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에 올푸리 출판사의 전자책인 《오비의 빛》이 새로 업데이트(개정)되었다. 예전에 내가 확인한 연도 표기 오류뿐만 아니라 맞춤법도 고쳐졌다. 4월 15일 이전에 다운받은 전자책이 e-Book 책장에 있으면 그걸 삭제하고 다시 다운로드하면 된다. 그러면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올푸리 출판사 공식 블로그에 공지되어 있다.
※ 링크: https://orpuhlee.blogspot.com/
새로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다운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출판사의 공지 사항을 보면서 처음에는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다시 사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사들이지 않고도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e-Book] 아서 맥킨 《오비의 빛》 (올푸리, 2019)
이번에 업데이트된 전자책에 또 하나 추가된 내용은 저자명 표기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나는 《오비의 빛》 리뷰에 작가 Arthur Machen을 ‘아서 매켄’ 또는 ‘아서 매컨’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을 표명한 내 글을 본 올푸리 출판사 편집자가 답변을 보냈다. 출판사 편집자의 답변을 읽고 난 뒤에 생각이 달라졌다.
달라진 내 생각은 이렇다. 첫 번째, ‘아서 매켄’ 또는 ‘아서 매컨’으로 반드시 표기해야 할 의무는 없다. 두 번째, ‘아서 메이첸’ 또는 ‘아서 맥킨(올푸리 출판사가 표기한 저자명)’으로 표기하는 것이 틀렸다고 말한 내 입장은 잘못되었다.
Arthur Machen에 관한 국립국어원의 권장 표기법은 없다. 주로 많이 쓰이는 게 ‘아서 매켄’과 ‘아서 매컨’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표기법을 많이 쓴다고 해서 올바른 저자명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아서 메이첸’ 또는 ‘아서 맥킨’으로 표기하는 것은 틀렸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주관적인 잣대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만 셈이다. 국립국어원의 권장 표기법이 없는 단어를 둘러싸고 어느 표기명이 맞느냐 틀렸느냐 식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출판사 편집자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원어민들이 ‘Machen’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조사하고 검토했다고 한다. 편집자가 내게 제시한 참고 자료는 1937년에 아서 매켄이 BBC의 웨일스 지역 방송에 출연하면서 남게 된 육성 자료다. 놀랍게도 이 귀한 자료는 유튜브에 있다. 이 영상에 흘러나오는 방송 진행자의 말을 들어보면 Machen을 ‘맥킨’ 또는 ‘매킨’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월 11일에 등록된 《오비의 빛》 관련 글 두 편을 수정했다. 잘못된 내용에 취소 선을 그었다. 예전에는 아무도 모르게 문장을 지웠다. 정말 간단한 일이다. 내 글에서 드러난 결점을 말끔하게 지울 수 있다. 하지만 남몰래 내 결점을 숨기는 게 과연 잘한 일일까? 나의 좋은 점이 부각된 글은 보여주고 내 결점이 분명하게 남아있는 글을 숨기는 데 급급하면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못한다. 내 결점을 분명히 확인했다면 그게 왜 그렇게 나왔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피드백을 거치고 난 후에 글의 결점을 삭제해도 늦지 않다.
*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팩트풀니스》 (김영사, 2019)
* 은유 《다가오는 말들》 (어크로스, 2019)
* 은유, 이은의, 윤정원, 박선민, 오수경 《불편할 준비》 (시사IN북, 2019)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은 “실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실수에서 호기심을 가지라”[주1]라고 말한다. ‘내가 그 사실을 어쩌면 이렇게 잘못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실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결점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로슬링이 말한 대로 결점에 호기심을 가지면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마음속으로 교훈을 얻는 데 그친다면, 금방 잊어버리기 쉽다. 글로 써서 남겨야 한다. 작가 은유는 이성복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한 일”이라고 말한다[주2]. 내 결점과 한계를 글로 기록하면 온전한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 결점을 확인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나와 다른 생각이 ‘틀렸다’고 단정 지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주관적인 생각에 가까운 ‘확신’이라는 오만함에 잠깐 눈이 멀었다. 은유는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했다[주3]. 그녀는 40대 후반이면 그걸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요즘 2, 30대의 젊은 사람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확신에 찬 사람’이 되기 쉽다.
어제 읽은 카알벨루치 님의 글[주4]에서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가 한 말을 발견했다.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주5] 나는 내 결점을 확인하고 난 뒤에 성찰하는 피드백(feedback) 과정도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피드백 과정을 글로 기록하고, 업로드하고, 공유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내 결점을 떳떳하게 글로 공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장점을 드러내고, 나를 자랑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건 분명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잠시 오만한 나’를 따끔하게 혼쭐내기 위한 글쓰기도 재미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부끄러운 나의 진짜 모습을 글로 표현하기가 망설여진다면, 은유의 문장[주6]을 주문 삼아 외워보자.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 약점과 결핍을 드러내는 용기, 글에 대한 어떤 평가도 받아들이는 용기, 다시 글을 쓰는 용기.
[주1] 한스 로슬링 외, 이창신 옮김, 《팩트풀니스》, 김영사, 2019, 357쪽
[주2] 은유, 『나로 살고 싶은 여성의 글쓰기』, 《불편할 준비》, 시사IN북, 2018, 193쪽
[주3] 은유, 《다가오는 말들》, 어크로스, 2019, 19쪽
[주4] [투명사회의 기괴한 라디오], 2019년 4월 18일에 등록됨
[주5]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529~530쪽
[주6] 은유, 《불편할 준비》, 190쪽