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10년 다이어리는 연초에 다이어리를 사면서도 봤는데, 그 때는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었다. 나는 1년만 다이어리를 써도 질리는 사람인데, 어휴. 어휴. 10년 다이어리라니. 가당치도 않아, 라며 고개를 휙. 돌렸었는데.
후배 y가 세상에나, 소근소근 이 다이어리를 샀다고 자랑을 하더니만, 살펴보고 나면 나도 안사고는 못배길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제서야 으응? 하며 다시 자세히 보기 시작하니. 음. 아. 마음에 쏙 든다. 소비자제모드야, 하며 창을 쏙 닫았는데 자꾸만 머릿속에 이런저런것들이 떠올라 적립금에 예치금 긁어모아 구매버튼 휙 눌러버렸다.
일단, 각오할 것.
크기가 백과사전만하다. 배송되서 왔을 때 깜짝 놀랐다. 집까지 데려오느라 어깨 빠지는 줄 알았다. 가급적 집으로 배달시키는 것도 괜찮을듯 ㅜㅜ 한 페이지에 하루씩, 총 366페이지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그 한 장은 다시 열 개의 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니까, 그 한칸이 1년이다. 한 페이지에는 2009년 8월 20일 / 2010년 8월 20일 / 2011년 8월 20일 ...... 2018년 8월 20일의 내가 담기는 셈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일기를 쓸 때마다 지난 몇년간의 스스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나야 워낙 기록에 집착하는 성격이고, 싸이월드 다이어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기능도 투데이히스토리 기능이니. (1년전 오늘의 일기를 보는 기능인데, 2002년부터 차곡차곡 쌓인 일기를 보는 기쁨이 꽤 쏠쏠하다) 이런 기능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10년을 쓸 수 있는 두껍기만 한 다이어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건, 1년 전 오늘의 나, 2년 전 오늘의 나, 와 만나게 해주는 다이어리였던 것이다. 나처럼 말많고 만연체로 글쓰는 고객들을 위한 jump to 기능도 마련되어 있다. 해당 란에 미처 적지 못한 것들은 몇페이지로 점프했는지 표시해두고, 해당칸에 이어서 쓸 수 있도록 배려. 다소 번거로울 수 있겠지만, 최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하하하하.
다이어리야 버리지 않고 있으니 언제든 보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난 다이어리를 꺼내어 들추어본다는 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맘먹고, 날잡고 봐야 하는 일. 그런 내게, 이 다이어리는 참 고마운 기능을 제공해줄 것 같다. 아아아아. 빽빽히 나의 10년이 쌓이고 나면, 난 또 얼마나 뿌듯할까.
다이어리 표지에는 재테크, 리더십 뭐 이런 거 관리하라고 써있는데, 나는 10년 다이어리로 그런 것들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나는 다만, 내가 만난 책, 영화, 사람, 사건, 그리고 그로 인한 느낌들을 적어놓을 셈이다. 사실 엄마가 내 다이어리를 보는 것 같다는 혐의가 든 이후로 오프라인 기록장들을 가급적 집에 두지 않은지 오래되었는데, 이녀석 두껍고 백과사전만하니 책인척 하고 책꽂이 중간에 꽂아놔야겟다. 하하하하.
그러고보니 이 다이어리를 다 쓰고나면 40살이다. 어휴. 이곳에 나의 30대가 고스란히 담기게 되는 셈. 지금도 2002년의 일기를 보면 참 아찔한데, 몇년 후의 나는 또 지금의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참 궁금한 일이다. 차곡차곡 시간과 기억을 쌓아나가게 될 일에 대한 기대가 크다. 훗. 두근두근. 벌써 설렌다. 얼른 오늘 일기 써야지.
* 별을 하나 뺀 이유는 최선이었을지언정 칸이 너무 작은 아쉬움과
** 너무 두껍고 무거운데 대한 아쉬움, 이라는
그러니까 결코 둘다 만족시킬 수 없는 모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참. 10년이라는 세월은 크고도 무거운 세월인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