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나이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있어도,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읽고 듣고 본 옛이야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영화, 만화, 어린이용 동화 등 다양한 형태의 텍스트로 변용돼 이야기의 원형이 덜 알려져 있다. 축약된 어린이용 동화가 아닌 완전한 형태의 이야기를 읽으려면 앙투안 갈랑 판본과 리처드 버턴 판본을 같이 읽어보는 것이 좋다.
앙투안 갈랑 판본은 유럽 최초로 소개된 《아라비안나이트》 번역본이다. 1704~1717년 프랑스에서 간행되었다. 갈랑은 시리아 필사본을 기본 텍스트로 삼았으나, 유럽 독자들을 고려해 적절히 번안했다. 갈랑 판본이 유럽 전역에 큰 인기를 끌게 되자 본격적으로 다양한 《아라비안나이트》 번역본들이 나왔다. 《아라비안나이트》 번역 대열에 합류한 판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리처드 버턴 판본(1885년)이다. 리처드 버턴 판본이 더 많이 알려진 이유는 이전의 갈랑 판본에서 볼 수 없는 노골적인 성(性) 묘사 때문이다. 이국적인 섹슈얼리티가 가득한 버턴 판본은 당시 유럽의 문화적 유행이었던 왜곡된 오리엔탈리즘과 맞물려 대중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 속 야한 장면은 버턴 판본의 원형을 축소하는 약점이 되었다. 버턴이 사망한 후, 《아라비안나이트》의 섹슈얼리티를 싫어한 버턴의 부인은 야한 장면을 뺀 삭제판을 펴내기도 했다. 그 후로 《아라비안나이트》는 어린이 독자를 위한 동화로 탈바꿈했고 오늘날에 야한 장면이 삭제된 건전한 이야기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완역본은 있어도 ‘정본’은 없다. 그러니까 갈랑 판본과 버턴 판본 중에《아라비안나이트》 정본을 고를 수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갈랑은 고상한 유럽 독자를 위해 야하고 잔인한 장면을 삭제했고, 시리아 필사본에 없는 민담을 추가했다. 사실 갈랑이 참고한 시리아 필사본은 《아라비안나이트》 원형에 가깝다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아라비안나이트》의 원본에 가까운 텍스트는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 오래전부터 구전되거나 필사본으로 전해지던 민담들을 아우르며 집대성된 것인만큼, 사실 원전이라는 의미 자체가 무의미하다.
버턴은 《아라비안나이트》 머리말에서 갈랑 판본이 동양의 원전을 올바르게 전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자신의 판본이야말로 동양의 위대한 전설을 충실히 전했다고 썼다. 그러나 버턴 판본도 비판적인 평가를 피하지 못한다. 버턴은 《아라비안나이트》의 번역가 이전에 아랍어에 능통하고 무슬림의 성지 메카를 직접 참배한 경험이 있는 탐험가이다. 버턴 판본은 쿠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슬람 문화를 주석을 붙이면서까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풍문에 근거한 내용이 많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천일야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1001일 밤의 이야기를 의미하는데 《아라비안나이트》의 아랍어 원제가 ‘알프 라일라 와 라일라’(Alf Laylah wa Laylah), 즉우리말로 풀이하면 ‘천일의 밤과 하룻밤’이다. 일역본을 국내에 번역하면서부터 ‘천일야화’라는 말이 통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갈랑 판본은 200일 분량의 내용을 담았고, 버턴 판본은 ‘알라딘과 마술 램프 이야기’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1001일 밤의 이야기에 제외하여 부록으로 소개했다. 갈랑 판본과 버턴 판본을 이야기 편집 과정에 큰 차이가 있다. 갈랑 판본에 없는 이야기가 버턴 판본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갈랑 판본과 버턴 판본에 나오는 ‘상인과 마신’ 이야기(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 1권에 수록, ‘상인과 정령’이라는 제목으로 갈랑의 《천일야화》 1권에 수록) 속에 세 명의 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갈랑 판본에서는 세 번째 노인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셰에라자드가 그 내용을 모른다고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천하의 셰에라자드가 이야기를 모를 수가 있다니. 다행히 셰에라자드는 바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처형당하는 위기의 순간을 넘어갔다. 그밖에도 갈랑 판본에서 ‘어부와 마신’ 이야기(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 1권에 수록, ‘어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갈랑의 《천일야화》 1권에 수록) 속에 나오는 작은 이야기 ‘신디바드 왕과 매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버턴 판본은 갈랑 판본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더 많으므로 두 개의 판본을 같이 읽어봐야 한다. 무조건 한 쪽 판본만 읽으면 《아라비안나이트》 판본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이 읽은 판본이 《아라비안나이트》 원전으로 오해할 수 있다.
절판본을 제외하고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진 번역본을 언급하자면 갈랑 판본은 열린책들(제목은 《천일야화》), 버턴 판본은 김병철 번역의 범우사판, 고정일 번역의 동서문화사판이 있다. 두 달 전부터 갈랑의 《천일야화》와 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를 같이 읽고 있다. 그런데 막상 같이 읽으면 쉽지 않다. 꽤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아시다시피 《아라비안나이트》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와 같은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하나의 큰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 안에 작은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의 정조를 불신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어김없이 죽이는 술탄의 폭정을 막기 위해서 셰에라자드는 이야기의 미궁을 만든다. 그 속에 술탄은 무한정 이어지는 이야기의 미로 속에 갇혀버렸다. 금세 끝나는가 싶다가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무(圓舞)의 뱀처럼, 이어지고 이어진다. 하루 이틀 밤에 단락이 지어지는가 싶으면, 무려 100일 이상 밤을 이어지는 가장 긴 이야기도 있다. 「오마르 빈 알 누만 왕과 두 아들 샤르르칸과 자우 알 마칸 이야기」(45~145일째 밤)는 버턴 판본에만 있다. 현재까지 갈랑의 《천일야화》총 6권 중 3권까지 읽었는데 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는 여전히 1권 절반을 넘게 읽었을 뿐 완독하지 못했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 가장 긴 이야기의 미로라고 할 수 있는 「오마르 빈 알 누만 왕과 두 아들 샤르르칸과 자우 알 마칸 이야기」에 갇힌 상태다.
내가 아랍어 전공자가 아니라서 갈랑의 《천일야화》와 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 번역에 대해서 논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술술 잘 읽히는 번역은 갈랑의 《천일야화》다. 반면 동서문화사판 《아라비안나이트》는 갈랑의 《천일야화》에서 삭제된 시와 노랫말이 있어서 속도를 내서 읽기가 쉽다. 게다가 동서문화사판은 책이 큰데다가 활자가 작아서 장시간 읽을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야기의 힘에 이끌려 셰에라자드의 미로를 통과해야하는데,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면 미로에 갇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라비안나이트》를 제대로 읽고 싶은 독자에게 버턴 판을 권하고 싶다. 특히 성인 남성 독자라면 당연히 야하고 잔인한 묘사가 넘치는 버턴 판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사실 생각보다 그렇게 야하지 않다. 정말로! 선정성을 제외한다면 버턴 판본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음란하다는 누명 때문에 《아라비안나이트》 속에 겹겹이 들어 있는 세상에 대한 통찰, 삶에 대한 진리를 보지 못한다. 버턴 판본을 외면하고, 읽지 않는다면 갈랑의 《천일야화》 6권짜리를 완독하더라도 그건 반쪽자리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은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