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리학자 쉐드 헴스테드는 인간은 하루에 5만 가지 이상의 생각을 한다고 주장한다.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는 우리말이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말이다. 이 많은 생각 중에 75%는 부정적인 생각이고 25%는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고로 기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과 언론매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든다. IS 테러 소식, 광화문 시위, 각종 사건 사고 소식 등 많은 정보가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는 대부분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기사를 다룬다.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도 비판적이나 부정적인 이야기에 더 관심을 끌게 된다. 비판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람 이야기는 대상이 구체적이다. 눈에 보이기 때문에 실감이 난다.

 

 

 

 

 

 

 

 

 

 

 

 

 

 

 

 

 

 

 

 

우리 사회는 긍정을 강조한다.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긍정의 힘' '긍정심리학' 같은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 '긍정'이라는 제목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지만 같은 얘기를 하는 책들도 많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끌어당김의 법칙'을 내세운 베스트셀러 《시크릿》이나 1년 열두 달 삶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무조건 행복할 것'과 같은 여러 자기계발서가 궁극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도 결국 "긍정하라"인 것이다. 이지성은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진 R=VD 공식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인생의 진리는 단순하므로 우리 스스로 상상한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아직 열리지 않은 희망의 열매가 거둘 것이라고 낙관해도 좋을까. 삶의 난관들을 무시하고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하는 생각은 위험하다. 긍정의 힘만 믿으면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보면서 문제의 본질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켄 블랜차드의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가 주목을 많이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말의 칭찬만 더 듣고 싶어 하는 역설적인 표현인지 모른다. 부정적인 말이 조직 내 분위기를 흐리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올바른 비판 의식이 갖춰진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분위기로 조성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향한 부정적인 비판이 자신의 명예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낼 까봐 아예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말을 듣는 것 자체를 거부하여 오로지 칭찬만 듣고 싶어 한다. 칭찬만 듣고 자란 사람은 자신이 남들의 눈에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거의 아부에 가까운 칭찬만 듣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 앞에 자신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주 열심히 춤을 춘다. 그런 모습을 사람들은 열정이라고 말하지만, 남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어서 부단히 애쓰는 모습일 뿐이다. 그렇게 잘했는데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이나 좋은 반응이 없다면 분명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계속 칭찬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도전적 과업을 포기하거나,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된다. 중세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자 허무맹랑한 미신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죽음의 무도'는 죽음 앞에서 누구나 죽게 되는 인생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칭찬의 긍정적 효과를 상징하는 말로 알려졌지만, 이것을 삐딱하게 보면 '칭찬'이라는 미신을 믿고,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남들 앞에서 열심히 춤추는척 하는 비참한 상황을 보여준다. 과도한 칭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칭찬의 무도'를 멈추지 못한다. 언제까지 주변 사람들이 치켜세우는 칭찬의 춤을 추고 있을 건가? 당신의 모습을 보라. 비판과 실패를 두려워하는 비굴한 모습을.

 

 

어떤 질문이 당사자를 불편하게 했다면 본질에 정확했다는 이야기다.

 

(손호성 《악당의 명언》 중에서, 408~409쪽)

 

 

칭찬을 장려한다는 이유로 '강요'를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려는 가식만 나올 뿐이다. 긍정과 부정의 균형이 필요하다. 부정적 피드백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비판적 직언을 존중해야 한다. 직언을 막으면 조직이 실패할 수 있다. 노키아 경영진은 “아이폰에 버금가는 스마트폰을 빨리 개발해야 한다”는 개발진의 건의를 무시해 급격한 경영 악화를 경험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상대방의 직언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1등 악당에게는 근면 성실이 필수 덕목, 빌 게이츠, 히틀러, 무솔리니도 근면, 성실했다.

 

(손호성 《악당의 명언》 중에서, 114~115쪽)

 

 

윗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을 향해 '우리 젊은 시절보다 노력하지 않는다', '옛날보다 풍족한 세상에 살고 있는 데도 불만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라고 잔소리한다. 그러나 근면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해주는 필수 조건이 아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심지어 우리가 믿고 표를 준 국회의원마저도.

 

 

똑똑한 애들은 보통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내서 공략한다. 하지만 사악한 애들은 장점을 무력하게 만들어서 좌절시킨다. 다신 못 일어나게.

 

(손호성 《악당의 명언》 중에서, 221쪽)

 

 

제대로 일하지 않거나 성과가 미미한 사람일수록 자기 나름으로 열심히 했다고 변명을 한다. 열심히 한다는 칭찬이 능력을 향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을 가리려는 방패가 된다. 정글 같은 냉혹한 현실에는 자신의 특출한 능력을 무기로 앞세워 성공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독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성실'과 '노력'이라는 방패를 든 사람들이 살아남기 힘들다.

 

긍정과 칭찬은 우리 삶을 기분 좋게 해주는 꿀이다. 그 꿀을 맛보려면 벌의 독침 공격을 맞으면서까지 벌집에 다가서야 한다. 꿀을 지키기 위해 공격하는 벌들은 안정적인 우리 삶에 공격하는 수많은 난관이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따끔거리게 하는 가벼운 쓴소리가 될 수 있고, 심하면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좌절하게 하는 최악의 상황일 수도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포로가 된 스톡데일은 지속적 고문과 가혹한 환경을 견뎌내는 생활을 8년이나 한 끝에 극적으로 생환하였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또는 부활절에는 미군이 승리, 포로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다고 막무가내로 믿었던 많은 병사는 계속되는 실망감에 결국 상심해 죽게 된다. 현실을 파악하지 않은 맹목적인 낙관은 결국 실패로 이끌지만, 어려운 현실 속의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고 결국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실화이다. 강요에 가까운 무조건적 긍정은 언젠가 우리의 발등을 크게 찍을 때가 있다. 긍정에도 힘이 있지만, 부정에도 중요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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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2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cyrus님, 편안한 밤 되세요.^^

cyrus 2015-11-28 09:4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

인디언밥 2015-11-28 0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칭찬의 무도` 아프게 와닿네요. 저도 누가 저를 좋게 보면, 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엄청 애썼었거든요. 지금도 여전한지는 모르겠지만...

cyrus 2015-11-28 09:4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랬습니다. 남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누군가가 부탁하는 일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어요. 뭐든지 잘 하려는 마음이 정신적 압박감으로 되어서 스트레스가 생겼어요.

saint236 2015-11-28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괜찮아 다 잘될거야가 너무 팽배하다보니까 현실의 문제를 외면해 버리더라고요. 잘 될거라는 믿음도 현실을 직시하고 돌파할 수 있는 용기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헛된 꿈이지요.

cyrus 2015-11-29 19:44   좋아요 1 | URL
제가 글로 쓰고 싶은 내용을 아주 간결하게 말씀해주셨네요.

페크pek0501 2015-11-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가 이지성 저자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봅니다.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자는 그래서 행복해질까요?

saint236 2015-11-29 23:50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편견일지 모르지만 이지성은 뽕도 안되더라고요

yureka01 2015-11-30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죽음도 맹목적 낙관의 일종이라면...ㅎㅎㅎ그러게요.

cyrus 2015-11-30 17:43   좋아요 0 | URL
올리버 색스나 지미 카터 같은 사람들이 대단한 것 같아요. 그들처럼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 이르면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의 소설가 앰브로즈 비어스는 수천 개 이상의 단어들을 기발하게 비틀어 정의했다. 가령 의사는 병으로 번창하고 건강으로 망하는 사람’, 병원은 의사의 의술과 관리자의 학대라는 두 가지 치료를 받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비어스는 책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거침없는 독설과 신랄한 야유를 늘어놓았다. 비어스가 새로 만든 단어사전의 제목은 <냉소주의자 단어집>. 우리나라에서는 악마의 사전으로 알려졌다.

 

바다에서 나는 굴을 비어스는 이렇게 정의했다. 문명사회에서도 내장을 빼내지 않고 그냥 통째로 먹는 미끈미끈한 조개. 그리고 이 굴 껍데기는 때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덧붙여 썼다. 언뜻 봐서는 단순하게 굴의 식용 방법을 설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내용을 잘 읽어보면 비어스가 굴 하나로 빈곤의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래전부터 굴은 바다의 우유라고 불리면서 귀한 음식재료로 대접받았다. 굴에는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다. 특히 남성호르몬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아연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굴 요리는 돈 많은 정력가가 많이 찾는 특별 보양식이었다. 카사노바는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까지 여자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굴 또한 많이 사랑했다. 굴과 관련된 상식으로 카사노바의 굴 사랑은 너무나도 잘 알려졌다. 카사노바는 굴이 자연이 주는 합법적최음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카사노바는 신선한 굴을 먹는 것을 좋아했고, 하루에 굴 50개는 거뜬히 먹어치웠다고 한다. (미식가이자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역시 하루에 엄청난 양의 굴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굴이 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는 것은 맞으나, 직접 성욕을 유발한다는 말은 근거가 없다.

 

 

 

 

 

 얀 스테인 굴을 먹는 소녀

 

 

굴이 연인들이 선호하는 음식재료로 알려지다 보니 굴 먹는 행위가 사랑의 유희를 떠올리는 음탕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네덜란드 화가 얀 스테인의 굴을 먹는 소녀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림이다. 그림 속 소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정면을 응시한다. 그녀는 굴 속살을 먹으려는 중이다. 굴을 먹는 여자가 그려진 그림은 남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소재였다. 소녀가 굴을 먹는다는 것은 자신도 이제 알만큼 안다는 것을 남자들에게 보여주는 은밀한 신호다. 이제 곧 어른의 세계에 접하려는 처녀의 도발이다. 소녀의 눈빛과 마주치면 앞으로 펼쳐지게 될 야릇한 애정 행각이 떠올리게 된다.

 

뽀얀 흰 빛깔의 굴 속살이 상류층 사람들의 입안으로 들어갈 때, 버려진 굴 껍데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다. 굴 껍데기는 상당히 딱딱하다. 가끔 생굴을 먹다가 아주 작은 굴 껍데기 조각이 입안에서 씹힐 때가 있다. 딱딱한 것을 씹을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면, 열심히 움직이던 입이 멈춰진다. 쌀밥을 먹다가 모래알을 씹을 때만큼이나 음식 맛이 확 달아나는 순간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굴을 먹을 기회가 없다고 해서 딱딱한 굴 껍데기를 먹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굴을 먹는 방법을 몰라서 굴 껍데기까지 씹어 먹는 불상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굴 맛을 아는 부자들은 굴 껍데기를 먹으려는 빈자를 우습게 봤을 것이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은 굴 하나 때문에 비참한 상황으로 이르는 장면을 아주 실감 나게 묘사했다. 이 소설의 화자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런데 그 회상 장면이 너무 비참하고 암울하다. 화자가 아홉 살이었을 때,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리로 나가 구걸한다. 굶주린 어린 화자는 아사 직전 상태까지 갈 정도로 기력을 잃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화자는 주점 간판에 적힌 이라는 글자를 본다.

    

 

.....”

나는 간판에 쓰인 글자를 읽는다.

이상한 말이다! 이 땅에서 8년하고도 3개월을 살았건만 이런 낱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무슨 뜻일까? 혹시 주점 주인의 성일까? 하지만 주인의 성을 쓴 간판은 보통 문 앞에 내걸지 벽에 걸지 않는다!

 

(<> 중에서, 12~13)

    

 

가난한 소년은 아빠에게 굴의 정체를 물어보고 나서야 굴이 음식재료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허기를 참고 있었던 소년은 굴이라는 단어를 듣고, 굴의 모습부터 굴이 들어간 음식들을 먹는 자신의 모습까지 상상한다. 황홀한 상상에 빠진 소년의 모습과 아버지가 추위에 몸을 웅크리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오는 체호프의 묘사가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연출한다. 소년의 가슴에는 굴을 먹고 싶은 열망이 솟아났다. 소년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굴을 달라고 구걸한다. 아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도 구걸에 동참한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굴을 먹을 줄 아느냐고 비웃는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소년을 주점으로 데리고 와서 굴을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소년 앞에 굴 음식이 차려지고, 주점 손님들은 굴을 먹으려는 소년 주위로 몰려든다. 소년은 생소한 냄새를 풍기는 굴 음식을 맛보는데, 굴 껍데기마저 씹어 먹고 만다. 주점 손님들은 우스꽝스러운 소년의 모습에 박장대소하고, 소년을 바보라고 놀려댄다.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자책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 소설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다. 굴 하나로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만드는 체호프의 실력에 감탄하게 된다.

 

     

..... 이상한 사람이야..... 병신이라고..... 그 사람들이 굴 값으로 10루블을 내는 걸 보고도 왜 다가서서 몇 루블만..... 빌려달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아마 빌려줬을 텐데.”

 

(<> 중에서, 16)

    

 

굴은 남자를 위한 맛 좋은 음식재료가 아니다. 원래 귀족의 힘이 컸던 시절에 굴은 지배 계급만 누릴 수 있는 값비싼 음식재료였다. 귀족 대접을 받으려면 특유의 비릿한 굴 맛과 굴을 먹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오늘날의 굴은 우리들의 밥 도둑이었지만, 과거에는 귀족들의 밥 도둑이었고, 최음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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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7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7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7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스타일 좋군요.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문학 작품에서 검토하는 방식.. ㅎㅎ. 악마의 사전도 저도 가지고 있는데 화장실에 배치했습니다. 화장실에서 톨스토이 전쟁과병화를 읽을 수는 없잖습니까. 굴 하면 말씀하셨다 시피 카사 형이죠... ㅎㅎㅎㅎㅎㅎ....

cyrus 2015-11-27 22:23   좋아요 0 | URL
굴의 정의를 보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체호프의 단편소설이 생각났어요. 소년이 굴 껍질 먹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거든요. ㅎㅎㅎ

보슬비 2015-11-2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cyrus님의 글을 읽으니 팀버튼의`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지금은 김장철이라 굴값이 많이 올라서... 빨리 김장철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ㅎㅎ

cyrus 2015-11-28 09:41   좋아요 0 | URL
김장배춧값도 올랐다죠? 굴이 들어있는 김치를 맛보는 일이 줄어들었어요.

붉은돼지 2015-11-2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체흐프 `굴`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용보다는 무척 짧은 소설이었다는 기억이...ㅜㅜ
보슬비님이 말씀하신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도 생각나요...옛날에 읽은 듯 안 읽은 듯 알듯말듯....^^

cyrus 2015-11-29 19:45   좋아요 0 | URL
네. 분량이 짧아서 그런지 줄거리와 주요 장면이 지금도 생각 나는 것 같아요. ^^
 

 

 

 

 

 

 

 

 

오늘 중앙일보 신문을 보다가 흥미로운 제목의 칼럼이 눈에 띄었다. 칼럼 제목은 이렇다. <‘응팔’은 왜 실패했나> ‘응팔’은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줄임말이다. 시청자들을 과거의 향수에 젖게 만들었던 ‘응칠(응답하라 1997)’과 ‘응사(응답하라 1994)’를 이은 세 번째 시리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1988년에 유행했던 패션, 물건, 유행어 그리고 대중가요들까지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응팔’을 재미있게 보는 사람이라면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드라마에 벌써 실패 운운하는 글쓴이가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 글쓴이는 드라마가 고증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런 실패의 원인을 1980년대 관련 유물 및 데이터베이스 정리가 미흡한 사회 현실에서 찾고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 제작진은 시중에 구하기 힘든 과거의 소품들을 모조리 찾아내거나 복원하는 등 고증에 신경을 많이 썼다.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그 때 그 시절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1980년대를 기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80년대의 소품들이 많지 않은 데다가, 그 당시를 기억하는 세대의 증언들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한두 개씩 시대적 오류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응팔’의 신원호 PD는 ‘응칠’, ‘응사’보다 고증을 준비하는 데 상당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칼럼의 글쓴이는 ‘응팔’ 제작진의 교훈을 통해서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는 ‘응팔’을 시청하면서 제작진의 노력에 몇 번 감탄한 적이 있었다. 제일 찾기 힘들었을 소품을 거의 완벽하게 새것처럼 복원했기 때문이다. ‘응팔’을 챙겨 보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만약 당신이 드라마 제작진 중의 한 사람이라면 어떤 소품이 제일 찾기 힘들었을 것 같은가. 금성 텔레비전? 연탄보일러 온수통? 다이얼로 돌리는 전화기? 아니면 덕선(혜리 분)이 선우(고경표 분)에게 선물로 준 변진섭의 1집 카세트테이프?

 

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1988년에 나온 책들이 뭐 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드라마의 복고 열풍 덕분에 언론에서 8, 90년대 베스트셀러를 조명한 기사를 선보인 적 있었으나 그때 나온 책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헌책방 주인들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책들의 존재감이 점점 잊힌다. 나온 지 오래된 책들은 종이가 변색하고, 찢어지기 쉽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흰머리가 생기고, 피부에 주름이 생기듯이 책도 사람처럼 늙어간다. 젊은 책들의 등장으로 인해 자리를 잃고만 늙은 책은 박스 안에 갇힌 신세가 된다. 오랫동안 책 주인의 손길을 그리워하다가 폐품처리장에서 생을 마친다. 한 번도 주인과 눈 마주쳐보지 못하고 폐지로 전락하는 늙은 책의 신세가 처량하다. 더 슬픈 사실은 주인이 책을 버린 일을 까맣게 잊고, 그 책을 다시 찾으려고 하는 점이다. 책은 우리 곁에 더 가까이 있으면서도 쉽게 잊어버리는 물건이다. 오래 보관하기가 어려운 물건이기도 하다. 물, 불, 습기에 약하다. 

 

 

 

 

 

 

 

 

 

 

 

 

 

 

 

 

 

 

오늘날에는 관심 있는 책이 있으면 인터넷 서점 독자 서평, 출판사 서평을 참고할 수 있다. 서평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 권의 책을 이해시키기 위한 객관적 정보를 담고 있다. 독자를 염두에 둔 서평도 보존 가치가 있는 기록이다. 책에 서평이 많이 달리는 횟수로 그 책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독자 서평 한 편도 없는 책은 자신의 존재감을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절판된다. 요즘은 독자 서평의 반응에 따라 책이 좋은지 아닌지 판단하지만, 80년대에는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은 책이 많았다. 그때는 독자 서평이라는 개념이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라서 80년대에 나온 책들에 관한 공식적인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수천 권의 책들의 정보를 구축한 인터넷 서점에 종종 80년대 출간 서적이 검색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제목과 저자명은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에 남아 있는데도 표지를 확인하지 못하는 책도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80년대 책을 찾기 위해 헌책방을 헤맸던 헌책 마니아 1세대들이 존경스럽다. 그들 중 일부는 잊혀간 헌책들을 알리기 위해 인터넷에서 정보를 공유하거나 책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운영자 윤성근의 《심야책방》(이매진, 2011)과 박균호의 《오래된 새 책》(바이북스, 2011)은 우리 기억 속에 사라져버린 책들의 그리움을 담은 소중한 기록들이다. 애서가들의 기록이 없었다면 절판본이 재출간되는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심심찮게 나오는 흔한 서평 집도 다음 세대 독자들을 위한 기록이 된다. 그러므로 독자들에게 인기를 많이 받는 서평 블로거들의 기록 또한 소중하다. 특히 추리소설 전문 서평을 많이 썼던 故 홍윤 씨(닉네임 물만두)의 활동을 잊어선 안 된다. 장르문학이 잘 안 팔리던 시절에 홍윤 씨는 다양한 작가들의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고, 블로그에 서평을 남겼다. 홍윤 씨의 기록 덕분에 과거에 출판되었던 유명 추리소설 작품이 재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서평 집에 소개된 책들이 십 년이 지나 절판이 되어도 서평가들의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평 집이 절판되더라도 그 속에 있는 기록들은 인터넷으로 공유된다.

 

 

 

 

 

 

나는 드라마를 시청할 때 책 소품이 나오는 1초의 장면도 유심히 바라본다. ‘응팔’을 시청하면서도 책 소품이 나오는 장면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덕선이 자신이 짝사랑하는 선우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장면(4화)에서 덕선의 귀여운 표정보다는 책장에 꽂힌 책에 더 눈이 가더라. 그 장면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책등에 찍힌 책 제목을 확인할 수 있다. 《밤 열차》, 《한 아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보인다.

 

 

 

 

 

 

 

 

 

 

 

 

 

 

 

 

 

《한 아이》는 특수 교육 교사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문제아로 특수학급에 배치돼 말썽을 일으키지만, 여교사가 그의 천재성을 발견하는 내용이다. 아동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한 아이》는 1984년에 샘터사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너무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수필가 전혜린의 책으로 추정된다. 독일의 작가 하인리히 뵐이 쓴 소설 제목이 전혜린의 수필집 제목과 같다. 이 소설은 1987년에 학원사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으로 번역되었다.

 

 

 

 

 

 

 

마지막으로 소개될 《밤 열차》는 정체가 궁금한 미지의 책이다. ‘밤 열차’라는 제목이 흔해서 네이버에 검색을 하면 1천 권이 넘는 책이 나온다. 이 많은 책들 중에 《밤 열차》를 찾기란 모래밭에 진주 한 알을 찾는 일이다. ‘응팔’에서 소품으로 나온 《밤 열차》는 문예출판사에서 펴낸 책일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기라고르스. 출판 연도는 1985년. 네이버에서는 이 책을 ‘기타 나라 소설’로 분류했을 뿐 이 책의 줄거리에 대한 소개가 없다. 물론, 이 책을 짧게 언급한 서평 또한 나오지 않는다. 놀랍게도 문예출판사 공식 출판사 홈페이지에 《밤 열차》를 검색하면 ‘없는 책’으로 나온다. 하지만, 문예출판사는 분명히 이 책을 출판했다. 이듬해에 《밤 열차》는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되었다.

 

 

 

출판사에 일하는 분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어려운 일을 바라는 건 아니다. 앞으로 책 한 권을 펴낼 때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기록하고, 그 기록들이 오랫동안 보존했으면 좋겠다. 자사가 펴낸 책들을 데이터베이스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책의 출생일을 신고하는 일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는 출생증명서와 비슷하다. 지금은 책을 알리는 홍보의 목적으로 기록하는 것이지만, 나중에 다음 세대 독자들이 참고하는 데 유용한 정보가 된다. 신간 도서를 알리는 것도 좋지만, 과거에 나온 책들도 소중히 여겨 꼼꼼하게 알아보는 애정도 필요하다. 출간된 책이 있는지도 모른다면, 출판사의 역사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잊힌 책도 한때 출판 노동자의 땀이 맺힌 노력의 결실이다.

 

유행을 돌고 돈다. 십 년이 지난 후에 우리는 2015년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컬러링북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되고, 한동안 잊다가 또 한 번 유행할 수 있다.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항상 누군가의 기억을 불러내서 응답하기만 바랄 수 없다. 우리의 뇌와 수명은 몸으로 기억한 과거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지 못한다. 사람의 수명이 다하는 순간, 그 기억들도 사라져버린다.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 과거의 나를 불러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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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4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11-27 14:26   좋아요 0 | URL
제가 태어나고 한 달 후에 서울 올림픽이 개막했습니다. ㅎㅎㅎ

syo 2015-11-24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든 길든,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전적으로 개인적이지도 심지어 공시적인 것만도 아니었다는 걸, 알려면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간 몰랐을까요.
책에 대한 기록 알차게 남겨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cyrus 2015-11-27 14:30   좋아요 0 | URL
책의 줄거리는 일년만 지나도 잊어버립니다. 그럴 때 책을 다시 읽으면 되지만, 하루에 수십 권 넘는 신간도서에 관심을 쏟게 되다보니 재독하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 한 권 읽고난 뒤에 짤막한 감상을 글로 남겨두면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볼 수 있어요.

북다이제스터 2015-11-24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은 기사 보셨습니다. 응8년도에는 도정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과 같은 시집들이 대유행이었단 다른 기사도 보았습니다. ^^

cyrus 2015-11-27 14:32   좋아요 0 | URL
응답 시리즈 덕분에 과거 베스트셀러가 재조명된 적이 있어요. ^^

살리미 2015-11-24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중앙일보의 그 칼럼 읽고 너무 화가나서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응팔` 팬이라서요 ㅋㅋ 저는 응사나 응칠은 보지 못해서 응팔이 전작에 비해 고증에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저도 드라마보다가 주인공들이 들고 있는 책을 눈여겨 보았는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성자가 된 청소부를 읽고 있는 걸 보면서 옛 생각이 나기도 했어요. 책장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꽂혀있었던 건 몰랐네요^^
지금 cyrus님 글을 읽으니 데이터베이스 정리와 기록이 중요하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거구나 이제서야 깨달아요 ㅎㅎ
그래도 응팔 덕분에 내 기억에서 잊혀져가던 소품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그래도 실패라는건 너무 자극적인 제목이에요 ㅠㅠ 제가 딱 그세대라서 전 이 드라마가 너무 재밌습니다!

cyrus 2015-11-27 14:34   좋아요 0 | URL
<성자가 된 청소부>! 맞습니다. 그 책도 응팔 에피소드 장면에 잠깐 나왔습니다. 응팔 다시보기 기능이 있었으면 그 장면을 캡처할려고 했어요. ^^

AgalmA 2015-11-24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그때 배로 풍성해졌지만, 소외받는 책도 많고, 그렇다고 다들 내실있는 독서를 하고 있는가...하는 점도 우려스럽죠. .

cyrus 2015-11-27 14:4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현재 출판시장이 안습이지만, 인지도 높은 대형출판사는 중소출판사, 1인 독립출판사의 사정과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대형출판사 마케팅 공세가 많아질수록 베스트셀러에 편중된 독서 성향은 지속될 것 같습니다.

세실 2015-11-24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알라디너 몇명만 섭외했어도 ㅎㅎ
응팔! 제 세대라 그런지 재미있네요^^

cyrus 2015-11-27 14:44   좋아요 0 | URL
과거 책 소품 고증 작업을 박균호님, 윤성근님이 직접 참여하시면 거의 완벽하게 과거를 복원했을 겁니다. ^^

transient-guest 2015-11-25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응사가 딱 제 시대에 맞았고 응팔은 국민학교 때라서 잘 와닿지는 않네요. 특히 무리해서 펼치는 `따뜻한 그 시절` 향수는 역시 제 취향과는 멉니다. 그냥 80년대를 보는 재미, 90년대 초반까지는 유지된 마을 공동체의 이미지. 이런 것들만 눈에 들어오네요.

cyrus 2015-11-27 14:46   좋아요 0 | URL
시청자 의견 대다수가 guest님의 생각과 비슷해요. 저도 드라마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

stella.K 2015-11-25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시리즈는 패턴이 비슷해서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본다면 그 시대 문화 코드와 배우들의 코믹과 진지를 왔다갔다하는 게
볼만 한 거지.
그런데 88은 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복고란 느낌이 들긴 해.
배경이 70년 대 후반 내지는 80년 대 초반은 아닐까 싶기도 하거든.

그래서 가면 갈수록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 같아.
오늘 우리가 쓰는 글들이 훗날 어떻게 쓰일지 누가 알겠니?ㅋ

cyrus 2015-11-27 14:50   좋아요 0 | URL
누님 말씀처럼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응팔이 너무 복고 느낌이 짙다는 의견이 많아요. 드라마 배경 장소인 쌍문동 골목길 세트 무대를 처음 봤을 때 70년대에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2015-11-27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7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병통치약 2015-11-27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다가 좋은 책은 너무 쉽게 절판되고 중고책 구하기도 힘들어요....

cyrus 2015-11-29 19:49   좋아요 0 | URL
희귀한 중고책은 가격이 너무 높아서 바로 구매하기가 어려워요.

clavis 2016-01-2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지만 응팔이 응답하라 1988..인줄 여기서 처음 알았어요ㅠ

cyrus 2016-01-22 16:28   좋아요 1 | URL
드라마를 안 본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안 보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입니다. 드라마 결말 때문에 시청자들 사이에 말이 많아요. ㅎㅎㅎ
 
식물 이야기 사전 - 식물이 더 좋아지는
찰스 스키너 지음, 윤태준 옮김 / 목수책방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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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지그시 눈을 감고 Scarborough Fair’를 들으면 파슬리는 알겠는데 세이지, 로즈마리, 세이지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식물들이 모두 허브 계열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훨씬 뒤였다. ‘Scarborough Fair’는 원래 중세에 전해 내려오는 발라드를 편곡한 노래이다. 노래의 주인공인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려진 상태다. 노랫말을 보면 알겠지만, 남자는 옛 애인에게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일을 요구한다. 바느질 자국 하나라도 남지 않은 셔츠를 만들어줄 것, 그 셔츠를 마른 우물에서 세탁을 할 것. 그녀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지면 재회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에 옛 애인이 남자에게 자신의 소원을 말한다. 이 소원 또한 현실 불가능한 일이다. 두 사람은 노래 마지막에서 어려운 일이라도 시도해보라고 알린다. 그 일을 할 수 없으면 연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Scarborough Fair’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불가능한 일도 마다하지 않은, 용기 있는 연인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담은 노래로 볼 수 있다. 노래에서 반복되는 후렴구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네 가지 식물은 연인과의 재결합을 이루어지게 만드는 사랑의 부적과 같다. 중세 사람들은 식물에서 영적인 힘을 찾으려고 했다. 세이지는 인내심을, 로즈마리는 정절, 타임은 용기를 상징하는 식물이다.

 

인간은 식물에 이름과 사연을 부여하면서 애정을 표현해왔다. 꽃말과 전설은 단지 아름답기 만한 꽃을 더욱 의미 있게 해주는 감미료다. 꽃말은 꽃에 담긴 의미와 상징을 통해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암묵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특별한 언어다. 그 꽃이 그러한 뜻을 품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크게 보면, 계절과 식물적인 특성, 식물의 형상이나 전설 등에서 비롯한다. 꽃말은, 말하자면 압축파일이다. 풀어내기 전까지는 내용을 도통 알 수 없다. 그러나 파일을 풀면, 그 속에 옛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옛날 유럽의 소녀들은 로즈마리로 자신의 미래를 점쳤다고 한다. 와인, 럼주, 진 등을 섞은 물에 로즈마리 잔가지를 적신 뒤, 가지를 가슴 속에 품은 채 물 세 모금을 마신다. 단, 이 행위를 하는 동안, 21세를 넘지 않은 두 명의 소녀가 그걸 지켜봐야 한다. 그런 다음에 세 명의 소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한 침대에 잠을 청한다. 그러면 꿈속에서 미래의 장면이 나온다. 로즈마리는 신성한 의식이 거행될 때 많이 찾는 특별한 식물이었다. 로마인들은 귀한 손님들을 맞이하거나 종교의식을 진행할 때 로즈마리로 화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로즈마리 향기가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로즈마리를 무덤가 주변에 많이 심었다.

 

세이지의 전설은 슬픈 사랑 이야기다. 원래 세이지는 착한 마음씨를 지닌 요정이었다. 이 요정은 빈 참나무 속에 살았다. 그곳을 지나가던 왕이 요정을 바라보자마자 한 눈에 반하고 말았다. 요정도 왕을 사랑했다. 하지만 요정이 인간을 사랑하는 일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요정은 불꽃같은 사랑의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도 요정은 왕의 진실한 고백을 거절할 수 없었다. 왕이 요정을 끌어안자, 요정은 왕의 품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요정은 죽어서 꽃이 되었다. 요정은 인간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숙명을 알면서도 왕의 포옹을 받아들인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왕의 심장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사랑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한다. 어려운 상황을 참고 견디는 마음이 없으면 결정하기 힘든 선택이다.

 

꽃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물망초의 꽃말 하나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혹시나 모르고 있으면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옛날 독일 도나우 강의 섬에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연인에게 꺾어주기 위해 한 청년이 섬까지 헤엄쳐 갔다고 한다. 꽃을 꺾어 돌아오던 그는 그만 세찬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러자 청년은 연인에게 꽃을 던져 주고는 “나를 잊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사라진 애인을 생각하며 평생 그 꽃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청년의 슬픈 외침은 그 꽃의 이름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물망초의 꽃말과 영문 이름이 ‘forget-me-not’이다.

 

인간만이 꽃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름다움의 의식과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것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꽃은 침묵만 한 채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아가씨가 아니다. 봄이 되면 꽃봉오리 속에 간직한 이야기를 피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속삭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콘크리트 건물과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에 마지막으로 귀 기울인 적이 언제였던가. 예전에는 꽃말로 누군가에게 전하는 소소한 마음의 선물이었는데 세속의 욕심이 점점 커질수록 소중했던 기억들이 잊혀져만 간다.

 

 

 

 

 

※ 책에 대한 아쉬움 하나. 식물 전설 대부분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되는 것이 많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언급할 때, 이름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 신과 로마 신은 동일한 인물이어도 그들을 부르는 이름은 다르다. 글쓴이가 ‘그리스 신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로마식 이름을 사용하면 신화에 생소한 독자들이 혼동할 수 있다. 다음 새 개의 문장은 《식물 이야기 사전》에서 인용한 것이다.

 

플루토의 아내 프로세르피나는 남편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눈치 채고 질투에 사로잡혔다. (‘박하’ 편, 101쪽)

 

어느 날 지옥의 신 하데스프로세르피나를 보고 한눈에 반해 납치해서 지옥으로 데리고 가 버렸다. (‘석류’ 편, 136쪽)

 

명계의 신 플루토는 수선화를 이용해서 페르세포네를 지옥으로 유인했다. (‘수선화’ 편, 148쪽)

 

 

지옥의 신은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 로마 신화에서는 플루토라고 불린다.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그리스식 이름이며 프로세르피나는 로마식 이름이다. 136쪽에서는 프로세르피나라고 부르다가, 148쪽에서는 다시 페르세포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보통 유럽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신화’로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신들의 명칭을 표기하면 그리스식으로 쓰는 것이 낫다. 특별하게 로마식 이름을 쓰고 싶으면, 그 이름 옆에 괄호로 그리스식 이름을 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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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2015-11-22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정말 재밌겠네요!! 킵킵! 물망초.. 저는 잘 몰랐는데.. 낯설진 않은게 그런 식의 이야기가 참 많았나봐요

cyrus 2015-11-24 11:32   좋아요 2 | URL
이 책을 만든 목수책방이 1인 출판사입니다. 생태 관련 책을 몇 권 펴냈습니다. <식물 이야기 사전>은 식물의 오래된 전설을 소개한 책입니다. 몇 몇 이야기를 제외하면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들입니다.

yureka01 2015-12-1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리뷰 전에 읽었을때도 느낌 좋다 생각했었는데 ㅎㅎ역시..~
 

 

 

 

 

 

 

 

 

 

 

 

 

 

 

 

 

 

지금으로부터 이십년 전, 나라를 발칵 뒤집은 소동이 있었다. 그 소동이란 고령의 노인이 방북한 것이었다. 노인의 나이는 망백(望百)을 훌쩍 넘긴 93세. 노인은 통일원(현재는 통일부)의 방북 허가를 받지 않고 대종교 종무원장 김선적과 함께 중국 북경을 경유해 북한으로 갔다.

 

 

 

 

 

 

동아일보 1995년 4월 12일 1면

 

 

북한은 단군 탄생일로 지정된 4월 14일(어천절)에 열리는 단군릉 기념행사에 노인을 초청했다. 노인은 통일원에 방북 허가를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당시 경수로 협상 때문에 남북 간의 갈등상태가 고조되었고, 4월 15일이 김일성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통일원은 노인의 방북 허가 요구를 받아줄 수 없었다. 그 대신, 방북 날짜를 5월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노인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밀입북하게 되었다. 노인은 7박 8일 일정으로 어천절 행사에 참석했고, 단군릉을 방문했다. 이들이 종교행사 참가 목적으로 방북을 했어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법처리를 받는다. 판문점을 건너서 남한으로 돌아온 노인과 김선적은 재판을 받았다. 노인이 고령의 나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그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에 처한 반면에, 김선적은 구속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에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김선적은 노인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많고(당시 김선적의 나이는 69세), 종교 활동 외에 친북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정부를 무시하고 북한으로 건너간 노인은 대종교 총전교였다. 대종교는 단군을 교조로 하는 우리나라 교유의 민족종교다. 총전교는 대종교에서 최고 책임자를 이르는 말이다. 노인은 1999년 97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그의 유해는 사회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사회장은 국가와 사회에 공적을 남긴 유명 인사가 사망했을 때 지내는 장례이다. 노인이 국가의 예우를 갖춘 장례를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늘날 교육부의 시초인 초대 문교부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과거에 교육과 관련된 국가사업의 굵직굵직한 자리에 임명되었다. 그는 초대 문교부 장관, 대종교 지도자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헤겔을 공부한 철학 박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그는 ‘파시스트’, ‘반공주의자’로 비판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어째서 반공주의자가 고령의 나이가 돼서야 북한을 밀입북하게 되었을까. 노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인의 이름은 안호상. 호는 한뫼. 1902년 경남 의령군에서 태어났다. 젊은 나이에 대종교에 입문했고,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독일 유학 시절에 철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조선으로 돌아와 한국철학연구회 초대 회장에 역임했으며 이광수의 소개로 여류 시인 모윤숙과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길지 않았다. 독립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 초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이때부터 안호상의 존재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골수 반공주의자였다. 국토가 갈라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가 내세운 것이 바로 일민주의였다. 일민주의는 단일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사상이었다. 안호상은 일민주의를 통해 민족 자존심을 드높이고, 민족을 단결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일민주의의 사상적 뿌리를 홍익인간 정신과 화랑도 정신에서 찾았다. 이승만 정부 입장에서는 안호상의 일민주의가 국민 대중을 ‘반공’으로 무장시키는 적합한 사상적 도구였다. 안호상이 문교부 장관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일민주의 사상을 체계화한 서적들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일민출판사’가 설립되었다. 안호상은 일민주의야말로 평화,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면서까지 ‘일민주의’에 깊이 매료되었다. 일민주의가 단군 시절의 정치적 원리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사상적 전통이 신라에 이어져서 ‘신라직 민주주의’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신라적 민주주의’는 유럽과 아메리카에 전해졌고, 이를 거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일민주의’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내용들은 안호상의 의견이다. 그의 의견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문명보다 앞서갔다고 헛소리하는 환빠 냄새가 살짝 난다.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내세운 반공주의로 극우반공체제를 공고하게 하면서 반일운동과 유교문화를 강조했다. 안호상의 일민주의는 이승만 정부 찬양에 악용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일민주의로 국가주의 및 반공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심었으며, 1949년에 전국의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학도호국단을 발족했다. 학도호국단은 이승만 정부 시절의 파시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각 학교에 장교가 배치되었고, 학도호국단에 소속된 학생들은 군사교육을 받았다. 안호상은 초대 학도호국단 단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주한미국대사 존 무초는 안호상에게 ‘유겐트가 왔다’라고 뼈 있는 농담을 했다. 유겐트는 독일 나치 시절에 설립된 청년단이다. 안호상은 무초의 농담에 반박했다. 학도호국단은 유겐트에 본뜬 만든 것이 아니라 신라 화랑을 본떠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안호상의 민족주의는 자신이 직접 초안을 마련한 국민교육헌장에서 절정을 이룬다. 국민교육헌장은 학생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의 총화단결을 요구했다. 국가와 민족 발전을 위해 단결해야 한다는 논리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사회의식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국민교육헌장 아래 개인이나 인권은 실종됐다. 정부 정책에 대한 어떤 비판도 역적으로 몰수 있는 근거가 됐으며, 장기집권을 합리화하는 최고의 도구였다. 국민교육헌장의 선포를 시작으로 학교의 병영화도 진행됐다. 1969년에 고등학교 군사훈련이 의무화됐다. 이어서 75년에는 전국의 학생을 군대조직화 하는 중앙학도호국단이 발단식을 갖기도 했다. 이승만, 박정희 정부는 학생들에게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함으로써 이들을 정권이 요구하는 ‘국민’으로 탈바꿈시키려고 했다. 그 과정의 중심에는 안호상이 있었다.

 

안호상은 공직에 물러난 뒤에도 자신의 사상을 교육에 주입시키려고 했다. 1978년에 안호상은 8명의 학자들과 함께 문교부가 만든 국사 교과서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정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국사 교과서가 단군을 신화 속 인물로만 소개하고, 고조선의 영역을 축소시켰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문교부에 낸 안호상의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류 국사학자들은 안호상의 입장이 <산해경> 같은 사료적 가치가 떨어지는 책을 근거로 주장하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1981년에 다시 공동 명의로 정부에게 교과서 개정 청원을 요구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안호상은 자신의 시도가 뜻대로 되지 않자, 단군을 신화로 취급하는 국사 교과서를 식민사관의 잔재라고 주장했다. 즉 상고사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중국, 일본의 역사는 바로 동이족의 역사인데도 우리 교과서 어디에도 이와 같은 흔적이 보이지 않고 식민사관에 근거한 역사로만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러나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국사 교과서를 상대로 서적발매 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기도 했다. 국사학계는 안호상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식으로 무시했지만, 안호상의 활동 덕분에 강력한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재야사학자들이 점점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안호상은 홍익인간을 내세우는 대종교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통일운동에 헌신하려고 했다. 그러나 반공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동원했고, 정부의 독재를 합리화하는 이론적 토대를 놓았다. 문교부 장관 시절 안호상은 학교에 있는 좌익계를 잡기 위해 학도호국단을 만들었다. 그랬던 사람이 북한의 국가적 행사에 참석하려고 밀입북을 했다. 김일성은 자신의 정치적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단군릉 발굴 업적을 강조했고, 평양을 고조선의 중심지로 설정했다. 김일성은 실제로 있지도 않은 단군릉을 만들면서까지 자신의 주체사상을 강화했다. 이런 모습은 정권의 막강한 힘을 유지하려고 역사를 이용했던 남한 지도자들의 행보와 비슷하다. 이승만 정부는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에서 일민주의를 찾았고, 박정희 정부는 군부독재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신을 이순신의 영웅적 모습과 연결시켰다. 김일성이 단군을 역사적 실재로 만들어 대대적으로 알리게 되자, 안호상은 그를 찬양하기도 했다. 좌익 척결에 앞장섰던 그가 북한의 지도자를 찬양하는 모습은 두 얼굴의 아수라 백작을 떠올리게 한다. 만약에 이십년 전의 밀입북 사태가 오늘날에 일어난다면, 안호상은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을까. 종교 활동을 위한 북한 방문이라고 해도 김일성을 찬양했다는 사실을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을 것이다. 고령이 아니었으면 안호상은 반국가활동으로 처벌받은 장관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력을 추가할 뻔 했다. 평화를 선도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종교인도 ‘종북’으로 규정하는 세상에 살아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안호상은 자신의 신념이 완벽하다고 믿었다. 그것이 애국하는 마음이라고 여겼다. 그는 정부의 꼭두각시가 되어 모든 국민이 국가의 목적을 위해 철저하게 희생해야 한다는 외치는 파시스트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오랜 세월 개인들에게 자신의 의지나 행복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것이 옳다고 배워왔다. 국가의 위기에선 희생함이 당연하고,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정권의 비리쯤은 참아야 했다. 파시즘은 모든 인간관계와 생활양식까지도 규율하고 통제하는 기제가 되어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침투한다. 개인보다는 민족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死地)로 몰고 갔다. 안호상은 민족이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극단적 민족주의를 불사하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유겐트라도 좋으니 우리 민족이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존 무초 대사의 '유겐트' 농담을 듣고 안호상이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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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11-21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념이라기 보다는 그 때 그 때 자신의 위치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네요. 순수해서 좋네요 ㅋㅋ

cyrus 2015-11-22 19:30   좋아요 0 | URL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

yureka01 2015-11-21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한이나 북한이나 비슷하죠.체제가 다르더라도..이렇게 닮았을까..
지식인은 그저 권력자들의 권력의 도구역할이라니..에흐 ㅠㅠ

cyrus 2015-11-22 19:36   좋아요 0 | URL
독일의 나치 시절, 이탈리아 파쇼 정권 시절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지배 체제를 유지하는 권력자 밑에는 이성을 잃은 지식인들이 활개를 쳤어요.

오쌩 2015-11-2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민주의,대일통 정말 답이없네요.
전 정말 사상이라는게 무섭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상체계에 매몰되면 그것을 부정하기가 쉽지않아요.
부정하는 순간 자기존재이유를 상실하기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cyrus 2015-11-22 19:3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위에 만병통치약님이 말씀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선택하기 위해서 평소답지 않게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죠.

soando79 2015-11-22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맹목적으로 만드는 걸까요??

cyrus 2015-11-22 19:40   좋아요 0 | URL
자신이 믿고 싶은 생각을 절대적으로 믿게 되는 이상, 다른 사람의 생각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