '방정-하다'에서처럼 거의 '하다'와만 결한하고 있는 것 같다. '방정-하다'를 활용하여 '방정한 ~'이라는 표현으로 대부분 쓰이고, 부사형으로 '방정-히-가 쓰인다. 이렇게 문맥과 활용 어미 등에 따라 거반 정확히, 자동적으로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어, 이 모양이 같지만 그 의미가 정반대인 두 단어는 혼돈스럽지 않기는 하다.

그런데, 상장 속의 '품행이 방정하여'란 말을 들을 때면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런 상장을 받은 사람중에 정말 품행이 방정(方正)했던 이가 있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방정맞아서 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하여간 재미있다.

이 외에도 다른 방정들이 몇 개 더 있다. 방정(方釘)은 "몸통의 단면이나 못대가리가 네모진 못"을 가리킨다. 그리고 수학의 '방정식' 등에서 보이는 방정(方程)은 "1세기 무렵에, 중국의 예수(隸首)가 만들었다고 하는 수학서인 ≪구장산술≫ 가운데 한 장(章). 일차 연립 방정식을 가감법(加減法)으로 푸는 것을 다루다"는 뜻을 가진다.

방정 중에 또한 멋진 의미가 담겨 있는 말로 방정(芳情)이 있다. '향기, 향내'를 의미하는 芳자와 뜻 정 자를 썼는데, 이 말의 뜻은 "향기로운 마음. 또는 꽃답고 애틋한 마음."을 가리킨다. 비슷한 뜻으로 "방심(芳心), 방의(芳意)"가 있다. 이 말은 "주로 편지글 따위에서, 다른 사람의 친절한 마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는 '방지(芳志)'가 있다.

하여간 방정에는 5개의 방정이 있다. 그런데 방정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춘향전에 등장하는 주연급 조연, 바로 '방자'다. 방정 맞고, 방정 떠는 인물로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무래도 이 방자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방자는 사실 이름이 아니라, 말하자면 직책명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방자의 뜻은 다음과 같다.

   
  방자02(房子/幫子)
고려 시대에, 중국의 사신과 그 수행원이 머무는 사관(使館)에 속하여 허드렛일을 맡아보던 잡직.
조선 시대에, 지방의 관아에서 심부름하던 남자 하인.
 
   

그러니까, 옛날에 방자는 춘향전에 나오는 이도령의 그 방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많은 방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방자는 다른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이런 방자한 놈"하면서 방자에게 호되게 야단을 칠 때에 쓰이는 또 다른 '방자'다.

   
 

방자03(放恣)
‘방자하다02’의 어근. 
방자하다  [방ː---] 「형용사」
「1」어려워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없이 무례하고 건방지다. ≒자방하다01(恣放―).
방자한 태도/어른 앞에서 방자하게 굴지 마라./방자한 발설을 거침없이, 목숨을 걸고 뱉어 낸 곽무출이는 오히려 자세조차 흩뜨리지 않고 태연자약하다.≪유현종, 들불≫/대장이 부하에게 말하는 공석에서 그따위로 무엄하고 방자하게 말대답하는 것을 어떻게 용서하란 말이냐.≪홍명희, 임꺽정≫
「2」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노는 태도가 있다.
나라에 큰 죄를 지어 이 섬에 유배 온 중죄인이 죄인 된 분수를 저버리고 방자한 생활을 했으니 이런 형벌을 받음은 마땅한 일이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모두 모두 빨리 취하고 싶어서 웃고 떠들며 방자하게 마셔 대고 있었다.≪박영한, 머나먼 송바 강≫

 
   

이 방자는 앞서의 한자어 방정과는 달리 부정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한자어 방정과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활용하여 쓰인다. 거반 '-하다'와만 결합하여 쓰인다는 점이다. 아무튼 춘향전의 방자는 간혹 '방자'할 정도의 품행을 보이기도 하였거니와, 아무래도 '방정(方正)'과는 거리가 먼 '방정'맞은 방자(放姿)한 놈이었기도 했을 것이다.

방자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리말의 방자는 "남이 못되거나 재앙을 받도록 귀신에게 빌어 저주하거나 그런 방술(方術)을 쓰는 일"을 가리킨다. 흔히 '방자질'이라고 하고, '방자하다' 혹은 '방자질하다'처럼 쓰인다. 남을 저주하고 무고(巫蠱)하는 것을 우리말로 '방자'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꽃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가리켜 '방자(芳姿)'라고 한다는 사실이다.

방정과 방자가 가지는 여러 동음이의어 속에는 참 거리가 멀고도 다른 의미들이 가득 숨겨져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이런 낱말의 뜻은 사용되는 문맥과 상황 속에서 거의 전자동적으로 구분되어 사용하지만, 보다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사용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언어생활과 풍부한 언어구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여간 난 조금 방정맞은 데가 있어서 그다지 방정하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방자한 것까지는 아니니 방자 놈보다는 격이 좀 높은 데가 있으며, 때로는 참 예의바르고 아름다운 내 모습을 사람들은 방자하다고 칭송하기도 한다. 말놀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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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이 현재 시각으로 대략 1시간 밖에 안 남았네요. 그것은 제 20대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의미하기 하답니다. 오늘은 후배 녀석들과 함께 월미도의 바다 바람을 새차게 맞고 왔습니다. 폭죽도 신나게 태우고, 날아오는 야구공도 힘차게 날려보냈습니다. 속은 시원해 지더군요. 그러나 지금은 그 마지막 1시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말이 있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지만, 이는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한다는 뜻이지요.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는 지극한 송구영신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 지극함에도 무언가 허전함이 남는군요. 오늘은 그 허전함을 채워야 할 듯 합니다.

얼마 전 우리 학교에 유학 온 중국인 학생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 고전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 저보다 우리나라의 고전 문학에 무척이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중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많은데요,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다가 중국에서 유학와서 한국어학을 전공하는 학생에 대해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심코 그 사람과 서로 친구냐는 질문을 그 중국인 학생에게 했는데요, 그 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친구는 아니고, 여기(한국)와서 만났다"고 대답하더군요. 그 대답을 듣고 저는 소통이 잘 안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질문의 요지는 그 두 사람이 나이가 같느냐는 것이었지요.

그 중국인 유학생은 제 질문의 요지를 알아차리지 못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재차 질문을 했지요, 두 사람이 나이가 같느냐고. 그제서야 자신이 그 사람보다 나이가 한 살 많다는 대답을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이 대화 가운데 있었던 불소통의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했습니다. 제가 '친구'라고 말 했을 때에는 그것은 단순히 '동년배(同年輩)'를 의미했습니다만, 그 중국인 유학생은 그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친구'라는 말이 가지는 아름다운 의미의 넓이를 너무 협소하게만 인식하고 사용하여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약간의 석연찮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친구'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았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친구'하는 한자어로 '親舊', 그러니까 친할 친(親)자에 예 구(舊)자를 써서,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말합니다. 비슷한 말로 '친고(親故)'라고 하기도 합니다. 구(舊)와 같은 뜻의 예 고(故)자를 바꿔쓴 것이지요. 여기에서 파생되어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지요. 오늘날 한국어 화자에게는 후자의 의미로도 쓰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담화 상황에서는 그 의미가 보다 축소되어 "나이가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입니다.

그러나 '친구'란 말의 본연의 의미를 되새길 때,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은 얼마나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친구'란 말이 그 의미가 극히 축소되어 사용되고 있는 요즘의 언사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친구를 갖지 못하는 이기적이고 몰인정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이 자꾸 계속되면서 아까 그 중국인 유학생이 '친구'라는 말의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저는 오히려 그렇지 못함에 부끄러워 지더군요. 괜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2007년의 세밑을 20대의 마지막 시간으로 보내면서, 송구영신을 준비하는 저에게 이 '친구'란 말이 더욱 각별해지더군요.

이제 30분이 남았습니다. 2007년이란 시간이 말이지요. 곧 2008년 무자(戊子)년 새해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송구영신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2007년을 보내고 2008년을 맞이하는 것, 2007년이란 옛 것을 멀리 보내고, 2008년의 새로움을 기쁘게 받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옛 것을 보냄에 있어, 결코 '송구(送舊)'할 수 없는 단 하나가 있다면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곧 친구(親舊)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그런 친구를 꼽는다면, 많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 2007년을 돌아보면서는, 열심히 사귀고 지내온 이곳 알라딘의, 알라디너 여러분들은 비록 오래지는 않았지만, 결코 가벼울 수 없을 만큼의 인연으로 가깝게 사귀어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만큼 그 어떤 친구보다도 여러분들께서는 저의 진정한 '친구(親舊)'임을 확신합니다. 결코 '송구'할 수 없고, '영신'으로 인해 잃어버릴 수 없는 가장 귀한 존재, 제게 그것은 '친구(親舊)'이고 이 안에 여러분 알라디너께서 가득 자리하고 계시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배터지지 않을 만큼 받아 드시기 바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참고로, 사전을 찾아보면 '친구'라는 표제어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친구(親舊)이고, 다른 하나는 음은 같지만 그 뜻이 다른, 즉 동음이의어로 '친구(親口)'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구자가 예 구(舊)자가 아니고 입 구(口)인 것이 다르지요. 그런데 그 하나 차이로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진답니다. '친구(親口)'라는 말의 뜻은 "숭경의 대상에 대하여 존경과 복종을 나타내려고 입을 맞춤. 또는 그런 행동."을 가리킵니다. 진정 존경하는 상대에게 표하는 최상의 행동이 바로 이 친구(親口)입니다. 보통 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신부님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바로 이 '친구'인데요, 그 친구의 행위를 여러 알라디너 여러분들께 바치고픈 마음 간절합니다. 손이 아니라 볼에 살포시. 앗! 그럼 그건 뽀뽀가 되나요? 아무튼 여러분 가정에 평안과 행복과 기쁨과 건강과 만사형통의 큰 축복이 가득한 2008년 새해가 되시길 모든 위대하신 분들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이상 10분 남은 20대의 마지막 시간에, 인천에서, 멜기세덱이, 여러 알라디너 제현들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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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8-01-01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30대에 입성하신걸 축하드립니다.:)
전 뽀뽀해주시는거 손도 좋고 볼도 좋아요,,,우하하
암튼 좋은 글 감사해요,,,알라딘의 좋은 親舊이며 親口인 멜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와요~.

멜기세덱 2008-01-01 18:04   좋아요 0 | URL
언제 뵙게 되면 뽀뽀해 드릴게요...ㅋㅋ
아참, '친구(親口)'는 '-하다'가 붙어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숭경의 대상에 대하여 존경과 복종을 나타내려고 입을 맞춤. 또는 그런 행동"을 '하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親口인 멜기'는 좀 이상하지요...ㅋㅋㅋ

순오기 2008-01-0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30대에 입성하신 걸 축하 2 ^^
친구의 의미를 새기는 글, 감사합니다!
앗, 손등이 따끈하던 이유를 알겠네요~ㅎㅎㅎ 님도 같은 복을 누리시길!!

멜기세덱 2008-01-01 18:05   좋아요 0 | URL
30대 입성이 축하받을 일이군요...ㅋㅋ
미래의 장모님이 되실지도 모를 순오기님께
올 2008년 무자년에는 크게 이쁨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ㅋㅋ

마늘빵 2008-01-01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친구!

멜기세덱 2008-01-01 18:05   좋아요 0 | URL
어디? 가시게요?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우린 아직 이별이 뭔지 뭘라..."ㅋㅋ

마노아 2008-01-0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진지하게 나가다가 갑자기 피식! 했잖아요. 멜기세덱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용^^

멜기세덱 2008-01-01 18:06   좋아요 0 | URL
나름 진지하게 마무리 했다고 생각했는뎅....ㅋㅋ

웽스북스 2008-01-0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 읽는 멜기세덱님은 늘 새로운 느낌이에요 ^^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30대 멜기세덱님~~

멜기세덱 2008-01-01 18:07   좋아요 0 | URL
日新又日新하는 멜기세덱이라죠? ㅋㅋ

프레이야 2008-01-0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속 30킬로로 가는 세대로 들어서셨군요.
축하 드려요 세덱님^^
재치와 진지함과 깊이를 더하는 세덱님의 글 새해에도 계속 기대합니다~

멜기세덱 2008-01-02 17:15   좋아요 0 | URL
앗, 혜경님...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저도 좀 나눠 주세요.ㅋㅋ
근데, 요새는 저한테 다소간 소홀하셔요...? ㅋㅋ
 

글을 쓸 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지는 않지만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요, 그게 바로 문장부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히 격식을 갖춘 글쓰기, 이를테면 보고서나 논문 등에서는 문장부호 하나하나의 쓰임을 정확히 알고 써야 하겠습니다. 문학에서도 문장부호가 크게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보통 시에서는 문장부호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어떨 때는 문장부호를 씀으로써 매우 크게 시적작용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장부호의 사용도 하나의 약속임으로 그 기능과 쓰임새를 정확히 알고 사용할 때 효과적인 의미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문장부호를 잘 사용하고 계시는지요?

한 가지 재미난 얘기를 하나 해드릴까요? 요즘 휴대전화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르신들까지 휴대전화가 없는 분들이 없으신데요, 휴대전화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분이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 거라더군요.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요, 문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하는 상황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문장부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어느 신혼 부부가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이혼 할 뻔 했다는 문장부호와 관련된 웃지 못 할 얘기가 있습니다.

결혼한지 몇 달 안 된 신혼부부가 있었는데요, 하루는 남편이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 가던 길에, 모처럼 예쁜 아내와 데이트도 할 겸, 외식을 할 생각으로 문자메시지를 아내에게 보냈답니다. "저녁 먹었어"라고 보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문이 안 오더랍니다. 뭐하느라 문자메시지도 확인을 안하는지, 왜 답문이 없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살짝 화가 나기도 하고, 할 수 없이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는데요, 집에 들어가 보니 아내가 뾰로통해 있더랍니다. 남편이 들어와도 아는 체도 안하고 차갑게 방문을 닫아버리고 들어가버렸다는 군요. 왜 그런가 했더니, 아내는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오붓하고 근사하게 저녁을 함께 할 생각으로 장도 보고, 정성스레 요리를 하고 있던 차에, 별다른 얘기도 없던 남편이 갑자기 문자를 보내 자기는 "저녁 먹었어"하니 아내는 화가 날 수 밖에요. 어찌어찌 해서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잘못했다간 결혼한지 몇 달 만에 이혼할 수도 있었더랍니다.

재미난 이야기지요? 우리들이야 이렇게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무척 곤란한 문제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오해의 근거는 문장부호 하나를 썼느냐 안 썼느냐에 있는데요, 만일 남편이 '?'를 붙여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면 이 두 부부는 그 날 밤, 찐~한 밤을 보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그 날 2세를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구요. 그런데 이런 사소한 문제뿐만이 아니라 문장부호 하나로 인해 더 큰 문제나 오해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다르고 어다른 언어 전달의 문제 중 하나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문장부호를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손해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네요.

얼마전 한국어문교육학회에서 펴내는 『어문학교육』제35집(2007. 11.)에 '국어 문장 부호의 몇 가지 문제점'이란 논문이 실려있어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요, 부산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봉국 교수의 논문으로 문장 부호 체계와 사용의 문제 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논문을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문장부호를 위주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상봉 교수는 먼저 우리나라 현행 문장 부호의 체계와 명칭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요, 이는 우리가 마침표라고 부르는 '.'의 이름이 원래는 마침표가 아니었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간단히 현행 문장 부호의 체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Ⅰ. 마침표[終止符(종지부)]
     1. 온점( . ), 고리점( 。)
     2. 물음표( ? )
     3. 느낌표( ! )

Ⅱ. 쉼표[休止符(휴지부)]
     4. 반점( , ), 모점( 、)
     5. 가운뎃점( · )
     6. 쌍점( : )
     7. 빗금( / )

마침표와 쉼표 만을 옮겨보았습니다. 이하 따옴표, 묶음표, 이음표, 드러냄표, 안드러냄표 등이 있습니다. 위에서 보듯이 우리가 마침표라고 부르던 '.'이 사실은 '온점'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쉼표라고 부르던 ','는 '반점'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중들이 다들 마침표, 쉼표라고 하니까 1998년 문장 부호에 대한 개정안에서는 세칙을 두어 "온점과 고리점은 '마침표'로 일컬을 수 있다.", "반점과 모점은 '쉼표'로 일컬을 수 있다."하고 은근슬쩍 끼워놓고 있습니다. 이 정도야 언중들의 사용에 따른 민첩한 조처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문장부호의 체계와 규정이 아주 주먹구구라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답니다.

다시 한 번 마침표에 속한 것들을 잘 한 번 보시지요. 여기에는 물음표( ? )와 느낌표( ! )도 있죠? 그런데 이게 정말 마침표일까요? 마침표라는 것은 문장을 종결한다는 표시인데, 물음표와 느낌표는 반드시 문장의 종결시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랍니다. 예를 들면 "그것은 참 훌륭한(?) 태도야."라거나 "우리 집 고양이가 외출(?)을 했어요." 등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개정안 세칙에서 느낌표의 사용 예로 "우리는 그 작품으로 백만원(!)의 상금을 탔다."와 "그리하여 그는 끝내 정복자(!)가 되었다." 등을 들고 있습니다. 규정에서의 예만 보아도 물음표와 느낌표가 마침표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니 문장부호 체계가 얼마나 주먹구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을 하면서 김봉국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문장 부호의 체계에 대한 새로운 고려와 개념 규정이 제대로 마련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어의 경우에는 문장 부호에 대해서 정밀하고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문장 부호의 사용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을 만들어 놓"고 있고, "국제적으로 통용하는 The Chicago Manual of Style(1993)에서는 문장 부호에 대한 규정이 136개 항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는 것을 볼 때 김봉국 교수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문장 부호는 우리의 언어 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로 이에 대한 정확하고 체계있는 규정과 약속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어문 규정을 정하고 설명하는 규정집에서조차 문장부호를 지들 맘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규정집을 만들었다면 이 규정집은 무엇보다도 규정에 맞는 부호를 사용해야 하며, 아울러서 규정에 합치되는 예들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규정과 규정집이 서로 별개의 존재로 인식된다면 규정과 규정집은 언중들에게 전범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며 문자 생활에 더 많은 불편함과 어려움을 갖게 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김봉국 교수 지적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논문 말미에 실린 "문장 부호 사용의 실제"에서 몇가지를 간추리고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문장 부호를 사용할 때 헷갈리고 궁금한 사항에 대하여 문답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는데요, 여기서도 그런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기로 하고요, 아무래도 논문을 쓰시는 분들에게나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살펴보시고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2.1. 주제의 설정'이 맞는 표기인가, '2.1 주제의 설정'이 맞는 표기인가?

여기서는 세칙안에서 "표시 문자가 두 숫자 이상으로 되어 있을 때에는 마침표를 각각 쓴다"는 규정에 따라 '2.1. 주제의 설정'이라고 쓰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정에는 마지막 온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대분입니다. 그러니까 국제적으로는 '2.1 주제의 설정'으로 쓰는 것이 알맞다는 얘기가 되죠. 논문이라던가 연구 보고서 등에서의 이런 표기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쪽으로 맞춰가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말의 자음 'ㄱ, ㄷ, ㅂ' 등은 폐쇄음이다(전통적으로 흔히 파열음이라 부른다)"의 문장에서 온점을 괄호 앞 문장 끝에 표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괄호 밖 문장의 끝에 표기해야 하는가?

세칙안에 따르면 "소괄호 안의 문장이 바로 앞 문장과 내용상 긴밀한 관계에 있을 때에는 두 문장의 마침표를 묶어 괄호 밖에 하나만 쓰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마침표를 각각 따로 쓴다"로 되어 있답니다. 따라서 "우리말의 자음 'ㄱ, ㄷ, ㅂ' 등은 폐쇄음이다(전통적으로 흔히 파열음이라 부른다)."와 같이 괄호 밖 문장의 끝에 온점을 찍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래에서는 우리말의 부름말과 가리킴말에 대해서 알아 보고자 한다.(경어법의 전반적인 모습은 제3장에서 다룬다.)"와 같은 문장은 소괄호 안의 문장이 앞 문장과 긴밀한 관계가 아니므로 각각 온점을 찍어야 하겠습니다.

반점과 따옴표가 함께 사용되는 경우 (1) '개나리', '진달래'가 맞는 표기이나 (2) '개나리,' '진달래'가 맞는 표기인가?

우리는 (1)의 경우가 맞습니다. 그런데 국제적인 규정에 따르면 (2)의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이 나은 것 같습니다만, 하여간 혼란스럽네요.

콜론(colon)과 세미콜론(semicolon)의 우리말 명칭과 용법은?

콜론은 우리말로 '쌍점(雙點)'이라고 하며 세미콜론은 우리말로 '쌍반점(雙半點)'이라고 합니다. 쌍점의 경우 한글 맞춤법의 부록에 제시된 문장 부호에 그 용법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내포되는 종류를 들 적에 쓴다(문방사우: 붓, 먹, 벼루, 종이.). (2) 소표제 뒤에 간단한 설명이 붙을 때에 쓴다(마침표: 문장이 끝남을 나타낸다.). (3) 저자명 다음에 저서명을 적을 때에 쓴다(정약용: 목민심서.). (4) 시(時)와 분(分), 장(章)과 절(節) 따위를 구별할 때나, 둘 이상을 대비할 때에 쓴다(오전 10:20 (오전 10시 20분)). 등입니다.

그리고 쌍반점의 경우는 온점과 반점이 합쳐진 것으로 이 두 가지의 특성을 대체로 함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어의 문장 부호에서 사용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쌍반점의 용법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습니다. 영어에서는 자주 사용되죠? 국어에서도 쌍반점을 사용하자는 견해가 제안되기도 했다는 군요.

쌍점이 사용된 경우에 쌍점의 앞뒤 띄어쓰기를 어떻게 할까?

다음과 같이 쓰면 됩니다. "가. 일시: 2007. 7. 7.", "가. 이숭녕(1949:12)"처럼요.

'나이(年歲)를 많이 먹었다', '오구라심페이(小倉進平)가 향가를 해독하였다'와 같은 예문에서 소괄호의 사용이 가능한가?

답은 안 된다입니다. 이때는 대괄호( '[ ]' )를 사용해야 합니다. "묶음표 안의 말이 바깥 말과 음이 다를 때에"는 대괄호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 몇 가지의 사례들이 더 있지만 이만 줄이도록 하고요, "문장 부호가 실제 언어 생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어문 규정에서는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에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문장 부호를 사용할 때 헷갈리는 점과 궁금한 점"이 있어도 어문규정이 이 모양이니 어디가서 물어봐야 할까요? 문장 부호에 대한 규정의 조속한 정비를 요구해야 되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들도 문장 부호를 정확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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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2-2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좋은 글을!(느낌표)

멜기세덱 2007-12-24 19:48   좋아요 0 | URL
맞당! 이번 논문에 문장부호들 잘 쓰셨나 모르겠어요? ㅎㅎㅎ

순오기 2007-12-25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알고 있어도 실제 사용에는 소홀한 부분이죠?
아이들한테 가르치면서 제대로 쓰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고 편하게 쓰려는 습관에 잘 안 되고 있어요.
잘 읽었으니 현재의 규정대로 쓰려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

멜기세덱 2007-12-27 20:2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정말이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ㅠㅠ;;

순오기 2007-12-29 04:05   좋아요 0 | URL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요?
어제 님이 보내주신 책을 두권이나 받고 보니, 내가 댓글을 잘못 남겼구나 생각했어요.ㅠㅠ
친정가면, 주안역사 서점에서 만나 멜기님께 책도 사드리고 맛난 것도 사드릴게요. 책은 감사히 잘 읽을게요~~ ^^

2007-12-27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어 선생님은 맞춤법을 잘 알고 표준어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글의 문법이 매우 어렵다고들 아우성인데, 국어 선생이라고 그 어려움을 피해갈 수 있겠습니까? 국어 선생도 맞춤법을 틀릴 수 있고, 표준어를 표준발음대로 사용하지 못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흔히 쓰이는 말들에 대해서는 국어 선생이라면 반드시 명확히 그 표기법을 알고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어 선생은 머리가 매우 좋아야 할 것입니다. 개개의 맞춤법과 표준어들을 일일이 다 외워야 할 테니까요. 신체적으로도 타고나야 합니다. 발음기관에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해도 표준 발음을 할 수 없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조금은 다행인 것이, 국어 선생이 그리 머리가 좋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문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을 하면 일반적인 것들은 무난히 적어내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문법이란 말과 글의 어떤 규칙들을 기술해 놓은 것이니까요. 몇 가지의 규칙을 알면 대체적으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각의 단어들의 표기법을 외울 필요까지는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말을 가르치는 국어 선생은 다른 말을 가르치는 다른 나라의 국어 선생 보다는 어쩌면 머리가 더 좋아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말 문법은 그 체계가 해방 이후에나 잡히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좀 조잡하다고 할 수 있지요. 아직 갈 길이 매우 멉니다. 문법이 원칙과 규칙이라고 했는데, 이 문법을 공부하다보다 이런 원칙과 규칙이 죄다 제각각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국어학자들의 연구가 더 분발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뜬금없이 여러분들에게 골치아픈 문제를 내서 기분 상하셨죠. 여러분들께서 보신 문제는 얼마 전에 이 문제를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잘 해결해야할 사람들에게 테스트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의아스럽게도 결과가 영 신통치 않더군요. 이거 참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몇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에 간단한 이벤트로 포문을 열어 본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문제의 답을 해결해보면서 얘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 다음 중 맞춤법에 맞거나 표준어인 것을 모두 고르시오.

오뚜기, 늴리리, 숫소(황소), 모가치, 서슴치,

곱배기, 깡총깡총, 아지랑이, 미류나무, 무우,

세돈, 흐리멍덩하다, 체신머리, 개나리봇짐,

해님, 수놈, 윗층, 풍지박산, 아연실색, 개발쇠발
 
   

자,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오뚜기'는 '오뚝이'이가 바른 표기입니다. 어문규정 '한글 맞춤법' 제23항에 보면 "'-하다'나 '-거리다'가 붙는 어근에 '-이'가 붙어서 명사가 된 것은 그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잘못된 단어를 맞다고 고른 사람이 29%에 달했습니다. 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일단, 맞춤법 공부를 거의 안 했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어문규정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애매하다거나 모호하다는 것이죠. '-하다'나 '-거리다'가 붙는지 안 붙는지는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굴거리다'가 어색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전혀 이상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말의 문법이 대개 이런 것들이 많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체계가 잡히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합니다. 아참, '오뚜기'라고 하면 어떤 상품이 떠오르죠. 이때는 고유명사가 되겠습니다. 맞춤법에 맞는 것도 아니고 표준어도 아니죠. 그래서 답이 아닙니다.

2. '늴리리'. 한글 맞춤법 제9항에 "'의'나, 자음을 첫소리로 가지고 있는 음절의 'ㅢ'는 'ㅣ'로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ㅢ'로 적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늴리리'는 원래 '늴리리'이니까 '닐리리'로 발음되더라도 '늴리리'로 적으라는 하나마나한 소리죠. 그런데 일반인들도 '늴리리'는 '늴리리'로 잘 적는 것 같습니다. 잘 알려져 있는 단어이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규정은 규정같지가 않습니다. '늴리리'를 제대로 고른 사람은 44%입니다. 정답자가 절반 이하인게 좀 의아하네요.

3. '숫소(황소)'는 '수소'가 맞습니다. 표준어 규정 제7항에서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는 '수-'로 통일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 '숫양, 숫염소, 숫쥐'는 빼고요. 이건 간명한 원칙 같은데요, 좀더 들어가면 이것도 골치가 살짝 아픕니다. 예를 들어 '숫+강아지'는 '수캉아지'가 됩니다. '숫-'과 합쳐져 거센소리가 나면 거센소리로 적는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도 개인차가 있을 수 있는데요, 구관구조상에 문제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문제가 되겠습니다. '숫소'가 맞다고 고른 사람들이 38%인데요, 이는 옛날 분들이 많다거나, 공부 안 한 사람들일 확률이 농후합니다.

4. '모가치'는 원래 '몫+아치'입니다. 그렇다면 '몫아치'가 되어야 하는데, 원칙은 '모가치'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글 맞춤법 제20항 [붙임]에서 "'-이' 이외의 모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은 그 명사의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치'는 잘 사용하지 않는 접미사로 그냥 발음나는 대로 적는 다는 것이죠. 그런데, '모가치'라는 말이 요즘은 잘 사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모가치'라고 쓰면 무슨 뜻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몫아치'라고 쓰면 뜻을 알아보기 편할 것 같은데요. 아무튼 이것을 정답으로 제대로 고른 사람은 18% 밖에 안 되네요. 문법 공부를 소홀히 한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참고로 '지붕'은 '집+웅'인데요, 이것도 '-웅'이 잘 사용되는 접미사가 아니니 소리나는 대로 '지붕'이라고 쓴답니다.

5. '서슴치'는 '서슴지'가 옳은 표기입니다. 이것은 어문규정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치'는 '~하지'가 준말인데요, '~하다'가 가능해야 '~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슴'은 '서슴하다'가 아니라 '서슴다'가 맞거든요. 그래서 '서슴지'로 써야 합니다. 이것은 35%가 맞다고 했는데요, 그만큼 '서슴하다'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6. '곱배기'는 '곱빼기'가 정답입니다. 이건 설명이 굉장히 복잡 다단합니다. '곱빼기'에 대해서는 한글 맞춤법 제54항의 해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걸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배기/-빼기'가 혼동될 수 있는 단어는" 우선 "[배기]로 발음되는 경우는 '배기'로 적고, 한 형태소 내부에 있어서, 'ㄱ, ㅂ' 받침 뒤에서 [빼기]로 발음되는 경우는 '배기'로 적"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형태소가 아닌 "다른 형태소 뒤에서 [빼기]로 발음되는 것은 모두 '빼기'로 적"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뚝배기'는 [뚝빼기]로 소리나지만, 하나의 형태소이고 'ㄱ' 뒤에서 된소리가 되는 것이므로 '뚝배기'로 적고, '곱빼기'는 'ㅂ' 뒤에서 된소리로 나지만, 하나의 형태소가 아니므로, 즉 '곱+빼기'이므로 '곱빼기'로 적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뭔 소린지 모르시겠죠? 그래서 이건 맞춤법 문제의 단골손님이랍니다. 외워야죠 뭐. 이걸 틀린다는 것은 거의 100% 맞춤법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이걸 정답으로 잘못 고른 사람들이 56%에 달하네요.

7. '깡총깡총'은 맞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모음조화라는 것이 지켜지다가 붕괴되고 있죠. 그것을 반영하여 '깡충깡충'을 표준어로 정했습니다. '오똑이'가 아니라 '오뚝이'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랍니다. 이걸 고른 사람들이 무려 59%에 달하네요. 그렇담 아직 모음조화가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어문 규정이 참 대중없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8. '아지랑이'는 '아지랭이'가 아니라 '아지랑이'죠. 정답률이 82%랍니다. 예상보다는 낮은 수치네요. 이걸 틀린 사람은 뭘까요? 궁금해집니다.

9. '미류나무'에서 '미류'는 한자어입니다. '美柳'말이에요. 한자음대로라면 '미류'가 맞는데요, 표준어 규정 제10항에서 "모음이 단순화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고 함으로써 '미루나무'가 표준어가 되었습니다. [미류나무]하면 발음이 어렵죠. 많이들 [미루나무]로 발음하니까 이것이 그대로 표기에 반영된 것입니다. 이걸 정답으로 고른 사람도 12%나 되네요.

10. '무우'. 이걸 틀리는 사람도 있을까 했는데, 15%나 이걸 정답으로 골랐습니다. 아마 예전엔 '무우'였을 겁니다. 표준어 규정 제10항에 "준말이 널리 쓰이고 본말이 잘 쓰이지 않는 경우에는, 준말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무우'라고 써놓으니까 '무'가 아니라 다른 말인 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무튼 모를 일입니다.

11. '세돈'. 단위명사 '돈'이나 '냥' 앞에 오는 수사는 그 모양이 약간씩 달라집니다. '세돈'은 '서돈'이 되고 '네냥'은 '넉냥'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건 좀 어렵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아마도 '금 세 돈'처럼 제시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냥 '세돈'하니까 잘 몰랐을 수도 있다고 보여지네요. 그래도 이걸 정답이라고 고른 사람은 6% 밖에 되지 않네요. 2명이 골랐다는 얘기니까요.

12. '흐리멍덩하다'를 흔히 '흐리멍텅하다'라 잘못 알고 사용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정신이 맑지 못하고 흐리다"는 뜻의 사전 등재어는 '흐리멍덩'입니다. 따라서 '흐리멍덩하다'가 맞겠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고른 사람은 27%입니다. 좀 낮은 수치죠.

13. '체신머리'는 '채신머리'가 맞습니다. 저도 잘 몰랐는데요, 아마도 '체신'을 한자로 '體身'이 아닐까해서 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흔히 '채신머리 없다'로 많이 쓰이는 이 '채신머리'는 '채신'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고, 다시 '채신'은 '처신'을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처신'은 '處身', 즉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마도 '처신'이 'ㅣ'모음 역행동화를 일으켜 '채신'이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이걸 맞다고 한 사람이 53%에 달합니다. 많이들 잘못 알고 있었네요. 저까지 포함해서.

14. '개나리봇짐'은 '괴나리봇짐'이 맞습니다. "걸어서 먼 길을 떠날 때에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메는 작은 짐"을 이르는 말입니다. 뭔가 고사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 그냥 외워야 하는 거랍니다. 사람들이 다들 '개나리봇짐'하면 곧 '개나리봇짐'이 되어야 할텐데요, 이걸 정답이라고 고른 사람들이 44%니까, 좀더 분발하면 '개나리봇짐'으로 바뀔 수도 있겠습니다.

15. '해님'도 설명이 복잡합니다. 우리 어문규정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부분이 사이시옷 문제인데요, '해님'이 '햇님'이 아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기도 합니다. 사이시옷이 들어가는 경우는 합성어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해님'은 합성어가 아니라 '해'에 '-님'이라는 접미사가 붙어서 된 파생어이기 때문에 사이시옷이 들어가는 않는다는 것이죠. 복잡하다고 했는데, 의외로 간단하네요. '해님'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잇소리 현상'을 설명한다면 복잡하다는 것이죠.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해님'을 합성어로 보고 '햇님'으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걸 정답으로 제대로 고른 사람들이 18% 밖에 안되는데요, 이것은 문법 공부 안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16. '수놈'도 맞는 표기입니다. 위의 '숫소'에 대한 설명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답률이 41%인데요, 이게 수치가 높은 건지 낮은 건지 잘 분간이 안 되네요.

17. '윗층'. 표준어 규정 제12항에서 "'웃-' 및 '윗-'은 명사 '위'에 맞추어 '윗'으로 통일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웃-'과 '윗-'의 혼동을 없애고 아싸리 '윗'으로 통일한 것이죠. "명사 '위'에 맞추어'라고 한 것은 명사 '위'에 사이시옷이 붙어 '윗-'이 된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웃-'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랍니다. '윗어른'이 아니고 '웃어른'인 것 처럼요. '웃'과 '윗'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위-아래'의 구별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별이 없으면 '웃'을 쓴다는 거죠. 그런데 '웃'이라고 해서 그 구별이 전혀 없는 것을 아닙니다. '아래 어른'이 절대로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처럼요.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대로라면 '윗층'이 맞을 텐데, 예외가 있습니다. "된소리나 거센소리 앞에서는 '위-'로 한다.'라고 되어 있죠. 그래서 '윗층'은 '위층'이 맞습니다. 56%의 사람들이 '윗층'이 맞다고 골랐습니다.

18. '풍지박산'은 한자어로 '풍비박산'이 맞죠. 많이들 아시니 별반 설명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이 맞다고 고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많이들 아신다고 하더라도, '무우'가 맞다고 한 사람이 5명이나 되는데, 아무도 없다는 게 좀 이상하더군요. 알고 봤더니, 문제로 제시된 것은 '풍지박사'였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안 고르는 것이 당연했을 거 같습니다.

19. '아연실색'은 보너스일까요? 뭐 이런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정답률은 85% 밖에 안 됐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20. 마지막으로 '개발쇠발'은 '괴발개발'이 맞겠습니다. 이걸 고른 사람은 9%에 달합니다. '아연실색'이 85% 밖에 안 된 것이 이해가 가기도 하는 결과군요.

그래서 정답은 '늴리리, 모가치, 아지랑이, 흐리멍덩하다, 해님, 수놈, 아연실색' 이상 7개가 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살펴 본 것은, 조금 황당해서 입니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의 결과가 영 형편없다는 것인데요, 이 사람들은 대학까지 졸업하고 국어 교사를 하려고 하는, 그 자격을 취득하려고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알 만한 것들이고 알아야 할 것들인데요, 문법 공부도 많이 부족하도고 할 수 있겠구요. 문제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풀이하면서 제 나름대로 허튼 소리를 했는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말의 문법이 영 "체계없음이다"라고 할 만하다는 것이죠. 많은 국어학자들이 앞으로 더욱 연구하고 노력해서 보다 우리말의 문법 체계를 보기 좋게 가꾸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자 그럼, 막간 이벤트의 당첨자를 찾아볼까요? 7개중에 6개를 골라주신 chika님께서 당첨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처구니 없는 실책을 '맞히신' 웬디양님께서는 '특별상'을 달라고 하시니 드려야 하겠습니다. 정답을 '맞히'느라 고생들 많이 하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chika님과 웬디양님께는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댓글로 주소(우편번호 포함), 성명, 연락처를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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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1-24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그랬군요. -_- 틀린 것 세 개 가량을 내가 감싸고 있었군.
치카님 축하해요. 웬디양님도 축하. :)

멜기세덱 2007-11-24 13:24   좋아요 0 | URL
맞는 것은 몇 개 버리시더라구요.ㅋㅋ

순오기 2007-11-24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알라딘 결석해서 이벤트가 있는 줄은... 우리 땐 '미류나무 꼭대기에 조각 구름이 걸려 있네~'라는 노래를 불러서 '미루나무'인줄 몰랐어요. 감사^^
멜기님, 제가 까칠하게 굴자면~~ '윗층'을 설명하면서 '아싸리'라고 쓴 것과 끝줄에 ' ~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가 영 거슬리는군요. 방송에서 연예인 진행자들이 "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할때마다 정말 못 마땅한데, 많이들 쓰니까 그게 맞는 줄 안다는 게 더 걱정스럽고요!

멜기세덱 2007-11-24 13:2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을 까칠하게 해서 죄송합니다.ㅎㅎ
개인적으로 '아싸리'는 애용하는 말이고요,ㅎㅎㅎ
'~도록 하겠습니다'는 습관이 되나서....
다시 보니 비문이 너무 많군요...ㅋㅋ

stella.K 2007-11-2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우리말은 어려워요.ㅜ.ㅜ

멜기세덱 2007-11-24 13:2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우리말이 젤 쉽죠.ㅎㅎ

비로그인 2007-11-24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워.....(외계인에겐 너무 가혹한...털썩)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공부가 되는군요.^^ ☆찜 해놓고 두고두고 볼랍니다.

멜기세덱 2007-11-24 13:28   좋아요 0 | URL
외계인? 이세요?
귀화하시려면 우리말 공부 많이 하셔야 되는데....
두고두고 보시게 꾸준히 올려야 겠군요..ㅎㅎ

비로그인 2007-11-24 21:41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하핫....;;
잘 부탁합니다. (_ _)
....(라고 하지만, 사실 한국어 설명도 못 알아먹겠.. =_=;;)

chika 2007-11-24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진짜,, 깡총깡총 껑충껑충... (이거 나날이 바뀌는 어법때문에 넘 힘들어요! 나중에는 그 사람의 글을 보고 나이도 짐작하게 되는거 아닐까요? ㅡㅡ;;;)
그건 그렇고... 제가 당첨자인가요?
우웅~ 이거.. 이매지님이 거즘 골라놓은거에 덧붙인거뿐인데. '어부지리'로 받는셈인 듯.ㅋ
고맙습니다!
염치없지만 주시겠다는 책이 무지 맘에 들 것 같아서 넙죽 받겠습니다. ^^

멜기세덱 2007-11-24 13:29   좋아요 0 | URL
축하합니다. 어부지리면 어떻겠습니까.ㅋㅋㅋ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인데, 제법 괜찮은 책입니다.

2007-11-24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1-24 13:30   좋아요 0 | URL
음, 제주도 계시는 분들이 꽤 많네요.

웽스북스 2007-11-24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이벤트였어요 ^^ 이건 꼭 제가 어거지로 특별상 받아서 그런것만은 아니랍니다 흐흐흐흐 (역시 사람은 한번 우기고 봐야 한다며)

그러고보니 수능 때도 틀렸던 문제중 하나가 맞춤법 / 어법 문제였던 것 같아요. 하나는 시였던 것 같기도 하고...(이런걸 기억하다니, 워낙 한이되어서 ㅋㅋ) 모의고사를 볼 때도 어법 문제만 나오면 제가 유독 좀 맥을 못추었던 듯 해요- 옛날부터 늘 혼동하면서도 잘 알기 위해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스스로를 반성했답니다! ^^

멜기세덱 2007-11-24 13:31   좋아요 0 | URL
혼동 될 때마다 하나씩 찾아보면, 그게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저도 모르는 것들은 사전이나 규정집을 찾아보는 데, 그래도 많이 틀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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