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몬태규 렌달 (Huw Montague Rendall)은 

아직은 널리 알려진 바리톤은 아니다. 


지난 해, 그의 데뷔 앨범이 알라딘에 입고되었다.


사실은 입고 된 줄 모르고 있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검색이 된다 ㅠㅠ


휴 몬태규 렌달의 목소리가

엘리자베스 보드로(Elisabeth boudreault) 의 목소리와 아주 잘 어울리는듯 하다.

같은 곡에 관한 한, 이보다 더 좋게 들리는 조합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자르트 마술피리의 파파게노와 파파게나 2중창은

언제 들어도 기분을 좋게하지만

특히나 아침을 더욱 상쾌하게한다.



  



날씨가 추워졌다. 

따듯하게 입고 하루를 시작해야 할 듯하다.

4개월이라는 기나긴 겨울이 시작 될 모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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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후 뺑이 치며 하루 하루를 보내 던 어느 날, 보급 받은 개인 화기의 10미터 영점 사격 시간이었다.  분명 세발을 쏘았는데, 내 표적지의 구멍은 단 하나!!  소대장이 이를 보고는, 이때다 싶었던지 국민의 혈세인 두발의 총알은 어디갔냐며 군기 잡기를 시전, 나를 닥달하기 시작했다. 마침 바로 옆에 있던 중대장께서 이를 목격했다. 


중대장은 나의 표적지를 살피더니, '소대장아!!, 한 구멍으로 세발을 죄다 관통시킨 이 알흠다운 탄착점이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게냐?' 이랬다. 탄착점을 뚫어져라 보던 소대장의 입은 떡 벌어지고, 두 눈은 똥그래졌다. 

(이렇듯, 국민의 혈세는 군바리의 피보다 훨씬 더 진한 것이다. 국민을 지키라고 총을 보급해주는 것인데..... 그 총구를 국민을 향해 겨누게 했다고??? 세상에 이런 정신 나간 사람이 다 있나!!!!!!!!)


전에는 아예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알.흠.다.운. 탄.착.점. 덕분에 나는 순식간에 부대의 사격 선수로 발탁되었다. 그리고는 사단 사격 대회에 나가서는 덜컥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군바리의 쾌거는 늘 특박으로 직행 연결된다. 전시였다면 나는 분명 스나이퍼였을 것이다. 전시가 아니길 그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군바리가 휴가를 나오면 늘 그러하듯, 갈 곳은 많지만 오라는 곳은 없다. 할 수 없이 학교 동아리에 들르거나 아직 입대를 하지 않고 버티기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군바리를 딱히 달가워 하지 않는 이들과 쐬주 잔을 기울이는 것이 휴가나온 군바리들의 루틴이다.


그렇게 교정을 지나다가는데,

얼레?

아니, 니가 여기 왜?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군복을 입고 있어야 할 절친 과의 상상도 못할 조우 말이다.


절친도 당연히 입대를 했다. 그러나 너는 자격 미달이니 집으로 돌아 가라는 명을 받았다고 했다. 하긴, 21살의 젊은 나이에 구멍이 뚤려 바람이 새는 허파를 가진 나약한 자를 입대시켰다가는 경을 치고 말것이다. 그렇게 7~80대의 허파를 가졌다는 사실이 이 친구를 장군의 아들, 아니 神의 아들로 둔갑시킨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에는 하자가 있는 몸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멀쩡해도 일부러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판정받는다고 수군댔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째거나 당구를 500점이나 치는 그 어떤 사람은 부동시 판정, 군 면제!!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 부동시 군 면제자의 명언이 갑자기 떠오른다 아놔~, '죄 지엇으니까 특검을 거부하는 것 아니게슴니꽈!!!!') 


아니 그럴거면 병무청에서 걸렀어야지 입대시키고 커트할건 또 뭐냐!! 이래 저래 아까운 청춘 허송한다! 이러면서 나는 불평을 했다. 그러나 나의 불평은 안도의 불평이었다. 이 친구 만약 입대해서 나만큼 뺑이를 쳤다면 아마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싶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절친과 국가의 명령을 분명 같이 받았는데 나는 군대에서 뺑이를 치고 있고, 나의 절친은 복학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절친은 이래 저래 1년 넘게 허송하다보니 2년이 훌떡 갔고, 그간 써먹지 못해 녹슨 두뇌에 기름칠을 한다는 명분으로 학교 도서관과 동아리실에 와서는 온갖 불온 서적을 탐독하며 지내고 있던 것이었다.


당시 절친은 군바리인 나에게 책을 두 권 내밀었는데 다름 아닌 '페다고지' 와 '허균의 생각' 이었다. (허균을 몰랐던 나는 책을 받아든 순간, 허균은 시대의 반항아였구나 싶었다. 역시나 허균은 시대에 저항했던 인물이었다)


나는 속으로, 어쭈~!  받은거 돌려주냐!! 하면서 냉큼 받아 챙겼다. 아직도 나는 그 '페다고지'를 가지고 있는데 낡고 빛바랜 데다가 좀까지 먹은지라 건드리면 먼지가 일 지경이다. 절친이 나에게 남긴 유이한 책 이기에 나는 간직하고 있는 중이다. 절친은 한하운의 시집과 정현종이 겁나 어렵게 쓴 '시의 이해'를 아직도 지니고 있을까? 


암기력은 스스로도 감탄해 마지않던 시기였고, 머리는 기름칠한 팽이 마냥 팽팽 잘도 돌아가던 시기였건만 정현종의 저 역작 '시의 이해'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에게는 마치 '시의 방ㆍ해ㆍ'처럼 읽혔으니 말이다. 차라리 일찌감치 절친에게 떠 넘긴 것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째거나 
입대를 계기로 농사꾼의 아들이 장군, 아니 신의 아들로 탈바꿈한 이 사실을 부러워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또 어째거나 
둘은 절친인 만큼 서로 얼싸안으며 뜻밖의 조우를 그렇게 기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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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어울리지 않게 7~80 대의 허파를 가진 친구와 20대에 어울리게 팔팔한 허파를 가진 나, 모두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군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확실히 입대를 한 젊은이들의 그 피는 정말 순도 높고 팔팔한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그 젊은 피를 탐하는 기관이 있는데, 바로 적십자 혈액원이다. 부대 위치가 또 서울이어서 그런지, 헌혈 차량이 도대체 1년에 몇 번을 오가는지 모른다. 하여튼 뻔질나게 다녀갔다. 전방과 예비 사단 출신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진짜. 헌혈 횟수를 세다가 그만 잊어버릴 정도 였다. 적십자 혈액원은 그렇게 한번 오면 군바리들의 피를 몇 트럭 씩 싣고 가면서, 군바리들에게 던지고 가는 것은 과자 한 봉지와 애플 쥬스 한 팩이 전부다. 헌혈 기관 관계자는 그 얼마나 뿌듯 했을까. 




군바리는 단지 국방의 의무만 다하는게 아니다. 상대방(적십자)이 원할 때마다 혈액 공급원이 되어주어야 하고, 헐값된 농산물도 먹어줘야 하며, 조류 독감이 유행하면 닭고기를 물리도록 먹어줘야 하고, 돼지 전염병으로 소비가 줄어 돼지 값이 폭락하면 군인들이 그걸 먹어줘야 한다. 코로나 유행하면 제일 먼저 시범타 접종을 해야하고, 재난 지원 및 농사 지원도 나가줘야 한다. 그러다가는 불행하게도 채상병께서 순직하신 것이다. 전쟁이 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말할게 뭐있나! 공격 앞으로!!!! ))



각설하고, 
다들 그러하듯 휴학을 하고, 집으로 가서는 조신하게 입대를 기다린다. 고향인 동쪽 멀리에 있는 경상도 깊은 산골로 돌아간 친구, 그와는 정 반대 방향의 머나먼 서쪽 깊은 산골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서로 연락할 길이 없었다.

당시 깊은 산골 가정 집에는 전화기라는 것이 없었다. 전화기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지금이야 개인이 각자 전화기를 휴대하는 시대이고, 어떤 이는 2~3개의 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시대가 아니던가. 시대가 그러하다보니 가정집의 전화기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전화기가 넘쳐나서 되려 가정집 전화기가 불필요해진 현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내 고향을 기준으로 하면, 마을 이장님 집에 한 대의 공용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화가 걸려오면 이장님이 확성기에 대고 한 시간 후에 아무개에게서 전화가 올 것이니 와서 대기하라, 고 방송을 했다.

먼 논 밭으로 일을 나가거나 외출이라도 하게되어 방송을 못듣게되면 도회지에 나가 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위해서 다음 날을 기다려야 하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시골의 찢어지게 가난 농부들에게 전화비는 상당한 비용 지출이 될 수 있었다. 전화 통화를 전보치듯 요점만 말하고는, 뚝!! 
안녕하시오, 잘있으오, 잘계시오, 이런 인사는 비용으로 청구되기 때문에 잘라먹을 수 밖에 없던 시절. 한마디로 인사 값을 지불해야 하는 시절 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온 안사람은 이런 나의 환경을 먼나라 이웃나라 딴나라 이야기처럼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전기가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보급되었다고 말했더니, 안사람은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지만 안사람은 현대에 살고 있었고, 나는 신석기도 아닌 구석기 시대를 살고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비슷하다고, 같은 나이라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주는 팩트 스토리이다.


또 어째거나 
절친과 나는 그렇게 연락이 두절된 채로 각자 입대를 하게되었다. 절친도 당연히 입대하였겠거니 했다. 드디어 입대를 하고 국가를 위해 뺑이를 치던 중, 나는 총을 잘 쏘는 바람에 어느 날 특박을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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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0-2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서울 터미널 앞에서 참 피를 많이 빨린 기억이 납니다. 혈소판, 혈장 등 그 종류도 다양하게....

차트랑 2025-10-26 20:33   좋아요 0 | URL
동서울 터미널을 이용하셨다면 전방에서 근무하셨을 가능성이 높군요. 힘든 군 복무를 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더불어 그 진한 피를 많이 뽑아주셨군요^^ 군인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애국을 실천합니다.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 늘 건강하십니요.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은 사실 패티 김의 노래 제목이다. 백호형은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 ㅡ얀 겨울에 떠나요' 라고 노래했다.


가을은 아픈 이별의 계절이고 낭만의 계절이며  쇼팽의 계절이다. 올해는 가을 비가 심하게 내려, 가을 타시는 분들의 심경을 더욱 손상시켰으리라 예상해본다. 쇼팽은 1849년 10월 17일, 가을을 남기고 떠났다. 1810년 생,  39세의 나이였다. 공식 사인은 결핵으로 알려져 있지만 심낭염, 즉 심장 질환의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조국 폴란드를 사랑했고, 수익금 대부분을 조국의 독립 자금으로 보내 독립운동가로도 잘 알려진 그는 가을에 그렇게 떠났다.


쇼팽이 남기고 간 가을, 폴란드는 그를 기리기위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열기 시작했다.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피아노 콩쿠르로서 1927년 시작되었다. 바르샤바의 이 경연은 쇼팽의 기일인 10월 17일을 전 후하여 3주간 진행되는데 올림픽 보다 긴 5년 주기로 열린다. 다음을 기약하려면 무려 5년을 인고해야 한다. 경연의 권위와 그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매회 마다 1등을 내놓는 경연도 아니다. 참가자의 무게가 그만하지 못하면 1등을 배출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1등이 없었던 경연이 3차례 있었고 2등이 없는 경연도 있었다. 아차하면 10년간 1등 공석인 것이다. 그렇게 바르샤바의 쇼팽 콩쿠르는 피아노에 관한한 최고 권위를 스스로 세우며 이어져온 경연인 것이다. 이 경연의 우승자는 정녕 그만한 무게가 있는 영예로운 권위자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위엄을 조성진이 해낸 것이다)


바르샤바는 2025년 우승자를 발표했다. 20일 발표이지만 국내에는 시차로 인해 하루 늦게 이 소식을 접하게 된다. 바로 오늘이다. 바르샤바 심사위원들은 동양인의 얼굴을 한 미국인 '에릭 루' 에게 1위 라는 위엄을 주었다. 10년 전, 조성진 선수가 우승의 업적을 이루던 해, 그는 4위였다. 그는 오늘 자신의 10년 염원을 이루고 대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쇼팽은 곧 피아노이다.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공식인데, 슈만은 나이가 같은 쇼팽을 이렇게 평가했다, '다들 어디갔어?!!! 다들 일루와서 싹다 모자들 벗으셔, 천재가 나타나셨어!!!'. 피아노 연주의 대가 루빈시타인은 쇼팽을 일러 '피아노의 절대 神' 이라고 칭했다.


그런 쇼팽이 남긴 피아노 명곡 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대한 민국 피아노 연주의 대가 백건우 형님이 연주한 곡이 있다. 가을을 남기고 간 연인처럼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연주이다.


작품번호 14번, Krakowiak.


Krakowiak 은 2박자 당김음을 사용하여 빠르고 경쾌한 특징을 가진 폴란드 전통 무곡이라고 한다. 쇼팽은 이 무곡에 콘체르토 형식을 씌워 편곡했다. 쇼팽의 손에서 새롭게 탄생한 Krakowiak을 백건우 형께서 연주했는데.....





나는 이 음반을 받아 떨리는 손으로 개봉하고, 시디를 처음 듣던 그 순간을 감히 잊을 수가 없다. 쇼팽에 경도된 것인지 백건우의 손가락 마디에 경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그만 얼어 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동의 감동. 형언 할 수 없는 그 감동을 담은 연주를 이곳에 올려본다. 


협연은 말할 것도 없이 바르샤바 필이다. 지휘는 안토니 비트, 그는 쇼팽의 Krakowiak에 관한한 대가이다. 안토니 비트가 네볼신과 연주한 Krakowiak은 백건우의 연주와 나란하다. 이런 경우도 쉽지 않은듯 한데, 쇼팽의 Krakowiak은 백건우와 네볼신으로 끝이다.


고전음악과 친근하지 않은 그 누구라도 백건우가 연주하고 안토니 비트가 지휘한 바르샤바 필의 이 음반을 듣는 다면,  생각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아, 어쩌면 쇼팽을 다시 생각하게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쓸쓸히, 그리고 아프게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아니 사람, 쇼팽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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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년 전인 지난 2015년, 대한 민국의 조성진 선수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대망의 1위를 차지했다. 대한 민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 대 사건이기도 했다.


올해는 레이블 DG사의 127 주년이 되는 해, 조성진은 기념 연주자로 나섰다. 까다롭고도  지극히 차별적인 DG사가 조성진을 전속 계약으로 낙점했던 것이다. 물론 영예는 DG사의 것이 될 것이다.


올해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는 과연 누가 1위의 위엄을 달성할 것인가. 이 질문은 '누구?'에 방점이 있기도 하지만 '있느냐'에도 밑줄을  그어야 하는 무대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관한 한,1990년은 특별한 해였다. 1위가 없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그 해, 고민과 고민을 거친 심사 위원들은 1위의 영예를 줄만한 선수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2위부터 수상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정녕 권위있는 자에게만 권위를 줌으로서 스스로의 권위를 지켜가는 엄중한 무대인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내노라는 피아노 선수들이 이번에도 참가했다. 아쉽게도 결선에 오르지는 못했다는 소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인 3, 일본인 2명이 결선에 올랐다는 소식이다. 오늘은 그 결과가 나오는 날, 소식을 기다려본다.




두 사람이 연주하는 표정을 보면, 

괴르네 - 성진아, 너를 믿고 나는 기냥 간다!

조성진 - 아따 삼춘~!  걱정 붙들어 매셔~ 내가 누구여? 나, 성진이여 삼!춘! ~!!!

괴르네 - 오... 너의 반주, 진짜 죽여준다!


뭐 이런 느낌? 을 준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고사가 하나 떠오른다. <운근성풍>  



DG의 남자, 조성진



박혜상이 성악으로 DG를 접수했다면, 피아노로 DG를 매료시킨 대한 민국 남자는 조성진이다. 조성진은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거머쥔 대한 민국의 기린아 이다. 박혜상이 국제 콩쿠르에서 국제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던 2015년, 조성진도 자신의 진가를 전 세계에 알렸다.


조성진은 DG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다. 그런 그가 우리 시대의 가장 빼어난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의 반주를 맡았다. 슈트라우스의 가곡을 부르는 괴르네의 숨소리마저 예술이 된다. 반주자가 된 조성진의 표정은 정말로 아름답다. 반주자의 역할을 정말 정말 잘 해내고 있는 그 표정은 피아노의 선율만큼이나 아름답다. 그 두 사람이 만들어낸 가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황혼의 꿈


황혼이 깃든 저 들판에 태양이 지고 별들이 떠오르면
나는 사랑하는 그대에게로 갑니다.


회색의 저 너른 들 넘어 쟈스민 숲속 깊은 곳에서
그윽하게 드리운 황혼 한 복판을 지나
천천히 나는 그대에게로 갑니다.


부드럽고 고운 끈이
푸르르고 온화하게 빛나는 사랑의 나라로 나를 이끕니다.


회색빛 황혼 속으로 나는 가노니
성급하지 않는 사랑의 나라로
그 푸르고 부드러운 황혼의 빛 속으로.....



깜박하고 우승 연주가 담긴 음반을 빼먹었다. 추가 ㅠ ㅠ


이 연주를 듣고, 놀란 ,아니 감동한 나머지 기절할지도 모른다.

모두들,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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