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안나이트》는 페르시아의 왕 샤리아르와 그의 동생 타타르의 왕 샤 자만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앙투안 갈랑 판본을 번역한 《천일야화》에서는 형은 샤리아, 동생은 샤즈난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여기서는 프랜시스 버턴 판본을 번역한 동서문화사의 《아라비안나이트》의 표기명을 따르겠다) 샤리아르와 샤 자만은 가장 불행한 형제로 나온다. 둘 다 아내의 부정을 목격한다. 가장 먼저 아내의 부정에 충격을 받은 사람이 동생이다. 그런데 《아라비안나이트》의 초반부터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될 장면이 나온다.

 

샤 자만은 형을 만나려고 잠시 궁을 떠난 사이에 왕비와 신하가 벌거벗은 상태로 한 침대에 있는 것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 바로 살해한다. 샤 자만은 다시 형의 나라로 가서 왕비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으려고 해보지만, 우울 증세가 심각했다. 푸짐한 진수성찬 앞에서도 술과 음식을 거부하고 얼굴에는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형은 우울한 동생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냥을 제안하지만, 동생은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궁에 남는다. 그런데 동생은 우연히 후궁과 노예 들로 구성된 집단 성교를 목격한다. 놀랍게도 그 충격적인 현장에 형의 아내인 왕비가 있었다. 동생은 자신처럼 불행한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우울증에서 벗어난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동생이 의아하게 여긴 형은 그 이유를 알려달라고 하자 동생은 자신이 목격한 왕비의 성교 파티를 밝힌다. 두 사람은 그 비밀의 장면을 목격하기 위해서 일부러 사냥하러 간 척 궁을 떠난 뒤에 다시 몰래 돌아온다. 형은 자신 몰래 일삼은 아내의 불륜에 분노를 일으키게 되고, 성교 파티에 나온 후궁과 노예, 그리고 왕비까지 살해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형 샤리아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여성을 향한 그릇된 인식을 하게 된다. 매일 신혼을 치르고 신부를 죽이는 일을 반복한다. 왕의 광기를 막기 위해서 등장한 처녀 신부가 바로 셰에라자드다. 아동용 《아라비안나이트》는 샤 자만이 목격한 집단 성교 장면이 삭제된다. 내가 기억하기에는 아동용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온 샤리아르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선량한 왕이었다. 왕이 영리한 신부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지는 훈훈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성인용 원전이 아동용으로 바꾸면, 이야기의 시작과 등장인물의 성격이 확 달라진다.

 

야한 장면이 삭제된 갈랑 판본도 이 집단 성교 장면이 나온다. 그렇지만 표현 수위가 생각보다 세지 않다. 그 문제의 집단 성교 장면을 갈랑은 어떻게 묘사했는지 보도록 하자.

 

 

술탄(샤리아르/샤리아)의 궁에 은밀하게 나 있는 문 하나가 갑자기 열리더니, 거기서 스무 명의 여인들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중에는 다른 여인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술탄의 부인, 즉 왕비가 있었다. 왕비는 타타르 국왕(샤 자만/샤즈난)도 술탄과 함께 사냥을 떠났다고 생각하고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그가 앉아 있는 창문 아래까지 걸어왔다. 호기심에 사로잡힌 샤즈난은 자신의 모습은 드러내지 않은 채 모든 걸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왕비를 수행하는 여인들은 그때까지 자신들을 가두고 있던 모든 굴레를 벗어 버리려는 듯 우선 너울 아래 가려져 있던 얼굴을 드러낸 다음, 거추장스러운 긴 드레스를 훌훌 벗어 던져 아슬아슬한 속옷만을 걸친 알몸이 되었다. 이어 더욱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모두가 여인인 줄 알았던 스무 명 중에서 열 명은 여장한 흑인 남자들이었는데, 그들이 각기 여인 한 명씩을 품에 안고 희롱하기 시작했다. 왕비도 홀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가 손뼉을 치면서 <마수드! 마수드!>라고 외치자, 다른 검둥이 하나가 즉시 나무 위에서 내려오더니 신이 나서 그녀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1》 중에서, 19~20쪽)

 

 

화자(갈랑)는 집단 성교 장면을 반드시 묘사할 필요가 없는 장면이라고 언급하면서 두루뭉술 넘어간다. 반면 버턴은 문제의 장면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버턴 판본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야한 장면은 ‘버턴의 아라비안나이트는 성인용’이라는 불멸의 이미지를 단번에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는 버턴의 묘사를 인용해본다. 갈랑의 묘사와 한 번 비교해보시라.

 

 

굳게 닫혀 있던 왕궁 뒷문이 활짝 열리더니 여자노예 20명에게 둘러싸인 아름다운 왕비가 나타난 것이다. 보기 드문 미인으로, 균형잡힌 몸매와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한 몸짓은 마치 사랑의 화신 같았다. 왕비는 시원한 물을 찾는 영양처럼 단아하게 걸어 나왔다.

 

샤 자만은 창가에서 물러나 저쪽에서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여자들을 몰래 내려다보았다. 여자들은 창문 바로 아래를 지나 조금 더 나아가서 화원으로 들어가더니, 이윽고 커다란 연못 가운데 만들어진 분수가로 가서 모두 옷을 훌훌 벗어던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10명은 후궁들이고 10명은 백인 노예들이었다. 이윽고 그들은 둘씩 짝지어 흩어졌다. 한편 혼자 남은 왕비는 큰 소리로 쳤다. “이리 와요, 사이드 님!”

 

그러자 숲 속 한 그루 나무 위에서 거대한 몸집의 검둥이 하나가 눈알을 뒤룩거리고 침을 흘리면서 사뿐히 내려왔다. 백인이 보기에는 참으로 흉측스러운 모습이었다. 검둥이는 대담하게도 왕비 앞으로 다가가서 두 팔을 벌려 왕비의 목을 끌어안았다. 왕비도 검둥이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왕비도 검둥이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검둥이는 거칠게 왕비와 입을 맞추고는 마치 단춧구멍에 단추를 채우듯 두 다리를 상대의 다리에 걸고 그 자리에 자빠뜨린 다음 여자를 즐기는 것이었다.

 

다른 노예들은 그것을 보고 저마다 음욕을 채우기 시작했다. 입을 맞추고 포옹하고 서로 교접하면서 농탕치기를 그칠 줄 몰랐다.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노예들은 여자들 몸에서 떨어졌고 검둥이도 왕비의 가슴에서 몸을 일으켰다. 노예들은 다시 여장을 한 뒤, 나무에 기어 올라간 흑인을 제외하고 모두 왕궁으로 들어가 본디대로 뒷문을 닫았다.

 

 

(버턴 《아라비안나이트 1》 중에서, 39쪽)

 

 

원전에 있는 야한 장면을 버턴은 좀 더 노골적으로 묘사했다. 왕비의 모습을 농염하면서도 음란한 여성으로 그렸고, 음란한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는 충격적인 상황을 실감 나게 연출했다. 여기에 벌거벗은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장면의 삽화까지 나온다. 동서문화사의 《아라비안나이트》는 버턴의 주석까지 번역했는데 버턴은 주석을 통해 아랍 문화와 풍속을 유럽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전달하도록 노력했다. 그렇지만 주관적인 편견을 바탕으로 서술한 기록이 많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집단 성교 장면에 대한 버턴의 주석이 재미있다. 버턴은 음탕한 여자들은 흑인의 커다란 음경을 좋아한다고 썼다. 자신이 직접 확인한 어느 흑인의 음경의 크기를 자세하게 언급하면서까지 말이다. 사실 인종으로 음경의 길이는 흑인이 가장 큰 것은 맞다. 그런데 아랍 여성을 음란성에 초점을 맞춰 언급하는 대목이 불편하다. 주석에 맞지 않은 내용이다. 버턴은 왜 흑인 음경의 크기를 좋아하는 음란한 여성을 주석에 언급하는 것일까? 독자들을 자극할만한 야한 내용을 주석에 쓸 필요가 있었을까? 이 질문과 관련된 해답은 찾는다면 《아라비안나이트》가 야한 민담의 대명사가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장 레옹 제롬  「하렘의 테라스」 1886년

 

 

버턴이 《아라비안나이트》를 번역했던 당시 상황이라면 자연스러운 내용이다. 버턴이 활동했던 19세기 말 유럽은 오리엔탈리즘 문화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궁전 안에 비밀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왕비와 후궁들의 집단 성교는 남자들의 금단 장소인 하렘(harem)을 향한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단번에 모을 수 있는 인기 있는 장면이다. 하렘은 원래 후궁, 처첩만 기거하는 규방이었으나 오리엔탈리즘 문화와 만나면서 성적 판타지가 피어오르는 에로티시즘의 장소로 알려지게 된다. 동양 문화에 대한 유럽인의 관심에 맞물려 최대 수혜를 입은 문학작품이 바로 《아라비안나이트》다. 유럽인이 동경하고 선호하는 동양의 모습은 신비로우면서도 관능적이다.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야한 장면에서 이국적 섹슈얼리티에 매력을 느끼는 유럽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버턴의 눈으로 본 《아라비안나이트》에 ‘서양’이라는 오만한 불순물이 섞여 있다. 이 문화적 불순물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 이상, 이슬람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려고 버턴의 주석을 꼼꼼하게 읽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동서문화사 《아라비안나이트》에 이슬람 문화에 생소해서 혼동하기 쉬운 독자들을 위해 역자의 주석을 첨가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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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5-02-12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그가 보이네요...

cyrus 2015-02-12 10:37   좋아요 1 | URL
혹시 `그`가 버턴을 말하는 건가요? 제가 생각한 것이 맞다면 그럴 수도 있겠어요.

cyrus 2015-02-12 17:48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착각했어요. 맞아요. 남자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을 참고 견디기 힘들죠.. ^^;;

붉은돼지 2015-02-1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누르니 `좋아요 처리중입니다`이라는 메시지가 뜹니다... 이건 뭐지? 어쨋든 잘 처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호호호....잘 처리해 주세요..

cyrus 2015-02-12 10:38   좋아요 0 | URL
잘 처리된 것 같은데요. ㅎㅎㅎ

나와같다면 2015-02-1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말한 `그`는 샤리아르 와 샤 자만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