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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늘자(2008년 10월 27일 월요일) 신문을 보다가 20면 하단 광고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단국대 『漢韓大辭典』전 16권이 완간됐다는 소식이었다. 

 

"단국대 漢韓大辭典


대한민국 한자 문화의 신기원을 엽니다"

"2천년 한자문화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단국대가 결심했습니다.
찬란한 민족문화에 걸맞는,
정확한 뜻과 풍부한 쓰임새를 갖춘
한국 대표 한자사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1978년 첫 발을 내딛고
310억 원의 예산과 연인원 20만여 명의 전문가를 투입해
마침내 <漢韓大辭典(전 16권)>을 완간했습니다.
중국, 일본의 사전에 의지하던 전통문화 연구의 약점을
해소할 '한자어 우리말 큰 사전'을
우리 겨레 앞에 올립니다.

"대한민국을 위"한다거나 "찬란한 민족문화"라거나 "겨레 앞에 올"린다는 게 다소 거슬리지만, 대단한 업적임에는 틀림없다. 이 사업이 30년간 끊이지 않고 완간되기까지의 많은 이들의 노고를 높이사야 할 것이다. 얼마전 10여 권이 먼저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이렇게나 빨리 발간이 될 줄은 몰랐더랬다. 총 2만 1천 5백 80면에 5만 5천 자, 25만 단어를 수록한 "세계 최대규모 한자사전"을 우리 손으로 펴냈다. 이런 건 "세계 최대"를 뽐내도 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국대에서 펴낸 이 대단한 업적을 우선 축하하며, 발간 소식을 전하는 기사와  조정진의 칼럼을 옮겨 오려다가 링크만 시켜둔다.

권당 10만원에 달하는 이 사전을 내가 구비하기까지는 먼 훗날, 혹은 기약할 수 없는 날이겠지만, 우리나라 학교 도서관들은 한질씩 구비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155만원씩은 투자해도 될만한 업적이다. 총 31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신문에 큰 광고까지 내고 있다. 그렇다고 개인 판매가 늘 것 같지는 않다. 여러 도서관 등 단체에서 많이 구입을 해야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이 책 자체로 310억원의 가치가 있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익은 아니더라도 손해 만은 보전해 줘야 하지 싶다. 그래야 더 큰 성과나 업적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에 버금가는, 아니 이를 뛰어넘는 우리말 사전도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이것보다 먼저 나왔어야 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축하할 일이면서도 이래저래 씁쓸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걱정도 되는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세계최대 '漢韓대사전' 30년 집념이 이뤘다
단국대硏, 제작비 310억·연인원 20만명 투입 '5만5000자·45만 단어' 16권 완간
<한국일보 2008년 10월 25일>

[조정진의 冊갈피] 세계 최대 규모 ‘한한대사전’ 완간에 부쳐
<세계일보 2008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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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8-10-2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보기 드물게 위대한 작업입니다. 가슴이 뿌듯해지는 소식이네요. 이게 바로 학문이고 학문의 진보지요..

bookJourney 2008-10-28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에 못지 않은 우리말사전도 나오기를 기대하며... 도서관에 구입신청해야겠네요.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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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5-1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북으로 갈린 나라를 다시 동서로 찢어발기겠다는 발상이군요. 수에즈와 파나마운하의 예가 적절합니다. 한심한 것들!!!!!

마늘빵 2008-05-1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바 그럼 칠레는 이렇게 운하 팔까? ㅋㅋㅋㅋ

순오기 2008-05-14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요!

Arch 2008-05-15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정말 판대요? 요새 촛불 시위때문에 들어가긴 했지만 슬슬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
 

▲ 왼쪽이 조국 교수, 오른쪽이 김상하 변호사

“밝고 명랑한 진보정당 만들겠다”
[대담 연재②] 진보신당 비례대표 김상하 변호사 vs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

진보신당 비례대표 김상하 변호사와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의 대담은 주로 ‘어떤 당이어야 하는가?’로 모아졌다. 준비된 주제는 ‘법률’에 관계된 것이었지만, 80년대 학생운동의 '동문'이자, 삶의 가장 치열했던 시기를 사회주의 노동운동가로 산 '동지'였던 두 사람은 당 운동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대담을 일관했다.

김상하 후보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가보안법 ‘올인’을 “균형 감각을 잃은 몰입”이라 비판했고, 조국 교수는 “남쪽의 진보 사상이 김일성주의일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단언했다.

두 사람은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진보신당의 창당 배경을 다수결로 모든 것을 독점하는 조직형식주의에서 찾고, “단일한 사상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버리고, 소수에 대한 배려를 통해 반대 경우의 가능성도 살려나가야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런 취지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나 젊은 세대의 문화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데로 나갔고, 김 후보는 “밝고 명랑한 문화를 가진 당을 만들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김 후보는 “적어도 일본 수준인 2:1까지는 비례의석을 늘려야 한다”며 추후 정치제도 개혁에 노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래는 지난 28일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에 서울대 법대 교수연구실에서 이루어진 김상하, 조국 대담의 발언록이다. 

                                                             * * *


조국(이하 ‘조’) - 김상하 후보와 나는 법대 1년 선후배 사이로 Fides(신뢰라는 라틴어, 서울대 법대 학회지. 편집자 주)라는 써클에서 같이 학생운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 김 후보는 학생운동의 맹장이었고, ‘왕뚝심’으로 불렸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근래 들어 하는 일이 달라진 이후에도 서로 마음의 교류는 있었다고 본다. 이번에 후보로 나섰다니 또 다시 놀랍다.

김상하(이하 ‘김’) - 당대표들이 비례대표를 예비내각 성격으로 구성하려 했기 때문에 20~30명의 변호사 당원 중 한 명은 나와야 했다. 여러분이 고사하시는 바람에 결국 저한테까지 ‘폭탄’이 돌아왔다. 법조계 지지 세력을 모으는 데 일조하고자 마지막 번호로 달라 그랬다. 어중간한 번호보다는 꼴찌가 더 눈에 띌 것 같기도 하고(웃음).

- 진보신당에 있는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바도 있겠지만, 자신의 정치활동을 총괄하는 의미도 있지 않나?

- 그렇다. 2006년 지방선거 때 인천에서 출마했던 것의 연장일 수도 있고, 분당 과정에서 진보신당이 새로운 진보, 올바른 진보의 대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사양하는 것보다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조계 조직화 위해, 새 진보 세우기 위해 출마

- 나 스스로 국가보안법 폐지론자지만, 민노당의 ‘국가보안법 올인론’이나 ‘2중대론’처럼 국가보안법 철폐가 진보운동의 최상의 슬로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민노당이 그것에 매몰되었을 때 그보다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그 활동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나 자신 국가보안법으로 두 차례나 수형 생활을 한 피해자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지켜지고 비정규직 문제 등이 제기된 상황이라면 어느 한 쪽에 몰입하기보다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하는데, 당시에는 너무 몰입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정권 초기가 아니라 중기였기 때문에 더 이상 몰아붙이지 못해 성과를 내지 못한 한계도 있었다.

냉전과 독재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은 청산해야 하지만, 그런 과제의 크기와 중요도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 옛날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민주노동당은 PD가 만들고 전국연합이 들어오면서 민노당 내부 세력 구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친주사적, 민족주의적 진보정당과 대중적 기반은 취약하지만 반주사적인 진보신당으로 갈라졌다.

주사파에 대한 진보신당의 문제제기는 정당하다. 남쪽의 진보 사상이 김일성주의일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또, 진보정당이란 것과 진보적 노동운동이 구별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 민주노총과는 당연히 결합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결합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정치적 외피에 불과했던 것 아닌가? 노동조합운동과는 별개 논리, 별개 문법의 진보정당을 결집시키고 조직화하는 데 실패한 것 아닌가?

옛 민주노동당이 정당정치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가 생각해본다. 전민항쟁이나 연합전선론 같은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단병호 의원은 민노당을 탈당하면서도 진보신당에는 합류치 않았다. 진보신당이 단 의원의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나? 대중적 기반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단병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나?

- 상당히 어렵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되면서 진보정당운동의 기반이 잡혔는데, 자주파는 조금 뒤늦게 필요성을 느끼고 참여했다. 그분들이 들어오면서 당세가 확장되고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당비대납이라거나 위장전입 같이 부르주아 정치인과 차이 없는 조직전술을 구사하면서 다수파가 됐다. 40%의 소수 의견을 배려하거나 합리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배제했다. 당을 형식화한 것이다.

정치사상적으로도 옛 NLPDR론이 현재의 남한에 현실 적합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렇게 정치노선이 빈약하다 보니 통일운동에만 매몰되는 것이다. 당대회에 참석해, 일심회 제명에 반대하는 것을 보고 법률가로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 저도 당대회를 봤는데, 자주파 분들은 국가보안법 피해자이면 노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옳지 않다. 국가보안법이 악법이라는 것과 당규를 위반했다는 것을 혼동하지 않았나 싶다.

- 당규를 위반하면서 당간부 뒷조사하고 보고했다는 것은 당을 오도한 것이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탈당했어야 했다. 스스로도 안 하고, 최고위원들도 조치 취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공안세력 아니냐는 반박을 가했다. 결국 분당까지 치닫게 한 연합파가 초가삼간 다 태운 꼴이다. 정확하게는 분당을 강제한 것이다.

- 일심회를 옹호하는 분들의 멘탈리티, 그러나 공개하지 않는 생각은 북의 공작원이면 통일 사업하는 것 아니냐는 것은 아닌지? 확실히 다른 사회구성체인 두 나라를 자신의 의지로 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지?

51%로 모든 것을 다 먹는 표결 만능주의로는 정당이 깨질 수밖에 없다. 51%를 가진 다수파가 소수파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는 진보신당에서도 고민해야 한다.

- 브라질노동자당을 보면 다양한 사상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낳더라. 우선 단일한 사상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버려야 한다. 진리가 51%로 확보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소수에 대한 배려를 통해 반대 경우의 가능성도 살려나가는 것에서만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 아니겠냐. 진보신당에서는 정파들이 상호 배려하고 양보해야 한다.

진리는 51%가 아니다

- 민노당 쪽에서는 ‘진보적 인텔리 정당’이라는 비판을 하던데, 어떻게 극복할 생각인가?

- 진보신당은 인텔리 정당이 아니다. 장애인이 공동대표를 한다든지 하는 예도 있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대학을 졸업했다 할지라도 20여 년을 노동자로 활동해왔고. 금속노조, 공공노조, 사무금융노조에서는 광범위한 지지세를 얻고 있고, 울산 인천 등의 주요 공단 지역에서도 큰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

- 민노당 모두를 주사파라 딱지 붙이기는 곤란하다. 주사파는 아니면서도 헌신적인 분들이 많이 있는데, 진보신당은 왜 그분들 마음을 얻지 못했느냐?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

- 맞다. 소박한 마음으로 통일과 노동해방을 바라는 평당원들이 많다. 이분들도 진보신당을 관심있게 지켜보며 잘 되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어떻게 되는가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과는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 김 후보가 달고 있는 진보신당의 뱃지 색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동안 민노당이 포괄하지 못한 진보세력이 많이 있다. 예전에 민노당 간부가 “동성애는 자본주의의 퇴폐적 산물”이라 말했던데, 진보신당은 성소수자, 생태 같은 세력의 포괄에 대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 예전에 기본계급만 강조하고 그 외 사회적 약자들을 소홀히 한 것을 인정한다. 진보정당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계급 이외의 각계각층 약자를 보듬는 운동이고, 그들에게 당활동 참여의 계기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열린정당으로 활동하겠다.

당에 참여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걸맞는 역할을 배치하지 못했다. 이런 점도 고쳐나가야 한다. 당이 사회여론을 주도할 수 있게 지식인들을 포괄해야 한다.

단병호 의원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노동에 대의원을 할당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수많은 노동분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실제로는 대상화, 소외됐었다. 본격적인 창당은 총선 후에 현장노동자들과 함께 노력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쿨’하고 현대적인 문화 가져야

- 진보란 계급적 가치를 국민적 가치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2008년 한국 현대사회에 맞는 문화를 가져야 한다. 일제시대의 민족해방문화처럼 지금에 맞는 문화. 학번 따지고 서열 따지는 전근대적 운동권 문화로는 안 된다. 요즘 말로 ‘쿨’해야 한다.

- 운동가의 엄숙주의를 가지고는 사람들과 결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다운 청년정신과 패기가 있어야 한다. 원리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듯도 하다.

지금 진보정당은 40대의 지지는 받지만, 젊은 층 지지는 못 받는다. 이 세대에게 진솔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한다. 진보신당 창당대회 때 보니 락 공연도 하고 나름 노력하더라. 문화적 계기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 학교에서 19세~23세 사람들만 만나는데, 그들은 생각이 다르다. 학생이 아니라 노동자이더라도 젊은 세대 노동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자와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두 진보정당은 여기에 접근 못하고 있다. 두 당에는 ‘빨간 머리띠 시위’ 그런 모습만 있다.

김 후보, 춤도 배워 보시라. 노래방에서 어떤 노래 부르나? 옛날 노래만 부르지 않나. 우리들도 나훈아, 남진 노래 부르는 윗세대를 ‘꼰대’라 놀리지 않았던가. 개인주의로만 비추어지는 젊은 세대들은 커다란 고민을 안고 있다. 예전에는 대학생이 엘리트였지만, 지금은 대학 나와봐야 취직도 안 된다.

- 독일에 여행갔을 때, 락페스티벌을 하는 것을 보니 축제 중에 모여 토론도 하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소주 먹는 것밖에 없지 않나. 독일처럼 지역에서 다양한 만남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밝고 명랑한 문화를 가진 당을 만들겠다.

- 노래든 꽃꽂이든 지역에서 소모임과 생활정치를 퍼뜨려야 한다. 진보정당은 중앙정치에는 강한데, 생활정치에는 약하다. 비주얼에 강한 젊은 세대들은 딱 보면 안다. “쟤는 재미 없어”, 그런다. 386 정당이 돼서는 안 된다. 만약 국회에 입성한다면 어떤 분야에 힘쓰려 하는가?

비례의석, 일본 수준은 돼야

- 지금 조망하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시대 최고의 화두는 고용불안이라 본다. 대학교 졸업해도 정규직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을 고치기 위해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것에 최우선하려 한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를 더 구체화해야 하고. 최근 이야기되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와 등록금 문제에도 열심히 움직이겠다.

특히 정치제도 자체에 신경 쓰고 싶다. 국회의원이 지역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일하도록 하고, 국회에 다양한 계층의 이해를 반영하려면 비례의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독일처럼 1:1이 바람직하지만, 적어도 일본 수준인 2:1까지는 비례의석을 늘려야 한다.

- 2007년에 보건의료노조는 임금인상분의 1/3을 비정규직에게 돌렸다. 비정규직보다는 강자인 정규직 노조들이 법 이전에라도 이런 모범을 따라야 한다. 진보신당에서도 이런 사례를 권해야 한다.

- 비슷한 사회연대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단위 기업 안에서 비정규직을 우선하거나, 사회적 기금을 만들거나 해야 한다. 진보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안에서 더 풍요로운 사람이 덜 풍요로운 사람을 도와야 하지 않겠나. 우리가 먼저 노력해야 한다. <끝>

진보신당 홈페이지 http://www.newjinb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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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홈페이지에 갔다가, 진보신당(http://www.newjinbo.org/) 비례대표 후보를 나선 김상봉 교수의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기사가 있어 옮겨 온다. 이쯤되면, 이번 총선에서 아 某 군은 진보신당을 찍어야 할 것 같다. '앗 이런 기사가 있었어요?'하면서 가장 관심을 표할 사람 말이다.

'현실참여' 철학자, 총선에 나서다
[인터뷰] '학벌 없는 사회' 김상봉 운영위원

학벌없는 사회 운영위원이자 전남대 철학과에 재직 중인 김상봉 교수 ⓒ 공숙영

"지금까지 철학은 세계를 해석해 오기만 했다.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낯설지 않은 문장이다. 읽고서 주먹을 불끈 쥔 청년들이 많았다. 저 문장을 쓴 철학자는 쓰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겠지만. 지난 23일 내가 만난 이 사람 역시 저 문장을 읽고서 주먹을 불끈 쥔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 이 땅에서 철학자는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이 사람을 만나면서 새삼 다시 묻는다. 김상봉, 3년 전부터 광주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이 사람. 
 
- 전남대에서 교편을 잡으신지 이제 3년째시죠?

"네,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독일에서 칸트 철학을 연구하고 돌아온 김상봉은 1999년 해직교수가 된 후 약 6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다가 2005년 7월 전남대 철학과에 교수 전원일치 결정으로 특채되었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아마도 한국 대학사회 '초유의 일'이자, 사람이 개를 문 것과 비슷한 '대사건'"이라며 "전남대 철학과 교수님들이 보여준 애틋한 마음이 진심으로 고맙다"는 뜻을 밝혔다.

전남대 철학과는 2007년 봄, 교수부터 학생까지 합심해 전남대가 정몽준 의원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려는 계획을 철회하게 만들기도 했다. 

- 광주에서 청소년철학교실을 운영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곳인지 알려 주십시오.

"2006년부터 시작했어요. 중학생반과 고등학생반이 있습니다. 철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문학적 교육을 시도하고 있는데, 저는 도우미고요. 철학과 제자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최근에 여러 학자 분들과 함께 광주 5·18항쟁을 종합적인 시각에서 연구한 책을 내셨는데요. (김상봉은 이 책에 '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었고, 이 제목은 책의 부제가 되었다.) 그 전부터 광주항쟁에 대해 철학적인 고찰을 해 오셨고요. 5·18의 독보성은 공동체의 완성을 통해 개인이 완전해진다는 데 있고, 인류가 지향할 것은 개인적 완성이 아니라 공동체적 완성이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공동체적 완성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 때 공동체란 '만남'을 의미합니다. 만남이 없으면 주체성도 없습니다. 일회적 만남이 아니라 규정된 형식과 외연을 얻을 때 만남은 비로소 공동체가 됩니다. 공동체적 완성이란 만남의 온전함을 뜻해요. 만남의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거지요. 사물화된 관념으로서의 공동체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광주 항쟁에서 그런 공동체의 이상적 전범을 보았습니다."

김상봉은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PEN)'라는 철학자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 모임은 작년 가을 삼성 특검법 도입 촉구 성명을 발표했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이라크 파병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송두율 교수 사건 등 주요한 시국 현안이 터질 때마다 계속 목소리를 내어 왔다. 철학자들이 연대하여 앙가주망 즉 사회참여를 하는 것이 놀라울 건 없지만 우리 풍토에서 신선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PEN)'의 삼성 특검법 도입 촉구 성명 발표 직후 이뤄진 언론 인터뷰에서 김상봉은 강한 어조로 삼성을 비판한 바 있다. 

"삼성 족벌체제가 무너진다고 해서 삼성이 망하겠습니까. 백번 양보해 삼성이 망한다고 해서 국가경제가 무너지겠습니까. 평소엔 세계 12위 경제대국을 자랑하다가도 매번 비리 척결 얘기만 나오면 유아기로 퇴행해버립니다. 언제까지 삼성의 협박에 끌려 다닐 건가요. 인간을 억압하고 노예화시키는 것은 국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도 할 수 있고 기업도 자본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번 총선에서도 진보신당 비례대표 출마로써 '앙가주망'을 하고 계신데요.

"국회의원 되고 싶은 마음으로 수락한 거 아닙니다. 홍세화 선생께서 권유하시기에 정 제가 필요하다면 말석의 한 자리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학벌 없는 사회'의 공동대표 직을 맡아 달라고 청을 드렸을 때 홍 선생께서 흔쾌히 맡아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홍 선생의 권유를 마다할 순 없었지요. 홍 선생께는 늘 인간적인 존경심이 있습니다. 홍 선생이 전선을 열어가는 척탄병이 되고 싶다고 언젠가 쓰신 걸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고요." 

저서 <학벌사회>를 통해 한국 사회의 학벌구조를 질타한 김상봉은 학벌구조 타파를 위한 모임 '학벌 없는 사회'를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지난 19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진보신당 비례대표 간담회에서 김상봉은 학벌차별 타파를 위해서 총선 후보들이 약력을 소개할 때 학력은 소개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신당 비례후보인 김상봉 학벌없는사회 정책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진보신당 비례후보 추천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 진보신당 비례대표 간담회에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인용해서 문둥이가 아이를 낳는 것처럼 어려운 여건에서 진보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출마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상인들은 문둥이가 뭐 하러 아이를 낳느냐고 하겠죠. 문둥이도 사람이니까 사람으로서 사랑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고 함석헌 선생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힘든 여건에 처한 진보 세력을 문둥이에 비유해 봤습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가만 있을 거냐, 그럴 수는 없다는 겁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 나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정권 출범 후 배달호 열사 분신 사건이 있었던 즈음(고 배달호 열사는 2003년 1월 9일 새벽 6시 30분 창원 소재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에서 분신했다) 민주노동당에 가입했고 지금은 진보신당에 몸담게 되었는데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분당에 대해 제 의견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대립이 적대적 당파적 대립으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피차간의 소통부재와 대안부재로 인해 빚어진 불가피한 객관적 결과라고 보입니다. 절대자본주의에 저항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아직 없습니다. 이 사회는 여전히 아래에서 통일을 과제로 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저는 종북주의자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왜 그런 흐름이 생기는지 현상만 가지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종북주의적 흐름이 생길 수밖에 없는 객관적 필연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은 궁극적으로 지양되어야 할 잠정적 분열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새로운 비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피차간에 겸손이 필요하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일방적 자기주장보다는 과연 우리가 이 시대의 어떤 비전, 어떤 자기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상상할 때입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이명박 정권 출범 후 크게 두 가지입장이 있는 걸로 보입니다. 하나는 '비관'이고, 나머지 하나는 당선되긴 했지만 그래 봤자 30% 정권에 불과하다는 '자위'입니다.(지난 대선 시 투표율은 62%, 득표율은 48.7%로서 환산해 보면 총 유권자 중 30% 가 이명박을  지지한 셈이다.) 

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를 길게 보면 30년 주기로 민중항쟁의 곡선을 그립니다. 1894년 동학, 3·1운동, 해방정국, 5·18광주민중항쟁, 거의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지금은 새로운 항쟁의 시작을 위한 새로운 극복대상이 정립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새로운 국가체제와 억압기구가 정립되고 있는 겁니다. 

이명박을 보십시오. 현대건설 사장이었고 또 교회 장로입니다. 자본과 교회의 합일, 즉 신격화된 자본입니다. 자본의 마지막 단계가 이명박이라는 개인으로 생생히 구현되고 있습니다. 신격화된 자본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5·18체제의 말기인 것입니다. 유신말기와 비슷한 때입니다." 

지난해 10월 7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문학평론가 이명원과의 인터뷰에서 김상봉은 이미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금의 절대자본주의는 이것대로 새롭게 등장한 항쟁의 대상이다. 우리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자기실현을 가로막는 새로운 지배자들이고, 새로운 항쟁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그런데 학자나 지식인들조차 아직도 민주화 또는 87년 체제의 망상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내가 전쟁상태 운운하면 '지금도 그 얘기하는 것이 너무 쌩뚱 맞은 얘기 아닌가. 아니면 너무 과격한 얘기 아닌가.' 이런 식으로 다들 섬뜩해하고 놀란다. 

이제는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 다소 기만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6월 항쟁의 성과로서 우리가 누렸던 경제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그 자유로운 삶이라고 하는 것이 이대로는 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자본의 노예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는 그 자본에 충실한 노예가 되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세뇌하는 학벌체제 속에서 경제적으로나 또는 정신적으로나 철저히 노예화 되어버렸다 라고 하는 걸 깨닫는 게 먼저다."

"국회의원 되고 싶은 마음으로 수락한 거 아닙니다. 홍세화 선생께서 권유하시기에 정 제가 필요하다면 말석의 한 자리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 공숙영

- 국회의원 되고 싶은 마음으로 나온 거 아니라고 하셨지만 만약에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시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웃음)

"현실화되기 전에 가정법으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만약 당선되면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상의해서 결정해야죠. 그들을 가르치는 책임이 저에게 있으니만큼 일차적으로 학생들과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어른들을 보면 왜 자기들은 희생하지 않고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는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제 제가 기성세대가 되었고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 마당에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학자가 되고 싶은 한편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 하려고 합니다. 철학은 약한 자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나서야 할 때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학생시민노동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이 시대의 주인이다, 나 같은 사람은 디딤돌 이상이 되기 어렵다, 그대들이 살아 나가야 할 세상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당신들의 역사를 만들기 바란다. 이렇게 말입니다."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분명한 어조와 논리로써 대화에 임하는 그의 진지하고 엄숙한 얼굴을 보며, 그의 어머니가 그의 얼굴을 보고 "쥐어짠 빨래, 다리지 않은 빨래"같다고 했다고 그가 어느 대담에서 말한 것이 기억났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비로소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린 다음 엷은 미소를 머금고 사진찍기에 임해 주었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질문할 게 있는데요. 철학자 김상봉 교수님 인터뷰할 거라고 했더니 며칠 전에 제가 인터뷰한 배우 김부선씨가 대마초 비범죄화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꼭 좀 질문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대마초 비범죄화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 정도는 교양입니다. 자유니 자율성이니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를 갖고서 국가가 자본의 폭력은 방임하면서 왜 개인의 취미생활에 개입하고 간섭하여 개인을 억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가가 진정 개입하여야 할 곳은 자본의 폭력이 발생하는 곳입니다."

김부선이 들으면 분명 기뻐할 대답을 남기고 그는 바쁘게 거리 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학자는 '우는 사람'이라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씨알들을 위해 대신 울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고 학자"라고, 김상봉은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는 함석헌의 언어를 소개한 바 있다. 우는 사람으로 척탄병으로, 세계를 해석함과 동시에 변혁하기 위해, 여전히 주먹을 불끈 쥐고서 그는 자신이 가야 할 '철학의 길'을 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공숙영 기자는 인터뷰전문웹진 퍼슨웹(www.personweb.com)의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대학원에서 '국제법과 인권'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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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4-0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말이에요? :)
 

<인하대학신문> 제1079호 2007년 9월 10일자 신문에 시사IN 관련 기사가 나왔네요. 반가운 마음에 옮겨 옵니다.

다시 잡은 펜, 시사 IN 창간
시사 저널 기자들, 그 1년 여의 기록…

김상우 기자

지난 해 6월, 시사저널의 금창태 사장은 편집국 몰래 인쇄소에서 시사저널 870호(2006년 6월 27일 발간 예정)의 기사 3페이지를 잘랐다.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권 남용을 비판하는 기사였다.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의 시작이다. 사실 그날 오후 금창태 사장은 삼성과의 친분을 언급하며 기사를 쓴 이철현 기자와 이윤삼 편집국장에게 기사를 빼자고 권유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의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금 사장은 편집인 직권으로 기사를 삭제했다. 빈 공간은 광고로 채워졌고 이 국장은 사표를 냈다.


그 후 시사저널 기자들은 1년여의 긴 시간동안 시사저널 사주들과 싸워야 했다. 17년 동안 시사저널의 노동조합 역할을 해왔던 기자협의회가 노동조합으로 정식 설립됐고, 그들의 길다면 긴 시간의 투쟁이 시작됐다. 이들이 사측에 원한 것은 ‘기사 무단 삭제가 재발하지 않는, 자본의 힘에 휘둘리지 않는 시사저널'이었다.


기자들은 올해 1월 11일부터 전면 파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1월 22일 시사저널 노조에 전화로 직장 폐쇄를 통보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직장패쇄 이후에도 시사저널은 계속 나왔다. 이른바 짝퉁 시사저널로 불리는 잡지의 발행이었다. 시사저널은 그렇게 자유 기고가의 외고, 외신 그리고 JES(중앙 엔터테인먼트&스포츠) 제휴 기사들로 채워졌다.


반년 간 파업을 하던 기자들은 결국 시사저널에 결별 선언을 한다. 지난 6월 26일, 사태가 발생한지 꼭 1년여가 지난 시간에서 기자들은 시사저널사앞 길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시사저널 노조 김은남 사무국장은 “회사 경영진이 시사저널을 정상화할 의지는 물론 기자들과의 대화에도 뜻이 없다"며 시사저널을 떠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주간지를 창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기자들은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이하 시사기자단)'을 결성했고 목동 방송회관 9층에 임시 사무실을 꾸렸다.


지난 1년 동안 지속됐던 시사저널 사태, 하지만, 이를 제대로 다룬 언론의 보도는 찾기 힘들다. 제도언론(종이매체)들의 외면 속에 시사저널 사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못했다. 시사저널 기자단의 글을 실어주고 사태를 보도한 것은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등의 인터넷 매체였다. 이 같은 문제는 제도언론이 사측이라는 자본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의 노순동 기자는 언론의 무관심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한다. “시사저널 사정을 알아도 쓰기는 힘들 겁니다. 어느 기자가 이 문제에 대해 기사를 쓴다고 해도 바깥(광고주나 언론사주)과 얽히는 사안이 많으니까요." 그의 말에서 현 언론의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로 산다는 것'은 기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나 스스로도 내 기사를 규정하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독자들이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갖는 것이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한반도 전문기자 남문희 기자는 “국제부 초년 기자로부터 기획특집부와 사회부 현장 기자를 거쳐 오늘날까지 오는 동안 '모든 이론은 회색일 뿐'이며, 결국 기자는 현장에 무한대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며 자신의 기자관에 대해 말한다.

 
기자는 현장만이 삶의 원동력인 것이다. “한 쪽짜리 작은 기사라도 최소한 다섯 명의 취재원이 등장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한 편집장의 말은, 단순한 입버릇이 아니라 현장을 신봉하는 <시사저널> 모든 기자들의 입버릇이자, 실천적인 행동이었다.


‘정특종'이라는 별명답게 쿤사 마약왕국 잠입 취재, 이완용 등 친일파 재산 상속 최초 보도 등 15건의 특종을 날린 정희상 기자는, 특종과 함께 13건의 민·형사소송에 시달려 마음고생이 끊일 날이 없었다.


<시사저널> 사태 발생 당시 취재총괄팀장을 맡았던 책임 하나로 무기 정직 및 출근 금지 징계를 받았던 경제통 장영희 기자는 ‘삼성만 후벼 파는, 비난만 일삼는 기자' ‘반기업적 기자'라는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삼성은 막강한 경제력을 원천으로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다. 삼성은 선출되지도, 견제 받지도 않는 권력이 되었다"는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에게 기자로 산다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인 듯싶다.


손석희(성신여대 교수)가 진행하는 <시선집중>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정치 소식을 전하는 이숙이 기자를 모를 리 없다. 대선 2번, 총선 3번, 지방선거 3번을 치러낸 베테랑인 그녀는 스스로의 표현처럼 “정치판을 오래 전전한 여기자가 흔치 않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가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현장 중심'과 ‘팩트 중심'에서 발현된 날카로운 비평과 예견을 날리고 그 예견은 틀림없는 팩트로 다시 <시사저널> 지면을 장식하곤 했다.


이러 기자들의 정신으로 시사저널을 사랑하던 독자들은 사태가 불거지자 자발적으로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모임’을 결성해 기자들의 외침을 응원했다. 독자로서 그들이 쓴 기사를 보길 원했던 그들은 시사저널 기자들이 아닌 자유기고가의 기사와 JES를 통한 기사제휴로 채워진 짝퉁 시사저널을 보이콧하며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힘을 보탰다. 이들 뿐만 아니다.


가수 겸 방송인 서유석은 시사저널 관계자를 만나 이번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듣고 홍보대사 역할을 맡게 됐다. 권해효는 11일 오후 3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될 ‘시사IN' 창간 선포식 행사의 진행을 부탁하기 위해 ‘시사IN' 측이 연락을 취했다가 아예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로 결정한 경우로 평소 사회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연기자로 잘 알려져 있다.

 
개그맨 황현희는 방송인 최광기와 함께 EBS 라디오에서 ‘최광기, 황현희의 시사난타'를 진행하며 최광기로부터 이번 사태에 대한 얘기를 듣고 동참하게 됐다.


이들 연예인들은 ‘시사IN' 선포식에도 참석해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펼치는 등 홍보행사를 할 예정이다.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집중토론' 코너를 진행하는 황현희는 이 날 행사에서 ‘집중토론'을 패러디한 콩트를 선보여 기자들과 참석자들에게 많은 갈채를 받았다.


오는 17일(월), 이들이 다시 한번 펜을 들어 세상을 말하려한다. 독자들이 정해준 ‘시사IN’이라는 제호와 그들의 성금으로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언론을 만든다. 독자들에게 좀 더 나은 뉴스를 전하기 위해 그들의 준비는 시작되고 있다.

"뉴스가치에 중점 둔 매체 만들 것"
인터뷰 / 문정우 시사IN 편집국장

김상우 기자

◇ 앞으로 발행될 시사인은 어떤 잡지인가?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다. 그동안 시사저널은 정칟이념이 아닌 순수한 언론으로서 발행돼 왔다. 어떠한 가치보다도 뉴스에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앞으로 발행될 시사IN 역시 뉴스 가치에 중점을 둘 것이며, 모든 취재 사안은 내부적으로 합리적인 토론과정을 통해 안건을 정할 것이다. 또한, 현 언론계가 뉴스성이라는 기본이 많이 무너져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사IN은 그 기본을 독자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훌륭한 상품이라 생각하고 발행될 예정으로 인쇄매체의 강점인 깊이 있는 진실을 드러내도록 할 것이다.
  주간지의 특성은 깊이 있는 취재라고 할 수 있다. 속보성 매체(일간지)와는 달리 훨씬 많은 시간과 인력이 장기간 투입돼 깊이 있는 취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노력해 나갈 부분이다. 또한, 편제를 뉴스·탐사 팀으로 이분화해 이전의 정칟사회·경제 등으로 나눠졌던 체제를 벗어나 보다 기획적인 뉴스를 다룰 예정이다. 
  또한, 세계의 여러 독립언론(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언론)들과 연대해 국내 주류 언론에서는 볼 수 없는 시각과 사건을 다룰 예정이다.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그동안의 언론 보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언론이 언론자유의 위기에 대해 이토록 둔감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실감나게 겪었다. 이번 사태는 경영과 편집의 이해가 상충될 여지가 많다는 것, 따라서 일정한 방어막 없이는 진정한 편집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런 점에서 상당수 언론이 이번 사태로 불거지게 된 편집권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한겨레나 경향도 이 사태의 본질에 대해선 언급하진 않았다. 사실관계를 충실히 밝히는 보도는 했지만, 자본권력의 언론통제의 현실 등 기획성 이슈로 더 파고들 여지가 있었는데, 그런 기사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진보적이지 않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이번 시사저널 사태를 통해 진보적인 기자들로 보여진다는 의견이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기자들의 성향은 본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진보냐 보수냐의 논쟁이 아니라 뉴스 가치를 중심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다. 파업을 하면서, 제도언론들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받았고, 사회적 약자들이 알게 모르게 겪는 핍박과 자본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물론 기자들이 과거와는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보적이라는 것보다는 변한 모습의 기자들이 지면에 어떻게 반영하는 지를 지켜봐줬으면 한다. 

◇시사저널 사태 1년여의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이를 버티게한 원동력이 있다면?
  독자들이다. 이전에는 독자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는 데, 이번 사태를 통해 직접 독자들을 만나면서 독자들이 우리 기자들이 쓴 기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기자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또한, 다들 생업이 있으신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모임’(시사모)를 만들어 정말 헌신적인 도움을 주셨다. 독자들을 만나면서 기자 생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마지막으로 사측이 너무도 무도하 대처가 이자리까지 오게한 원동력이다. 금창태 사장은 자신을 비난하는 언론과 독자들에게 소송을 진행해 5전 5패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이 있어도 기자들이 뭉치면 되겠지 했지만,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현재의 제왕적 재벌체제에서는 노동자라는 신분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부터 지배구조가 건전한 회사를 만들어 언론 본래의 공적인 목적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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