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새해 새 날이 밝았다. 많은 이들이 2009년 1월 1일을 기다릴테지만, 이 날을 더욱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이 있으니, 지금은 좀 시들해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문학청년들의 꿈과 희망의 약속이 담긴 <신춘문예>가 그것이다. 당선자들은 미리 통보를 받았겠지만, 그래도 새해 첫 날 신문에 자신의 작품과 얼굴이 실린 지면을 대하는 느낌은 남다를 것이 분명하다. 그보다도 신춘문예에 도전했으나 아쉽게 탈락한 이들, 언젠가 자신도 신춘문예 당선을 꿈꾸면 올 해는 누가, 어떤 작품이 당선되었나를 유심을 찾아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오늘 일제히 신춘문예를 주관하는 각종 일간지에서 당선자와 당선작을 지면에 실었다. 얼핏 살펴본 느낌은, 이전과는 좀 다른 성격의 작품들이 당선의 영광을 얻은 듯 하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시> 부분 만큼은 그런 특징이 도드라진다. 조금있으면 <문학세계사>에서 당선자들의 작품집을 내겠지만, 여기에 당선작들만이라도 모아놓고 맛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09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맆 피쉬(양수덕) 

    땡볕더위에 잎맥만 남은 이파리 하나
    지하도 계단 바닥에 누워 있던 청년은
    양말까지 신고 노르스름한 병색이었다
    젊음이 더 이상 수작 피우지 않아서 좋아? 싫어?
    스스로 묻다가 무거운 짐 원없이 내려놓았다
    맆 피쉬라는 물고기는 물 속 바위에 낙엽처럼 매달려 산다
    콘크리트 계단에 몸을 붙인 청년의
    물살을 떨다 만 지느러미
    뢴트겐에서 춤추던 가시, 가물가물
    동전 몇 개 등록상표처럼 찍혀 있는 손바닥과
    염주 감은 손목의
    그림자만이 화끈거린다
    채 풀지 못한 과제 놓아버린 손아귀
    청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세상의 푸른 이마였던 그의
    꿈이 요새에 갇혀서
    해저로 달리는 환상열차
    잎사귀인지 물고기인지를 한 땀 바느질한
    지하도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이들이
    다리 하나 하늘에 걸칠 때 

본심 심사를 황지우, 최정례 시인이 맡았다. 심사평에서 "양수덕씨는 다른 응모자들에 비해 개성있는 언어를 활달하게 구사하고 있다. 언어에 개인적 표현이 많아 소통부재의 위험이 보이기도 하나, 당선작 ‘맆 피쉬’에서는 지하도의 걸인이라고 하는 익숙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묘사력과 참신한 비유로 대상을 섬세하게 구현해내었다."고 평가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당선작이 보여주는 '소통부재의 위험'이 아쉬움이 남는 시다. 

당선자 양수덕 씨는 늦깎이 신춘문예생이다. 55세의 나이로 문단에 등단한 양수덕 씨의 시인으로서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2009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보기
[2009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평 보기
[2009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소감 보기 

[2009 한국일보 신춤문예] 시 부문 당선작 

    무럭무럭 구덩이(이우성) 

    이곳은 내가 파 놓은 구덩이입니다
    너 또 방 안에 무슨 짓이니
    저녁밥을 먹다 말고 엄마가 꾸짖으러 옵니다
    구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숟가락이 구덩이 옆에 꽂힙니다.
    잘 뒤집으면 모자가 되겠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온 형이
    내가 한 눈 파는 사이 구덩이를 들고 나갑니다
    달리며 떨어지는 잎사귀를 구덩이에 담습니다
    숟가락을 뽑아 들고 퍼 먹습니다
    잘 마른 잎들이라 숟가락이 필요 없습니다
    형은 벌써 싫증을 내고 구덩이를 던집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를 하러 옵니다
    반짝반짝 구덩이
    외출하기 위해 나는 부엌으로 갑니다
    중력과 월요일의 외투가 걱정입니다
    그릇 사이에서 구덩이를 꺼내 머리에 씁니다
    나는 쏙 들어갑니다
    강아지 눈에는 내가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가 옵니다
    학교에서 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구덩이를 다시 땅에 묻습니다
    저 구덩이가 빨리 자라야 새들이 집을 지을 텐데
    엄마는 숟가락이 없어져서 큰일이라고 한숨을 쉽니다 

당선자 이우성 씨는 올해로 서른을 맞는다. 서러운 서른에 대한 위로의 선물로서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심사를 맡은 이는 신경림, 김사인, 김기택 시인이다. "이우성의 시는 감각과 상상력이 희귀하고 개성적이며 생기있고 활력이 있다. 목소리도 힘있고 거침없고 속도감과 리듬감이 있어 신인다운 신선함이 돋보였"고 "함께 응모한 그의 다른 작품들이 편차 없이 고르게 살아있는 감각을 보여주어 앞으로 계속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컸기 때문"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의 당선작을 보면서, 이전과의 당선작의 특징들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연히 느꼈다. 한국일보 시 부문 심사위원들이 심사평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응모작의 경향이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도 고무적인 일이었다. 최근 수년 동안 신춘문예나 문예지 응모에서는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포스트모던하고 전위적인 실험시를 흉내 내는 시들이 많았다. 실험정신과 발랄한 어법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젊은 시가 문단에 활력을 준 것은 긍정적이지만, 삶의 현장과 역동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헛바퀴를 돌리는 듯한 아쉬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이번 응모작들에서는 이런 흐름이 크게 줄어든 반면 삶의 현실을 체감하거나 강하게 끌어당겨 미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시도는 상대적으로 늘었다. 이것은 기존의 역량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시적 경향이 변화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09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당선소감, 심사평 보기 

[2009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즐거운 장례식(김지희) 

    생전에 준비해둔 묫자리 속으로
    편안히 눕는 작은 아버지
    길게 사각으로 파 놓은 땅이
    관의 네모서리를 앉혀줄 때
    긴 잠이 잠시 덜컹거린다
    관을 들어 올려
    새소릴 보료처럼 깔고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죽음
    새벽이슬이 말갛게 씻어 놓은 흙들
    그 사이로 들어가고 壽衣 위에
    한 겹 더 나무그늘 옷을 걸치고
    그 위에 햇살이불 끌어당겨 눕는 당신
    이제 막 새 세상의 유쾌한 명찰을 달고
    癌 같은 건 하나도 안 무섭다며
    둘러선 사람들 어깨를 토닥거린다
    향 같은 생전이 다시 주검을 덮을 때
    조카들의 두런대는 추억 사이로
    국화꽃 향기 환하게 건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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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오늘은 달이 다 닳고(민구) 

    나무 그늘에도 뼈가 있다
    그늘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나있다 바람만 불어도 쉽게 벌어지는 구멍을 피해 앉아본다
    수족이 시린 저 앞산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기는 건 오랫동안 곤줄박이의 몫이었다
    곤줄박이는 나무의 가는 모근을 모아서 집을 짓는다
    눈이 선한 저 새들에게도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연장이 있다 얼마 전 죽은 곤줄박이에
    떼 지어 모인 개미들이 그것을 수거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일과를 마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와서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하늘로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
    뿌리가 단단히 박혀서 번뇌만으로는 달에 못 미치는 나무의 머리통을 곤줄박이가 대신,
    벅벅 긁어주는지, 나무 아래 하얀 달 거품이 흥건하다
    오늘은 달이 다 닳고 잡히는 족족 손에서 빠져나가 저만치 걸렸나
    우물에 가서 밤새 몸을 불리는 달을 봐라
    여간 해서 불어나지 않는 욕망의 칼,
    부릅뜨고 나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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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술빵 냄새의 시간(김은주)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은 방울방울 *
    비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에 어떤 걸 제일 좋아해? **
    떼 지은 평일의 삼삼오오들이 피워 올린 하늘
    비대한 구름떼
    젖꽃판 같이 달아오른 맨홀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
    나는 보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후끈 달아오르고 싶었으나 바리케이드,
    가로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바리케이드
    곧게 편 허리며 잎겨드랑이며 빈틈이 없어
    부러 해 놓은 설치처럼 신비로운 군락을 이룬
    이 한통속들아
    한낮의 햇빛을 모조리 토해내는
    비릿하고 능란한 술빵 냄새의 시간
    끄억 끄억 배고플 때 나는 입 냄새를 닮은
    술빵의 내부
    부풀어 오른 공기 주머니 속에서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나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

*1991년에 발표된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
** '추억은 방울방울' 에 나오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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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최정아)

    한 떼의 구름이 내게로 왔다. 한쪽 끝을 잡아당기자 수백 개의 모자들이 쏟아졌다. 백 년 전에죽은 할아버지의 모자도 나왔다. 그 속에서 꽹과리 소리와 피리 소리도 났다. 할아버지는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어깨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삼십년 전에 죽은 아버지의 모자를 긴 손에 들고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자 속에서 망사 모자를 집어 들었다. 망사 모자를 쓰자 세상도 온통 모자로 가득했다. 빌딩이 모자를 쓰고 있었고, 꽃들은 모자를 벗겨달라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고, 새떼들은 모자를 물고 날아갔다. 수세기에 걸쳐 죽은 친척들도 줄줄이 모자를 쓰고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할아버지는 꽹과리를 치고 새들은 노래를 부르고 나는 그들을 데리고 바다로 간다. 둥둥둥 북을 친다. 풍랑에 빠져죽은 영혼들이 줄지어 걸어 나온다. 파도에게 모자를 던져준다. 모자를 쓴 파도가 아버지처럼 걸어온다. 갈지자로 걸으며 손을 흔든다. 친척들은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춘다. 아버지가 두루마기를 입고 넘어진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영 일어서지 못한다. 아버지 모자를 다시 구름이 빼앗아간다. 

[2009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당선소감 보기
[2009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평 보기 

<세계일보>는 이번에 시 부문 당선작을 내지 못했고, <중앙일보>는 <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변경되어 지난 해 8월쯤에 치러졌다. <서울신문>에서는 정영효 씨의 「저녁의 황사」가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있으나 찾을 수가 없었고, <부산일보>에서도 시 부문 당선작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밖의 지역신문에서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발표했을텐데, 일일이 다 찾기가 힘들어 여기까지만 하도록 한다. 이번 당선작들이 읽고 낭독하기 편하게 시가 짧아진 점도 고무적이라 생각된다. 당선자들 모두 더욱 좋은 시로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축하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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