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가 내 친구라는 뜻이 아님을 우선 밝힙니다.
(이 음반을 가지고 있고 많은 시간 동안 애청해 왔지만, 사실 나는 감히 이 음반을 평가할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페이퍼가 더 적절하겠으나 리뷰의 창을 빌어 대신한다)
중학교 절친이 있었다. 교실 청소도 같이하고,
유리창도 함께 닦았다. 교실 바닦에 들기름도 함께 발라 걸레질을 해서는 마루를 빛나게 닦았다. 친구는 노래를 아주 좋아했다. 청소를 할 때면 그는 늘 노래를 불렀다. 나의 입장에서, 그는 모르는 노래가 없었다. 신곡이 나오면 언제 섭렵했는지 그 노래를 바로 부르고 다녔다. 그의 별명은 '노래 부르는 사나이' 였다. 피리를 부는 사나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는 국내 노래만 통달한 것이 아니었다. 외국 노래, 즉 팝송도 아주 잘 알았고, 잘 불렀다. 어느 날, 그의 집에 방문하고서 나는 깜짝 놀랐다. '노래 부르는 사나이' 인 나의 친구는 카세트 뿐만 아니라, 그 귀하고도 귀한 축음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축음기 만이 다가 아니었다. 어마 어마한 음반들을 죄다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의문을 품었다. 친구는 말했다. 나이 차이가 있는 형님이 있는데, 도회지로 나가면서 죄다 물려주고 갔다는 것이다. 그 날, 날이 어두워지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그 신기한 턴 테이블을 돌리고 또 돌렸다. 나는 그 날 처음 보았던 턴 테이블을 잊지 못했다. 첫 눈에 그만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형편이 녹록치 않은 관계로 가슴을 앓으며 시간이 흘렀다. 그때, 나는 말로만 듣던 상사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고등학교가 서로 갈리게 되었다. 친구는 나에게 카세트 테이프 하나를 내밀었다. 이별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그가 준 카세트 테이프는 바로 'ABBA'였다. 그는 아바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게 놀랍도록 많은 아바의 정보를 말해줬다. 물론 지금은 모두 잊었다. 그러나 당시에 그가 해준 말 중에 아직도 기억에 한 조각이 남아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바가 그 얼마나 부자였던지 예금한 은행에가서 돈 모두 돌려주세요, 하면 그 순간에 그 은행이 파산한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은행에 가 본 적이 없던 나는 놀라서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말이 진짜였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상상이 불가한 일을 내게 말해주는 친구의 해박함에 나는 나의 친구가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
나는 사실 테이프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친구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자신의 집에 놀러오라고 했다. 온종일 턴 테이블을 돌리며 함께 즐기자는 얘기였다. 그렇게 나는 뻔질나게 친구의 집으로 가서 신세를 지곤 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카세트를 살 수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한다는 핑계를 대었다. 아버지께서는 정말로 그런 줄 아시고 큰 돈을 들여 장비를 사주셨다. 비로소 나는 친구가 이별의 선물로 준 카세트 테이프를 개봉할 수 있었다.
손 끝이 떨려왔다. 테이프를 감싸고 있는 얇은 비닐막을 벗겨내는 나의 호흡도 가빠졌다. 새로운 음반을 개봉할 때면, 나의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숨은 가빠진다. 그리고 테이프를 입구에 잘 넣고 버튼을 누른다. 드디어 나의 노래를 온전히 듣는 순간이다. 아바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난생 처음 서울에 오게되었다. 학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다. 수업 중에 졸다가 교수님께 지적 받았다. 동료들은 모두 까르르 웃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염원은 나에게 그 부끄러움마저 잊게 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중고점으로 가서는 그동안 몇 번이고 찾아가 잘 봐둔 놈을 집어 들었다. 아르바로 번 돈의 최초 용처는 턴 테이블이었다. 나의 가슴을 하염없이 사무치게 했던 바로 그 턴 테이블!
그리고 남는 돈으로는 중고 카메라를 샀다.
카메라 역시 나의 염원과도 같은 것이었다.
드디어 나도 턴 테이블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총만 있으면 뭣하나, 총알이 없는데!! 딱 이런 경우였다. 또 열심히 아르바를 했다. 그렇게 나의 음반들은 턴 테이블과 함께 돌고 또 돌아갔다.
나이가 들었다. 친구는 자신이 나에게 주었던 ABBA를 기억하고 있을까? 내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나는 알라딘에 접속했다. 그리고 아바 LP를 검색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받았던 그 아바를 친구에게 되돌려 줬다. 알라딘의 이 기능, 마음에 든다. 여전히 턴 테이블을 쓰는 친구는 아바를 무척 반가워했다. 같은 음반을 가지고는 있지만 커버가 다르고, 년식이 다르다. 소장의 기쁨을 준다. 신 버전으로 리마스터링의 예술을 거친 새로운 년식의 음반은 친구의 얼굴을 환하게 했다. 나도 무척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