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자주오는 원효면옥의 모님께서 우리집은 책이 자라나는 것 같다고 ㅋㅋ 아 물론 이쁘고 깔끔하게가 아니라, 생기는데로 쌓아놔서, 어느날 보니 도저히 못봐주겠는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장르별로 구분해두었던 책장은 어느덧 맥락을 잃고, 마구 뒤섞여 이제 나도 못찾는 책, 심지어는 있는지 까먹는 책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어제 밤 11시에 들어가서 시작해 1시에 끝났다. 혹자는 '정리한 거 맞죠?' 라고 묻던데, 맞습니다 -_-
각도상 한 칸이 잘렸는데, 거긴 한국 소설이 있다. ㄱ부터 ㅎ까지. 가나다순으로 정리했다. 찾기엔 그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각종 수상집, 시집, 한국에세이, 외국 에세이, 그리고 다음 두칸은 외국 소설이다. 대충 국가별로 정리를 했는데, 안맞는 것도 많아졌다. 못들어간 녀석들은 대충 비슷한 위치에 눕혀놨다 다 따져서 진행하기엔 나는 너무 늙고 병들어.. 이젠 할 수가 없네.. 그 아래 자리를 잡지 못한 책들.. 책꽂이 하나를 더 사긴 사야할텐데, 귀찮고, 하나 더 사도 모자랄 것 같은 지경 ;;;;
여기는 인문/사회/종교 쪽인데, 평론집이나 문학 게간지 같은 것도 좀 섞여 있고 여행 책들도 있다. 뭐 한마디로 좀 맥락 없다. 여기가 진짜 지저분했었는데, 누군가가 보기에는 이것도 정말 지저분할테지만, 음,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예술/만화/요리책/CD/DVD 칸은 정리한 이후에도 좀 정신없어서 사진을 안찍었는데, 하루가 지난 오늘! 원어데이의 친구 투데이베스트몰에서 주문한 스피커가 도착해 원효면옥의 손님들이 가신 새벽 1시, 또 야밤의 공사를 시작했다. 방에 있던 공간박스 하나와 잡동사니를 담아둔 공간박스 하나를 추가로 가져와, 지난 번 하나 남았던 나무 판떼기(?)를 얹어 선반을 급조했다.
급조된 선반이라 좀 허접하긴 하지만 ;;;; 정리안된 선들은 어쩔 ;;;; (좋은 아이디어 있다면 알려주세용!!) 뭐 대충 노트북 놓을 자리와 스피커 올릴 자리를 만들고, 그 아래로 CD와 DVD를 옮겨 왔다. 이녀석들은 뭐 그리 많지는 않아요. 조촐. :) 뭔가 좀 너저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집 한쪽 구석에 노트북 자리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겨났다는 기쁨에 혼자 좋아하고 있는 1인. ㅋㅋ 테이블 놓고, 의자 놓고 하느라, 집이 거의 입식이고, 바닥에 앉을 일은 거의 없었는데, 뭔가 바닥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생기니, 조금 더 정겨워졌달까..
CD가 나간 자리에는 만화책 칸을 추가했다. 그 옆 DVD나간 자리는 미술칸 확장. ㅋㅋ 애들이 이사가고 나니, 너저분하던 이 칸도 대략 좀 정리가 되고, 어쩐지 뭔가 좀 더 신나고, 그렇다.
그러면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은, 아, 나 과연 이사갈 수 있을까 ㅜㅜ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나는 이 집을 정말 잘 구한 것 같다. 오래된 집이라는 건 단점이었는데, 일단 집 안은 그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모던한 분위기고, 오래된 집이라 천장이 높다는 장점과 더불어, 아무래도 공사도 좀 튼튼해서, 요즘 엉성하게 지은 원룸들에서 발생하는 소음문제 같은 게 거의 없다. 사실 소음이, 내가 시끄러워서 불편할 수도 있지만, 내가 이 시간에 마음대로 음악을 (물론 혹시나 싶어 볼륨을 크게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안심하고 돌릴 수 있고, 세탁기도 돌릴 수 있고, 집에 온 손님들이 안심하고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는 되니까.
우리집에 오는 원효면옥 손님들은 건물 외벽의 폰트를 사랑하는데, 이게 쓰다보니 페인트가 모자랐는지, 글자 굵기도 막 점점 얇아지고, 하튼, 보다 보면 여러 상상을 하게 되는 재밌는 글씨다. 40년간의 세월을 떡 버티고 서 있으면서, 간직하고 있는 사연도 많을텐데. 암튼, 나름 이런 독특한 곳에서 살게된 것도 살면서 참 재밌는 일이다, 싶다. ㅎㅎ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거라, 막 러그도 하나 사서 깔아놓고 싶고, 책꽂이도 몇개 더 사고 싶고, 키보드같은 것도 사서 좀 배우고, 연습하고, 치고 그러고 싶지만, 당분간은 좀 참아야 할 듯 싶다. 일단, 이 작은 변화 하나만으로도 좀 즐거우니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