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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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쪽의 분량
한 주 내내 그녀를 만났지만 나는 아직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그녀가 살던 시대가 어느 때인지도 그녀가 언급하는 영화배우의 이름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이 소설에서는 ‘건너편’, ‘길 건너’ 또는 ‘반대자’, ‘국가수호자’로 그들의 집단을 칭하고, 아무개의 아들, 알약 소녀, 빛나는 소녀 등으로 사람을 부른다. 구체적인 이름으로 그들을 부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이야기가 단지 한 집단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북아일랜드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걸으면서 책을 읽는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녀를 둘러싼 세상을 그녀의 눈으로 본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는 다 사실일까? 그녀는 내가 믿을 수 있는 화자일까? 그녀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 자유롭게 시공간을 이동하고, 끝나지 않는 길고 긴 문장과 인용부호 없는 인용을 지나다 보면 우리는 그녀를 깊게 이해하게 된다. 그녀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 그녀가 받은 상처와 충격 그리고 스스로 이겨나가는 모습에서 인간 정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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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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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불가에서는 마음의 짐이 무거워지니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두지 말라고 했다지만,  삶이란 게 또 어찌 그렇게 계획대로 되는 것이며 굳이 마음만을 가볍게 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닌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를 예쁘게 보는 마음이 좋다. 설사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일지라도 몰두하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배가 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녁이면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피로를 풀려고 한다. 슬쩍 서운한 곱슬머리는 대부분 야구모자로 눌려있기가 일쑤다. 그는 걷기를 즐긴다. 가끔은 남의 집 뒷마당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얼굴이 시뻘개진 줄도 모르고 다니지만 그의 좋은 취미다. 그는 지역의 신문을 골똘히 보고 동네의 대소사에 관심이 많다. 대상이 되는 동네가 자주 바뀌는 점이 조금 독특하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기를 즐겨한다. 얼마만큼의 거리를 운전했는지, 새로 발견한 것들은 무엇인지 또 점심을 먹을 때 주문을 받은 웨이트리스의 불친절함에 대한 감동 따위를 즐겨 쓴다. 나는 그런 그의 일기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차가운 북유럽에서 더운 남유럽까지, 영국의 구릉지대에서 미국의 드넓은 고속도로까지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나는 마치 그의 차 조수석에 탄 것처럼 생생하게 그의 묘사를 보고 들었다. 때로는 그와 함께 먼지를 들이마시기도 하고, 근사한 펍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그와의 여행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했다. 빈정이 상하는 대상을 만나면 살짝 비꼬면서 외면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경치 앞에선 한없이 감탄을 하는 그의 어린애같은 표현들이 좋다. 한동안은 그의 여행이 뜸해서 서운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더 근사한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 곳은 바로 어쩌면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일지도 모르는 신비의 대륙 오스트레일리아다.

 그간의 내가 아는 그 곳은 캥거루가 뛰어놀고 과일이름의 새가 있다는 정도였다. 아니면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그곳은 뉴욕이나 상하이와 다를 바 없는 거대도시들이었다. 그러나 나의 절친 빌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황량한 사막과 부시가 무성한 벌판이었다. 그는 몇 천 킬로미터나 되는 고속도로를 하여없이 운전하면서 어린 시절과 오버랩되는 기시감을 느끼기도 하고, 텅 빈 고속도로에서 향수를 느낀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직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들이 무궁무진하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단 한 사람도 들르지 않을 것 같은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나 이외에 다른 손님이 없는 것이 확실한 호텔에서 잠을 잔다. 기상예보에서는 폭우와 폭풍으로 호들갑인데 그들은 태연히 잔잔한 바다에서 크루즈를 한다. 어쩌면 오스트레일리아는 우리 인류가 두고 온 고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스트레일리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타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있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였을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제 또 어떤 곳으로 나의 친구는 여행을 할까? 벌써부터 다음 여행을 재촉하고 싶어진다. 그의 여행 기록은 나를 들뜨게 하고, 책을 열기 전부터 설레게 한다. 오래오래 더 많은 곳들을 그가 다녀왔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그는 한 한국인과 집을 바꾸기로 했다는데 그곳이 부산인 점이 몹시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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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신간추천이네요!

 

 

1. 교도소 도서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촉망받는 엘리트였던, 하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청년 아비 스타인버그가 보스턴 교도소 도서관 사서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소설 형식의 에세이. 험악하기만 할 것 같은 교도소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때론 우스운, 때론 따뜻한, 그리고 때론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은 이야기가 소설처럼 펼쳐진다.

 

 어딘지 모르게 영화 <쇼생크 탈출>을 연상시킵니다. 주인공 앤디가 동료들과 교도소 내의 도서관을 만들던 모습 말이지요.

 

 

 

 

 

 

2. 우리 딱 한 달 동안만

   젊은 디자이너 두 남녀의 핀란드 여행기. 저자들은 딱 한 달 동안만 자전거로 핀란드를 일주하며 행복지수가 높다는 나라를 몸으로 느껴보기로 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핀란드에 대한 한글로 된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음에 놀랐고, 부푼 기대만 가득한 별 대책 없는 여행길이 시작되었는데, 그들 앞엔 환상적인 자연과 친절한 핀란드인 외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된다.

 

 

아, 저도 딱 한 달 동안만 모든 것을 다 두고 어디론가 가보고 싶습니다 일에 지친 오늘 저들이 너무 부럽네요.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고 싶습니다.

 

 

 

 

 

3. 소설가의 여행법

  소설가 함정임의 문학 기행 에세이. 뉴욕으로 여행을 떠날 때면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과 <브루클린 풍자극>을, 아프리카로 떠날 때는 카렌 블릭센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르 클레지오의 <아프리카인>을 챙겨 넣을 정도로 못 말리는 '소설 중독자'인 함정임은 특유의 감성으로 소설 속 그 장소, 작가와 작품이 태어나고 여전히 숨을 쉬는 그곳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소설가가 바라보는 소설가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 소설 속의 도시들을 찾으면서 작가의 영감을 느끼는 기분은 또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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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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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대학 다니던 시절, 최루탄에 눈물 흘리고 북소리와 구호 소리가 강의보다 친근했던 시절이 이 책을 보면서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정의롭지 못한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해서 우리는 울었다. 어리고 순수한 나이에 만난 사회는 무섭기 그지 없었다. 그 혼란의 세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때로는 서로를 힘들게 하며 20대를 보냈고 어느새 지금의 나이가 되어 송경동의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느껴야할 것은 격세지감이어야 할텐데 내가 느낀 것은 일종의 기시감이었다. 어디서 본듯한 그런 기분, 한 번은 경험한 듯한 그 느낌 말이다.

 학교라는 고상한 울타리 속에서만 살아온 내게 송경동의 책은 사실 충격적이다. 텔레비전 뉴스로만 들었던 많은 것들은 날것 그대로 전달되었고 그 안에서 송경동은 세상을 향한 분노를 쏟아놓고 동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박탈과 폭력의 기억을 함께 갖고 있는 그의 형제들은 바르고 곧게 자라 어느새 대의를 위해서 앞장 서는 사람이 되어있고, 아빠와 사우나를 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인 그의 아이는 오늘도 눈을 반짝이며 아빠를 기다린다. 그가 원하는 세상은 아마도 제 시간에 퇴근하는 아빠와 가벼운 마음으로 목욕탕에 가는 아들이 많은 세상이 아닐까?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던 그의 글들을 이제는 내려 놓고, 시인이 꿈꾸는 그런 세상을 그려 본다. 때로는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때로는 희망이 우리를 배반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도

여느 시인들처럼

꽃을,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

한 잔의 진한 커피

한 잔의 맑은 녹차와 어우러지는

양장본 속 아름다운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송경동의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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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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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에세이들은 읽는 동안은 촉촉하게 빠져들고 마음이 즐거워지게 되지만, 읽고 나면 다시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예쁜 글들을 자주 읽은 기억이 있다. 아름다운 단어들로 치장한 멜랑콜리한 감정들의 나열이 그저 사랑스럽던 시절이었고, 나도 그런 글들을 써서 친구에게 보낸 기억도 있다. 친구는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그저 조금은 딱딱하더라도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조한 어투로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지만 그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고 다시 찾아보고 싶어지는 글.  예쁜 글들이 달달한 음료수라면 곱씹게 되는 그런 나물같은 글들 말이다.

 이미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은 그런 기대를 갖게 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의 소설들을 주로 보았고, 수필집이라고는 <먼 북소리> 단 한 권을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면면을 알게 되는 일이 퍽 즐거웠다. 그의 나이가 이미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라는 것도, 그가 연극영화를 전공했다는 것도 자세히는 몰랐다. 그의 글을 읽을 때 음악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섬세한 애정이 깃들어 있음을 느끼곤 했는데 젊은 시절 오로지 음악만을 듣고 싶어서 재즈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클래식과 재즈는 이름만으로도 어딘지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그는 쉽고 재미나게 음악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도 모르는 뮤지션의 이름은 그 사람이 그 사람 같기도 하고, 어떤 곡은 제목조차 낯설기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많은 지면을 할애한 그의 재즈에 대한 사랑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많이 언급되는 음악들은 찾아서 듣게도 되는 것을 보면 글이 갖는 힘이라는 것은 진정 무시못할 것이긴 한 모양이다.

 이 책에는 대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하는 작가와 소설들, 음악가와 연주곡 그리고 사람들과 음식들이 자리하고 있다. 때로는 작가의 하루를 따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그의 어린 시절을 훔쳐보며 이방인인 작가를 가깝게 느끼는 착각을 불러온다. 다만, 제목 그대로 잡문집이다 보니 그야말로 꾸준한 어떤 것을 발견하기는 좀 어렵다. 그저 그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이야기들을 들을 뿐이다. 아니면 나도 마음 내키는 대로 이곳저곳을 펼쳐보아도 좋고.

 

"여기 있는 이 사람들 모두가 각자 심오한 인생을 사는구나. .....그래,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고독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고독하지 않다."

본문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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