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의 안녕을 근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 스스로 '나는 안녕하신가?'하고 문안하는 것은 아무 쓸모없는 수고일 따름이다. 아, 누군가 한 명은 내 싸이에 '잘살고계신가'하고 물었고, 또 어느 숙녀 한 분은 '오빠..쪼금...보고싶어요'하고 애교를 떨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살고 있는 것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출근을 하지 않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한동안은 아침 8시쯤이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지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티비를 켜고, 불을 키고, 신문을 주워온다. 그리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더 자도 된다는 사실에 행복해진다, 스르르. 

하루 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이창호와 최철한의 응씨배 결승 대국 중계를 본다. 인터넷으로도 티비로도. 바둑이란 게임은 지겹게 오래한다. 많이 줄었다지만, 응씨배는 합이 7시간이 넘는다. 그러는 사이, 내 바둑 실력은 1단이 줄었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 2단으로 내려앉았다. 초반 포석에서 손해를 많이 보고 시작해 아등바등 따라가다가 역시나 엷은 형국이 실속없이 무너져내려 지거나, 왕창 집을 챙겨 이겼다싶은 방심에 끝내기에서 응수를 제대로 못해 지고마니, 내리 그렇게 패배를 거듭하다가, 이내 레벨이 다운되고 만 것이다. 

오래동안 묵혀 뒀던 기타를 꺼내 튕겨보기도 하지만, 이놈의 쇠줄은 연약한 내 손가락에 핏자국만 남기면서 쓰라려져, 내팽개치고 만다. 어스름 저녁이 되는 슬슬 배가 고파진다. 무엇인가는 먹어야 산다. 하루에 한 끼를 먹는 것도 귀찮다. 담배가 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고야, 겨우 밖으로 나온다. 어둠은 짙고 인적은 드물다. 담배 한 갑을 사서 한 가치를 꺼내물고는 즐비한 식당 중 가장 한적은 곳으로 찾아들어가 저녁을 해결한다. 배부름은 일찌감치 찾아오고, 포만감에 휩쓸리어 자연스레 당구장으로 향한다. 말이 당구장이지 그 늦은 시간에 나는 커피 한 잔을 얻어먹고 수다를 떨어 집으로 집으로. 

당구 실력도 형편없이 줄었다. 한창 잘 나갈때는 이 근처에서 누구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충천하였더랬다. 나이값을 하려는지, 공들은 제각기 돌아다니고, 다마는 저질이 되고, 늙으면 당구는 커녕, 죽어야 하는 것이어야 함을 나는 다짐한다. 

야한 밤에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는 것은 누구나가 생각하는 것처럼 전혀 외롭거나 씁쓸하거나, 허전하지 않다. 집에 들어와서는 티비를 켜고 컴퓨터를 켜고, 다음에 들어가 메일을 들춰보고, 카페에 들어가고, 알라딘 서재 창을 열어놓고, 간간이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고, 싸이에도 가보고, 싸이 카페에도 들어가보고, 타이젬 이라는 바둑 사이트를 항시 켜놓고, 레벨이 낮아진 김에 느긎하게 내 희생양이 될 대국 상대의 부름을 기다린다. 여전히 승률은 저조하다. 

나의 사는 일상, 7일을 이렇게 살았다. 잘 사느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살아서 숨쉬는 것 자체로 잘 사는 것일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숨만 쉬며 살아있는척하지는 않고 있다는 말이다. 잘 살고 있다. 됐다. 

책? 거의 읽지 않는다. 애초에는 책을 열심히 읽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책읽기라는 것이 그리 썩 좋은 의도의 책읽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그간의 나의 책 읽기를 '외면으로써의 책읽기'라고 명명하였다. 나는 꾸준히 그 무엇인가를 '외면'함으로써 책을 읽었다.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더 정확히는 무엇인가를 피하고 싶고, 미뤄두고 싶고, 잊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고 말해야 하겠다. 일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꺼내들고 똥배짱을 부렸다. 화장실에서도 나는 책을 읽으며, 나오지도 않는 변을 보겠다고 애써 앉아있었다. 만날 친구도 하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책을 읽었는지도 몰랐다. 오지않는 전화는 단지 시계일 뿐이라고 외면하고자 책을 읽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나 스스로 무식하고 터무니없고, 지지리 못났다는 사실을 감추고자 책을 읽은 것이다. 아니 읽는 흉내나 냈을 뿐이다.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그런데, 지금 요 며칠은 그 외면할 대상을 찾지 못해,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계획은 있다. 이 생활이 열심히 지겨워지면, 그때는 이러저러한 책을 읽어야지 목록도 대강 머릿속에 짜여져 있고, 공부도 할 생각이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닐 작정이다. 

며칠전인가? 나의 이 생활의 어느 해방꾼이 전화를 걸어와, 내 안부를 묻는 척하면서, 내 생활의 극도의 변화를 반강요하는 요사스런 언행을 하였다. 괘씸하기는. 소.개.팅. 나는 나의 이 생활이 극에 달할때까지 어떤 외부의 변화를 수반할 생각이 전혀 없다. 죄송스럽지만 말이다.  

하여간 나는 이렇게 살고 있고, 나는 누군가들이 쪼금은 보고싶어지지만, 행여나 나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다면, 얼마간 침묵하시라. 심지어 나의 부모님들도 침묵중이시니 말이다. 귀한 아들이 어떻게 쳐먹고쳐자는지 도무지 이 분들은 궁금해하질 않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짜증섞인 전화음성에 괜히 건드리기 싫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 지금은 나 그냥 이렇게 산다. 어찌, 잘 사는 것 같은신가? 아 고마운 일은 그 사이에도, 즐찾이 한 분 늘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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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3-10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은 제가 잘하고 싶은걸 이미 다 잘하시는 군요. 바둑, 당구, 기타~~ 부러워라~
혼자노시다 심심해지면 휘모리를 찾아주세요. 꽃미남 멜기님 하시환영 ^^*
제가 얼마전 생애 첫 소개팅을 해보고 다신 안하기로 맘을 먹었답니다 --;;
어찌나 수다스러운 저도 할 말이 없던지 ㅠ.ㅠ
아참, 인천 아이들과 다녀왔는데, 참 좋았답니다~ 먹을 것도 볼 것도 많았어요.
귀한 재충전의 시간되시기를 빕니다.

마늘빵 2009-03-10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가태그가... 요새 야동을 보시는게야. 늦잠을 주무시는 이유가 따로 있었어요.

2009-03-10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3-14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잘 살고 있군요~ 태그는 18금이지만~~ㅋㅋㅋ

pinkromeo 2009-04-0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ㅠㅠ
이 문자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덮수룩한 형의 수염을 기대하며 저는 오늘도 집구석에서 조그만 세상을
유랑하며 지낸답니다. 형도? ㅎㅎ
 

安炯男の脳内イメージ


 

예전에 알라딘에서도 했었던거 같은데, 오늘 누가 이짓을 하고있는 걸 보고는 나도 해보았다. 한자 이름을 입력하면 뇌 속을 보여준다는데, 결과를 보니 단순명료한건가? 달랑 2가지 뿐이다. 惱. "번뇌는 별빛이다"라고 할 때의 그 惱다. 고민과 고뇌로 나는 괴로워하고 있다고? 그래서 이 뇌는 괴로워할 惱이기도 하다. 난 무엇으로 고민하고 있을까? 간단치 않다. 

休. 쉬고 싶을 뿐이다. 3월부터는 무한정 쉬겠다고 작정하고 있다. 지금은 너무 쉬고 싶은 게 사실이다. 惱 속에는 무한정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 뇌 속의 생각들이 그렇게 惱와 休로 간단히 정리될 수 있을까? 

그런데, 나의 한자 이름은 두 개다. 족보에 있는 한자는 가운데를 빛날 형(炯)으로 쓴다. 그러나 호적 등 모든 행정적 공식용으로는 무식하게 兄자를 쓴다. 아무튼 이 때문에 개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여유가 되면 개명 신청을 해볼 생각이다. 여하튼, 다시 한 번 해보았다. 

安兄男の脳内イメージ


 

헐! 이건 또 뭐지? 지금은 그저 쉬고 싶을 따름이다. 쉬면서,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저 愛를 좀 더 키워야할테니까 말이다. 

인터넷 검색하면 금방 나오지만, http://maker.usoko.net/nounai/ 로 가면 확인해 볼 수 있다. 여러 종류의 검사가 있는데, 일본어가 짧아서 뭔소린지는 잘 모르겠고, 거기보면 整形費用이라는 것이 있다. 들어가보니 일본어로 "理想のルックスになるために必要な金額"이란 설명이 나온다. 대충 한자만 봐서는, "이상적인 모양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금액"이란 뜻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정형이라는게 우리가 말하는 성형을 뜻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이건 성형 견적을 뽑는 건다. 내 견적이 자그만치 588만엔이란다. 오늘자 환율로 계산해보니 자그만치 81,420,360원이나 된다. 헐! 이름만으로 성형 견적까지 나온단말인가?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이다. 성형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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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9-01-0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 이름이 안형남이군요. 왠지 쫌 촌스럽단 생각이 드네요. 하하. 이거 땜에 저 미워하실 거 아니죠?

마늘빵 2009-01-08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전에 비밀 비 자가 가득 나왔던거 같아요. ^^

글샘 2009-01-0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좀 쉬시면서 사랑도 키워야 할 것 같군요. ^^
주제넘게도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감사히 읽겠습니다. ^^
 


서재지수 : 19560점


서재지수는 20000 점에 육박(肉薄)해 가고, 마이리뷰도 100편을 넘긴지 이미 오래고, 마이리스트는 미미하지만,

난~, 페이퍼질 좀 했을 뿐이고, 고작 353편으로 TOP100 달릴 줄 몰랐고, 서재질 하느라 공부 좀 안 했을 뿐이고, ㅋㅋ

음, 서재 활동 역사상 처음으로 저도 저런 걸 달아보네요.

요새 즐찾이 몇 명 늘어나 기분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 여세(餘勢)를 몰아, 더욱 분발(奮發)해야겠네요.ㅎㅎ 얼런 마이리뷰에도 달아야겠당!

 

* 육박(肉薄) : 바싹 가까이 다가붙음.
          肉(고기 육), 薄(엷을 박). 살갗이 닿을락 말락 할 정도로 가까이 가는 걸 말하는 거겠죠? 아, 나는 언제쯤 내 사랑하는 님에게 육박할 수 있을까? ㅋㅋ

** 여세(餘勢) : 어떤 일을 겪은 다음의 나머지 세력이나 기세.
           餘(남을 여), 勢(형세 세). 내게 남아있는 힘이나 있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 분발(奮發) : 마음과 힘을 다하여 떨쳐 일어남.
             奮(떨칠 분), 發(필 발). 발분(發奮)으로도 쓴답니다. 奮은 곧잘 '성을 내다'는 뜻으로도 자주 쓰이는데, 아주 그냥 기를 쓰고 성을 낼 정도로 용쓰는 걸 말하는 걸까요? 發에는 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못 분발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래도 우리 힘을 내야죠? 마이리뷰도 TOP100에 들려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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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12-1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그간의 페이퍼질이 :) 나는 리뷰에 50, 페이퍼에 10 붙어있는데 =333

멜기세덱 2008-12-18 21:20   좋아요 0 | URL
이건 뭡니까?

2008-12-18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8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08-12-1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하(慶賀)드립니다. 앞으로도 서재(書齋)가 번창(繁昌)하시길 기원(祈願)합니다.

멜기세덱 2008-12-18 21:23   좋아요 0 | URL
이런 식으로, 흔적을 남기시는군요. 경하, 번창, 기원, 좀 상투적이지 않아요? 신선하면서도, 자극적으로, 그런게 좋죠.ㅎㅎ

순오기 2008-12-1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축하합니다!!
마이 리뷰 100을 달기는 쉽지 않을걸요~ㅎㅎㅎ 아마도 400은 돼야 붙지 않을까?
어린이 책 열심히 쓰면 빨리 달성할 수는 있겠네요~~~ㅋㅋㅋ

멜기세덱 2008-12-18 21:24   좋아요 0 | URL
그간의 리뷰를 3등분해서, 올리면, 한 400 될 거 같은뎅...ㅋㅋㅋ
알라딘은 분량도 좀 신경을 써서 반영해 줬으면...ㅋㅋㅋ
어린이 책....이담에 애나면, 뺏어 읽으려고요.ㅋㅋ

무스탕 2008-12-1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로만 따지면 전 455개인데도 그런 꼬리표 없어요.
하여간 좌우지간 감축(感祝)드리옵니다 ^^

멜기세덱 2008-12-18 21:25   좋아요 0 | URL
아하, 왜 그럴까요? 감축은, 이쁜 여자 친구가 생기면 그때 받을게요.ㅎㅎ

꿈꾸는섬 2008-12-18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다른분들 서재 돌아다니다가 멜기세덱님 서재는 얼마전 알게 되었는데 내공이 대단하다 느끼고 있었답니다.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세요.

멜기세덱 2008-12-18 23:1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내 공이라뇨? 별말씀을...
꿈꾸는섬님이 무슨 공이 있으시다는 건지....ㅋㅋㅋ
ㅎㅎ
자주자주 놀라오셔서, 이 서재가 번창할 수 있도록 공을 좀 세워셔야죠?
ㅎㅎㅎ
 

팔과 손이 아프고 저려, 고만 둘까 하다가, 순오기님 생각에 이 분야를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시사IN> 2008 올해의 책 선정에 있어 마지막 분야는 어린이·청소년 분야다. 사실 이 분야는 다른 세 개 분야와는 그 구분 기준이 좀 다른 데가 있다. 문학이나 인문, 사회 등의 구분이 책 내용적 측면이라면, 어린이·청소년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그 책의 대상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분류하면,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분야의 책이 포함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분야에서 대다수의 추천작들이 거반 문학에만 치중됐다는 것이다. 인문, 사회, 자연, 과학, 문화 등등 그 분야들이 많을 텐데. 어린이·청소년을 따로이 구분하여 분류하는 것은 그만큼 이쪽이 그나마 잘 팔린다는 얘기도 되고, 그에 못지 않게 어린이·청소년들에게 보다 유효하고 적절하며, 쉽고 간편하게 책을 골라 읽게 하고, 그렇게 하라고 권장하는 효과도 있으니, 너무 문학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다변화 시켜 아이들에게 선택의 폭과 깊이를 넓혀주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몇몇 관심서적을 제외하고는 내 생전 읽지 못한 책이지만, 이렇게 정리하여 두는 것은 순전히, 순~ 오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오기 님을 위한 것이다.ㅎㅎ

어린이·청소년 분야 추천에는 "김병규(동화작가), 김중미(동화작가), 김지은(동화작가), 원종찬(아동문학 평론가), 임숙자(어린이 도서관 맨발동무 작가), 조대연(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 편집장), 조은숙(아동문학 평론가)"이 참여했다.

동화작가 고(故) 권정생 선생의 『랑랑별 때때롱』(보리)이 <시사IN> 선정 2008 올해의 책 어린이·청소년 분야에서 선정됐다. 이 작품은 권정생 선생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동화작가 김지은씨의 평처럼, '지구별에 사는 새달이·마달이 형제가 과학만능 시대를 구가했던 랑랑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로 기계와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생명의 섭리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랑랑별의 현제 때때롱·매매롱을 만난 이들은 함께 '500년 전 랑랑별'로 거슬러 올라간다. 500년 전 랑랑별은 로봇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몸 쓸 일을 잃어버린 사회였다. 과학기술이 만개해 아이들이 '좋은 유전자만 골라다가 맞춰서 만든 맞춤 인가'으로 태어나지만, 이 아이들은 '웃을 줄도 모르고 울 줄도 모르고 화낼 줄도 모른다'. 랑랑별 사람들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과거(과학 문명)와 이별했다."

"일제 식민지 시대 작가 현덕의 『노마네 아이들』 이후로, 천진한 아이들 모습이 이처럼 또렷하게 그려진 예는 달리 없다."(원종찬)

"권정생의 담백한 문장과 <페르세폴리스> 같은 흑백 실루엣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작가 정성희의 그림이 잘 어울린다. 평론가 원종찬은 "강아지 흰둥이의 꼬리를 누렁이 소가 물고, 새달이와 마달이는 누렁이 꼬리를 꼭 붙들고, 개구리와 물고기들은 누렁이 몸에 붙어 랑랑별로 올라가는 대목'을 '동심과 해학과 환상이 한데 어우러져 숨을 쉬는, 우리 동화가 그려낸 영원히 잊히지 않을 명장면'이라고 평가했다"

권정생의 책으로는 녹색평론사에서 발간한 『우리들의 하느님』이 있고, 동화로는 『몽실 언니』, 『강아지똥』,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등 다수가 있다. 원종찬 인하대 교수는 평론집 『권정생의 삶과 문학』(창작과비평사)을 펴냈고, 이원준은 『권정생 - 동화나라에 사는 종지기 아저씨』(작은씨앗)을 펴냈다.

"권정생은 유언장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평생 다섯 평짜리 오두막집에서 아픈 몸으로 혼자 살았던 작가는 그렇게 랑랑별과 가까운 어떤 곳으로 떠나갔다. '권정생'을 벌써 그리운 이름으로 남긴 채."

이 외 주목받은 책은 김려령의 『완득이』(창비)다. 이 책은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한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마해송문학상을 수상한 『기억을 가져온 아이』등으로 "신예 작가 김려령"은 청소년 문학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김해원의 『열일곱 살의 털』(사계절)은 '두발 자유를 다룬 청소년 소설로 머리털과 가위에 빗대어 교육과 사회의 문제를 꼬집는 알레고리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평을 받았다.

『박뛰엄이 노는 범』(계수나무), 『쨍아』(창비), 『꽃신』(파랑새어린이), 『나무를 만져 보세요』(창비), 『날마다 뽀끄땡스』(문학과지성사),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고래이야기), 『다산의 아버님께』(보림), 『들려요? 나이지리아』(검둥소), 『마녀 사냥』(보림), 『맛의 거리』(문학동네어린이), 『뻥쟁이 왕털이』(사계절), 『엄마 까투리』(낮은산) 등이 추천되기도 했다.

 

<시사IN> 선정 "2008 올해의 책" - 문학 분야

<시사IN> 선정 "2008 올해의 책" - 인문·사회과학 분야

<시사IN> 선정 "2008 올해의 책" - 생태·자연과학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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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8-12-17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상품 넣기를 이용해서 『쨍아』를 검색했는데, 이상한 것만 나온다. 검색이 잘 안되는 것 같다. 아니면 상품이 없나? 그래서 이 책의 이미지는 빠졌다.ㅠㅠ;;

멜기세덱 2008-12-1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쨍아~~~찾았당!!ㅋㅋ

순오기 2008-12-17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멜기님, 그러잖아도 브리핑에 뜬 청소년.어린이 분야를 보고 바로 클릭했는데 순오기가 나와서~ '깜딱이야!!' 놀랐잖아요.ㅋㅋ
팔과 손이 아프고 저린데 순~오기가 아닌 순오기를 위해서 해주셨다니 넙죽 절합니다.^^
여기는 그래도 읽은 책이 10권은 되네요~
 

이번 <시사IN> 선정 "2008 올해의 책"은 단촐하게 준비했다면서도 먹을거리는 한가득이다. 남다른 점은 4개 분야의 구분에서 자연과학과 더불어 '생태'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과학과 '생태'는 그간 기나긴 여정을 서로 대척점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과학은 점차 '생태'에 어떤 식으로든 이바지해야할 입장에 서 있다. 여하간 이번 <시사IN> 선정 "2008 올해의 책" 생태·자연과학 분야 선정작 및 추천작 목록에서도 그러한 일면들이 보이는 것 같아 의미롭다. 우리는 "생태적으루다가 살아야 헌다!"

생태·자연과학 분야는 "강양구(프레시안 사회팀장), 고중숙(순천대 교수·과학환경교육학부), 김국현(IT 평론가), 이강준(에너지정치센터 기획실장), 이억주(어린이과학동아 편집장), 장성익(계간 환경과생명 주간), 최규홍(연세대 교수·천문우주학), 표정훈(출판 평론가)"이 참여했다. 이들이 어떤 책들을 꼽았는지 유심히 정리해 두자.

'자연과학' 앞에 '생태'가 당당히 머리를 차지하고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이 분야 올해의 책으로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의 『땅의 옹호』(녹색평론사)가 뽑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땅의 옹호'라는 제목과 '공생공락(共生共樂)의 (가난한) 삶을 위하여'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배타적인 탐욕과 약자에 대한 착취 없이는 한순간도 존속할 수 없는 근대적 삶의 방식을 뛰어넘어 오랜 세월 '대지에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의 공생의 지혜로 돌아가자'라는 저자의 일관된 소신이 담겨 있다."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흙의 문화' '자율과 자치' '농적(農的) 순환사회' '진보가 아닌 개안(開眼)'이 필요하다고 절절히 호소한다. 물신과 경제 지상주의의 노예로 전락한 우리 시대의 뒤통수를 내려치는 준열한 경고이자, 주류 세태와는 전혀 다른 전복적인 행복 안내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장성익)

"이 책을 읽으면 저자가 얼마나 '철저히 비타협적 자세'를 견지해왔는지 알 수 있다. 현실의 유력한 세력, 담론 중에 그의 편은 그 어디에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경제)성장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정당론, 녹색정당론, 사민주의 복지국가론 모두 저자의 비판 대상이다."

나는 <녹색평론>을 얼마전부터 정기구독하고 있다. 꼼꼼히 읽고는 싶지만, 여간 부담이 아니라 쌓아만 두고 있는 노릇이다. 얼마 전, <녹색평론> 본거지를 서울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의 서교동 쪽이라고 기억하는데, 심심할 때 찾아가 놀아도 된다던데.

 

 

 

 

김종철 선생은 올해 『땅의 옹호』뿐 아니라, 그간 발행해온 <녹색평론>의 글들 중 가려뽑아 묶은 『녹색평론선집 2』와 자신이 썼다 <녹색평론> 서문을 엮어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를 내어놓았다. 이전에도 『녹색평론선집 1』(이미지가 안 보이는 것)이 있었고, 괄목할 만한 번역 작업으로는 최근의 것으로, 리 호이나키의 글을 번역한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가 있고, 감동적 작품 더글라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등이 있다. 『간디의 물레』가 예전부터 유명하다.

"<녹색평론> 창간(1991년) 이후 지난 17년간 쉼없이 "소농과 그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생태적 순환사회'에 대한 지향을 설득해왔지만 저자 스스로 밝힌 대로 '(세상은) 본질적으로 조금도 변하지 않았거나 질적으로 더 열악해졌고, 근대의 어둠은 훨씬 더 깊어졌다'. 그럼 어쩔 것인가? 저자도 묻는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우리가 믿을 데는 정말 '기적'밖에 없는가?'"

"하지만 저자가 더욱 더 강조하는 것은 '우정'과 '환대'에 기초한 어떤 삶의 자세다. 그는 머리말에서 '우정'에 대해 "지금 세계를 황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자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채식 전문 뷔페에 가서 각자 좋은 음식을 골라 먹는 것보다, 라면을 먹을지언정 여럿이 둘러앉아 함께 나눠 먹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밖에 추천작으로는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산책자), 마이클 폴란의『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 제임스 콜먼의 『내추럴리 데인저러스』(다산초당), 제롬 보날디의 『(거의) 석유 없는 삶』(고즈윈), 이유진의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등이 올라왔다. "먹을거리 문제, 에너지 위기 등 2008년의 최대 관심사가 그대로 반영됐다"는 평이다.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 소장의 『지식의 대융합』(고즈윈)도 주목할 만한 책으로 꼽혔다. 자연과학·인문학·경제학·예술·종교·환경 등을 통합하는 지식 융합 과정과 역사, 새로운 지식의 탄생 과정을 설명한 이 책에 대해 고중숙 순천대 교수는 "학문 간의 경계를 넘어 지식의 영역을 넓혀온 연구자들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추천인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를 뛰어넘어 생태·환경 관련 서적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로의 속삭임』(사이언스북스), 레스터 브라운의 『플랜B3.0』(환경재단 도요새), 장회익의 『공동체적 삶과 온생명』(생각의나무) 등이 그러한 관심에 따른 추천작이다.

이들과 함께 '올해의 책' 후보로 오른 책들은 프랑수아즈 모노외르의『수학의 무한 철학의 무한』(해나무), 김명진의 『야누스의 과학』(사계절),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바다출판사), 마이크 데이비스의 『조류독감』(돌베개), 게일 A. 아이스니츠의 『도살장』(시공사), 박문호의 『뇌, 생각의 출현』(휴머니스트) 등이 올랐다.

 

<시사IN> 선정 "2008 올해의 책" - 문학분야


<시사IN> 선정 "2008 올해의 책" -어린이·청소년 분야

<시사IN> 선정 "2008 올해의 책" - 인문·사회과학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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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8-12-1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에 나온 책이 아니라도 선정하나보네요 ^^;; 제가 읽은 책이 다섯권쯤 되네요. 가장 대중적으로 좋았던 책을 제게 꼽으라면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어느 계층이 읽어도 참 좋은 책인거 같습니다.

멜기세덱 2008-12-17 12:05   좋아요 0 | URL
올해 출간된 책이 아닌 것은 제가 참고 삼아 덧달아넣은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혼란을 드린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이 ~" 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죠. 많이들 읽어 보아야 할 책임에 분명합니다.

순오기 2008-12-17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난 문학위주의 독서라 여기는 '죽음의 밥상' 하나뿐~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도 않았고요. 그래도 중3 아들이 완독한 것으로 위로 삼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