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더니스트 마네
홍일립 지음 / 환대의식탁 / 2022년 8월
평점 :
절판
인상주의 미술에 대해서 설명하면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는 무조건 거론된다. 마네는 그림 한 점 때문에 사이가 나빠진 드가(Edgar De Gas)를 제외한 인상주의자들에게 지지받았다.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와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지지한 문인이다. 두 사람은 마네의 그림에서 ‘현대성’을 발견했다. 현대성이란 평범한 일상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의 특성을 의미한다.
오스만(Haussmann) 남작이 주도한 대규모 재개발 사업은 파리를 도시의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공장이 줄줄이 들어서고, 철도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먼 거리를 오갈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파리는 자본주의라는 심장에 맞춰 움직이는 혁신적인 공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리의 현대인들은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과거의 미학을 선호했다. 젊은 화가를 양성하는 미술 학교의 교사는 학생들에게 고대 로마인들의 생활이나 고대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잘 그리는 방법을 가르쳤다. 미술 학교를 졸업한 화가들은 스승이 가르친 대로 그림을 그렸고, 평단으로부터 재능 있는 화가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마네는 달랐다. “화가는 자기가 본 대로 그려야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만이 진실이다.” 그게 마네의 신조였고, 그는 파리의 민낯을 화폭에 옮겼다. 마네는 벌거벗은 여신이 아닌 매춘부를 그렸다. 그림 제목은 당시 매춘부들이 주로 사용하던 이름이었던 ‘올랭피아(Olympia)’다. 이 그림 하나가 프랑스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마네의 그림을 본 비평가와 관객들은 불쾌감과 분노를 표출했고, 마네를 조롱했다.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걸작인 마네의 <올랭피아>는 그렇게 대중의 소란스러운 여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모더니스트 마네》는 인상주의 예술이라는 표본 상자에 박제된 마네가 아닌 ‘현대생활의 화가’ 마네를 주목한다. 마네는 화려함에 감춰진 파리의 어두운 그늘에 관심이 많았다. 파리가 재개발되면서 빈민가는 점점 파리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곳에 그늘이 생겼다. 파리의 중심부에 사는 부르주아는 빈민과 넝마주이를 ‘살아있는 쓰레기’로 취급했고, 빈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문학과 예술은 추악하다고 생각했다. 부르주아만 드나들 수 있는 전시회에 가난한 사람이 주인공인 그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마네는 가난한 사람을 파리 시민이자 현대인으로 인식했고, 이들의 삶을 예술로 옮겼다.
마네가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는 총 여덟 번 치러진 인상주의 전시회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마네를 제대로 알고 평가해야 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의 색을 포착하려고 했다면, 마네는 시대의 흐름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기록한 ‘모더니스트’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모여서 ‘빛을 만난 예술’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을 때, 마네는 전시회에 없는 그림을 그렸다.
《모더니스트 마네》는 인상주의자들과 구별되는 마네의 작품 세계를 미술사에 문외한 독자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보면 《모더니스트 마네》는 잘 만든 책은 아니다. 내 돈 주면서 사고 싶지 않은 책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 책을 나오자마자 주문해서 샀다. ㅅㅂ
[취소 선 사유: 저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비속어를 썼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초판본은 잘못 만들어진 ‘파본’이다. 초판본 앞표지 그림은 앙투안 르냉(Antoine Le Nain)의 <늙은 파이프 연주자>(1642년) 일부이다. 뒤표지 그림은 마네의 <늙은 음악가>(1862년) 일부이다. 마네에 관한 책인데 정작 앞표지에 있어야 할 그림은 마네가 그린 것이 아니다.
더 웃긴 사실은 책 앞날개 밑에 있다. 거기에 표지로 사용된 그림의 제목이 적혀 있는데, <늙은 파이프 연주>가 마네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제대로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오자’다. 출판사가 초판본이 잘못 만들었다는 것을 파악했는지, 앞표지 그림을 <늙은 음악가>로 변경한 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대구 교보문고에 있는 《모더니스트 마네》는 표지 그림이 잘못된 파본이다. 출판사가 대형 서점에 남아 있는 파본을 제대로 회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책의 얼굴만 잘못된 게 아니다. 책 내부도 좋지 않은데, 책 속에 오자와 오류가 많다.
[취소 선 사유: 제 서평에도 오류가 많습니다. 삭제해야 하지만, 그냥 지운다고 해서 저의 명백한 실수는 덮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 있는 내용에 취소 선을 표시했습니다. 서평에 확인된 오류를 짚어준 홍일립 님의 글(링크 첨부)을 참고하세요.]
홍일립, <cyrus님께 답변해드립니다>
https://blog.aladin.co.kr/713543113/14002326
16쪽에 ‘여류 인상주의자 베르트 모리조’, 21쪽에 ‘여류화가’라는 표현이 있다. 오자는 아니지만, 이런 구시대적 표현을 안 쓰는 게 좋다.
59쪽 각주에 있는 존 리월드(John Rewald)의 책 제목을 수정해야 한다. ‘인상주의’가 아니라 ‘인상주의의 역사(History of Impressionism)’다.
* 75쪽
가령 쿠르베의 <센 강변의 아가씨들>과 마네의 <풀밭에서의 점심>를 비교해보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예술세계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중략]프리드는 양자의 누드화에서의 근본적 차이를 지적하면서 “이들이 처한 상이한 역사적 위치 때문에 상호 간에 예술적으로 반응하는 경쟁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귀스타브 쿠르베
『센 강변의 아가씨들』
1856~1857년
쿠르베의 <센 강변의 아가씨들>은 누드화가 아니다.
* 107쪽, 108쪽(그림 3-12)
마네는 모방의 기술을 창작에 자주 사용한다. <올랭피아> 바로 직전에 그린 <풀밭에서의 점심>에서도 이 기술을 구사했다. 마네는 그림의 중심부에 위치한 주인공들의 포즈를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판화 <파리스의 심판>에서 그대로 빌려왔다.
<파리스의 심판>은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Marcantonio Raimondi)이 제작한 판화 작품이 아니라 ‘(판화 형태의) 복제품’이다. <파리스의 심판> 원본은 라파엘로(Raffaello)가 그렸는데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라이몬디는 알브레히드 뒤러(Albrecht Durer)를 포함한 거장들의 작품을 대량으로 복제해서 판매했다. 그 당시에 지식재산권이 없던 시대라서 거장들의 대표작을 베껴서 그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 184쪽
한편 그림 왼쪽 상단에는 마네의 대표작 <올랭피아>를 비롯해서 3점의 액자가 걸려 있다. 나머지 2점은 마네 회화의 참고문헌 구실을 한다. 먼저 고야의 동판화 <작은 기사들>은 자신의 회화에서 고야가 중요한 출처 중 하나임을 암시한다.
<에밀 졸라의 초상>에 있는 <작은 기사들>은 고야(Goya)의 동판화 작품이 아니다. 벨라스케스(Velázquez)의 작품을 판화로 복제한 모사품이다.
* 173쪽 각주
빅토르 위고家가 → 빅토르 위고가
* 174쪽
줄 상플리에 → 쥘 상플뢰리(Jules Champfleury)
* 191쪽 각주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김병화 옮김, 생각의나무, 2005.[주]
[주] 2019년에 개정판(출판사는 ‘글항아리’)이 출간되었다.
* 196쪽 각주
『스펙터클의 사회』, 이경숙 옮김, 현실문화연구, 1996.[주2]
[주2] 표준어 규칙대로 쓰면 ‘스펙터클’이지만, 출간 당시 책 제목은 ‘스펙타클의 사회’다. 현실문화연구에서 나온 《스펙타클의 사회》는 절판되었고, 2014년에 개정판(유재홍 옮김, 울력)이 출간되었다.
* 234쪽
푸르동주의자 → 프루동주의자
* 274쪽
마네의정치적 성향을 → 마네의 정치적 성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