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나이트》는 페르시아의 왕 샤리아르와 그의 동생 타타르의 왕 샤 자만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앙투안 갈랑 판본을 번역한 《천일야화》에서는 형은 샤리아, 동생은 샤즈난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여기서는 프랜시스 버턴 판본을 번역한 동서문화사의 《아라비안나이트》의 표기명을 따르겠다) 샤리아르와 샤 자만은 가장 불행한 형제로 나온다. 둘 다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다. 가장 먼저 아내의 부정에 충격을 받은 사람이 동생이다. 그런데 《아라비안나이트》의 초반부터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될 장면이 나온다.

 

샤 자만은 형을 만나려고 잠시 궁을 떠난 사이에 왕비와 신하가 벌거벗은 상태로 한 침대에 있는 것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 바로 살해한다. 샤 자만은 다시 형의 나라로 가서 왕비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으려고 해보지만, 우울 증세가 심각했다. 푸짐한 진수성찬 앞에서도 술과 음식을 거부하고 얼굴에는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형은 우울한 동생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냥을 제안하지만, 동생은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궁에 남는다. 그런데 동생은 우연히 후궁과 노예 들로 구성된 집단 성교를 목격한다. 놀랍게도 그 충격적인 현장에 형의 아내인 왕비가 있었다. 동생은 자신처럼 불행한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우울증에서 벗어난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동생이 의아하게 여긴 형은 그 이유를 알려달라고 하자 동생은 자신이 목격한 왕비의 성교 파티를 밝힌다. 두 사람은 그 비밀의 장면을 목격하기 위해서 일부러 사냥하러 간 척 궁을 떠난 뒤에 다시 몰래 돌아온다. 형은 자신 몰래 일삼은 아내의 불륜에 분노를 일으키게 되고, 성교 파티에 나온 후궁과 노예, 그리고 왕비까지 살해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형 샤리아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여성을 향한 그릇된 인식을 하게 된다. 매일 신혼을 치르고 신부를 죽이는 일을 반복한다. 왕의 광기를 막기 위해서 등장한 처녀 신부가 바로 셰에라자드다. 아동용 《아라비안나이트》는 샤 자만이 목격한 집단 성교 장면이 삭제된다. 내가 기억하기에는 아동용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온 샤리아르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선량한 왕이었다. 왕이 영리한 신부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지는 훈훈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성인용 원전이 아동용으로 바꾸면, 이야기의 시작과 등장인물의 성격이 확 달라진다.

 

야한 장면이 삭제된 갈랑 판본도 이 집단 성교 장면이 나온다. 그렇지만 표현 수위가 생각보다 세지 않다. 그 문제의 집단 성교 장면을 갈랑은 어떻게 묘사했는지 보도록 하자.

 

 

술탄(샤리아르/샤리아)의 궁에 은밀하게 나 있는 문 하나가 갑자기 열리더니, 거기서 스무 명의 여인들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중에는 다른 여인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술탄의 부인, 즉 왕비가 있었다. 왕비는 타타르 국왕(샤 자만/샤즈난)도 술탄과 함께 사냥을 떠났다고 생각하고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그가 앉아 있는 창문 아래까지 걸어왔다. 호기심에 사로잡힌 샤즈난은 자신의 모습은 드러내지 않은 채 모든 걸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왕비를 수행하는 여인들은 그때까지 자신들을 가두고 있던 모든 굴레를 벗어 버리려는 듯 우선 너울 아래 가려져 있던 얼굴을 드러낸 다음, 거추장스러운 긴 드레스를 훌훌 벗어 던져 아슬아슬한 속옷만을 걸친 알몸이 되었다. 이어 더욱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모두가 여인인 줄 알았던 스무 명 중에서 열 명은 여장한 흑인 남자들이었는데, 그들이 각기 여인 한 명씩을 품에 안고 희롱하기 시작했다. 왕비도 홀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가 손뼉을 치면서 <마수드! 마수드!>라고 외치자, 다른 검둥이 하나가 즉시 나무 위에서 내려오더니 신이 나서 그녀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1》 중에서, 19~20쪽)

 

 

화자(갈랑)는 집단 성교 장면을 반드시 묘사할 필요가 없는 장면이라고 언급하면서 두루뭉술 넘어간다. 반면 버턴은 문제의 장면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버턴 판본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야한 장면은 ‘버턴의 아라비안나이트는 성인용’이라는 불멸의 이미지를 단번에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는 버턴의 묘사를 인용해본다. 갈랑의 묘사와 한 번 비교해보시라.

 

 

굳게 닫혀 있던 왕궁 뒷문이 활짝 열리더니 여자노예 20명에게 둘러싸인 아름다운 왕비가 나타난 것이다. 보기 드문 미인으로, 균형잡힌 몸매와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한 몸짓은 마치 사랑의 화신 같았다. 왕비는 시원한 물을 찾는 영양처럼 단아하게 걸어 나왔다.

 

샤 자만은 창가에서 물러나 저쪽에서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여자들을 몰래 내려다보았다. 여자들은 창문 바로 아래를 지나 조금 더 나아가서 화원으로 들어가더니, 이윽고 커다란 연못 가운데 만들어진 분수가로 가서 모두 옷을 훌훌 벗어던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10명은 후궁들이고 10명은 백인 노예들이었다. 이윽고 그들은 둘씩 짝지어 흩어졌다. 한편 혼자 남은 왕비는 큰 소리로 쳤다. “이리 와요, 사이드 님!”

 

그러자 숲 속 한 그루 나무 위에서 거대한 몸집의 검둥이 하나가 눈알을 뒤룩거리고 침을 흘리면서 사뿐히 내려왔다. 백인이 보기에는 참으로 흉측스러운 모습이었다. 검둥이는 대담하게도 왕비 앞으로 다가가서 두 팔을 벌려 왕비의 목을 끌어안았다. 왕비도 검둥이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왕비도 검둥이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검둥이는 거칠게 왕비와 입을 맞추고는 마치 단춧구멍에 단추를 채우듯 두 다리를 상대의 다리에 걸고 그 자리에 자빠뜨린 다음 여자를 즐기는 것이었다.

 

다른 노예들은 그것을 보고 저마다 음욕을 채우기 시작했다. 입을 맞추고 포옹하고 서로 교접하면서 농탕치기를 그칠 줄 몰랐다.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노예들은 여자들 몸에서 떨어졌고 검둥이도 왕비의 가슴에서 몸을 일으켰다. 노예들은 다시 여장을 한 뒤, 나무에 기어 올라간 흑인을 제외하고 모두 왕궁으로 들어가 본디대로 뒷문을 닫았다.

 

 

(버턴 《아라비안나이트 1》 중에서, 39쪽)

 

 

원전에 있는 야한 장면을 버턴은 좀 더 노골적으로 묘사했다. 왕비의 모습을 농염하면서도 음란한 여성으로 그렸고, 음란한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는 충격적인 상황을 실감 나게 연출했다. 여기에 벌거벗은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장면의 삽화까지 나온다. 동서문화사의 《아라비안나이트》는 버턴의 주석까지 번역했는데 버턴은 주석을 통해 아랍 문화와 풍속을 유럽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전달하도록 노력했다. 그렇지만 주관적인 편견을 바탕으로 서술한 기록이 많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집단 성교 장면에 대한 버턴의 주석이 재미있다. 버턴은 음탕한 여자들은 흑인의 커다란 음경을 좋아한다고 썼다. 자신이 직접 확인한 어느 흑인의 음경의 크기를 자세하게 언급하면서까지 말이다. 사실 인종으로 음경의 길이는 흑인이 가장 큰 것은 맞다. 그런데 아랍 여성을 음란성에 초점을 맞춰 언급하는 대목이 불편하다. 주석에 맞지 않은 내용이다. 버턴은 왜 흑인 음경의 크기를 좋아하는 음란한 여성을 주석에 언급하는 것일까? 독자들을 자극할만한 야한 내용을 주석에 쓸 필요가 있었을까? 이 질문과 관련된 해답은 찾는다면 《아라비안나이트》가 야한 민담의 대명사가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장 레옹 제롬  「하렘의 테라스」 1886년

 

 

버턴이 《아라비안나이트》를 번역했던 당시 상황이라면 자연스러운 내용이다. 버턴이 활동했던 19세기 말 유럽은 오리엔탈리즘 문화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궁전 안에 비밀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왕비와 후궁들의 집단 성교는 남자들의 금단 장소인 하렘(harem)을 향한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단번에 모을 수 있는 인기 있는 장면이다. 하렘은 원래 후궁, 처첩만 기거하는 규방이었으나 오리엔탈리즘 문화와 만나면서 성적 판타지가 피어오르는 에로티시즘의 장소로 알려지게 된다. 동양 문화에 대한 유럽인의 관심에 맞물려 최대 수혜를 입은 문학작품이 바로 《아라비안나이트》다. 유럽인이 동경하고 선호하는 동양의 모습은 신비로우면서도 관능적이다.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야한 장면에서 이국적 섹슈얼리티에 매력을 느끼는 유럽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버턴의 눈으로 본 《아라비안나이트》에 ‘서양’이라는 오만한 불순물이 섞여 있다. 이 문화적 불순물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 이상, 이슬람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려고 버턴의 주석을 꼼꼼하게 읽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동서문화사 《아라비안나이트》에 이슬람 문화에 생소해서 혼동하기 쉬운 독자들을 위해 역자의 주석을 첨가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와같다면 2015-02-12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그가 보이네요...

cyrus 2015-02-12 10:37   좋아요 1 | URL
혹시 `그`가 버턴을 말하는 건가요? 제가 생각한 것이 맞다면 그럴 수도 있겠어요.

cyrus 2015-02-12 17:48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착각했어요. 맞아요. 남자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을 참고 견디기 힘들죠.. ^^;;

붉은돼지 2015-02-1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누르니 `좋아요 처리중입니다`이라는 메시지가 뜹니다... 이건 뭐지? 어쨋든 잘 처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호호호....잘 처리해 주세요..

cyrus 2015-02-12 10:38   좋아요 0 | URL
잘 처리된 것 같은데요. ㅎㅎㅎ

나와같다면 2015-02-1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말한 `그`는 샤리아르 와 샤 자만이요....
 
비밀의 정원 - 안티 - 스트레스 컬러링북 조해너 배스포드 컬러링북
조해너 배스포드 지음 / 클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컬러링북을 좋아하는 이웃님들에게 이 졸문을 보냅니다. 

 

 

 

 


“화원이 그리는 것은 자신의 꿈과 욕망과 희로애락일 것입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나온 신윤복의 대사입니다. 이 드라마의 원작자는 조선 시대 화가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설정했습니다. 여자로 살고 싶은 신윤복의 꿈과 욕망이 ‘미인도’라는 그림 속의 매혹적인 여성으로 표현했다고 해석했습니다. 비록 원작자의 상상력에 의한 설정이지만 드라마 속 신윤복의 대사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화가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스트레스나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니까요. 말로 표현하지 못한 속마음을 그림을 통해 나타내면서 안정을 얻고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하는 것이죠. 비단 화가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그림을 통해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원리에 착안해 응용한 것이 바로 미술치료입니다.

 

미술치료는 창작하는 활동을 통해 마음의 고통이나 정서 불안을 진단하거나 해소하도록 돕습니다. 미술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의학적 치료의 효과를 높이거나 환자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가 나오면서 의술이 닿지 않는 곳을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국내에선 의학적 치료의 보조요법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속마음을 표현하면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의 치료효과는 과학적으로 정확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안정에 큰 비중을 두려고 합니다. 게다가 살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무언가로 인해 자주 어디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안 좋아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면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다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 하는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미술치료 전문가들의 일은 많아질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미술치료를 받으려고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졌어요. 집 안에서 직접 혼자서 미술치료를 할 수 있으니까요.

 

작년 후반기에 서점가를 강타하기 시작했던 ‘안티 스트레스 컬러링북’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우리들의 지친 마음을 구원하는 책이 되었죠. 촘촘하게 엮인 풀과 나무, 앙증맞은 꽃잎들. 글자와 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섬세한 선들로 이어진, 복잡한 무늬의 일러스트로 채워진 책이 히트 상품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컬러링북 색칠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색칠을 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색칠놀이 인기는 올해도 여전합니다. 조해너 배스포드의《비밀의 정원》의 인기와 함께 ‘아트 테라피’라는 이름이 붙여진 유사 컬러링북들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동식물 패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풍경, 문양, 패션 일러스트 등 정말 예쁜 일러스트들이 색칠하기 놀이에 푹 빠진 독자들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컬러링북에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그림들을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에 공개합니다. 저는 처음에 컬러링북 열풍을 지켜보면서 어렸을 때 많이 하던 색칠놀이를 다 큰 어른들이 열광하는지 이유를 몰랐어요. 몇 달 전에 동생이 《비밀의 정원》을 사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제가 읽고 싶은 책 한 권 살 돈도 없는 형편인데 하는 수없이 몇 달 동안 차곡차곡 모아놓은 알라딘 적립금을 동생을 위해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퇴근하다가 집에 오면 색칠하기에 몰두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마치 한창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렸어요. 제 동생도 화가가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색칠놀이에 푹 빠진 어른이 한순간에 아이가 되는 신기한 효과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색칠하는 동생을 보면서 왜 어른들이 색칠놀이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신윤복의 대사를 빌려 표현하자면 컬러링북에 색칠하는 것은 희로애락 그 자체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종이 한 구석에 낙서하거나 아무 뜻도 없는 그림을 그리곤 합니다. 누구에게도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숨겨 놓은 여러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화가 나는 순간, 하얀 도화지나 스케치북에 크레파스 색깔을 아무거나 골라서 색칠을 하면 분이 풀릴 때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화가처럼 그림 그리는 솜씨가 없더라도 내 마음대로 그리고 싶거나 색칠하고 싶은 것을 종이 위에 펼쳐놓으면 우리의 의식과 상관없이 스트레스와 긴장이 풀립니다. 약이나 주사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그리기나 색칠하기를 통해서 스스로 마음의 병을 고치는 역동적인 방법인 거죠. 특히 컬러링북이 새로운 미술치료로 주목받고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기존의 미술치료 방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미술치료를 실시하면 검사자의 지시대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반면 컬러링북은 간단하게 색칠할 재료만 있으면 됩니다. 원하는 색깔을 골라 느긋하게 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무조건 색칠을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는 컬러링북을 친숙한 미술치료의 한 방법으로 장점을 열거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멈출 줄 모르는 컬러링북 열풍이 조금은 염려스럽게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하게, 느긋하게 색칠하면 집중력을 높여서 잡생각을 잊히는 효과만 있을 뿐이지 정신건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요. 컬러링북 열풍이 계속 이어진다면 출판사들은 컬러링북 출판에 열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스트레스를 풀어준다는 식으로 홍보한다면 누구도 컬러링북을 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친척, 내 주변의 사람들이 컬러링북 한 권 사서 색칠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그 유행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요. 컬러링북은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가장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치료제가 아닙니다. 미술치료 전문가들은 지속적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우울증세가 심하거나 정신분열증 환자가 컬러링북에 색칠을 하게 되면 강박증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색칠이 완료된 컬러링북 그림을 보면 한 점의 예술작품처럼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완성된 그림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칠하기 전에 절대로 잊어선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색칠하기. 형형색색으로 이루어진 멋진 그림을 원한다면 안티 스트레스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컬러링북은 아름답게, 보지 좋게 색칠하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색칠을 통해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하는 것도 좋지만, 누구한테 잘 보이려는 듯한 마음이 앞선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올린 완성된 컬러링북을 보면 ‘나도 저렇게 멋지게 색칠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색칠을 하다 보면 색연필을 쥔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어떤 색깔로 칠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나도 모르게 잡생각의 늪에 빠져 버리기 시작하는 거죠.

 

《비밀의 정원》과 같은 컬러링북은 많은 분에게 사랑을 받았기에 올해의 책 1위로 선정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좋은 책인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컬러링북이 일시적 열풍에만 기대는 상황이 걱정됩니다. 우리 일상이 얼마나 각박하고 지쳤으면 어른들이 단순한 색칠놀이에 위안을 얻으려고 할까요? 한편으론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한때 암울한 우리 사회의 정곡을 찌르면서 등장했던 캐치프레이즈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드디어 한물갔는가 싶었는데 ‘아프니까 색칠한다’라는 변형된 힐링 캐치프레이즈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마음이 아프다고 해서 계속 색연필을 손에만 쥐고 있을 겁니까? 색칠놀이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마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또 다른 치료제는 밖으로 나가서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 권 색칠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질 거라고 믿지 마십시오. 당신은 플라시보 효과(환자를 안심시켜주는 가짜 약)를 내세운 출판사의 홍보를 너무 믿고 있습니다. 컬러링북을 사는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컬러링북을 좋아할수록 출판사들의 돈독은 오릅니다.

 

색칠놀이를 좋아하는 독자가 많아졌으니 컬러링북을 만드는 출판사는 앞으로 ‘안티 스트레스’ 같은 얄팍한 홍보 문구와 수식어를 빼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홍보 문구 때문에 수천만 어른들의 마음에 일부러 그늘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스트레스에 어느 정도 내성이 강한 어른들도 ‘안티 스트레스’ 홍보를 의심하지 않고 지갑을 엽니다.

 

색칠하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 컬러링북을 샀거나 살 예정인 분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나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색칠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들이 색칠하는 것을 따라하고 싶은지 말입니다. 후자가 많을수록 컬러링북 열풍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 칠하지 않는 일러스트가 많이 남았는데도 이번에 새로 나온 컬러링북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듭니까? 색칠을 많이 할수록 마음이 편안해서 벌써 몇 권의 컬러링북을 고르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색칠해야 하는 이 사소한 행위만으로 당신의 칙칙한 마음을 화려한 색깔로 완벽하게 덧칠할 수 없습니다.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5-02-1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서 너는 이걸 직접 색칠해 봤단 말야?
뭘로 했니? 색년필? 싸인펜? 이걸 하려면 어쨌든 그런 게 필요하잖아.
성격상 앉아서 꼼꼼하게 뭘 잘 해내는 것도 아니고.
그 보다 난 십자수 같은 건 해 보고 싶더라.
머리 쓰는 사람일수록 단순한 걸 하라잖아.
십자수 잘만하면 액자에 넣어 벽을 장식할 수도 있고 부업도 가능한가 보던데.

참, 최근에 남자들도 뜨개질 한다더라.
미국의 유명한 배우들 그거 하고 앉아 있던데
웃기기도 하고 참해 보이기도 하고. 어쨌든 나쁘진 않아보이더라.
너도 뜨개질 도전할 생각없니?ㅋ

cyrus 2015-02-11 10:34   좋아요 0 | URL
저는 컬러링북 색칠 한 번도 안 했어요. 동생꺼만 한 권 샀어요. 십자수면 집중력 높이면서 잡생각 잊을 수 있는데 좋은 거 같아요. 제가 손재주가 없어서 뜨개질을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02-10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컬러링북이 그런 거군요. 전 그냥 알록달록 화보집인 줄 알았습니다.
근데... 은근 구미가 당기느데요...

cyrus 2015-02-11 10:35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화려한 색상이 있는 그림책인 줄 알았어요. ㅎㅎㅎ

해피북 2015-02-10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한 권 샀었거든요 명화북 이였는데 막상 받아보니 명화 옆 빈 그림이 덩그라니 있는데 은근 압박감이 생기더라구요 결국 엄마드리고 말았답니다 ㅋ이것도 은근 자신감도 필요하구 말씀처럼 되려 스트레스도 생기겠더라구요^~^

[그장소] 2015-02-10 23:10   좋아요 0 | URL
저는 그래서 선택하게되더라는..어차피 모작.
누가봐도 망친그림..어떠냐..이미 없는 화가랑 대결할 것도 아니고 비교자체도 되지않는 수준임에 틀림없을테니..마음껏 망쳐 보자..
그런 심보가 발동하던데요..ㅎㅎㅎ 못됐나요?

해피북 2015-02-10 23:21   좋아요 1 | URL
못됐긴요 ㅎ 저는 혼자 하는거지만 중간에 포기할게 눈에보여서 그럴바엔 엄마드리는게 좋겠다 했어요 저희엄마가 이런거 되게 좋아하시거든요 십자수도 좋아하시구요 ㅎ

cyrus 2015-02-11 10:37   좋아요 0 | URL
한 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색칠을 다 했으면 컬러링북을 또 살 필요가 없고요. 색칠을 많이 하면 손목에 무리가 생길 수 있답니다. 적당히 하는 게 좋습니다. ^^

cyrus 2015-02-11 10:40   좋아요 1 | URL
To. 그장소님 / 못됐긴요 ㅎ (2) 컬러링북을 그런 마음으로 색칠하면 금방 스트레스 풀릴 겁니다. ^^

[그장소] 2015-02-10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서점에 갔었어요.품절서중 혹 구할수있는책이 있을까.싶어서..허탕을치고
시집을 잔뜩..그러모아...나오다..봤죠.
아..아이한테 하나 사줄까..나도 하나 하고..우리둘다 요즘 정서안정 필요한데...
하다..다음에 직접 골르라고 해야겠다~
하고..제것도 골라달라 하고 말이죠..
그래서 결론은 시집만..제 집으로 덜렁 시집을왔네요..

cyrus 2015-02-11 10:42   좋아요 1 | URL
며칠 전에 인터넷 뉴스로 본 내용인데요, 하루에 6분만 책 읽어도 스트레스 풀리는 효과가 있대요. 저는 시집이 잡생각을 잊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

[그장소] 2015-02-11 10:50   좋아요 1 | URL
cyrus님 정성껏 답글을..^^ 좋아요 만 누르고 갈수 없겠네요..감사해요.
이럴때 기뻐요. 열심인걸 볼때요..
ㅎㅎㅎ근데..시집의 경우는 오히려 생각이 많아져요. 그래서 잡생각이 잊혀진다는 거라면 그럴수도...있겠네요..소설처럼 아..끝났다..독서록 쓰고...마무리..이게 안되는게..시 같아요. 시는 또 시를 낳는다..고 봐요.ㅎㅎㅎ 한없이..반복이죠.

cyrus 2015-02-11 11:09   좋아요 1 | URL
사람들마다 책의 주제에 따라 느낌이 다를거예요. 어떤 분은 소설을 읽으면 카타르시스가 느끼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또 어떤 분은 그림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테니까요. ^^

나와같다면 2015-02-10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글자를 읽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힘들때... 생각을 누르기 위해...
색칠을 했던 적이 있어요...

cyrus 2015-02-11 10:50   좋아요 1 | URL
색칠하기와 그림 그리기는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효과가 있어요. 나와같다면님도 색칠을 하면 마음이 진정될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컬러링북의 단점을 짚었지만 그렇다고 순기능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장소] 2015-02-1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지위에 줄을긋는 심정...알죠... 같은 건지 모르지만..^^

나와같다면 2015-02-1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그 심정 맞아요...

새아의서재 2015-02-11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런 책들이 치유의 방식이라긴 보단 일종의 유행이라는 생각. 그러니까 뇌를 잠깐 마비시키는. 너희들은 닥치고 이거나 칠해, 라는 국가적 차원의 대대적 홍보쯤이라는. 그래서 사실 저걸 색칠하는 게 이해가 안가요. 죄송하지만. ...

[그장소] 2015-02-11 01:06   좋아요 0 | URL
오..저, 이런 말이 실례가될지 몰라도...저더러 상당히 음모론 비약하는거 아니냐 하는 말을 가끔 들어요.. 그랬다.는게 아니라..그런데도 알게 뭐냐..우리가..이런 식의 얘기가 ㅎㅎㅎ너무 소설많이 봤어..하는 식의 얘길 듣는 거죠. 그래서인지..저는 달걀부인님 그런 생각 싫지 않아요.^^

새아의서재 2015-02-11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직설적으로 말하면 ...저도 그림그리는거 좋아하고 그게 치유의 역할을 하는건 인정해요. 하지만 예술이 사회문제를 직시하게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인문학이 무슨 구원의 학문처럼 되어버린 이런 분위기도 사실 좀 그런거죠. 사회과학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할 책들과 담론들에 눈과 귀를 귀울여야한다고 봐요. 그런면에서 저런 노가다색칠공부는 오히려눈과귀를 막는거죠. 사실 저거 색칠해놓고 여기다 올리는 사람들..한심해요. 직설적인 말이라해도 어쩔수없어요

cyrus 2015-02-11 14:3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주셨군요. 공감합니다. 컬러링북 열풍에서 예전 힐링 열풍의 그림자가 보였어요. 최근에 컬러링북 효과에 의문을 표하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는데 컬러링북 열풍을 강조하는 기사가 많아서 그런지 비판적 내용의 기사를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장소] 2015-02-11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핫~ 저 역시 한심한 책이나보고 시간이나 보내는 한량이니..두손 두발 다 들고 백기 들어요!^^ 옳습니다. 도움 안되죠.
저만 좋을뿐...아..이 시간이 뭔가가 되는 날이 문학이 사람을 ...감히..! 그리되는건가요? ㅎㅎㅎ 이건 살짝 어긋나나요? 암튼...달걀부인님 돌직구 시원하게 받고 갑니다. 아닌척 못하니 이실직고하고 발뻗고 잘래요..ㅎㅎ

새아의서재 2015-02-11 14:30   좋아요 1 | URL
모든 경우를 다 그렇게 볼수 있는건 아니구요. 그런것들이 필요한경우도 있죠. 너무 직설적이었다면 죄송해요. 공격은 절대아니예요..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죄송 ^^;

[그장소] 2015-02-1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달걀부인님.실례는요..저는 이런 시원스런 말.좋아요. 앞에서 의혹없이 할 수있는 말...뒤에서 누구누구 못마땅...하네..땅땅땅..하며 못박는 것보다..앞에서 당당한게 훨씬 멋져요!공격으로 느끼지않았구요.
덕분에 저간의 분위기가 어떤 흐름인지..알게도 되고..좋았어요.제가 책만 파는 쪽이라 다른 쪽은막혀서 좀 늦는데..사회분위기는 또 한면은 그렇기도 하구나..하고 알았으니까요..감사했어요!^^

새아의서재 2015-02-11 16:00   좋아요 1 | URL
이렇게 밀씀해주셔서 저 역시 몸둘바를 ^^;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용..

[그장소] 2015-02-1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더불어 감사드립니다.(^-^)v (^-^)v
 

 

 

 

 

 

 

 

 

 

 

 

 

 

 

 

 

 

 

《아라비안나이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있어도,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읽고 듣고 본 옛이야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영화, 만화, 어린이용 동화 등 다양한 형태의 텍스트로 변용돼 이야기의 원형이 덜 알려져 있다. 축약된 어린이용 동화가 아닌 완전한 형태의 이야기를 읽으려면 앙투안 갈랑 판본과 리처드 버턴 판본을 같이 읽어보는 것이 좋다.

 

앙투안 갈랑 판본은 유럽 최초로 소개된 《아라비안나이트》 번역본이다. 1704~1717년 프랑스에서 간행되었다. 갈랑은 시리아 필사본을 기본 텍스트로 삼았으나, 유럽 독자들을 고려해 적절히 번안했다. 갈랑 판본이 유럽 전역에 큰 인기를 끌게 되자 본격적으로 다양한 《아라비안나이트》 번역본들이 나왔다. 《아라비안나이트》 번역 대열에 합류한 판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리처드 버턴 판본(1885년)이다. 리처드 버턴 판본이 더 많이 알려진 이유는 이전의 갈랑 판본에서 볼 수 없는 노골적인 성(性) 묘사 때문이다. 이국적인 섹슈얼리티가 가득한 버턴 판본은 당시 유럽의 문화적 유행이었던 왜곡된 오리엔탈리즘과 맞물려 대중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 속 야한 장면은 버턴 판본의 원형을 축소하는 약점이 되었다. 버턴이 사망한 후, 《아라비안나이트》의 섹슈얼리티를 싫어한 버턴의 부인은 야한 장면을 뺀 삭제판을 펴내기도 했다. 그 후로 《아라비안나이트》는 어린이 독자를 위한 동화로 탈바꿈했고 오늘날에 야한 장면이 삭제된 건전한 이야기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완역본은 있어도 ‘정본’은 없다. 그러니까 갈랑 판본과 버턴 판본 중에《아라비안나이트》 정본을 고를 수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갈랑은 고상한 유럽 독자를 위해 야하고 잔인한 장면을 삭제했고, 시리아 필사본에 없는 민담을 추가했다. 사실 갈랑이 참고한 시리아 필사본은 《아라비안나이트》 원형에 가깝다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아라비안나이트》의 원본에 가까운 텍스트는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 오래전부터 구전되거나 필사본으로 전해지던 민담들을 아우르며 집대성된 것인만큼, 사실 원전이라는 의미 자체가 무의미하다.

 

버턴은 《아라비안나이트》 머리말에서 갈랑 판본이 동양의 원전을 올바르게 전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자신의 판본이야말로 동양의 위대한 전설을 충실히 전했다고 썼다. 그러나 버턴 판본도 비판적인 평가를 피하지 못한다. 버턴은 《아라비안나이트》의 번역가 이전에 아랍어에 능통하고 무슬림의 성지 메카를 직접 참배한 경험이 있는 탐험가이다. 버턴 판본은 쿠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슬람 문화를 주석을 붙이면서까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풍문에 근거한 내용이 많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천일야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1001일 밤의 이야기를 의미하는데 《아라비안나이트》의 아랍어 원제가 ‘알프 라일라 와 라일라’(Alf Laylah wa Laylah), 즉우리말로 풀이하면 ‘천일의 밤과 하룻밤’이다. 일역본을 국내에 번역하면서부터 ‘천일야화’라는 말이 통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갈랑 판본은 200일 분량의 내용을 담았고, 버턴 판본은 ‘알라딘과 마술 램프 이야기’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1001일 밤의 이야기에 제외하여 부록으로 소개했다. 갈랑 판본과 버턴 판본을 이야기 편집 과정에 큰 차이가 있다. 갈랑 판본에 없는 이야기가 버턴 판본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갈랑 판본과 버턴 판본에 나오는 ‘상인과 마신’ 이야기(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 1권에 수록, ‘상인과 정령’이라는 제목으로 갈랑의 《천일야화》 1권에 수록) 속에 세 명의 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갈랑 판본에서는 세 번째 노인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셰에라자드가 그 내용을 모른다고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천하의 셰에라자드가 이야기를 모를 수가 있다니. 다행히 셰에라자드는 바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처형당하는 위기의 순간을 넘어갔다. 그밖에도 갈랑 판본에서 ‘어부와 마신’ 이야기(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 1권에 수록, ‘어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갈랑의 《천일야화》 1권에 수록) 속에 나오는 작은 이야기 ‘신디바드 왕과 매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버턴 판본은 갈랑 판본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더 많으므로 두 개의 판본을 같이 읽어봐야 한다. 무조건 한 쪽 판본만 읽으면 《아라비안나이트》 판본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이 읽은 판본이 《아라비안나이트》 원전으로 오해할 수 있다. 

 

 

 

 

 

 

 

 

 

 

 

 

 

 

 

 

 

 

절판본을 제외하고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번역본을 언급하자면 갈랑 판본은 열린책들(제목은 《천일야화》), 버턴 판본은 김병철 번역의 범우사판, 고정일 번역의 동서문화사판이 있다. 두 달 전부터 갈랑의 《천일야화》와 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를 같이 읽고 있다. 그런데 막상 같이 읽으면 쉽지 않다. 꽤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아시다시피 《아라비안나이트》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와 같은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하나의 큰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 안에 작은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의 정조를 불신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어김없이 죽이는 술탄의 폭정을 막기 위해서 셰에라자드는 이야기의 미궁을 만든다. 그 속에 술탄은 무한정 이어지는 이야기의 미로 속에 갇혀버렸다. 금세 끝나는가 싶다가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무(圓舞)의 뱀처럼, 이어지고 이어진다. 하루 이틀 밤에 단락이 지어지는가 싶으면, 무려 100일 이상 밤을 이어지는 가장 긴 이야기도 있다. 「오마르 빈 알 누만 왕과 두 아들 샤르르칸과 자우 알 마칸 이야기」(45~145일째 밤)는 버턴 판본에만 있다. 현재까지 갈랑의 《천일야화》총 6권 중 3권까지 읽었는데 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는 여전히 1권 절반을 넘게 읽었을 뿐 완독하지 못했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 가장 긴 이야기의 미로라고 할 수 있는 「오마르 빈 알 누만 왕과 두 아들 샤르르칸과 자우 알 마칸 이야기」에 갇힌 상태다.

 

내가 아랍어 전공자가 아니라서 갈랑의 《천일야화》와 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 번역에 대해서 논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술술 잘 읽히는 번역은 갈랑의 《천일야화》다. 반면 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는 갈랑의 《천일야화》에서 삭제된 시와 노랫말이 있어서 속도를 내서 읽기가 쉽다. 게다가 동서문화사판은 책이 큰데다가 활자가 작아서 장시간 읽을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야기의 힘에 이끌려 셰에라자드의 미로를 통과해야하는데,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면 미로에 갇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라비안나이트》를 제대로 읽고 싶은 독자에게 버턴 판을 권하고 싶다. 특히 성인 남성 독자라면 당연히 야하고 잔인한 묘사가 넘치는 버턴 판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사실 생각보다 그렇게 야하지 않다. 정말로! 선정성을 제외한다면 버턴 판본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음란하다는 누명 때문에 《아라비안나이트》 속에 겹겹이 들어 있는 세상에 대한 통찰, 삶에 대한 진리를 보지 못한다. 버턴 판본을 외면하고, 읽지 않는다면 갈랑의 《천일야화》 6권짜리를 완독하더라도 그건 반쪽자리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은 것이나 다름없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15-02-08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도서정가제 전에 갈랑판을 샀답니다. 버턴 판이 범우사 껄로 있는데 제법 야하던걸요 ㅎㅎ 앗 이 대목에서 웃는 거 맞나요? ^^;;6

cyrus 2015-02-09 21:07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아라비안나이트 원전을 읽으면 동심파괴라는 말이 딱 떠오르죠. ㅎㅎㅎ

만병통치약 2015-02-08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라비안 나이트가 ˝정본˝이 없다는건 오늘 알았네요^^ 성인본으로 잔인한게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야한 버전도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

cyrus 2015-02-09 21:09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에 알았어요. 버턴이 일부러 원전에 야한 장면을 넣었다는 주장도 있어요. 야하고 잔인한 장면이 많습니다. 그래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

레삭매냐 2015-02-09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열린책 버전으로 2권까지 읽다가,
출간이 더뎌서 그만 둔 기억이 나네요.

cyrus 2015-02-09 21:12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 판본은 책 크기가 휴대하기 편하고, 가독성이 좋아서 빨리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간혹 읽다가 재미없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다른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

남희돌이 2015-02-09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는 숙원사업 중의 하나네요. 요런 건, 눈이 건강하고 팔팔할 때 읽어두었어야 했다는...후회가 들기도 해요.

cyrus 2015-02-09 21:14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5권 넘는 분량의 압박 때문에 처음은 읽기가 두렵지만, 시력 좋은 시절에 제대로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삼국지도 읽어봐야 하는데... 읽을 책이 정말 많습니다. ^^;;
 

 

 

 

SF 문학, 환상문학, 추리문학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장르문학 도서는 바로 읽지 않더라도 일단 사고 보는 게 장땡이다. 장르문학 도서는 다른 분야의 책에 비해 수명이 짧다.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책은 독자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절판되는 안타까운 운명을 맞는다. 장르문학 도서를 구입하고 즐겨 읽는 독자층이 형성되어도 상업 출판사의 수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만큼 장르문학 도서는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만 찾는다. 절판본을 재출간해달라는 독자의 요청이 많아도 막상 그들이 구입한다는 가정에서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저조한 수익률이 나온다. 장르문학 도서를 펴내는 출판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책 한 권을 내면 비장해진다. 책을 더 찍고 싶어도 안 팔린다는 슬픈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현상이 갈수록 심해질수록 출판업자들은 장르문학의 가치를 폭넓은 연령층 독자들에게 알릴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책을 만들어도 재고를 남지 않는 방향으로 장르문학을 소개하는 타개책을 세우기도 한다. 마음껏 만들어서 덜 팔리더라도 재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책, 그것이 바로 전자책이다. 종이책으로 단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는 외국 장르문학 작품을 전자책으로 출간하는 출판사가 있다. 페가나북스는 1인 전자책 출판사로 주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영미권과 일본의 고전 장르문학 작품을 출간하고 있다. 페가나북스가 지금까지 펴낸 전자책의 수는 많지 않지만, 그중에서 장르문학 팬덤이라면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 있다. 로드 던세이니의 환상문학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로드 던세이니는 아일랜드 귀족 가문 출생으로 1878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에드워드 존 모턴 드랙스 플렁킷(Edward John Moreton Drax Plunkett), 줄여서 에드워드 플렁킷이라고 하는데 남작 작위를 받은 뒤에 만들어진 필명인 로드 던세이니(우리말로 풀이하면 ‘던세이니 경’이다)가 널리 알려졌다. 부유한 삶을 살았던 던세이니는 꿈과 환상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오늘날에는 던세이니의 명성이 거의 잊혔지만, 그의 독특한 상상력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 환상적 리얼리즘의 대가 보르헤스 그리고 크툴루 신화를 만든 러브크래프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던세이니의 초창기 작품을 읽으면 한 편의 고대 전승 신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현대의 신화를 구축한 톨킨과 러브크래프트의 판타지 문학의 젖줄은 던세이니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던세이니가 러브크래프트에게 끼친 문학적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텍스트로는 에세이 《공포 문학의 매혹》(북스피어, 2012)이 있다. 사실 러브크래프트가 던세이니의 작품을 공포문학에 포함한 점에 대해선 동의하기는 어렵다. 러브크래트프 본인도 던세이니 작품의 핵심을 공포가 아닌 아름다움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판타지 문학에서 흔히 양대 산맥을 꼽으라면 톨킨과 러브크래프트가 거론된다. 톨킨의 판타지가 빛이라고 한다면, 러브크래프트의 판타지는 암흑이다. 그런데 이 빛과 어둠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판타지를 던세이니는 이미 성공했다.

 

로드 던세이니는 수정처럼 맑고 노래하는 듯한 산문을 창조하는 마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가로서, 다채로운 이국적 상상력으로 화려하고 나른한 세계를 창조하는 데 뛰어나다. (《공포 문학의 매혹》 중에서, 135쪽)


귀족 출신답게 던세이니의 문장은 이국적 정취가 느껴질 정도로 화려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러브크래프트는 던세이니의 작품에 반해 그와 비슷한 표현력으로 습작을 했다. 여기까지가 던세이니라는 문학의 나무를 본 것이다. 이제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자. 던세이니가 창조한 거대한 세계는 켈트족 특유의 어둡고 음울한 세계관을 반영한다. 러브크래프는 빛과 어둠의 조화를 이루는 던세이니의 판타지에서 전통적인 코스믹 호러의 향취를 맡았다. 

 

 

 

 

 

 

 

 

 

 

 

 

 

 

 

 

러브크래트트가 맡은 코스믹 호러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던세이니의 작품으로는 처녀작이자 단편집 《페가나의 신들》(The Gods of Pegāna, 1905)이다. 이 소설은 페가나라는 태초의 세계와 그곳에 거주하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단편 형식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나-유드-수샤이와 북 치는 스카르

 

 

 

페가나를 지배하는 최고의 신은 마나-유드-수샤이(Mana-Yood-Sushai)다. 신들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마나-유드-수샤이는 영원히 잠들어 있는데 그가 깨어나면 페가나와 나머지 신들이 모조리 파괴되는 종말에 이른다. 새로운 세상과 신들을 만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마나-유드-수샤이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려면 스카르(Skarl)가 북치기를 멈추지 않으면 된다.

 

 

 

 

 

시간의 신 시쉬

 

 

페가나의 신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올륌포스의 신들처럼 각자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역할이 있다. 죽음의 신 뭉(Mung), 시간의 신 시쉬(Sish), 바다의 신 슬리드(Slid), 환희와 음유시인의 신 림팜-통(Limpang-Tung) 등 수많은 신들이 나온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비교하면 던세이니의 신들은 대체로 정적이고 음울한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다. 《페가나의 신들》 삽화를 담당한 시드니 허버트 사임은 던세이니의 서정시풍 문장을 그림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던세이니는 페가나를 신들이 마음껏 향락을 누릴 수 있는 아르카디아처럼 묘사했다.

 

 

 

 

사람들은 죽어서 페가나로 올라와 신들과 함께 고통 없는 기쁨 속에서 살리라. 그리고 페가나는 산봉우리의 눈 덮인 곳에 있고 그 봉우리마다 신이 하나씩 있도다. (《페가나의 신들》 2권 중에서, 38쪽)

페가나에 깊이 들어가면 ‘중앙해’에서 신들이 끌어올린 은빛 분수가 있어, 물은 하늘높이 솟아올라 페가나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트레하고볼 위에서 반짝이는 안개로 변한 뒤, 페가나의 정상을 뒤덮고 마나-유드-수샤이의 침실을 커튼처럼 가려주느니라. (《페가나의 신들》 2권 중에서, 40쪽)

 

그렇지만 신들이 빚어낸 이 아름다운 세계도 언젠가는 무(無)로 향하게 되는 거대한 꿈일 뿐이다. 마나-유드-수샤이가 깨어나면 페가나의 신들은 무력하게 페가나가 멸망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이러한 허무주의적 세계관은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로 이어진다.

 

 

 

 

러브크래프트가 직접 그린 크툴루

 

 

러브크래프트의 판타지에 주로 언급되는 그레이트 올드원(Great Old Ones)은 초월적인 힘은 마나-유드-수샤이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레이드 올드원은 하나의 신만 지칭하는 것이 아닌 복수(複數)의 고대 신들이다. 세계를 주무르고 파괴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레이트 올드원의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크툴루다. 크툴루의 마력은 다른 그레이트 올드 원들의 보호해준다. 남태평양에 가라앉은 가공의 도시 리에(R'lyeh, 르리에라고 부르기도 한다)의 지배자로, 깨어남과 함께 세계에 재앙이 생긴다.

 

 

 

 

 

 

 

 

 

 

 

 

 

 

 

 

 

 

 

 

 

 

 

 

 

 

 

 

 

러브크래프트 마니아들에게 알려진 ‘크툴루 신화’는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공저자인 어거스트 덜레스와 그 후대의 작가들의 손에서 나온 것이므로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했던 기존 크툴루의 묘사와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세상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고대 신의 위엄은 《크툴루의 부름》(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에 수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가공의 책 ‘네크로노미콘’의 2행으로 된 문장이 인용되는데 크툴루의 존재감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것은 영원히 누워 있을 죽음이 아니며,
기이한 영겁 속에서 죽음은 죽음마저 소멸시킨다.

 

(《크툴루의 부름》 중에서, 158쪽)

 

러브크래프트 판타지에 입문하기 전에 로드 던세이니 판타지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두 작가의 판타지를 같이 읽거나 비교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페가나북스에서 번역한 던세이니의 단편집은 한 권당 1000원~2000원의 가격이니 던세이니 판타지로 향하는 입장료는 비싸지 않다.

 

 

 

 

 

 

 

 

 

 

 

 

 

 

 

 

 

 

 

 

 

 

 

 

 

 

 

 

 

 

 

 

 

 

 

 

 

 

 

 

 

 

 

*《페가나의 신들》(전 2권, 1905년 작)


*《시간과 신들》(Time and the Gods, 전 2권, 1906년 작, 《페가나의 신들》 속편)

*《웰러란의 검》(The Sword of Welleran and Other Stories, 1908년 작, 원본에 수록된 총 12편의 작품들 중 6편만 소개)


*《몽상가의 이야기》(A Dreamer's Tales, 1910년 작, 원본에 수록된 총 16편의 작품들 중 6편 수록,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18권 :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에 실린 일부 단편은 《A Dreamer's Tales》에서 뽑은 것인데 페가나북스 전자책과 겹치는 작품은  ‘검과 우상’과 ‘거지들’이다)

 

*《판의 죽음》(Fifty-One Tales, 1915년 작, 51편의 짤막한 이야기 중 26편만 수록)

 

 

 

 

 

 

던세이니의 단편소설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故 정태원이 번역한 단편 앤솔러지 《한밤의 지하철》(동승동, 1993 / 절판)이다. 소설 제목은 ‘두 병의 소오스’이다. 《세계 호러 걸작 베스트》(북타임, 2010)에 ‘계곡의 유령’이라는 소설이 수록되었다. 던세이니의 유일한 단편 선집(희곡 1편 수록)이 《바벨의 도서관 18권 :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바다출판사, 2011)이다. 최근에 나온 러브크래프트 전집 외전 6권에 던세이니의 작품으로 ‘노상강도’가 소개되었다.

 

던세이니는 장편소설도 많이 남겼는데 과연 종이책으로 국내에 선보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비록 뒤늦은 감은 있지만 환상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만큼 재평가가 되고 있는데 말이다. 던세이니 판타지도 러브크래프트 판타지처럼 일단 음울한 분위기에 허무주의적 세계관이 깔려 있다. 국내 독자들의 밝은 정서(?)를 생각한다면 너무 어두운 이야기는 잘 팔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장편소설을 선보인다고 해도 소수의 팬덤만 생길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던세이니의 작품은 종이책으로 나오기에는 좀 애매한 입장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세이니 판타지를 절대로 외면해선 안 된다. 특히 러브크래프트 마니아라면. 러브크래프트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크툴루 신화가 또 하나의 새로운 서브 컬처로 각광받을수록 던세이니 판타지 일부를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로 편입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러브크래프트 판타지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해석이 될 수 있고 던세이니 판타지의 영향력이 잊힐 우려가 있다. 러브크래프트 판타지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던세이니 판타지를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페가나북스의 외로운 출판 행보를 지지해두고 알아주는 장르문학 팬덤들이 많아져야 한다. 장르문학을 좋아한다면 이제 종이책이나 절판본만 찾아서는 안 된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수많은 전자책들 속에 알려지지 않은 장르문학 걸작이 숨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시절, 이 말만 들으면 벌벌 떨었다. 내가 제일 무서웠던 말은 ‘얼레리 꼴레리’였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의 코러스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얼레리 꼴레리, cyrus는 OOO을 좋아한데요!” 여자아이의 손을 살짝만, 아주 살짝만 건드렸을 뿐인데 친구들은 그걸 보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놀려댄다. 이래서 진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어도 함부로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친구들의 놀림을 받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그녀에게 장난을 치면서 괴롭힌다. 긴 머리카락에 살결이 희고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하면 그녀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직접 말 걸어보고, 집에 가는 방향이 같다면 같이 하굣길을 지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비록 좋아하는 감정을 여자아이에게 전달하지 못하더라고 그녀에게 최대한 관심 받고 싶었다. 그녀에게 짓궂으면서도 유치한 장난을 쳤다. 긴 머리카락을 살짝 당기거나 치마를 들치고 재빠르게 도망갔다. 그녀는 화가 나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도 장난을 멈출 수 없었다. 뭔지 모를 희열감이 느꼈다. 그녀가 내 행동에 즉각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까.

 

도가 지나친 장난은 그 사람과의 관계를 가까이해주기는커녕 더 멀어지게 만든다. 당신이 상대방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에 나쁜 의도가 없는 장난을 치더라도 상대방은 당신의 장난을 그냥 철없는 태도로 볼 뿐이다. 특히 스토커는 사랑하면 집착에 가까운 장난질도 괜찮다고 가볍게 생각한다. 관심 있는 상대를 병적으로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끈질기게 전화로 구애하거나 선물 공세를 펴기도 하지만 음란한 말을 하거나 폭행이나 협박, 강간이나 상해, 심지어는 살인이나 납치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가 가장 원하는 것은 관심이다. 그들은 따뜻한 사랑은 둘째치고 부모가 자기를 좀 쳐다보기라도 했으면 한다. 칭찬하건 욕을 하건 상관없으니 관심만이라도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마음속으로 ‘날 좀 봐주세요’라고 외치며, 부모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은 그래서이다. 다 자란 어른도 예외는 아니다. ‘그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은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고독감을 덜어줌으로써 약간의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런데 상대의 시선이 자신에게만 향하길 원하는 마음이 집착으로 변하면 문제가 된다. 상대를 집요하게 괴롭히면서 자기를 알리는 데 열중한다. 그 피해의 정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에도 상대를 괴롭혀야 자신이 주목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사랑을 쟁취하려는 행동으로 자기합리화 한다. 이런 행동은 본질적으로 관심을 받고 싶고, 사랑을 원하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최근 가카께서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회고록을 펴냈다. 자원외교와 4대강 사업 둥 자신의 업적을 자평한 내용 때문에 가카를 미워하는 여론과 독자들이 많아졌다. 신기하게도 2만 8000원이 되는 만만치 않은 가격에 800쪽에 이르는 분량에 달하는 가카의 책을 안 읽은 사람들도 너나할 것이 회고록에 대한 악평을 남겼다. 정말 가카의 능력은 대단하다. 최악의 책은 독자들은 거들떠보지 않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하루 자고 일어날수록 판매부수는 늘어난다. 사람들은 가카의 회고록을 돈 주고 읽지 말라고 권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사보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가카는 엄청난 착각에 빠져 있다. 자신의 업적을 좋게 포장해서 국민들에게 알리면 전임 대통령이 돼서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카가 회고록을 펴내는 데 고집하는 태도에서 애정결핍자의 전형적인 심리 상태를 발견할 수 있다. 상대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도록 민폐를 끼쳐서라도 상대에게 최대한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가카의 임기 시절을 떠올리면 국민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카는 대통령 자리에 물러나서도 끝까지 국민들을 괴롭힌다. 가카는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뻔뻔하게도 회고록을 펴내는 아주 심한 장난을 치고 말았다.

 

회고록이 잘 팔려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쭉쭉 올라가더라도 가카의 인지도는 쭉쭉 떨어진다. 대통령 시절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해 빅엿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회고록 한 권으로 단 며칠 만에 국민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가카가 자초한 일이다. 국민과 여론은 가카의 회고록을 너무나도 뻔뻔하고 정도가 지나친 최악의 장난질로 생각하는데 가카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생각보다 너무 진지하다. 왜 자신의 회고록을 나쁘게 보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럴 만하다. 애정결핍자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좋은 쪽으로 합리화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자신의 약점과 절대로 드러내면 안 되는 치부를 가릴 수 있으니까. 국민들에게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가카가 불쌍하다. 회고록에 임기 시절에 이룬 업적을 과대포장하지 않고, 부족한 국정 운영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아니, 그냥 회고록을 펴내지 않고 조용히 자택에 머물러 있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심한 욕을 먹지 않았다.

 

가카가 회고록을 향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자뻑에 가까운 자화자찬이 넘치는 회고록에 대해서 이 말 한 마디만 하면 된다.

 

 

 

            

 

 

 
그렇지만 임기 시절에 불통 이미지 1위에 올랐던 가카 클라스는 영원하다. 국민들을 상대로 회고록을 펴내는 거대한 장난질에 대해 반성하는 카가의 모습은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만병통치약 2015-02-06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 선택에 그런 시스템이 있군요 항상 궁금했습니다 ^^ 저 책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봐요 조용히 파 묻혀 있으면 잊어 버릴텐데 사람들의 관심과 분노를 일으켰잖아요 ㅋㅋ

cyrus 2015-02-07 11:21   좋아요 0 | URL
아무리 가카는 숨어 지내도 불편한 진실은 밟혀지기 마련입니다. 독 안에 든 `쥐`에요.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2-0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러스 님의 이명박을 향한 ˝ 부들부들 ˝ 이 느껴집니다.

cyrus 2015-02-07 11:23   좋아요 0 | URL
가카의 회고록을 읽고 진솔한 악평을 남겨주신 지인이 있는데 그 분 덕분에 제 수명이 연장될 수 있었어요. 생명의 은인입니다. ㅋㅋㅋ

마태우스 2015-02-07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래도 가카가 회고록을 내주신 덕분에 님의 이 훌륭한글을 읽었네요 부끄럽지만 님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확실시 알게됐습니다그런점은 긍정적인 면이네요

cyrus 2015-02-07 11:28   좋아요 0 | URL
회고록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은 졸문인데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15-02-07 0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좋아하는 아이에게 짓꿎은 장난만 친 나날들에 대한 후회가...-_-::
그건 그렇고, 가카의 저 회고록은 가짜 fact를 기록으로 남겨 나중에 써먹겠다는 의도가 하나 보이는 것 같은데요. 나중에 변명꺼리든 보수든 누군가 분명히 이를 인용할테니까요. 그런데 결과는 자신이 저지른 실정의 내역을 하나씩 리스트하는 것으로 끝난듯...ㅎㅎ 그야말로 자기발을 쏴버린 결과를 맞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cyrus 2015-02-07 11:27   좋아요 0 | URL
언젠가 가카는 회고록을 펴내는 일을 후회하게 될 겁니다. ㅎㅎㅎ

stella.K 2015-02-07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아닌 것 같던데...
좋아요 5개라도 알라디너의 선택에 꼭 올라가는 건 아닌 것 같더라구.
나도 경험한 바 있고, 다른 알라디너도 보니까 그렇고.
그러니까 알라디너의 선택은 알라딘 사측이 최종적으로 좋아야 올라 간다는 말씀!
또한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도 가카를 싫어하는가 보지.
그러니 이 알라디너의 선택이란 것도 별로 공정한 것 같진 않고...
나도 좀 읽지도 않으면서 또 앞으로 읽을 것도 아니면서 악평부터 하는 일은
좀 그만 하면 좋겠다.ㅠ
그런데 몇년 전에 빌 클린턴이 회고록 냈잖아.
전화번호부 같은 책 두 권이던데 그것과는 어떻게 비교되는지 궁금하긴 하더군.

cyrus 2015-02-07 12:09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누님 말씀 듣고 보니 예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우연히 다른 알라디너님의 글을 읽다가 알게 되었는데 인지도 높은 출판사의 책만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마립간 2015-02-07 12:55   좋아요 0 | URL
`알라디너의 선택`은 `지기` 님의 어느 글에 본 것인데, 로직으로, 그러니까 기계적으로 반영된다고 했습니다. 단, 책의 링크가 있어야 하고 그 책이 신간이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요. 그리고 당연히 추천의 시간도 관련있고요. 인지도가 낮은 출판사로 인해 노출이 적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데요.

cyrus 2015-02-0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o. 마립간님 / 제가 `알라디너의 선택`에 관한 언급 때문에 북플에 처음 가입하는 분들에게 오해를 불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립간님 말씀대로 알라딘 로직, 그러니까 `알라디너의 선택`에 부합되는 글이 노출되도록 하는 알고리즘이 있는 건 맞습니다. 제가 ``알라디너의 선택`을 보게 되면 인지도 높은 책이 언급 횟수가 많다고 언급한 점은 제가 착각한 것 같습니다. `알라디너의 선택`을 유심히 보지 않아서 잘못된 추측을 하고 말았습니다. 몰랐던 점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qualia 2015-02-07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판단엔 가카는 영리(영악)하신 분이에요.
그에 비해 ‘우리’나 우리 국민들은 미련하기 짝이 없는 곰탱이들이죠.
가카는 국민들이 미련 곰탱이라는 걸 완전 파악하고 그걸 기막히게 이용한 것뿐이죠.
해서 비판 대상은 가카보다는 우리 국민 자신이어야 합니다.
한국 국민들보다 ‘병신스런/병신 같은’ 국민은 세상에 없습니다.

알라딘 서재 동네 사람들한테는 커다란 착각이 있는 듯합니다.
즉 책깨나 읽는다는 사람들이 더 현실감각 없는 착각을 잘한다는 것이죠.
지적/비판적 판단감각과 정의감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발언하는
계층이 다수일 거라고, 아니 최소한 다수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계몽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세상은 결국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상/서재에서 일어나 바깥에 나가서 50~60대 이상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실세계 여론을 들어보고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들도 가카나 닭통 비판/욕은 해요.
쓴웃음 나오는 게 저들은 우리보다 욕의 강도가 더 세다는 것입니다.
허나 그러면서도 결국 결론은 박정희고 최종적으론 종북 타령입니다.
더 이상 대화가 안 통합니다. 계속하다간 멱살잡이 아니면 정신병자 소리 듣습니다.
수많은 평균적/일반적 이명박과 박근혜가 가카를 만들고 닭통을 만든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 자신이 바로 그들 자신이란 것입니다.

아무리 가카나 닭통 같은 위대한 영도자가 나타나서 연속으로 나라꼴을 완전히 절단내도
이 병신 같은 한국 국민들은 계속 결론은 박정희로 수렴됩니다.
그리고 자학/자멸의 굿판인 종북 타령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친아버지를 죽인 의붓아버지를 자신의 친아버지로 섬기는 병신 같은 한국 국민들...

아무리 가카나 닭통을 신랄하게 비판해도 소용없다고 봅니다.
그보다 더 우매하고 병신 같은 국민들이 무슨 천지개벽이라도 벌어져서 깨어나지 않고서는...

[덧]

‘병신스런/병신 같은’이란 말보다 한국 국민들의 우매함과 어리석음을 더 잘 표현하는 수식어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매우 상스럽고 반지성적으로 들리는 말이라서, 쓰는 사람이 오히려 누워서 침 뱉는 격에 해당하죠. 그러나 세계적으로/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등신 같고, 머저리 같고, 미련 곰투가리 같은 한국 국민들의 우매함/어리석음/멍청함/비굴함 따위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는 약간 다른 뉘앙스지만, 이수열 선생께서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말 바로 쓰기』(현암사, 1999)에서 분명히 쓰고 있는 표현입니다. 저런 적나라한 표현을 자주 입에 올릴 필요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써야 할 때는 강력한 의미를 담아서 써야 할 듯합니다. 저 또한 한국 국민의 일원이지만, 정말 구제불능의 한국 국민들은 병신 같다고 생각합니다. 종북/빨갱이/친북 타령으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행위는 결국 친아버지를 죽인 의붓아버지를 원수인 줄도 모르고 (아니 알면서도) 자신의 친아버지로 섬기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병신과 머저리들의 작태일 뿐입니다. 적어도 한반도 반쪽 남한땅의 52~60% 이상은 그런 점에서 광신도와 다름없습니다. 우리 한민족이 비정상이 아닌 이상, 같은 동포/형제자매와 칼과 총을 겨누며 악에 받쳐 싸울 까닭이 없습니다. 따라서 병신스러운/병신 같은 한국 국민이란 표현은 결코 틀린 표현도, 지나친 표현도 아닙니다.

cyrus 2015-02-07 17:38   좋아요 0 | URL
댓글 잘 봤습니다. 작년에 정몽준 아들이 국민이 미개하다는 발언을 하다가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은 적도 있었죠. 이 해프닝 때문에 정치인으로서의 정몽준 이미지도 타격을 입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몽준 아들의 발언이 불쾌하게 들릴 수 있는 심한 표현을 해서 그렇지 아직 저를 포함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성숙하다고 볼 수 없는 건 사실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 정부가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문제 때문에 국민의 원성이 높아졌는데 차기 대선 때 야당이 승리할 것이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뼛속 깊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대구 경북은 새누리당 출신을 뽑으니까요.

qualia 2015-02-08 07:45   좋아요 0 | URL
제 비판 맥락은 정몽준 아들의 국민 미개 발언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또한 정몽준 아들의 발언에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제 비판 내용이나 맥락은 정몽준 아들의 비난 내용이나 맥락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정몽준 아들은 권력자의 편에서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본 시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제 비판은 같은 ‘못난’ 국민의 일원이라는 자각/시각에서 나온 것으로서 반성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매한 국민들을 이용해먹는(중우정치를 획책하는) 정치꾼이나 권력자들을 최우선적으로 경계하고 강력 비판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제가 댓글 첫머리에서 이명박을 짧게 희화화하고 (논할 가치조차 없다고 마무리한 뒤) 곧장 우매한 국민 수준 비판에 돌입한 것은 바로 그런 전제/맥락에서였습니다. 저는 독자분들이 그런 맥락 정도는 충분히 감지하리라고 봅니다.

다른 독자분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최근(뿐만 아니라 십수 년째) 제 일터에서 다양한 계층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나면서, 특히 우리 아버지/어머니 세대 분들과 만나 직접 세상 살아가는/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논쟁하면서, 파악한 여론을 근거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저 개인적/주관적/심리적 분기탱천에서 게거품을 문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국 (국민)이 자초하고 있는 ‘병신같이’ 한심스러운 현상황 ― 남북대치의 극렬화, 호남과 영남의 지역대결 격화, 이런 민족적 갈등과 반목을 확대재생산하면서 정치적 반사이익을 꾀하는 정치꾼/권력자들, 적대적 공존을 획책하는 남북 정권/군부세력 무리들, 이런 무리들의 노예를 자처하면서 선거 때마다 표를 몰아주는 우매한 국민들 등등...

거의 24시간 남한과 북한의 극한대결 조장에 혈안이 된 듯한 종편 채널들의 ‘병신 같은’ 짓거리 ― 종편을 보면 건전한 상식인의 시각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논리들이 판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구세력들의 이런 노골적 ‘국민의식화교육’ 프로그램들을 50~60대 이상의 우리 아버지/어머니 세대 분들이 인기 드라마보다 더 열광적으로 시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 가정은 물론이고 대중목욕탕, 노인정, 버스 터미널 등등, 텔레비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종편의 선전선동 방송이 채널을 독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함 가셔서 직접 확인들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내보내는 뉴스, 대담 프로, 특집방송 등등은 거의 모두 종북 때려잡기, 남북 이질화 추진, 남북대결 조장, 수구세력 특권/이권/지배권 강화, 현정권 실정에 대한 대리변명과 옹호, 범야권 비판세력 확인사살식 음해, 신자유주의적 사상 주입, 미국 속국 자처, 친일 친미 논리 주입 따위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의 50~60대 이상 국민들이 세상 사건사고에 대한 소식/뉴스와 정치적 견해 등등을 어디에서 입수하고 어떻게 형성하겠습니까? 책깨나 읽으면서 그래도 합리적/비판적 지성인임을 은근히 자처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조차 세상 사건사고에 대한 소식/뉴스와 정치적 견해 등등은 TV 뉴스 프로그램, 대담 프로그램 따위에서 가장 많이 입수하고 그것들에 근거해 형성할 것입니다. 현대사회(특히 남한사회)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구조화돼 있고, 우린 모두 그런 구조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들수록 뇌가 굳어버려 사고방식이 점점 보수화/수구화돼가는 남한사회의 50~60대들 이상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제가 그들과 대화/논쟁하면서 거듭거듭 확인한/확인하는 사실은 그들이 종편의 논리와 주장을 놀랄 만큼 똑같이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공사판 일터, 저잣거리, 택시 안, 주택가 골목, 공원, 심지어 명절날 고향땅 등등에서 만난 50~60대 이상 아버지/어머니 세대, 심지어 40대 아래의 젊은 세대까지 모두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보수화/수구화의 중증이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됐는지 모릅니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부정적 인식,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광적인 증오, 종북/친북 개념에 대한 종편식 악의적 편파논리의 심화 등등은 이성적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만약 이에 대해 ‘진보적’ 민족적 시각으로 저들과 논쟁하다가는 멱살잡이까지 가거나 사회부적응자, 간첩, 정신이상자 취급까지 받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이석기 재판 결과, 신은미/황선 토크 콘서트 종북 낙인찍기 따위 등등은 이 대한민국 사회의 이념적 매카시즘적 광기/독재정권적 사상검증과 사상탄압/정신적 병리 현상/양심 마비/민주적 정의 추락/법치 상실 따위가 빚어낸 블랙 코미디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알라딘 블로거들과 진보적 젊은 세대들은 웬만큼 동의하리라 판단합니다만, 이런 진보적 견해를 끝까지 관철하는 한국 국민들은 이제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장악 당한 방송3사와 종편의 악영향과 폐해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통일신라 676년부터 조선왕조 1910년까지 사실상 1천년 이상을 중국이나 이민족의 속국으로 살아왔다는 굴욕적 역사적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또한 일제 식민지 노예살이를 사실상 50년 이상 해왔었다고 자각해야 합니다. 그 뒤로는 한 술 더 떠서 동족살육/동족포식의 비극을 자초했고 그 대가로써 남과 북이 갈라져 70여년 동안 동포/형제자매 가슴에 총칼을 들이대며 집안싸움을 극렬하게 해왔고 지금 이 순간도 그 못난 짓을 계속하고 있는 민족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남쪽 땅덩어리는 호남과 영남으로 또 찢어져 너 죽고 나 살자식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병신 같은’ 짓거리입니까? 대체 이것 말고 무엇을 병신스럽다고 욕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런 자각이 있었다면 결코 우리 아버지/어머니 세대 분들이 저렇게까지 수구화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 국민들이 이런 뼈아픈 자각에 이르지 못하고 노예적 삶을 자초해왔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같은 무능 정권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지금 신성한 한국 국민들은 (진보/보수 진영을 떠나 모두) 현시국의 난맥상이나 살림살이의 고초 따위에 대한 책임을 정부나 정권 측에 전가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병신 같은’ 행태입니다. 그런 병신 같은 의식 수준으로 병신 같은 정권을 뽑아놓은/만들어놓은 당사자들이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자각하지 못하는, 자기반성하지 못하는, 못난 국민들의 전형적인 행태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노예가 노예임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즉 한국 국민들이 병신 같은 의식 수준에 벗어나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한국/한민족은 멸망하고 말 것이라 봅니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 여부보다 한국 국민들의 병신스러운 의식 수준이 더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2015-02-08 03:11)

레삭매냐 2015-02-09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B는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셨네요.
어느 신문 칼럼에선가 보니 그냥 동아리 활동
이나 하시지 무슨 책까지 내냐고 하더군요.

cyrus 2015-02-09 21:15   좋아요 0 | URL
가카가 국민의 관심을 받고 싶은가 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