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burg의 bird eye view를 꼭 보라는,
바다가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모른다는 Jude님의 말에
Michael Tower에 올라 갔다.

사진 찍기에 바쁜 북적대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혼자 Hamburg Hafen(항구)을 홀린 듯 바라보며 서 있었다.
뭐랄까....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컨테이너를 가득 싣고 연기를 내 뿜으며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는 배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멀리 Hamburg까지 와서 서울을 그리워 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또 다시 떠나고 싶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욕망.
내 마음은 항상 서성거린다. 베이스 캠프 없이.

언젠가 전생 맞추기 프로그램이 이메일로 돌아다닌 적이 있다.
한 문제씩 뜨는 객관식 문제들을 클릭, 클릭 하다보면
"당신의 전생은 OOOOOO" 라는 문장이 떴다.
주위 사람들은 맞는 거 같다!며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도...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전생은... 선원이라나?
이 항구, 저 항구를 떠도는 뱃놈.
그래서 이렇게 떠도나?

Michael에서 나오니 바로 맞은 편에 헌책방이 하나 있었다.
쓰~윽 문을 열고 들어갔다.
Guten Tag!
주인은 잘못 들어온 거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 보며 인사했다.

책들을 쭈~욱 둘러 보다
갑자기 Georg Lukacs의 [Die Theorie des Romans]이 생각났다.
김윤식 선생님이 홀린 듯한,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던 책!
강의를 듣고 당장 사려고 amazon을 뒤졌으나
하도 옛날 책이라 절판된 지 오래였다.

매우 반듯해 보이며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은 50대 남자, 주인 아저씨한테 물으니
자기 가게에는 없는데 원한다면 찾아 줄 수 있다고 했다.
주인 아저씨랑 나는 모니터 앞에 나란히 앉아서 검색을 했다.
유럽에 있는 수많은 헌책방들의 재고를 검색하는 싸이트에서.

덴마크, 영국, 스위스, 독일의 여러 도시들의 헌책방에
1920년 초판이 있었다.
"1920 Berlin"을 보는 순간 가슴이 마구 뛰었다.
무슨 대단한 장서가라도 되는 것처럼 초판을 갖고 싶은 욕심이 났다. 더럭.
가격이 Euro50~180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아저씨는 거의 100년이나 된 책이라 공부할 목적이면 상태가 좋지 않다고
그냥 1963년이나 1971년에 출판된 책을 사라고 했다.
그런 책들은 Euro20 정도면 살 수 있다고.

짧은 순간, 정말이지 극심한 갈등을 하다가
주인 아저씨의 충고대로 1971년에 출판된 hardcover를 선택했다.
아저씨는 영국 캠브리지에 있는 헌책방으로 책을 주문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책을 주문하고 나오려다가 갑자기 또 한권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있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헤르만 헤세 책들을 쭉 살펴 보더니 안타까운 표정으로 없다고 말했다.
아쉬운 대로 Suhrkamp 헤세 콜렉션 중 세 권을 집어 들었다.

아저씨는 계산을 하며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이
Hamburg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런데 이런 책들을 왜 사냐고 했다.

난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등학교 때 <데미안>을 읽고 독일어로 읽고 싶어서 독문학과에 갔다고.
(그런데 대학 가서는 전혀 공부도 하지 않고, 책도 읽지 않았다는 말은 생략했다.)

아저씨는 Wunderbar!(wonderful!) 탄성을 지르며 신기해 하더니,
문 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 악수도 했다. 머쓱!

한 때,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가끔 그 열정들이 되살아나 꿈틀거리면
즐거울 때도 있지만, 괴롭기도 하다.
이런 열정은... 편하게, 덤덤하게 살아가는 데 아~주 쥐약이니까!

Hamburg의 주말은 너.무.도 평화롭다.
난 너무도 아름다운 햇살과 반짝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평화로움에 동참하려 나름 노력하지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맴돈다. 맴맴.

항상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질문.
When will I accept where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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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7-04-1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대학 가서는 전혀 공부도 하지 않고, 책도 읽지 않았다는 말은 생략했다.. 라니, 언니 너무 귀여워!!! ^^;; When will I accept where I am? 은 누구에게나 평생 따라다니는 질문이 아닐까? 실제 생활이 어떠하건 간에..
언니 돌아오면 연락줘! 얼굴 좀 보자구~~

사마천 2007-04-1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수준이시군요 ^^

2007-04-15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15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7-04-15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수선님. 이 글을 읽으면서 제 마음이 다 두근두근 거려요. 헌책방에서 책을 찾는 님의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근사한거있죠. 수선님은 제게 언제나 늘, 멋진 분이세요!!

2007-04-24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