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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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나쁜 인터넷은 정신의 독약이며, 정신의 파멸을 가져온다. [주1]

 

먼지바람이 휩쓰는 길 한가운데에 두 총잡이가 최후의 결투를 준비한다. 구경꾼들은 결투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본다. 침묵 속의 기 싸움이 구경꾼들을 압도한다. 그들은 서로 자신들이 지지하는 총잡이가 이 결투를 어서 빨리 끝내주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총잡이는 자신이 아끼는 리볼버 권총을 쓰다듬는다. 상대가 따라 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비장한 사격 솜씨를 내보일 준비 한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클리셰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결투와 싸움이 벌어진다. 권총을 대신한 무기가 댓글이다. 상대방을 굴복시키려고 저격하는 상황은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서부영화에서 악당이 빠질 수 없듯이 인터넷에서도 게시판 전체 분위기를 흐리게 만드는 누리꾼 집단이 존재한다. 그들은 차마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욕을 하거나 상대방을 비방하는 악성 댓글, 이른바 ‘사이버 폭력’을 일으킨다. 평화로운 게시판은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로 변한다. 팝콘을 먹으면서 댓글 싸움을 구경하는 누리꾼들이 늘어난다. 댓글 싸움에 서부영화의 총싸움에서 허용되지 않는 특별한 무기가 동원된다. 그것은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는 특별한 ‘방패’다. 댓글로 공격한 누리꾼은 이 방패로 삼아 자신의 신분을 철저하게 보호한다. 그것이 바로 ‘익명’이다.

 

익명성은 분명 매력적이다. 특히 과거 감시와 통제의 그늘 속에 속박받던 세대들에게 그 가치는 충격적일 정도의 경이로운 일이다. 이데올로기로서 이미 그 효용가치를 상실한 공유와 평등은 인터넷으로 다시금 부활했다. 자연히 구성의 개체에 불과했던 개개인의 힘은 막강해졌다. 그러나 매혹적인 만큼 위험도 있다. 권위의 문턱을 훌쩍 뛰어넘어버린 익명의 힘은 누리꾼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고립시킨다. 급기야 통제 불가능한 괴물로 변한다. 대중매체를 휘어잡으려는 세력이 인터넷 괴물들을 동원하여 여론을 조작하고, 대중을 선동한다. 《댓글 부대》는 익명에 숨어들어 괴물로 둔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Scene #2

 

“내 친구들이여, 세상에 친구란 없다네.” [주2]

 

《댓글 부대》가 갖는 섬뜩함은 ‘접속하는 순간, 당신도 교묘한 선동 전략에 당할 수 있다’라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다중 인격 사회’와 같다. 일상에서는 평범한 사람, 컴퓨터 화면 안에서는 상대방의 삶을 갉아먹는 괴물. 댓글 부대 ‘팀-알렙’의 ‘찻탓캇, 삼궁, 01某10’은 그러한 사회악을 일삼는 부류들이다. 이 세 사람은 가면을 쓰면서 여론 전체를 뒤흔들고, 사람들의 심리를 조종한다. 여론 조작의 동기가 밝혀지기 전까지 우리는 그들이 꾸민 음모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런 일이 자꾸만 누적될수록 댓글 부대는 이중인격자 집단이 되어간다. 소설 초반부에 칫탓캇이 신문기자 임상진에게 댓글 부대의 실체를 알리는 장면과 이 소설의 결말을 겹쳐 보시라. 은밀한 속임수와 폭력성이 익명성과 만나 극대화될 경우 얼마나 끔찍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지금 인터넷 웹(internet web) 어디선가 칫탓캇과 같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먹잇감을 노리기 위해 누리꾼들이 모인 곳에 인터넷 거미줄(wed)을 잔뜩 치고 있다. 거미줄에 걸린 누리꾼은 수많은 정보가 오가는 인터넷에서 허구와 진실을 가려내지 못한다. 댓글 부대는 허구와 진실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는 미끼를 만들어낸다.

 

 

 

 

 

 

이중적 인격을 지닌 사람은 사회적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다. 그들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지킬 박사에서 하이드로 금방 변하는 과정이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01某10처럼 대인관계 능력이 부족한 소극적인 새가슴도 인터넷 공간에서 사악한 속임수에 동참하는 게 이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의 01某10은 칫탓캇과 삼궁에 비해 인간적으로 약점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그가 만만하게 봐야 할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칫탓캇과 삼궁보다 더 위험한 인물일 수도 있다. 01某10은 상대방이 자신의 약점을 간파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약점을 감추려고 유흥업소 여자들과 어울리는 자신의 행동을 동료들에게 과장하면서 말한다. 01某10은 일상에서는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어설프게 행동하는 반면, 인터넷에서는 댓글 부대 조직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일부러 만들어서 드러내는 일에 참여한다. 01某10의 이중적 심리는 가상과 현실을 착각하여 생긴 심각한 병이다. 그는 맥플리커 증후군 환자다. 맥플리커 증후군에 시달리면 대인관계를 맺기를 원해도, 상대방의 표정이나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인관계가 맺기 힘든 현실에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는 인터넷이다. 그곳에서 있으면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든지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 특히 익명성은 불안정한 01某10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자신의 치부를 숨길 수 있고, 타인의 치부를 드러내는 댓글 부대 활동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01某10은 정말 ‘인터넷을 위해 태어난 인간’이 맞다. [주3] 열등감이 많은 그가 인터넷을 접할수록 마치 자신이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01某10은 나르시시즘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약점을 노리고, 비방하는 댓글 부대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01某10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보시라. 현실의 어수룩한 양이 ‘쇼타임’을 즐기려는 순간, 인터넷의 포악한 늑대로 급변하는 모습을.

 

 

 

Scene #3

 

인간 :

자기 마음속에 그리는 제 모습에 도취되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동물 [주4]

 

《댓글 부대》를 읽은 독자들 누구나 댓글 부대의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한 번쯤 생각한다. 그만큼 이 소설의 미덕은 소재 자체가 품고 있는 선정성을 깊이 파고들었다는 점에 있다. 인터넷 여론선동이라는 소재로 인간의 이중적 정서에 다가서려 했다는 점에서 《댓글 부대》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댓글 부대》는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음모를 그린 흥미진진한 소설이 아니다. 그리고 《댓글 부대》는 실패한 작품이 절대로 아니다.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척척 진행되는 전개가 작가의 과장된 비약으로 보지 않는다. 《댓글 부대》는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인해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속이는 자아가 늘어나고 있는 요즘 사회에 적지 않은 생각 거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 대부분 인간은 본성을 숨긴 채 거짓된 얼굴로 살아간다. 양심도 죄의식도 없이 타인이 고통당하는 과정을 놀이처럼 생각하는 댓글 부대원들의 모습은 파괴적인 본성을 가진 인간의 초상이다. 이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댓글 부대원의 모습에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가 된다. 사실 댓글 부대의 ‘쇼타임’보다 더 무서운 게임이 펼쳐진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남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들불처럼 번지는 인터넷 마녀사냥에 동조하여 희열을 느끼는 우리가 과연 익명이라는 무기와 폭력성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 한 번쯤 돌아보게 한다. 관음적인 엔터테인먼트가 일상인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 누구나 ‘더럽고 야비한 짓’을 할 수 있다. [주5]

 

아직도 《댓글 부대》가 일상의 현실을 침투한 작가의 상상력만 기억 남는 음모론적 작품으로만 보이는가. 책을 덮은 후에 댓글 부대의 실체 여부를 상상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소설의 이야기가 현실에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따라서 범죄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 그리고 구경꾼이 될 수 있다. 이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두 모이면 ‘진짜 쇼타임’이다.

 

 

 

 

[주1] 쇼펜하우어의 말 “악서는 정신의 독약이며, 정신의 파멸을 가져온다.”를 패러디했음.

[주2] 코코 샤넬의 말

[주3] 《댓글 부대》 70쪽

[주4] 앰브로즈 비어스 《악마의 사전》(이른아침. 164쪽)

[주5] “누구나 더럽고 야비한 짓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민주화” (《댓글 부대》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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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1 0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0-01 15:1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인데, 정부의 얼굴이 달라져도 여론조작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stella.K 2016-10-01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장강명의 판정승의 해는 아닐까 한다.
몇년 전엔 김애란의 해였는 것을 기억하는데 말야.
해마다 한 해를 빛낸 작가 정도는 기억해 줘야할 것 같아서...ㅋ

얼마 전 정지돈이 후장사실주의라더니,
이제 장강명은 월급사실주의란다.
예전의 작가들은 정자세로 쓰기만 했는데
요즘 작가들은 말장난도 곧 잘 잘하나 봐.ㅋ

cyrus 2016-10-01 15:20   좋아요 0 | URL
《댓글부대》는 알라딘 올해의 도서에 선정될 겁니다. 은근히 책도 꾸준히 나와요. 최근에 에세이집 나오고, 10월에 출간 예정 작품이 있던데요. ^^

서니데이 2016-10-0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6-10-01 15:2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
 

 

 

 

보름 전에 경주에 지진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도 이제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세상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을 두고 겁탁(劫濁)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의 이 세계가 흐려지고 있다. 겁탁의 시대 속에 우리는 이성의 변별력이 둔화하고 급기야 불편한 진실들을 망각하면서 사는 것에 익숙해 있다. 어느 인터넷 방송 BJ는 생방송 중에 경주 지진 소식을 듣고도 채연의 흔들려라는 노래를 틀어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그다음 태도가 더 문제였다. BJ는 지진 피해를 몇만 명 다친 것도 아닌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BJ는 그 날 지진의 공포로 불안에 떨고 있던 경주 시민들의 심정을 몰랐다. BJ의 무지한 발언에 일부 시청자들이 지적하자, BJ열혈 팬시청자들은 BJ를 옹호했다. BJ와 열혈 팬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들의 이기주의는 자연재난 상황이 볼거리또는 이야깃거리로 만들어버린다. BJ와 열혈 팬들은 편하게 집에 있으면서 남의 고통을 감상하는 관람자다.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여진을 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조차 무서운 실제의 현실이 어느 정도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인터넷, SNS 그리고 속보 뉴스는 자연재난의 공포를 알리는 데 한몫을 했다. 하지만 자연재난 참사를 재연하는 소셜미디어와 대중매체의 장면들에 익숙해지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공포‘그들이 경험한 공포로 느껴진다. 수잔 손탁은 실제의 참담한 현실과,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의 간극을 지적했다.

 

 

 

 

 

 

 

 

 

 

 

 

 

 

 

 

 

 

 

서경식은 현지 실상에 무감각해지는 인간의 심리를 동심원 패러독스로 설명했다. 우리나라보다 지진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잘 마련한 일본 정부는 원전의 재앙을 뒤로 잊은 채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한다. 서경식이 생각하는 원전의 재앙은 다중의 뜻을 갖는다. 기본적으로 원전정책 자체가 잘못되었고, 원전사고 이후 참사의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일본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는 안전 불감증을 불러온다. 일본 정부는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시민들을 안심시키려고 원전의 안전성만 부각한다. 재앙의 단편적인 실태를 전해 들은 시민들은 동심원 안에서 일어난 원전사고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원전 재앙이 발생한 지역, 즉 동심원 밖의 외곽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원전 재앙을 목격한 사람들보다 공포와 불안감을 덜 느낀다.

 

 

 

 

 

 

 

 

 

 

 

 

 

 

 

 

 

 

 

 

그렇지만 재앙의 근원 지역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도 끔찍한 현실을 외면한다. 현실 회피성 인물의 모순된 심리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 아모스 오즈의 소설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에 나오는 스테파다. 그녀의 남편인 유대인 수학자 엘리샤 포메란스는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군을 피해 탈출하지만, 스테파는 귀를 뚫는 포성에 아랑곳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다. 그녀는 고향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스테파의 태도는 소설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독일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는 상황 속에서도 망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프레모 레비는 편리한 진실이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환상이 고향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발목을 잡았다고 지적했다.

 

겁탁의 시대가 이어질수록 우리의 마음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것들의 힘을 잃는다. 일본이 대지진 이후로 마음의 동요에 시달리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조만간 일본과 비슷한 행보를 걷게 될지도 모른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질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비관적인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도 많이 나올 것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의 구조는 비극들을 일상의 무대 뒤로 내쫓아내고, 기억하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우리는 이미 세월호 사고 이후에 연민의 연대를 좌파 논리로 몰아세우는 폭력을 목격했다. 몇 개월 뒤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 같다. “지진이 일어난 지가 언젠데, 경주 사람들은 정부에게 피해 보상을 원하는 것일까?”, “우리 지역도 먹고 살기 힘든데, 정부가 경주만 편애하는 것 아닌가?” 피해 당사자들의 고통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떤 식으로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고통스러운 진실을 받아들이는 힘이 필요하다. 강상중이 말하는 받아들이는 힘이란 어두운 과거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잊고, 주어진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다. 용기를 내어 가혹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서경식의 생각과 유사하다. 죽음과 상실의 고통을 딛고 희망으로 전환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고통과 두려움이라는 터널을 통과해야만 긍정적 변모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만큼, 아니면 그 이상의 고통에 연대하는 한에서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은 겁탁의 시대 속에서 사는 우리가 내면으로 치러내야 할 또 다른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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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28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고 방금도 재난문자 받았습니다.

세월호든 원전이든 지진이든 홍수는 당장에 내가 그 속에서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은 상존하거든요.....

cyrus 2016-09-28 17:16   좋아요 2 | URL
지금 제가 일터에 있어서 문자 보고서야 여진 사실을 알았습니다. 재난 문자 오는 게 귀찮다고 불평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으멱 좋겠어요. 그 사람들은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yureka01 2016-09-2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지진이 심해지면 일상의 삶이 송두리째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칠수도 있거든요..이젠 지진 노이로제 걸리겠습니다..너무 무섭습니다. 사실 마땅한 대비책이 없다는게 더 공포스럽거든요.

cyrus 2016-09-28 17:25   좋아요 1 | URL
지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마치 사회 전체 분위기를 흐리도록 조장한다는 식으로 보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안전하다고 거듭 주장하는데, 이제 그런 말들은 소용 없습니다.

나와같다면 2016-09-28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대하라.. 그리고 연대하라..

cyrus 2016-09-29 14:20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공감`이라는 말보다 `연대`라는 말이 좋게 느껴집니다. 이기주의 행태가 많아져서 그런지 우리 사회에 연대 의식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표맥(漂麥) 2016-09-28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고통... 저 책 은근 기억에 남더군요... 내공부족으로 리뷰 쓰다가 만 책...^^

cyrus 2016-09-29 14:21   좋아요 0 | URL
<타인의 고통>의 분량이 얇아도 문체와 전체적인 내용 분위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로 손탁의 책을 읽은 적이 없어요. 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16-09-2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겁탁... 덕분에 알게되어 찾아 봤습니다. ^^

오탁(五濁)의 하나. 본디 맑은 성(性)에 흐린 마음 일어남이 탁(濁)이고, 겁(劫)은 시절(時節)이니, 시절에 모진 일이 많아 성을 흐리게 하여 죄업(罪業)을 일으킴임. 곧 기근(飢饉)과 질역(疾疫)과 전쟁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일.

cyrus 2016-09-29 14:22   좋아요 0 | URL
`겁탁`이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단어라서 그런지 한글 워드에서는 오자로 떠요. 그래서 한글 워드 맞춤법 검사기는 `겁탁`을 `겁탈`로 수정하라고 하더군요. ^^;;

새아의서재 2016-09-29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통에 연대하는 한에서만, 희망을 말할수 있다. 이 문장으로 저는 오늘 수요일 하루 마감합니다. 무겁고 무력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나눌 수 있으니 나쁘진 않네요. 고마워요.

cyrus 2016-09-29 14:28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연대의 중요성을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냥 책상에 앉아서 생각만 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백남기 님의 분향소를 지키는 분들이야말로 진짜 연대 의식을 가지고 있고, 머리와 몸으로 실천하시는 분들입니다. 무력한 시간들이 지나가길 바랍니다.

:Dora 2018-06-22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지 않아야할 것들을 떠올리며 ㅈㅇㅇ 꾸욱~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작자 미상, 최낙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1001-10]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

(※ 국내 번역본 표기는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은 너무 배가 고파서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갇힌다. 그는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서 도둑질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죗값을 치러야 했다. 가석방된 첫날 밤 장발장은 어느 신부의 집에 묵는다. 밤중에 그 집에서 은그릇을 훔쳐 달아난다. 형사 자베르에게 잡혀 교회에 끌려왔을 때 신부는 “내가 은촛대까지 주었는데 왜 은그릇만 가지고 갔느냐?”고 반문했다. 장발장은 신부의 말에 감동해 회개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결국 19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장발장의 세상에 대한 분노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굶주림은 사람의 인격을 비참하게 망가뜨린다. 훔친 행위는 부도덕이지만, 굶주림 때문에 도둑질한 것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자구책으로 볼 수 있다. 벽초 홍명희가 처음으로 《레 미제라블》을 소개하면서 제목을 ‘너, 참 불쌍타’로 지었다. 장발장은 빵을 훔친 절도범이지만, 프랑스 혁명 직후의 혼란기에 사회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는 비참한 인물이다.

 

 

 

 

 

사실 장발장이 나오기 아주 오래 전에 굶주림을 못 이겨 부도덕한 행동을 일삼은 또 한 사람이 있다. 1554년 스페인에 발간된 작자 미상의 피카레스크 소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Lazarillo de Tormes)》의 주인공 라사로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는 라사로의 실명. 라사로는 애칭) 피카레스크 소설은 16~17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기법으로 불량배나 건달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대 사회상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라사로는 하층 계급 집안에 태어난 소년이다. 어린 나이에 벌써 손버릇이 나빠 도둑질을 하기 시작한다. 라자로의 부모는 빈곤한 형편 탓에 아들을 먹여 살리기 힘들었고, 소년은 장님의 보호 하에 생활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장님은 사기꾼이었다. 사람을 속이면서 돈을 구걸하고, 모은 돈으로 마련한 기름진 음식과 감미로운 포도주를 자기 혼자만 즐긴다. 지독한 구두쇠라서 라사로에게 자신이 먹는 음식의 반도 되지 않은 양을 준다. 그래서 장님이 먹고 마시는 것들을 맛보려고 속임수를 꾸민다.

 

 

 

 

 

 

두 눈이 보이지 않은 장님의 약점을 이용, 포도주가 담긴 항아리에 빨대를 대고 마신다. 하지만 장님은 라사로의 수법을 알아챘는지 손으로 항아리를 감싸 안아 자신의 품속으로 밀착시킨 채 포도주를 마신다. 라사로는 항아리 밑바닥에 빨대가 관통할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을 뚫어놓는다. 그는 구멍에 새어 나오는 포도주를 마시지만, 속임수는 금방 탄로 나고 만다. 단단히 화가 난 장님은 라사로의 얼굴 정면에 항아리를 힘껏 던질 정도로 가혹하게 혼을 낸다.

 

 

 

 

 

라사로는 더 이상 인성이 최악인 장님과 함께 살 수 없어서 혼자서 살아가기로 한다. 그는 자신을 괴롭힌 장님에게 통쾌한 복수를 날리는 심정으로 골탕 먹이고 달아난다. 그 이후로 라사로는 신부, 수도사, 면죄부를 판매하는 포교사, 화가 등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지만, 그가 처한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라사로가 장님을 버리고 떠난 후에 만난 신부는 장님보다 사악한 인물이었다. 기독교의 일곱 가지 죄악 중 하나가 탐식이다. 그런데 이 신부란 놈은 본인 입으로 탐식이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매일 점심과 저녁에 고기만 먹는다. 심지어 장님처럼 라사로에게 고기 한 점도 주지 않는다. 라사로가 네 번째로 만난 수도사는 수도원 일에 관심 없고, 그저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한다. 면죄부 포교사는 면죄부 판매의 악습을 버리지 못한 구시대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면죄부 판매 행위를 ‘신의 뜻’으로 포장했고, 면죄부를 사들인 사람들은 포교사의 속임수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라사로는 비열하고, 부도덕한 수단을 동원하면서 살아가는 나쁜 놈들을 관찰하면서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기독교 성직자들은 종교적 윤리를 지키지 않는 위선적인 인물로 등장하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가 금서 도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는 오로지 선한 방법으로 현실을 극복하는 영웅의 눈부신 활약을 그리지 않는다. 라사로는 보잘것없는 주인공이다. 게다가 장발장처럼 생존을 위해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현실을 마주보고 인식하는 계기와 과정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장발장은 신부의 자비심으로 선악에 눈을 뜨면서 점차 순화되지만, 라사로는 자신보다 더 나쁜 놈들을 만나면서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실의 냉정한 이면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그러면서 궁핍한 상황을 타개하는 자신만의 생존력을 터득한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를 읽은 독자들은 주인공이 장님을 속이고, 골탕 먹이는 행동을 비난하지 못한다. 라사로는 굶주림의 고통이 근본적인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독자들은 안다. 배고픔은 우리의 몸이 생존을 위해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라사로보다 ‘더 나쁜 놈’인 장님이 주인공의 복수에 당하는 장면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특히 ‘가장 나쁜 놈’인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은 추락한 종교의 권위를 희화화한다. 라사로는 종교의 힘에 벗어나 현세를 중시하는 민중들의 정신이 반영된 ‘나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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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9-26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반데니소비치,수용소의 하루에도 아침과 점심 각10분, 저녁5분,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이다~란 글이 있어요
굶주림은 인간을 가장 초라하게 만드는
천형의 하나임을 공감합니다.

cyrus 2016-09-27 12:25   좋아요 0 | URL
`배고픔`을 주제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솔제니친의 노잼 소설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yureka01 2016-09-26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더더 나쁜 놈들이 가식적인 놈들이죠..앞에서는 좋은 말 늘어 놓다가 뒤로는 온통 굳은 일저지르는 이중성이거든요..

cyrus 2016-09-27 12:26   좋아요 1 | URL
서울 한폭판에 있는 국회 닭장 속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나쁘죠.

아무 2016-09-2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명희 선생이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ㅎㅎ
왜 최고의 명장면인지는 그림만 봐도 알 것 같습니다..^^

cyrus 2016-09-27 12:29   좋아요 0 | URL
십 년 전에 스펀지에서 레 미제라블 번역명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방송을 봤어요. ^^

transient-guest 2016-09-27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사로..`가 한국어 번역본이 있네요. 전 98-99년엔가 3학기 분량의 유럽지성사를 들으면서 읽었어요. 마지막에 장님거지한테 한 방 먹이는 장면의 묘사가 압권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ㅎ

cyrus 2016-09-27 12:30   좋아요 1 | URL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알고 계시는군요. 이런 순간이 제일 기쁩니다. ㅎㅎㅎ
 

 

 

어제 저는 에드거 앨런 포의 시에 대한 페이퍼를 작성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9월 초에 작성된 에이바님의 두 편의 글 때문이었습니다.

 

 

* [에드거 앨런 포와 사랑의 시] http://blog.aladin.co.kr/769383179/8754783

(에이바님 작성)

 

* [에드거 앨런 포의 울랄룸] http://blog.aladin.co.kr/769383179/8751546

(에이바님 작성)

 

*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서]

 http://blog.aladin.co.kr/haesung/8785364

(cyrus 작성, 오늘 오전 9시 30분에 내용 일부를 삭제했음)

 

 

※ 에이바님과의 약속대로 문제의 내용만 삭제했습니다. 삭제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에이바님의 [cyrus님께]를 보면 됩니다.

 

 

저는 [에드거 앨런 포의 울랄룸]과 [에드거 앨런 포와 사랑의 시]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에이바님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포의 시를 잘 소개해주셨고, 가독성이 좋았습니다. <율랄리>와 <울랄룸>에 ‘아슈타르테’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저는 그 단어를 보는 순간, 문득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렸습니다. 포의 소설에 ‘아슈타르테’가 있는 문장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머릿속에 스친 거죠. 그래서 저는 댓글로 이 사실을 밝혔고, 제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도서관에 가서 이미 읽었던 포 소설 전집들을 다시 봤습니다. 또 포의 시집도 읽었습니다. 에이바님이 소개한 아티초크 출판사의 시집도 보고 싶었는데,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는 없었습니다. 아무튼 포 소설 전집들을 확인한 끝에, <리지아>라는 작품에 제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비슷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아슈토펫’이었죠. 저는 이 사실을 에이바님에게 알리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글이 어제 작성한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입니다.

 

만약에 [에드거 앨런 포와 사랑의 시]와 [에드거 앨런 포의 울랄룸]을 보지 못했다면, 포와 관련된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에이바님이 쓴 두 편의 글이 저에게 영감을 준 것이죠. 그래서 제 글일 에이바님의 글을 일차적으로 참고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어서 에이바님의 서재 글과 ‘먼댓글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에이바님의 서재 글이 먼댓글 작성을 비활성화 상태로 설정해서 먼댓글 전송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 글에 에이바님의 두 편의 글 링크 주소를 올렸습니다.

 

여기서부터 제 행동이 문제의 화근이 되었습니다. 제가 에이바님의 링크 주소를 연결하고, <리지아>에 대한 내용을 썼으면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그런데 글의 분량이 빈약하게 느껴져서 아슈타르테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슈타르테가 누군지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평소에 읽지도 않을 바빌로니아 신화 관련 서적을 참고했습니다. 도서관에 여러 책을 살펴보면서 부활절의 유래에 관한 내용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찾아보니까 에이바님이 기록한 글의 내용이 전부 맞았습니다. 저는 <율랄리>와 <울랄룸>의 아슈타르테와 프시케를 해석한 내용까지 썼습니다. 이 내용 또한 에이바님의 글에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 글의 내용과 전개 방식이 에이바님의 글과 유사해졌습니다.

 

저는 에이바님의 글 링크 주소만 올리면 에이바님의 글을 참고했음을 밝힌거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게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에이바님의 글을 보고 나서야 제 글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상대방의 글을 참고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링크 주소만 올리면 내용이 조금 비슷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 거죠. 제가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제 글이 에이바님의 글과 유사한 점이 있는데도 에이바님의 글에 참고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슈타르테에 대한 소개와 <율랄리>와 <울랄룸>의 아슈타르테와 프시케를 해석한 내용 모두 에이바님의 글에서 참고한 사실을 밝혔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번 상황이 처음이라서 나름 신중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에이바님에게 더 큰 실망감만 안겨줬습니다. 에이바님의 문제 제기를 인정했으면, 문제가 있는 내용을 삭제하고, 공개 사과문을 올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뒤늦게 사과문을 올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 번 에이바님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제 행동을 반성했습니다. 앞으로는 친한 이웃이 쓴 글이라도 참고한 사실을 좀 더 상세하게 알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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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4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4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4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24 18:54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상대방의 글 링크 주소만 올리면 ‘상대방의 글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라는 의미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에이바님은 제 글이 본인 글과 무척 비슷하게 느꼈고, 참고를 밝힌 내용이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아서 실망했던 것입니다. 에이바님은 정말 정성을 들여가면서 리뷰를 쓰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의 정성을 알면서도 제가 너무 성의 없게 링크 주소만 올렸습니다. 제가 일차적으로 잘못한 게 맞습니다.

이 문제는 저와 에이바님 둘 만의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잘못을 먼지 인정했더라면 심각한 분위기로 확대되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잘 참으셨습니다.

2016-09-24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24 19:03   좋아요 1 | URL
제가 요즘 매일 글을 쓰려는 생각에 취해서 기본적인 예의를 잊어버렸습니다. 이번 일로 제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시끄럽게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yamoo 2016-09-24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이바 님의 주관적 인상이 너무 강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본적 생각을 차용해 글을 써서 그 구조가 비슷해 졌더라도 사이러스님이 참고한 책 내용이 이미 에이바 님이 말한 것 속에 있었다면 그것 에이바 님도 그 책을 보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걸로 일일히 사과하면 유사성에 대한 글들 모두가 문제됩니다.

도대체 뭐가 사과를 해야 하는지 저는 도통 모르겠네요. 답답합니다. 에이바 님이 인용을 요구했다는 건 에이바 님 페이퍼를 보면 아는 사실인데요...인용 여부를 문제 삼고 사과를 요구하는 건 표절에 대한 항의 입니다. 인용 여부가 왜 문제가 되겠습니까? 표절 시비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까? 인용표시 하고 글을 지우고 사과하라는 생각의 이면에는 내 생각을 표절했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사과하라는 것이죠.

유사성 만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것두 어떤 생각의 단초인데 말이죠. 저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이 유사성에 대한 사과는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유사성 만으로 인용을 해야 하고 사과를 해야하다니!

cyrus 2016-09-24 19:49   좋아요 0 | URL
제가 오늘 처음 에이바님의 글을 보고, 당황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에이바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분히 주관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에이바님이 언급한 `유사성`이 표절로 동의한 의미로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에이바님의 두 번째 댓글을 보면서 제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어요. 에이바님은 제 글이 표절했다는 전제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저한테도 밝혔고요.

오늘 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갈등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서로 간에 마음의 앙금만 생깁니다.

AgalmA 2016-09-25 07: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포의 저주인가요ㅜㅜ.... 포 때문에 에이바님 힘들게 했던 예전 제 일도 다시 봐야 해서 괴로웠습니다.
두 분 의가 상할까봐 걱정이 되어 생각 남깁니다. 누구 편도 들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했다는 걸 알아 주세요.
우선 먼댓글 문제인데....에이바님 글을 간단히 언급하고 cyrus님 본론이 곧장 나오지 않은 게 첫 문제였던 거 같아요. cyrus님이 <리지아> 에서`아슈토펫`이 `아슈타르테`라는 걸 발견해 글을 쓰려 한 의도였단 건 알겠습니다. 바빌로니아 신화 관련 서적 보셨고 에이바님 해석이 맞았다는 것도 아셨고요.
참고하셨다는 걸 밝히긴 했지만, 에이바님이 <율랄리>와 <울랄룸>, 아슈타르테-프시케 신화까지 엮어 해석하신 걸 cyrus님이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에 모두 담아버린 게 두 번째 문제죠. cyrus님은 에이바님이 <울랄룸>을 소개할 때까지 이 시의 존재도 모르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즉 저 연결들은 애초에 에이바님 글의 기초였어요.
<율랄리>-<울랄룸>-아슈타르테-프시케 등을 연계한 에이바님의 글은 작성자의 고유함이 묻어나는 글이죠. 저는 이런 해석을 다른 데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내용이 cyrus님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 3분의 2 이상 차지하죠. 신화 내용이 조금 추가되고 이 글의 본 주제였던 <리지아> ˝아슈토펫˝은 짤막하게 언급되는 정도라 에이바님 글 내용이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의 주된 내용이 된 상황.
꼼꼼히 따져 읽는 이가 아니라면 cyrus님 글이구나 생각하고 말 겁니다. 참고했다고 하는 걸 꼼꼼히 볼 사람 거의 없죠~_~; 두 분 문체가 달라 다른 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아슈토펫`에 대해 말하자면 에이바님과 같은 내용을 다루게 될 수밖에 없긴 할 텐데, 에이바님 접근 방식과 같았고 그걸 바탕으로 새롭게 전개된 게 별로 없어 상황이 이리 되어버린 듯....
참고자료라고 하기엔 ˝아프로디케님이 보고계셔˝가 에이바님 글의 핵심 줄기를 옮겨온 정도라 원글 쓴 분이 속상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소스가 비슷한 리뷰 글이 아닌 주관적 해석을 중점으로 담는 페이퍼 글이라 더 그럴 거고요. 여기 글 써서 책내는 분들도 많으신데 민감한 부분이죠.
cyrus님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겨 주신 건 다행입니다.
모쪼록 두 분 사이가 멀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글이 두 분 모두에게 또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하고요.
알라딘에서 싸움 말리다가 미움만 사고 제게 득될 일은 전혀 없었단 말입니다ㅜㅜ;;;

cyrus 2016-09-24 21:55   좋아요 2 | URL
포의 저주라... 하긴 재미로 포 소설 전집을 읽으려고 했는데 오역이 눈에 밟혀 몇 주동안 괴로웠어요. ㅎㅎㅎ

Agalma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에이바님의 글 링크 주소를 맨 처음에 남겼어도 이거부터 먼저 보고, 제 글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http` 주소 링크가 아닌 하이퍼링크로 설정했으면 북플에서는 링크된 글을 볼 수가 없어요.

제가 상대방의 글과 비슷한 내용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어제 그 약속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맞고, 당연히 에이바님께 사과해야 합니다.



2016-09-24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25 09: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에이바님이 실의를 딛고 예전처럼 서재 활동을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9-27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진지한 자세로 글을 쓰고 읽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제가 유사성/표절논쟁이나 서친끼리의 이슈는 함부로 얘기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책읽기와 글을 그만큼 소중히 여기시는 분들이라서 위에 말씀하신 일도 발생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뭐랄까, 목숨을 건 글쓰기/책읽기의 진한 향기가 느껴지는 건 제가 좀 이상해서일까요??ㅎ 두 분 다 멋진 글 계속 올려주시길...

cyrus 2016-09-27 12:35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A4 용지 한 장 반 이상의 분량의 글을 꾸준히 쓰시는 분들을 보면 책에 대한 감상을 허투루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 쓰는 분들의 고민의 흔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잊고, 실례를 했습니다.

syo 2016-09-2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두 분 글을 다 읽으면서, 그리고 에이바님의 글에 달린 댓글들을 찬찬히 다 보면서, 참 범접이 안되는 경지를 엿본 기분이었습니다. 거의 논문급 리뷰를 쓰시는 두 분이기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야 이슈 자체를 논할 공력이 못되어 뭐가 맞고 그른지 1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수습하고 계신 cyrus님의 모습은 귀감이 됩니다. 마음에 담아두려 합니다.

cyrus 2016-09-29 14:33   좋아요 0 | URL
귀감이 될 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잘못한 행동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에 정식으로 사과하는 것이 맞습니다. ^^;; 갈등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갈등에 휘말린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분들 모두 정신적으로 피곤함을 느낍니다. 특히 갈등 당사자들과 친분이 있는 제3자는 더욱 난감합니다. 논란이 더 커지면 편 가르기 싸움으로 확대됩니다. 이러면 서로 간의 미운 정만 쌓이고, 마음의 상처만 받습니다.
 

 

 

 

 

 

 

 

 

 

 

 

 

 

 

 

 

 

 

 

 

 

 

 

 

 

 

 

 

 

 

 

 

* <율랄리> 

 

나는 홀로 살았다.

비탄의 세상에서.

그래서 내 영혼이 마치 괴어 있는 물 같았다,

마침내 곱고 상냥한 율랄리가

나의 수줍은 신부가 될 때까지―

마침내 금발의 어린 율랄리가

나의 미소하는 신부가 될 때까지―

 

아, 덜―훨씬 덜 밝았다.

밤하늘의 별들도,

그 해밝은 소녀의 두 눈보다는!

증기가 자주색 진주색

달빛―색조를 만들 수 있다지만,

정숙한 율랄리의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곱슬머리에 비하랴―

밝은 눈 지닌 율랄리의 아주 얌전하고 꾸밈없는

곱슬머리에 비하랴―

 

이제는 의심도―이제는 고통도

다시는 아니 찾아온다,

그녀의 영혼이 내 한숨을 한숨으로 지우며,

하루 종일토록

밝게 강렬하게 빛나기에,

하늘에 있는 아스타르테,

그녀 향해 한결같이 소중한 율랄리가

보모의 눈을 쳐들기에―

그녀 향해 한결같이 어린 율랄리가

보랏빛 눈을 쳐들기에―

 

 

I dwelt alone

In a world of moan,

And my soul was a stagnant tide,

Till the fair and gentle Eulalie

became my blushing bride —

Till the yellow-haired young Eulalie

became my smiling bride.

 

Ah, less — less bright

The stars of the night

Than the eyes of the radiant girl!

And never a flake

That the vapour can make

With the moon-tints of purple and pearl,

Can vie with the modest Eulalie’s

most unregarded curl —

Can compare with the bright-eyed Eulalie’s

most humble and careless curl.

 

Now Doubt — now Pain

Come never again,

For her soul gives me sigh for sigh,

And all day long

Shines, bright and strong,

Astarté within the sky,

While ever to her dear Eulalie

upturns her matron eye —

While ever to her young Eulalie

upturns her violet eye.

 

 

(<율랄리> 김천봉 번역. 《에드거 앨런 포》 70~73쪽)

 

 

 

 

* <울랄룸> 중에서 

 

우리들이 가는 길의 끝에는

액체와도 같이

성운(星雲)의 미광(微光)이 보얗게 태어나고

그 속에서 초승달이

기적처럼 신비하게

두 개의 뿔을 달고 떠오른다.

아스타르테의 다이아몬드 초승달이

또렷이

두 개의 뿔을 달고서.

 

At the end of our path a liquescent

And nebulous lustre was born,

Out of which a miraculous crescent

Arose with a duplicate horn —

Astarte’s bediamonded crescent

Distinct with its duplicate horn.

 

 

(<울랄룸> 중에서, 정규웅 번역. 《애너벨 리》 58~59쪽)

 

 

 

 

 

 

 

 

 

 

 

 

 

 

 

 

 

 

 

 

 

 

 

 

 

 

 

 

 

 

 

 

 

 

 

 

 

 

 

 

 

 

 

 

 

 

 

 

 

 

 

 

 

 

 

 

 

포의 고딕 단편소설 <리지아(Ligeia)>에도 아스타르테와 비슷한 여신의 이름이 언급된다. 이 소설도 죽은 버지니아를 잊지 못하는 포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리지아는 매우 똑똑하고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여자다. 하지만 그녀도 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린다. 화자는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한 이유를 고대 여신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And, indeed, if ever she, the wan and the misty-winged Ashtophet of idolatrous Egypt, presided, as they tell, over marriages ill-omened, then most surely she presided over mine. (원문)

 

사람들이 말하듯, 우상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의 풍요의 여신이자 흐릿한 날개를 가진 창백한 여신 아스다롯이 진정 불길한 결혼 생활을 관장했다면, 그 여신은 분명 내 결혼 생활도 관장했을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 56쪽. 출판 전문 번역기업 ‘바른번역’)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만일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 정신, 즉 우상숭배의 나라인 이집트의 여신인 애시토펫, 가냘픈 날개에 창백한 얼굴을 한 그녀가 불길한 결혼을 주재하는 게 사실이라면, 우리의 결혼을 주재한 이도 그 여신이었음에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26쪽. 전승희 번역)

 

만일 로맨스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그런 정령이 있다고 하면, 그러니까 만약 우상숭배를 좋아하는 이집트에서 저 파리하고 안개 같은 날개를 가진 아슈토페트 여신이 존재하여 사람들의 말처럼 불길한 결혼을 주재한다 하면, 분명히 나의 결혼도 그 여신이 주재하였으리라. (《포 단편집》 136쪽. 김정민 번역)

 

게다가 로맨스라는 이름의 정령이 존재한다면, 그리하여 소문대로 저 우상 숭배국 이집트의 안개 날개를 매단 말라깽이 아슈토펫이 불운의 결혼을 관장한다면, 내 결혼을 주무른 것도 분명 그 신의 짓이리라. (《더 레이븐》 201쪽. 조영학 번역)

 

 

사람들은 불길한 결혼에는 '로맨스'라는 이름의 영(靈)이 깃든다고들 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이집트에서는 불길한 결혼에 안개처럼 창백한 날개의 '아스토펫'이 깃든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이 맞는다면, 우리의 결혼에도 분명히 그런 영이 깃들었을 것입니다. (《붉은 죽음의 가면》 188쪽. 김정아 역. '생각의나무' 구판)

 

 

 

‘Ashtophet’은 포가 아스타르테를 모티프로 만든 여신이다. 코너스톤 판에는 ‘아스다롯(Ashtoreth)’으로 되어 있는데, 성경에서는 아스타르테를 아스다롯으로 부른다. <리지아>를 번역한 역자들은 ‘Ashtophet’에 대한 각주를 이슈타르와 동일한 여신이라고 설명했는데, 독자의 오해를 부른다. 아스타르테의 여러 가지 이름 중에 ‘Ashtophet’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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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yrus님께
    from a garland for his head 2016-09-24 09:51 
    어제밤, cyrus님이 올리신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를 보고 쓰는 글입니다. 이 글은 cyrus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글을 쓰시는데 들인 시간과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글에 대한 애정, 자료 조사에서 오는 수고로움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cyrus님의 글을 보고 좀 많이 놀랐습니다. cyrus님의 글과 제 글들의 내용과 구조에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페이퍼는 cyrus님의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와 제 글인 ‘에드거
 
 
syo 2016-09-23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작살나는 운율은 포의 특징입니까, 아니면 저 시절 영미시라면 기본적으로 다 갖추고 있는 형식입니까?

cyrus 2016-09-23 18:45   좋아요 0 | URL
둘 다입니다. ㅎㅎㅎ 특히 포의 시가 음악적인 운율로 유명해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원문도 소개했습니다. 사실 포의 시는 원문으로 읽어야 운율을 느낄 수 있습니다.

syo님. 혹시 제 글을 북플로 보신다면 제일 위에 있는 두 편의 시 제목이 보입니까? 제 북플 화면에는 시 제목이 뜨지 않습니다... ㅡ.ㅡ;;

syo 2016-09-23 19:22   좋아요 0 | URL
안뜨네요. 이런 현상 몇 번 본 것 같아요. 그냥 편집상의 실수시려니 했는데.......헐북플

cyrus 2016-09-23 19:27   좋아요 0 | URL
확인하고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하필이면 오늘 오류를 확인해서 다음 주 월요일에 서재지기님에게 알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금요일에 오류를 발견하면 짜증납니다..

syo 2016-09-23 19:41   좋아요 0 | URL
북플이 또 한걸음 앞으로 나가겠군요.

yureka01 2016-09-2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드가 알랜 포. 아고 상당히 불행한 삶을 살았던 작가였더군요. 영문학스켄들 이라는 책에 나오더라구요.

cyrus 2016-09-24 11:03   좋아요 0 | URL
포가 버지니아 이외에 다른 여자들을 좋아했는데, 끝내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cyrus 2016-09-24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슈타트테에 대한 설명 그리고 프시케에 대한 해석은 에이바님의 글을 일차적으로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앞으로도 알라딘 서재 글을 참고할 때, 참고한 내용을 상세하게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에이바님께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2016-09-24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24 20:35   좋아요 1 | URL
네, 아직 지울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 제3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어제 글을 작성한 이유는 포의 시 <율랄리>와 <울랄룸>에 나오는 아스타르테와 <리지아>의 아스토펫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싶어서 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바님의 글은 제 글에 영감을 준 것이고,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에이바님의 글 링크 주소를 올렸습니다. 에이바님의 두 편의 글을 수정하고 증보하기 위해서 작성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로지 <리지아>의 아슈토펫에 초점을 맞추면서 쓰려고 했는데, 제가 아스타르테와 프시케에 대한 내용을 쓰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에이바님의 글 내용과 형식이 유사해졌습니다.

yamoo 2016-09-24 19:06   좋아요 0 | URL
유사성 만으로 사과를 강제 받는 것은 정말 어의 없는 일입니다. 비슷한 책을 참조할 수도 있는 일이구요. 저는 사이러스 님의 페이퍼가 전혀 문제가 없는 글로 보입니다. 사과는 잘못한 것이 있을 때에라야 하는 것인데, 뭐가 잘못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