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더러 어쩌란 말인지, 하니, 자화상의 노래가 떠오르지만 글과 무관한 관계로 패스하고...
아침에 탕탕 누가 현관을 두드렸다. 나는 막 출근하려던 참이었다. 8시 40분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얼른 나가야하는데 현관을 두드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물으니 전기안전점검이란다. 자기가 아침에 오겠다고 현관에 붙여놨었으니까 얼른 문을 열어달란다. 아. 세상에.
그러고보니 쪽지를 본 기억은 났는데, 아저씨가 말한 그 아침이 8시 40분일 줄이야. 나는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은 출근 시간이라 전기 점검을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짐을 챙겨 현관을 나오니 검침하시는 한전 직원분에 관리소장 아저씨까지 오셨다. 이 관리소장아저씨는 이 분이 3년에 한 번 있는 전기점검을 위해 한전에서 나오신 분이시니 얼른 전기 점검을 받으라고 하신다. 아저씨가 아무리 붙여놓으셨어도 그 오전을 8시 40분으로 상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당연히 못만날 거라 생각할 수 밖에 없으며 나는 회사를 지각할 수 없으므로 얼른 가겠다고, 나야 회사가 가까우니 이 시간에 나가지, 누가 이 시간에 집에 있냐고, 다음에 저녁이나 주말에 오시라고 이야기를 했다. 한전 아저씨도, 본인 근무 시간이 있어서 원래는 9시에서 6시 사이에 다니시는데, 오늘은 403호 아줌마 때문에 일찍 오신 거란다. 다음에 주말에 한번 오겠단다.
주말에 언제요? 제가 주말에 집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미리 연락주세요, 뭐 이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지각할까봐 꾹 참는다. 1인 가구는 점점 늘어갈테고, 맞벌이도 점점 늘어날텐데, 이렇게 안일하게 낮시간만 다녀서 도대체 성공률이 얼마나 될까 싶다. 전기 안전 점검이 꼭 필요한 거라면 주말이고, 저녁이고, 추가 비용을 들여서, 추가 인력을 써 줘야 되는 건 아닐까. 이게 참 스트레스다. 얼마전엔 5년에 한번 하는 인구주택 총조사도 있었는데, 누가 오는 것도 싫고 만나기도 힘들지 싶어 인터넷으로 후딱 해버렸다. 계절별로 하는 가스검침 아주머니 만나는 것도 은근 일이다. 지난 번엔 아주머니가 너무 연락이 안된다며, 내가 전화를 걸자마자 무지 반가워하셨다. 참, 서로 고역이구나 싶다. 그러고보니 가스검침할 때가 또 된듯? -_- 정수기를 렌트할까해요...라는 말에 코디아줌마 만나는 게 은근 스트레스라는 g언니의 말에 완전 공감하며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건 다 이런 경험에 기반해서였다. 차라리 정부는 예비군 휴가처럼, 가스검침, 전기안전점검 특별 휴가를 신설하라!!
암튼, 이래저래 불쾌한 마음으로 급히 계단을 내려오다가 계단에서 구를 뻔했다. 난간을 잡고 겨우 버텼으나 스타킹은 이미 여기저기 쏠려 구멍이 났고, 구두 한쪽 뒷굽은 빠졌으며 발목은 완전 아프다. 경비 아저씨와 관리소장 아저씨와 한전 아저씨의 눈이 한번에 나를 향한다.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은듯 네, 하며 내려갔지만 으으 완전 아프다.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출근했다. 나도 좀 심각한 장르이고 싶은데, 마무리는 왜 항상 시트콤인걸까 ㅜㅜ 허벅지와 발목은 아직도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