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후 뺑이 치며 하루 하루를 보내 던 어느 날, 보급 받은 개인 화기의 10미터 영점 사격 시간이었다. 분명 세발을 쏘았는데, 내 표적지의 구멍은 단 하나!! 소대장이 이를 보고는, 이때다 싶었던지 국민의 혈세인 두발의 총알은 어디갔냐며 군기 잡기를 시전, 나를 닥달하기 시작했다. 마침 바로 옆에 있던 중대장께서 이를 목격했다.
중대장은 나의 표적지를 살피더니, '소대장아!!, 한 구멍으로 세발을 죄다 관통시킨 이 알흠다운 탄착점이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게냐?' 이랬다. 탄착점을 뚫어져라 보던 소대장의 입은 떡 벌어지고, 두 눈은 똥그래졌다.
(이렇듯, 국민의 혈세는 군바리의 피보다 훨씬 더 진한 것이다. 국민을 지키라고 총을 보급해주는 것인데..... 그 총구를 국민을 향해 겨누게 했다고??? 세상에 이런 정신 나간 사람이 다 있나!!!!!!!!)
전에는 아예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알.흠.다.운. 탄.착.점. 덕분에 나는 순식간에 부대의 사격 선수로 발탁되었다. 그리고는 사단 사격 대회에 나가서는 덜컥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군바리의 쾌거는 늘 특박으로 직행 연결된다. 전시였다면 나는 분명 스나이퍼였을 것이다. 전시가 아니길 그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군바리가 휴가를 나오면 늘 그러하듯, 갈 곳은 많지만 오라는 곳은 없다. 할 수 없이 학교 동아리에 들르거나 아직 입대를 하지 않고 버티기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군바리를 딱히 달가워 하지 않는 이들과 쐬주 잔을 기울이는 것이 휴가나온 군바리들의 루틴이다.
그렇게 교정을 지나다가는데,
얼레?
아니, 니가 여기 왜?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군복을 입고 있어야 할 절친 과의 상상도 못할 조우 말이다.
절친도 당연히 입대를 했다. 그러나 너는 자격 미달이니 집으로 돌아 가라는 명을 받았다고 했다. 하긴, 21살의 젊은 나이에 구멍이 뚤려 바람이 새는 허파를 가진 나약한 자를 입대시켰다가는 경을 치고 말것이다. 그렇게 7~80대의 허파를 가졌다는 사실이 이 친구를 장군의 아들, 아니 神의 아들로 둔갑시킨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에는 하자가 있는 몸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멀쩡해도 일부러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판정받는다고 수군댔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째거나 당구를 500점이나 치는 그 어떤 사람은 부동시 판정, 군 면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 부동시 군 면제자의 명언이 갑자기 떠오른다 아놔~, '죄 지엇으니까 특검을 거부하는 것 아니게슴니꽈!!!!')
아니 그럴거면 병무청에서 걸렀어야지 입대시키고 커트할건 또 뭐냐!! 이래 저래 아까운 청춘 허송한다! 이러면서 나는 불평을 했다. 그러나 나의 불평은 안도의 불평이었다. 이 친구 만약 입대해서 나만큼 뺑이를 쳤다면 아마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싶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절친과 국가의 명령을 분명 같이 받았는데 나는 군대에서 뺑이를 치고 있고, 나의 절친은 복학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절친은 이래 저래 1년 넘게 허송하다보니 2년이 훌떡 갔고, 그간 써먹지 못해 녹슨 두뇌에 기름칠을 한다는 명분으로 학교 도서관과 동아리실에 와서는 온갖 불온 서적을 탐독하며 지내고 있던 것이었다.
당시 절친은 군바리인 나에게 책을 두 권 내밀었는데 다름 아닌 '페다고지' 와 '허균의 생각' 이었다. (허균을 몰랐던 나는 책을 받아든 순간, 허균은 시대의 반항아였구나 싶었다. 역시나 허균은 시대에 저항했던 인물이었다)
나는 속으로, 어쭈~! 받은거 돌려주냐!! 하면서 냉큼 받아 챙겼다. 아직도 나는 그 '페다고지'를 가지고 있는데 낡고 빛바랜 데다가 좀까지 먹은지라 건드리면 먼지가 일 지경이다. 절친이 나에게 남긴 유이한 책 이기에 나는 간직하고 있는 중이다. 절친은 한하운의 시집과 정현종이 겁나 어렵게 쓴 '시의 이해'를 아직도 지니고 있을까?
암기력은 스스로도 감탄해 마지않던 시기였고, 머리는 기름칠한 팽이 마냥 팽팽 잘도 돌아가던 시기였건만 정현종의 저 역작 '시의 이해'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에게는 마치 '시의 방ㆍ해ㆍ'처럼 읽혔으니 말이다. 차라리 일찌감치 절친에게 떠 넘긴 것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째거나
입대를 계기로 농사꾼의 아들이 장군, 아니 신의 아들로 탈바꿈한 이 사실을 부러워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또 어째거나
둘은 절친인 만큼 서로 얼싸안으며 뜻밖의 조우를 그렇게 기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