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원효로 집으로 잠시 돌아왔다. 주말에 다시 가야 하지만. 어쨌든, 여기는 원효로 집. 오버.
걱정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는데, 일단, 가장 큰 걱정거리는,
1. 하수구 냄새
없는동안 하수구 냄새가 계속 올라와서 화장실이 악취로 가득하면 어쩌나.
2. 바퀴벌레
컴배트 갈아야 하는 시기였는데, 못갈아준 것 때문에 집에 바퀴벌레가 득시글거리면 어쩌나. (집에서 바퀴벌레를 본 적은 없지만, 전 주인이 봄에는 꼭 컴배트를 갈아주라고 했었다. 이 낡은 아파트는 1층에 치킨집 같은 음식점들이 있어서, 관리를 잘 못하면 바퀴벌레가 나온다고 했다.)
3. 쓰레기
다 못치우고 온 쓰레기가 썩어버렸으면 어쩌나. (한달이나 못올 줄 알았나 -_-)
4. 음식물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 다 상했을텐데, 어떻게 다 처리하나.
사실 마지막 1주일은 거의 집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상태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1주일동안, 나는 주방에 얼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도우러 와줬던 친구와 엄마가 해놓은 그대로 있을 터, 어떤 모습인지 잘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나마, 엄마가 부랴부랴 정리를 좀 해주고 가긴 했지만.
그리고, 어제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집에 돌아와보니.
1. 하수구 냄새
아. 엄마랑 가기 전에, 비닐에 물을 채워서 막아놓고 갔었다. 그걸 깜빡했네. 하수구 냄새는 올라오지 않았고,
2. 바퀴벌레
없었다. 다행이다. ㅜㅜ 내 눈에 안보인 걸 수도 있지만, 내 눈에 안보이는 게 제일 중요하다. 늦은 와중에도 컴배트 다 갈아줬다.
3. 쓰레기
다행히 플라스틱/비닐 빼고는 엄마가 다 버려줬었다.
4. 냉장고
...........대책이 안선다........
세상에. 냉장고에 이렇게 음식이 많았구나. 각종 반찬들도 다 버려야 되고, 계란도 다 버려야 되고 (아. 아까워) 심지어는 오렌지주스도 유통기한이 지나 있었다. (주스의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려본 건 처음이었다) 아껴둔 저염도 소시지도 버려야되고..... 아직 손을 못댄 상태다. 무척 두려운 순간이랄까.
게다가, 예상치 못했던 사태가 있었으니.
한달 동안이나 물을 안써서, 수도에서 녹물이 나오는거다. 아. 이 낡은 아파트 같으니. ㅜㅜ 몰랐으면 어쩔 뻔했을까. 10분도 넘게 물을 틀어놓았더니, 녹물은 겨우 빠졌다. 그리고, 집에서는, 향기는 향기인데, 여러 향기가 조합된, 좀 이상한 향기가 났다. 향초들의 향기가 섞여서 나는 향기 같은데, 불을 안피워도 향을 내뿜다니, 대단한 녀석인가보다.
돌보지 못한 거실은, 탁자에 온갖 물품들이 놓여져 나의 마지막이 얼마나 정신 없었는지 짐작케 했다. 침대는, 마지막 1주일을 거의 침대에서 생활한 것 답게, 지저분했다. 아. ㅜㅜ 일단 주 생활 공간인 침대와 탁자 쪽만 정리. 한달간 방치되어 있던 나의 로봇청소기인 멍청이는 어젯밤에 충전모드로 돌려놓았는데, 아직도 충전중이다. 정말 배고팠나봐. ㅜㅜ
주방은 역시나 엄마와 친구의 손길 때문에, 생소했다. 내가 해놓은 게 아니었으니까, 이것도 나름 거슬려 일단 설거지대 위에 있는 그릇을 다 싱크대에 올려놓고, 냄비, 후라이팬 등등을 넣어둬, 익숙한 형태로 해놓았다. 아. 그런데, 나의 커피. 한달이나 방치되어 있던 나의 커피, 혹시나 하고 오늘 아침에 마셔보니, 쩐 맛이 났다. 흑흑. 이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강릉에서 주문한 커피였는데 말이다.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면 되겠지. 집에 오면 쉬지도 못하고 고생 시작이라며, 가지 말라던 엄마와 아빠의 만류를 떠올린다. 쉬엄 쉬엄 하면 되겠지. 될거야. 응? 일단 살 수 있을 정도만 해놨으니, 주말에 안양 다녀와서 다시 좀 정리해야겠다. 한달 언제 다 가나, 했는데, 벌써 다음주 목요일이면 복귀다. 시간 정말 빠르다.
그나저나, 이런 초거지모드에, 각종 고지서들이 쌓여있어, 내 마음을 미어지게 한다. 도대체 전기요금은 왜 2만원도 넘게 나온걸까. 나 혼자 사는데, 왜 우리 가족 쓰던 거랑 비슷하게 나왔을까. 분명히 어디선가 전기가 줄줄 새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조금 더 지나면 에어컨도 틀어야 할텐데. 아. 그러고보니, 에어컨도 청소해야 틀 수 있는 거 아닌가. 에어컨 청소는 또 어찌한담. 세상에. 까마득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 와중에 고지서와 함께, ㄴ님이 보내주신 책 한권이 나를 기쁘게 한다. 깜찍한 메모와 스티커까지.
자. 불끈. 힘을 내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