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는 그 책을 1시간만에 읽고 바로 40자평을 남겼습니다. 주말이 너무 멀다는 요지의 평이었죠. "아. 내가 쓰레기더미와 함께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진 저는 그날 (5월 31일) 바로 일어나 옷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참을성이 없는 게 이럴 땐 약이됩니다. 자정부터 시작한 옷정리는 새벽 다섯시까지 계속됐습니다. 얼굴도 예쁘고 청소도 잘하는 곤도마리에느님께서는 옷을 정리할 때 종류별로 다 꺼내놓고 하라고 하셨지요. 그리하여 옷장에 있는 옷, 박스에 있는 옷, 곳곳에 늘어져 있는 옷까지 모두 꺼내 상의, 하의, 외투, 원피스로 나누고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마리에느님은 나에게 "옷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설레는 물건만 남겨두라"고 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옷들은 죄다 살이 쪄서 이제는 입을 수 없게 된 옷들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현실과 조금 타협을 해, "내일 당장 이 옷을 입을 마음이 들겠는가" 정도로 기준을 완화했습니다. 결국 87벌 가량의 옷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매해 봄과 가을 옷장을 정리할 때마다 기아대책기구로 보낼 옷들을 추려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양이었을 겁니다. 몇개를 더해 100개를 채웠습니다. 그릇 가게로 가서 김장봉투를 샀습니다. 그 안에 옷을 담으니 김장봉투로 2개가 나오더군요. 50리터 쓰레기봉투보다는 크고 100리터 쓰레기봉투보다는 작은, 70~80리터 정도의 양인 듯했습니다.
다음은 책이었습니다. 곤도마리에느님은 단호하게 책도 다 갖다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읽은 책은 어차피 다시 볼 일이 많지 않고, 안읽은 책은 어차피 안읽는다는 명쾌한 논리였습니다. 책을 정리하는 기준도 역시 마찬가지. 설레는 책만 남겨놓아라. 하지만 전지전능한 청소여신인 완벽한 그녀가 모르는 딱 한가지. 그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어지간해서는 책을 보면 설레고 얼른 읽고 싶어진다는 사실. ㅎㅎ 30~40권만 남겨두었다는 그녀의 세상과는 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니 나는 내 세상의 법칙대로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무분별하게 들여놓은 책들이 많긴 많았습니다. 이사올 때부터 책장을 좀 모자라게 들여놨었는데, 거기에 책들이 더 쌓이고 쌓여 내가 책을 모시고 사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안읽은 책이라도 앞으로도 안보겠다 싶은 책들은 모두 방출하기로 했습니다. 방출하는 책은 세가지로 구분했습니다. 1. 폐지. 2. 기증. 3. 알라딘 중고서점. 명확한 기준을 갖고 나눴으나 기준은 비밀입니다. 폐지로 버리기엔 좀 아까운 것들도 있었으나,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은 책들도 있었으나, 허나 책들이 다시 필요를 얻게 되면 반성의 극적 효과가 덜할 것 같다는 이유로 모두 폐지로 버렸습니다. 400권 가량. 책이 폐지가 되어버리는 경험은 확실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시는 욕심난다는 이유만으로 집에 물건을 들이지 말자, 라는 뼈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폐지값이 얼마인지는 모르겠는데, 건너편 꽃집 아주머니께 폐지를 싹 드렸다가 경비실에서 엄청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도저히 1층까지 폐지를 가지고 내려갈 재간이 없어 와서 가져가주신다는 꽃집 아주머니에게 드렸는데, 경비 아저씨의 강짜가 엄청 심했습니다. 폐지를 모아 아파트 주민 복지에 쓴다는데, 이사온지 2년동안 몰랐 ;;; 고 ;;; 그 복지가 내게 어떤 혜택이 되어 돌아왔는지 알 길이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그동안 갖다 버린 폐지가 얼만데!!" 이정도면 내 복지값 정도는 하고 산 것 같은데, 하는 마음에 괜스레 억울해졌습니다. 결국 2차분으로 박스 두개 정도의 폐지를 슬그머니 밖에 내놨습니다. 그러니 아저씨, 쫌!!
알라딘 중고서점과 아름다운 가게로는 각각 120권 가량씩을 보내게 됐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는 새로나온 중고박스를 사서 원클릭 방문 매입으로 보낼 예정인데, 아, 일단은 힘이 빠져서 좀 쌓아두고요. 다음주말 정도에나.무튼 이렇게 총 방출된 책이 600권도 넘습니다. 그렇게 내놨는데도 결론적으로는 책장이 부족합니다. 더 이상 버릴 책은 없으니 책장만큼은 더 들여놓자고 결심을 해봅니다. 앞으로도 좀 열심히 읽고 열심히 내놓을 생각입니다. 책의 양은 더이상 줄지도 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는 야심찬 바람을 가져봅니다.
곤도마리에느님은 청소를 장소별로 하지 말고 아이템별로 하라고 했는데, (옷-책-서류-잡동사니-추억의물건 순으로) 잡동사니들을 한 곳에 모을 자신이 도저히 없어 부엌 정리는 따로 했습니다. 이가 나간 그릇은 모두 버리고 멀쩡한 그릇 중 안쓰겠다 싶은 것들을 두박스가량 정리해 아름다운 가게용으로 쌌습니다. (헐겁게 두박스...) 여기저기서 증정품으로 받았던 포장도 안뜯은 그릇들도 그냥 모두 내놨습니다. (알라딘 컵만 빼고 ㅎㅎ) 컵은 알라딘 컵과 기타컵으로 나눠서 수납을 두칸으로 늘리고, 대신 쓸데없는 그릇들은 싹 다 버렸습니다. 후라이팬도 얼마전 장만한 무쇠팬을 제외하고는 모두 버렸습니다. 냄비는 후라이팬과는 달리 여러 가지가 있을 필요가 있겠다 싶어 그냥 두었습니다. 찬장 한구석의 먹지않은 스페셜 K, 현미 씨리얼 등등을 통째로 버릴 때는 그야말로 반성의 물결이 메아리를 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쌓인 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며, 생각없이 사들이고, 또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돈은 들이는 나 자신에게 거침없이 쯧쯧쯧을 날려주었습니다.
서류는 그냥 다 버렸습니다. 어차피 안볼 거라는 걸 나도 알고 있습니다.
잡동사니와 추억의 물건은 결국 같이 정리했습니다. 사실 이사와서 아직도 안뜯은 박스가 하나 있었는데 각종 잡동사니, 악세서리, 편지 등등이 들어 있는 박스였습니다. 상자 5개를 마련해 편지 / 사진 / 편지지 & 스티커 / 책갈피 / 기타 추억의 물건 등으로 나눠서 넣었습니다.
이렇게 5월 31일부터 지금까지 중간에 며칠 놀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청소의 노예가 되어 살았지만, 실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번주 토요일 정도면 쌈박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1일분 청소량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일단 오늘 아침, 아름다운 가게 수거반을 불렀기 때문에 어제까지는 기증할 물건들을 다 빼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아름다운 가게로 보낼 물건은 옷 2봉지, 잡동사니 1 개구리통 분량, 책 120권, 그릇 2박스였습니다. 아름다운 가게 담당 간사님은 내 짐을 보더니 "이사 준비하시나봐요?"라고 물었습니다. 하하하, 그게 아니라, 그냥 대청소입니다. 라고 답하고 나니 어쩐지 좀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 손을 떠나 새 주인을 찾아간 물건들... 쇼핑백은 가게에 물건 사러 오신 분들에게 다시 활용하신다고 해서 지난 2년간 모아둔 것을 싹 다 내놨습니다. 홈페이지에 보니 기부금 영수증도 끊어주신다고 써 있던데, 어쩐지 액수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요청하지는 않았습니다. 궁금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ㅎㅎ 물건을 아름다운 가게로 보내는 건 꼭 내가 마음이 곱고 착해서만은 아닙니다. 어쨌든 물건을 처리하는 수고로움을 누군가 대신 해주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기에 win-win 이라는 생각. 듣자하니, 거의 이사 쓰레기 처리 수준으로 아름다운 가게를 악용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하던데, (입던 빤쓰까지 -_-) 서로가 서로에게 얼굴 붉히지 않는 선에서, 또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에서 잘 활용을 하면 정말 좋은 제도인 것 같습니다. 저도 제 옷과 책들이 재활용 의류함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가게로 간다고 생각하니 더 기분 좋고 화끈하게 버릴 수 있었습니다. ㅎ 그러고보니 아름다운 가게는 마리에느님의 청소론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가게를 이롭게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ㅎㅎ
우리집에서 빠져나간 것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기증 :
아름다운 가게 옷 80L X 2봉지
책 120권
각종 물건 50L
쇼핑백 큰 쇼핑백으로 2개
그릇 2박스
판매 :
알라딘 중고서점에 120권
쓰레기 :
쓰레기봉투 50L 세봉지,
일반 폐지 큰박스 두박스 이상,
책 400권,
재활용쓰레기 80L
아, 이렇게 버리고 나니 얼마나 가뿐하고 개운한지, 마치 살이라도 빠진 것 같은 기분입니다. 내 몸이 가벼워진 것만 같은. ㅎㅎ 이후 관리가 중요한데, 곤도마리에느님의 말을 또 인용하자면 "한번 크게 치우고, 모든 물건의 자리를 정하면, 이후에는 제자리에 놓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매우 이론적으로 말이 되는 말이지만 실천적으로 어려운 말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소는 짜잘짜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크게 하는 게 좋다, 는 그녀의 지론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에 굉장히 허황된 얘기가 나오는데, 집을 정리하고 나니 피부도 좋아지고, 살도 빠졌다, 라는 말도 안되는 주변의 체험담이었습니다. ㅎ 좀 우스운 말이지만 저는 그 말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제가 살이 빠지고, 피부가 좋아질 거라고 믿어서는 아닙니다. 집의 상태가 스스로의 멘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외롭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저는 집의 상태가 멘탈에 영향을 심각하게 미쳐서 이번 주에 꼭 청소를 해야 돼요"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공감해주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살짝 비웃음을 샀...ㅠㅠ 그런데 저자 곤도마리에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 지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달까요. 생활 공간이 안정이 되고, 가뿐해지면 아무래도 생활도 좀 안정이 될 테니. 살이 빠지고 피부가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_- 주말에 운동 좀 더하고, 오이마사지 정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는 게 아닐까 뭐 이런 방식으로 이해를 해 봅니다.
이제 이번 주말에 마무리를 하면 엄청난 반성과 홀가분함이 공존하던 대략 10일간의 청소청소라이프를 마감하게 됩니다. 어떻게 살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저렇게 엄청난 양의 물건들을 버렸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합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겠죠. ㅎㅎ 자, 우리모두 이 책을 읽고 청소합시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