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 이 말은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언급했다. 영국인에게 셰익스피어가 어떤 존재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그러면 이런 상상을 해보자.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를 괴테(Goethe)와 바꿀 수 있을까? 이건 정말 쉽게 결정하기 힘든 고민이다. ‘셰익스피어와 괴테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다. 셰익스피어는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어떤 연구가는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까지 했다. 반면 괴테는 굵직굵직하게 살아왔다. 여든이 될 때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가로서 경력을 쌓았다. 또 많은 여성과 연애를 즐기기도 했다. 작가로, 과학자로, 화가로, 정치인으로 괴테가 이룩한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 한국괴테학회 괴테 사전(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 2016)

* 카를 비에토르 젊은 괴테(숭실대학교출판부, 2009)

* 클라우스 제하퍼 괴테(생각의나무, 2009) 

 

 

괴테가 남긴 작품들의 분량이 엄청나다. 그의 대표작을 골라 읽는 것도 만만치 않다. 괴테의 작품을 읽어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괴테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괴테에게 영향을 준 시대적 배경, 동시대 문학, 주변 인물과의 관계, 종교, 철학 등을 파악해야 한다. ‘괴테 읽기에 셰익스피어를 간과할 수 없다. 괴테가 평생의 과제로 추구했던 문학과 예술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삶이었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괴테를 지배한 운명이었다. 파우스트는 셰익스피어를 사랑한 괴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1]

 

 

    

                    

 

 

작년에 괴테 사전이 너무도 조용하게 나왔다. 한국괴테학회에 소속된 독어독문학 전공 교수들이 대거 집필에 참여했다. 집필진 명단에 익숙한 이름 몇 개 보인다. 안삼환, 이인웅, 장희창, 전영애 등은 괴테의 작품을 번역한 이력이 있고, 안진태는 괴테 연구서 세 권을 펴낸 적이 있다. 한국괴테학회는 1983년에 설립되었다. 매년 12월 27일에 <괴테 연구>라는 학회지를 발간한다. 올해 나오는 <괴테 연구>는 30집이다.

 

 

 

          

          

 

 

    

사전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괴테 사전괴테와 괴테 문학에 관심 있는 일반인 독자를 위한 책이다.[2] 학술적인 내용이 포함됐지만, 전문적인 분석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이미 독일에서는 1998, 2004년 두 차례에 괴테 사전이 출간되었다. 발간사에 따르면 독일판 괴테 사전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참고만 했다고 한다. 따라서 괴테 사전은 국내 괴테 연구자들이 주도적으로 만든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괴테 사전의 주요 항목으로는 괴테와 관련된 주변 인물, 괴테가 활동했던 도시, 괴테의 작품(소설/산문, 드라마, ), 괴테의 문학과 예술에 관한 주요 개념, 미학 및 자연과학 논문, <잠언과 성찰> 등이 있다. 골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년에 나온 괴테 사전‘1차 발간 작업의 결과물이다. 언제일지 모르겠으나 두 번째 괴테 사전이 발간될 가능성이 있다.

 

괴테 사전읽기가 부담되면, 카를 비에토르의 젊은 괴테(숭실대학교출판부, 2009), 클라우스 제하퍼의 괴테(생각의나무, 2009)를 참고할 수 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 문학 연구는 문학 작품에 반영된 독일 정신의 발전을 확인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카를 비에토르(Karl Vietor, 1892~1951)는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연관성에 관심을 가졌다. 젊은 괴테1930년에 발표된 괴테 연구서이다. 비록 책의 주제가 젊은 시절의 괴테로 한정되어 있으나 괴테의 문학이 시기별로 어떻게 변화되고 성장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괴테의 문학은 한마디로 말하면 체험 문학이다. , 괴테의 작품에 괴테 자신의 내면적 체험(세상과 주변 인물을 바라보는 정서적 태도)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괴테의 생애를 모르고 괴테의 작품을 읽는 것은 까막눈으로 책을 읽는 상태나 다름없다. 클라우스 제하퍼의 괴테는 괴테의 작품 해설에 중점을 둔 책이다. 이 책에 가장 먼저 소개되는 괴테의 작품이 파우스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괴테 읽기를 위한 가벼운 레시피로 보기 어렵다. 이 책의 저자는 이미 괴테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들을 전제로 썼다.

 

 

     

 

[1] 괴테사전(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 2016) ‘셰익스피어, 김영옥, 68.

[2] 괴테사전발간사,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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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괴테와 셰익스피어
    from Value Investing 2017-12-12 23:21 
    cyrus 님의 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어서 먼댓글로 달아 봅니다. "내 생각에 영국인들에게는 괴테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cyrus 님께서 위와 같이 말씀하신 이유를 제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견해는 '영국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통념과도 너무나 동떨어진 견해가 아닐까 싶어서요. 저로서는 '괴테를 셰익스피어보다 우위에 두는 듯한 표현 자체'가 너무나 놀랍고 또 생경스럽기만 합니다
 
 
2017-12-12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2 18:07   좋아요 0 | URL
괴테와 셰익스피어는 동급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셰익스피어가 괴테보다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

AgalmA 2017-12-16 0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안의 책>에서 소아르스는 셰익스피어가 허점투성이라고. <리어왕>도 자기가 손봐주고 싶다고^ㅁ^); 누구 편도 들 수 없는 나자신의 깜냥을 생각했지요..허허;;

cyrus 2017-12-18 10:33   좋아요 1 | URL
로쟈님의 말씀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작품 속 남성 인물들의 성격, 감정 상태 변화 등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대요. 그런데 여성 인물의 성격은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다고 해요. 그래서 셰익스피어 작품 속 여성 인물을 심도 있게 분석한 의견이 많지 않아요. ^^
 
똑똑함의 숭배 - 엘리트주의는 어떻게 사회를 실패로 이끄는가
크리스토퍼 헤이즈 지음, 한진영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 사회는 한 개인을 평가할 때 학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근대화 이전, 양반 계층이 교육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있었다. 교육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대중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제공됐다. 하지만 그것도 형식적이었고, 해방되자 비로소 누구나 공부만 잘하면 출세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적을 보기 어려워졌다. 돈이 없으면 공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권력 창출과 신분 상승의 수단이다. 인력 채용 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학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아이들은 명문대학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찌감치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공부 외에 과외 공부를 하게 되고, 사교육비는 부모들이 부담하게 됐다. 부모의 경제 수준에 따라 자식의 가방끈길이가 결정되는 세태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적을 아직도 대중은 실제 현실로 믿고 싶어 한다. ‘개천의 기적을 보고 듣고 자란 부모 세대는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다. 과거와 많이 달라진 현실은 심각하다. 우리는 부모 잘 만나면 용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를 따르는 국민들에게 신뢰의 징검다리여야 한다. 국민은 지도자가 새로운 정책을 통해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와 혁신에 앞장설 것을 기대한다. 지도자가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 그 추종자들은 실망과 함께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까지 한다. 그래서 자칫 사회가 무질서하고 생활이 고통스러워지면 국민은 개인의 불행을 지도자의 무능 탓으로 돌리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는 꽤 긴 시간 동안 무능한 권위에 제대로 속았고, 국민들은 짜증이 날 정도로 손해를 감수했다. 왜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이 반복되는 것일까. 과연 국민들의 촛불로 탄생한 현 정부는 과거를 답습할 것인가.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냉소에 빠지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감시하는 참여민주주의를 강화하려면 능력주의의 허상에 벗어나야 한다. 지나친 능력주의 숭배는 리더십 부재, 불평등 문제, 사익을 추구하는 엘리트 계층 양산 등 온갖 문제들을 낳는다. ‘능력 좋아서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능력주의의 병폐는 결과적으로 사회 통합을 어렵게 만든다.

 

똑똑함의 숭배는 지금 시점에서 읽어 봐야 하는 것은 여전히 손에 특권을 꽉 쥔 엘리트 계층이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주위의 비판적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엘리트 계층의 비리와 위선 행각은 그칠 줄 모른다. 똑똑함의 숭배믿는 능력주의에 발등 찍히는 미국인들의 사례를 보여준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을 때, 위기를 초래한 원인 제공자 는 미국 명문대 출신 금융인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이 자랑하는 명문 대학이 배출한 월 스트리트의 핵심 인재들이었다. 사익에 눈이 쏠린 금융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쓰다가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었다. 능력 좋은 인재들의 오만은 나비의 조용한 날갯짓이었다. 월 스트리트에서 시작된 날갯짓은 미국 전체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를 집어삼킨 태풍이 되었다.

 

2000년대 메이저리그는 약물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암묵적으로 약물을 복용해왔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거의 20년간 금지약물 사용을 묵인해왔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부정을 은폐하려고 약물에 의존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실태를 고발한 미첼 리포트를 깎아내렸다. 야구팬들은 미첼 리포트에 기록된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팬들은 팀 리그 우승에 보탬이 되고 선수 개인의 역대 최고 성적을 내는 야구선수들의 실력을 높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소위 인기 스타이며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실력에 따라 높은 금액의 연봉을 받는다. ‘약물의 시대거포로 활약했던 새미 소사(Sammy Sosa), 마크 맥과이어(Mark McGwire)는 약물 스캔들에 휘말렸고, 두 사람 모두 엄청난 개인 기록을 세웠음에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책에 나온 내용의 일부일 뿐이다. 모두 능력주의 숭배가 낳은 최악의 결과들이다. 대중이 엘리트의 실력을 우러러볼수록 엘리트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지낸다. 그렇게 대중은 엘리트로부터 , 돼지소리를 듣게 된다. 순진한 개, 돼지들이 빛 좋은 개살구인 능력주의 앞에 자꾸 머리를 숙이면, ‘수준 이하 개, 돼지들은 사회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착각한다. 똑똑함의 숭배에 소개된 사례들은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왜곡된 능력주의 때문에 악순환에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사회악순환을 심화시키는 이들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똑똑함의 숭배의 저자 크리스토퍼 헤이즈(Christopher Hayes)는 엘리트에게만 부가 쏠리는 불평등, 점점 심각해지는 엘리트의 도덕적 해이 등의 근본적 원인을 능력주의 숭배를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저자가 내세운 해결책은 너무나도 간단하게도 평등이다. 그는 기회의 평등뿐만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회가 균등하더라도, 즉 경기규칙이 공정하더라도 승자와 패자에 대한 대우가 너무 불합리하다면, 즉 승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져가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면 그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결과의 불평등을 초래한다. 물론, 결과의 불평등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이 점은 저자도 인정한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의 해결책은 왠지 찝찝하기만 하다.

 

이 책을 보면서 찝찝하게 느낀 내용이 한 가지 더 있다. 저자는 브라질의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데 성공한 루이스 이나시우 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대통령(우리나라에선 룰라로 잘 알려져 있다)의 사례를 언급했다. 똑똑함의 숭배2013년에 발표되었다. 이 책이 나온 지 2년 뒤에 시우바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저자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워했을까. 우리나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볼 수 있듯이 소수의 정치 엘리트가 권력을 잡으면 사익에 집착하게 되고, 보통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시우바는 국민들이 원하면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만약 브라질 국민들이 그의 복귀를 환영한다면 똑똑함의 숭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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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2 12:47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구직자들이 공무원을 희망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지나친 능력주의 숭배가 낳은 기이한 현상으로 생각해요.

표맥(漂麥) 2017-12-1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능력주의의 허상... 이 말 와 닿습니다. 똑똑한 사람의 한계는 자신의 생각을 일반화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표준화하려고 하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걸맞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개.돼지로 치부해 버리구요... 정작 자신들도 또다른 의미의 개,돼지임을 몰라요.

cyrus 2017-12-12 12:50   좋아요 0 | URL
책의 핵심 내용에 근접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엘리트는 자신들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아 일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게 독단적으로 처리하면 문제가 됩니다.

sprenown 2017-12-1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똑똑이의 신화는 깨져야 합니다.

cyrus 2017-12-12 13:1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똑똑한 척하는 사람, 똑똑한데 이기적인 사람,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수이 2017-12-12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친구는 이제 막 애기 낳았는데 내년에 제주도로 이사한대, 국제학교 보낸다고, 다섯 살부터 입학 가능이래, 그래서 제주도에 집 사고 이사할 준비 한다는데 뭔가 멍하다. 출발선이 다르네 하고 너털웃음만 지었어. 나도 똑똑한 거 좋아하긴 하는데 뭔가 기묘해. 귀신 홀린 기분. 남편도 뭐 이래저래 안 좋은 이야기 잔뜩 갖고 들어오고. 아아아;;;;

cyrus 2017-12-12 13:15   좋아요 0 | URL
주변 사람들 신경 안 쓰면서 살고 싶어도, 타인과 비교하게큼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피할 수 없어요. 저도 연락 뜸한 친구가 잘 나간다는 소식을 접하면 기분이 이상해요.. ^^;;

transient-guest 2017-12-12 0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인이나 공인의 경우엔 실체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그간 살아온 삶을 잘 짚어보면 실수가 좀 적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을 데리고 일해보면 어느 정도는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은 교육열과 경쟁이 너무 높아서 그야말로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학력/학벌과 실제능력의 상관관계가 맞이 않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측정가능한 자료로 무엇인가를 평가하는 건 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cyrus 2017-12-12 13:19   좋아요 2 | URL
학벌이 좋아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엘리트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학벌과 실제 능력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없어요. 그런데 정유라처럼 학력을 속이면서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예요. 애초에 그들은 정당한 경쟁을 하지 않고, 비상식적인 특권을 누려요. 엘리트층들은 그런 상황을 문제 삼지 않아요.
 

 

 

 

 

 

 

 

 

 

 

 

 

 

 

 

 

 

 

어제 동네 책방 읽다 익다에서 로쟈이현우 님<문학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날, 신간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책세상, 2017)을 로쟈님과 함께 프리뷰(preview)했습니다.

 

 

 

* [읽다 익다] 홈페이지 https://ikdda.modoo.at/

* [읽다 익다] 블로그 http://ikdda.com/

* [읽다 익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ikdda_books/

* 문화공동체 우주지감http://cafe.naver.com/ej2013

 

 

 

강연 후기 먼저 강연 장소인 읽다 익다에 대해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원래는 강연 시작 10분 전에 책방에 일찍 도착하려고 했습니다. 책방 내부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사고 싶은 책이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교통 체증이 심했어요. 강연이 시작한 지 10분 후에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책방 내부가 궁금하신 분은 읽다 익다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확인하면 됩니다. 책방에서 진행되는 각종 행사, 독서 토론 모임 등에 관한 사항은 블로그, ‘우주지감공식 카페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늦게 도착한 바람에 제일 끝에 있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래서 책방 내부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로쟈님이 신작을 소개하는 와중에 저는 딴짓을 했습니다. 책방에 무슨 책이 있는지 눈동자를 신나게 이리저리 굴렸습니다.

 

 

 

 

 

 

 

 

 

 

 

 

 

 

 

 

 

 

 

 

 

 

 

 

 

 

 

 

 

 

 

 

 

 

 

 

 

 

 

 

 

 

 

 

* 박우수 역 햄릿 (1사절판본)(휴북스, 2017)

* 이현우 역 햄릿 (1사절파본)(동인, 2007)

* 최종철 역 햄릿(민음사, 1998)

* 노승희 역 햄릿(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 박우수 역 햄릿(열린책들, 2010)

* 이경식 역 햄릿(문학동네, 2016)

* 설준규 역 햄릿(창비, 2016) 

 

 

 

 

처음에는 로쟈님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소개하다가 자연스럽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로쟈님은 햄릿수수께끼가 많은 텍스트라고 했습니다. 햄릿의 판본은 다양합니다. 발표 연도순으로 소개하면 1사절판, 2사절판, 1이절판이 있습니다. 세 가지 판본에 나오는 내용(작중 인물의 대사)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어느 판을 번역하느냐에 따라 텍스트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사절판은 읽기용이 아니라 무대 공연용으로 만들어진 판본이라서 오탈자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햄릿판본 대부분이 제2사절판과 제1이절판입니다. 로쟈님은 햄릿복수지연극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야기 전개상 부왕을 죽인 숙부에 대한 햄릿의 복수가 지연되기 때문입니다. 로쟈님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햄릿은 분량이 긴 작품일까요, 아니면 분량이 짧은 작품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햄릿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들 또는 언젠가 햄릿을 읽게 될 독자들의 몫입니다.

 

그 밖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소설 속 인물 관계,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의 차이점 등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어제 강연에서 제일 인상 깊은 내용은 책을 읽고 독해하는 과정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로쟈님은 철학이라는 주제를 빌려 와 고전, 즉 문학을 재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사유의 결과물이 바로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입니다. 이 사유가 가능해지려면 논리적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독창적인 해석이라고 해도 논리적 일관성이 부족하면 글에 구멍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 구멍이 생기지 않으려면 텍스트를 여러 번 읽어야 하고, 글을 쓰기 전에 텍스트를 재해석하기 위한 철학적인 전략이 타당한지 검증해야 합니다. 로쟈님은 책을 읽고 해석하는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지금까지 해왔던 독서와 글쓰기의 문제점이 뭔지 깨달았습니다. 제가 철학 지식이 빈약하고, 대부분 글에 논리적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어떻게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2017년 6월 24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9415205

 

 

 

강연이 끝난 뒤에 질의응답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햄릿의 오필리아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예전에 오필리아의 작중 행적과 성격을 분석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저는 오필리아도 햄릿만큼이나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로쟈님이 오필리아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했습니다. 로쟈님은 작품 전체로 봐서는 오필리아의 내적 상태를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로쟈님의 설명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모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필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속 여성 인물을 부수적인 존재로 설정했고, 그들의 내적 상태를 대충묘사했습니다.

 

9시 조금 지나서 강연이 종료되었고, 로쟈님은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저도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우주지감독서모임 회원님이 제게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분은 제가 알라딘 서재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무척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그분과 좀 더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우주지감독서모임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는데, 저는 바보같이 부끄러운 질문을 하고 말았습니다.

 

 

(해맑게) “혹시 독서모임이 끝나고 나면 뒤풀이(2) 하나요? 예를 들면,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한다든가…‥.”

 

 

 

 

 

회원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순간, 이 질문을 괜히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집에 가서 자기 전에 이불 킥을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읽다 익다책방지기인 오은아 님을 포함한 독서모임 회원 몇 분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들 인상이 좋고, 말씀하실 때마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이런 행복한 느낌은 3년 만에 느껴봤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끼리 대화를 나눠보면 어색함이 눈 녹듯 사라져요. 이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3년 동안 잊고 있던 독서모임의 즐거운 분위기가 살짝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목요일 오후 730분에 시작하는 독서모임이 있습니다. 모임에 늦더라도 한 번 참석해야겠습니다. 독서모임을 통해서 글쓰기만으로 채울 수 없는 정()과 소통의 진정성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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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0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통풍 때문에 술도 못 마신다면서 2차에 술이 웬말이냐?ㅋㅋㅋㅋ

그런데 너 이제 알라딘을 넘어서 범한국적 셀럽이 되어가고 있구나.
자랑스럽다!^^

참, 너의 뒷모습은 대충 알 것 같은데 언제 한 번 앞모습도 부탁한다.ㅋ

cyrus 2017-12-09 15:57   좋아요 1 | URL
건강을 위해서 술을 입에 대지 못하고 있어요... ㅎㅎㅎ
그런데도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있다니.. ㅋㅋㅋㅋ
제가 책 다음으로 사랑하는 녀석이 술입니다. ^^

범한국적 셀럽은 불가능하구요, 일단 범대구적 셀럽이 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ㅎㅎㅎㅎ

저는 항상 뒷모습 공개를 고수합니다... ^^;;

syo 2017-12-09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의 현장이 마침내 이루어졌군요!!
이제 그럼 사이러스님의 철학책 리뷰가 팍팍 올라오는 건가요. 아싸 ㅎㅎ

그나저나 저 제목은 입문서 빠돌이인 syo 부끄러우라고 쓰신 거 맞죠?

cyrus 2017-12-09 16:21   좋아요 1 | URL
항상 늘 그랬듯이 제 성격상 당장 실천하지 않을 거예요. 마음은 가득한데, 머리가 따라주지 않아요. ㅎㅎㅎ

제가 설마 의도적으로 제목을 지었겠어요..? 절대로 아닙니다.. ㅎㅎㅎ 글 제목이 로쟈님 강연의 핵심이라서 생각해서 그렇게 정한 것뿐입니다. 어제 강연에 참석한 독서모임 회원님들도 공감한 내용이었거든요. ^^;;

2017-12-09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0 11:43   좋아요 0 | URL
예전에 서울 독서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때 뒤풀이가 진행됐어요. 책 이야기뿐만 아니라 영화, 사회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어요. 나름 건전한 모임이었어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2-09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즐거운 모임 되세요^^!

cyrus 2017-12-10 11:44   좋아요 1 | URL
1년 12번 저녁 모임이 진행되는데 전부 출석하고 싶어요. ^^

수이 2017-12-10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뒷모습은 여전하구나 10년 전 아니 9년 전 그대로 :) 좋네~ 선생님 모습도 간만에 뵙고~

cyrus 2017-12-10 11:47   좋아요 0 | URL
벌써 세월이 그렇게 지났어요? 야나문에 한 번 들려야하는데 쉽지 않네요. 책방 독서모임에 참석하면 야나문 얘기 많이 할께요. ^^

stella.K 2017-12-10 12:16   좋아요 0 | URL
읭~? 야나님과 사이러스 오래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
저도 그쯤 서재에서 알고 지내지만 한번도 못 봤어요.
약간 부럽삼.ㅎㅎ

cyrus 2017-12-10 12:19   좋아요 0 | URL
2010년 말에 야나님을 처음 만났어요. 2011년부터 펭귄클래식 독서모임에 참석했어요. ^^

스텔라 누님이 두 번째 책을 내신다면 대구 동네책방에 오셔서 강연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

2017-12-10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1 11:36   좋아요 0 | URL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듯이 강연을 하면 좋을거예요. 크게 부담 갖지 마세요. ^^

페크pek0501 2017-12-1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수준 너무 높으면 저는 못 따라갑니다요. ㅋㅋ

cyrus 2017-12-11 11:38   좋아요 0 | URL
앗! 그럴 수도 있겠군요.. ㅎㅎㅎ 그럴 땐 책을 여러 사람과 다 같이 읽어야 합니다. ^^

카르페디엠 2017-12-10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사진 사이러스 님 옆에 옆에 옆에 남자가 접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cyrus 2017-12-11 11: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희석님. 괴테의 집에 가보셨다고 말씀하신 분 맞으시죠? 그 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읽다익다 2017-12-31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후기 잘 보았어요. 만나서 반가웠구요. 새해에는 조금 더 깊은 인연을 기대합니다.^^

cyrus 2017-12-31 15:5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송년 모임 때 참석하고 싶었는데 개인 사정이 있어서 못 오고 말았습니다. 독서 모임에 참석하시는 분들 다 모이셨을 때 한 번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오후에 있는 1월 독서모임 때 꼭 참석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읽다 익다 책방에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많이 오길 바랍니다. ^^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The truth is out there).” TV 드라마 <X 파일(The X-Files)>의 프로그램 타이틀에 나오는 말이다. 극 중에서 FBI는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한 사건들을 묶어 ‘X 파일로 분류한다. 이 드라마가 유명해지면서 ‘X 파일미공개 사건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라는 문구는 유령을 믿는 사람들이 회의론자의 비판을 방어할 때 쓸 수 있다. ‘유령의 실체를 증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유령이 있을 것이다라고 어물쩍 대답하는 꼴이다.

    

 

 

 

 

 

 

 

 

 

 

 

 

 

 

* 로저 클라크 유령의 자연사(글항아리, 2017)

 

    

 

유령의 자연사저 너머에 있는 진실’, 유령의 실체를 믿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을 만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작가들이 싸구려 유령 이야기, 실제 인물의 유령 목격담을 보면서 유령의 실체를 믿는다. 계몽주의적 이성만 믿는 사람들에게 미신이란 과학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미신은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지만, 유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오히려 더해갔다. 낭만주의 운동은 이성이 지배하는 합리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고딕 소설(Gothic fiction)은 낭만주의 시대에 성행한 대중소설이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소재로 한 고딕 소설은 진실의 형식을 빌려 허구적 세계를 제공해 독자의 말초적 감성을 유발했다.

 

유령의 자연사에는 유령 문학(literary Ghost Story)’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유령 문학을 접한 독자들의 반응은 유령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령 문학을 즐기는 독자들의 심리 속에 유령을 바라보는 대중심리가 작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 영국인들의 유별난 유령 사랑을 이해하려면 유령의 자연사유령 문학으로 언급된 작품들을 읽어봐야 한다.

    

 

 

 

 

 

 

 

 

 

 

 

 

 

 

* 정선숙 역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3(자유문학사, 2004)

*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나래북, 2014)

* 다니엘 디포 빌 부인의 망령(현인, 2014, e-Book)

    

 

 

영국의 최초 유령 이야기를 쓴 사람은 다니엘 디포(Daniel Defoe)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한 로빈슨 크루소를 쓴 작가다. 디포는 1706년에 익명으로 엄청나게 긴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캔터베리에서 있었던, 미세스 빌이 사망한 다음 날에 바그레이브 부인 앞에 나타난 미세스 빌의 유령에 대한 진실한 이야기>.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문장형 제목을 단 책들이 나왔다. 《로빈슨 크루소》도 출판업계의 유행을 따른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로빈슨 크루소의 원제목은 <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 강 가까운 무인도 해변에서 28년 동안 홀로 살다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그려낸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 디포가 쓴 유령 이야기의 제목은 <빌 부인의 망령>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이 영국 최초의 유령 이야기라서 무서운 이야기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금 보면 <빌 부인의 망령>은 너무나도 평범한 유령 이야기다. 바그레이브 부인이 빌 부인의 영혼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그렇지만 <빌 부인의 망령>은 서구 공포 문학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로 빠져선 안 되는 작품이다. 일단 이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빌 부인의 망령>을 읽은 독자들은 유령과 담소를 나눈 부인의 이야기를 실화로 인식했다.

    

 

 

 

 

 

 

 

 

 

 

 

 

 

 

* 호레이스 월폴 오트란토 성(황금가지, 2002)

    

 

 

오트란토 성은 고딕 소설의 원조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은 이 작품의 제2판에 고딕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소는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성. 오트란토 성의 영주인 만프레드의 아들이 결혼식을 거행하기 전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다. 영주의 아들은 거대한 투구에 깔린 채 숨을 거두었다. 아들의 죽음 소식을 접한 영주는 오트란토 성에 오랫동안 지배한 가문의 저주를 떠올리게 되고, 점점 광기에 사로잡힌다. 한편, 하인들은 죽은 영주의 아들로 보이는 유령을 목격하기도 한다. 오트란토 성에도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는 장면이 많지 않다. 음산한 분위기가 지배한 성, 그 속에 숨겨진 비밀 통로, 그리고 기이한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날수록 이성을 잃어버리는 인물들의 모습 등은 고딕 소설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구성 요소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의 독자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18세기 영국 독자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딕 소설의 매력을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

 

오트란토 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지하게(?) 읽을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만프레드의 행동과 심리 변화를 주목하면서 읽는 방식이다. 만프레드는 낭만주의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들의 죽음 이후로 종족 번식(자신의 대를 이어줄 장자가 있어야 가문이 유지된다)에 대한 욕구를 느껴, 아들의 결혼 상대자인 이사벨라와 재혼하려고 한다. 만프레드는 이성의 구속에 벗어난 감정 상태에 빠져 있고, 그에겐 사랑이란 이성이 아니라 느낌에 충실한 것이다. 이것이 낭만주의자가 생각했던 낭만주의적 사랑이다. 물론, 만프레드가 이사벨라를 대하는 반응과 태도는 사랑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신의 재혼을 정당화하기 위해 본처를 무시하는 만프레드의 모습에서 가족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가부장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만프레드가 생각하는 사랑은 상대방의 의사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억압을 포장한 것이므로 절대로 낭만화할 수 없다.

 

    

 

 

 

 

 

 

 

 

 

 

 

 

 

* 몬터규 로즈 제임스 몬터규 로즈 제임스 : 호각을 불면 내가 찾아가겠네, 그대여 외 32(현대문학, 2014)

    

 

 

몬터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는 고대 및 중세 필사본을 연구한 서지학자이면서도 유령, 초자연적 현상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쓴 작가였다. 그의 작품에 고딕 소설의 향수가 조금 남아있지만, 앞서 소개한 밋밋한두 작품(<빌 부인의 망령>, <오트란토 성>)과 비교하면 한층 더 세련되고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로 가득하다. 유령의 자연사의 저자 로저 클라크는 일본 영화 <>을 분석했는데, 그는 <>의 특정 장면이 제임스의 여러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학교 괴담, 울부짖는 우물, 유령 들린 인형의 집, 포인터 씨의 일기장을 읽어보면 된다.

    

 

 

 

 

 

 

 

 

 

 

 

 

 

 

* 세계 호러 단편 100(책세상, 2005)

    

 

 

유령의 자연사14장에 몽스의 천사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유령 이야기가 나온다. 이 유령 이야기를 알기 전에 아서 매켄(Arthur Machen)의 짤막한 소설 궁수를 읽으면 좋다. 궁수몽스의 천사들이야기와 거의 흡사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몽스의 천사들이야기가 매첸이 지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몽스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게 되자, 매첸은 자신이 쓴 궁수가 허구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발 없는 말은 천 리 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몽스의 천사들은 영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존재로 순식간에 급부상했다. 그 당시 몽스의 천사들을 모르는 영국인은 간첩으로 취급받았다. 우스갯소리가 절대로 아니다. 애국심에 사로잡힌 영국인들은 조국을 보호해준 천사가 있다고 믿었다.

 

유령의 자연사에 소개된 그 밖의 유령 문학 작품으로는 헨리 제임스(Henry James)나사의 회전,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크리스마스 유령,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캔터빌의 유령 등이 있다. 이 작품들에 대한 평을 쓰고 싶었으나 그걸 여기다 적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의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이 글이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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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9 15:18   좋아요 0 | URL
옛날 사람들은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듯한 제목을 짓는 것을 좋아했어요.. ㅎㅎㅎ

sprenown 2017-12-08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유령문학 작품펑 기대합니다^^!

cyrus 2017-12-09 15:19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 유령>은 읽어봤는데, <나사의 회전>은 한 번도 안 읽었어요. 번역본 문장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들었는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짜라투스트라 2017-12-08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트란토 성을 읽고 몬터규 로즈 제임스와 아서 매켄을 좋아하는 동류의 인간으로서 다음 편이 기대되네요. 앨저넌 블랙우드나 앰브로스 비어스, 에드거 앨런 포 같은 인물들은 안 나오나요??^^

cyrus 2017-12-09 15:20   좋아요 0 | URL
제 기억으로는 <유령의 자연사>에 블랙우드, 비어스, 포는 언급되지 않았어요. 저자가 영국인이라서 영국 출신 작가를 많이 소개했어요. ^^
 
유령의 자연사 -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유령 현상에 대하여
로저 클라크 지음, 김빛나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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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유령이 많이 출몰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유령은 헨리 8(Henry )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의 유령이다. 그녀가 참수된 런던탑 주변에 밤마다 목 없는 앤 불린의 유령이 떠돈다는 도서 전설이 있다. 유령을 믿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본 사람은 없다. 로저 클라크(Roger Clarke)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열네 살의 나이에 최연소로 영국 심령연구학회(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SPR) 회원이 되었다. 클라크는 유령이 자주 목격되는 고스트 스팟(Ghost Spot) 여러 군데를 방문했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하여 클라크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유령은 한 차례 목격된 후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유령의 실체를 규명하는 대신에 유령 목격담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시대별로 유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과 반응을 확인했다. 유령의 자연사는 유령의 존재를 인식하고, 유령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다양한 내면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유령의 자연사유령에 관한 책이 맞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령이 아니다. 혹시 당신이 무시무시한 유령 이야기를 접하고 싶어서 유령의 자연사를 읽어보려고 한다면, 나는 말리겠다. 유령의 자연사유령을 주제로 한 책이지, ‘유령의 역사에 관한 책은 아니다. 따라서 끔찍하고 무서운유령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심령사진이 많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령사진으로 알려진 레이넘 홀의 브라운 레이디(The Brown Lady of Raynham Hall)’를 제외한 나머지는 조작한 것으로 판명된 가짜 심령사진들이다. 어느 일간지에 실린 책 소개 단신에는 이 책을 유령 백과사전으로 소개했다.[1] 어디서 구라를!

 

유령 목격담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해서 절대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저자는 유령 이야기를 즐기는 옛사람들의 대중심리를 간파하여 유령의 실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흔히 유령이라면 하면 단순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유령의 자연사는 이 통념을 반박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유령은 감정의 영역[2]이다. 유령은 보이지 않는 실체를 믿고 싶은 사람들의 환상과 열광이 만들어낸 그림자.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유령이라는 그림자에 놀라 경기를 일으키고 뒷걸음질 친 것이다. 고스트 헌터(Ghost Hunter)의 원조는 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괴롭히는 악령의 실체를 확인하는 동시에 악령에 맞설 수 있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에 강신술, 교령회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유령을 불러들이는 영매는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당연히 유령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유령이 목격되는 장소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령을 내세워 돈 좀 벌어보려는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렸다. 그래도 유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개인의 출신 배경과 직업 등에 따라 유령의 개념을 인식하는 태도가 결정된다. 상류층과 하류층은 유령을 믿는 성향이 강하고, 중산층은 유령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계급을 초월하여 전 국민이 유령을 믿는 흠좀무(‘, 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한 상황이 나올 때도 있다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전역에 알려진 몽스의 천사들(Angels of Mons)’쇼비니즘(chauvinism, 맹목적 애국주의)이 만든 유령 이야기다. 몽스라는 지역에서 독일군과의 혈투를 벌인 영국군은 궁지에 몰렸지만, 하얀 형상의 천사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승리했다. 몽스 전투에 참전한 영국 군인들은 이 기적 같은 일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영국인들은 천사의 사실 여부를 의심하지 않았고, 영국 정부와 언론은 몽스의 천사를 영국군의 수호성인이라고 선전했다. 누구도 몽스의 천사를 의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믿지 않으면 반애국자로 몰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확실한 것에 접하면 확실한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곧 그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령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유령 목격담에 쉽게 흥분한다. 과학이 발달해도 유령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누군가는 명성을 얻기 위해 유령을 만들고, 그 유령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결국, 유령은 망자의 영혼이라기보다는 인류의 감정 안에 탄생하는 욕망 덩어리. 지금도 사람들은 조작과 착각이 뒤섞인 욕망 덩어리를 보기 위해 어디든지 달려간다.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보고 싶어 한다. 유령을 보려는 헛된 욕망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들을 기만하는 욕망 덩어리는 재생산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비슷한 유령을 만들어 낸다. 정말 유령은 만들어 내기가 쉽다.

 

 

      

 

[1] [<책꽂이-새 책200> 유령의 자연사] 서울경제, 20171111

 

[2] 유령의 자연사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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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8 17:01   좋아요 1 | URL
<처녀귀신>이라는 제목의 문화사 분야의 책이 있습니다. <유령의 자연사>와 <처녀귀신>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 서양인이 유령을 보는 관점과 우리 조상님들이 귀신을 보는 관점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