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개정판 현대사상의 모험 16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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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변


이 책 '열린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을 읽고 감히 리뷰를 쓴다는 것은 나의 능력으로 보아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칼 포퍼의 저술이 난이도가 있을 뿐 아니라 서양 철학의 神급인 플라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첫 쪽부터 끝까지 어느 한 쪽도 무심코 읽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귀하고 소중하며 너무나도 알차다. 하여 철학에 약한 내게는 강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자주, 다시 읽기를 반복한 이유이다. 내게 다행인 것은 책의 절반은 각주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나의 능력이 모자라 리뷰의 첫 문장을 시작하기가 아주 고민스러운 책이었다. 불구하고 리뷰를 쓰기로 하는 것은 이 책을 한 사람이라도 더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그리고 부제인 'The Spell of Plato' 을 역자는 '플라톤의 주.문.'으로 번역했지만 나는 '플라톤의 주.술.'정도로 해석하고 싶다. 만약 내가 역자였다면 분명 'spell'을 '주술'로 번역했을 것이다.



리뷰 ( I )


유태계 오스트리아 사람인 칼 포퍼의 소개 글은 "1937년 부터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했으며..." 라고 쓰고 있다. 칼 포퍼는 서문에 쓰기를 " 이 책을 쓰겠다는 최종 결단을 내린 것은 1938년 3월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소식을 듣던 날이었다." (p. xii) 라고 했다.

칼 포퍼가 이 책을 쓰게된 동기가 확실해졌다.
나치의 탄압을 받던 그가 조국을 침탈 당하자  부아가 치민 칼 포퍼는 '과연 전체주의의 근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저술의 이 곳 저 곳에서 칼 포퍼의 날카로워진 신경과 거칠어진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지만 확실히 칼 포퍼는 히틀러로 인해 열 받으셨다.



역사주의의 급진적 발전은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시작한다. "같은 강물에 몸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은  '모든 것은 생성ㆍ변화한다' 긍정적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다. 알고 보니 기득귄의 질서 유지를 위한 싸움에서 패배하자 그가 환멸을 느끼며 뱉어낸 말이었다. 그리고 약 100년이 지난 후 플라톤의 탄생은 서양 철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플라톤이 역사 주의를 절정에 다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유했던 민주주의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은 다소 놀라운 부분이었다. 오히려 그는 민주주의를 혐오했던듯 보인다.



플라톤을 서양 철학의 근간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서양 철학자들에게는 정신적 지주이자 배후가 되어주는 인물이다. 마치 인간 심리를 다루는 분들이 프로이트를 신성시 하듯, 서양 철학의 세계에서 거의 신급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 플라톤이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은 카르텔의 구심점이며 서양 철학을 대표하는 난공불락의 성(城) 과도 같다. 플라톤을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함은 자체 약점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쉴드치며 감싸고 도는 후학들이 너무나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 포퍼는 말한다, "정의(正義)에 대한 플라톤적인 이론과 현대의 전체주의적 이론이나 실천이 얼마나 유사한지 혼란을 겪어본 후라야 이런 문제들을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p.7)  라고. 이는 저술 내용의 표적이 플라톤임을 분명하게 밝힌 문장이다. 한마디로 총구를 플라톤을 향해 겨누겠다는 선언이다.



사실 난공불락의 요새(要塞)를 무너뜨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결코 강력한 투석기가 아니다. 투석기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다.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는 진짜 난공불락의 요새, 플라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지능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휴민트(humint)를 쓰는 방법이다. 잡입 요원이나 내부 첩자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비용 절감은 물론 성공 확률도 매우 높다. 다행스럽게도 내부 첩자를 활용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구조이다. 그의 수많은 저술들은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있으니 휴민트에 관해서라면 무방비나 다름이 없다. 다음의 내용은 플라톤이 스스로 키운 하나의 내부자 되어줄 것이다. 첩자다. 언제고 그 주인인 플라톤을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으뜸가는 원칙은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지도자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마음도 전적으로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끔 습관화되어서는 안된다. .....중략....  사소한 일까지도 지휘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에만 잠자리에 들거나 일어나거나 움직이거나 씻거나 먹거나 해야 할 것이다."  ㅡ플라톤의 법률ㅡ



이쯤되면 이 자체가 휴민트이다. 이 문장은 칼 포퍼가 라이온 킹의 목덜미를 물어 뜯을 수 있게하는 조력자로 손색이 없다. 아니, 어쩌면 맹수 칼 포퍼에게, 물어 뜯을 목덜미가 없는 덩치 큰 코뿔소가 불알을 내어주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닫힌 사회, 전체주의의 씨앗이 되어주었던 플라톤의 저술들은 칼 포퍼에게 닿는 순간, 부메랑이 되어 플라톤 자신에게 되돌아 오기에 충분한 휴민트 요소들을 담고 있다. 위의 내용 만으로도 플라톤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압박과 통제는 히틀러의 그것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으니 말이다. 플라톤의 이런 주장은 상상할 수도 없는 폭력을 반드시 동반할 것이다!! 




칼 포퍼는 '전체주의'를 '닫힌사회'로 규정했다. 그 '닫힌사회'의 정체를 폭로하기위해 그 뿌리를 파헤치니 플라톤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다음에 해당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해본다.


1. 그동안 플라톤을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던져왔던 분


2. 플라톤과 닫힌 사회의 긴밀한 관계를 알고 싶은 분


3. 역사 주의 및 정치 철학에 관심이 있는 분


4. 특권층의 진정한 속성을 알고 싶은 분


5. 위대한 철학자 칼 포퍼를 알고 싶은 분



플라톤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마치 나의 연인에게 다른 연인이 생겼다는 말을 들을 때 만큼 커다란 충격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의 내용에 해당하는 분이 계시다면 감히 추천드린다. 소설만큼 흥미 진진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왜냐면 플라톤은 칼 포퍼 앞에서 구운 오징어가 되어주니까 말이다. 칼 포퍼가 맛나게 잘 구워준 오징어를 독자들은 자신의 어금니 턱에 약간의 힘을 주어 질겅 질겅 씹어주기만 하면 된다. 칼 포퍼가 구워준 오징어의 맛은? 습도 좋고 두툼하여 식감이 대박인 갑오징어 맛이다. 이 맛은 장담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속이 다 시원했다. 체증이 가라앉는 그 신박함을 느꼈으니까. 평소 나는 플라톤에게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리뷰 ( II.)


이 책을 읽는데 있어 '역사주의 historicism)'의 개념을 잘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주의'는 '전체주의'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칼 포퍼는 p.13~22 에서 친절하게도 '역사주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칼 포퍼는 '역사주의'를 유신론적, 자연주의적, 정신적, 경제적, 근대적 역사주의 등으로 분류했다. '역사주의'에 무지했던 나는 이 부분을 여러 번 읽고나서야 제대로 숙지하게 되었고, 이 덕분에 끊임없이 반복 언급되는 '역사주의'로 인해 독서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음을 고백하면서 리뷰 2를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역사주의를 설명하는 칼 포퍼의 손가락은 모두 플라톤을 가르키고 있다. (역사주의를 잘 아시는 분들께는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배타적 원리주의, 닫힌 민족주의, 집단 열광주의, 독단적 교조주의 등이 모두 열린 사회의 잠재적 적들이다. 인류의 역사는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의 오랜 투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열린 사회와 그의 적들 1, p.vii)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할 때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은 전체주의로 나타난다." (열린 사회와 그의 적들 2)



플라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헤라크레이토스의 생각을 살짝 살펴보면, "우리는 서로서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으며, 견제할 수 있다. ...중략.... 깨어있는 자들은 하나의 공통된 세계를 갖는다. 잠든 자들은 그들의 사적 세계로 빠져든다. .....중략.... 비록 그들이 듣는다 할지라도 귀머거리와 같은 것이다." p.29  

여기서 누가 깨어있는 자이자 선택된 자이며, 또 누가 잠든 자 인지는 보나 마나다. 이런 선민사상은 고스란히 플라톤에게 전이된다.



또한, 서양인들에게 강렬하면서도 반가운 사유의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싶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발언을 하나 더 언급해보면,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요 왕이다. 전쟁은 어떤 자는 주인으로 어떤 자는 노예로 만듦으로서 어떤 자는 신이고 어떤 자는 단순한 인간임을 증명한다. 우리는 전쟁이란 보편적인 것이며, 정의, 즉 소송은 투쟁이며, 모든 것은 투쟁을 통해, 그리고 필연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p.30) 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발언인가!! 서양의 '대 항해시대'는 서양의 '대 학살과 대 약탈의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게는 짐승들의 본능과 일치하는 명언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적어도 인류에게 있어 '적자생존'이라는 학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적자생존의 법칙을 왜 인간에게 적용시켰는지 그 배후를 깨닫게 해준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살인과 약탈은 그들에게 정.의.이다. 타자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겠는가? 트럼프는 분명 서양 사상의 핵심에 있을 것이다. 또한, 플라톤은 이러한 자양분을 먹고 성장한 철인이라는 말로 가름하고 싶다. 



플라톤은 전쟁과 참주정이라는 공포정치를 경험했다. 참주정의 주체들인 삼촌들은 민주주의에 대항하다가 모두 목숨을 잃었다. 더구나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죽임을 당했다. 플라톤은 스승을 죽음으로 몰아간 민주주의를 혐오했을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역사에서 작용하는 힘은 우주적인 힘이라고. 그는 완전한 국가를 만들어 부패와 악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국가인가. 서양의 유토피아는 동양의 무릉도원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플라톤의 국가관을 뒷 바침하는 사유는 '이데아'였다. 그에게 '이데아'는 변화하여 타락하거나 부패 또는 퇴화하지 않는다. 영원 불변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플라톤에 의해 '이상 국가'가 탄생한다. 변화와 부패와 악이 없는 국가, 그에게 이런 국가가 최선의 국가이고 완전한 국가였다.

완전 불변하는 것에 대한 그의 신념은 플라톤 철학의 엑기스가 되었고, 역사주의 정치는 사회적 기술공학을 활용하여 이데아가 지배하는 유토피아 국가를 완성하는 것이다. 칼 포퍼는 이러한 플라톤의 사유에서 정치철학의 전제주의 방향성을 발견했고, 이를 부서트리고 싶어했던 것이다. (갑자기 알렉스 카프의 '기술공화국 선언'이 떠오른다) 


독자가 보더라도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수반할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이 있다. 바로 억제, 통제이다. 칼 포퍼가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지극히 폭력적인 국가이다.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러나 잘못된 신념이 가져오는 참담한 결과의 실례들을 특히 대한민국 국민들은 잘 아실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벌써 계엄을 세 번 씩이나 경험하지 않았는가. 



플라톤이 제시한 최선국가의 3계급 구성을 보면, 수호자들, 무장한 보조원이나 군인, 노동계급이다. 이를 압축하면 교육받은 무장 지배계급과 교육이 필요 없는 노예나 짐승 같은 인간, 두 계급으로 나뉜다. 플라톤은 지배 계급이고 나를 비롯한 대다수 대중들은 노동으로 플라톤을 먹여살리다가 병들어 죽거나, 다쳐서 죽거나, 저항하다 사라지는 소모품이며 소유물이다. 체제에 반항하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이 똘똘 뭉치면 걱정할 것이 없다. 노동자들은 기껏해봐야 고깽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총과 대포와 땡크가 있지 않은가? 특권층(특수계급)과 비특권층의 차이는 이렇게 뚜렸하다. 나아가 특수계급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순수혈통을 지켜갈 것이다.



문제는 서양 철학이 이러한 플라톤의 사회이론과 국가론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왜그랬을까...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시키기에 매우 유용한 이론이다. 타자 혹은 타국을 약탈하고 빼앗아도 자신들에게 합리적인데 못할건 또 뭔가? 표면으로는 매우 신사적이며 매너 좋은 서구인들의 의식구조를 우리가 늘 의식해야 하는 이유이다. 일본과 조선에 총구부터 들이 댔고, 약한 나라들을 점령하여 약탈했던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국가와 자신들의 이익은 그들에게 최선(最善)이자 그들의 정의(正義)였으니까 (이것이 플라톤의 생각이었다).



서양의 기득권들이 기뻐했을 플라톤의 정치강령을 보자. "계급을 엄격히 구분한다. 국가의 운명과 지배계급의 운명을 동일시한다. 지배계급은 무기휴대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에 있어서 독점권을 갖는다." (p.147). 놀랍지 않은가?  통치 방법에 있어 히틀러도 플라톤에게는 항복해야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지독한 정치체제이니 말이다. 이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正義)이다. 

칼 포퍼는 이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플라톤의 이러한 사유를 전체주의식 정의(正義)라며 힘주어 공격한다. 칼 포퍼는 플라톤이 진정한 정의의 신념을 알지 못했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플라톤의 '법률'을 잠시 인용해보자. "무정부주의의 모든 흔적들은 모든 사람들의 전생애에서 뿌리째 근절되어야 한다." ( p.173). 이는 우리 민주주의의 이념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개인주의를 박탈하고자 하는 날벼락과도 같은 법률이다. 이정도 수준이면 플라톤은 민주주의와 개성을 혐오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미쳐버린 독재자 히틀러를 연상하게되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닐 것이다. 



플라톤에게 이 모든 것은 오로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p.233)이다. 철인은 통치하고 나머지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 " 국가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그들의 적과 자신들의 국민을 다 속이는 것이 국가 통치자의 일이며, 다른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특권이다" p.234

플라톤이 말하는 '국가의 이익'은 누구의 이익을 뜻하는 것인가. 통치자 자신, 즉 플라톤의 이익을 뜻하는 것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던 사람이 혹시 플라톤을 읽었을까....설마 싶지만 왠지 하는 짓이 플라톤의 주장과 일치했다.


 

히틀러는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인 투표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이 통치자의 특권을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다. 되려 동조자와 부역자가 모여들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당선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통치자는 대한민국 시민들을 향해 땡크를 들이대며 총을 쏘라고 명령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근거없는 계엄을 선포하고 살생부를 만들었으며 군대를 보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했다. 플라톤은 나라를 망가트리는 이런 결과를 과연 짐작은 했을까? 이 얼마나 순수한 플라톤의 사유던가...



이쯤에서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닫힌 사회를 등장시킨다.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사회(the open society)라 부르고자 한다" (p.293). 칼 포퍼의 이 의미는 전체주의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개인주의가 존중받는 사회임을 알 수 있다. 반면 닫힌 사회(the closed society)는 원시적 사회이며 국가가 시민활동을 통제하는 사회, 개성을 짖밟는 사회이다. 이는 전체주의의 형태로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말이다. 일제 강점기가 그랬고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랬다. 지독한 혐오를 먹고사는 극우 또한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닫힌 사회의 붕괴 요인도 잘 설명하고 있다. 이정도면 스포에 가깝기 때문에 남겨두기로 한다.



리뷰 (III.)


플라톤의 유토피아는 대중들에게는 감옥과 다름이 없다. 플라톤은 자유를 박탈당한 개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이니까. 읽는 내내 플라톤의 몸에 흐르는 피에서 온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작게는 진영논리도 전체주의요 크게는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는 대표적인 전체주의이다. 전체주의의 문제는 모든 자신의 것들은 옳고 모든 타의 것들은 옳지 않다는 태도에 있다. 파시즘은 특히나 도덕, 철학, 윤리, 정의 등은 없다. 플라톤에게도 '현대적 의미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관심은 자신들의 이익 뿐이다. 나치의 독일이나 일제의 군국주의도 플라톤의 사유를 꼭 닮아 있다. 흥미롭게도 트럼프의 미국이나 이스라엘 역시도 역사주의에 도취된 전제주의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된다. 이 모든 전제 정치에 플라톤이 깊이 관여해있다.  


평소 서양철학의 神과도 같은 플라톤. 그가 저술 현장에 남겨둔, 그러나 철학자들조차 애써 외면해왔던 그의 DNA를 증거물로 칼 포퍼는 플라톤을 열린 사회의 적을 싹 티운 장본인이라는 것을 천명했다. 이 저술은 그러므로 칼 포퍼를 철학사에 위대한 공적을 남긴 위인이라 평가해도 좋도록 해주었다고 본다. 플라톤 공성전에서 증거와 논리로 승리하여 플라톤이라는 난공불락의 성을 무너트렸으니 말이다. 칼 포퍼, 만세!!



나아가 칼 포퍼는 루쏘, 콩트, 헤겔, 마르크스 등을 플라톤의 역사주의를 계승한 후학으로 간주한다. 그들에게서 전체주의의 닫힌 세계를 포착한 것이다. 그리하여 제 2권은 헤겔과 마르크스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을 갈았다고 전해진다. 재판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판 부탁드립니다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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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공이 당구대 위를 흐르는 모습을 보면 그의 구력을 알 수 있고, 그림을 보면 그의 필력을 알 수 있다. 음악은 청각을 통해 감지하는 순간, 그의 내력을 알 수가 있다. 아래는 참새가 어느 방앗간을 지나다가 알게된 피아노 연주이다. 먼저, 이 자리를 빌어, 그 방앗간 주인께 감사드립니다.




[[[ 러씨아 고전 음악의 대부 '글린카'의 곡, '종달새'이다. 원래는 가곡이었으나 '발라키레프' 라는 음악가가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다고 한다. 비교 차원에서 다양한 연주가들의 종달새를 들어봤다. 러씨아의 거장 미하일 플레트네프, 대한민국 애호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러씨아의 예브게니 키씬, 전설의 라두 루푸, 그냥 믿고 듣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외에도.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러나? 임미정의 연주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      



어느 분께서 피아니스트 임미정씨의 음악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임미정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임미정을 검색해 봤다. 내가 임미정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 하고 보니 재즈 피아니스트로 더 알려진 인물이었다. 변명이지만 재즈에는 약한지라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던 듯 싶다. 직접 곡을 쓰고 연주를 한다. 만능이시네...하면서 임미정의 연주곡을 들어봤다.  



사실 말로는 연주를 표현해 낼 길이 없다.
세상은 언어로 표현해낼 수 없는 것들이 주를 이룬다.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것들을 언어로

표현하려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순수함을 잃고 만다. 그러나 인간은 누군가에게 그 감동을 전달하고 싶어하고,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혹여 예술은 아닐런지...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며 태어나는 것이 음악 혹은 미술은 아닐까...


인간은 '언어'라는 소통 수단을 가진 유일한 존재이다. 그것도 모자라 인간은 애초부터 예술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 시작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냥, 저절로, 자신의 내면에서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표현해내다 보니 예술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고, 또 예술론이나 미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사적인 견해이지만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임미정의 피아노를 들으며 떠오른 생각이다.



나아가, 음악을 말하는 능력이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얼마나 또렷한 종달새던가! 이 종달새는 참종달새다! 임미정의 손가락을 따라 열 마리의 종달새가 흑백 건반 위를 날며 노래한다. 바쁜 길을 가던 사람을 멈춰세우는 임미정의 종달새는 하염 없이 영롱하다.' 라이브라는데, 완벽한 터치를 구현해낸다. 임미정의 종달새를 한번만 듣는 사람은 없을 듯 싶다... 이제는 다 커버린, 대한민국의 귀염둥이 였던, 키씬이 연주한 종달새보다 더 좋다.


하수의 변 - 
알라딘에서 음악을 게시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듯 합니다. 고수는 본디 말이 없는 법이지요. 보통 달관의 경지에 오르면 조용히 지켜만 볼 뿐, 말이 없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진정한 고수들은 이러하지만, 어정쩡한 하수들은 말이 있습니다. 태권도 2단 짜리가 어디가서 곧잘 얻어터지는 이유도 이와같습니다. 지금의 저 처럼 말이지요. 저와는 달리 태권도 9단은 결코 싸우지 않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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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14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태권도 2단으로 인해 태권도 문외한도 태권도를 접하게 되지요. ㅎㅎ

차트랑 2026-03-14 20:47   좋아요 0 | URL

어정쩡한 태권도가 어디가서 얻어 터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잉크냄새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태권도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는 바가 있군요.
다행이지 뭡니까요~^^

편안한 저녁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우리 나라의 가곡(歌曲)은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전통 가곡이다. 검색해보니, 1872년 박효관과 안민영이 대원군의 후원을 받아 가곡원류(歌曲原流)를 편찬했다고 써있다. 박효관은 가객(歌客) 즉, 가수였다고 한다. 국립 국악원 소장본을 기준하면, 가곡원류(歌曲原流)에는 약 865수의 시조 작품이 실려있다고 한다. 이 시조들을 가사로하여 전통 국악의 연주와 함께 불렀던 것이다. 주로 냥반들이 즐겼는데 이를 정가(正歌) 라고도 한다. 노래를 부르는 이를 가객(歌客) 이라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이를 율객(律客) 혹은 금객(琴客)이라 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 성악 가곡에 대한 간략한 요약이다.



두 번째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들어온 가곡이다. 일제는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서방과 시기적으로 빠른 교류를 한 탓에 서양 문화를 우리보다 빠르게 받아들였다. 가곡도 그 중 하나이다. 독일은 슈베르트라는 걸출한 인물 덕분에 가곡의 꽃을 피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독일 가곡을 리트(Lied)라고 하는데, 이를 일제가 흡수하여 가르쳤다. 당시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홍난파는 일제로 건너가 일본의 대학에서 음악을 수학 했다. 재능이 뛰어났던 홍난파는 도쿄 교항악단 제 1 바이올린 단원을 거치기도 했다. 그의 혈족들은 음악에 큰 재능을 보였다고 써있다. 



[[[ 팽재유 선생이 부른 봄처녀, 팽재유 선생의 봄처녀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아래에 적습니다 ]]]


 

그는 귀국하여 교수 및 강사로 활동했고 대한민국의 슈베르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홍난파는 가곡을 아주 많이 썼는데 그가 김형준의 詩에 곡을 붙인 것은 1920년라고 한다. 그리하여 근현대의 우리 가곡이 태어났고, 그렇게 '봉선화'는 한국 가곡의 효시가 되었다.



학교 음악 시간에 배웠던 안익태, 김동진, 현제명등과 함께 '친일 인명사전'에 올라있는 홍난파, 그리하여 애증을 함께 가진 이름 홍난파, 그는 성불사의 밤, 고향생각, 고향의 봄등 가곡은 물론 수도 없는 동요를 써냈다.

또한 아주 많은 이은상의 시에 곡을 입혔는데 대표적인 곡이 바로 '봄처녀'이다. 봄처녀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니라 시조이다 (이은상의 가고파에는 김동진이 곡을 입혔다). 이은상의 시조가 마음에 들었던지 홍난파가 스스로 곡을 붙였다고 한다.



홍난파의 '봄처녀'를 부른 성악가들이 아주 많다. 심지어 외국인들도 봄처녀를 불렀다. 봄처녀는 확실히 아름답기가 빼어난 곡이다. 그러므로 아주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개인적인 선택은 봄처녀의 빠르기에 있다. 악보로 본다면 봄처녀의 빠르기는 왈츠의 3/4 박 (tempo di valse)이다. 그러나 시대 배경을 담는다면 이보다는 호흡이 좀더 길어도 좋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흡을 길게 가진 봄처녀, 테너 팽재유 선생이 부른 봄처녀를 가장 선호한다.



팽재유 선생를 선택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팽재유는 봄처녀에서 벨칸토(Bel Canto)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봄처녀를 부르는 팽재유는 벨칸토의 정수라 할만하다. 단연 으뜸이다. 벨칸토는 반드시 레가토(Legato ㅡ저ㆍ고음을 넘나들며 음을 끊어짐 없이 부드럽게 연결하는 발성)가 뒤따라야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양한 봄처녀 중, 팽재유 선생이 벨칸토를 가장 잘 표현해낸 성악가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홍혜경과 그리운 금강산을 함께 부르며 보여주는 벨칸토의 정석. 플라시도 도밍고도 울고갈, 아름답고 정녕 우아한 미성으로 청자를 사로잡는 이가 팽재유이다.



사적으로 봄이 오는 이즘부터 한동안 가장 많이 듣는 우리의 가곡이 바로 봄처녀이다. 혹여 알라딘에 봄처녀를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면 팽재유 선생의 성악으로 들어보심은 어떠실런지....


추신: 

[[[ 뜻밖에도 최불암 선생의 부고를 접했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행복한 연기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인생을 스캔들을 없이 깔끔하게 살다가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근데, 가짜 뉴스 였습니다 ㅠㅠ 아놔~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심리가 너무나도 궁금하자 진짜!! ]]]

 





[[ 최근 알라딘 중고가게에서 구입한 음반이다. 상태가 NM이라고 써있었다. 믿고 구매했다. 상품을 받아보고 정직한 판매자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마음에 든다. 그나저나 팽재유 선생의 사인이 있는 음반을 내놓은 이 덕분에 사인반을 얻었다. LP는 시디와의 음질 차이는 확연하다. LP로 듣다가 CD로 들으면 금속성 소리가 들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적응할 때까지 힘들다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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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12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곡하면 주로 유럽의 클래식 가곡만 생각했는데 우리ㅏ라의 전통 음악에도 가곡(국악)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네요.
그리고 최불암 배우님 별세를 말씀하셔서 급하게 포털을 찾아보니 부고 기사는 없더군요.몸이 안좋아 전화 연락도 안받으시고 TV방송도 안하신다는 뉴스 기사를 뜨는데 부고 기사가 안 난 걸 보면 아며 요즘 AI로 만드는 가짜 기사에 속으신거 같아요.

차트랑 2026-03-12 17:4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심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ㅠ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원

좋은 하루 되십시요 카스피님~
 


중ㆍ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우지만 대부분 잊어버리게 되는 것들 중 하나에 음악 용어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잘 기억하고 계신 분들도 있지만 생활 속에서 멀어지면 기억 속에서도 대부분 멀어지기 마련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아다지오(adagio)는 이탈리아어 음악 용어이다. 검색해보니 아다지오는 '천천히 걷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안단테(Andante) 보다는 느리고, 라르고(Largo) 보다는 약간 빠른 템포라고 써있다. 물론 들어보면 바로 이거구나 싶다. 

이 용어는 발레에서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주 우아하게 움직이는 동작이나 춤을 뜻하는 발레 용어가 아다지오인 것이다. 음악에서의 아다지오도 정말 정말 아름답고 우아하다. 한마디로 환.타.스.틱.하게 우아하고 판.타.스.틱.하게 아름답다. 아다지오는 각종 협주곡의 2악장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한다. 그래서 아다지오라고 하면 으레 협주곡 2악장이구나 생각한다. 





[[[ 라두 루푸의 연주를 링크하고 싶었지만 실황 영상이 없다. 차선으로 영상이 있는 연주로는 단연 최고요 으뜸인 엘렌 그리모(Helene Grimaud) 와 파보 예르비(Paavo Jarvi)의 협연이 있다. 아다지오다!  아... 베토벤이여!!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이 곡 때문은 아닙니다만 어찌하면 곡을 이토록 아름답게 쓸 수가 있단 말입니까....!! 들리지 않는 귀를 하고서 이렇듯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곡을 어찌 써 낼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 연주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경건하며 성스럽고 성스럽다.  그리하여 사적인 생각으로는 '베토벤은 이런 연주를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실황을 이 두 사람이 보여주고 있다. 이 영상을 남겨준 그리모와 예르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



얼마 전, 라두 루푸(Radu Lupu)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음반 사진을 보게되었다. 내게있어 이런 조우는 사실 깜짝 놀라운 수준이다. 반가움과 놀라움이 함께하는 순간이다.

라두 루푸 선생은 1945년에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2022년 불록(不祿)하셨다. 그는 70년대 콩쿠르 헌터였다. 라두 루푸의 특성은 음악의 내면화에 있다. 그의 내밀한 성격탓인지는 모르겠다. 글렌 굴드가 자신의 연주를 만들어가는 스타일의 연주자 였다면, 라두 루푸는 곡 안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이었다.



다시 말해, 글렌 굴드에게 작곡가는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였다면 라두 루푸는 작곡가와 무언의 소통을 더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굴드는 자신을 더 드러내고 싶어했고, 라두 루푸는 자신 보다 곡을 더 드러내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런 라두 루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글렌 굴드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또 다른 이유로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단, 굴드 팬님들의 눈치를 아니 볼 수 없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굴드를 언급할 때는 살얼음 판 위를 걷듯 조심 해야한다. 굴드의 팬들은 거의 카르텔이고 엄중하니까) 



그리하여 라두 루푸의 연주는 음악가에게도 감명을 준다. 라두 루푸는 기교로 말하지 않는다. 화려하게 치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자신 스스로 음악 안으로 들어간다. 청중들을 끌고서 말이다. 청중들도 함께 그 음악 속으로 빠져든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통해 음악 본연의 영혼과 청중들의 영혼을 마주한다. 아.... 라두 루푸여....!



그러나 아쉽게도 라두 루푸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시디를 찾아낼 수가 없다. 15분씩 나누어 2회에 걸쳐서 찾아봤으나 허사였고, 눈이 아프고 두통이 와서 도중에 그만 뒀다. 대체 엇다 둔거지!!! 아놔~! 요즘은 시디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아니다. 온라인과 이어폰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디는 찬밥이고 막 굴러다닌다. 그 결과 각자 시디들의 주소를 잊은지 오래인 것이다. 이제 찬밥인가... 그러나 꿩대신 닭이라고 내게는 같은 곡으로 가장 매력적인 짐머만과 번스타인을 찾아냈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작곡 시기는 1809년이다. 베토벤의 나이 40세였다. 20대 후반부터 청력에 이상이 왔고 40대 중반의 청력은 완전 상실되었다. 40세의 청력은 피아노의 진동으로 작곡을 해야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런 아다지오를 창조해낸 것이다. 베토벤은 악성이다!



[[ 시디는 스크래치에 너무나 민감하다. 시디에 때가 뭍어도 함부로 닦아 낼 수가 없다. ]]]



아래는 동호회 'go 클래식'으로, 16만명이 모여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전음악 동호회이다. 연주 정보는 물론 음반, 음악가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연주에 대한 평가를 알고 싶다면 단연 이곳이다. 고전음악의 입문자부터 최고수까지 죄다 모여있는 유일한 곳이 아닐까 싶다. 혹여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곳에서 정보를 찾아 참고할 수가 있다. 입문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물론 음반을 판매하는 곳은 아니다. 음반 구매는 알라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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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10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클래식은 문외한이지만 음악 빠르기의 클래식 용어를 노래에 맞춰 불러 외우던 기억은 나네요.
라르고 아다지오 안단테 모데라토......산토끼 노래에 맞춰서 말이죠.

차트랑 2026-03-11 07:5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잉크냄새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시어 정말 고맙습니다.

생각해보니,
잉크냄새님께서는 훌륭하신 음악선생님을 만나셨군요.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을 하시는걸 보니 말입니다.

저의 음악선생님은 파마머리를 한 남자셨는데
회상해보니 무서웠던 기억을 남겨주셨네요.
회초리를 쓰셨거든요.
음악 시간이 무서웠어요 ㅠ

음악 시간이 기다려지고 가슴설레는 시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많이 아쉬워지네요^^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잉크냄새님~



니르바나 2026-03-12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차트랑님,
처음으로 차트랑님 서재에 댓글로 인사드립니다.^^

라두 루푸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연주를 좋아하시는군요.
요즘 세상이 음원, 스트리밍의 시대라 씨디를 푸대접을 하지만 이 분야 전문가의 이야기로는
씨디를 직접 헤드폰으로 들어보면 음질이 훨씬 낫다고 하더군요.

저도 학창시절에는 비싼 오디오와 LP음반 가격 때문에 제대로 된 클래식 음악을 듣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클래식 입문은 지금부터 24년 전에 알라딘 온라인 서점과 거래를 트고 알게 된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하던 매너리스트 등 여러분의 클래식매니아들 덕분입니다.
이 분들이 소개해주는 음반과 더불어 알라딘에서도 적극적으로 클래식 명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고가의 LP대신 저렴한 CD가 진입장벽을 낮춰 주웠구요.
여러모로 저의 클래식 입문을 도와주신 알라딘 서재지기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그때 알게 된 대한민국 최대의 클래식 동호 커뮤니티 Go! 클래식, 일명 고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클이 음반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지만 저의 경우 수적으로는 최대로 많이 구매한 곳도 고클이었습니다.
고클 신품 장터가 그곳입니다.
지금은 판매자들이 몇분 없지만 그 시절에는 메이저 판매자(?)가 몇분 계셔서 많은 전집 음반들을 판매하셨지요.
알라딘에서 구할 수 없는 음반들도 그렇게 해서 여럿 만났습니다.

차트랑님이 적어주신 대로 짐작해보면
대한민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는 인구는 20만명 쯤 되지 않을까 추산해봅니다.
물론 저의 좁은 소견입니다. ㅎㅎ

차트랑 2026-03-12 17:2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니르바나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전 음악을 접하신지 24년이면 어마어마한 공력을 가지신 분이시로군요!!
그리고 고클래식동호회 회원을 여기서 뵙다니, 더욱 반갑습니다.
사실은 니르바나님의 서재에서 풍월당과 당주의 이름
그리고 국내 말러 전문가의 이름등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해외 유명 연주단체의 단원들도 들렀다 가는 곳이 풍월당인데
위 사실들 만으로도 니르바나님은 고전음악에 관한한 평범한 분은 아니시지요~

음반구매는 주로 풍월당을 이용했고
(알라딘, 미안~)
고클에서는 해외 공구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정말 좋은 다수의 음반들(특히 전집)을 고클 해외 공구를 통해 얻은듯 합니다.
(알라딘에는 알리고 싶지않은 사실입니다만 ^^)

대한민국 고전음악 애호 인구가 20만명 정도로 추산이 되는군요.
계산기를 써보니 0.5 % 미만의 비율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너무 적은듯요 ㅠ
교육환경의 영향일까요...

그나저나 고전음악의 대 선배님을 이곳에서 뵙게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니르바나님!!!

대단치는 않겠습니다만 음악관련 포스팅 있을때
또 와주세요~~~^^

편안한 오후 되십시요 니르바나님~!!

 


먼저 저의 사과문은 엄숙하고 진지한 마음 자세로 임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댓글은
첫째, 영면에 드신 국밥집 할머니께 예우를 망각한 행위였습니다.


둘째, 고인께는 애도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본인의 슬픈 마음을 글로 쓰신 잉크냄새님께 큰 마음의 상처를 드렸습니다. 


 셋째, 잉크냄새님의 글을 애정하시어 찾아주신 알라디너분들께 저의 황당무계한 댓글로 충격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당황하셨습니까.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한 번의 상처가 생기면 치유하기까지는 딱지가 앉아야 하고 치유되어 상처가 아문다 한들 그 흉터는 남습니다. 그 흉터를 마주할때마다 옛 상처는 늘 다시 소환이 되겠지요. 저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 몸에는 25cm의 수술 자국이 남아 있지만 늘 가려져있어 쉽게 잊습니다. 그보다 작은 것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새겨진 흉터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있습니다.


생전에 비록 허물이 있는 삶을 살았다해도 세상을 등진 망자에게는 애도하며 명복을 비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국밥을 지으시며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삶을 살다 가신 분께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할머님, 부디 저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영면에 드시옵소서...


잉크냄새님은 제가 처음 알라딘에 오게 된 때부터 저를 늘 한결같이 응원해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저의 문체가 조신하지 못하여 건방지고 방자한 때에도 아낌 없는 성원을 해주셨지요. 마음 속으로 늘 깊이 감사드리고 있었고 변함없는 일관성에 경의를 드렸으며 깊이 존경해왔습니다.  


그런 분께 저는 지난 저녁, 큰 실망을 넘어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드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속이 상하셨습니까 잉크냄새님. 저의  큰 잘못에 마음 깊이 사과드립니다. 저의 잘못을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주십시요.
 

그리고 잉크냄새님의 서재를 찾아주시어 글을 읽으시다가 저의 당황스러운 댓글에 충격을 드신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잉크냄새님께서는 저의 체면을 생각하시어 저의 댓글을 지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잘못이 저의 오독에서 비롯된 것이니 마음쓰지 말라는 글을 주셨습니다. 잉크냄새님께는 정말로 고맙습니다. 제가 가지지 못한 한없이 너른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이에 깊이 존경과 경의를 드립니다.


그러나 사실 오독이 아닙니다. 저는 잉크냄새님이 쓰신 글의 처음 내용만 읽었던 것입니다. 조금 더 읽었더라면 결코 그런 잘못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점 정말로 죄송합니다 잉크냄새님.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는 잉크냄새님께 변명을 따로 드리겠습니다.


잘못에 대한 비난은 비난하는 사람이 원할 때까지 지속되어도 좋습니다. 비난은 일종의 권리입니다. 그 비난을 다 받지 않은 자의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열개의 돌맹이를 맞아야 마땅한 자가 너른 마음을 가진 분 덕분에 두개의 돌맹이를 맞는 것은 사실 부당한 일입니다. 글을 지워주심으로 비난의 무게는 덜었습니다. 불구하고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도 마음이 무거운 것은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의 뜻과 사과의 뜻은 신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빠른 사과문을 드릴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저는 오후 1시 시작하여 밤 10시에 종료하고 10시 30분에 문을 닫습니다. 태어나기를 약골인데다가, 늘 사선에서 서성였고 저승사자와 동반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하여 귀가하면 시체처럼 잠에 들지요. 이러한 저의 처지를 감안하시어 늦어진 사과문에 대해서는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잉크냄새님께는 별도로 저의 변명을 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변명처럼 구차한 것은 없습니다.
잘 알면서도 애써 변명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제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면서 저의 변명을 들으시면 잉크냄새님의 상처가 분명 더 작아질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영면에 드신 할머님과 잉크냄새님 그리고 저의 댓글을 보시고 충격을 받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깊이 사과드립니다.


저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뜻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10일간 글을 게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읽은 후의 좋아요는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글을 끝까지 읽지 않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10일 후에는 어제의 제 잘못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간단한 글을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과는 끝없이 드려야 하는 것이 맞지만 글로 드리는 사과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부디 저를 용서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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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27 13: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
너무 마음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의 처음 부분만 읽고 다 읽지 않은 상태로 단 댓글이라 돌아가신 분께 쾌유를 빈다는 댓글을 남기게 된 단순한 실수일 뿐입니다. 그걸 모욕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습니다. 상처 입을 상황도 절대 아닙니다. 사과하고 사과 받을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편하게 모월 모일에 이런 해프닝도 있었구나 하고 허허 웃고 넘겨도 될 일입니다.
항상 좋은 이웃으로 남길 바랄 뿐입니다.

차트랑 2026-02-27 16:23   좋아요 2 | URL
너를 마음으로 양해하시니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잉크냄새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잉크냄새님의 입장으로 그 상황을 바라봤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렵지 않게 알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잉크냄새님의 너른 마음으로
저를 두둔해주시니
잉크냄새님께 깊은 사의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