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은 살림이 제일 쉬웠다던데. 나는 이렇게 살림이 어려웠나, 새삼 느끼며 거의 죽어가고 있는 중. 월요일 이사가 급하게 정해지고, 휴가를 하루 내고, 일단 이사와 관련된 모든 서류절차 등을 월요일에 마치고, 친구들과 집청소를 하고, 대강 살 짐만 들이고, 다음날 엄마가 내 짐들을 대대적으로 들여주고... 대략 짐 속에서의 일주일을 보내고, 밤마다 짐풀고 짐풀고 짐풀고의 연속...
토요일, 각종 살림들이 들어와 겨우겨우 짐정리 세팅을 85% 정도 완료했다. 금요일 새벽 다섯시까지 책정리를 하던 게 거의 하이라이트.... 장르별 국가별 작가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는 걸 보고 친구가 혀를 끌끌찬다. 하하하. (꼭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살림을 하다보니, 아,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구나. 세상에나, 집이 깨끗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길이 끊임없이 필요한 거구나, (비극적이게도 이 집에는 그 누군가, 가 나밖에 없구나...) 뭐 이런 것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 매일매일 잘 때마다 삭신이 쑤신다. 그나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녀석은.
멍청이.
로봇 청소기 이름이다. 생각보다 멍청해서 지어준 이름.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멍청해서 귀여워 죽겠다. 윙윙 돌아다니면서 정작 쓰레기 있는 데는 막 피해다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센서를 발로 툭툭 치면서 쓰레기 있는 데로 보낸다. 멍청아, 여기 말고, 저기, 멍청아, 거기 말고, 거기 말고, 그쪽, 그러면 제자리에서 혼자 막 위이이이이잉 돈다. ㅎㅎㅎ 그래도, 지능이 좀 있나? 이제 우리 집에 좀 적응을 했는지 제법 구석구석 잘 다니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방에 머리카락 같은 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으이그....하면서 한숨을 짓게 만들지만, 그래도 먼지통을 비울 때면, 나 이만큼이나 치웠거든, 하면서 녀석이 유세하는 것 같다. 먼지통을 툭툭 털면서, 수고했어.... 할 때는 마치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드디어 기계와 대화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ㅁ님이 보내주신 스팀 청소기. 이거 나름 완소 아이템이다. 방 닦는 걸 싫어하는데, 이렇게나 먼지가 많이 쌓일 줄이야.... 한 번 돌리고나면 걸레가 새카맣다..... 어휴. 없었으면 허리 좀 휠 뻔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나면 스팀 청소기 걸레도 빨아야되고, 정말 할 일 투성이.
빨래는... 어휴.... 섬유유연제 넣는 걸 안까먹는 일이 관건이다. 어찌나 어려운지...세탁실 문을 열어 자꾸만 남은 시간을 확인하는 게 일이다. 그리고나서는 끝나자마자 바로 널어줘야하니. 어휴. 어휴. 도무지 알라딘에 들어올 조금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일상이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서, 하수구냄새가 올라올 거 알긴 했지만, 이게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날이 솔솔 풀리면서,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게 거의 죽음이었다. 코 막고 화장실에 들어갔어야 했을 정도. 거의 전쟁 수준으로 탈취제도 갖다놓고, 뿌려보고 난리를 쳤는데, 결국 친구가 가져다 준 아로마향초로 대략 해결.
그 와중에 오늘은 교회 식구들(이라고 해봐야 우리 식구 4명 목사님 식구 4명, 교회후배 1명)과 이사 예배를 드렸는데, 할 줄 아는 게 없어 유부 초밥과 우동, 군만두로 메뉴를 정하고 (-_-v) 음식을 내고, 후식으로 딸기주스와 브라우니, 케잌, 커피, 과일 등을 내는데, 정말 정신이 쏙빠지게 바쁘다. 예전 엄마들은 자식 일곱 낳고, 그 가족들 매일매일 부양하면서도 살았을텐데, 나는 이정도 손님에도 도무지 정신을 못차리겠으니 원...
그래도, 일단 놀러오시는 분들께는 대략 합격점을 받고 있는 중이다. 걱정 그득한 눈으로 다들 오셨다가, 생각보다 잘 산다고, 걱정 안해도 되겠다고 돌아가시는 마음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가진 것을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바람에, 벌써부터 부자가 된 기분이다. 이래저래 손님들 대접하고 마시고 하느라, 원두 한봉지는 이미 동났다. 전기주전자를 샀는데 아직 안와서 냄비에 물을 계속 끓여내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더라. 그리고, 생수, 생수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물을 사서 오는 건 차 없는 사람에게 보통 노가다가 아니더라. 어제 ㄱ언니 부부가 왔을 때, 무거운 짐들을 좀 사다가 차로 나르면서 생수 6병을 사다 놨는데, 오늘 손님 치르고 하느라 벌써 절반 가까이 마셨다. 정말, 정수기를 렌탈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ㅜㅜ
한쪽 구석 마련한 테이블과 수납의자는, 제법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아직 수납의자 쿠션이 도착을 안해서 딱딱한 바닥에 앉기는 하지만, 뭐 나쁘지 않다. 최대 수용 인원 7명. (그나마도 3명이 불편한 바의자에 앉아야..ㅎㅎ) 후배 ㅊ양이 선물해준 스탠드도, 제법 집에 잘 어울린다. 불을 끄고 노란 조명 아래 일기를 쓰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이제 풀 짐이 두박스쯤 남았는데, 급한 건 다 풀었으니 천천히 할 작정이다.
어쨌든,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나름 상쾌하다. 살림은 어렵고, 삭신은 쑤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