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주는 정말....정신이 없었다.

출장 보고에 잔뜩 밀린 일들에,
쏟아지는 메일들과 끊임 없이 울려대는 전화...헉!

첫출근한 월요일,
회사를 그만 둔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날을 잡았단다. 9월 1일.

축하한다는 인사에 후배는
약간은 뻘쭘해 하며, 약간은 미안(?)해 하며 말했다.
"과장님도....하셔야죠."

기왕 늦은거 천~천히 하겠다는
라디오 방송 엔딩멘트 같은 한결 같은 답변에
후배는 접대용 멘트로 화답했다.
"하긴.... 과장님은 지금 모습 그대로 넘 멋져요."

하루 지난 화요일.
정신 없이 헉헉대고 있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평소 잘 연락하지 않는 고등학교 동창의 이름이 떴다.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있잖아....나.....결혼해. 5월 16일!"

약간 놀랐다.
왜냐면....그 친구는 독신주의였기에!

축하한다고 인사를 하며,
결혼식 전에 한번 보자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디따 바쁜데,
정신 못차리게 바쁜데,
이상하게 마음이 휑~했다.

뭐라고 할까....
아프리카에 단체 여행을 가는데
나 혼자만 말라리아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느낌?

아니면...
나 혼자 아무런 인프라가 없는 척박한 땅에 사는 느낌?

거 참.... 왜 이런 느낌이 들지?
유행하는 운동화나 청바지를 못가진 중딩처럼...
언제 숙제검사를 할까 마음을 졸이는 혼자 숙제 안한 애처럼...

이런 느낌을 친한 선배한테 얘기했다가 한소리 들었다.
" 너 그런 얘기 남들한테 하덜덜덜 말아라.
왜 그러냐? 스타일 구기게...
말하는 순간 잘난 여자에서 결혼 못한 여자 되는거야. 알았어?"

선배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였으면서도
난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
어렸을 때부터 말은 지독하게 안 듣는다. 푸하하하.

모든 존재는 불안을 느낀다....고 누군가 말했다.
스쳐가듯 찾아온 불안을 잡아두지 않고 보내려면
먼저 그 존재를 인정해주는 게 예의.

비닐 부시럭 거리는 소리처럼
스타일 구겨지는 소리가 들리더라도
잠시 스치는 불안에 동요했음을 쿨하게(?) 인정.
그러니까....안녕!

- 스쳐가는 불안에 대응하는 방법으로서의 잡문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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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30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7-05-0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배의 말씀에 저도 고개를 숙이게 되는군요. 요즘 제게 결혼한다고 연락하는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저보다 어리답니다. 마땅히 축하해야 하는데도 기분이 꿀꿀한건 무슨 탓일까요. 이런 제가 못나보이기까지 해요.

우아하게 축하인사를 건네면 속이 쓰라리고
그렇다고 솔직해지면 추해지니.

어찌할 도리가 없군요. 훗.

2007-05-01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02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7-05-04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한겨레에 님의 기사가 나온거 봤습니다. 평소 분위기와는 또 다르게 나온 사진이 예쁘네요. 음 이렇게 유명해지시면 곧.... 그래도 전 그 에릭클랩든 공연을 같이 봤던 분의 소식이 궁금해요.
 



Paola의 긴 머리는 섹시하고 에너지 넘치는 파도치는 웨이브.

언젠가 그런 웨이브를 하고 싶은 적이 있었는데
미장원에서는 어떤 파마를 해도 곱슬머리가 아니고서는
그런 자연스럽고도 강한 웨이브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멋진 웨이브를 가진 Paola는 금요일 마다 미장원에 가서 드라이를 한다.
그 멋진 웨이브를 쭉쭉 편다. 매직 스트레이트!

날 볼 때 마다 머리가 넘 예쁘다고,
어쩌면 그렇게 찰랑거리냐고,
머리 감고 아무 것도 안 해도 그렇게 쫙쫙 펴져서 넘넘 좋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너처럼 멋진 웨이브를 갖고 싶어서
여자들이 거금을 들여 파마를 한다고 했더니
Paola는 운전하다 어깨를 들썩하며 말했다.

"하하, 여자들은 만족을 몰라."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갖기를 욕망한다.
또는....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기도 한다.

Milan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작은 마을 Biella.
5층 넘는 빌딩이 하나도 없는,
옛날 성을 개조해서 만든 고즈넉한 호텔이 3개 있는(그 중 하나는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를 탈 일도, 차가 막힐 일도 없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난 Biella에 갈 때 마다 생각한다.
여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공기 좋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금요일 밤이면 친구들과 소박한 저녁을 먹고,
밤새 웃고 떠들며 와인을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갈 때 마다 예쁜 집들을 가리키며 물어 본다.
"저긴 월세가 얼마나 해?"

Paola의 친구들은 금요일 밤마다 길가에 있는 작은 술집 "Cotton Club"에 모여 술을 마신다.
와인이나 맥주를 한잔씩 손에 들고 몇 시간씩 선 채로 웃고 떠든다.
금요일 밤 Cotton Club에 갔을 때,
Paola의 친구 중 한 명은 내게 말했다.

"왜 하필 주말을 Biella에서 보내? Milan으로 가지 않고?
여긴 너무 작고 따분하잖아."

난 붐벼 터지는 Milan 보다 여기가 훨씬 좋다고,
사람 많고 시끄러운 건 서울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려다
그냥 씩~웃으며 잔을 들고 말했다. 칭칭!

Paola의 쫙쫙 편 스트레이트 머리를 보며,
왜 주말을 Biella에서 보내느냐는 Paola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내가 미장원에 가지 않으면 펼 수도 없는 곱슬머리라면,
내가 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다면,
나도 그들처럼 자꾸만 가지지 못한 것에 눈길을 돌리겠지.

항상, 끊임 없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 결핍에 집착하며
손을 뻗어 그것들을 가지려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

가지지 못하면 그 때마다 좌절했다.
울기도 했고, 취할 때 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고,
술 취해서 엉엉 울기도 했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으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끊임 없이 집착했다.
내가 가진 것이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뜬금 없이, 또는 쌩뚱 맞게 이런 생각을 했다.
가진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으면서,
못 가진 것에 대해서 자꾸 집착하고 속상해 하면
슬~슬 웃고 떠들며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종아리에 모래 주머니를 달고 어금니를 꽉 물고 뛰는 것처럼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일수도 있겠구나!

아....이 무슨 섬광과 같은 깨달음? 하하하.

불후의 명곡 <꽃피는 봄이 오면>을 부른 BMK의 3집 앨범에는
제목이 기억 나진 않지만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다.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미워할 수는 없잖아~"

이 노래 들었을 때, 뜨.끔.했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가지지 못한 건 어떻게든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래도 안 되는 게 있으면 미워했었다. 이솝 우화의 "신포도" 이야기처럼.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만으로
매일매일 소풍 나온 어린애들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을 텐데....
Paola가 부러워하는 찰랑찰랑한 생머리도 가졌는데 말이다. 하하하

11박 12일 동안의 이번 출장은 나를 다독여주고 다잡아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엇나갈 뻔 하거나,
잘못된 결정 또는 성급한 결정을 내릴 뻔 하거나,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로 세상 다 산 것처럼 상심해 있을 때,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은
커피 필터처럼 머리 속에 헝클어져 있던 잡생각들을 걸러 준다.

11박 12일 동안의 소중한 시간에 감사를,
언제나 변함 없이 따뜻한 친구 Paola에게 감사를,
툭 하면 방황하고 힘들어 하면서도 결국은 씩씩하게 제 자리를 찾는 내 자신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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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4-24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 욕구,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욕망....
삶은 욕구를 충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네요.
근데 출장을 멋진 곳으로 가시네요. 우리는 서해 건너 짱깨집으로만 보내는데...

2007-04-24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7-04-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출장이었네요. 수고많으셨어요. 늘 그렇지만, 수선님의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 ^^ 맞아요. 내가 가진 것에 행복을 느끼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건데.. 왜 이렇게 내게 없는 것이 더 커 보이고 더 절실하게 생각되는 건지.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요. ^^

2007-04-24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24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mburg의 bird eye view를 꼭 보라는,
바다가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모른다는 Jude님의 말에
Michael Tower에 올라 갔다.

사진 찍기에 바쁜 북적대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혼자 Hamburg Hafen(항구)을 홀린 듯 바라보며 서 있었다.
뭐랄까....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컨테이너를 가득 싣고 연기를 내 뿜으며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는 배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멀리 Hamburg까지 와서 서울을 그리워 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또 다시 떠나고 싶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욕망.
내 마음은 항상 서성거린다. 베이스 캠프 없이.

언젠가 전생 맞추기 프로그램이 이메일로 돌아다닌 적이 있다.
한 문제씩 뜨는 객관식 문제들을 클릭, 클릭 하다보면
"당신의 전생은 OOOOOO" 라는 문장이 떴다.
주위 사람들은 맞는 거 같다!며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도...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전생은... 선원이라나?
이 항구, 저 항구를 떠도는 뱃놈.
그래서 이렇게 떠도나?

Michael에서 나오니 바로 맞은 편에 헌책방이 하나 있었다.
쓰~윽 문을 열고 들어갔다.
Guten Tag!
주인은 잘못 들어온 거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 보며 인사했다.

책들을 쭈~욱 둘러 보다
갑자기 Georg Lukacs의 [Die Theorie des Romans]이 생각났다.
김윤식 선생님이 홀린 듯한,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던 책!
강의를 듣고 당장 사려고 amazon을 뒤졌으나
하도 옛날 책이라 절판된 지 오래였다.

매우 반듯해 보이며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은 50대 남자, 주인 아저씨한테 물으니
자기 가게에는 없는데 원한다면 찾아 줄 수 있다고 했다.
주인 아저씨랑 나는 모니터 앞에 나란히 앉아서 검색을 했다.
유럽에 있는 수많은 헌책방들의 재고를 검색하는 싸이트에서.

덴마크, 영국, 스위스, 독일의 여러 도시들의 헌책방에
1920년 초판이 있었다.
"1920 Berlin"을 보는 순간 가슴이 마구 뛰었다.
무슨 대단한 장서가라도 되는 것처럼 초판을 갖고 싶은 욕심이 났다. 더럭.
가격이 Euro50~180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아저씨는 거의 100년이나 된 책이라 공부할 목적이면 상태가 좋지 않다고
그냥 1963년이나 1971년에 출판된 책을 사라고 했다.
그런 책들은 Euro20 정도면 살 수 있다고.

짧은 순간, 정말이지 극심한 갈등을 하다가
주인 아저씨의 충고대로 1971년에 출판된 hardcover를 선택했다.
아저씨는 영국 캠브리지에 있는 헌책방으로 책을 주문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책을 주문하고 나오려다가 갑자기 또 한권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있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헤르만 헤세 책들을 쭉 살펴 보더니 안타까운 표정으로 없다고 말했다.
아쉬운 대로 Suhrkamp 헤세 콜렉션 중 세 권을 집어 들었다.

아저씨는 계산을 하며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이
Hamburg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런데 이런 책들을 왜 사냐고 했다.

난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등학교 때 <데미안>을 읽고 독일어로 읽고 싶어서 독문학과에 갔다고.
(그런데 대학 가서는 전혀 공부도 하지 않고, 책도 읽지 않았다는 말은 생략했다.)

아저씨는 Wunderbar!(wonderful!) 탄성을 지르며 신기해 하더니,
문 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 악수도 했다. 머쓱!

한 때,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가끔 그 열정들이 되살아나 꿈틀거리면
즐거울 때도 있지만, 괴롭기도 하다.
이런 열정은... 편하게, 덤덤하게 살아가는 데 아~주 쥐약이니까!

Hamburg의 주말은 너.무.도 평화롭다.
난 너무도 아름다운 햇살과 반짝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평화로움에 동참하려 나름 노력하지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맴돈다. 맴맴.

항상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질문.
When will I accept where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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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7-04-1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대학 가서는 전혀 공부도 하지 않고, 책도 읽지 않았다는 말은 생략했다.. 라니, 언니 너무 귀여워!!! ^^;; When will I accept where I am? 은 누구에게나 평생 따라다니는 질문이 아닐까? 실제 생활이 어떠하건 간에..
언니 돌아오면 연락줘! 얼굴 좀 보자구~~

사마천 2007-04-1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수준이시군요 ^^

2007-04-15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15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7-04-15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수선님. 이 글을 읽으면서 제 마음이 다 두근두근 거려요. 헌책방에서 책을 찾는 님의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근사한거있죠. 수선님은 제게 언제나 늘, 멋진 분이세요!!

2007-04-24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기는 Hamburg의 멋대가리 없고 커다란 호텔.
시간은 오전 8시 10분.

봄여름가을겨울의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를 들으며
미팅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 힘들었다.

언젠가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는 씩씩한 여자를 본 적이 있다.
"저는 아무리 힘들고 슬플 때에도 밥은 꼭 챙겨 먹어요.
실컷 울고 일어나서, 눈이 팅팅 부어서도,
라면 한그릇을 다 먹어요. 계란까지 넣어서!
그게 바로 저의 힘! 하하하"

그래, 힘들 때에도, 슬플 때에도,
자기자신을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건!

화요일에는 음란서생의 윤서처럼
"나 슬퍼!"를 이마에 써 붙이고는 하루 종일 초컬릿 하나만 먹었다.
밤 늦게 집에 와서, 빈 속이 전해오는 쓰라림을 느끼며 짐을 싸다가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구질구질하게..." 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요일에는 새벽 같이 일어나
밥도 한 공기 다 먹고,
과감하게 마일리지를 3만 마일이나 공제해서
비즈니스를 타고 Frankfurt로 날아 왔다.
대한항공이 자랑하는 럭셔리한 스카이 침대에 누워서!
기내식도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하겐다즈 딸기를 낼름 먹어치웠다.

슬퍼하는 건,
혼자서 질질 짜는 건 바보 같은 짓!
정치인들의 단식은 시대에 뒤떨어진 코미디!

씩씩하게 미팅을 하러 나가자.
Hamburg에서 즐거운 금요일 밤을 보내자.
그래,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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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3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13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7-04-13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선님.
씩씩하게 미팅 잘 마치셔요! 즐거운 금요일 밤 보내시라고, 제가 서울에서 빌어드릴게요. 자, 아자아자 화이팅!!!
물론이죠, 혼자 걸을수 있고말고요!!

2007-04-13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7-04-13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밥을 먹어야 힘이나요! 수선님 홧팅~

비로그인 2007-04-1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나신다면, 모 전망대에 오르셔서 BIRDS EYE VIEW를 꼭 한 번 봐주세요. 바닷물이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몰라요. 베니스보다 더 음침하고 가지런한 운하도 봐주셔야지요. 일 때문에 그저 지나치시지 마시기를. 함부르크는, 제가 두번째로 소중히 여겼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후훗.
그리고, 힘내세요, 라는 말이 필요없을 것 같아요. 보기 좋습니다.

마태우스 2007-04-13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부르크라... 같이 술마셔드릴 수가 없군요 하지만 울나라에서 님을 바라보는 팬들의 존재를 꼭 기억해 주세요 님은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녀요...^^

마늘빵 2007-04-13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에 만나면 카카오 쪼꼬렛 하나 선물할게요. :)
 


조제트
금요일 저녁, 나의 知己 P언니와 르네 마그리트전을 보러 갔다.
우린 연인들처럼 손을 꼭 잡고 그림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보며 얘기를 나눴다.

이번 전시의 collection은 소문대로...기대 이상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샤갈, 달리, 피카소 등
이름만으로 경외심을 자아내는 화가들의 전시회가 많았지만,
이렇게 완성도를 갖춘 전시회는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르네의 그림들 뿐만 아니라
직접 찍은 사진들, 친구들이 찍어 준 르네와 아내 조제트의 사진들,
연필로 그린 수많은 드로잉들과 편지들,
아마츄어 영화 감독으로서의 르네가 찍은 일상을 담은 무성영화들,
또한...유명해 지기 전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렸던 포스터와 벽지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보이지 않는 선수>, <심금>, <대화의 기술>, <순례자>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아니라
르네가 만든 벽지 샘플집이었다.

앨범만한 크기의 샘플집에는
르네가 디자인한 벽지들이 정사각형의 비스킷 크기로 잘라져 붙어 있었고
각각의 샘플들 위에는 일련 번호와 "가격"이 있었다.
번호 뿐 아니라 가격도 르네가 연필로 직접 쓴 글씨였다.

그 당시의, 그러니까 2차 대전 전의 벨기에의
화폐 가치와 벽지의 단위를 몰라
샘플집에 있는 벽지의 가격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천재 예술가이자 철학자인 르네 마그르트에게도
샘플집을 들고 다니며 벽지를 팔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아........화려함의 이면이여!

또한 마음에 깊이 남는 건... 르네의 아내를 향한 "절절함"이다.

르네의 그림은 주로 초현실주의 작품들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2차 대전 당시 그는 화려한 색채로 고흐를 연상시키는 인상주의풍의 그림을 그렸고
바슈(프랑스어로 암소라는 뜻, 야수주의를 패러디)시기에는
르네의 그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절제되지 않은, 거친 느낌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인상주의, 바슈 이후에 그는 1930년대의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복귀했는데,
복귀한 이유가...
전시장 벽에 크게 써 있는 그 이유가...
마음을 짠~하게 했다.

천천히 자멸하는 것, 그것이 내 성향이다.
그러나 조제트가 있으니...
그녀는 옛날처럼 완성도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조제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는 지난날의 회화들만을 보여 줄 것이다.
그 안에 때때로 즐겁고도 거대한 엉뚱함을 슬쩍 밀어 넣는 방법을 발견할 것이다.


아.....감동, 감동, 감동의 절정이여!
르네를 지지해 주고 평생 친구가 되어 주고
그림을 그리는 동기를 지속적으로 부여한
아내 조제트의 존재감에 경의를!
(전시장 벽에 써 있는 글귀를 읽다가 눈물이 날 뻔 했다. 너무 부러워서!)

전시회에 갔다 와서
K(Eric Clapton 콘서트를 같이 본 바로 그!) 와 통화를 했다

"마그리트가 인상주의, 바슈를 거쳐 왜 다시 초현실주의로 복귀했는지 알아?"
난 그에게 질문을 던지며 전시회 벽에 써 있던 절절한 사연을 얘기했다.
여전히 감동에 취한 목소리로.
"아내가 예전 작품들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래."

그런데.... K는,
그러니까 <로맨틱 홀리데이>를 보고
"교환은 생산이다."는 잊지 못할 영화평을 한 K는,
이렇게 말했다.

"인상주의에 설 자리가 없었겠지.
그러면서 아내 핑계를 대는 거 아니야?"

아......내가 너무 감상적인 걸까?
아니면 K가 시니컬한 걸까?

난 핑계라도, 거짓말이라도 그런 말을 들어 보고 싶은데...
조제트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싶은데...
난 아직도 하이틴 로맨스를 읽던 중딩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오늘 수잔 개블릭의 <르네 마그리트>를 반쯤 읽었다.
마저 읽고 르네 마그리트 전을 한번 더 보려 한다.
그의 작품들이 서울을 떠나기 전에.

딴지) 르네 마그리트 전을 보며 김영하가 생각 났다.
(소설 <빛의 제국> 표지는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다.)

고양이를 꼭 껴안고 찍은 르네와 조제트의 사진들을 보면서,
장식미술, 민속학, 광고, 발표하는 목소리, 공기 역학, 보이스카우트,
방충제 냄새, 순간의 사건, 술 취한 사람들을 싫어한다는 르네의 어록을 보면서
김영하가 떠오른 건.... 나 뿐만은 아닐 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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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7-04-0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싶다는 거... 아 제법 찌릿찌릿한데요.^^

kleinsusun 2007-04-02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님, 네....찌릿찌릿해요.^^ 르네 마그리트전에 사진들도 많은데 조제트와 르네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이더라구요. 부러부러~

2007-04-02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02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