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21.

















『작은 일기』 읽기. 「입에서 나오는 말」 챕터를 읽었다. 쭉 읽다가 에에올에 대한 감상을 다룬 부분의 한 페이지 전체를 밑줄로 채웠다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를 빨아들이는 듯했던 영화의 장면장면과 마지막을 보며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하지만 식상할 수 있는 메시지를 이렇게 놀라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에 감탄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제 곧 4월이고 5월이다. 곳곳의 이팝나무에 꽃이 필 것이고 그 향기에 홀려 긴 밤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다. 파주로 와서인지 몇해 전부터 이팝나무를 자주 보았다. 박근혜정부 때 가로수로 자주 심었다는 이야기를 작년에 들었다. 그에겐 그의 아버지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나무였다고 한다. 나는 박상진 선생의 『궁궐의 우리 나무』에 실린 내용으로 이팝나무를 기억하고 있었다. 흉년에 굶어 죽은 아이들을 묻은 땅 근처에 밥 대신 심었다는 나무. 만개한 꽃송이 무리가 쌀밥을 닮아 '이팝'이 되었다는 나무. 정말 그랬다면 그 옛날, 꽃향기가 온 마을을 그득 채우는 때마다 어른들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나. 작년에 나와 이런 대화를 나눈 허태임 선생은 4, 돌배나무 꽃이 질 때를 세월호가 가라앉은 때라고 말했다. "4"보다도 먼저 입에서 나오는 말. 어떤 이들에게는. (128-129)


찜찜함을 덜어 보려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를 연달아 보았다. 제목을 한글로 고스란히 옮긴 데에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거라고, 분명 맞춤한 사자성어가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엔딩에 떠오른 자막으로 그 말을 보았다. 천마행공天馬行空.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를 이르는 단어라는데, 나중에 찾아보고서야 그 뜻을 알았고, 천마행공의 천天을 천千이라고 오독했다. 천마리 말이 가는 곳. 다중우주가능성를 이르는 말이자, 한 사람 안의 허무를 이겨내기 위해 그 정도의 분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일개인의 내면에 도사린 허무란 그렇게 만만하고 하찮은 것이 아니야, 하고 생각하면서. (133-134)


나는 이 모든 걸 목격하러 이 세계에 왔다.

가급적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이번 한번뿐이니까 올 앳 원스.

삶의 목적과 의미를 '목격'에 두고 산 지 꽤 되었다. 태어나 보고 듣고 겪는다. 이걸 하러 나는 여기에 왔다. 아주 작은 무수한 입자들로 흩어져 있다가 어느 날 인간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세상에 출현해, 기적적으로 출아해, 세상을 겪고 세상의 때가 묻은 채 다시 입자로 돌아갈 것이다. 세상을 관통한, 그리고 세상이 관통한 더러운 경험체로서.

 

우리가 서로를 목격하고 있으니 각자의 방식으로 다정해져야 해. 나의 목격과 나를 목격하는 다른 목격자를 위해서라도 가급적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이번 한번뿐이니까 올 앳 원스. (135)



25.8.22.
















『급류』 읽기. 해솔과 도담의 운명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는 이야기. 전형적이지만 풋풋하게 시작하는 듯했던 서울 아이와 산골 아이의 사랑은 사소한 실수로 비롯된 비극적인 사건으로 갈라지고 헤어져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다 다시 만나 불 같은 사랑을 하고전형적인 이야기라고 느껴지지만 감정적으로 진하고 강렬한 이야기 덕분에 몰입하여 읽게 된다.

 


25.8.23.

『급류』 완독. 출간되었을 때 꽤나 화제였던 책이어서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도서전에서도 새로운 표지를 입고 나와 있었지만 사지 않았었는데영화와 같은 장면 묘사, 절절한 감정 묘사, 두 인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정열과 사랑 등이 작품을 끝까지 읽게 만들고, 마지막에 도담과 해솔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적 울림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 뜨거웠고, 그래서 한 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고, 내가 요즘 소설을 읽으면서 바라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는 것은 기록해두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재미없게 겨우 읽었다는 뜻은 아니지만…(그러기엔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충분히 잘 쓴 작품이고, 인물 간의 인연을 적절하게 얽고 풀면서 독자를 이끄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100)


알 것 같았다. 해솔이 그날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자신을 보는 해솔의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 안에 슬픔이 있었다. 미안함이 있었다. 어쩌면 원망의 눈빛도……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겪은 두 사람은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진실로 체감했다. 이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하루도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 인생을 낭비 없이 백프로 살고 싶어."

해솔이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어."

도담도 그 말에 동의했으나 그에 대한 해석은 달랐다. 해솔은 나태하지 않고 성실한 삶을 추구했고 도담은 늘 새로운 자극을 추구했다.

"나는 모든 가능성을 살 거야. 여행처럼 신나게 살 거고, 모든 걸 경험해 볼 거야." (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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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주 이후에 시간이 꽤 지나서 7월 초반에는 몇 번 읽기를 기록해 놓은 것이 있었으나, 읽었다는 사실 외에 남겨놓은 것 없이 밀려둔 일처리만 끝내고 예정되어 있던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아마 지금까지 떠났던 여행 중에 가장 준비를 안 하고 떠난 여행이 아닐까나라가 이탈리아여서 그런지 배경지식을 최대한 쌓고 가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런 준비가 전혀 없이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캐리어와 가방에는 책만 다섯 권이 들어갔는데, 그 중 이탈리아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넣은 책이 두 권이었다(여행 가이드북을 제외하면. 적으면서 생각하니 다섯 권이라고 쓰면서도 여행 가이드북은 세지 않았다).

















일처리의 와중에도 읽었던 책은 일과 관련이 있어서 읽었던 『L의 운동화』. 운동화 복원 작업에 대한 소설에 얽힌 현대 미술에 대한 이야기들, 손에 문제가 생긴 여성 복원가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들 모두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당연히 세월호 사건이 떠오르기도 하고(중간중간에 시위가 배경처럼 등장한다)… 어떤 방식으로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가의 문제.
















로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읽었던 책은 서가명강 시리즈의 『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 로마를 이끌었던 4명의 지도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실려있다. 로마에서 볼 것들이 고대 로마의 역사와 관련이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구입했던 책. 주요 유적에 대한 역사보다는 4명의 인물(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의 행적에 주목한 책이었지만 그래도 로마 역사의 대략적인 흐름을 아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 로마 역사에 대한 지식은 중학교 시절 배웠던 세계사 지식 외엔 없었기 때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를 동서로 나누어 통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된 배경, 그리고 이후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이 정리된 것도 콘스탄티누스 시기였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이후에 로마를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유적들 몇 가지(주로 포로 로마노에 있던 개선문들)를 볼 때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돌아볼 수 있었다.



















또 챙겼던 책은 피렌체를 돌아볼 것을 대비하여 골랐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단테』. 아쉽게도 이 책은 다 읽지 못하고 피렌체를 여행하게 되었다. 사실 로마에서부터 종종 교회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저것이 천국과 연옥과 지옥의 모습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림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시스티나 성당의 정면화를 보았을 때. 단테의 집은 시간이 맞지 않아 들어가보지 못했고,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두 번째로 만났다고 전해지는 산타 트리니타 다리는 그의 흔적이 전혀 없이 하염없이 야경을 보는 이들과 버스킹하는 이들만이 가득했다. 돌아와서라도 다 읽어야지라고 생각했으나 방학이라는 연휴가 끝나니 핑계처럼 일거리들이 들이닥치는 것을 하루살이처럼 처리하는 중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무거운 책을 다섯 권이나 왜 챙겼는지 모르겠으나꽤나 긴 여행이기도 했고, 최소한 남부에 있는 동안은 특별한 일정 없이 갈 곳만 정해놓은 일정이었기에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챙긴 것이었다. 그러나 가보고 싶은 곳이 언제나 많았던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다음 날 가볼 곳에 대한 지식을 벼락치기로 익히느라 시간이 전혀 없었으니과유불급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과한 욕심이 짐을 더 무겁게 한다는


















종종 해변에서 펼쳐서 읽었던 책은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 같은 시간을 겪었지만 내가 책으로 항상 알아왔던 작가는 온몸으로 이 일들을 겪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이전에 나왔던 『일기』를 읽었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황정은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세계의 엄혹하면서도 폭력적인 면모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그것을 온힘으로 증언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같은 시간을 겪고 지나왔지만 작가는 이를 훨씬 예민하게 감각하며 어떻게든 이 지경이 된 세계를 증언하고 바꾸고자 했구나, 하는 생각. 이탈리아의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읽으면서도 마음에는 세계의 한 모습 같은 한기가 엄습했다. 한기를 맞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국회의원이든 시민이든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절박하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나도 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의 탄핵과 구속을 간절히 바라며 서 있었지만, 윤석열과 그가 초래한 국가 상태를 묘사하려고 '정상' '비정상'을 반복해 말하는 몇몇 연설은 집중해 듣기가 어려웠다. 이 사회의 정상성 기준으로 불편과 부당을 겪는 사람들, 소수자들도 여기 있는데 별 조심성 없이 그 말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선 자리가 따끔했고, 뒤쪽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불편함을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간일까. 2016년 광화문에서 한 생각을 2024년 국회 앞에서도 했다.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느꼈다. (13)


분노한, '우리'로 단일하다고 간주하는 집단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소외감.

소수를 향한 다수의 불편.

너무 많은 사람들 틈에서 강화되는

정상성 요구, 단일한 집단이 되려는 욕구.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로 광장에 모인 거대한 집단이

보수적인 정상성을 추구하고자 할 때

단지 그 자리에 섞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고,

닥치라는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을 쓸 것.

특히나 분노한 사람들 속에서. (20-21)


어제는 탄핵이 가결되어 기쁘다고 말하는 편지에 기쁘지 않다는 말을 적어 답신했다. 옹졸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 광장에서, 탄핵안 가결로 잠시 둥둥 기쁨 뒤로 단 한 순간도 기쁘지 않다. 광장에서 아무도 국가 폭력으로 다치지 않아 기쁘다는 말을 듣고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상황이 이렇게 많은 이들의 마음에 뻔한 가능성으로 존재했던 그 시간 자체가, 그런 시간이 있는 현실 그 자체가 두렵고 아프다. (41-42)


가수 연영석이 「윤식이 나간다」를 부르고 있을 때, 쓰러진 사람이 있다며 노래가 중단되었다. 노래를 중단시키고 상황을 알리는 박민주 활동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번 시국 내내 단단한 음성과 차분한 진행으로 많은 이들에게 의지가 되었던 그가 처음으로 그런 목소리를 냈다. 다들 기다렸다. 찍지 마, 찍지 마, 하고 번져 오는 말을 따라 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말이 없었다. 걱정이 되어 다들 앞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슬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 (84-85)


여행은 누구도 아픈 일 없이 잘 마무리되었고, 광복절을 끝으로 방학 같은 연휴도 모두 끝이 났다.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고, 생활에 치여 멀리했던 책들과 마주할 시간이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책읽기의 즐거움/괴로움에 빠질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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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주가 37주로 넘어갈 때쯤에는 일들이 얼추 마무리가 되고 읽으면서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도 일이거니와 컨디션도 쭉쭉 떨어져 집에 돌아오면 산적한 집안일만 얼른 끝내고 늘어지거나 누워있는 일이 잦았다(피티를 시작할 마음을 먹은 계기이기도). 책에는 손이 가지 않고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시트콤(어느덧 빅뱅이론을 두 시즌만 남겨놓고 있다)만 찾는 나를 보며 이렇게 책과 멀어지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겨 나를 이루는 가장 큰 부분이 이렇게 바래지고 희미해지는 것인가, 하고 자책하는 일도 잦았다. 경애의 마음을 간신히 완독하고 나서 그런 마음은 조금 가시긴 했지만 가장 바쁜 일들이 6~7월에 있는바, 스스로 생각했던 고유한 가 희미해지는 일이 또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일단 지금 다짐할 수 있는 건 내일부터 다시 38주를 이어가는 것. 아래 내용 중 대부분은 당시에 한 줄만 적었다가 사후적으로 보충해두었다는 점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25.5.19.















하트의 탄생을 읽음.

 


25.5.22.















서리북 17호 읽기. 툴러 롱 플래그를 사서 처음 써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길어서 당황했다. 벽돌책을 읽을 때 유용하겠다고 생각하며 고전의 강을 읽다가 멈춤.





25.5.29.

읽지 않은 책의 개정판이 나왔을 때 대처하는 방법.






























인스타그램을 쭉 보다가 죽음의 부정개정판이 복복서가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득해지는 마음에 저 문장을 적었다. 멋들어진 보라색 양장본을 사기만 하고 펼치지도 않았는데 개정판이 브라이언 그린의 서문까지 더 달고 나왔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젠더 트러블의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으니


응구기 와 티옹오의 별세 소식을 접함.



25.5.31.














경애의 마음읽기 시작.

 


25.6.13.

경애의 마음을 오랜만에 펼침.

 


25.6.19.

경애의 마음완독. 아끼던 E를 잃고, 산주 선배와의 사랑을 잃고, 파업 중 부당한 일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동료들을 잃은 경애의 마음을 따라갈 때도, 낙하산으로 들어왔지만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서 나름의 고집을 지니고, 다른 곳에서는 듣는 언니가 되는 상수의 마음을 따라갈 때도 마음이 찌르르하는 순간이 있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스럽지만 폐기할 수 없는 마음들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실 같은 연결들이 울림을 주는 이야기. 마음을 다해 썼다는 작가의 말이 충분히 받아들여졌던 장편이었고, 문득 이렇게 긴 호흡의 이야기를 읽은 것이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읽은 김금희 작가는 조중균의 세계너무 한낮의 연애가 전부였는데, 그땐 강한 인상을 주지 않았던 작가의 이런 작품을 이제서야 만나다니, 라는 생각과 더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모두 들었다.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27)


직원들을 기다리며 경애가 햇볕 아래 멍하니 앉아 있을 때, 그때의 오후란 시간이 그 속성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부딪혀 겹치고 붙어 우그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상수가 담배 한대를 얻어 들고도 쉽게 뒤돌지 못했던 건 경애가 뭐랄까, 그 오후의 풍경이 주는 감정들 속에서 버티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사라지고 멀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소멸해가는 건 담배밖에 없고 그밖의 모든 것은 경애의 등과 어깨에 무겁게 얹어지는 듯한. (32)


E는 그외에도 사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도 씬도 배우도 아니고 오직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과 상영되는 영화 사이에 이는 그 순간의 시간이라는 좀 과격한 논리를 폈고 그걸 '불타는 시간'이라고 불렀다. 관객과 영화가 만나고 이미지가 주는 자극에 관객의 모든 것이 반응하면서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소멸해버리는 것, 그동안에 일어나는 감각의 에너지. (64)


경애는 비행, 불량, 노는 애들이라는 말들을 곱씹어보다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6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 (71)


그러니까 인생은 손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냥 포기해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마음의 번뇌와 갈등, 고통, 어떤 조갈증, 허기 같은 건 지병처럼 가져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아프면 고쳐가면서 쓰는 게 몸이라고 하는데 마음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143)


상수는 적어도 이 페이지에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무모함, 펼쳐질지 안 펼쳐질지 모르는 낙하산을 멘 채 중력이 이끄는 대로 기꺼이 몸을 맡기는 사람들의 용기 같은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몸에서 아드레날린과 옥시토신과 도파민 등이 실제로 분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정말 표현은 좀 그렇지만 ''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사랑의 시작이 그토록 낭만적인 것은 이후 일어날 끔찍한 살인사건을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서정적인 씬들을 앞부분에 배치하라는 트뤼포의 영화창작론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사랑 이후에는 잔혹한 파괴였다.

어려서부터 숱한 사랑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서사를 접한 덕분에 상수는 무수한 사랑을 경험했고 그러는 동안 사랑의 진위나 사랑 후의 죄 없음에 대한 일종의 기술을 터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술과,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의 독서동아리에서 읽은 필독인문서들을 적절히 조합해 내린 결론은 사랑이라거나 연애라거나 하는 것에 복무하는 이들이 일종의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통로로 물질 교환이 일어났으며 권력관계가 조성되었고 결국에는 어느 한편이나 쌍방의 착취로 관계가 종료되기까지 끊임없이 성실과 근면을 강요받았다. 누가 보면 연애를 냉소하거나 자기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를 합리화하려는 가여운 노력에 지나지 않을 이 가설의 추동은 경애의 이메일로 더 강화되었다. 폐쇄된 연애공장의 분노한 숙련공이랄까. 상수는 그의 이중생활 속에서는 자칭 타칭 연애의 숙련공이었으니까. (152-153)


상수는 이따금 죽은 어머니와 나눈 대화들을 맥락 없이 떠올리는데 그중 하나가 엄마, 엄마는 뭐가 어려워? 하고 물으면 어머니가 설핏 웃으면서 오늘이 어려워,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오늘이 왜 어려워?

오늘을 넘겨야 하니까 어려워.

오늘을 넘긴다는 것은 뭐야?

오늘을 견딘다는 것이지.

오늘을 견딘다는 것은 뭐야?

그건 오늘은 사라지지 않겠다는 거야.

오늘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뭐야?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건 뭐야?

내일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거야.

내일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건 뭐야?

내일은 못 견딘다는 것이지.

내일을 못 견디면 어떻게 되는데?

내일을 넘길 수 없게 되지.

내일을 넘길 수 없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쉬워질 수도 있다는 거야. (167-168)


마음을 어떻게 폐기하느냐고 물었지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느냐고. 그 사람이 나너랑 전처럼 자고 싶어, 따뜻하게, 라고 말한 날이 있었고 당신은 결정했고 그렇게 욕실에 들어갔다 나오자 정작 그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옷을, 양말까지 챙겨 신은 뒤였다고. 그러고 나서 데려다주겠다는 그 사람 차에 타지 않고 택시로 강변북로를 달려 돌아오는데 자신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잖아요. 그 새끼 뭔가요, , 사람 테스트해본 겁니까. 대체 어떤 욕을 해주어야 하나, 아주 고퀄 레전드급으로 쌍욕을 하고 싶지만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채소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176)


경애는 테이블로 손을 뻗어서 상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내밀어진 손은 잡는 수밖에 없어서 상수는 어쩔 수 없이 그 손을 맞잡았다. 경애는 점점 힘을 주어 잡았고 "팀장님, 그래도 우리가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했다.

"이렇게 마무리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299)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349)



25.6.22.

서울국제도서전 방문. 작년에 역대급 인산인해를 접하고 많은 실망을 안고 돌아갔기에 언제나 찾던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에 방문했다. 일단 기나긴 대기줄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들어갈 때 초코바를 주는 모습에 한번 놀라고(이게 없었다면 마감 때까지 안 쉬고 돌아다니지 못했을 것), 사람은 역시 많았지만 훨씬 쾌적하고 덥지 않아 열심히 구경하며 다녔다. 작년엔 책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지만 스스로 자제하는 마음에 책을 덜 샀던 기억이 있는데, 올해는 약간 자제력이 풀어져 책을 17권이나 사고 말았으니최근에 경애의 마음을 읽은 경험 덕분에 김금희 작가의 사인회를 기다릴 마음도 갖게 되고(찐팬들도 많을 텐데 한 분 한 분 다정하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난 제대로 읽은 책이 한 권뿐인데 어쩌나, 전전긍긍하기도), 시간이 맞아 김혜리 평론가의 사인을 받을 기회도 얻었다.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잃고 있던 책심(冊心)에 불씨가 붙는 느낌이 들었달까. 이만큼이나 샀으니 바래지던 나의 애서심에도 다시 덧칠을 해보자,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자책과 한심함이 아니라 잔잔한 만족감을 느끼며, 책들을 가방에 이고지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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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14.















사랑과 결함읽기. 을 읽었고 86세대와 그 자식 세대 사이의 관계와 갈등이 생생하게 드러났다는 생각을 했다. 대의를 위해 실천하고 노력할 줄은 알지만 가부장적 질서가 체화된 대진과 세계라는 치열한 투쟁과 멸망의 현장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해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촌극. 문득 생각해보니 이 책에는 이미 떠나버린 이의 기행을 사후적으로 돌이켜보며 이해해보려는 불안정하고 가슴 속에 구멍이 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이 가장 세태에 잘 맞아떨어진 것이 이 부녀 관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다 이름 공모전에서 얻어낸, 세계가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듯이 던져준 푼돈으로는 어디에도 뿌리내릴 수 없다는 것. 귀농해서 스마트팜을 시도하며 살아가는 대진의 모습이 힘차게 느껴지는 건 더 나은 세계를 위한 대의에 종사한다는 믿음이 있던 세대여서 아닐까. 시간이 지나고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닥친 해나 세대는 대의가 사라진 지 오래인 세계에서 생존만이 목적인 삶이 일상이 되었기 때문에?


해나가 설렁설렁 장단을 맞추자 대진은 신나서 또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데모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었다. 뱃속에서부터 들었다고 생각하면 꼬박 이십구 년은 들어온 이야기였다. 지명수배된 이야기와 그때 대진을 숨겨줬던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시간대까지 맞춰 줄줄 읊을 수 있었다. 어쩐지 대진은 그렇게나 위험했던 시절을 평생을 돌이키며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해나는 그게 이상하게 미웠다.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케이크는?"

"아이고, 놓고 왔네. 아저씨 먹으라고 주자. 아빠가 더 맛있는거 사줄게." (197) 


대진은 자꾸 사업을 구상하고, 체제에 대항하며 사회를 위한다고 여겨지는, 그런 일들을 도모했다. 그러면서 해나의 입학식과 졸업식, 심지어는 생일도 나이도 까먹었다. 집안일은 죄 까먹어도 대단한 일을 꾸미는 걸 보면 기억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집안 대소사는 엄마가 챙겼다. 이혼하고 나서 제사는 자연스럽게 간소화되었다. (200)


해나가 어렸을 때 대진은 거칠 것 없이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며 불이 든 병을 던지고 물티슈 공장에 위장 취업을 했다. 부당한 것은 참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작은 일 하나도 그냥 넘기지 못해 해나가 태어난 후로도 번번이 회사에서 잘렸다. 그들 가족은 점점 작은 집으로 이사하길 거듭했지만, 어릴 적 해나는 대진이 들려주는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좋았고 처지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럼. 아빠는? 아빠는 저열해?"

크고 나니 세상에 대고 자꾸 억지를 부리는 쪽은 대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정직하게 살면 가난한 거야. 대진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엄마는 이직하기 전까지 보험설계사 일을 했다. 꽤 돈을 잘 벌었지만, 엄마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했다. 해나를 낳으면 바로 시민단체에 들어가 일하려 했던 엄마는 결국 적성에 맞지 않지만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진 해나는 귀까지 붉어진 대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 연민이란 게 무서워."

그 말을 끝으로 정적이 흘렀다. 대진은 담배를 물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들어왔다. 그 와중에, 대진은 부엌으로 가더니 가스레인지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이번엔 정말로 나갔다. (205-206)


눈을 감고 듣다가 그걸 왜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대진이 환경을 위해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해나가 왜 환경을 위해 그런 걸 하느냐고 물었다. 대진이 기후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해나가 왜 기후 위기에 대비해야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대진이 후손들을 위해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 나는."

"?"

"날 위해서는 뭐 하는데."

"이게 널 위한 거야."

해나는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말했다.

"공모전 된 거. 그거 상금 말고도 뭐 하나 더 줘."

뭔데?"

"수지 2지구 주택 분양권."

", 엄청난데?"

"근데 분양받을 돈이 없잖아."

그거 당근마켓에 못 파냐?"

그러니까, 날 위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208-209)


어쨌든 대진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지구의 종말을 막고 있었다. 슈트를 갖춰 입고 포마드로 머리를 넘긴 채 날아다니는 사람이 히어로인가, 온 동네를 뒤지며 부산물을 죄다 그러모아 작물을 키우는 대진이 히어로인가. 해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배가 불룩 나온 몸으로 파란색 슈트를 입은 대진을 상상하다가 으,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식으로 해나는 해나대로 대진의 진정성을 폄훼했고 대진은 대진대로 해나의 삶을 대의의 세계에서 아주 쉬운 방식으로 추방했다. (210-211)


해나는 문득, 자신 또한 세계라는 치열한 투쟁과 멸망의 현장에서 언제나 바라보는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214)



25.5.15.















율의 시선을 다 읽음. 언젠가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알라딘에서 본 듯한 느낌이 있어서 빌려서 보았다. 예전에는 현실의 어려움에도 힘을 합쳐 용기를 잃지 않는 인물들이 많았다면, 요즘 들어서는 환경적, 심리적으로 나락까지 가라앉아 있는 인물들이 주가 되는 작품이 많은 듯하다. 과거에는 이렇게 차갑고 가라앉은 인물들(냉소적으로까지 보이던)이 신선했다면 지금은 너무 흔해진 느낌. 시대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을까. 친구를 만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 완벽해 보였던 다른 친구의 이면을 우연히 알게 되고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섬세하고 문장의 세공력도 느껴졌지만 힘을 준 듯한 문장이 눈에 가끔 띄었고 내용 자체가 참신하게 느껴지지는 않아 아쉬웠다. 초반에 주인공인 안율의 차가운, 인간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는 듯한 목소리는 여태 읽어왔던 어떤 청소년문학보다 어두웠지만



25.5.16.

사랑과 결함읽기. 그 개와 혁명, 분재, 도블, 내가 머물던 자리를 읽었다.

 

그 개와 혁명은 앞서 읽었던 과 동일한 주제 의식과 소재를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운동권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의 관계가 빚어내는 복잡다단함.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면모와 닮고 싶은 면모,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면모까지 모두 가진 혈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이번 이야기는 과 달리 (사후적으로) 아버지와 딸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데, 딸이 아버지의 유언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키는 주체로 자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유언을 통해 아버지의 닮고 싶었던 면모를 자신의 몸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촌극. 가부장제의 옹호자였던 아버지의 유언이 딸의 의지로 실현되면서 딸을 상주로 인정하지 않는 장례식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아이러니.


언젠가 태수씨가 보는 유튜브 쇼츠를 함께 본 적이 있는데 유독 그런 내용이 많이 나왔다. 메갈이 어쩌고 한국 여자들이 어쩌고...... 나는 태수씨에게 이런 것들을 정말 믿느냐고 물었고 태수씨는 실제로 여자들이 그렇지 않으냐며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나는 태수씨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왜냐하면 태수씨는 자식이라곤 나를 포함해 딸만 둘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꾸 요즘 여자들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요즘 여자들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태수씨는 가까이 있는 나를 두고도 저멀리 있는 요즘 여자들을 보는 식이었다. 그래서 유연한 노동 문제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불가산인 가사 노동 시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사회는 조리 있게 굴러가야 하지만, 가족이라는 제도 안의 조리는 다른 문제였던 것이다. (226-227)


몇몇 노인은 완장을 찬 내게 태수씨가 아들이 없어 안타깝다는 소리를 했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안타까울 일은 아니에요. 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면 엄마가 하지 말라고, 그러지 말라고 손을 내저었다. 나는 애도하러 와서 굳이 그런 말까지 하는 사람들이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사촌동생이 남자라는 이유로 상주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도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누구보다 태수씨를 잘 알고 사랑했던 맏딸이 여기 있는데. 하지만 사랑을 증명할 길은 달리 없었다. 누구의 사랑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한 트럭의 미움 속에서 미미한 사랑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는데. 더군다나 나는 태수씨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태수씨가 아프고 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235)


나도 태수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태수씨는 내 말을 듣자마자 그러냐, 했다. 그러더니 내가 어떤 사람인데, 되물었다.

"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

그렇게 말하자 태수씨가 웃었다. 웃다가 허리가 아픈지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때 태수씨에게 고삼녀의 뜻을 알려주며 내가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자 태수씨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물었다. 네가 벌써 서른이니? , 태수씨. 나 서른이야. 많이도 먹었다. 그러게. 근데 말이야. 나이라는 게 사람을 주저하게도 만들지만 뭘 하게도 만들어. 그 사람들이 뭘 모르고 하는 말이야. 아빠는 어이고, 내 나이가 사십이네 하면서 조금 어른스러워졌고 어이고, 내 나이가 오십이네, 하면서 조금 의젓해졌어. (238-239)


그러니까, 나 같은 요즘 애들은 똑딱 핀을 만들면서 무언가를 도모할 거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뜻이라는 게 있었다.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뜻, 의지, 그런 것들. 비록 미적지근할지언정, 중요한 건 분명히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244)


우리는 그렇게 태수씨의 죽음에 관해 우스갯소리를 하고 이것저것 계획하며 삶을 영위해나갔다. 그것은 죽음을 도모하며 삶을 버티는 행위였다. 태수씨는 자신이 죽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지만,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는 일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 두 가지는 태수씨에게 전혀 다른 것이었다. (246)


분재는 할머니와 손녀의 시선을 번갈아 보여주고, 할머니의 집을 내놓는 과정에서 할머니의 몰랐던 모습을 손녀가 알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사랑과 결함을 닮았다. 지난한 역경을 헤치며 살아온 할머니 차연이 힘이 부칠 때마다 마셨던 담금주를 손녀인 윤재와 부동산중개인 정미가 나눠마시며 서로의 불안정한 위치를 확인하고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 장면은, 사랑과 결함에서 고모의 로봇 청소기를 바라보던 를 떠오르게 했다.


윤재는 다 죽어가는 식물을 주워오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죽어가는 것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윤재는 만약 할머니를 이해하게 된다면 버리는 사람들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르긴 해도 그 두 마음은 아주 미세한 차이에 불과해 보였으니까. 예컨대 그 얄팍한 미안함 때문에 할머니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소식을 알리지 않은 엄마의 마음과 그런 엄마를 오래 용서할 수 없을 윤재 자신의 마음 같은 것. 그런 복잡한 마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윤재와 엄마의 삶을 이리저리 흔들며 관계의 모양을 바꾸곤 했다. (266)


도블내가 머물던 자리는 화자 또래의 젊은 여성들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 철봉 하자와 같은 선상에 놓인 작품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블의 주된 인물 관계는 셋이다. “생각이 자기를 잡아먹고 종국에는 주변 사람들까지 잡아먹는 사람만 만나며 고통받는 진경, 그런 진경에게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우리가 멋대로 삶을 망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꿈을 버리고 취집을 선택한 승혜 언니. 스스로를 부장인턴이라고 자조하며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는 ‘. 어쩌다 펜션에서 만난 델마와 주인 남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점차 흐릿해지는 관계들의 힘.


나는 그런 사람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 생각이 자기를 잡아먹고 종국에는 주변 사람들까지 잡아먹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진경이 옐리네크는 좋은 애라고 대꾸했고 나는 어쨌든 가오나시도 주인공에게는 좋은 귀신이었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 알면서도 멍청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랑은 친구 안 해. 나는 진경이 승혜 언니를 두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291)


나는 행사 기획 업체에서 세번째 인턴을 하는 중이었다. 기업에서 진행하는 행사 전반을 대신 맡아 운영하는 업체였다. 언니에게는 진작 부장인턴은 달았다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참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살아갈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혼자일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끔찍해졌다. (293)


갑자기 귀뚜라미들이 울음을 그치더니 파도 소리가 몹시 크게 들렸다. 델마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바다에서 이곳까지는 몹시 멀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파도는 무언가를 부수려는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바람이 불 때 해수면을 변형시키려는 교란력과 그 변형을 막으려는 복원력이 함께 발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다가 부서지며 파도가 치는 것이라고. 남자는 손으로 꽃받침을 만든 뒤 한쪽 옆구리에 갖다붙였다. , , , , 파 다들 아시죠? 이 파가 그 파란 말이에요. (293-294)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갈린 수많은 삶을 떠올려보았다. 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 삶을 갈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잔인한 일이었다. 혹시 내가 삶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하는 일들이 사실은 정말 내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 (302-303)


내가 머물던 자리도 또래의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 와 정선, 미리내의 관계가 핵심적이다. 임신 중절을 한다며 에게 돈을 받고 해외 여행을 떠나버린 정선, 함께 살게 되었지만 자유로운 영혼으로 규칙을 무시하며 끊임없이 일탈하는 미리내. 정선을 찾아 떠난 여정에서 겪게 되는 일들은 '나'가 스스로를 얼마나 깎아왔는지, 그러면서 타인의 불행을 소비해온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다.


사실 나는 오래도록, 내가 정선이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했다. 그때는 내 잘못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것이 나의 잘못된 습관이라는 걸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관계에 귀속된 잘잘못들. 그런 것들을 따지다보면 내가 혼자 세계를 맴도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온전히 인정하게 되었다. (317)


정선이가 배를 퉁퉁 두드렸을 때, 정말 그저 뱃살이 나왔을 뿐이란 걸 믿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은근히 정선이의 삶이 내 생각대로 나아가길 바라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누구보다 남의 불행을 소비하면서 스스로를 멸시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왜냐하면, 나는 그런 식으로 멋대로 남을 판단하고 그 사람의 최악을 상상하며 내가 사회에서 받은 온갖 모욕을 감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불행 포르노를 즐겨 보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또 실제로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는 광경을 보고 싶어하진 않았다. 왜냐고? 그건 나의 마음에 해가 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남의 불행을 소비하는 건 상대방을 멸시하는 것만큼이나 내 마음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었다. (331)


설명할수록 내가 깎이는 기분이라 그랬어."

나는 그 말이 사무치도록 이해가 되어서 더 슬펐다. 정선이의 팔을 쓸어내렸다. 부드러운 팔에 내 팔을 대고 마찰하자 서로 다른 피부의 질감이 느껴졌다. 우리에게 무언가가 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 같았다. 나는 공유주택에서 원하는 걸 제대로 얻지 못했고 정선이는 어떤 식으로든 원하는 걸 얻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그 미세한 애틋함을 누리는 따뜻한 시절 같은 것들. 그렇게 비로소 나는 내가 머물러 있던 자리에, 나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36-337)

 


25.5.17.

사랑과 결함읽기. 해설 부분과 작가의 말을 다 읽었다.


가족관계에 있어서 경제적 이득을 따지는 손절매나 절연이 어려운 이유는 상대방의 안 좋은 부분을 그와 오랜 시간 관계해온 자신 또한 얼마간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미워하려면 나 자신 또한 미워해야 하는데, 그렇게만 생명을 지속시키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예소연의 소설에서 사랑의 불가해함은 이렇게 자기혐오와 생명력의 지난한 반복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주된다. (344)

 

예소연의 소설에는 비슷한 여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계급적 유사함으로 인한 아비투스 때문이지만, 당사자들에게 그것은 몰개성의 표지인 동시에 동일시의 표적이 된다. 문제적 행동을 수정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비난 섞인 충고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여성에게 내재화된 검열의 표현이자 여성동성 사회에서 흔히 보이는 고질적인 형태의 애정이다.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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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6.















서리북 17호 읽기.


 

25.5.7.















사랑과 결함읽기 시작. 우리 철봉 하자를 읽었고, 한동안 젊은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두 여성의 우정을 다루는 방식이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마음 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삶(직장에서도 연애에서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진솔함, 사랑으로 인해 화자가 받은 상처를 세상을 향해 드러내는 방식의 새로움, 그리고 간혹 드러나는 유머들. 젊은 여성이 사회에서 받는 부당한 대우와 시선은 소설의 주제가 아니라 배경으로 항시 놓여 있다(자기 일을 하면서 상사에게 자기가 페미 같냐고 물어보(아야 하)는 화자, 두 여성이 보는 앞에서 시선을 한껏 의식하며 묘기를 부리는 철봉 아저씨 등).


사장은 내가 그런 부분에서 예리하다며 좋아했다. 요즘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시대라서 이런 것들은 기민하게 캐치해 사전에 전부 편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들을 초 단위로 표시해둔 뒤 맥락 전부를 문서에 기록하고 특히 문제 될 여지가 있는 대사를 빨간색으로 표시해 두었다.

허대리님. 이거 나 페미 같아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이 부분은요?

팀장님께 물어봐야 할 듯.

그즈음 내가 상사와 나눈 카톡 대화는 거의 이랬다. 특정 강사들은 성차별적 언사가 유독 두드러졌다. 특히 정신분석이 가볍게 다뤄지는 강의에서 그런 태도가 많이 나타났다. 나는 일을 하면서 문득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분명 문제인 것 같지만 문제라고 말하는 게 더 문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13)


내가 일으킨 문제에 대해 먼저 귀띔을 해준 이는 허대리였다. 강사 하나가 컴플레인을 제기했다나봐. 담당자가 너무 예민하다고. 페미 같다나 뭐라나. 나는 억울했다. 허대리님. 페미 같은 게 도대체 뭔데요? 이번에도 허대리는 고개를 저었지만, 조그맣게 속삭였다. 몰라요. 근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손쓸 수 없는 상황을 일부러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제가 될 걸 아예 모르진 않았으니까. 그러나 왜? 내가 왜 나에게 손쓸 수 없는 상황을? 그건 늘 손쓸 수 있는 선까지만 일을 저질러버리는 나의 졸렬함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서 잘렸다. 이번에 검수를 맡은 경영학 강좌 중 생산운영관리 및 조직관리 파트 삼분의 일 가량을 삭제해야 한다고 강사에게 메일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문제되는 발언에 일일이 메모를 작성해서 상세한 피드백을 전달했다. 성별에 따라 의사 결정 과정이 명확하게 달라지기는 어렵습니다. 성별의 차이가 육십오 세 이후부터 사라진다는 것은 비논리적입니다. 문제를 과도하게 심사숙고하는 성향은 상황과 개인적 맥락에 따라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17-18)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삶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내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몇몇 남자와 원나잇을 했고 늘 그랬듯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는데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제일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또다른 못 견딜 마음으로 돌려 막고 있었다. 나는 살기 위해 내 삶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25)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맹지가 덧붙였다. 너는 너를 돌봐야 해. 좀처럼 항변할 수 없었다.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나를 돌보려면 나를 돌아보아야 하는데, 나는 나를 돌아보는 데 미숙했다. 일은 졸렬하게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좋아했다. 사랑에 있어서는 늘 나를 함부로 대하고 선을 넘어버렸다. (33)



25.5.8.















사랑과 결함읽기. 아주 사소한 시절우리는 계절마다를 읽음. 우리는 계절마다를 예전에 소설 보다 겨울 2023에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어떤 단편의 후속작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에 읽을 때는 보편 교양혼모노가 강한 인상을 남겨서 이 작품은 기억에 남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아주 사소한 시절과 같이 읽으니 희조의 모습이 강렬하고도 아프게 다가왔다. 미정과의 관계,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 듯하면서도 무관한 것처럼 흘러가는(혹은 망가져 가는) 희조의 삶. 온갖 괴롭힘과 답답한 가정이 빚어내는 삶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문체 때문인지, 눈앞에서 목격한 죽음에 대해 거짓을 섞어가며 떠들고 은총이라는 단어까지 발화하는 희조의 모습 때문인지 두 작품을 읽는 내내 섬뜩한 느낌이 자주 들었다. 언뜻 보았을 때는 다음 작품까지 3부작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은데, 마지막 은총이 세 번째 작품에서 실현이 될 것인지, 희조는 시궁창 같은 삶에서 희망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주 사소한 시절

나는 망연히 언니가 한입 먹은 아이스크림과 숟가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언니의 침이 묻은 숟가락을 연못에 담가 닦았다. 한참을 닦았다. 나는 더러운 침이 묻은 그 숟가락을 신성한 물로 닦으면서 내 안 깊은 곳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간 살면서 줄곧 느껴온 감정의 실체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전에는 단지 그 감정의 실체를 몰랐을 뿐이었다. 나는 누가 들을까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씨발. 그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38-39)


나는 살면서 누구도 나를 기꺼워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니까, 가족에게 얻어터지며 사는 사람은 평생 예쁨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엄마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도 나름 힘들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엄마는 무엇을 위해 나를 낳은 것일까. 결론은 이거였다. 엄마는 아이를 원했지만, 나를 원하진 않았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끔찍하게 여긴다. 엄마는 나를 낳음으로써 가난해졌다. 원래 엄마는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나를 낳느라 직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빠는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다고 했다. 나는 끈덕진 사람이지만, 그이는 아니야. 그런데 회사를 그만둔 건 나야. 왜일까? 그이는 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고 생각하거든. 엄마는 '낙오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리고 깔깔 웃었다. 쥐뿔도 모르는 거지. 우리는 결혼한 순간부터 낙오되고 있었던 거야. (56-57)


결국, 내가 만든 죽음과 은총에 관한 이미지는 허구에 불과했고 그랬기 때문에 더 성스럽게도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곰곰 생각해보면 나는 '낙오''낙하'라는 두 단어의 의미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낙오자'라는 단어를 들은 이후로 '낙하'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64-65)


죽음에 대한 내 태도와 그로 인해 일어난 일들로 인해 아이들은 나를 애써 없는 사람 취급했다. 애들은 나와 가까운 친구들이 어떤 식으로든 모종의 불행을 겪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성이도, 미정이 아빠도 그랬으니까. 나는 사람들과 오랜 시간 동떨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연못에 버리고 느꼈던 그 감정은 혐오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게 아주 작은 것으로 말미암아 망가지고 무너질 거라는 공포. 애들은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니다. 두려워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것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어리기에 무르디 무른 무언가를 내가 망가뜨리고 무너뜨릴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른들 따위는 어느 시점부터 자신이 지니고 있던 무언가를 너무도 쉽게 잊은 채로, 마치 그저 주어진 것인 양 생을 살아간다. 다 망가져가는 것과 다름없는 생을. 나는 그것이 세계가 나를 '외부인'으로 만드는 교묘한 방식이라는 걸 깨우쳤다. (71-72)


우리는 계절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그런 행동에 쉽게 화가 났다. 서로의 사이에 부려놓아진 것이 몹시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른 척하는 사람들 특유의 행동. 그러니까 우리는 최대한 여러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도, 끊을 수도, 이어갈 수도 있는데 꼭 자신에게 주어진 방식은 하나뿐인 것처럼 구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서 가장 배제되고 소외되는 존재는 나 자신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85)


나는 인생이 적당한 시점에 최악의 결말로 끝나버릴 거라는 염세적인 기분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최악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고, 늘 최악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건대, 그 감각은 세계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으로 구성되고, 나는 속절없이 휘말릴 뿐이라는 것을 그 시절에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걸레가 되고 그 짓거리 하는 년이 되고 씨발년이 된다. 그건 내 의도도 누구의 의도도 아니다. 세계가 그렇게 나를 그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86)


누군가 내게 가족이라는 존재를 언제 처음 실감했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그 순간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동생이 생긴다는 것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족이 하나 더 생긴다는 건 식구가 는다는 거고, 식구가 는다는 건 더 깊고 깊은 가난의 늪에 빠지게 된다는 거다. 나의 부모는 무슨 생각으로 내가 기뻐하기를 기대했던 걸까? (92)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마트에 있는 햄스터를 훔쳐서 아파트 화단에 풀어주는 것을 해방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이 결코 해방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던져짐 그 자체였다. (95)


나는 그 말을 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짧은 키스를 나눈 이후로, 미정의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내가 그것을 미정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후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음침한 청소년이 되고야 말았다. 세상은 죽음에 대한 열망을 지닌 청소년을 그런 식으로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도대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하기나 한단 말인가? (104-105)


우리가 공유했던 내밀한 무언가가 전부 거짓일 수는 없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은총이라는 단어가 거룩한 무언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은총은…… 우리가 지닌 열띤 욕망. 그것이었다. 미정과 나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무언가를 너도 생각하지 않니. 나는 미정이 그럴 거라고 확신했다. (105)


미정 엄마가 더 큰 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걸레가, 아니다. 나와 윤다혜는 조그만 목소리로 미정 엄마의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걸레가…… 아니다……

"우리는 시궁창에 살고 있다."

"우리는…… 시궁창에…… 살고 있다."

"시궁창에는 더러운 쥐들뿐이다.”

"시궁창에는…… 더러운…… 쥐들뿐이다."

나와 윤다혜는 그 말들을 천천히 따라 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내가 훌쩍거리자 윤다혜도 훌쩍거렸다. 미정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셋은 그렇게 이상한 주문을 외며 기묘한 슬픔에 사로잡혔다. 미정 엄마가 침대를 빙 둘러 와서 나와 윤다혜를 뒤에서 안아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는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 살아. 그렇지만 결코 그들과 같아질 필요는 없단다. 나는 남편이 죽고 나서 활력을 되찾았어. 그건 내 탓이 아니지 않니? (108)



25.5.9.

사랑과 결함읽기. 그 얼굴을 마주하고와 표제작 사랑과 결함을 읽음. 희조는 왜 미정에게 그렇게까지 집착했을까. 어린 시절 부모님도 주지 못했던 친밀함을 처음으로 주었던 친구였기 때문일까.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미정은 희조를 밀어내고 희조는 미정과의 관계를 현수 언니와의 관계로 대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아주 사소한 시절」부터 「그 얼굴을 마주하고」까지 희조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더 깊어지고 얼마나 자기파괴적인 삶으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거라면, 3부작을 반-성장소설이라고 보아도 될까. 문득 내가 보지 못하는 10대들의 삶이란 이것이 일반화된 삶인가(희조만큼은 아니어도 미정이나 혁주, 태규 같은)라는 생각이 들자,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도 얼른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PC방 컴퓨터로 싸이월드에 접속한 뒤 주위를 둘러보고 조심스럽게 담배를 꺼내 피웠다. 키보드에 재가 떨어지는 게 신경 쓰였지만, 신경 쓰이지 않는 척했다. 그것이 중요했다. 내가 내보이는 모든 모양새에 무심함이 묻어나야 한다. 그게 어른들의 세계에 잠입하는 방식이다. (113)


그때 미정 엄마에게서는 절대로 누군가에게 함부로 휘둘리지 않으려는 결기가 느껴졌고, 나는 미정 엄마의 삶을 닮고 싶어했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를 이용하더라도 그것이 그 누군가에게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는 삶. 어떤 사건에 휘말리더라도 그 속에서 꼿꼿이 허리를 편 채 눈을 부릅뜨는 삶. 그때 나는 미정 엄마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삶이라는 게 정말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 건가? 기어코 해가 되고 마는 것이 삶 아닌가. (118)


내가 겪어왔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엄마도 당신이 겪은 일련의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빤히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척하는 것. 서로가 떠안은 일들에 지쳐 상대의 상처에는 그저 눈을 감아버리는 태도. 우리가 그런데도 서로를 친밀한 사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인가? (125)


나는 나를 싫어하는 애들보다 나처럼 되기 싫어하는 애들을 증오했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전부 나처럼 되기 싫어하는 사람뿐이었다. (126)


여태껏 나는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우리가 이 모양이 꼴이 된 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이런 식이었구나. 이게 나였구나. 나는 사는 동안 내 이야기의 완벽한 '외부인'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흉내. 그것은 흉내뿐이었다. 사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완벽한 '내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내 서사에 완벽하게 가담한 인물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온전한 슬픔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133)


이혁주를 만나고 되돌아오는 길에 내 삶의 전반을 곰곰 돌이켜보며 재구성해봤다. 미정은 나에게 어떤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접근했고 나는 미끼를 문 것이었다. 지독한 괴롭힘에 시달렸지만, 나는 미정을 끝까지 의심하지 않았다. 미정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미정의 존재가 내게 은총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 그냥 그렇고 그런 애들 중 하나일 수도 있었는데. 나는 또 내가 의아해졌다. 하지만 최근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나는 사람을 한번 믿으면 걷잡을 수 없이 좋아하게 된다는 것. 현수 언니를 좋아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134)


문득 할머니가 죽기 전날, 내가 할머니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희미해진 할머니의 몸냄새를 맡으려 애쓰며 속삭였던 그 말, 할머니, 나는 존나 못 사는 방식으로 잘 살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지껄였던 그 말이 내 가슴팍에 박혔다. 아주 사소한 시절 우리는 계절마다 서로를 혐오하고 끔찍한 생활을 반복했지만 결국, 그때의 나도 나일 뿐이었다. 나는 작게 코를 골며 잠든 현수 언니를 보며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생각해보다가, 비밀 친구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오늘만큼은 참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살고 죽는 것.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열망이다. (145-146)


사랑과 결함은 화자와 화자의 고모에 대한 이야기. 고모란 어떤 존재일까. 화자의 친구이자 보호자였고, 화자의 어머니의 적이었던 부계 여성 친척? 로봇 청소기를 통해서 전해 듣는 화자가 몰랐던 고모의 모습, 그리고 화자가 기억하는 고모의 모습이 엄마의 모습과 겹쳐진다. 고모의 눈총을 받으며 시집살이를 했던 엄마, 시간이 흘러 홀로 남겨졌다 여기며 살았던 고모. 그 둘 밑에서 자란 화자의 모습에서 보이는 건 두 사람을 보고 배웠던 사랑과 결함, 혹은 사랑이자 결함이라고 해야 할까? 남들이 보기엔 결함(주로 여기선 정신병으로 표상되는)인 것도 어떻게든 사랑의 형태로 화자의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 끊임없이 벽을 들이받는 로봇 청소기의 모습에서 고모와 화자가 모두 떠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잠을 오래 자다보면 고즈넉하게 늙는 기분이 들었다. 남몰래 시간이 흘러가는 그 느낌이 치열하지 않아서 좋았다. (149)


그 어린 나이에도 순정 앞에서 절대로 엄마의 편을 들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그 시절의 나에게 사랑이란 그런 식으로 모종의 불안을 동반하며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드는 무엇이었다. (163)


나는 수가 언제나 착한 척을 한다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면 척은 아니었지만 달리 정확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수는 늘 자신의 마음이 진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나는 그게 진심이 아니란 것을 알았고 그걸 제발 수가 깨닫길 바랐다. 하지만 수는 내가 자신의 의도를 왜곡하고 곡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나는 그야말로 자기 자신을 왜곡하고 곡해하며 삶을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정립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수야말로 최선의 태도를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그 태도란 건 내가 평생 시달릴 고통과 우울, 그리움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였다. (180-181)


유전이라고 말한다면 내가 겪어온 모든 고통이 엄마의 유전자적 결함으로 치환되고 고모의 인생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조울증은 할머니의 유전자적 결함으로 치환되는 거겠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고모나 엄마가 그저 나에게 끔찍한 사랑을 흠뻑 물려주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랑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과 결함이 나를 어떻게 구성했는지도. 나는 실제로 고등학교 때 정신병이 유전되었을까봐 몹시 두려워했으며 내가 이상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친구들의 상태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다. 그러면서도 정신과는 절대 가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고모의 영향으로 향정신성 약물에 대한 크나큰 불신을 안고 있었으니까. (183)


잠들려는 그 순간, 저 멀리서부터 쿵, , 쿵 벽을 찧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비로소 이 순간이 잠이 드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희미한 정신으로 눈을 떴을 때 순정의 로봇 청소기가 빈 벽에 제 몸을 부술 듯이 처박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전원을 켜고 끄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어쩔줄 몰라하다가 달려가서 끝내 전원을 끄지도 못하고 청소기를 끌어안았다. 작은 바퀴들이 헛돌고 헛돌았다.

고모는 자주 물건을 부수기도 했고 아버지를 때리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암이 재발하고 나서 고모는 빠르게 힘을 잃어갔다. 비쩍 말랐고 입냄새가 심하게 났다. 병원에 입원한 후로는 오롯이 누워만 있었다. 모든 힘을 소진한 사람처럼. 임종을 앞두고 고모는 숨 쉬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버지도 나도 아닌 엄마를 아주 오랫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간신히 신음처럼 말을 뱉었다. 민애야. 그런 다음 눈을 감았다. 우리 중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 순간 우리 가족이 가진 축축하고 퀴퀴한 기억들이 전부 엉켜버렸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저도요.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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