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링 있음)
나 아무것도 모르고 왔잖아, 어떤 영화야?
라고 묻는데 그만 나도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나는 그냥,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 보고 싶어졌던 영화였으니까. 가끔은 그렇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이 완전히 우선순위 같은 것을 뒤바꿔 놓기도 하는 거다. 뭐 여튼, 나는 이 영화가 시네21의 머스트씨로 이번주에 소개됐던 것도 몰랐고, 어떤 영화인지도 몰랐고, 이 영화를 함께 만든 감독들이 오랜 삼총사였고, 동시에 배우라는 것도 몰랐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단지, 포스터의 색감이 좋았을 뿐이고, 룸바를 추는 장면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정말 그림 같지만, 특히 그림자 댄스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된, 등을 대고 돌아앉은 부부의 두 그림자가 룸바를 추는 장면은 이제껏 보아온 댄스 영화들의 격렬하고도 훌륭한 춤 신보다도 근사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봤던 춤 신들은 참 제대로 근사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시르와 왈츠를의 병사 가 추던 춤, 마더의 김혜자의 춤, 그리고 이 신이다. 그러고보니 모두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나온 춤 장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마지막에 바다 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반대로 너무 조악하다. 아, 그러니까, 어차피 저들이 바다에서 춤을 출 수는 없는 이라는 걸 알 바에는 굳이 리얼하게 만들필요 뭐있나, 그냥 대놓고 합성하자, 라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는 것 같아 오히려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보면, 영화적 사실을 위해 바다를 걷는 법을 연습할 수는 없는 거니까. 뭐 예수님도 아니고. ㅋㅋㅋㅋㅋ
색감이 마음에 들었던 포스터처럼, 이 영화를 보는 눈은 시종 즐겁다. 빨강, 초록, 노랑, 파랑, 등등 각종 개성 강한 원색들은 이 영화에서 매우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섞이기 어려운 저 컬러들이 어우러지듯, 함께 담기 힘든 비극적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의 희극적 요소들이 꽤 잘 담겨져 있다. 색의 대비가 다른 색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듯, 비극적 요소의 희극적 표현은, 오히려 그 상황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처지거나 늘어지지 않고 똑똑히 제 갈 길을 간다. 77분이라는 상영 시간이 참 야무지다.
영화는 우여곡절끝에 헤어진 부부가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호들갑스러운 재회나 신파는 없다. 아내와 남편이 아닌, 돔은 돔으로, 피오나는 피오나로,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다. 다시 만난 그들의 상황이 변할 수는 없음은, 온전히 희망적인 상황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기대하게 된다. 그들은 다시 룸바를 출 수는 없겠지만, 룸바를 추듯,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응? 그럴 수 있지 않을까?
* 보너스
- 이상해, 저 남자주인공 너무 낯이 익어
- 응? 난 잘 모르겠는데?
- 이상하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분명 봤을 리 없는데,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는데 퍼뜩 스치고 지나간 인물.
아, 허본좌. 닮았어, 닮았어- 하하하하.
(검색하다가 알았는데, 광복절맞이 음반내신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