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제 생일이에요. 그래서 옆지기와 전 어제 휴가를 내서 참으로 즐거운 하루를 보냈어요. 그런데 저녁까지 잘 먹고, 산책으로 비디오 대여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주 어이없는 일로 말다툼이 시작되었답니다. 둘 다 업무상 무리하게 휴가를 쓴 터라, 둘 다 화요일에 야근을 해야 하고, 둘 다 목-금 출장이 걸린 거에요. 둘 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진작부터 마련해야 했는데, 지금 당장 놀고 싶어 애써 외면했던 문제였죠. 그런데 막상 휴가가 몇 시간 안 남자 초조해진 제가 어떻게 할까를 그에게 닥달하기 시작했고, 그의 무심해 보이는 한 마디에 골을 내고 말았죠. 내가 계속 골을 내자, 그도 덩달아 신경질을 내고. 이러다 싸우겠다 싶어 거기서 일단 상황중단은 했죠.
하지만 마로를 재우고서 설겆이를 하는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나는지 눈시울이 뜨끈해지더라구요. 그런데, 안방에서 태연히 TV보는 줄 알았는데, 그가 어느새 나와서 슬그머니 수세미를 뺏더라구요. 옆지기가 묵묵히 설겆이를 해주고 빨래를 널어주는 동안 나는 비빔툰을 봤어요. 그리곤 출장기간 동안 시어머니께 봐달라고 부탁전화는 했냐, 아직까지 통화를 안 했으면 어쩌냐, 내가 친정 큰새언니께 부탁해볼까, 아니면 좀 멀더라도 형님네 다시 부탁해볼까, 나는 수요일 새벽에 떠나야 하는데 옆지기도 일찍 떠나면 아예 전날에 맡겨야 하는 거 아니냐 등등 내가 쫑알댈 때, "내가 어떻게든 할테니까 그만(말해)!"이라고 딱 잘라 한 마디 했던 그의 속마음을 읽게 되었죠.
어쨌든 기껏 빌려온 비디오는 데크에 꽂아보지도 못하고 식탁 위에 널부러놓은 채, 우리 둘은 딱히 화해도 안 하고 피곤에 절어 그대로 잠자리에 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저를 깨운 건 모닝벨이 아니라 옆지기였어요. 아침 잠이 무척이나 많은 사람인데, 졸려서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도 절 깨우더라구요. "생일 축하해" 그리곤 아침 밥만 올려놓은 뒤 둘이서 비디오를 봤어요. 물론 일어나자마자 재밌는 거 보여달라고 떼쓰는 딸래미에게 곧 TV를 뺐겼지만, EBS를 보며 세 식구가 아침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어요. 그리고 이 소소함이 바로 사랑이구나 생각했지요.
이번 크리스마스에 수선님이 어떤 분을 만날 지는 몰라요. 그 누군가가 불같은 연애를 할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일상 속의 토닥거림과 굳이 화해하지 않아도 되는 화해, 그리고 함께 아침을 먹는 행복을 함께 할 사람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굳이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