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자주 놀러오시던 풍류돋는 모님께서는 매일 하는 말이, 이 집은 책이 자라는 것 같아... 였다. 이사올 때 가져온 책만으로도 사실 책장이 부족했었는데 지금은 거기에서 더 늘었으니. 무너질 것 같은 책짐이 쌓여있는 모양이 심지어는 그로테스크하기까지..... 9시부터 장장 5시간동안 책정리를 했다. 쌓여 있는 책들을 장르별 책꽂이로 옮기는 게 전부였는데 그것과 거실 청소를 병행하고 났더니. 아. 완전 대작업이었다. 다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대충 정리는 된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몰라몰라 하며 외면중.
이렇게 정리만 하고 일단 책장은 사지 말아야지, 생각할 수 있는 게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데 그러니까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겠다는 일념인 거다. ㅋㅋ 종로에, 나의 핫플레이스인 Cafe Bula의 바로 건너편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겨서 나는 종로에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책을 열권씩 들고 간다. 집 앞에서 262번 버스를 타면 중고서점 도보 2분 거리에 내려주니 나름 도어투도어 수준이다. 미련을 한템포만 놓으면 팔 책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까지 50권 가량의 책을 팔았고, 15만원 정도의 돈을 번 것 같다. 번 돈으로는 몇 권의 책을 사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유흥비로 쓴다. 불라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밥을 사먹고 가끔은 밥도 사주고, 치킨도 쏘고. 아주 신났다. ㅋㅋ 금요일밤에 슈퍼스타K를 틀어놓고 다음날 팔 책들을 고르고, 판매가 가능한지 검색해보고. 가끔 안되는 책들이 있긴 하지만, 뭐 대부분 잘 되는 편이다.
알라딘 메인에 책 다 팔면 얼마다, 문구 나올 때, 처음에는 살짝 마음이 상했는데, 나중에는 좀 든든해졌다. 그래도 이 책들 다 팔면 한달은 월급 안받아도 놀고 먹을 정도는 되는구나, 싶으니. 한꺼번에 파는 것도 좋겠지만, 일주일에 열권, 이라는 스스로 정한 이 룰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 물론 열권 넘게 가져갈 때도 있었지만. ㅎㅎ 한번에 들고갈 수 있을 정도만 딱 팔고, 3~4만원을 받아서 하루 놀고 먹는 거, 이거 생각보다 괜찮다. 단 부작용이 있다. 늘 수입을 넘는 지출. ㅋㅋ 하지만 책을 팔지 않았어도 썼을 돈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
청소하면서 다음주 토요일에 가져갈 10권도 챙겨두었다. 이번엔 소설 코너에서 주로 책을 빼다보니 소설/에세이가 10권이다... 나름 어떤 한 시절들을 안고 있는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볼 것 같지는 않은 책들. 이렇게 팔다 보면 자라난 책들이 몸체를 줄여 내 책장의 규모에 꼭 맞게되는 날이 올까. 아마도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_- 그래도 일단은 최선을 다해 버텨봐야지. 나는 앞날을 알 수 없는 세입자니까. 일단 많이 읽고, 많이 팔고, 또 많이 사고, 많이 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하다보면 뭐 어찌어찌 되겠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