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과의 대화 - 세계 정상의 조직에서 코리안 스타일로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톰 플레이트 지음, 이은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리더십을 보게 되면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토머스 모어가 오버랩 된다. 반 총장은 개인으로서의 삶보다는 공무가 우선이며 솔직하고 정직한 청렴한 공직자 이미지다.

 

(《반기문과의 대화》 독자 서평, http://blog.aladin.co.kr/haesung/6611173)

 

 

2013년에 펴낸 톰 플레이트의 《반기문과의 대화》 독자 서평 일부입니다. (2013년에 나온 책은 ‘구판’이고, 작년 9월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제가 읽은 건 구판입니다) 서평을 작성한 독자는 이 책에 최고 평점인 별 다섯 개를 부여했습니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이라서 반 전 총장에 향한 찬사로 일관했습니다. 서평 작성자는 토머스 모어의 고뇌를 소재로 한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를 언급하면서 반 전 총장을 토머스 모어와 동등한 인물로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정직하고 청렴한 공직자로 치켜세웠습니다. 서평 작성자는 요즘 반 전 총장의 행보를 지켜볼 때마다 이불킥 할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을 겁니다.

 

 

 

 

 

서평 작성자는 무슨 약을 했기에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어딜 감히 반 전 총장을 모어의 숭고한 인격에 비비려고 합니까? 이 문제의 서평은 ‘좋아요’ 1개 받았습니다. 댓글이 한 개도 없어요. 서평 작성자 입장에서는 천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반 전 총장을 찬양하는 글이라고 비난하는 댓글이 무수히 달리지 않은 게 신기합니다. 그러나 이 불편한 진실도 언젠가는 수면 위에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서평 작성자는 과거에 썼던 찬사 일색의 서평을 삭제하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 서평을 조용히 삭제한다고 해서 자신의 오판이 완전히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일이 부끄러워서 숨기는 비겁한 자세에 가깝습니다. 서평 작성자는 과거에 좋게 봤던 책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 보지 못했던 책의 단점 혹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없는 문제점이 보입니다. 양심 있는 서평 작성자는 찬사 일색의 서평을 썼던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저지른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솔직하게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엄격한 자기 수양의 글쓰기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자기 수양의 글쓰기는 결점이 많은 자신에게 말 거는 동시에 (서평을 읽는)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아까부터 저는 반 전 총장에게 찬사를 보낸 2013년의 ‘나’에게 말 걸고 있었습니다. 2013년의 ‘나’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최근에 《반기문과의 대화》를 펼쳐봤고, 예전에 썼던 서평도 다시 읽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평을 보는 내내 민망해서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그땐 제가 반 전 총장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또 ‘출판사에서 받은 책’이라는 이유로 반 전 총장의 말과 생각에 대해 반론을 쓴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옛날에 썼던 글들은 부족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중에 2013년에 썼던 《반기문과의 대화》 서평은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 전 총장은 왜 UN 결의안을 무시하면서까지 대선에 출마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UN 결의안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총장직 퇴임 직후에 어떤 정계 공직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대선 출마 의사를 끝까지 철회하지 않는 반 전 총장의 행보를 보고 있을 톰 플레이트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톰 플레이트 : “누군가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치고 나면 반기문이 한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거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다. 반기문은 이제 쉴 거다’라고요.”

 

그가 즐거운 듯 호탕하게 웃는다.

 

: “맞습니다. 저를 아시네요! 교수님 말이 맞습니다!”

 

톰 플레이트 : “아마도 회고록을 쓰고, 아내와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고, 멋진 강연을 하러 다닐 거라고 얘기했죠.”

 

(《반기문과의 대화》 133~134쪽)

 

톰 플레이트는 이 인터뷰를 통해 반 전 총장으로부터 자신을 잘 안다고 칭찬받을 정도로 반 전 총장과 깊은 유대감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은 톰 플레이트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선 출마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반 전 총장은 장기 집권하는 세계 정상들을 만나면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유산을 남기는 것이다. 좋은 유산을 남겨라’고 늘 말했다고 합니다.[1] 반 전 총장 본인이 이렇게 말했는데요, 인제 와서 대통령이 되어보겠다는 마음에 어설픈 유세를 펼치는 그의 행보를 보면 ‘권력에 매달리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만약 반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상당히 복잡한 외교적 차원의 한일 간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할지 궁금합니다. 과연 그가 일본 앞에서 단호한 태도를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반 전 총장은 UN 내의 일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노무현 정부의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에 한일관계에 둘러싼 문제와 현황들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반기문과의 대화》에서 반 전 총장은 한국과 일본이 공존해서 동북아시아 평화를 유지하려면, ‘한국이 과거를 정리하고 과거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2]

 

일본이 과거사를 제대로 반성하고 인정해야만 한일 간 관계가 원만하게 형성됩니다.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덮으려고 10억 엔을 내놓은 것이 ‘진심 어린 사과’로 보기 어렵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10억 엔짜리 사과를 거절했습니다. 과거를 정리하고, 과거를 벗어나야 할 국가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입니다. 지금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위안부 관련 역사적 증거자료를 날조라고 주장하면서 세계 유산 등재를 막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든든한 지원 속에서 과거사를 은폐하려고 합니다.

 

“한일합방이 이뤄진 지 100년째 되는 2010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저는 일본 고위 관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기회에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진심으로 진실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과거사를 놓고 너무 많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과거를 정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앞으로 다가올 100년을 내다보는 것이다. 그러니 총리, 즉 일본 정부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일본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했지요.”

 

(《반기문과의 대화》 240쪽)

 

 

일본 총리가 사과 한마디 했다고 해서 오랫동안 깊게 파인 과거사의 상처가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베 신조 총리는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국제적 합의라는 이유로 위안부 문제 거론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더 이상 한국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언급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위안부 할머니의 한(恨)을 풀어준다는 합의의 근본정신이 무의미해집니다.

 

저는 《반기문과의 대화》를 다시 읽은 이후로 반 전 총장의 달라진 태도에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왜 대선 후보가 될 수 없는지, 그리고 그가 대통령 자격이 불충분한 이유를 확실히 알았습니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은 알라딘 오프라인 매장에 팔 수 없습니다. 책을 팔 수 없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1] 《반기문과의 대화》 133쪽

[2] 같은 책,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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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1-24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qn
불태우는 퍼포먼스 어떻습니까 ?

cyrus 2017-01-24 15:52   좋아요 2 | URL
좋은 생각입니다. 설 연휴에 시골에 가서 폐휴지와 함께 불태워야겠습니다.

새아의서재 2017-01-24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아름다운 디스네요.. 저 역시 발음보단 어휘다, 하면서 고급영어를 강조할 때 반기문을 들먹였는데 요즘 저희 아이들에게 참 머쓱합니다.

cyrus 2017-01-25 10:25   좋아요 1 | URL
우리가 국내 언론에 속았습니다. 반 총장 재임 시절에 국내 언론이 반 총장을 긍정적으로 보는 내용을 보도하니까 여태까지 문제점을 보지 못했어요.

잠자냥 2017-01-24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그러셨군요. 저도 가끔 과거에 찬양했던 책 중에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책이 좀 있습니다. 보통 정치인들 책이 그런 것 같네요. 하하하. 저는 그런 책으로 <안철수의 생각>을 꼽으렵니다. (지금 찾아보니 북플에 읽은 책으로 표시도 안해놨군요. 하하하하. 그냥 안하겠습니다; 책꽂이에 있는데 내다 팔기도 뭐하고 원...ㅋㅋ)

cyrus 2017-01-25 10:27   좋아요 1 | URL
역대 정치인 관련서적 4대 폐기물을 꼽으라면 이명박 자서전, 박근혜 자서전, <안철수의 생각> 그리고 <반기문과의 대화>로 하겠습니다.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처리 곤란한 책입니다.. ^^;;

레삭매냐 2017-01-24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반반치킨 총장님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되면서
정말 벼라별 이야기들이 다 나오더군요.

예전에도 좋아하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예전에 어느 대선
유력 주자처럼 하늘에 떠다니다가 지상에 내려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싶네요.

어쨌거나 씁쓸하네요 정말.

cyrus 2017-01-25 10:31   좋아요 0 | URL
오늘 탄핵 결정 관련 속보가 떴는데, 늦어도 3월 13일 이전에 탄핵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반 전 총장은 이 점을 염두하고, 귀국하자마자 대선 준비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설픕니다.

2017-01-24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25 10:35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박근혜 권한 정지 이후 김 시인께서 공식적인 입장이 없군요. 게다가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말 한 마디도 없고요.

시이소오 2017-01-24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도 이상하게 진보적인 친구들도 반기문에 대한 기대를 갖고있길래 반기문은 기대할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다니곤했는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반기문의 실체를 알게 돼 다행입니다.

이런 반성의 글을 쓰는게 쉬운일이 아닌데 좋네요. ^^

cyrus 2017-01-25 10:42   좋아요 1 | URL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 탄생한 UN 총장’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부 진보 세력들이 반 전 총장을 좋게 봤을 겁니다. 국내 언론이 반 전 총장의 업무를 과대 포장한 것도 문제였어요.

서니데이 2017-01-26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세요.
새해엔 소망하시는 일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7-01-26 15:42   좋아요 1 | URL
새해 인사말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연휴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즐겁게 연휴 보내세요. ^^
 

 

 

 

 

 

 

 

 

 

 

 

 

 

 

 

 

 

음악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힘이 있다. 음악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뿐 아니라 삶의 의욕을 찾아갈 때 보람을 느낀다. 사람에 따라 효과가 다소 다르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약이 있듯, 음악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따로 있다. 음악을 듣고 쾌감이나 편안함을 느끼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때는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몸의 생리현상과 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들어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 자신에게 어떤 음악이 좋은가를 알기 위해 무슨 기계나 장치로 측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에게 안정감과 편안한 기분을 안겨주는 음악이면 된다. 그런 뜻에서 우리 몸의 생리현상도 음악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편안함을 느낄 때 코티솔(cortisol)’이라는 호르몬 분비가 줄어든다. 코티솔은 침 속에 포함된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의 농도 변화로 신체 스트레스 증감 여부를 살필 수 있다. 코티솔 농도가 높아지면 우울증이 나타난다.

 

음악이 심신을 이완시키고 스트레스를 풀어줘 마음을 부드럽게 해준다는 연구보고는 수없이 많다. 음악이 인간의 정서함양이나 창의성 계발 등에 유용하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인정됐지만, 이를 과학적, 임상의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다. 김형찬의 음악의 재발견은 음악이 우리 인간을 사로잡는 이유 등을 설명하여 독자들을 음악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음악이 우울증이나 불안증 치료에 효과적임을 거듭해서 확인하고 있지만, 그 이유는 여전히 밝혀내지 못한 상태이다. 과학적 회의주의자 입장에서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연구보고와 과학적 근거들을 본다면 좀 더 다양한 실험과 신뢰할만한 데이터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싸이매틱스(cymatics)’라는 학문을 언급한 내용이 있다.[1] 싸이매틱스는 소리와 같은 진동파를 시각화하는 학문이다. 싸이매틱스 연구자들은 432Hz440Hz의 주파수로 조율한 음악이 각각 수면에 미치는 파장을 분석하면 432Hz 쪽이 더 조화로운 모양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현상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싸이매틱스 연구자가 그 유명한 TED에 강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만 가지고 싸이매틱스가 과학성의 구조를 갖춘 학문으로 볼 수 없다. 여전히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사실 싸이매틱스 이야기보다 더 황당한 내용이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연구진들이 식물이 긍정적인 인간의 언어에 반응하는 현상을 학술논문에 발표했다.[2] 고운 말을 들려준 식물은 풍성하게 자라지만 나쁜 말을 들려준 식물은 성장이 더디다. 정말 식물이 인간의 언어를 구분하고 감정에 반응할 수 있을까. 식물이 실제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실험은 오래전부터 확인되었다. 그러나 식물이 의식이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국내에 한때 에토모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가 과학 분야 최고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에토모 마사루는 물이 글과 말, 형상을 보고 듣고 기억한다고 주장한다. 물 앞에서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글과 단어, 아름다운 사진, 음악을 보여주거나 들려주면 예쁜 모양의 결정구조를 만들어내며 나쁜 말과 글, 사진, 시끄러운 음악에 대해서는 흉한 모습의 결정구조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사람이 쓴 책을 좋은 책으로 추천하고, 책 내용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많은데, 이미 일본에서는 에토모 마사루의 주장이 사이비 과학으로 판명 났다.[3]

 

비과학적인 내용은 한쪽 귀로 듣고, 뇌로 필터링해서 반대쪽 귀로 흘려야 한다. 그래도 음악의 재발견에 매력은 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가수들과 가요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흥미와 이해를 배가시킨다는 점이다. 이 장점이 없었으면, 상당히 실망감이 큰 책으로 남을 뻔했다.

  

 

 

 

[1] 물과 모래도 음악에 맞춰 표정 짓고 춤을 춘다26~27

[2] 시인의 자작곡 들으면서 식물처럼 자라볼까104~105

[3] 한국 스켑틱 3》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감정이 물체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을 검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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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23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악이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도 건재한 이유가 행진곡과 장송곡이죠....살면서 음악이 늘 함께 했으니까요..그런점에서 새로운 발견이라는 인식론은 유의미하게 되거든요..이책 사놓고 아직 펼치지를 못했는데 리뷰 먼저 올리셨네요.^^

cyrus 2017-01-24 11:44   좋아요 0 | URL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라서 금방 읽었습니다. 사실 제가 모르는 음악 용어가 나오는 글은 정독하지 않고, 넘겼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미있게 봤는데, 책에 참고문헌 목록이 없어서 진위 여부가 의심스럽습니다. ^^;;

transient-guest 2017-01-24 0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물은 답을 알고있다‘를 오컬트로 보기 보다는 ‘파동‘에 의한 작용을 단어 그 자체의 뜻과 인지로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닌가 싶어요. 식물의 경우 classic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메탈보다 좋은 효과를 준다는 실험결과를 본 적이 있는데 음악자체의 해석보다는 역시 ‘파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음파의 질, 주파수, 양, 압력 같은 다양한 것들이 인체기관에 영향을 준다는 건 이미 거의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이라고 보거든요..

cyrus 2017-01-24 11:50   좋아요 0 | URL
회의주의자들은 파동이 인체나 생물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플라시보 효과에 의한 착각이라고 반박합니다. 그래서 에토모 마사루가 주장하는 파동의학이 기술적 측면에서 미래에 사용될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임상적으로 증명된 게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사과학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2-01 18:29   좋아요 0 | URL
식물에 영향을 주는 것도 플라세보로 볼 수 있을까요ㅎㅎ??

cyrus 2017-02-01 20:21   좋아요 0 | URL
To. 고양이라디오님 // 음악을 들려준 식물의 반응을 관찰한 학자나 그 실험을 믿은 사람들이 플라시보 효과 비슷한 심리적 반응을 보입니다. 음악(의 파동)이 식물에 영향을 준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음악의 좋은 영향 때문에 식물이 잘 자랐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실험의 결과를 믿는 사람들은 음악이 병을 치유하는 데 좋은 효과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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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 조항은 일반적 평등조항으로 성 평등권을 명시한 것은 아니다. 성 평등은 한 사람의 남성과 한 사람의 여성 사이의 평등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이 법에 보호받는다’는 발상의 이면에는 남녀는 같지 않으므로 결국 동등하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여성의 평등권은 법적인 면에서 보장되고 있지만, 여전히 형식상으로 인정될 뿐 불평등이 잔존해 있는 게 사실이다.

 

‘법’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웃음으로 버무려 낸 《미스 함무라비》는 부담 없고 통쾌한 장점이 한껏 돋보인다. 특히 우리 사회에 여성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지 놀랄 만큼 생생하게 그려냈다. 여성차별 문제라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무관심한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힘이 남성보다 부족하기에 폭력을 행사함은 물론 부적절한 성차별적 언행을 한다. 정의 실현의 최후 보루인 법정 안에서도 여성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미스 함무라비》는 습관이 돼버린, 그래서 더 무서운 성차별의 형태를 자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초임 판사 박차오름이 보고 겪은 일상적인 성차별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면서 때로는 뜨끔한 느낌을 받게 한다.

 

‘여자는 여자답게 조신해야 한다’, ‘성범죄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한세상 부장의 논리는 성폭력이 권력 관계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성적으로 가하는 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관계는 피해자들의 저항을 어렵게 하고, 가해자의 법적 처벌을 면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권력에 의해 이들 사건은 곧잘 왜곡되거나 은폐됐다. 아르바이트 여대생을 성희롱한 홍보부 차장의 아내는 가부장제 문화에 매몰된 여성이다.[1] 그녀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남성 중심적 질서에 타협하여 살았기 때문에 남편(가해자)의 잘못보다는 피해 여대생의 품행을 의심한다. 그녀의 입장은 사회생활을 통해 더욱 강화돼 남성중심문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서로 알고 있는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아내 폭력’에도 여성책임론은 영락없는 단골 메뉴다. ‘아내 폭력’은 성차별적 가부장제에 의해 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신체적 · 정신적 폭행이다. 남편의 구타에 시달린 아내는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자기방어에 가까운 범행을 저지른다. 그러나 아내가 휘두른 칼에 찔린 남편과 담당 변호사는 가부장적 권위를 앞세워 아내를 ‘서방 죽인 년’으로 몰아세운다.[2] 아내가 겪는 폭력의 심각성과 공포를 잘 모르는 법조인은 구타 피해가 입증돼도 가해자에게 미약한 수준의 처벌을 내린다. 폭력의 고통을 당해본 다음이 아니고서는 남편을 죽인 아내의 죄과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다. 박 판사는 어린 시절 ‘아내 폭력’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그녀는 아빠에게 구타당한 엄마가 본연의 목소리를 잃고 정신적 외상을 입는 모습을 기억한다. 엄마는 남편의 명예와 딸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닫아걸고 억압을 표현할 용기를 잃었다. 박 판사는 이런 침묵 뒤에 가려진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성차별과 성폭력은 한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며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다. 더욱이 인권을 보호해야 할 법원이 유독 이 문제에 대해 여성에게 불리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법원이 아직도 가부장적 문화를 방증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한 부장처럼 남성중심주의 시대에 보호를 받고 자란 남성들은 여성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동안 억압받고 눌려왔던 여성들이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자신들에 대한 복수나 억압으로 생각한다. 부당한 사회에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보복이 아니다. 어떤 사회 변화를 겪어도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면서 사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여성의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아야 한다.[3] 성차별과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혜안을 모아 여성의 인권을 유린한 자를 엄단하는 법조인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1] 《미스 함무라비》, 105쪽

[2] 같은 책, 339~341쪽

[3] 같은 책, 125쪽(“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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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1-23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을 만해서 때린다는 논리로 아이, 여성, 성별에 상관없이 폭력을 가하던데, 그 논리는 악행의 합리화일 뿐이죠.

cyrus 2017-01-23 14:59   좋아요 1 | URL
그런 논리는 맞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을 약자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사실과 다르게 부당한 편견을 심어줍니다. 그래서 가해자가 ‘맞을 만해서 때린다’라고 주장하면 강자의 논리가 되어 자신의 폭행을 정당화합니다. 정말 위험한 발상입니다.

해피북 2017-01-23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니 애너벨 크렙의 말이 떠오릅니다. ‘왜 여성 위인은 나오지 않는가‘ 외쳤던 그녀의 책(아내가뭄)이 말이죠 ㅎ 법조계에 여성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아무리 여성들이 남성의 마음을 안다고 해도 다 알 수 없는거처럼 남성으로 이뤄진 법 테두리 안에서는 여성들의 불합리함을 속시원이 풀어내줄 사람이 없는것도 문제가 아닐까해요. 공감이 있어야 이해가 될텐데 말이죠. ㅎㅎ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7-01-24 11:53   좋아요 0 | URL
제가 마침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과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을 읽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남성은 이성, 여성은 감정이라는 편견이 법조인들에게도 남아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런 편견 때문에 여성 법조인은 사건을 이성보다는 감정에 기대어 해결할거라고 착각합니다. ^^;;

무식쟁이 2017-01-23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상에서 습관화 되어 있는 성차별 언행들을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걸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참고 넘기는 건 곧 묵인하는거고, 묵인은 동조의 의미이므로.

cyrus 2017-01-24 11:5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제 자신에게 늘 주의를 줍니다. 여성에 향한 잘못된 언행이 나오면 그 자리에 반성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가볍게 넘기는 것도 여성 차별을 강화하는 묵인과 동조의 의미입니다.

레삭매냐 2017-01-24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대회 참가하려고 도서관 대출을 기대해
보았지만, 선 대출자가 있어서 결국 빌려 보지
못했네요.

물론 사서 읽는 수고도 하지 않았구요. 대신
이렇게 간접으로나마 읽고 갑니다 :>

cyrus 2017-01-25 10:44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이 책을 도서관에 빌리려고 했다가 이미 대출된 상태라서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청이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이 책을 봤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
 
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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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녁 여덟시 ‘뉴스룸’을 시청하고는 또 하루를 접는다. 그런데 매일매일 접하게 되는 뉴스이건만 한결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우울하고도 서글프게 만든다.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이 시대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무감하다. 사실 그것들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었고 또 그 존재를 이제 당연시하는 세태를 발견하게 된다. 번듯한 대학을 나와도 밥벌이를 찾을 수 없는 사회, 속고 속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불신, 상생(相生)할 수 없는 경쟁, 극에 달한 지도층의 부패……. 문제는 이 세상의 틀에 들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어버린다.

 

1956년인가. 그해에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outsider))》라는 책이 나왔다.아웃사이더는 세계와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또한 그것을 반세계적으로 해결하려는 자들이다. 그로부터 60년이 흘렀다. 콜린 윌슨이 떠나고 없는 이 세상에 아웃사이더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장태주. 그는 사회와 화해하지 못하고 불온하다.

 

남과 같지 않다는 게 꼭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남과 같지 않으려 노력해서 얻은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그게 도리어 더 가치 있는 삶일 수도 있었다. (《스파링》 18쪽)

 

도선우의 소설 《스파링》에서 일찍이 세상에 환멸을 배운 주인공 장태주는 현실의 흐름, 그리고 그 속에서의 자신의 변화를 부정하거나 못 본 체해야만 한다. 이것은 분명 퇴행이고 나쁜 선택이다. 시련이 많았던 소년기를 지나 오염된 어른들의 세상으로 가기 위한 사내의 통과의례라고 하기엔 너무나 극단적이다. 하지만 세계에 냉소와 환멸을 표하는 성숙한 아웃사이더는 성장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매력적인 존재이다. 소설이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는 ‘참을 수 없는 저항’을 분출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공감을 얻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인물 설정이 성장소설에서 봤을 법한 클리셰로 반복되고 있는 것은 지적할 만한 문제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소설 안과 밖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민의 최면, 즉 자기 연민에 빠진 주인공을 연민하게 하는 최면이다.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독자가 장태주를 연민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건 달리 말해, 인사이더(insider)에 속한 독자들이 정말 반역의 삶을 선택한 장태수를 옹호할 위치에 있는가에 대해 되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장태주는 세상과 잘 타협하지 못하는 비주류 삐딱이 그 자체다. 웬만한 인간은 모두 펀치를 날리며 읊조리듯 씹어대는 그의 독백에는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 모순된 이중성에 눈감은 인사이더에 대한 혐오감이 담겨 있다.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그 단어는 가면으로 이용되기 십상이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정의가 일종의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즈음에 이미 깨달았고, 살아오는 내내 그 가면을 어떤 인간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줄곧 봐왔다. 그것은 실로 역겨운 인간들의 전유물이었다. (63쪽)

 

인사이더는 어느 정도는 사회와 개인적 가치관의 불일치 그리고 되풀이되는 사회 악습의 심각성에 대해 고민하지만, 그것의 원인이나 문제점에 대한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여기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차이가 명확하게 대비된다. 아웃사이더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집요하게 또는 너무 깊게 그리고 너무 많이 보려고 한다. 장태수는 인사이더들이 보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하려 하는 지배 질서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조롱했다. 《스파링》을 읽은 독자들이 불쾌한 세상에 통쾌한 주먹을 날리는 장태주에 열광하고, 그를 응원하는 반응에 그친다면 ‘무임승차’하기를 서슴지 않는 방관자에 남을 뿐이다. 사회적 실천에 뛰어들어 문제해결에 동참하고 그 열매를 나누어 가지려 하기보다는 뒷짐 진 채 뻔뻔한 얼굴로 방관만 하는 사람. 장태주는 이런 사람을 싫어한다. 이를 복싱 용어로 적용한다면, 목숨 거는 것에 두려워 피하기만 하는 아웃복서(Out boxer)다. 담임은 장태주에게 복싱의 의미를 가르치면서 정면승부를 펼치는 인파이터(infighter)가 되라고 강조한다. 인파이터는 오늘의 불합리한 사회체제를 정면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하며 더 좋은 사회를 꿈꾸는 아웃사이더와 비슷하다.

 

두 번째 질문은, 주인공에 향한 연민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결말에 대한 의문이다. 혹시 이 허접한 서평을 보고 있을 작가에게 한 번 묻고 싶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1] “내가 당신들한테 뭘 잘못했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장태주의 질문을 들은 나 역시 소설 속 기자들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봤다.[2] 《스파링》은 시종 건조한 장태수의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하면서도 그를 통해 독자의 감정적 혼란이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 독하게 밀어붙인다. 그런데 자신을 괴물로 설정하는 세상에 향한 장태주의 질문은 ‘날 좀 제대로 봐 줘’ 식의 유아적인 칭얼거림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장태주에게 사랑의 필요성을 알려주기 위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등장하는 설정은 뜬금없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다. 작가가 ‘사랑의 구원’이라는 결론에 기대는 것은 아웃사이더의 저항을 비웃으면서 가장 앞장서서 난타하고 있는 인사이더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곧 누군가를 희생제의 제물로 삼으면서 본심은 자신의 권력을 확보하려는 자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우회로가 된다. 이 모호한 위치의 ‘사랑’은 최면제가 되어 독자의 반성을 마비시킨다.

 

장태주는 마음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채 미래조차 불투명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장태주의 무력함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 무력함이 자기 연민으로 이어진다면, 그 어디서도 출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장태주의 결말은 투정만 부리다가 성장을 멈추어버린 소년이나 다름없다. 이런 점에서 《스파링》은 성장소설이라 할 수 없다. 장태주만의 사랑이 있고, 그가 행복할 수 있는 세계는 찾기는 쉽지 않다. 없는 세계(Utopia)이기에 또다시 절망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 수많은 장태주가 있다. 살아가야 할 방향의 선택을 확인할 여유도 주지 않는 세상의 혼돈 속에서 방황하는 젊은 세대는 슬퍼하고만 있다. 과연 이들은 장태주처럼 거대한 세상에 멱살을 부여잡고, 거부하는 몸짓을 할 수 있을까. 아웃사이더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1] 드라마 ‘시크릿 가든’ 대사

 

[2] “내가 당신들한테 뭘 잘못했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은 기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다른 이들에게 묻듯, 서로 얼굴을 돌아보면 눈치를 살폈다. (《스파링》 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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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1-24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알던 분이 쓴 책이라 서점에서 읽기에
도전했지요. 딱 101쪽 읽고 나서 고만 읽었어요.

나머지는 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려구요.
아직 도서관에 안 들어온 모양이네요.

책 읽으면서 리뷰 제목도 정해 놓았었는데 다
잊어 버렸네요. 인간은 참 망각의 동물인가 봅니다.

cyrus 2017-01-25 10:48   좋아요 1 | URL
작가분이 네이버에 서평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한 번 그 분의 블로그를 봤는데 역시 일반 독자서평과 다른 아우라를 느꼈습니다. 알라딘에서만 활동하니까 네이버에 서평을 쓰는 좋은 독자들의 존재를 보지 못했었습니다. 작년에 예스24 블로그를 만들면서도 느꼈지만, 제가 그동안 알라딘 램프 안에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책을 좋아하고, 좋은 서평을 쓰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정치는 코스프레 게임이다. 각 후보는 선거철이 되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징과 이미지를 연출한다. 시장의 상인들을 만날 때는 정장 대신에 점퍼를 걸치고 고급 승용차를 놔두고 일부러 지하철을 타기도 한다. 후보들이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옷차림을 꼼꼼하게 신경 써서 방송토론에 참석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당선을 목표로 출마한 후보들이 민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미디어 정치에서 살아남으려면 ‘상징’과 ‘이미지’를 이용하는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징과 이미지가 과장되거나 심지어 조작되면서 정작 중요한 정치 능력, 도덕적 자질 등이 무시되고 왜곡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어느 정파나 후보를 막론하여 판박이에다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서민정책’은 볼썽사납다.

 

 

 

 

그들이 선거철만 되면 찾는 ‘서민’은 누구인가. 서민은 조용하고 조심스럽고 온유하고, 그리고 소박하다.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서민’은 유권자다. 즉 정치인들이 언급하는 ‘서민’은 유권자를 뭉뚱그려 정치적으로 표현한 단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서민정책이란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 생활을 더 편안하게 하겠다는 전략적인 구호일 뿐이다.

 

대선 시기가 점점 다가오면서 정치인들이 서민과 가까워지겠다는 일념에서 예전엔 볼 수 없던 언동을 연출하는 것을 보면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특히 반기문 씨는...

 

 

 

 

 

 

 

 

 

 

 

 

정치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서민 코스프레’ 하느라 소리 없는 민심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어설프게 연기할수록 부끄러움과 분노는 우리 국민의 몫이다. 생각이 있는 국민은 얄팍한 쇼를 믿지 않는다. 반면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드러내는 국민은 위험하다. 이들은 상대 후보에 대한 해묵은 감정만을 갖고 편을 갈라 논쟁을 벌이며, 상대의 주장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 내세운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지역감정은 물론이며, 해답 없는 감정다툼을 유발한다. 여론을 의식한 ‘서민 코스프레’와 빈말은 사기일 뿐이다. 이미지와 사기에 던진 표는 동원되고 이용된 표와 다를 것이 없다. 나라의 품격에 떨어짐에 자존심 상한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서민이다. 진짜 서민은 나라의 자존심뿐만 아니라 상식과 원칙이 있는 민주주의도 살리고 싶어 한다. 이것이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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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0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20 20:14   좋아요 1 | URL
턱받이, 국기에 대한 목례, 지폐... 이런 걸로 웃음을 주는 분은 처음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0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민 하면 역시 마태우스 님이시죠..

cyrus 2017-01-20 20:1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서민적인 분입니다.

책한엄마 2017-01-20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보고 싶어요.
북플에 언제 오시는건지..

cyrus 2017-01-20 20:15   좋아요 0 | URL
기생충 연구하느라 칼럼 쓰시느라 많이 바쁘신 것 같습니다.

2017-01-20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20 20:17   좋아요 0 | URL
정치꾼 맞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유능한 살림꾼이라고 입털어요. 실제로 제 밥그릇 챙기는 사기꾼이죠.

단발머리 2017-01-2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페이퍼 너무 재미있고 유익하네요.
ㅎㅎㅎ서민 교수님이 보고 싶어지는...

cyrus 2017-01-24 11:56   좋아요 0 | URL
저도 서민 교수님이 보고 싶습니다. ^^

transient-guest 2017-01-24 0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도 그렇지만 반씨는 정치를 하기엔 확실히 너무 늙었고 감도 모자란다는 생각이 드는 일련의 ‘민심‘행각들이죠.ㅎㅎ 요즘 세상에 저런 setup이 먹히지 않죠. 조금 남아있던 가능성은 지난 10년간 줄기찬 이명박근혜의 행각으로 다 날아갔구요. 뭐가 뭔지 모르고 욕심이 나서 나온 것 같아요. 볼살에 덕지덕지 붙은 욕심이 추하게 느껴집니다.

cyrus 2017-01-24 11:58   좋아요 0 | URL
예전에 읽은 <반기문과의 대화>를 다시 읽었어요. 몇 년 사이에 사람이 확 달라졌어요. 그 책에서는 반 전 총장은 총장직에 물러나면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어요. 권력이라는 게 사람의 마음을 한 번에 변화시킬 수 있다는 위력을 새삼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