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이 말만 들으면 벌벌 떨었다. 내가 제일 무서웠던 말은 ‘얼레리 꼴레리’였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의 코러스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얼레리 꼴레리, cyrus는 OOO을 좋아한데요!” 여자아이의 손을 살짝만, 아주 살짝만 건드렸을 뿐인데 친구들은 그걸 보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놀려댄다. 이래서 진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어도 함부로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친구들의 놀림을 받지 않고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그녀에게 장난을 치면서 괴롭힌다. 긴 머리카락에 살결이 희고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어떻게 하면 그녀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직접 말 걸어보고, 집에 가는 방향이 같다면 같이 하굣길을 지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비록 좋아하는 감정을 여자아이에게 전달하지 못하더라고 그녀에게 최대한 관심 받고 싶었다. 그녀에게 짓궂으면서도 유치한 장난을 쳤다. 긴 머리카락을 살짝 당기거나 치마를 들치고 재빠르게 도망갔다. 그녀는 화가 나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도 장난을 멈출 수 없었다. 뭔지 모를 희열감이 느꼈다. 그녀가 내 행동에 즉각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까.
도가 지나친 장난은 그 사람과의 관계를 가까이해주기는커녕 더 멀어지게 만든다. 당신이 상대방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에 나쁜 의도가 없는 장난을 치더라도 상대방은 당신의 장난을 그냥 철없는 태도로 볼 뿐이다. 특히 스토커는 사랑하면 집착에 가까운 장난질도 괜찮다고 가볍게 생각한다. 관심 있는 상대를 병적으로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끈질기게 전화로 구애하거나 선물 공세를 펴기도 하지만 음란한 말을 하거나 폭행이나 협박, 강간이나 상해, 심지어는 살인이나 납치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가 가장 원하는 것은 관심이다. 그들은 따뜻한 사랑은 둘째치고 부모가 자기를 좀 쳐다보기라도 했으면 한다. 칭찬하건 욕을 하건 상관없으니 관심만이라도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마음속으로 ‘날 좀 봐주세요’라고 외치며, 부모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은 그래서이다. 다 자란 어른도 예외는 아니다. ‘그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은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고독감을 덜어줌으로써 약간의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런데 상대의 시선이 자신에게만 향하길 원하는 마음이 집착으로 변하면 문제가 된다. 상대를 집요하게 괴롭히면서 자기를 알리는 데 열중한다. 그 피해의 정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에도 상대를 괴롭혀야 자신이 주목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사랑을 쟁취하려는 행동으로 자기합리화 한다. 이런 행동은 본질적으로 관심을 받고 싶고, 사랑을 원하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최근 가카께서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회고록을 펴냈다. 자원외교와 4대강 사업 둥 자신의 업적을 자평한 내용 때문에 가카를 미워하는 여론과 독자들이 많아졌다. 신기하게도 2만 8000원이 되는 만만치 않은 가격에 800쪽에 이르는 분량에 달하는 가카의 책을 안 읽은 사람들도 너나할 것이 회고록에 대한 악평을 남겼다. 정말 가카의 능력은 대단하다. 최악의 책은 독자들은 거들떠보지 않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하루 자고 일어날수록 판매부수는 늘어난다. 사람들은 가카의 회고록을 돈 주고 읽지 말라고 권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사보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가카는 엄청난 착각에 빠져 있다. 자신의 업적을 좋게 포장해서 국민들에게 알리면 전임 대통령이 돼서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카가 회고록을 펴내는 데 고집하는 태도에서 애정결핍자의 전형적인 심리 상태를 발견할 수 있다. 상대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도록 민폐를 끼쳐서라도 상대에게 최대한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가카의 임기 시절을 떠올리면 국민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카는 대통령 자리에 물러나서도 끝까지 국민들을 괴롭힌다. 가카는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뻔뻔하게도 회고록을 펴내는 아주 심한 장난을 치고 말았다.
회고록이 잘 팔려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쭉쭉 올라가더라도 가카의 인지도는 쭉쭉 떨어진다. 대통령 시절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해 빅엿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회고록 한 권으로 단 며칠 만에 국민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가카가 자초한 일이다. 국민과 여론은 가카의 회고록을 너무나도 뻔뻔하고 정도가 지나친 최악의 장난질로 생각하는데 가카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생각보다 너무 진지하다. 왜 자신의 회고록을 나쁘게 보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럴 만하다. 애정결핍자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좋은 쪽으로 합리화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자신의 약점과 절대로 드러내면 안 되는 치부를 가릴 수 있으니까. 국민들에게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가카가 불쌍하다. 회고록에 임기 시절에 이룬 업적을 과대포장하지 않고, 부족한 국정 운영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아니, 그냥 회고록을 펴내지 않고 조용히 자택에 머물러 있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심한 욕을 먹지 않았다.
가카가 회고록을 향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자뻑에 가까운 자화자찬이 넘치는 회고록에 대해서 이 말 한 마디만 하면 된다.
그렇지만 임기 시절에 불통 이미지 1위에 올랐던 가카 클라스는 영원하다. 국민들을 상대로 회고록을 펴내는 거대한 장난질에 대해 반성하는 카가의 모습은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