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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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 조항은 일반적 평등조항으로 성 평등권을 명시한 것은 아니다. 성 평등은 한 사람의 남성과 한 사람의 여성 사이의 평등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이 법에 보호받는다’는 발상의 이면에는 남녀는 같지 않으므로 결국 동등하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여성의 평등권은 법적인 면에서 보장되고 있지만, 여전히 형식상으로 인정될 뿐 불평등이 잔존해 있는 게 사실이다.

 

‘법’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웃음으로 버무려 낸 《미스 함무라비》는 부담 없고 통쾌한 장점이 한껏 돋보인다. 특히 우리 사회에 여성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지 놀랄 만큼 생생하게 그려냈다. 여성차별 문제라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무관심한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힘이 남성보다 부족하기에 폭력을 행사함은 물론 부적절한 성차별적 언행을 한다. 정의 실현의 최후 보루인 법정 안에서도 여성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미스 함무라비》는 습관이 돼버린, 그래서 더 무서운 성차별의 형태를 자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초임 판사 박차오름이 보고 겪은 일상적인 성차별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면서 때로는 뜨끔한 느낌을 받게 한다.

 

‘여자는 여자답게 조신해야 한다’, ‘성범죄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한세상 부장의 논리는 성폭력이 권력 관계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성적으로 가하는 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관계는 피해자들의 저항을 어렵게 하고, 가해자의 법적 처벌을 면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권력에 의해 이들 사건은 곧잘 왜곡되거나 은폐됐다. 아르바이트 여대생을 성희롱한 홍보부 차장의 아내는 가부장제 문화에 매몰된 여성이다.[1] 그녀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남성 중심적 질서에 타협하여 살았기 때문에 남편(가해자)의 잘못보다는 피해 여대생의 품행을 의심한다. 그녀의 입장은 사회생활을 통해 더욱 강화돼 남성중심문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서로 알고 있는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아내 폭력’에도 여성책임론은 영락없는 단골 메뉴다. ‘아내 폭력’은 성차별적 가부장제에 의해 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신체적 · 정신적 폭행이다. 남편의 구타에 시달린 아내는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자기방어에 가까운 범행을 저지른다. 그러나 아내가 휘두른 칼에 찔린 남편과 담당 변호사는 가부장적 권위를 앞세워 아내를 ‘서방 죽인 년’으로 몰아세운다.[2] 아내가 겪는 폭력의 심각성과 공포를 잘 모르는 법조인은 구타 피해가 입증돼도 가해자에게 미약한 수준의 처벌을 내린다. 폭력의 고통을 당해본 다음이 아니고서는 남편을 죽인 아내의 죄과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다. 박 판사는 어린 시절 ‘아내 폭력’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그녀는 아빠에게 구타당한 엄마가 본연의 목소리를 잃고 정신적 외상을 입는 모습을 기억한다. 엄마는 남편의 명예와 딸의 행복을 위해 마음을 닫아걸고 억압을 표현할 용기를 잃었다. 박 판사는 이런 침묵 뒤에 가려진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성차별과 성폭력은 한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며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다. 더욱이 인권을 보호해야 할 법원이 유독 이 문제에 대해 여성에게 불리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법원이 아직도 가부장적 문화를 방증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한 부장처럼 남성중심주의 시대에 보호를 받고 자란 남성들은 여성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동안 억압받고 눌려왔던 여성들이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자신들에 대한 복수나 억압으로 생각한다. 부당한 사회에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보복이 아니다. 어떤 사회 변화를 겪어도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면서 사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여성의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아야 한다.[3] 성차별과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혜안을 모아 여성의 인권을 유린한 자를 엄단하는 법조인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1] 《미스 함무라비》, 105쪽

[2] 같은 책, 339~341쪽

[3] 같은 책, 125쪽(“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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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1-23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을 만해서 때린다는 논리로 아이, 여성, 성별에 상관없이 폭력을 가하던데, 그 논리는 악행의 합리화일 뿐이죠.

cyrus 2017-01-23 14:59   좋아요 1 | URL
그런 논리는 맞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을 약자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사실과 다르게 부당한 편견을 심어줍니다. 그래서 가해자가 ‘맞을 만해서 때린다’라고 주장하면 강자의 논리가 되어 자신의 폭행을 정당화합니다. 정말 위험한 발상입니다.

해피북 2017-01-23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니 애너벨 크렙의 말이 떠오릅니다. ‘왜 여성 위인은 나오지 않는가‘ 외쳤던 그녀의 책(아내가뭄)이 말이죠 ㅎ 법조계에 여성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아무리 여성들이 남성의 마음을 안다고 해도 다 알 수 없는거처럼 남성으로 이뤄진 법 테두리 안에서는 여성들의 불합리함을 속시원이 풀어내줄 사람이 없는것도 문제가 아닐까해요. 공감이 있어야 이해가 될텐데 말이죠. ㅎㅎ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7-01-24 11:53   좋아요 0 | URL
제가 마침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과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을 읽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남성은 이성, 여성은 감정이라는 편견이 법조인들에게도 남아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런 편견 때문에 여성 법조인은 사건을 이성보다는 감정에 기대어 해결할거라고 착각합니다. ^^;;

무식쟁이 2017-01-23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상에서 습관화 되어 있는 성차별 언행들을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걸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참고 넘기는 건 곧 묵인하는거고, 묵인은 동조의 의미이므로.

cyrus 2017-01-24 11:5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제 자신에게 늘 주의를 줍니다. 여성에 향한 잘못된 언행이 나오면 그 자리에 반성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가볍게 넘기는 것도 여성 차별을 강화하는 묵인과 동조의 의미입니다.

레삭매냐 2017-01-24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대회 참가하려고 도서관 대출을 기대해
보았지만, 선 대출자가 있어서 결국 빌려 보지
못했네요.

물론 사서 읽는 수고도 하지 않았구요. 대신
이렇게 간접으로나마 읽고 갑니다 :>

cyrus 2017-01-25 10:44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이 책을 도서관에 빌리려고 했다가 이미 대출된 상태라서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청이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이 책을 봤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