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가르침은 모두 강(强)의 진정한 의미이다. 사람들은 남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고 여기는 듯 하다. 그러나 노자의 말을 들어보면 강(强)함이란 결코 남을 이기는 힘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것을 지혜라 하고

자신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고 한다.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남을 이기는 것을 힘이 있다라고 하고

자신을 이기는 것을 진정 강한 것이라 한다. ​

 

 

 

 

노자는 남을 이기는 힘을 유력(有力)이라고 했다. 남을 이기는 행위가 강함의 의미가 아니었음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상화는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는다. 선수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수술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다. 그러나 다음 올림픽은 자신의 안마당인 평창이었다. 이상화만큼 성적을 내줄 대안의 선수도 마땅히 없다. 다시 4년을 감내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승이 무엇인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고다이라는 32세이다. 만으로 그러하니 우리 나이로 치면 선수로서는 할머니나 다름이 없는 나이이다. 운동 선수의 생명은 매우 짧다. 김연아 선수가 화려하게 은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라는.

 

반면, 빙상에 미련이 많았던 아사다는 은퇴를 미루었다. 결국, 선수 생명기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박수 타임을 놓쳐버렸다. 일본인들은 아사다의 멘탈이 약하다고들 했다. 그러나 이는 뭘 모르고하는 소리이다. 그들이 말하는 멘탈은 누군가를 이기려할 때 필요한 것이지, 극기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 말이다. 아사다는 남을 이기려고만 했지 자신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부족했던 것이다. 위 사실들은 자승이 유력보다 훨씬 더 고도의 단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하겠다.

 

고다이라의 우승비결은 노력, 즉 자승에 있다. 고다이라가 늦은 전성기를 맞이했다고들 한다. 늦은 전성기란 없다. 오로지 그녀에게 자승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상화, 고다이라. 그들은 자승의 과정이 그 얼마나 외롭고 혹독한 것인지를 잘 안다. 고다이라가 이상화에게 다가와, 잘했어, 라고 말해준 것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고다이라가 자기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수가 있다.

 

대통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승을 이룬 진정한 강자에게 축전을 보낸 것이다. 사실, 은메달 선수에게 축전을 보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대통령의 진의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력함은 진정한 강함이 아니다, 이상화가 보여준 저 극기의 자승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다, 라고 말이다.

 

이리하여 이상화, 고다이라는 어느 시골 농부의 아낙인 불래기마저 알고싶어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났다.

 

우리는 유력만이 강함이라고 믿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부모든 선생이든 남을 이겨 그를 넘어서라고 독려한다. 우리는 그렇게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유력에 욕심을 가지면 당당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판커신은 유력함이 강함일 줄로 착각한 나머지 발을 써야하는 경기에서 손을 쓴다. 일명 나쁜 손이다. 결과는 늘 비슷하다. 패널티이다. 그는 패널티인 줄 알면서 왜 자꾸만 손을 쓰는 것일까. 유력함을 강함으로 착각한 나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혹여 심판이 알아채지 못하면 승리는 거두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상대가 알고 있으며 하늘(대중)이 알게되지 않을 수 없다. 그 금메달이 어찌 당당한 것이 되겠는가.

 

팀추월의 어느 선수는 노자에 의하면 유력한 선수이다. 남을 이길 줄 아는 선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뒤처진 동료를 버려두고 왔다. 그녀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다. 자신이 버리고 온 것은 동료 선수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선수 생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깨닫는 순간, 이미 자신의 선수 생명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있었다.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려보았지만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있었다. 유력함을 강함으로 오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로가 대략 이러하다.

 

이상화, 고다이라는 남을 이기려고 자신과 싸운 것이 아니다. 자신을 이기려고 노력한 결과남을 이기게 된 것이다. 이 일을 널리 알리려 한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었다. 국민은 이 깊은 뜻을 알아주기만 하면 된다.

 

도덕경을 흔히들 제왕학이라 한다. 진정한 제왕은 남을 이기는 자가 아니다. 스스로를 이기는 자, 그리하여 자신을 제왕으로 인정해주는 타자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제왕이 되는 자인 것이다. 운동 선수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의 누구이든 도덕경을 제대로 읽을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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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 흰 건반 검은 시 활자에 잠긴 시
박시하 지음, 김현정 그림 / 알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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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게시 글이 많이 늦어진 점에 출판사와 관계자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기일을 지키는 것이 제가 할 일이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했습니다. 이점 양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지만 말이다. ㅠ.ㅠ. 다시 한 번 더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쇼팽은 죽음에 임박할 때까지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을 거부했다. 한마디로 세례식을 거부했던 것이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서야 그는 신부님을 모셔달라는 부탁을 한다. 신의 은총이 없는 죽음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세례를 받은 후 그는 숨을 거두면서 한마디를 내 뱉는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제는 제가 돼지처럼 죽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라고 쇼팽은 말했다. 선생님의 피아노를 들려드릴까요? 주변인들이 죽음의 경계에서 서성이며 혼미한 정신의 쇼팽에게 물었다. 아닐세, 쇼팽은 대답했다, 모차르트 레퀴엠을 들려주시게나... 그렇게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쇼팽을 추억하며 서평단에 신청한 이유는 단 하나, 필자는 쇼팽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였다. 바꾸어 말하면 시.인.인 필자가 느끼는 쇼팽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함이었다. 쇼팽은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고 없고를 이미 떠나버린 인물이지 싶다. 그토록 널리 알려진 쇼팽이지만 그의 음악을 통하지 않는 다면 쇼팽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부인할 방법이 없다. 

박시하의 이 책은 그리하여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먼저 들으면서 시작하게 한다. 음악을 들음으로서 같은 시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독서, 남다른 특징을  가진 독서라고나 할까... 읽을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결코 속도를 낼 수 없다. 이 책에 관한한 속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필자의 한 줄 한 줄이 바로 시어들이기 때문이다. 시만큼이나 아름다운 박시하의 언어들을 공감할 수 있다면 그 속도는 안단테 안단테, 아니 렌토, 아다지오, 안단테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물론 때로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한동안 쳐다봐야 할 때도 있다.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거쳐야할 곳이 많다. 우선 박시하는 독자에게 쇼팽을 초대한다. 한마디로 독자는 바로 쇼팽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박시하라는 작가의 프리즘으로 쇼팽을 마주하는 것이다. 하여 작가와 그의 시, 쇼팽과 그의 곡을 동시에 만나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쇼팽을 관통해버린 박시하의  감성 프리즘이 비추어주는 쇼팽의 삶을 독자가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 인 것이다. 이는 삼자의 대면 같지만 어떻게 보면 작곡가와 그의 음악, 시인과 그의 시어들, 그리고 독자의 감성과 그 해석법이 어우러지는, 6자 대면이면서 서로 하나로 관통한다. 결코 단순하지 않는 하나의 장을 만나는 행위이다. 서로가 자신의 매체로 소통을 시도하는 장 말이다. 이렇게 주절대는 것은 박시하가 안내하는 쇼팽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이 책을 읽었을 때 오는 감동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느끼는 바를 글로는 결코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것. 그렇게 공감하며 읽어가다가는 어느 순간, 나는 내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니다, 전혀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낮선 모습의 나 자신일 것이다. 나의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듯 하지만 늘 함께하고 있으며 감각하고 인지하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때로는 박시하의 가이드가 완벽하게 나를 지배했구나 싶은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박시하는 독자를 지배하려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함께 어우러져 감동하는 바로 그 모습을 바램하고 있는 것이다. 쇼팽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쇼팽을 들어보고 싶게하는 책이다.  서평단의 이벤트에 참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신간인지라 후기를 접할 기회가 없어 출판사가 사전에 제공하는 정보가 유일하는 점, 선택을 앞둔 독자에게는 단점이다. 신간이라도 과거 같으면 책방에 들러 살펴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대대분의 책들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형편이니 편리함을 담보로 후회라는 대가를 치룰 각오는 필수이다. 서평단 이벤트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선 결정 후 대가라는 공식의 성립 가능성이 늘 뒤따른다. 이 경우 일독해야하는 부담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손에 쥐고 있는 책을 내려 놓아야하니 말이다. 이 책은 나의 책장에 오래도록 한 자리를 차지할 할 것이다. 쇼팽이 있기에 백건우가 존재하듯, 쇼팽이 있고 시인 박시하의 언어들이 은빛 물고기들의 지느러미가 번득이듯 살아 있다. 감동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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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6 0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 교양철학 시간이었다. 담당 교수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술을 마신다 - 술 마시는 동물도 있다던 걸?

울고 웃는다 - 나는 소가 울음을 우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기르는 개(dog)가 웃더라고 하던데?

등등 당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대답으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교수는 자신의 견해도 밝혔다. 인간은 넥타이를 맨다는 점이 동물과 다르다, 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교수가 의미하는 구별 매개로서의 넥타이는 매우 상징적이며 다양한 해석을 할 수가 있는 구별 조건이 될 수 있다. (넥타이만 매면 뭣하나,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허다한걸,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ㅠ.ㅠ.) 어째거나 당시 나는 하나의 구별 조건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지속적인 생각을 해왔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최근 움베르토 에코의 부고를 접했다. 소식은 안타깝기 도하고 지구상의 귀한 보물을 잃었구나 싶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에코는 나에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존재임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준 한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에코는 최고의 기호학자이다. 아니, 기호 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호학에 대한 한계를 절감한 인물이었다. 하나 마나한 말이지만 그는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스스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또한 널리 알려졌듯이 중세에 관한한 그야말로 〈미로의 도서관〉만큼이나 많은 자료를 지니고 있었던 그였다. 박사학위는 토마스 아귀나스를 주제로 할 만큼 중세에 애정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기호학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해야했고 결국 그는 선언해버렸다, “기호학 이론으로 말 할 수 없는 것은 소설로 써라!” 이 선언은 어찌 보면 자신의 학문에서 딜레마에 봉착했다는 고백적 선언과 다름없는 대 사건이었다.

 

 

에코는 소설이라는 매개물을 돌파구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선언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듯이 걸출한 물건을 하나 내놓는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장미의 이름>이다. 자신의 선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소설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기호학을 대중에게 선물한 것이다. 아, 에코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런 점에 있다. 그리고 소설이 그 매개였다니...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돌파구가 아니었을까...

 

 

에코가 <장미의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미로의 도서관을 가진 존재이다. 이 도서관은 평범한 도서관이 아니다. “들어가려는 자에게는 넓지만 나오려는 자에게는 한 없이 좁습니다.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오는 것은 장담하지 못합니다.” 이런 도서관 말이다.

 

에코가 내게 던져준 또 하나의 구별 조건은 바로 종교였다. 인간만이 종교를 가진다는 사실. 도서관지기 호르헤의 신념은 종교에서 비롯한다.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 말이다. 그것이 비록 사람을 해치는 일일지라도…….

호르헤 수도사를 통해 인간의 강력한 자아는 그것이 종교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결코 바르지 않을 수 있음을 에코는 보여주고 있다.

 

 

<금강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의 고와 집은 금강석만큼이나 단단한 것이라고 말이다...이것이 바로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점인 것이다.

 

아, 장미의 이름 속 도서관을 언급하다보니 도서관지기 호르헤를 피해갈 수가 없다. 이 대목에서 에코가 그 얼마나 베껴오기의 대가였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알라딘 검색창에서 <호르헤>를 입력하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발견하게 된다. 알라딘에 그의 이름으로 검색되는 도서가 한 두 권이 아니다. 그 중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책이 있다. 에코는 바벨의 도서관을 참고하여 미로의 도서관을 설계했다. 나아가 수도사 호르헤라는 등장인물은 아니나 다를까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자용한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믿어도 좋을까? 믿어도 좋다. 작가 호르헤의 눈도 점점 어두워지다가는 결곡 앞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수도사 호르헤도 앞을 볼 수 없는 인물 아니던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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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 흰 건반 검은 시』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 ‘활자에잠긴시’

그 첫 번째 이야기 쇼팽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박시하

 

 

▶ 책소개

 

첫 선을 보이는 ‘활자에잠긴시’

시로 쓴 산문.

한 번쯤 시로 쓰고 싶은 산문.

쇼팽, 켄 로치, 올리버 색스!

시인이 평소 동경하는 예술가와 만납니다.

당신의 ‘활자에잠긴시’를 들려주세요.

 

올겨울, 첫 선을 보이는 알마 ‘활자에잠긴시’는 시와 그림으로 쓴 에세이로 알마 출판사가 오랜 준비 끝에 선보이는 산문 시리즈다. 저자인 시인이 평소 동경하고, 많은 영향을 주는 예술가와 일대일로 만나서 서로 경계를 두지 않고 소통한다. 때로는 편지를 주고받고, 서로의 관심을 나누고, 무심한 듯 응시하기도 하며 각자의 가슴 속에 담긴 이야기를 시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자유롭게 풀어간다.

 

박시하,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활자에잠긴시’의 첫 번째 이야기는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이자 최근 쇼팽 스페셜 리스트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임동혁을 통해서 더욱 유명해진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다. 감각적인 문체로 삶의 소소한 기적을 발견하는 시인 박시하가 쇼팽을 만났다.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은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인 ‘활자에잠긴시’ 시리즈의 첫 문을 여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에서 시인 박시하는 평소 쇼팽과 그의 음악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각각 ‘만남’, ‘사랑’, ‘이별’, ‘대화’라는 테마 아래서 ‘발견’, ‘불일치’, ‘망각’ 등의 다양한 사유로 기록한다. 저자는 평소 쇼팽을 만나는 삶을 통해서 독자에게 쇼팽의 음악이 가진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쇼팽이라는 우주가 가진 빛나는 감정들, 쇼팽과 저자 사이에 오가는 비밀들을 독자에게만 은밀히 보여준다. 







 

 

이벤트 참여하기 

1. 기간 : 2016년 12월 18일 ~2016년 12월 25일

2. 당첨자 발표 : 2016년 12월 26일 

3. 모집인원 : 20

4. 참여방법

필수) 이벤트 페이지를 SNS(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 스크랩하세요.

-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5. 당첨되신 분은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네이버도서'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미서평시 추후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이벤트 기간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인간의 영역 밖, 쇼팽

쇼팽은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음악으로서만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이야기한 사람이다. 그는 15세 때 처녀작 ≪론도 작품 1≫을 내놓았고, 18세 때 베를린을 방문해 유럽 음악계를 견문했다. 특히 유럽 음악의 중심지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독주회를 열었을 때 슈만은 그를 이르러 “여기 천재가 나타났다”며 청중들에게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라고 말한 바 있다. 쇼팽은 음악에 몸과 영혼을 다 바쳤다. 그의 삶은 아픔으로 얼룩졌지만, 그의 음악은 완벽하다. 완벽.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불가능한 단어인가! 저자는 불가능함에 이른 쇼팽의 음악을 가리켜 “노래가 되었고, 시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쇼팽이 살았던 삶, 슬픔과 고통, 환희와 기쁨을 통해서 저자는 그의 음악을 조금 더 잘 느낄 수 있으며 음악을 통해서 쇼팽 특유의 우유부단하고 서글펐던 몇 번의 사랑을 천천히 추적해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만남, 사랑, 이별, 대화

저자는 음악이 곧 만남이고 대화이며 동시에 사랑과 이별을 동반한다고 담담하게 읊조린다. ‘만남’, ‘사랑’, ‘이별’, ‘대화’로 이루어진 이 길지 않은 이야기는 분명 쇼팽에 관한 산문이라는 점에서 다른 에세이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마치 책 속의 책처럼, 산문이라는 형태 안에서 ‘쇼팽’과 ‘박시하’라는 예술가가 더욱 밀접하게 교류하는 이야기다. 그것이 여느 산문집과 다른 신선함으로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저자가 하는 이야기는 때론 쇼팽과 무관해서 쇼팽이 한 번쯤 “나를 기다리냐”고 되물으며 책 밖으로 차가운 손을 내밀기도 한다. 경계 너머,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 ‘활자에잠긴시’ 그 첫 번째 이야기 손님 쇼팽.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손님 박시하. 이 둘의 활동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책이라는 테이블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 만나고, 응시하고, 사랑하며 때로는 이별하는 먹먹함을 동시에 선사할 것이다.

 

피아노의 시인과 기적의 시인이 만나다

작가는 ‘음악성 그 자체로 이미 시’인 쇼팽의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쇼팽, 그의 음악은 단순히 드러나는 것이 아닌, 매우 조심스럽고 예민해서 마치 이 세계가 은밀히 품고 있는 비밀 같다. 작가는 시라는 것이 세계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점을 든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서 이 세계가 품은 비밀을 연주하는 ‘피아노의 시인’ 쇼팽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때론 쇼팽을 바라보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때론 쇼팽의 음악을 만나 삶을 확장시키는 주체로서 작가의 따뜻한 응시가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지금 쇼팽을 기다리는 또 한 명의 독자와 만나려 하고 있다. 

    


 

지은이 박시하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편집디자이너로 일했다. 2008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았고 2012년 첫 시집 《눈사람의 사회》(문예중앙)와 2016년 두 번째 시집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문학동네)를 냈다. 산문집 《지하철 독서 여행자》(인물과사상사)를 냈으며 독립잡지 《더 멀리》의 디자인을 맡고 있다. 시와 산문을 계속 쓰고 있으며, 소설 읽기와 음악 듣기, 산책하기를 사랑한다. 성차, 성 정체성, 나이와 사회적 지위, 신체적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위계와 폭력을 반대한다.

 

그린이 김현정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덕성여자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평면조형을 전공했다. 2008년 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신진예술가 부문에 선정되었고, 기억 속의 장면이 현재와 만나는 지점을 포착하여 회화의 감각에 집중하는 그림을 그린다. 2009년 《always somewhere》, 2012년 《열망Desire》 등 지금까지 6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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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은 조선의 영웅이 되어 만고에 빛나는 그 이름을 죽백에 남길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스스로 저버렸다. 전쟁은 조선의 승리로 끝을 맺었으나 고니시는 흥인지문으로, 가토는 숭례문으로 의기양양하게 입성했다는 사실은 수 백 년이 흐른 뒤에도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추억으로 남게 된다. 대한 제국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영토나 다름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임나일본부가 우리 땅을 지배했고, 임진란을 통해 다시 한 번 더 점령했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임나일본부에 대한 학자들의 주장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 최근 벌어졌던 학자들의 송사는 일제의 잔재가 그 얼마나 지대했던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랄 수 있다. 일본은 그렇게 수 백 년 동안 조선을 탐욕해왔다. 잠시도 그 탐욕을 중단해본 적이 없다. 

 

일제는 조선을 강제 병탄시킨 후 온갖 나쁜 짓은 죄다 저질렀는데, 조선의 국보가 될 만한 문화재를 전국 조사하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조선 전국이 죄다 문화재이고 국보였다. 조선은 딱히 문화재에 번호를 붙여 관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것이 문화재 였기에 그럴 필요성을 아직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조선에서 국보급 문화재를 조사하는 것이 무슨 잘못일까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의도가 겁나 겁나 불순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하기야 일제가 당시 좋은 뜻으로 한 일이 어디 하나라도 있었겠는가. 지들 멋대로 문화재에 번호를 가져다 붙이고 관리했다. 이 관리하는 것이 또 의도가 불순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남대문이고 동대문인 것이다. 조선의 얼과 정신을 담고 있는 물건의 기운을 죽여주어야 조센징들의 기도 죽일 수 있다. 조선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노예처럼 부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왜는 조선을 탐욕했고 조선의 땅과 그 백성들을 그렇게 지배하고 싶어했다. 현재로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한 말이다. 조선 땅은 그들의 끝없는 욕망의 대상인 것이다.   

 

 

그리하여 일제는 지들 멋대로 숭례문을 남대문으로, 흥인지문을 동대문으로 불렀다. 숭례문, 흥인지문하면 정신과 얼이 살아 있게 되지만 남대문, 동대문 하면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게 된다. 하여튼 일제는 조선을 수 만년 동안 그렇게 약탈하려는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숭례문, 흥인지문이라는 이름은 조선인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지고 말 것이라는 지극히 장기적인 계획 말이다. 문(門)처럼 일본으로 가지고 갈 수 없는 귀한 것들에는 이름을 새로 지어 그 격을 떨어뜨렸고, 가져갈 수 있는 국보급 문화재들은 일본으로 들고 가벼렸다. 조선은 우리 문화재를 일본으로 들고가도 좋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일제의 관료들은 관료들대로, 일제의 개인들은 개인대로 밀반출했다. 귀하고 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그렇게 일본으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는 헤아릴 수가 없다는 것 또한 대한민국 국민이면 죄다 알고 있는 일이다.

 

일제가 조선 땅의 보물들을 탐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히데요시는 왜군들이 조선에서 빼앗아간 보물들을 쳐다보며 기뻐서 잠조차 이루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조선의 것이  다완(茶碗)이었다. 히데요시는 조선의 다완에 미쳐있었다. 그리하여 조선의 도공이란 도공들은 죄다 잡아갔다. 일본이 도자기를 수출하여 돈은 겁나게 벌어들인 것은 임란 때 잡아간 조선의 도공들 덕분이었다.

 

현재 일본의 국보 제 1호는 「광륭사목조미륵보살반가상」이다. 학자들은 이를 6세기 경의 신라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고있다. 반가상이 통나무로 제작한 것이고 적송이라는 점, 일본의 초기 불상들은 노송나무를 썼고 부위별로 따로 만들어져 붙였다는 점, 제작 기법이 신라와 같다는 점등을 근거로 들고있다.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 큰소리를 치지 못하는 입장인 것이다. 아, 진짜...

여허튼, 밥그릇은 고사하고 숟가락 젓가락까지 빼앗아 간 넘들이 아니던가...

 

광륭사목조미륵보살반가상 (인터넷 어디에선가 퍼옴)

 

여러가지 과학적 정황으로 보아, 광륭사목조미륵보살반가상, 은 우리의 것이 틀림이 없다. 남들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그런 짓을 대놓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확실히 다르다. 비록 자기네 것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떡하니 지네들 국보 제1호로 지정했다. 이 얼마나 낯 두꺼운 일이던가. 연구를 하면 할 수록 광륭사 반가사유상이 한반도에서 넘어간 것이라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던지 은근 슬쩍 어느 틈엔가 일본은 국보지정 제도를 없애버렸다. 임란때 도적질을 해간 것인지, 아니면 교류를 통해 정상적인 방식으로 넘어간 것인지 알 길은 없다. 어째거나 일본은 남의 것이라도 귀한 줄은 안다. 일본 처럼 남의 것을 뻬앗아다가 국보를 지정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국민과 우리 국보들이 귀한 줄을 알아야한다.  

 

 

 

 

 

알고 보면 지명이나 학교의 이름에 방향을 나타내는 남서울, 서서울, 동서울 그리고 강서고, 강동고등등 또한 일제의 잔재들이다. 조선은 지명이나 공식 건물에 방위를 붙여 이름 짖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고려의 개성에 남산이라는 지명이 있었다 하고, 신라에도 남산이라는 산이 있었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서울의 남산도 잘은 모르겠지만 일제식 이름은 아닌가 상당히 의심스럽다. 과거 서울의 남산은 지금의 이름이 아니었기에 하는 말이다. 여하튼 그 유래는 알 수는 없지만 애국가에도 남산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우리의 지명을 지들 멋대로 바꾸어 놓은 곳이 전국에 한 둘이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지금의 대전(大田)이다. 지금의 대전을 우리 조상들은 한밭이라 했고 太田(태전), 드물게는 泰田(태전)이라도 불렀다. 한밭은 太田(태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태(太)는 콩(豆)을 뜻하기도 한다. 콩의 색깔에 따라 황태, 백태, 서리태(검은 콩)라고 불렀다. 태전은 콩이 많이 나는 지역이기도 했던 것이고 太田은 큰 밭과 콩밭이라는 중의를 아우르는 지명이었던 것이다.

 

 

충청도의 어느 지명은 안면도(安眠島)이다. 그 옛날 일제 강점기 전에는 안민도(安民島)라 부르던 곳이다. 백성(民)을 편안히(安) 한다는 뜻을 가진 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이 지명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아니면 정신을 빼놔야겠다 생각했던지 백성 민(民)을 ‘졸린다, 존다, 잠 잔다’ 는 뜻을 가진 면(眠)으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지들이 무슨 짓을 하던 간에 잠자코, 아무생각하지 말고 저항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하는 의미로 바꾸어 놓았다는 개인적인 의심이 든다.

 

 

이렇게 일제는 조선이 가진 전국의 이름들을 가만 놔둔 것이 별로 없다 (조선 백성들의 이름마저도 개명시킨 넘 들이다 진짜).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있다. 대한민국은 1962년 국보 제 1호로 남대문을 지정했고, 그 이듬해 보물 제 1호로 동대문을 지정했다. 이는 전 국민이 죄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왜 남대문을 국보 제1호 로, 동대문을 보물 제 1호로 지정했는가 이다.

 

 

1962과 1963년 당시 대한민국의 관료들이 문화재를 지정하면서 숭례문과 흥인지문에게 원래 이름도 돌려주지 않았다. 일제는 강점기 당시 숭례문을 보물 제 1호로 지정했다. 그런데 1962년 당시 관계자들은 추호의 반추도 없이 일제가 정해놓은 그대로를 전승,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각각 국보 제 1호, 보물 제1호로 등재했다.

 

일제는 1592년 조선 침략 당시 제 2선봉장 가토와 1선봉장 고니시가 입성했던 그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추억하며 숭례문을 보물 제 1호로 지정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도 말이다. 행여 역사를 잘 아는 일본인이 너네 국보 제 1호 남대문은 가토가 입성했던 그 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고, 너네 보물 제 1호는 고니시가 입성 했던 바로 그 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들에게 우리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토록 일제에게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관료들이 국사를 돌본다 하다가는 결국 나라가 이모냥 이 꼴이 되고 말았다. 위정자들이 오로지 권력만을 탐하고 이익만을 쫒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행적으로 보건데 진정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없었다.

 

 

고려 말 비극적이고 처참했던 백성들의 고단함은 제쳐두고라도, 조선 500년 동안 어느 하루라도 백성들에게 편할 날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조선의 백성들은 늘 하대 받았다. 냥반들은 냥반이 아닌 자 누구하나 결코 존중해준 적이 없었다. 온갖 설음을 죄다 겪었고, 국가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은 없었으나 국난이 있을 때면 늘 몸으로 총칼을 막아냈다. 그런 백성들이 고맙지 않은가?

 

 

중국의 5경 중 서경의 하서(夏書) 3편에는 「五子之歌오자지가」라는 글이 있다. 「오자지가」 중 워낙 많은 분들이 인용을 하고 있는 구절이 하나가 있는데 “民可近 不可下 民惟邦本 本固邦寧民可近” (민가근 불가하 민유방본 본고방녕) 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구절은 율곡이 성학집요에서도 사용한 글이고, 고문진보에도 등장하는 글이다. 맹자 역시 이 문구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듯하다. 일부의 학자들은 「오자지가」를 본디 「하서」에 있었던 글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가히 본받을 만하기에 적어둔다. 오자지가에 관련한 전설을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에 딱 맞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그 내용인 즉 이러하다.

 

民可近 不可下 民惟邦本 本固邦寧”

(민가근 불가하 민유방본 본고방녕)

“백성들을 늘 가까이하되 절대로 낮추어 보면 아니 된다

백성이란 그야말로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건해야 나라가 편안한 법이다.“

 

 

입으로는 떠들면서도 수 백 년 동안 백성을 나라의 근본이라고 생각한 위정자들은 거의 없었다. 백성들은 그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켜가는 수단일 뿐 이었다. 돌이켜보면 위정자들이 국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결과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숱한 왜구의 노략질을 겪어야 했다. 임란, 정유란, 병자ㆍ정묘호란 등으로 죽어난 것은 백성들 이었다. 그 불쌍한 백성들은 일제 강점기를 몸으로 겪어야 했다. 위정자들은 그러나 심지어는 나라까지 팔아먹기도 했다. 그들은 나라를 판 돈으로 잘 막고 잘 살았다. 힘없는 국민들 끝까지 지키려 노력했건만 말이다. 불구하고 국민들은 팔려버린 나라를 다시 되찾겠다며 나섰다. 상해 망명정부 이후, 100여년에 걸쳐 국민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죽어갔고 그것도 모자라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 전쟁을 또 치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새파란 젊은이들을 차가운 바다 한 가운데에서 잃어버렸다. 백성들은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치욕과 수모를 겪어 만들었다.

 

일제가 저질러 놓은 잘못들을 바로잡지 않았고 되레 동조하며 국정을 농단했으니 그 죄가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정치가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국민들이 나섰다. 수험을 앞둔 청춘들마저도 촛불을 들었다. 이제 그에 대한 답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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