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천자문을 읽는다.

천자문에 대해 세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내지 선입견은 어느 정도 타당하면서도 부당한 것이 있는 듯 하다.

우선, 부당한 오해를 들면, 천자문은 아이들 책이라는 선입견이다.

천자문이 과연 아이들이 학습하기에 적당한가? 한문이 그 사회의 필수요소였던 옛 조선시대의 양반의 자제들에게는 그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결코 쉬운 관문이 아니었다. 요즘의 우리 어린이들이 익히기에는 매우 철학적이며 사상적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 천자문이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크게 무리다. 천자문이라고 해서 1000자의 한자를 익히면 된다는 간단한 생각으로는 천자문을 배운다고 할 수 없다. 옛 선인들이 천자문을 익힐 때에는 늘상, 눈으로 읽고, 입으로는 읊으면서, 귀로는 그 읊는 소리는 듣고, 머리로는 그 뜻을 새기었다. 그렇게 몇 날 몇 달을 읊고 또 읊으면서, 천자문에 담긴 철학적 세계를 되새긴 끝에 한 권의 천자문을 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천자문은 그리 만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두번째 오해는 천자문이 중화사상의 핵심적 요약집에 불과하며, 편협한 사대주의의 강조와 낡은 유교사상의 전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오해만은 아니다. 그러한 측면이 없지 않은데, 천자문 자체가 중화주의와 유교주의의 강한 이데올로기적 유물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그쳐, 천자문을 용도폐기 시킬 이유는 없다. 아니 그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손실이다. 현대인들에게 천자문은 현대적 의미에서 재해석이 가능하고, 그 안에 담긴 하늘과 땅과 자연과 사람의 이치와 철학적 사유를 우리 시대에 맞게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것은 이 <천자문 읽기>의 하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천자문 읽기>를 시작한다. 천자문 텍스트와 해설집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여기서는 다음의 두 권을 참고하기로 한다.

 <김성동 천자문>

얼마전 많은 인기를 얻은 책이다. 보급판도 함께 나와 있고, 천자문 쓰기 책도 나와 있다. 여기에서는 김성동의 천자문에 대한 해설이 잘 되어 있다. 여기서는 이 책의 본문 해석과 해설을 대부분 참고하기로 한다.

 

 <욕망하는 천자문>

천자문에 대한 현대적 의미의 해석과 풀이가 돋보인다. 천자문의 글자 한 자 한 자에 담긴 상형적, 형성적 원리와 거기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자세히 풀어 놓고 있으면, 현대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지를 탐구하고 있는 역작이다. 여기서는 천자문에 대한 다양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선별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천자문 읽기>는 다음과 같은 체제로 진행한다.

1. 천자문 원문과 해석 제시(김성동 천자문 주로 참조)

2. 각 한자별 음과 뜻을 알아본다.

3. 기존의 천자문에 대한 해석과 관련 내용들을 알아본다.

4. 현대적인 의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러한 작업이 천자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그 가치의 입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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