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

 

 

오늘 야무님이 작성한 글을 읽으면서,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3월에 제가 알라딘 서재지수의 문제점에 대한 내용의 메일을 서재지기님에게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회원닉네임이 공개되는 내용이라서 서재지기 게시판에 불만사항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저도 처음에 알라딘 서재/북플 활동이 많지 않은 분이 서재지수가 높게 나오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매일 두 편 이상의 글을 열심히 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원래 ‘마이리뷰’, ‘마이페이퍼’를 많이 작성하면 서재지수가 많이 받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서재지수 목록을 확인해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마이리뷰와 마이페이퍼를 합산한 글의 수가 100편 안 되는 회원이 1,000편 이상 글을 남긴 회원의 서재지수보다 높았습니다.

 

저는 모 회원의 서재지수와 비교하면서까지 불합리한 서재지수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올해 3월 13일에 서재지기님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서재지기님과 주고받은 메일 내용을 공개합니다. 원래 메일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부조리한 상황이 진행되어도 꾹 참고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을 알리고 싶었고, 여전히 개선될 상황이 보이지 않아서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자’를 쥐어봅니다.

 

 

 

* 3월 13일에 보낸 메일

 

 

 

 

 

 

 

* 3월 14일 서재지기님의 첫 번째 답변

 

 

 

 

 

 

 

* 3월 14일 서재지기님의 답변에 대한 재답변

 

 

 

 

 

 

* 3월 15일 서재지기님의 두 번째 답변

 

 

 

 

 

* 3월 15일 서재지기님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답변

 

 

 

모든 메일 내용에 의도적인 편집이 없음을 알립니다. 원본 그대로 캡처한 것입니다. 서재지기님의 답변 메일 내용을 읽어보면 서재지수 집계 방식과 그 문제점을 알 수 있습니다.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활동을 하면 서재지수에 반영됩니다. 모 회원이 ‘좋아요’를 1,000회 이상 눌렀습니다. 하루에 ‘좋아요’ 누른 횟수가 많다 보니 서재지수가 급상승한 것이었습니다. 알라딘 측은 이런 특정 활동의 한계치를 고려하지 못했다면서 서재지수 반영의 문제점을 인정했습니다.

 

 

회원 닉네임과 서재지기님의 실명은 가렸습니다. 제가 메일에 언급한 회원은 심은유님이 아님을 밝힙니다. 모 회원과 심은유님을 악의적으로 비난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알라딘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알리고 싶어서 쓴 겁니다. 모 회원과 심은유님은 잘못한 점이 없습니다. 모 회원과 심은유님도 서재지수가 반영되는 방식을 몰랐습니다.

 

 

 

 

 

알라딘 측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크게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서재지기님은 ‘토크토크관리’ 님의 서재가 ‘서재의 달인’ 목록에 있으면 안 되는 알라딘 운영진 계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버그가 풀려서 서재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해명했습니다. 바로 처리한다고 했는데, 두 달이 지난 지금, ‘토크토크관리’님의 서재지수는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3월 달에 메일을 보냈을 때, 토크토크관리님의 서재지수는 245,602점이었습니다. 그동안 9천 점이나 향상되었네요. 서재지기님이 약속한 말씀과 달리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안 고쳐진 걸로 봐서는 버그의 일종인가 봅니다.

 

평범한 친교 활동이 수치화되고, ‘서재의 달인’의 기준이 되는 알라딘 시스템을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서재지기님에게 메일을 보낸 이후로 저는 그동안 다른 회원의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 다는 일을 한동안 주저했습니다. 알라딘 메커니즘에 맞춰서 서재 활동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도 북플에서만 볼 수 있는 ‘읽고 싶어 합니다’, ‘책을 읽었습니다’ 기능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100자평이나 알라딘 책 소개를 복사해서 올린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습니다. 저와 야무님의 의견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이미 앞서 언급했지만, 서재지수가 이상하게 나온 것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평소처럼 친분 있는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댓글로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의견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잘못된 점이 있으면 솔직한 의견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급진적으로 느낄 수도 있겠으나 서재지수 제도를 폐지하거나, 아니면 서재지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의 서재지수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스템의 문제점을 바로 잡을 수만 있다면, 불편함을 받아들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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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강기 2016-05-1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서재본연의 기능에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cyrus 2016-05-11 11:15   좋아요 0 | URL
다른 회원 간의 친분 활동이 없어도 조용히 묵묵하게 책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작성한 글의 양이 많음에도 서재지수가 낮습니다. 서재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게 활동하는데도 주목을 많이 못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책한엄마 2016-05-1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네요.ㅠㅠ
그래도 사일러스님처럼 애정있는 분이 있으니 알라딘이 한뼘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cyrus 2016-05-11 11:18   좋아요 1 | URL
애정이라기보다는 쓸데없는 관심입니다. 알라딘 측은 이런 반응에 귀 담아 듣는 척은 하지, 크게 관심이 없을 겁니다. ^^

2016-05-10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11 11:25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북플에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 대부분은 서재지수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반응입니다. 이 정도면 서재지수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하루에 100자평, 책 인용문(밑줄긋기), 그림만 열 개 이상 올리면, ‘주간 서재의 달인’ 상위권에 순식간에 올라갑니다. 하루에 글 한 편 쓰는 회원보다 서재지수가 높게 나오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간혹 최근에 글을 올린 적이 없는 유령 회원도 ‘주간 서재의 달인’ 목록에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집계 방식이 이상합니다. 이럴 거면 신뢰성이 떨어지는 서재지수 제도를 폐지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6-05-11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11 11:42   좋아요 0 | URL
저도 잘 모르겠어요. 회원의 모든 활동 내역을 수치화한 건데,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ㅎㅎㅎ

님께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지적해주셨어요. 알라딘 직원 계정이 회원의 글을 보고 ‘좋아요’를 눌러주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님이 생각하는 대로 그런 상황이 (이미 이루어졌거나) 혹은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이아기하면 음모론으로 비춰질 수 있어서 저도 더 이상 말을 못하겠어요. 여러 가지 추측만 무성할 뿐입니다. 아무튼 알라딘 측이 ‘관리상 필요해서 만든’ 서재를 만들었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5-11 0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북플도 없애버렸고, 다른 활동은 잘 안합니다. 그저 제 글 올리고 가끔씩 친한 분들 서재를 돌면서 글을 보고 댓글을 남기는 정도에요. 사실 서재지수는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매우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선되는 소지가 보이지 않네요.. 제가 3월부터인가 갑작스럽게 서재에 방문객 숫가가 줄었어요. 하루 100에서 10-20? 계속 그렇게 이어지고 있는데, 뭐 제 글이 재미없거나 다른 저로인한 것이라면 문제가 아니겠지만, 북플이나 다른 어떤 서재시스템이 이상해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신경쓰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이상하거든요..-_-: 아무래도 서재지수를 늘이기 위한 ˝이상한˝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제 글이나 서재가 묻혀지는 것 같네요..-_-: 잘은 모르지만요.

cyrus 2016-05-11 11:48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으로 북플을 접속하는 경로가 많아지니까, 컴퓨터로 ‘알라딘 서재’를 접속하는 경로가 줄어들었을 겁니다. 제 블로그 또한 방문자수가 갑자기 줄어들기도 합니다. 서재지수 제도에 관심 없는 회원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서재지수를 올리려고 하루에 글을 도배하는 회원은 없는 것 같아요. 모르는 게 약이라고, 아무런 의미 없는 서재지수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평소대로 친분 있는 회원의 글을 읽고, 간단하게 댓글을 남기면서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마립간 2016-05-11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이 많아 위 글을 꼼꼼히 다 읽지 못했지만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

어느 분이 주간 서재의 달인 순위에 올라 서재에 방문하니, 글이 없더군요. (어쩌면 1편 정도 있었을지도.) 태그 등 다른 활동으로 서재 지수가 높았던 모양인데, 좀 허무했습니다.

cyrus 2016-05-11 11:52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군요. 저도 그 점이 이상했습니다. 문제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 더 밝히고 싶은데, 회원 닉네임까지 공개해야 돼서 꾹 참고 있었습니다. 사실 어제 이 글을 작성하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서재지수 문제점에 무관한 회원분들이 오해하고, 서재 활동이 위축될 수 있으니까요.

잠자냥 2016-05-11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서재지수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거였군요. 저처럼 서재지수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그리고 친교 활동을 위해 알라딘 서재나 북플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서재 지수가 좋을 리가 없군요. ㅎㅎ 재미난 정보였습니다.

cyrus 2016-05-11 20:07   좋아요 0 | URL
그냥 알라딘에 이런 시스템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ㅎㅎㅎ

표맥(漂麥) 2016-05-1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지수? 이거 뭐에 쓰는거지? 어디에 붙어 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서재지수를 찾아 <나의 서재>로 들어갔다가 다시 이 글을 읽습니다.
별로 찾아오는 분도 없고 하니 신경 써본 적 없는 지수...
그래도 이 참에 제 지수가 얼마인지 알았습니다. : 20697점^^

지속적으로 알라딘에 글 올리는 분이 지수를 많이 받는게 가장 옳은 일 같은데...
컨텐츠를 양산해 주는 사람을 홀대하면(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면...)
그게 바로 잘못된 정책인거지요.
애정없으면 이런 지적도 못할 터... 알라딘이 잘 받아들여 개선한다면 그게 알라딘의 복이겠지요.

cyrus님 좋은 일 하신겁니다.^^

cyrus 2016-05-12 17:15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의미가 불분명한 점수가 있다는 것만 알아두셔도 좋습니다. 숫자에 너무 신경 쓰면 피곤해요. ㅎㅎㅎ 저 같은 사람이 계속 따지면, 알라딘이 싫어할거예요.

yamoo 2016-05-1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저보다 훨씬 이전에 이 문제를 제기하셨군요!
제가 또 문제를 공론화 시킨거 같아 좀 거시기 합니다만....이런 문제는 꼭 공론화시켜 볼 가치는 있는 거 같습니다.

사이러스 님의 문제제기에 십분 동감하며, 자세한 이전의 첨부글 잘봤습니다! 사이러스 님 쵝오!!

cyrus 2016-05-12 17:18   좋아요 0 | URL
2014년에 야무님이 서재지수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죠. 그때 서재지수가 하양 조정되던 날이었어요. 전 그때까지만 해도 서재지수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친구 관계를 맺지 않은 회원의 서재를 찾으려고 검색하다가 우연히 서재지수를 보게 되었어요. 하나하나 살펴보니까 미심쩍은 부분이 한 개씩 보이더라고요. 그제야 야무님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야무님이 2014년에 먼저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으면, 저는 그냥 못 본 척 넘어갔을 겁니다. ^^

감은빛 2016-10-29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서재 지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 알았네요.
한번도 신경쓰지 않았던 숫자인데,
이 댓글 쓰고 나서 저는 몇 점인지 한번 봐야겠어요.

이 서재 지수에 의해 주간 서재의 달인 순위가 매겨지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없는 숫자라면 몰라도, 이걸로 순위까지 매겨지는데, 운영을 그렇게 하다니!
좀 어이가 없네요.

꼼꼼하신 시루스님 덕분에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cyrus 2016-10-29 16:29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은 저보다 서재 활동을 오래 하셨으니 폐지된 알라딘 서비스를 기억하실 겁니다.

십년 전에 매주 ‘주간 서재의 달인’ 30위 안에 드는 회원에게 적립금 5,000원을 주는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서비스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순위 안에 들어서려고 주말 하루에 리뷰나 페이퍼를 도배질로 올리는 회원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때 알라딘이라는 공간이 있는 줄도 몰랐고. 이런 서비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알라디너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적립금 혜택은 사라졌어도 문제점은 고쳐지지 않고,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루에 리뷰, 페이퍼를 열 개 이상 올리면 서재지수 상위권에 오를 수 있습니다. 오늘 ‘주간 서재의 달인’ 명단을 살펴보세요. 1번이 ‘물감’님이라는 회원의 서재인데, 어제 리뷰를 스무 편 이상 올렸습니다. 이건 솔직히 아니잖습니까? ㅎㅎㅎ

서재 글을 한 편도 올리지 않고, 다른 서재 글에 ‘좋아요’를 많이 누르기만 해도 서재지수 상위권에 오르는 서재도 봤습니다. 웃긴 게 북플이 이런 회원들을 ‘서재 활동을 많이 하는 회원’으로 소개합니다. 글 한 편도 안 썼는데도 말이죠.

감은빛 2016-10-29 20:13   좋아요 1 | URL
제가 알라딘에 가입한 건 2004년 초였던 같아요.
그 전에 사귀던 사람이 알라딘에 글을 쓰기만해도 적립금을 준다고,
당신은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열심히 쓰는 사람이니,
글 써서 그 걸로 적립금을 받아 책을 사면 좋겠다고 했죠.
그 얘길 들었던 건 아마 한 두 해 전이었던 것 같아요.
2003년 초에 이미 그 사람과 헤어졌으니까요.

잘 기억나진 않지만, 당시엔 5편 이상 글을 쓰면 얼마의 적립금을 준 것 같아요.

하지만 전 그리 열심히 글을 쓰진 않았어요.
알라딘 서재도 몇 년간 계속 방치해두었죠.

말씀하신 서비스도 저는 몰라요.
그 때 저는 알라딘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쨌거나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이라면,
글을 많이 쓰는 사람에게 더 유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서재 지수는 역시 보잘것 없네요.
글도 많이 쓰지 않았고, 좋아요(예전엔 추천이었죠.)도 많이 누르지 않았고,
댓글도 그리 많이 달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그냥 원할 때 글을 쓰고, 좋아하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교류하고 싶은 사람들과 댓글을 나눠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수 따위 많아도, 적어도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알라딘은 이 시스템을 보다 더 상식적인 방식으로 바꾸면 좋겠네요.

cyrus 2016-10-29 20:59   좋아요 0 | URL
서재지수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집계 방식이 완벽하지 않고, 서재지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지 않아서 그냥 없는 취급하려고요. 이웃 간에 서로 얼굴 붉히지 않으면서 즐겁게 지내는 순간들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예술작품을 비평하는 방법이 갖가지가 쏟아졌다. 캐나다 출신의 문학평론가 노스럽 프라이(Herman Northrop Frye, 1912~1991)는 신화비평을 개척했다. 그는 세상에서 창작되는 모든 작품의 원형은 신화 속에 있다고 봤다. 신화비평가들은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고 부르는 위대한 작품들에서 신화의 원형을 찾으려고 한다. 《비평의 해부》(한길사)는 역사주의 비평과 미학적 비평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화비평의 골격을 제시한 프라이의 대표 저작이다. 

 

 

 

 

 

《덤불동산》(The Bush Garden: Essays on the Canadian Imagination)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프라이의 문학비평서다. 프라이가 1940, 50년대에 발표한 10편의 비평 관련 에세이들을 모은 책으로 1971년에 출간했다. 번역본 초판은 1990년에 나왔다. 이 책의 부제는 ‘캐나다 문학비평’으로 되어 있다. 책의 주제에 맞게 설명하면, ‘캐나다 시문학 비평’에 가깝다. 프라이는 1950년대에 발표된 캐나다 시인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미국 시문학과 차별화된 캐나다 시문학의 특성을 확립한다. 여기서도 신화비평에 대한 프라이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프라이는 신화가 ‘시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는 열쇠’로 본다.

 

 

 

 

 

 

 

 

 

 

 

 

 

 

 

 

 

 

 

‘덤불동산(The Bush Garden)’은 캐나다인의 문화적 정서를 함축하는 제목이다. 광활한 자연 속에 살아가면서 키워진 캐나다인의 상상력을 의미한다. 프라이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집 《수잔나 무디의 일기》(The Journals of Susanna Moodie, 1970)에서 이 표현을 빌려 왔다. 애트우드는 현재 캐나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로 알려졌지만, 원래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수잔나 무디(Susanna Moodie, 1803~1885)는 영국 식민지 시절 캐나다에 활동한 여성 시인이다. 애트우드는 여성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캐나다인의 정서를 표현했다.

 

 

 

 

 

 

 

 

《덤불동산》에 소개된 캐나다 시인들 전부 생소하다. 캐나다 시를 접해보지 않아서 프라이의 비평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책에 인명 색인이 없어서 캐나다 시인들에 대한 정보를 찾지 못했다. 그래도 이 책을 산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책을 대충 넘기다가 반가운 이름을 만났다.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이 시인으로 소개되었다. 코헨은 1956년에 《신화를 비교해봅시다》(Let Us Compare Mythologies)로 첫 시집을 발표했다.

 

 

 

 

 

 

 

 

 

 

 

 

 

 

 

 

그는 시와 소설을 발표하다가 1967년에 첫 음반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프라이는 시인으로서의 코헨을 호의적으로 보면서도 그의 기교를 비판한다. 지나친 감정 과잉이 독자들의 시적 경험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프라이는 젊은 시인 코헨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유대 신화, 기독교 신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코헨의 시를 캐나다 시인 중 누구도 쓰지 못한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재미있게도 프라이는 시집만 비평하지 않는다. 캐나다 고등학생들의 시와 산문을 모은 문집에 찬사를 표하기도 한다. 그는 시를 마음껏 쓰고, 공감할 수 있는 관대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시를 쓰게 되면 시에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시는 의지로 쓰이는 것이 아니며 사회 역시 의지로 시인을 배출할 수는 없다. 캐나다는 자국 내에서 좋은 시가 배출되길 강렬하게 열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의 의지가 교육에 나타나 있듯이 시를 읽을 때 훌륭한 시를 인식할 수 있는 세련된 시 독자층을 형성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젊은이에게는 반드시 시를 쓰도록 격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시를 잘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발견하는 지점에 이르면 시 쓰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도록 격려해야 하는 주 목적은 시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에 대한 사랑을 기르고자 함이다. (《덤불동산》 88~89쪽, 글쓴이가 임의로 편집해서 인용했음)

 

 

캐나다와 한국은 닮은꼴이 있다. 두 나라 다 식민지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자국의 문학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를 원한다. 드디어 캐나다는 숙원을 이루어냈다. 2013년에 앨리스 먼로가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마거릿 애트우드가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 노벨상을 받는 두 번째 캐나다 작가 소식을 기대해볼 만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연말만 되면 고통스럽다. 언론과 독자들은 매번 ‘희망 고문’에 시달린다. 이 사회는 ‘좋은 시인’이 아니라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강렬하게 열망한다. 시는 독자들에게 푸대접받는다. 시집은 많이 나오는데 시를 읽는 사람이 많지 않다. 우리나라 교육은 시를 정형화된 방식에 따라 ‘해석’하고 ‘암기’하는 독자층을 만들어낸다. 시를 읽는 방법을 모르는 독자들은 동시대 시인의 시가 ‘해석 불가능’한 텍스트로 규정한다. 시가 난해하다고 불평한다. 독자가 시를 외면하는 상황은 단순히 시인들의 자질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는 시에 대한 사랑이 많이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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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5-1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ㅗ 덤불동산이란 책이 있었군요. 금시초문이었슴돠..
프라이 신화 비평 재미있죠.. 이 사람 영향으로 저는 시빌워도 신화에서 빌려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슴돠..

cyrus 2016-05-10 19:54   좋아요 0 | URL
《비평의 해부》는 아직 안 읽어봤어요. 분량이 두껍던데요. 인간은 신화를 엄청 좋아하죠. 그래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에 좋은 구실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특히 박근혜, 이명박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신화’ 만드는 일을 좋아했었죠.
 
프루프 - 술의 과학 사소한 이야기
아담 로저스 지음, 강석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적당한 긴장해소와 사교에 술만큼 효과 있는 매개체도 없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술은 마시는 자체가 즐거움일 수 있고, 사교에 더없는 명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까지 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모임 자리에서 술을 잘 마시고,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야 제대로 놀 줄 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대학생이었을 때 선후배, 동기들과 술을 마시면 항상 ‘술 게임’을 했다. 이때가 정말 무서운 시간이다. 단체 게임에 약한 사람은 벌주(폭탄주)를 마셔야 한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사람들이 외쳐 부르는 게임 구호를 들으면서 벌주를 마시면, 사약 받는 기분이 든다.

 

대학생들의 술 모임에 술 게임이 없으면 허전하다. 대화를 계속 나누면서 술 마시는 분위기를 지루하게 생각한다. 술 게임을 해야 흥겨운 분위기가 한층 달아오른다. 이 분위기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주량이 대단하다는 칭찬을 듣는다. 그의 주변에는 술 동무들이 많다. 당사자로서는 술을 잘 마시는 일이 은근히 자랑거리였다. 이처럼 술을 계속 마셔도 취하지 않고 멀쩡한 사람이 있지만, 누구는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진다.

 

얼굴이 쉽게 빨개진다고 해서 술을 못 마신다고 자책하지 말자. 정상적인 신체 반응이다. 주량을 억지로 높이려다가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술이 약하다.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ALDH1’, ‘ALDH2’가 얼마나 잘 작동하느냐에 따라서 주량이 결정된다. 동양인 대다수는 ALDH2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숙취는 두통, 얼굴 화끈거림, 발열, 어지럼증 등 술을 마시고 느끼는 여러 가지 불편한 증상이다. 이러한 음주 후 숙취는 아세트알데히드 같은 중간대사 물질이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오랫동안 체내에 남아서 몸의 신경계를 교란하기 때문이다. 동양인들은 서양인에 비해 이러한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적어 숙취 해소에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 못 마시는 체질을 인정하지 않다. 주량을 비교하면서까지 쓸데없이 자존심을 세우려고 한다. ‘술의 과학’을 제대로 알고 술을 마신다면, 이렇게 무식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프루프(Proof)는 술의 알코올 농도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영국 선원들은 럼을 즐겨 마셨다. 럼은 엄청 독한 술이다. 선원들은 럼의 알코올 함량을 측정하기 위해 화약을 섞은 럼에 불을 붙였다. 맛이 좋은 럼의 상태를 증명(Proof)하는 방법이다. 이 지구상에 효모가 없었으면, ‘퐁’ 하고 터지면서 흘러나오는 맥주 거품이 나오지 않았다. 효모는 인류의 오랜 친구이자 원수다. 효모가 발효하면 술이 만들어진다. 인류는 1만여 년 전부터 효모라는 미생물을 이용해서 포도당을 알코올로 변환시키는 남다른 기술을 습득했다. 애주가라면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효모의 존재에 감사해야 한다. 효모 균류가 없으면 술을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좋은 효모 균류로 만든 술은 맛이 좋다. 세계적인 맥주 양조업체들은 효모 균주를 샘플 형식으로 별도로 영구 보관한다. 지금도 양조업체들은 효모 시류를 수집하여 맛 좋은 맥주를 만드는 방법을 찾으려고 연구한다. 이처럼 우리가 마시는 맥주병 하나에도 첨단 과학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노르웨이령 북극해, 북극에서 단 800㎞ 떨어진 곳에 있는 스발바르 제도의 스피츠베르겐 섬에는 ‘노아의 방주’가 있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는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식물 종자 샘플이 밀봉 상태로 보관돼 있다. 기후변화나 핵전쟁, 소행성 충돌 같은 전 지구적 재앙으로부터 식물 다양성을 지키는 게 목표다. 그래서 ‘최후의 날 저장고’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본다. 지구 종말을 대비해 맥주 효모 샘플이 보관된 저장고를 만드는 것이다. 맥주 만드는 기계가 파괴되어도 맥주 만드는 법을 생존한 인류에게 전수할 수 있다. 효모 저장고의 이름은 ‘노아의 음주’다. 노아는 방주를 제조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불명예스러운 일화도 전해진다. 노아는 성경에 기록된 인류 최초의 취객이다. 그는 자신이 재배한 포도로 만든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상태로 잠들었다. 과연 노아는 어떻게 숙취를 해소했을까? 숙취 해소는 모든 애주가가 당면하는 공통된 문제다. 숙취의 원인과 이를 해소하는 방법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인간은 제 손으로 만든 술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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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9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10 13:55   좋아요 1 | URL
술뿐만 아니라 평소에 먹던 음식까지 못 먹게 되니까 불편합니다.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에 파전과 막걸리가 생각났는데, 먹지 못했어요. 이저부터 식단 조절에 신경 써야하거든요. 5개월 뒤에 다시 병원에 가야 합니다. ㅠㅠ

alummii 2016-05-09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노아의음주 ㅋㅋ 재밌네요

cyrus 2016-05-10 13:55   좋아요 0 | URL
아재 개그를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 ㅠㅠ

나비종 2016-05-09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쉽게 빨개지는 편이라(취하지는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만. .) 술과 그리 친한 편은 아닙니다.
다만, 효모가 만들어내는 기체의 활약에 관심이 있습니다. 빵을 무지 좋아하거든요.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읽은 후로 천연 효모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애빵가의 오랜 친구, 효모. .ㅋㅋ
그러고 보면 종교적으로도 효모는 대단한 존재로군요. `빵과 포도주`의 연결고리, 효모~ㅎ

cyrus 2016-05-10 13:57   좋아요 0 | URL
효모가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인류는 효모의 존재를 모른 채 빵과 포도주를 만들었다고 해요. ^^
 

 

 

 

 

 

 

요즘 ‘초코파이 바나나’가 없어서 못 먹는 지경이다. 오리온이 창립 60주년을 맞아 선보인 제품이다. 초코파이 바나나는 기존 초코파이보다 묵직하다. 한 조각 먹어보면 달짝지근한 바나나 맛이 난다. 초코파이 바나나에 이어서 ‘몽쉘 초코&바나나’도 등장했다. 이건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초코파이 바나나를 샀던 대형 상점에 가보니 몽쉘 바나나는 이미 다 팔리고 없더라. 물론, 초코파이 바나나도 동났다. 국내 식품업계는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 막걸리 등 바나나를 넣은 신제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바나나가 대세다. 초코파이 바나나는 구하기 어려워도 바나나는 시장에 가면 산다. 70년대만 해도 바나나는 귀한 과일이었다. 만화 <검정 고무신> 4화 ‘바나나는 맛있어’ 편은 바나나가 귀했던 70년대 시대상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기영이는 바나나를 먹을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친구의 외삼촌 집 앞에서 덜덜 떨면서 외삼촌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영이는 바나나를 먹지 못한 채 심한 감기에 걸려 앓아눕게 된다. 약을 먹어도, 무당을 불러도 기영이의 감기가 쉽사리 낫지 않는다. 형 기철이는 환등기를 사려고 1년 6개월 동안 모은 용돈으로 결국 바나나를 사 들고 집으로 향한다. 드디어 기영이는 꿈에 그리던 바나나를 먹는다. 처음으로 느낀 바나나 맛에 기영이는 감동의 눈물과 콧물을 흘러내린다. 눈물과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면서 바나나 맛을 음미하는 기영이의 표정이 4화의 명장면이다. 만화가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었지만, 바나나 한 개 맛보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바나나가 흔해도 언젠가는 바나나를 영영 먹지 못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바나나마저 미래에 멸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 바나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유는 바나나나무의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협소해졌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의 이윤추구에 최적화로 육종한 품종의 바나나 나무만 심은 결과다. 이러한 보급은 하나의 종을 너무나 많은 병균에 노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바나나가 접했던 많은 병균 중에서 하나가 바나나를 죽일 수 있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그 바나나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기를 수 없게 된다. 바나나가 겪는 위협은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을 유발한 감자 해충에 견줄 만하다. 병충해에 강한 새로운 품종의 바나나를 개발하지 않으면 지금의 식용 바나나가 사라질지 모른다. 바나나 멸종 문제는 단순히 과일 하나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일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바나나는 밀이나 쌀보다 더 중요한 주식이다. 이들이 간절하게 필요한 주식을 우리는 흔한 간식이나 디저트로 먹고 있다. 

 

 

 

 

 

최근에 품종 바나나를 위협하는 변종 파나마병이 아시아에 이어 호주까지도 확산하였다. 남미는 아직 변종 파나마병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현재 안심하게 먹을 수 있는 바나나 대부분은 남미에서 왔다. 그러나 병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 초코파이 바나나가 귀하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정작 중요한 건 진짜 바나나를 먹는 일이다. 바나나 향이 나는 과자보다는 시장에 파는 바나나를 많이 먹어두는 것이 좋다. 사실 초코파이 바나나의 맛은 바나나 열매 특유의 단맛을 따라가지 못한다. 달달한 바나나 맛이 나지 않는다. 정말로 지금의 바나나 열매가 완전히 사라져서 바나나를 먹지 못하게 된다면, 바나나 맛을 기억할 수 있을까? 허니버터칩 사례처럼 바나나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가게는 손님들 앞에서 ‘바나나 인질극’이 시도한다. 지금은 ‘끼워 팔기’가 법적으로 규제되고 있지만. 미래에는 아무도 사지 않는 제품에 바나나 한 개씩 끼워 넣는 판매가 허용될 것이다. 국어 교과서에 새로운 속담이 등장할 수 있다. '그림의 떡'이 아니라 '그림의 바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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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7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08 10:42   좋아요 0 | URL
현재 과학기술로도 변종 바이러스에 견디는 새 바나나 품종을 만들기 어렵다고 합니다. 바나나 품종이 나온다고 해도 맛은 기존 품종보다 떨어질 것 같습니다.

여름에 바나나 한 개 냉동실에 살짝 얼려 먹으면 맛있습니다. 바나나 아이스크림입니다. ^^

수이 2016-05-08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나나 아이스크림_ 좀 바꿔서 만들어봐야겠다_ 어쩐지 인기 짱이 될 거 같은 느낌이야~~

cyrus 2016-05-09 17:14   좋아요 0 | URL
바나나를 살짝 얼린 상태에서 초콜릿 크림을 얹어 먹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환상문학전집 13
루돌프 에리히 라스페 지음, 귀스타브 도레 그림, 이매진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몸이 아프다며 수술을 여러 번 받는 환자가 있다. 그 환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병원에 입원할 목적으로 거짓말을 물론, 자해까지 일삼는다. 일부러 몸을 다치게 한 후 그것을 구실로 병원에 입원하려는 속셈이다. 없는 병과 상처를 일부러 만들려는 괴이한 행동. 이런 사람은 ‘뮌히하우젠 증후군(Munchhausen syndrome)’과 관련되어 있다. 병적인 거짓말을 일삼지만 매우 그럴듯해 많은 이들이 속기 쉽다. 또한 자기 역시 그 거짓말에 심취한다. 뮌히하우젠 증후군 환자는 가족을 달달 볶는다.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도 있다.

 

거짓말을 입에 달지 않으면 가시가 돋는 사람. 뻔한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마치 실제 상황처럼 말하는 사람. 뮌히하우젠은 허풍쟁이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졌다. 동화로 소개된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은 18세기 러시아 군대의 장교로 근무했던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실존 인물 뮌히하우젠 남작은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루돌프 에리히 라스페가 남작을 괴짜 허풍쟁이로 만들었다. 라스페는 악마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에 영국 왕립 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을 정도로 똑똑했다. 이런 그가 절도범, 사기꾼이 될 줄 알았을까. 돈이 필요한 라스페는 다시 펜을 잡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 나온 작품이 바로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다. 그러나 라스페가 이 작품의 저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 당시 뮌히하우젠 이야기가 독일에서 인기를 끌었던 소재였기 때문이다. 라스페가 돈을 벌기 위해서 유행에 편승한 것뿐이다.

 

이야기가 전부 황당하다. 계속 읽어보면 말이 안 나온다. 웃음의 핵심을 찾기가 불가능하다. ‘독자에게 드리는 글’에서 라스페는 남작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이야기의 진실을 보증해주기 위해 세 명의 서명자가 등장한다. 

 

 

아래 서명자들인 우리들은, 진실로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에 다음 사실을 최대한 엄숙하게 지지합니다. 그 어떤 나라에서 벌어진 것이든 우리의 벗 뮌히하우젠 남작의 모든 모험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온전한 사실입니다. - 걸리버, 신드바드, 알라딘

 

 

이야기 시작하기에 앞서 벌써 ‘뻥’의 기운이 느껴진다. 어린이용 동화를 본 독자라면 가장 유명하고도 황당한 장면 몇 개를 기억할 것이다.

 

 

 

 

남작은 포탄을 타고 적진 상공을 날아간다든가 하체가 사라진 애마를 타기도 한다. 한 번은 터키군의 포로로 끌려가던 중 곰을 겨냥해 도끼를 던졌는데 이 도끼는 그대로 날아가 달에 꽂혔다. 남작은 빨리 자라기로 유명한 터키 강낭콩을 심었고 콩나무가 쑥쑥 자라 달에 도착하자마자 도끼를 가져왔다. 이 장면 하나로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은 공상과학소설의 원조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은 전체적으로 엉망진창인 괴작이다. 이 작품을 순전히 ‘어린이를 위한 모험담’으로 생각하고 읽으면 크게 실망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기에는 좋지 않은 묘사가 있다. 문제가 되는 장면 몇 가지를 들어보자. 총알을 두고 사냥을 나간 남작은 대신 버찌씨를 총에 장전해 사슴의 머리 정중앙을 맞혔다. 펄쩍 뛰어 달아난 사슴은 1년 뒤, 머리에 버찌가 주렁주렁 열린 벚나무를 뿔 대신 달고 나타났다. 유달리 호기심 많고 상상력이 넘치는 아이들은 이 장면을 보고 따라할 수 있다. 집에 키우는 반려견 머리에 과일나무 씨앗을 심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 다음 일어나게 될 상황은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곰 사냥 이야기는 하체가 잘려나간 말 이야기보다 더 잔인하다. 남작은 부싯돌 두 개로 곰을 사냥했다. 부싯돌 한 개는 곰의 벌어진 입 속으로, 나머지 부싯돌은 곰의 항문 쪽으로 던졌다. 두 개의 부싯돌이 한 번에 부딪히면서 폭발음이 일어났고, 곰의 몸뚱어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남작의 사냥 방식은 잔인한 동물 학대에 가깝다.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의 ‘두 번째 모험’은 ‘첫 번째 모험’과 비교하면 많이 뒤떨어지는 형편없는 내용이다. ‘첫 번째 모험’까지 마무리 지어야 했었다. 다소 지루하고 억지스러운 장면이 진행된다. 신원 미상의 작가들이 원작에 없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추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뜬금없이 돈 키호테가 등장해서 남작이 가는 길을 막아서기도 한다. 돈 키호테는 남작 일행을 ‘거대한 괴물’로 여기어 공격한다. 뮌히하우젠과 돈 키호테의 만남. 제정신이 아닌 자들이 처음으로 마주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남작은 자신이 만든 허풍의 세계 속에 갇혀 있고, 라 만차의 기사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혔다. 서로 닮은 면이 있는 두 사람을 프랑스의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렸다. 

 

18세기에 나온 작품이기 때문에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을 옹호하는 제국주의적 관점이 슬쩍 드러낸다. 라스페는 자신의 작품에 문학작품 속 인물을 등장시켜 패러디를 시도하고 있지만, 뮌히하우젠을 띄워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심지어 죽은 사람을 조롱하기도 한다. 루소와 볼테르를 뼈와 가죽만 남은 시체로 묘사하여 바알세불(Beelzebub, 사탄)과 동행하는 악령으로 만들어 놓는다. 남작은 그들을 무찔러 버림으로써 영웅이 된다. 라스페는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 체제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소설 속 뮌히하우젠은 라스페의 ‘오너캐(작가와 작중 주인공의 동일화)’다. 라스페는 젊은 시절 재능을 낭비하고, 악마의 손아귀 속에 놀아나는 바람에 인생이 제대로 꼬였다. 돈을 만져보면서 꼬인 인생을 제대로 풀어보려고 황당한 내용의 소설을 쓰게 됐다.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은 인생을 바꿔보려고 조급하게 쓴 사기꾼의 어설픈 소설이다. 당연히 완역본이 축약본보다 더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축약본보다 못한 최악의 완역본도 있다.  축약본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모험담이었다. 그 즐거운 추억 때문에 완역본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 없길 바란다. 읽어보면 후회한다. 추억은 추억 그대로 남겨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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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6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5-07 20:35   좋아요 0 | URL
예전에 꾀병인 척해서 회사를 속이는 사람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어요. 그 사람은 단순히 일하기 싫어서 거짓말을 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프다고 알렸을 겁니다. 그러면 뮌히하우젠 증후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병원 링거 꽂은 손이나 병원 진료 인증하는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현상을 저는 좋게 보지 않아요. 아픈 척해서 남들에게 동정(‘좋아요’) 받으려는 관종들이 있어요.

transient-guest 2016-05-07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계림사 문고 시리즈로 본 기억이 납니다. 저는 영문본을 2-3년 전에 근처 헌책방에서 샀어요. 계산하면서 주인이 `그거 잘 골랐네. 지금 바로 다른 데 팔아도 값을 더 받을 거야`라고 말한 게 생각나네요..ㅎ

cyrus 2016-05-07 20:39   좋아요 0 | URL
이 번역본도 구하기 힘들어요. 2012년에 개인적인 일 때문에 서울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알라딘 종로점에 이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구로 돌아가기 전에 이 책을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점에 도착하니까 다른 손님이 벌써 책을 샀더군요. 영원히 못 구할 줄 알았는데, 한 달 전에 대구점에서 샀습니다. ^^

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5-07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육이란것
어른소설을 미화하고
다듬어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만들어준 국내출판사.
라스페의 그것 과 닮아있네요^^

cyrus 2016-05-07 20:41   좋아요 1 | URL
웃긴 건 아이들이 순수함과 거리가 먼 행동이나 표현을 하면, 마치 중범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여기고 호들갑 떠는 어른들도 있어요. 삼계탕님 말씀을 들으니 예전에 <솔로 강아지> 논란이 생각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